도인(道人) 1 - 23. 영생
23. 영생
그날 새벽에는 짙은 안개가 끼었다. 안개는 풀밭을 어루만지고 도량의 지붕에 부딪히면서 영롱한 이슬을 빚어 냈다. 매일 새벽이면 햇살이 퍼지기 전부터 소리 높이 지저귀던 새들도 모두 어디로 갔는지 사방이 고요하고, 바람조차 숨을 죽이고 있었다.
사이훙과 동료들은 샘에서 물을 긷고 있었다. 짙은 안개 때문에 샘 가까이 몸을 굽혀야 물을 퍼올릴 수 있었다. 샘물은 맑고 아주 차가웠다. 힘차게 솟구치는 샘물에 팔을 적신 사이훙은 벌에 쏘이기라도 한듯 그 시원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때 동료 한 명이 사이훙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키 큰 사람 하나가 천천히 풀밭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보였다.
전통 의상을 걸친 도인이었다. 몹시 냉랭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는, 두 발로는 이 세상을 밟고 있지만 영혼은 이 세상이 아닌 곳에서 노닐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걸음걸이 또한 매우 가벼워 마치 땅을 밟지 않고 걸어가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안개에 가려 흐릿한 모습을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뜬 사이훙은 그의 이마에 난 혹을 볼 수 있었다. 바로 불사(不死)의 태양 신선이었다! 사이훙은 7년 전 멀리서 그를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이훙 일행은 급히 도량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문을 들어서니 태양 신선이 사부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이훙 일행이 우르르 몰려가 꾸벅 인사를 하자 태양 신선은 사이훙 일행을 데리고 여기저기를 거닐면서 각자의 자질과 능력을 살폈다.
새벽 햇살이 퍼지고 있었다. 사이훙은 태양 신선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굵고 빳빳한 하얀 머리칼은 뒤로 단정하게 묶여 있었고, 턱수염은 뻣뻣한 실뭉치를 매달아 놓은 것처럼 억세 보였다. 피부에는 잔주름이 나 있었고, 매부리코와, 얇은 입술에는 날카로움이 어려 있었다. 이마에 돋은 큰 혹은 괴상망측한 종양처럼 보였다.
태양 신선은 걸을 때 전혀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가 입고 있는 겉옷도 길고 헐렁해 다리의 움직임을 전혀 볼 수 있었다. 사이훙은 그에게 다리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양 신선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이훙을 바라보더니 다시 걸음을 옮겼다.
태양 신선은 사이훙을 포함해 세 명의 신출내기를 선택했다. 태양 신선이 문가에 서 있는 동안 사부 중의 한 명이 입을 열었다.
「태양 신선께서는 진정한 불사의 경지에 도달하셨다. 태양 신선께서 지금처럼 도관에 오시는 일은 거의 없다. 저 분께서는 화산파의 제자들 가운데 너희 셋을 택해 당신의 제자로 삼으시려 하신다. 제자가 되면 불사의 도를 배우게 되지만, 일단 태양 신선을 따라가면 너희는 세상에서 잊혀진 존재가 되어 다시는 인간 세상을 볼 수 없게 된다.」
사이훙은 고민했다. 영생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 왔으나 막상 영원히 산다고 생각하니 안 마신 술까지 깨는 느낌이었다. 사이훙은 진정으로 영생을 원하는지를 스스로 물어 보았다.
첫번째 문제는 태양 신선에 대한 느낌이었다. 사이훙은 자신의 사부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따랐지만, 웬일인지 태양 신선에 대해서는 호감이나 친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두 번째 문제는 태양 신선의 외모였다. 태양 신선은 정자를 몸 밖으로 배출시키지 않는 몇몇 도인 중 한명이었다. 그들은 심지어 오줌에 섞인 정자를 걸러 내는 능력도 지니고 있었지만, 그런 반면 몸 속 어딘가에 모아 둘 수밖에 없었다. 태양 신선의 이마에 있는 혹은 바로 그 정자를 축적한 곳이었다. 옷으로 가린 몸 여기저기에는 더 많은 혹이 있을 게 뻔했다.
「자, 이제 마음을 정했으면 한 발 앞으로 나서도록 하거라.」
사부의 목소리가 사이훙의 귀를 파고 들었다.
〈아니야, 나는 아직 자격 미달이야. 모든 신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내게는 추악한 면이 너무 많아. 혹투성이 몸으로 더러운 냄새를 풍기면서 영생할 수는 없잖아? 차라리 이대로 살면서 명상을 수련하는 편이 낫지.〉
사이훙은 두 동료와는 달리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사이훙은 두 동료가 태양 신선과 함께 자욱한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태양 신선 일행은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고, 그 날 이후 사이훙은 그들을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