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이의 어머니는 아주 심신이 깊은 불자여서 절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곱상한 얼굴의 그녀는 그러나 늘 어두운 안색이어서 한번은 내가 조용히 얘길 해줬다.
'자식들 중에 우환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저 불공만 드린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 아이를 데리고 수련원으로 한번 오세요.’
그로부터 한달쯤이 지나서야 지영이 어머니는 맏딸인 지영이와 고등학교 3학년인 막내딸과 함께 수련원으로 날 찾아왔다.
‘죄송합니다. 선생님. 일찍 왔어야 했는데 그만.’
내 말을 듣고서 지영이 어머니가 뭔가 짚히는게 있어 지영일 데리고 병원부터 가봤다고 한다. 어릴적엔 그렇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면서부터 유난히 몸이 약해 근심이 끊이지 않았지만 막상 병원에 가보기는 처음이었다고 했다. 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고 그 결과를 기다리느라 차일피일하는 동안 그만 한달이 후딱가고 말았다면서 지영이 어머니는 몸둘바를 몰라했다.
‘잘 하셨습니다. 무슨 병인지는 알아야 하니까요. 그래, 병원에서는 뭐랍니까?’
‘글쎄, 그게.’
지영이 어머니는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잇지 못하고 그만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어머니를 따라온 두 딸의 눈가에도 물기가 그렁그렁 맺히는게 아닌가. 당황한 내가 한참을 달래고서야 지영이 어머니는 경우 진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지영이는 척추만곡증인데 정도가 심해서 수술을 해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겁니다. 게다가 기능성 출혈이라는 증상도 있는데 그건 현대의학으로도 어쩔 수 없는 병이랍니다.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데.’
게다가 막내는 뚜렷한 병명이 없어 그저 만성피로증후군이라고만 하더란다. 규칙적인 운동과 식습관을 가지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세 모녀는 나란히 한숨을 쉬면서 눈물만 글썽이고 있었다. 모두가 여리디 여린 마음의 소유자였다. 나는 우선 이들을 달래야만 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차라리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겠네요. 현대의학으로 어쩔 수 없다니까 이제 더 이상 잃어버릴 것도 없지 않아요? 아무리 나빠져야 이보다 더 못하겠느냐 뭐 그렇게 생각해 보세요. 날 믿구 말이죠.’
사실 그들을 보는 내 마음이 그랬다. 현대의학으로서도 어쩔 수 없다고 하니 이제 그만 마음이라도 편하게 먹고 기수련에 정진했으면 하는게 내 마음이었던 것이다. 나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축 늘어져 있는 세 모녀를 수련실로 안내했다.
지영이는 국가고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한눈에도 그녀가 그렇게 어려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워 보였다. 안색이 백짓장처럼 창백한 것은 둘째치고라도 우선 척추가 심하게 휘어져있어 보기에도 딱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막내딸은 발걸음을 옮기는 것도 힘에 겨운지 2층의 수련실로 올라가는데도 숨을 몰아쉴 지경이었다.
세 모녀는 수련중에도 내내 울기만 했다. 마치 눈물주머니가 터져버린 것만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막내와 어머니를 쉬게하고 지영이만 계속 수련을 하도록 했다. 사람에게 있어서 어떨 때 울음이나 웃음은 폭탄의 뇌관과도 같은 역할을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왜 한번 울거나 웃기를 시작하면 좀처럼 그런 감정의 과잉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특히나 여럿이 모여 있을 때면 말이다.
그렇게 하자 수련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지영이의 몸이 손끝부터 발끝까지 굳어 버리는게 아닌가. 지영이를 만약 그대로 조금만 더 방치했더라면 중풍이나 뇌졸중에 걸리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병을 불러오게 될 몸안의 탁기가 수련을 하자 뿜어져 나오면서 온몸을 마비시키는 것이었다.
‘오늘부터 한 20일동안 수련하고 난 뒤 심하게 지칠거야. 하지만 너는 지금 지치더라도 극복하면서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될 처지라는 걸 알지? 열심히 수련하는 것만이 네 건강을 되찾을 수 있어. 걱정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먹어라. 정 힘들면 옆방에서 자고 가도 돼.’
지영이는 다음날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말 열심히 수련에 임했다. 2주 이상을 그렇게 수련하자 차츰 얼굴에 혈색이 돌아왔고 두세시간을 너끈히 앉아서 수련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수줍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더니 입고 있던 티셔츠를 들어올려 보았다.
