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 베인/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12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제11장

모닥불 둘레에 앉아 잠시 정답게 이야기를 주고 받노라니 서로 완전히 조화되어 있는 느낌이 아련히 솟아났다. 막상 육체로는 처음 만나는 자리이지만 전혀 아무런 어색함이나 긴장됨이 없었다. 어느 때보다도 크고 깊은 계시가 내릴 것만 같았다. 우리는 엿새씩 걸려-그래도 보통 소요되는 시간의 반도 못된다고 한다-여기까지 왔다. 그러나 피로는 없었다. 그만큼 말할 수 없는 평화의 분위기가 우리를 감싸주었던 것이다. 오히려 나는 새로운 기운이 솟는 느낌이었다. 이런 때 목욕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상쾌할까……. 은자님은 나의 이런 생각을 느끼신 듯 호수로 나가는 소로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저 길을 따라가면 호수로 나가니 거기서 목욕을 하게나. 물이 따뜻하지. 섬 끝에 온천이 있다네. 호수 가장자리에 목욕할 곳을 ..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제10장

꼬박 앉아서 밤을 세웠지만, 별로 피로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몸이 훨씬 상쾌하고 가벼웠다. 그도 그럴 것이 거룩한 빛과 맑은 기쁨에 싸인 시간들을 가졌으니까. 점심 식사 후에 잠시 쉬기로 하고 편안히 누웠다. 린시라 은자님 생각이 났다. 눈을 감았다. 끝없이 뻗어 있는 푸른 숲에 뒤덮인 산허리가 보인다. 산기슭 일대는 키가 훨씬 큰 민들레들이 어떤 것은 연분홍, 어떤 것은 짙은 주홍색으로 한창 꽃을 피워 어우러져 있다. 산허리의 그 푸른 바탕을 도려내고 끼워 놓은 그림 처럼 선명한 호수가 있다. 호수 한 가운데에 조그만 섬이 있고, 섬 위에는 관목과 화초로 에워싸인,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집이 한 채 서있다. 이런 경치를 나는 아직 상상도 못했었다. 집이 서 있는 푸른 잔디 둘레에는 또한 푸른..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제9장

우리는 매일 학습을 계속했고 마침내 나의 마음은 수정처럼 투명해졌다. 나날이 나의 힘은 강해져 갔다. 감도는 분위기와 공기는 그저 맑고 고요하기만 했으며 우리들 사이에는 어떤 조화롭지 못한 생각이나 감정도 없었다. 잇따라 학습에 열중하기 때문에 조금 피로를 느낄 때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결코 과로하는 일은 없었다. 왜냐하면 과로는 오직 진보를 늦출 뿐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나는 혼자서도 수련을 할 수 있는 데까지 왔다. 나의 훈련이 끝날때까지는 나 스스로가 자기 훈련을 할 수 있게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모르고 있었지만 린포체 대사가 어떤 모임을 준비하고 있었다. 린포체 대사는 다추안 대사와 더불어 얀탄 승원으로부터, 머라파 대사는 건사카 승원으로부터, 토운라 대사는 다코우 승원으로부터 오셨으며, 나..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제8장

오크의 승원은 모든 점에서 만토운과 비슷했다. 나는 나의 스승 바로 옆에 방이 주어졌다. 그것은 원래 승원장의 예비실이고 침실에 조그만 거실이 딸려 있는 아주 아늑한 방이었다. 바닥에는 티벳 융단이 깔려 있었다. 먼저 몸을 씻었다. 물론 이 승원이 서 있는 산 꼭대기에 쌓인 만년설이 녹아 승원 옆을 흐르는 강에서 얼마든지 퍼올릴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몸을 씻고나자 한 사람의 티벳 청년을 소개받았다. 나이는 25세쯤 되어 보였고 이름은 추안타파라고 한다. 매우 지적인 얼굴이고 이 승원의 영매(靈媒)이다. 린포체 대사가 이 청년을 처음 발견하여 데리고 왔다는 이야기를 대사 자신이 내게 들려주신 일이 있었다. 린포체 대사는 그야말로 옛날 이야기 같은 경위로 그를 만났던 것이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전..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제7장

다음날 아침 잠을 깨어서도 나는 아직 전날의 린포체 대사님의 이야기에 매료된 상태 그대로였다. 대사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창문으로 다가가보니 대사께서 발코니에 서 계시는 것이 보였다. 곧 해가 떠오를 동녘을 바라보고 계셨다. 주변은 아직도 어둡고 시커먼 담요 같은 검은 구름이 골짜기를 뒤덮고 있었으며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았다. 티벳에서 이런 모습은 여태껏 본적이 없었으며 대체 이제부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생각을 하는 찰나에 갑자기 뇌성벽력이 치면서 요란한 소리가 골짜기 속에서 전후상하로 메아리 치는 것이었다. 그 소리는 겹겹이 둘러싼 산들에 부딪쳐 마치 거대한 포탄이 차례차례 터지는 것처럼 울려퍼졌다. 비는 아직 내리지 않는다. 나는 대사가 계시는 발코니로 나가 보았다. 대사는 깊은 ..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제6장

