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련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의 본래 모습 즉, 진아(眞我)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한다.
영과 육이 깨끗한 상태여야만
자기 존재의 근원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이다.
빙의된 영혼이 있다든지,
아주 위중한 병이 아니더라도 몸의 균형이 깨져 있다면
그건 기도(氣導)를 행하는 데 큰 장애물이 된다.
자기가 아닌 다른 영혼을 짊어지고서 진아(眞我)를 찾을 수 없듯이
병든 육신을 가지고서 제 영혼이 맑아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원인도 알 수 없는 몸과 마음의 병 때문에 고통을 받다가 나를 찾아와 스스로 제 몸을 회복한 사람들에게서 나는 늘상 두가지의 안타까움을 가진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나를 찾아올 많은 사람들에게 꼭 부탁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첫째는 나를 찾아온 사람들이 한결같이 보여주는 완강한 고집 때문에 어렵게 얻은 인연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대부분 몸의 병이 깊을대로 깊어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써보고도 차도가 없어 거의 자포자기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서 그들은 하나같이 제 몸의 병에 대해 뿌리깊은 확신을 가지고 있다. 이를테면 특별한 방식이 아니고서는 자기의 병을 절대 고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웬만한 방법은 모두 동원해 봤기 때문에 척보면 다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제 몸의 병이 더 깊어지는데도 사람들은 알량한 자기만의 완강한 고집을 내세우다 그냥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특히 병이 위중할수록 오랜 세월 병마에 시달려 온 사람일수록 자기식의 고정관념이 강해서 이 고정관념을 깨는데 걸리는 시간이 병을 치유하는데 걸리는 시간의 몇배가 소요된다. 수련을 하는 시간이라야 기껏 한시간 남짓이고, 보통 차도가 있기까지는 길어봐야 사흘이니말이다. 그런데도 수년, 수십년을 병으로 고생한 사람들이 그 시간을 참고 기다리지 못한다. 이 정도면 고집이 아니라 아집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성싶다.
두 번째는 나의 수련법을 스스로 행해서 어느 정도 차도가 있으면 그 다음부터는 수련원에 나오질 않는다는 점이다. 오래 병에 시달리다가 수련을 통해 어느 정도 차도가 있으면 더 이상의 수련을 중단하는 경우가 잦다. 오래 자리보전만 하고 있다가 보니 우선 움직이는데 별 불편이 없고 그래서 그동안 하지 못한 일들을 처리하느라 시간이 나지 않을수도 있을 것이다. 또 병이 호전된 것은 기쁘지만 기도(氣導)를 통해 제 존재의 근원을 찾으려는 노력은 다음으로 미루고 싶어서 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오랜기간 병에 시달린 사람일수록 완전한 몸의 회복에 이르는 시간은 그만큼 더디기 마련이다. 제 몸을 괴롭히던 통증과 병의 증상은 사라졌지만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는데도 조금만 더 수련을 하면 자신의 몸이 얼마나 더 조화로워지는지를 알게 될 텐데도 아무 말없이 다시는 수련원에 오지 않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이다.
그리고서 다시 오랜세월이 흘러 병이 제발하면 그때서야 무안스런 표정으로 다시 수련원의 문을 두드리곤 한다. 그럴때의 내 마음에는 큰 변화가 없다. 다만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할 때 난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병이 재발해서 고통을 당하면서도 선뜻 나의 수련원을 찾아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 수련을 시작했을 때 좀 더 정진했더라면 그런 경우는 없을 것을 말이다. 진심으로 말하건데 기수련을 통해 증상이 가라앉더라도 내가 이제 됐다는 말을 하기 전에는 꾸준히 수련에 임해줬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기도(氣導)를 행하는 내 입장에서는 사람의 몸에 드는 병은 모두가 동일한 것이다.
감기이든 위염이든 폐암이든 심지어 에이즈라 할지라도 모두가 그저 같은 종류의 질병일 뿐이다.
왜냐하면 모든 병은 사람의 몸을 주관하는 질서가 흐트러짐으로써 발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몸의 병을 치유하는 방식도 같을 수밖에 없다.
우주의 기(氣)를 스스로 받아들여 제 몸과 마음의 흐트러진 것을 바로잡아 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기수련을 통해 제 몸의 병이 낫는 것은 치료가 아니라 원래상태로의 회복일 뿐이다.
그리고 그 회복을 위해서는 닫혀진 제 마음의 문을 먼저 열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현대의학으로도 밝힐 수 없었던 몸과 마음의 병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내고 회복하는 것만이 기수련이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다. 그러나 세상이 험악하고 복잡해질수록 사람들이 저마다 제 몸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고 또 그렇게 제 몸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다 보면 제 몸을 주관하고 있는 영혼에 대해서도 애정을 가질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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