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마이어(Billy Meier)/접촉 보고서 (Contact Report)

스파트(Sfath) 접촉 보고서

기른장 2024. 3. 10. 16:46

The Sfath Contact Reports

스파트(Sfath) 접촉 보고서

 

스파트는 빌리가 5살 때 에두아르트가 처음으로 접촉한 외계인입니다.

 

다음은 현재 이용 가능한 (더 많은) 외계인과의 대화 내용을 필사하고 영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나의 첫 번째 UFO 목격과 그 이후의 첫 번째 접촉 1942년 / 1944년

Sfath의 설명 - 1945년 2월 3일, Sfath

접촉 보고서 670 Sfath 예측 - Sfath, 1948년 9월 1일

 

 

My first UFO Sighting and the first subsequent Contact

나의 첫 UFO 목격과 그 이후의 첫 번째 접촉

 

소개

접촉 보고서 권수/호수: 1

Pages: 4-10 [1975.01.28~1975.11.13의 1번~38번 접촉]

목격 날짜 및 시간: 1942년 6월 2일 화요일

번역가(들): 벤자민 스티븐스

최초 번역 날짜: N/A

수정 및 개선됨: 조셉 다르마닌

접촉자(들): 스파트(Sfath)

4부 중 2부: 나의 첫 번째 UFO 목격과 그 이후의 첫 번째 접촉

이것은 앞에서 제시한 일련의 사건들로, 이야기 역사의 줄거리로 이어지는 시작입니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은 연대순으로 주된 관심사의 이야기보다 더 일찍 시작됩니다. 일부 독자들이 이미 알고 있을 수 있는 더 넓은 뒷이야기는 훨씬 더 나중에,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제시되며, 더 넓은 뒷이야기로 건너뛰는 것이 처음이라면 이 단계에서 권장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읽은 후 여기서 시작하십시오. 에두아르트는 어린아이입니다.

 

나의 첫 번째 UFO 목격과 그 이후의 첫 번째 접촉

 

저는 5살 때 처음으로 의식적으로 UFO를 경험했습니다. 그것은 커다란 원반 모양의 물체를 목격한 것이었는데, 1942년 6월 2일 아침 9시, 정확히 말하면 뷜라흐/ZH CH(Bülach/ZH CH)에서였습니다. 저는 아버지와 함께 집 뒤편 큰 호두나무 옆에 서서 마치 마법에 걸린 듯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지만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뿐이었습니다. 마치 동쪽 지평선 위를 올려다보며 무언가를 찾으라고 말하는,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충동이 내 안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찾고 있던 것은 저에게는 미스터리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저 그 이상한 충동을 따라 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여름 아침의 하늘색 하늘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았습니다.

 

10분에서 15분 정도 지났을 때 제 시선은 아주 특이한 무언가에 사로잡혔습니다: 밝은 하늘에서 은빛 섬광이 빠른 속도로 내려와 거대한 금속 화살처럼 에셴모저베르그(Eschenmoserberg) 상공을 지나 75미터 높이의 개혁교회를 향해 곧장 날아가는 것이었습니다. 큰 탑 바로 앞에서 은색 섬광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탑을 지나쳐 우리 집을 향해 다시 빠른 속도로 상승했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에 빠른 속도로 번쩍이던 번개는 거대하고 둥근 금속 원반으로 변했습니다. 지름이 약 250~300m에 달하는 거대한 원반처럼 생긴 이 원반은 200m 정도 높이에서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환상적인 유령처럼 우리 위로 지나갔습니다. 불과 몇 초 전에 동쪽에서 번개처럼 나타났던 그 원반은 회라겐발트(Höragenwald) 숲 서쪽에서 순식간에 다시 사라졌습니다.

 