‘선생님, 처음보다 많이 좋아졌거든요. 죄송하지만 병원에 가서 상태가 어떤지, 이 정도면 척추교정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봤으면 하는데.’
지영이는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 보았다. 많이 좋아졌지만 지영이의 몸은 끔찍했다. 앙상한 젖가슴 밑으로 왼쪽 갈비뼈가 불룩하니 나와 있었고, 오른쪽은 등부위가 튀어나와 있었던 것이다. 그랬으니 그 전에는 어느 정도였는지 말해주지 않아도 쉽게 짐작이 갔다. 나는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척추교정을 해야 될 일이라면 내가 해줄테니 그냥 수련만 계속해봐. 깜짝 놀랄 일이 있을거야.’
그런데 20일째 되는 날 여느 때처럼 수련원에 온 지영이는 대문밖에서 부터 날 부르더니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우당탕거리며 내 방으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신발도 미처 벗지 않은채 말이다.
마침 나와 상담하고 있는 손님이 있었는데도 아랑곳 않고 지영이는 윗도리를 훌훌 벗어던지더니 제 가슴 부위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핑그르르 몸을 돌려 제 등짝을 내 눈앞에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그녀의 몸은 아무렇지 않았다. 가슴에 돌출된 부위는 물론이고 돌연한 혹처럼 징그럽게만 보이던 등어리도 뽀얀 살결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지영이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는 제 가슴을 연신 쓸어보고 또 쓸어보는 것이었다.
수련원에서 수련을 하는 동안 지영이는 집에만 들어가면 그냥 녹초가 되어서 잠만 잤다고 했다. 몸이 그 지경이라 늘상 모로누워 자는게 버릇이 되었는데 언제부턴가 아침에 잠자리에 일어나보면 편히 누운 상태였다는 것이다. 어제는 다른 날보다 유난히 더 피곤해서 어떻게 누웠는지도 모른채 잠이 들었는데 여느날과 다르게 아침 일찍 눈이 떠지더라고 했다. 그리고는 수련원에 가기 위해 아침을 뜨는둥 마는둥하고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갔는데 그만 믿을 수 없는 일이 욕탕의 거울에 비쳐졌다는 것이었다.
‘지영아. 사실 우리 사람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병이란 그리 위험하지가 않아. 보이지 않는 세균이 일으키는 병이 더 위험한 거지. 우리 눈에 보이는 변화는 우리가 전혀 볼 수 없고 확인할 수 없는게 조금씩 달라져 가는 것만큼 신기한 것은 아니야. 지금의 내 말이 무슨 뜻인지는 좀 있으면 네가 알게 될게다.’
그렇게 지영이가 다시 수련에 몰두한 지 열흘쯤 지났을까. 하루는 지영이가 커다란 꽃바구니를 들고 수련원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녀의 부모들이 먹을거리를 잔뜩 장만해서는 그 뒤를 따라 내 방으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어쩐 일이냐고 물었더니 지영이는 얼굴을 붉히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드디어 생리가 멈췄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실인즉슨 생리가 멈춘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불치의 병이었던 기능성 출혈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된 것이었다. 생리 기간이 아닌데도 늘상 출혈이 있는 바람에 일년 중 며칠을 제외하고 생리대를 착용하지 않고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했던 그녀이고 보니 엉겁결에 그렇게 말이 나왔으리라.
그날 수련원에서는 오후 늦게까지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지영이의 부모는 찾아오는 회원들에게 일일이 가져온 음식을 대접했고 회원들은 지영이 가족들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느라 수련원이 내내 북적거렸다.
지영이가 완쾌하고 나서 다음으로 지영이의 막내동생이 나의 수련원에 다녔다. 여고 3학년이라 언니처럼 시간을 낼 수는 없는 처지여서 하교 후 보충수업을 시작하기 전 틈을 내어 수련원에 와서는 30분정도 수면상태에서 기도(氣導)를 하고 갔다. 그러다 보니 만성피로증후군이라는 현대의학으로는 원인과 처방이 불투명한 긴 이름의 병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숨이차서 계단을 오르지도 못하던 증세는 일주일 만에 없어졌다. 그런 그녀의 소문이 퍼지면서 그녀의 친구들까지 하나둘씩 몰려와서 한때 나의 수련원은 오후 6시쯤이면 여고 3학년 학생들이 몰려와 잠을 자고 가는 곳이 되고 말았다. 기수련원이 아니라 수면실이 되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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