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영주 79

38. 사랑한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

내가 다섯 살 무렵의 가을, 큰어머니의 장지에 다녀오신 아버지는 갑자기 자리에 누워 버렸다. 온몸이 펄펄 끓은 지 며칠. 몸을 데우던 열이 조금 가라앉자 아버지는 병원으로 가서는 그 길로 입원을 했다. 사람들은 초상집을 잘못 갔다드니 액이 붙었다느니 말이 많았는데 한 달 후에야 아버지는 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겨울 방학 한 달을 꼬박 병원에 있는 동안 집 안 곳곳에는 냉기가 서렸다. 아버지의 병수발을 하느라 병원에서 살다시피하는 어머니 대신 오빠는 아궁이가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장작을 피워 댔지만 한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정작 제 몸과 마음을 덮히는 것은 아궁이 밖으로 불꽃이 넘실대도록 불을 지피는 게 아니라 마음에 의지할 무엇을 하나 ..

37. 어린 시절의 티끌 만한 기억들

나는 6남매의 셋째딸로 태어났다. 위로 오빠 하나와 언니 둘, 밑으로 여동생 둘인 셋째딸. 아버지는 동경제국대학 법학부를 나온 엘리트였고 어머니는 엄한 가정교육을 받은 사대부 가문 출신이었다. 아버지는 우리 집과 바로 이웃한 학교의 교감 선생님이셨고 어머니는 정갈한 옷매무새만큼이나 집 안팎을 꼼꼼하게 챙기시던 분이었다. 뒷날의 내 삶이 워낙 모질고 팍팍해서인지는 몰라도 나의 유년기는 아주 화사한 봄볕같이 온화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 풍족한 집안 형편은 아니었음에도 우리 집에서는 웃음소리가 그친 날이 없었다. 아버지는 가슴이 아주 따뜻한 분이셨던 걸로 기억된다. 자식들은 말 할 것도 없거니와 낯선 사람에게도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 무엇보다도 내가 아버지를 존경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로는 보기 ..

36. [4부] 내 삶의 빛깔들을 그리며

누구나 그렇겠지만 지난날을 되돌아볼 때마다 나는 아련한 감회에 젖는다. 여섯 살에 부모님을 졸지에 여읜 이래 살아온 40여 년의 세월이 모두어 쥐면 꼭 한 주먹에 불과하지만 눈물과 땀과 한숨을 생각하면 지금도 어지러울 지경이다. 막상 내 지나온 삶을 적으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 내려가야 할지, 혹시나 나의 삶과 적지 않은 연관을 가졌던 사람들에게 누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부터 앞선다. 또 돌이켜본 내 삶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가질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그렇지만 나는 쓰기로 했다. 기도(氣導)의 길로 들어서면서부터 나는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일단 공인일 수밖에 없고 두려움과 부끄러움으로 가득 찬 지난날도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나름대로의 역할을 했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삶..

35. 나는 이철규의 영혼입니다

경상남도의 조그만 항구도시에서 학원을 경영하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작년 봄이었다. ‘신문에 선생님 기사가 난 걸 보고 전화를 드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마침 볼일이 있어 서울에 왔는데 한번 찾아뵐까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언제든지 오세요. 여기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으니까요.’ 나는 수련원의 위치를 알려 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두 시간쯤이 지났을까 30대 초반의 낯선 남자가 쭈뼛거리며 수련원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이었다. ‘전 아주 건강한 편이거든요. 그런데 지난달부터 컨디션이 너무 좋질 않아요. 온몸이 욱씬거리는 데다 숨이 가빠져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잠이 들었다 하면 악몽을 꾸는데 어찌나 생생한지.’ 남자의 얼굴은 몹시 피곤해 보였다. 생판 처음으..

34. 결혼한 지 10년이 넘도록 아기를 갖지 못하던 여자

내가 사람의 이름만 듣고서도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살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아는 회원들은 가끔 제 주위 사람들의 신상을 물어오기도 한다. ‘선생님. 제 조카 며느리의 이름이 채옥인데...’ 평소 행동이 단정하고 성격이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는 회원 한분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말문을 여는 것이었다. ‘채옥이라는 사람 아주 안좋아요. 몸에 火氣가 너무 강해서 물기가 없어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채옥이라는 사람은 물기가 말라 버려 울지도 못해요. 당연히 아이도 가지지 못할거고 아이를 가질 수 있는지 하는 문제로 저한테 채옥이라는 사람을 물어 보는 거죠?’ ‘그, 그렇습니다.’ 나에게 말을 건넨던 회원은 아주 놀란 눈치였다. 내가 이름만으로 상대를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건 이미 알고..