이해하지 못한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물체를 한참 동안 서쪽을 바라 보았고, 아버지는 상당히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서쪽을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아버지에게 그 원반이 어떻게, 어디서, 왜 그렇게 빨리 지나갔는지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곰곰이 생각하시더니 2차 세계대전 당시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논리적인 대답, "그건 아마도 히틀러의 최신 비밀 무기였을 거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겨우 다섯 살이었던 저는 아버지의 대답이 다소 불만족스럽고 너무 공상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매우 성가신 미국 폭격기가 끊임없이 우리 마을 상공을 날아 다니며 폭탄을 던지고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독일의 "스투카Stukas"(폭격기)와 다른 전투기가 가까운 국경 위로 오는 경우가 매우 자주 발생했지만, 제 생각에는 스위스 공군이 우리 마을 바로 위에서 종종 격추되거나 다른 방식으로 격추 된 "아미Ami 폭격기"와 마찬가지로 모든면에서 원시적인 것이 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사람이자 왠지 오래된 것에 집착하는 아버지의 설명과 일치하지 않았고, 기술 개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5살이었던 저는 한편으로는 라디오를 통해 들었던 전 세계의 거칠고 사악한 전쟁의 함성, 다른 한편으로는 미군의 끊임없는 폭격과 수 킬로미터 떨어진 우리 마을까지 밤낮으로 울려 퍼지는 중전차와 대포의 천둥소리에 자극을 받아 전쟁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모든 원시적이고 잔인한 일들이 미래지향적으로 보이는 원반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호두나무 아래서 생각하던 그때도 깨달았듯이, 그 밖에도 여러 가지를 고려할 때 매우 다른 두 세계가 단순히 충돌하고 있었습니다. 제 생각뿐만 아니라 제가 본 원반이 갑자기 아주 친숙해 보였고, 다른 곳에서 아주 좋고 평화로운 상황에서 동일하거나 매우 유사한 원반을 보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더 이상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설명이 아닌 다른 설명이 있어야 했습니다.

 

이런 생각과 의심으로 밤낮으로 하늘을 관찰하기 시작했고, 특히 밤에는 하늘에서 아주 높은 곳에 있는 크고 작은 "움직이는 별(moving stars)"을 점점 더 자주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인공위성이 없었고, 폭격기와 전투기가 계속 등장했기 때문에 이미 익숙해져 있었죠. 반면에 이 지극히 원시적인 지상 항공기는 "움직이고 자주 깜빡이는 별(moving and often also flashing stars)"처럼 엄청난 높이에서 비행할 수 없었고, 비행 경로도 매우 갑작스러운 지그재그 비행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제가 지금까지 어떤 지상 항공기에서도 관찰한 적이 없는 것이었죠.

 

