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영주 79

누구나 아름다운 영혼을 지니고 있다

참된 나를 찾아가는 기도(氣導)를 통해 몸과 병을 다스리는 사람 성영주의 삶과 기(氣)의 세계 영혼이 없는 육체는 시체와 다름없으며 육체가 없는 영혼은 그저 귀신일 따름이다. 이 책의 모든 내용은 인간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형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기술되었다. 누구나 아름다운 영혼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이 세상과 우주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으되 마음을 열면 얼마든지 느낄 수 있는 것으로 구성되었다는 전제 하에 이 책의 모든 설명은 이루어지고 있다. 저자 : 성영주 우연한 계기를 통해 도(道)를 닦는 길에 들어선 지은이는 스승인 성문수 선생을 만나 본격적인 마음 공부를 하게 된다. 세상의 이치를 터득하는 방법을 알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정진하여 자신만의 깨달음을 얻게 된 ..

68. 종말론

내가 알기로 인류가 역사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항상 대두되었던 문제 중의 하나가 바로 인류의 종말에 관한 것이었다. 원시종교에서부터 현대문명이 판을 치는 지금까지도 종말론은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심지어는 현대 종교에서도 포교나 선교의 가장 강력한 무기로 이 종말론이 이용되고 있기까지 하다. 특히 그런 현상은 세기말이라는 시대적 절박감을 등에 업고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최후의 심판’이라는 말과 함께. 그러나 단언하건대 그런 식의 인류의 종말과 심판의 날은 결단코 없다. 세상의 모든 돌아가는 일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처럼 보이고 앞날은 언제나 어두워 보이지만 인류가 정말 파멸의 길로 접어든 적은 없었다. 지금도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하지 않는가. 땅 위에 인간이 살..

67. 천국과 지옥, 그리고 사후의 세계

종교에서는 오랫동안 인간 사후의 일에 대해 얘기해 왔다. 언젠가 있을 최후의 심판에서 각자가 지은 죄의 결과에 따라 천국와 지옥으로 갈리게 된다는 것과 한 번 정해진 심판에서 누구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가르침은 대표적인 예이다. 또 선지자들의 가르침이나 끊임없는 수행을 통해서 극락에 가는 것이 종교 행위의 최고선인 것처럼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건대 이런 이분법적인 내세는 없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과 지옥이,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과 지옥이 사람들로 하여금 현생에서 바른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경고로서 가능하다면 몰라도 심판의 결과로 작용하지는 않는다. 만약 최후의 심판이 있고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신앙의 유무에 따라서만 영생이 결정된다고 생각해 보자. 그건 신과 인간사이의..

66. 전생과 내세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 중 현재의 생활이 아주 고통스러운 사람들은 자신의 전생과 사후에 어떤 모습으로 환생할 것인지를 아주 궁금해 한다. 제딴에는 잘살아 보려고 노력을 다하는데도 여전히 삶은 제자리를 맴도는 것만 같아 전생에 무슨 업을 지은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에서 그러는 것 같다.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한테 내가 해주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자기의 전생을 알고 싶으면 자신을 낳아 주신 부모님을 보면 되고, 자기의 내세를 알고 싶으면 자식들을 보면 되는거야.’ 누구에게나 전생은 있지만 전생이 현재 자신의 모든 것을 결정짓지는 않는다. 세상 사람모두가 운명의 사슬에 매여있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의 삶은 얼마나 고통스럽기만 하겠는가 말이다. 우리들 인간은 저마다의 영혼이 인간의 육신을 얻어 세상에 ..

65. 내세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두 가지 가설

죽음 이후의 세상, 즉 내세에 대해 기존의 종교는 크게 두가지를 보여 준다. 하나는, 육신은 썩어 흙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남아 있다가 최후의 심판의 날에 부활하여 신앙의 정도에 따라, 또 지은 죄값에 따라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이다. 한 번 천국과 지옥으로 나누어지면 영원히, 추호의 용서나 관용도 없이 영원히 모든 행복을 누리거나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내세에 대한 다른 견해는 윤회이다. 사람은 이승에서 지은 죄값이나 쌓은 공덕에 따라 다시 환생한다는 것이다. 지은 죄가 많은 사람은 다시 태어나 아주 비천한 삶을 살아가게 되며 공덕을 쌓은 사람은 다시 고귀한 몸으로 태어나 제가 쌓은 공덕만큼 부귀롭게 살아가게 된다고 한다. 많은 보충 설명이 있어야 하겠지만, 한쪽은 직선적이고 극단적..

