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에 살고 있는 진호는 막 스무살이 된 어엿한 청년이었다. 대학입시에 실패하고 재수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큰 키에 번듯한 용모가 한눈에도 귀티가 흘러보였고 특히 서글서글한 눈매며 오똑한 콧날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진호의 미간이 아주 어두울 뿐만 아니라 가끔씩 까닭모를 살기까지 내비치는 것이었다. 게다가 혈색은 지나치게 붉어서 그냥 봐서는 낮술이라도 마신 것 같았다. 이름으로 봤을 때는 분명 온순한 성품을 타고난 것이 틀림없는데 저렇게 된 데에는 분명 무슨 곡절이 있을 성 싶었다.
같이 온 진호의 어머니는 자그마한 체구에 평범한 인상이었지만 침착하고 이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진호를 여기까지 데리고 오게 된 경위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고등학교 2학년때까지 진호는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다고 했다. 어려운 집안형편이었지만 맏이인 진호 덕분에 가정은 언제나 화목했단다. 그런데 진호가 2학년 가을소풍을 갔다와선 몸살로 한 보름동안 앓아 누웠는데 그 뒤로는 항상 골골거렸다는 것이다. 툭하면 몸져눕기 일쑤였고 그럴때마다 몸의 군데군데가 마치 심하게 맞아 멍이라도 든 것처럼 퍼렇게 되곤 했단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학교성적도 형편없이 떨어졌고 결국에는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렇게 진호라는 아이는 학교를 그만두고 시골에서 1년정도 요양을 했지만 별 차도는 없었고 겨우 검정고시를 통과했지만 대학입시는 실패를 했다고 한다. 재수를 하기로 결정하면서 어떻게든 제 몸부터 고쳐야겠다고 마음을 먹고서는 날 찾아왔다는 것이었다.
"몸이 아픈것도 그렇지만 더 심각한 것은 이 아이의 성격이 날이 갈수록 포악해지는 거예요. 처음에는 아무래도 학교까지 그만두어야 했기 때문에 그러려니 생각했는데. 요즘은 이 아이가 꼭 무슨 사고라도 저지를 것만 같아서 밤에 잠이 오질 않아요. 그렇게 착하고 순한 아이였는데."
목이 메어 말을 잊지 못하는 그녀를 다독이고 나서 나는 두 모자를 수련실로 안내했다. 그리고는 두 사람 모두 기수련을 하게 했다. 수련을 한지 10분쯤 지났을까. 서서히 기감(氣感)을 느끼던 진호의 몸이 갑자기 부르르 떨리더니 마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신음을 내지르는데 온몸이 꽁꽁 얼어버릴 정도로 냉기가 심하게 흐르는 것이었다. 옆에서 같이 수련을 하고 있던 어머니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아이에게 다가가는 것을 제지하는데 진호가 마침내 흐느끼기 시작했다. 진호는 빙의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심한 상태였다.
나: 누구냐? 왜 이 아이한테 와 있는거지?
진호의 몸에 빙의되어 있는 영혼은 35세된 남자였다.
영혼: 원수를 갚고 싶어서요.
나: 왜? 어떻게 죽었는데 원수를 갚고 싶다는 거야?
하지만 빙의된 영혼은 내말에는 대답을 않고 한참을 이리저리 뒹굴며 고통에 찬 비명소리를 질러댔다. 내가 진호의 몸을 어루만지며 통증을 느끼는 부위에 기(氣)를 보내자 이윽고 자초지종을 털어놓는 것이었다.
영혼: 제가 노름을 하느라 사채를 좀 빌려썼습니다. 500만원 때문에 얼마나 시달림을 당했는지 몰라요. 죽고 싶을 정도였어요.
그 남자는 한겨울 밤에 두명의 건장한 사내에 의해 경기도 가평의 어느 야산으로 끌려갔다고 했다. 빌어도 보고 대항하기도 하다가 그만 몸둥이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서 그만 암매장이 되었다고 했다.
영혼: 선생님, 이 원수를 갚아야겠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못가겠어요.
평소에도 진호는 항상 몽둥이로 맞은 것같이 온몸이 아팠다고 했다. 특히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때가 되면 그 증세가 더욱 악화된다는 것이었다. 잠을 잘 수도 없었고 툭하면 불같이 화를 내며 공격적이 된다고도 했다.
이런 영혼이 빙의되어 있는 사람의 경우 대개 우발적인 사고를 저지르곤 한다. 평소에 얌전하던 사람이 우발적으로 끔찍한 사고를 저지르는데는 이러한 경우일 때가 많다. 말하는 중간중간에 비명을 내지르느며 고통을 호소하는 아들의 모습을 얼이 빠진 채 지켜보던 진호의 어머니는 아주 침착했다. 내가 수련을 중단시키고 진호를 밖으로 내보내자 그녀는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진호가 저렇게 된 원인을 밝혀주셨으니 그 해결방법도 선생님이 알려주세요.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제가 이렇게 두눈으로 확인한 이상 당장이라도 선생님이 말씀해 주시는대로 하겠습니다.’
나는 또박또박 힘주어 말하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모성이란 저런 것일까 싶었다. 저 자그마한 체구의 어디에서 저런 강단이 나올 수 있는지. 빙의된 아들의 모습을 보고서도 저렇게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지.
‘아주머니가 괜찮으시다면 내일 천도를 시키도록 하지요.’
다음날 원수를 갚기 전에는 결코 떠날 수 없다는 영혼을 달래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나는 진호의 몸에 빙의된 영혼을 무사히 천도시켰다. 살아생전에 벌어진 일 때문에 죽은 영혼이 되어서 그것도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으려 할지도 모르는 영혼의 바람대로 해줄 수는 없었다. 원수를 원수로 갚을 수는 없는 법이라 달래고 또 달래야만 했다.
천도를 시키고 나서도 진호는 보름동안 나의 수련원에서 기수련을 했다. 자신을 그렇게 괴롭히던 영혼이 떠나자 진호는 빠른속도로 예전의 모습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먼저 온몸에 엄습하던 통증이 말끔히 사라졌고 무엇보다 식욕이 왕성해지면서 건강을 되찾았다. 지금은 대입준비를 하느라 발길이 뜸하지만 이번 대입시험이 끝나면 꼭 다시 기수련을 하러 오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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