그 당시 제가 '움직이는 별'을 보았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밤이나 별이 빛나는 날씨에 하늘 높이 20~40킬로미터 상공에서 여전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성이 UFO로 오인되지 않도록하기 위해 위성을 관찰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오후 10시에서 오전 2시 사이입니다. 왜냐하면 이 시간에는 지구가 햇빛에 완전히 그늘지고 특정 "영리한" 과학자들이 그 반대를 주장하고 싶어도 지나가는 위성이 빛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UFO는 이 시간대에 하늘에서 매우 높은 상공을 비행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별보다 크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처음 UFO를 목격했을 때만 해도 밤에만 '움직이는 별'로 보였지만, 비교적 짧은 시간이 지나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어느 아름답고 따뜻한 늦여름 오후, 저는 푸른 하늘 높이 떠 있는 구형의 물체가 천천히 표류하고 아래로 가라앉는 것을 보았고, 그것이 제대로 된 구형임을 알아볼 수 있을 때까지 기뻤습니다. 그러고는 아무런 소리나 알아볼 수 있는 이유도 없이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 후 며칠 동안 낮에 목격하는 일이 더 잦아졌고, 어느 날 다시 제 안에서 이상하게 이질적인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그것은 제 머릿속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와 비슷했고, 설명할 수 없는 이미지도 어딘가에서 나타났습니다. 이 내면의 목소리와 이미지들은 저에게 강렬하고 끊임없이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그 답을 제시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제가 6살이 되기 몇 달 전인 1942년 늦가을에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저에게 완전히 낯선 이 발현들, 내면의 목소리와 이미지들은 당시 그런 문제에 대해 무지했던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것은 제가 서서히 미쳐가고 있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왠지 모르게 저를 두렵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개신교 목사님 중 한 분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분은 제가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데도 상황을 잘 알고 계셨고 매우 친절하게 도와주셨어요. 그는 UFO 문제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고 이와 관련하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저에게 UFO와 저의 '내면의 목소리'와 '내면의 이미지'에 대해 알려주었고, 저를 끊임없이 부르는 목소리에 응답하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는 "내면에서 듣고 보는 것은 텔레파시일 뿐이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며 친근한 웃음으로 제 두려움을 없애주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놀랍고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던 저에게 그는 텔레파시로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지 아주 정확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외에도 목사님은 다섯 살 소년이었던 제가 아직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중에 이 늙고 사랑스러운 목사님이 초심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완전히 이해하게 된 다른 많은 것들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목사님의 조언대로 저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제 안에서 자주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집중하고 그 목소리를 부르려고 집중적으로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저는 갑자기 제 생각이 어딘가에서 어떻게든 접촉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상대방의 첫 번째 반응은 부드럽고 온화한 웃음소리였는데, 저는 그 소리를 듣고 내면 깊숙한 곳에서 진정과 편안함, 그리고 안심과 행복을 느꼈습니다. 그 후 이 접촉은 다시 사라졌고 그때부터 저는 내 안에서 어떤 목소리도 듣지 못했고 어떤 이미지도 보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이 갑자기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그 후 몇 달 동안 저는 1942년 11월에 당시에는 매우 이상한 경험으로 보였던 '랑겐징겐Langenzinggen'(회라겐발트Höragenwald 숲 뒤편에 있는 매우 외진 넓은 초원 지역으로 항상 활공에 이용되는 곳)에서 배 모양의 금속성 물체가 흐린 하늘에서 떨어져 땅에 닿는 것을 경험한 후에도 계속해서 간단한 관찰을 계속했습니다. 아주 나이 지긋한 한 남자가 이상한 비행체에서 내리더니 저에게 이리 오라고 하더군요. 저는 아무 말 없이 그를 따라가서 그의 비행체에 올라탔는데, 이미 화면에서 우리가 하늘 높이 올라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배 모양의 물체가 다시 가라 앉고 눈에 띄지 않게 땅에 떨어졌습니다. 노인은 저에게 내리라고 말했고 저는 몽유병 환자처럼 그렇게했습니다. 제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그 물체는 빠른 속도로 하늘로 수직으로 날아올랐고, 저는 놀라서 그 물체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깊은 생각에 잠긴 저는 이 경험을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며 집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목사님께도 말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았고 점점 더 비밀스러워졌습니다. 그 후 몇 년 동안 사물에 대한 단순한 관찰에 이어 또 다른 심오한 체험이 저를 매우 흔들리게 만들었습니다. 목사님의 해석을 통해서도 텔레파시에 다양한 형태가 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1944년 2월 3일 제 생일에 갑자기 조용한 목소리가 제 의식 속에 들려오면서 저에게 매우 엄격하게 배우고 이런 식으로 전달된 지식을 수집하라고 요청했을 때 두려움이 다시 불타올랐습니다. 저는 제가 갑자기 의식적으로 병에 걸렸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두려웠습니다. 어차피 부모님은 저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에 감히 부모님에게 털어놓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이번에는 제 의식 속에서 매우 분명하게 들리는 내면의 목소리가 계속 저를 안심시키려고 했지만 광기의 목소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믿지 못했습니다. 두려운 마음에 저는 다시 목사님에게 털어놓았고, 목사님은 제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아주 세심하게 들어주셨어요. 그 현명한 남자는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모든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특정 사안에 대해 저에게 광범위하게 지시하는 것만으로는 이 문제에 대해 많은 것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모든 일에 대해 절대적인 침묵을 지켜야 했는데, 그 어떤 것도 그의 직업과 양립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목사로서 이곳에서 사람들에게 종교의 진리에 대해 천천히 교육하는 형태로 매우 구체적인 이유로 일할 임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향 마을 사람들은 특히 신을 믿었고, 따라서 망상도 믿었기 때문에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당시에는 이런 형식의 연설문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그 깊은 의미를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 목사님을 거의 잊어버릴 뻔한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이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목사님이 저에게 아주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었던 한 가지는, 제 의식 속 목소리가 미쳐서 광기를 발아시키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텔레파시의 또 다른 형태일 뿐이며, 그 목소리는 우주 저 멀리 다른 세계에 사는 다른 사람의 생각의 목소리일 뿐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제 의식 속에서 들리는 이 목소리는 2년 전의 다른 텔레파시 과정과 마찬가지로 텔레파시적 의사소통 수단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형태의 텔레파시도 무제한 거리에서 사용되며 내 의식의 장애물 외에는 어떤 장애물도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2년 전 그가 텔레파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저에게 영적인 텔레파시만 언급했을 뿐, 물질적인 의식 차단을 통한 단순하고 일차적인 생각의 전달은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정상적인 의식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는 형태로 이 의사소통 수단을 언급하면서 텔레파시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 두 번째 상담 중에야 그는 내가 극도로 높은 진동 만 수용 할 수 있고 지구인과 같은 낮은 수준의 존재는 나를 관통 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고도로 발달된 생명체에게만 가능한 일인데, 나는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기 때문에 저급하고 아직 덜 발달된 지능과 존재들의 악의적인 계략과 영향력으로부터 면역이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내 삶이 매우 힘들고 궁핍과 고난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또 다른 타격을 주었지만, 목사님의 설명은 저에게 매우 좋은 것 같았지만 오늘날까지 사실로 입증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설명을 통해 저는 근거 없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초기 단계에 불과했던 일방적인 텔레파시 접촉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저는 질문하고 답을 받았습니다. 그때 저는 그 목사님이 제게 모든 진실을 말해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스파트(Sfath), 2000년 5월 15일에 그의 아들 프타(Ptaah)가 그린 그림