얀탄 승원의 제전 때에 나는 건사카 승원의 머라파 대사와 다코우 승원의 토운라 대사를 만났는데, 두분이 다 매력있는 인품이고 각기의 전문분야에 정통한 분들이었다. 또 두 분이 다 힌두어가 능숙했다. 내게는 그것이 특히 기뻤다. 그분들의 가르침을 받는데 있어 통역없이 직접 대화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다추안 대사에게 청하여 함께 두 승원을 방문하기로 했다. 함께 가 주기를 청한 것을 다추안 대사는 오히려 더 좋아했다. 까닭은 다추안 대사와 머라파 대사 그리고 토운라 대사는 서로 절친한 사이이고 깊은 유대가 있으며, 각자의 제자들이 얼마나 진보하고 있는지를 서로 정답게 지켜보고 돕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다추안 대사와 더불어 나는 건사카 승원으로 갔다. 그곳 승원장 전용실 가운데 하나가 나의 숙..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제5장

해발 5천미터나 되는 큐러 고개를 간신히 넘어 한숨 돌리려다가 고개 기슭에서 ‘고상한 사업가들’(마적떼)을 만나 생각지도 않았던 기상천외의 연극까지 벌이는 통에 해발 4천미터인 담탄이라는 지점에 있는 산막에 도착한 것은 해질 무렵이었다. 티벳은 바닥이 평균 해발 3~4천미터의 고원이고 그 둘레를 만년설을 인 준령들이 꽉 에워싸고 있어 대개 해발 5천에서 7천미터에 이르는 고개를 넘어서야 들어갈 수 있는데 그나마도 겨울에는 대부분의 통로가 막히고 만다. 티벳의 총 면적은 약 1백 60만 평방킬로미터이고 그 속에 2백만의 인구가 흩어져 살고 있다. 그 인구 가운데에는 연명하기도 어려울 만큼 가난한 자가 있는가 하면 엄청난 부자도 있어 빈부의 차가 매우 두드러진 것이 하나의 특색이다. 아직은 낮이기는 하지만 ..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제4장

잠에서 깨어보니 이른 새벽이었다. 어제 저녁의 음악의 여운이 아직도 나의 몸에서 감돌고 있었다. 린포체 대사가 골라주신 멘델스존의 부드럽게 흐르는 선율은 아직도 안에 살아있어 한층 깊은 해탈감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대사가 이미 일어나 계셨다. 대사의 말씀으로는 아침해가 솟는 모습을 보지 않는 날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이때는 바로 여름철, 너무 이른 새벽이어서 잠시 후에야 만년설에 덮인 겹겹의 산봉우리로부터 어스레한 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둘이 다 앉아서 어두운 적색에서부터 차츰 밝은 적색 그리고 황금색......으로 바뀌어가는 현란한 빛의 무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세계 어느 곳에서 여기 티벳의 해뜸과 그리고 위대한 히말라야의 백설을 이고 있는 봉우리들 너머로 가라앉는 해짐보다 더 황홀한 광경을..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제3장

챰비 계곡의 푸른 들을 내려다보니 몇 마리의 야크가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새벽녘 안개 속에서 풀을 뜯는 것은 이슬이 맺혀 있을 때가 더 맛이 있기 때문이다. 이방인이지만 그런 풍경은 내게는 친숙한 것이었다. 스코틀랜드의 고지(高地)에서 이른 아침에 소들이 풀을 뜯는 것을 늘 보며 자랐고, 때로는 야생 사슴이 내려와서 새벽의 푸른 목장에서 목초를 뜯어먹고 있는 것을 보는 일도 있었다. 어렸을 때의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맨 먼저 하는 것이 산사슴이 내려와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었다. 그러니 이 티벳의 풍경은 내게는 고향의 그것과 흡사했던 것이다. 더구나 야크는 목과 어깨 사이의 혹이 불룩 나와 있는 점을 제외하고는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 소와 많이 닮았다. 「저 야크는 어디서 왔을까요? 엊 저녁엔 저기에..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제2장

캐러밴의 준비가 끝나고 보니 짐이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내용은 앞으로의 여행을 위한 최소한의 필수품을 갖추었을 뿐이었으며, 조금 색다른 것이라면 1파운드 캔에 포장된 영국제 고급 비스킷 50통이었다. 티벳 사람들, 특히 라마승들이 그것을 좋아해서 선물로 쓰기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따로 실크 스카프를 여러 장 마련했다. 그것은 티벳에서는 전통적으로 모든 의식에서 선물로 주고받는 물건이다. 명주 스카프를 증정할 때 상대방의 목에 걸어주면 그를 자기와 동등한 사람으로 본다는 표시이고 그저 넘겨주기만 하면 상대방을 아랫사람으로 본다는 표시이다. 나는 언제나 스카프를 상대방 목에 걸어주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실지로 나는 많은 덕을 보았으며 특히 높은 라마승들이 나에게 많은 원조와 특권을 주었던 것이다. 카린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