33. 만성 신장염으로 가산까지 탕진한 사람

‘아무리 몸이 불편하더라도 이런식으로 사람을 찾는 건 예의가 아닙니다. 내가 언짢아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여길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나는 도대체 며칠을 씻지 않았는지 짐작도 할 수 없을정도로 엉망인 몰골을 하고 있는 중년의 남자를 향해 딱딱 부러지게 말했다. 그의 머리칼은 찌들대로 찌들어 엉겨붙은 데다 비듬이 수북했다. 몸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풍겨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은 코를 싸쥐어야 했던 것이다. ‘몸이 아프면 그렇잖아도 자신이 서러운 법입니다. 아무도 자기 마음처럼 돌봐주지 않아요. 더구나 이런 몰골로 다녀보세요. 누가 제대로 사람 취급을 해주겠어요.’ 사실 그랬다. 사람이 건강해야 한다는 건 자신을 위해서도 지극히 당연한 얘기지만 하나의 인격체로서 제대로 대우받기 위해서도 건강..

32. 병명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고생하던 사람

송보살이라는 분이 나를 찾은 건 5월 중순이었다. 수련원 회원의 소개로 아픈 몸을 이끌고 왔는데 그리 썩 밝은 표정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마도 병을 앓은지 10년이 넘도록 주위에서 좋다고 권하는 곳은 다 다녀보았지만 별 차도가 없어서 였으리라. 그래서 나의 수련원을 찾은 것도 믿는다거나 반드시 효과를 보겠다기보다는 얘기해 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와본 정도였을 것이다. 송보살이 앓고 있는 병은 양의에서는 구체적인 병명을 붙일수도 없었다고 한다. 세간에서는 흔히 수풍이라고도 부르는데 주로 다리가 엄청나게 부어오르는 병이었다. 치유가 불가능할 뿐 아니라 시간이 문제였지 언젠가는 다리를 절단해야 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까지도 앗아갈 수 있는 무서운 병이었다. 송보살은 약 10년 전부터 한쪽 ..

31. 문제아인 진웅이

진웅이가 날 찾아온 건 8월의 셋째 주 일요일이었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수련원으로 들어서는 진웅이는 옷차림새며 하는 폼으로 보아 속칭 문제아라고 말하는 그런 아이였다. 힙합바지라는 걸 엉덩이에 겨우 걸쳤는데 바짓가랑이는 너덜너덜하니 길바닥을 쓸고 다녔는지 먼지투성이였다. 나는 진웅이의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근심으로 눈가에 촘촘하게 주름이 진 진웅이의 어머니를 한참 바라보았다. 얘기를 나누지 않았지만 이 모자가 왜 나를 찾아왔는지 금세 짐작이 갔다. 나는 두 사람을 내 방으로 들이지 않고 마침 회원들이 모두 돌아간 뒤라 텅빈 응접실에서 맞았다. 진웅이는 무슨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고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고 어머니는 한숨을 간간이 내쉬며 저간의 사정을 얘기했다. 그녀..

30. 만성 소화불량에 걸려 있던 아이

인훈이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3대 독자인데다 어릴때부터 늘상 몸이 허약해서 집안어른들의 걱정을 도맡아 놓고 있던 아이였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만성 소화불량이라는 진단이 나와서 입원까지 하며 치료를 받았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용하다는 한의원에서 위장의 기운을 돋우는 약을 지어 달여 먹였더니 그런대로 소화는 되는데 도무지 기운이 없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나를 찾아왔다. 몸이 그 지경이니 항상 만사가 귀찮았고 그러다 보니 인훈이는 매사에 소극적인 성격의 아이가 되어 있었다. 뭘 제대로 먹을수도 없어 몸은 깡말라 있었고 학교에 가더라도 내내 책상에 엎드려 조는게 일이었다. 성적은 늘 꼴지였고 이제는 교사들도 포기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것까지는 있을 수 있는 일..

29. 휜 척추와 기능성 출혈로 고생하던 지영이

지영이의 어머니는 아주 심신이 깊은 불자여서 절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곱상한 얼굴의 그녀는 그러나 늘 어두운 안색이어서 한번은 내가 조용히 얘길 해줬다. '자식들 중에 우환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저 불공만 드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 아이를 데리고 수련원으로 한번 오세요.’ 그로부터 한달쯤이 지나서야 지영이 어머니는 맏딸인 지영이와 고등학교 3학년인 막내딸과 함께 수련원으로 날 찾아왔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일찍 왔어야 했는데 그만.’ 내 말을 듣고서 지영이 어머니가 뭔가 짚히는게 있어 지영일 데리고 병원부터 가봤다고 한다. 어릴적엔 그렇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면서부터 유난히 몸이 약해 근심이 끊이지 않았지만 막상 병원에 가보기는 처음이었다고 했다. 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고 그 결과를 기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