 

스스로를 스파트(SFATH)라고 부르는 인간 생명체와의 텔레파시 접촉을 통해 저는 제게는 거대해 보였고, 제게는 종종 미친 짓처럼 보였던 거대한 일들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저는 결국 저를 주변 세계와 단절시키는 모든 행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전보다 훨씬 더 악랄한 음모도 참아냈죠. 저는 사실상 마을에서 일어나는 모든 나쁜 일의 희생양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에 대한 거짓말을 하고 그 대가를 치러야 할 때에도 신경 쓰지 않고 조용히 미소만 지었습니다. 이후 걷지도, 서지도, 앉지도 못할 정도로 심하게 맞을 때가 많았어요. 그 결과 제 삶 전체가 점점 더 힘들어졌고, 심지어 학교도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여전히 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Sfath와의 텔레파시 접촉을 통해 여가 시간에 훨씬 더 철저하고 깊이있게 배웠기 때문에 이것은 저를 크게 괴롭히지 않았습니다.

 

제가 학교에 무단 결석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스터 업적"은 최악의 해에 175 번의 무단 결석에 달했습니다) 이상하게도 학교 당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가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학교 과정을 마칠 때까지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제서야 학교 당국은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이러한 사건들은 내 이야기의 논리적 과정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서 자세히 이야기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1944년에 스파트가 저와 텔레파시로 접촉했고 저는 목사님의 설명을 통해 이 접촉에 긍정적으로 반응했습니다. 그러나 2년 전의 첫 번째 접촉도 같은 출처에서 온 것이며, 배 모양의 비행기를 타고 저를 데려간 노인이 바로 스파트 자신이라는 사실은 아직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내가 매우 크고 매우 중요한 임무를 준비하고 있으며 이제 이 임무의 부담을 맡을 것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결정해야한다고 텔레파시로 알려주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저는 태어나기도 전에 이 임무를 위해 선택되었고, 따라서 그의 지속적인 통제하에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생후 6개월에 극심한 폐렴에 걸려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사실만 봐도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주치의인 슈트레벨 박사(Dr. Strebel)는 밤늦게 찾아와 그날 밤 제가 생을 마감할 것이라는 사실에 대비해 부모님을 준비시켰습니다. 저는 이미 혼수상태에 빠져 이 땅을 떠나려던 참이었지만 스파트가 개입하여 제 생명을 되찾아 주었습니다.

스파트(Sfath), 바바라 하니쉬가 그린 프타의 선화 초안, 2000년 6월

 

당연히 저는 스파트(Sfath)의 주장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었고, 그래서 어머니에게 어린 시절의 사건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어머니는 스파트(Sfath)의 정보를 확인해주셨고, 어린 제 인생에 더 이상 희망이 없었기 때문에 그 당시 '기적'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설명해주셨습니다. 주치의인 슈트레벨 박사도 전날 밤의 의학적 소견에 따르면 저는 이미 아침에 죽었어야 했기 때문에 그에게는 전혀 설명할 수 없는 '기적'이 저에게 일어났음에 틀림없다고 말했습니다.

 