64. 자신의 삶을 끝까지 긍정하라!

나의 사생관으로 설명하자면 삶과 죽음은 그렇게 복잡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우리가 이승에서 살아 있는 것은 영혼과 육체가 결합되어 있을 때를 말하고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을 죽는다고 말할 뿐이다. 영혼과 육체가 함께 있을 때를 사람이라고 하지 영혼이 분리된 육체는 시신에 다름 아니다. 좀더 과격하게 말한다면 육신이라는 것은 우리가 입고 있는 옷에 불과하다. 계속되는 윤회의 연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한 우리는 다시 태어날 때마다 각기 다른 옷을 입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건대 인간의 삶이 끊임없는 윤회의 굴레에 묶여 있다고 해서 이승의 삶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이승에서 도(道)를 조금이라도 알지 못하고 심지어 공덕도 쌓지 못한 사람이 죽어서 뭔가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은가?..

63. 인간의 삶은 끝없이 윤회한다

인간이 육신을 얻어 현생에 오기 전, 그러니까 영혼의 상태에 있었을 때 인간은 모두 신성(神性)을 갖추고 있었다. 즉, 인간의 영적인 상태에 있었을 때는 우리도 신의 세계를 형성하는 한 구성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육신을 얻는 그 순간부터 인간은 이미 신성으로 가득 차 있는 존재가 아니라 육신을 보전하기 위한 동물적인 속성도 함께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때에 따라서 인간과 짐승간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경우가 있다.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향해 우리는 흔히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비난한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 보면 ‘짐승만도 못한’이라는 말에는 단지 그 범죄자의 육체적 행위뿐만 아니라 그런 범죄를 예사롭게 할 수 있게 한 그 사람의 영혼도..

62. [7부] 우주 속의 존재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의 삶은 끝없이 계속되며 세상 만물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한다. 최후의 심판이나 현생 인류의 멸절은 없으며 천국이나 지옥도 없다. 천국이나 지옥은 사람이 현세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선을 행해야 한다는 도덕률의 개념으로서만 적용될 뿐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원래 신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인간은 영원히 지속되는 존재이고 인간의 몸 속에 태초부터 주어진 신(神)의 씨앗이 있다면 그것을 발견하고 키우고 자라게 해서 자기 존재의 근원을 알려고 하는 노력, 그것은 정말 해 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우주 속의 존재 '인간'은 무엇인가 7부 영혼이 실제로 존재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몸에 빙의되기도 하며 우리의 눈에 보이는 현상계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은 1부에서 설명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61.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

사람 사이의 헤어짐에는 여러 유형이 있을 수 있다. 나이가 들면서 다른 집단에 소속되는 경우 – 상급학교로 진학을 한다거나, 입대를 한다거나, 이민을 간다거나, 결혼을 한다거나 등등 – 나 혹은 오래 연락이 끊어져 소원해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살을 맞대고 살던 부부의 경우에 이별에는 단 두 종류밖에는 없다. 서로의 마음이 맞지 않아 지금까지 같이 살아왔던 시간들을 원점으로 돌려놓는 이혼과 다시는 상대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죽음.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부부간이었던 사람들의 헤어짐에는 상처가 남는다. 그리고 그 상처는 다름 아닌 사랑으로 인한 상처이다. 사별한 부부의 마음이 어떤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상처로 남은 사랑에 대해서는 나의 어머니가 극명하게 보여 주었다. 나는 서둘러 당신의 목..

60. 자신의 삶을 사랑하라

“이혼을 하셨다던데.....” 나를 취재하러 오는 언론사의 기자들은 인터뷰의 말미에 꼭 이런 질문을 한다. “나, 한 번밖에 안 했어요..” “........” “정말이에요. 꼭 10년을 살다가 아이 둘 낳고는 헤어졌어요. 아이들은 내가 길렀구요. 그러고는 단 한 번도 이혼한 적이 없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그 이혼에 대해서......” 얘기가 그쯤 흘러갈 때면 나는 자리를 툴툴 털고 일어선다. “지금까지 재미있는 얘기 많이 해 줬잖아요? 그 얘기는 정말 재미 없으니까 다음에 합시다.” 내가 그렇게 말꼬리를 돌려 버리는 건, 지난날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다거나 굳이 감추고 싶다거나 해서가 아니다. 이혼이란 엄청 재미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렇게 재미 없었는데 듣는 사람들이야 오죽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