스파트는 여전히 저에게 수많은 다른 것들을 설명하고 가르쳐 주었고, 평생 침묵을 지켜야 할 데이터 등을 제공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944년 한여름, 저는 다시 한 번 뷜라흐 근처 회라겐발트 숲의 '랑겐징겐 '을 혼자서 깊은 생각에 잠겨 헤매고 있었습니다. 제가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스파트가 저에게 친숙해진 텔레파시 형태로 말을 걸어오며 겁먹지 말고 몇 분만 기다리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하늘에서 은빛 물체가 떨어지는 데는 몇 분도 걸리지 않았고, 제게는 여전히 낯설게 보였지만 이미 꽤 익숙해졌고 지름이 5~6미터도 되지 않는 금속 구조물이 떨어졌습니다. 제가 흥미롭고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 동안 멀지 않은 곳에 배 모양의 비행체가 지상에 착륙했습니다. 이제 저는 물체의 옆면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입구가 생기고, 한 사람이 밖으로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몇 년 전 처음 봤을 때처럼 이상한 정장을 입은 아주 늙은 남자가 천천히 제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일종의 심해 잠수복을 입고 있었지만 완전히 은빛이었고 헬멧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슈트에도 불구하고 그의 전체적인 모습은 매우 존경스럽고 현명해 보였고, 저는 그가 유서 깊은 가부장처럼 보였던 것을 아직도 아주 선명하게 기억합니다.

 

그 남자는 다소 어렵게 제게 다가와 제 모국어와 우리 마을 특유의 평탄한 사투리로 말을 걸었습니다. 하지만 그 남자는 몇 음절을 잘못 발음하는 등 사투리에 익숙하지 않은 듯 보였고, 저는 바로 알아차렸습니다. 그는 자신이 스파트이고 지금 같이 가자고 설명했습니다. 마치 조용한 강박에 시달리는 것처럼 저는 몇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를 따라 이상한 배 모양의 물건으로 향했고, 제가 어떻게 들어 올려지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한 채 입구로 들어 올려졌습니다. 그 후 입구는 우리 뒤에서 자동으로 닫혔고, 스파트는 저를 물체 내부의 다른 입구를 통해 장치와 장치로 가득 찬 이상한 콘솔 세 개가 있는 작은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이상한 형상이 움직이는 여러 개의 작은 창문도 보였고, 어떤 창문에서는 이 배 모양의 비행 기계 밖의 주변 풍경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스파트는 저에게 앉으라고 하면서 몇 가지 장비를 작동시켰습니다. 저는 그가 무엇을 조작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조명이 켜진 여러 개의 작은 창문을 통해 인물과 풍경이 갑자기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갑자기 조감도에서 바라본 풍경이 보였습니다. 저는 의아한 표정으로 제 옆으로 다가와 앉은 스파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이 '창문'이 창문이 아니라 현재 지구에서 개발 중이고 미래에도 개발될 스크린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특정 에너지를 통해 이미지를 전송하는 것이었죠. 그리고 그는 우리가 지금 지구 상공 약 70킬로미터 상공에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가르쳐 줄 중요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는 몇 시간 동안 이곳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노력 덕분에 저는 이미 35살의 지구인보다 지적으로 훨씬 더 발달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저는 영적 발달 측면에서도 매우 앞서 있었고, 일반적인 세상의 규범을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에 아무도 저의 영적 지향적인 질문에 답할 수 없었습니다. (실제로 목사님이나 당시 제 스승이었던 칼 그라프 선생님도 제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제 선생님은 이러한 질문과 관련하여 교수님들로부터 답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그분들도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Sfath의 배, Semjase Block과 Billy의 설명을 기반으로 함. 빅토르 엠마누엘 비켈이 자유롭게 그린 작품, 1999년

 

스파트가 우리가 지구 상공 약 7만 미터 상공에 떠 있다고 말했을 때 저는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늘 생각해보니 흥미롭습니다. 놀랍지도 않았고 오히려 모든 것이 이상할 정도로 익숙하고 자연스러워 보였습니다. 저는 스파트 의 설명에 더 이상 놀라지 않았고, 그가 50년대 초반까지만 저를 돌보고 그 이후에는 훨씬 더 고도로 발달한 생명체에게 이 일을 넘기겠다고 말했을 때, 한편으로는 자신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저를 계속 가르치기에는 지식 등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에 금욕적인 침착함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왜냐하면 50년대 초에 나 자신은 의식의 힘의 측면에서 지금까지 진화하여 이 점에서 그의 지식에 도달했을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훨씬 더 높은 생명체에 의해 수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전생에서 이미 상당 부분 성취한 매우 특정한 임무를 수행할 운명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훨씬 더 발전해야 할 것이므로 그보다 훨씬 더 높은 지성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지구의 인류가 매우 위험한 시기가 다가오고 있으며 여전히 만연한 2차 세계대전이 이듬해인 1945년에 종식될 것이라는 스파트의 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1945년 8월 6일에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이 모든 악의 속에서 반복될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완전히 순환할 것이며, 그 마지막 결과로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945년 8월 6일 첫 번째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원자폭탄이 투하되었기 때문에 오늘날 이 끔찍한 예언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모든 인류가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암울한 예측과는 별개로, 스파트는 여전히 많은 다른 정보를 제공했는데, 그 정보에 대해서는 평생 비밀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스파트는 자신의 나이를 말한 적이 없었지만, 당시 저는 그가 적어도 90~95세 정도일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그는 또한 자신의 출신과 나의 실제 임무가 무엇인지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다른 경로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많은 일이 일어났고, 종종 저를 미치도록 만들기도 하고 죽음의 문턱까지 몰고 가는 일들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항상 제 힘으로 위험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고, 다른 출처로부터 도움을 받은 적은 극소수에 불과했으며, 그 출처는 항상 직간접적으로 외계에서 왔다는 것을 이제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저는 완전히 혼자서 모든 일을 해냈고 모든 것을 스스로 마스터해야 했습니다. 이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궁극적으로 모든 상황에 적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파트와 함께한 시간은 4시간이 조금 넘었고, 그 동안 그는 저에게 엄청난 양의 지식을 전수해 주었습니다. 모임이 끝날 무렵, 그는 저에게 의자에 다시 누워 있으라고 한 후 수많은 전선과 작은 장치 등으로 만든 이상한 구조물을 제 머리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한 저는 그가 버튼과 스위치로 장치를 조작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는데, 갑자기 제 안에서 엄청난 소리가 들리고 보였습니다. 엄청난 양의 지식과 깨달음, 그리고 그 밖의 많은 것들이 갑자기 제 안에 들어왔습니다. 갑자기 이상한 힘이 제 안에 들어오고, 갑자기 미래의 사물과 사건을 인식할 수 있게 되고, 어떤 힘을 통해 사람들을 질병으로부터 치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파트는 이제 장치를 통해 나에게 주어졌지만 이전부터 이미 내 안에 개발된 모든 능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설명과 함께 이상한 장치를 내 머리에서 제거했습니다. 이 능력들을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겠지만, 이기적이거나 단순히 이익이나 과시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내 안에서 다시 깨어난 지식과 능력은 오직 내 자신의 진화와 사명 완수 등을 위해서만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그것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면, 거기에 심어진 안전장치가 모든 것을 자동으로 차단할 것이고, 이 경우 차단은 유지되고 위험이 제거될 때까지 오랫동안 완전히 작동할 것입니다. 당시 그는 최면 등을 통해 내 지식과 능력에 침투하려는 시도가 있을 경우 과학적 실험이나 폭력적인 외부 영향에도 적용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봉쇄는 이러한 측면에서도 나타나며 모든 시도 등을 실패로 비난 할 것입니다. 또한 봉쇄가 너무 강해서 특정 상황에서는 무력으로 침투를 시도한 사람들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만들었습니다. (실제로 제가 살면서 여러 번 확인할 수 있었던 일입니다). 마지막 설명이 끝난 후 스파트는 저를 몇 시간 전에 시작했던 바로 그 지점인 지구로 데려왔습니다. 그 후 그는 배 모양의 우주선을 타고 사라졌지만 저는 그를 계속 보았습니다. 또한 몇 년 동안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많은 이야기를 듣고 엄청난 지식을 전수받았습니다. 1953년 2월 3일, 그의 목소리는 저에게 작별을 고했습니다. 왠지 아주 늙고 피곤한 목소리로 들렸습니다. 그리고는 영원히 침묵했습니다.

 

그동안 내 일부처럼 되어버린 스파트의 목소리가 조용해진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새로운 목소리가 제 안에 들어왔습니다. 스파트와 마찬가지로 그 목소리가 갑자기 나타나서 저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왠지 이 목소리는 젊고 신선하며 힘이 넘치고 스파트와는 매우 다른, 즉 매우 부드럽고 조화로운 목소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몇 분 후 이미 제게 매우 친숙해진 이 새로운 목소리는 저에게 자신이 여자이고 이름이 아스켓(ASKET)이며 이제 그녀가 저의 새로운 동반자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저의 두 번째 인연이 되었고, 그 후 몇 년 동안 그녀를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웠고 당시에는 경이로운 지식과 그에 못지않은 경이로운 통찰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가능성을 통해 저는 처음으로 넓은 세상으로 나가게 되었고, 그 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여행을 하며 많은 것을 탐구하고 파악하고 무엇보다도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출처 : https://www.futureofmankind.co.uk/Billy_Meier/My_first_UFO_Sighting_and_the_first_subsequent_Conta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