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영주/누구나 아름다운 영혼을 지니고 있다

25. 인종이나 국경, 성별과 나이를 초월하는 나의 기수련법

기른장 2020. 6. 29. 14:15

8월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을 무렵,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각에 나는 독일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겔드(Gerd Burkert)였다. 5일 뒤에 서울로 갈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며 기쁜 마음에 무작정 전화를 걸었단다. 막상 전화를 하고 보니 너무 늦은 시각이라 죄송하다는 말도 잊지 않는 걸 보면 예의바른 건 여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에는 내가 마중가겠으니 걱정 말고 오기만 하라는 얘기를 끝으로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불현듯 그를 처음 만났을 때의 때가 떠올랐다.

 

겔드는 올해 25세의 건장한 독일 청년이다. 검소하고 근면한 전형적인 독일의 가정에서 두 살 터울의 형과 함께 자랐다. 지금은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장차는 햇볕이 화사한 이탈리아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가진 청년이다.

 

그러나 작년에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나는 처참하기 짝이 없던 그의 모습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임파선암에다 고환암, 폐암까지 겹쳐서 세 번의 수술을 받은 겔드는 언제 또 어느 부위에서 암세포가 활동을 시작할지 알 수 없는, 기한이 정해지지 않았을 뿐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상태였다.

 

내가 방배동에서 수련원을 열고 있을 때 거기에 자주 들렀던 한의사 한 분이 독일에서 우연히 그를 만나 나에 대한 얘기를 해 준 것이 겔드가 나를 찾아오게 된 직접적인 계기였던 것 같다.

 

물론 처음에 그는 나에게 큰 기대는 갖지 않았던 것으로 보였다. 다만 현대의학으로는 더 이상 방법이 없다는 말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 이름도 생소한 이 나라까지 왔던 것이다.

 

매사에 꼼꼼한 독일인답게 겔드는 미리 준비해 온 편지를 내밀었는데 거기에는 자신의 병명과 수술을 받게 된 경위, 그리고 지금의 상태가 영어로 적혀 있었다. 아마도 독일어로 의사소통이 안 될 걸 대비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편지를 다 읽고 난 나는 겔드에게, 좀 늦긴 했지만 걱정 말라고, 어쨌건 서로를 믿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다른 건 다 잊고 여기 있는 동안 수련만 열심히 하자고 일러 주었다. 그런데 성치 않는 몸에다 오랜 시간 비행기를 타고 오느라 피곤했을 텐데도 그는 당장 메디테이션(명상)을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충혈된 그의 눈이 문득 빛을 발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 번 가슴을 쓸어내렸다. 삶에 대한 갈망이 그의 눈에 가득 차 오르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겔드는 나의 기수련법을 일종의 명상 정도로 알고 있었다고 했다. 아마도 소개한 분이 나의 기수련에 대해 설명하기가 까다로워서 인도의 요가나 명상과 비슷한 것이라고 말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당장이라도 뭘 했으면 좋겠다는 겔드의 요청을 점잖게 뿌리쳤다. 그런 몸으로, 더욱이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 생면부지의 땅에 오로지 나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그의 의지는 가상하지만 우선 그에게 필요한 것은 최소한의 육체적인 휴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나의 설명을 알았다는 듯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련실 옆의 작은 방에 여장을 풀게 한 나는 그를 위한 기도에 들어갔다.
한 생명을 살리고 죽이는 일이 이제는 오롯이 그와 나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겔드는 스스로 수련을 하기 시작했다. 나의 기수련법은 서양인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다. 우리 회원들이 모두 행하는 방식대로, 특별히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었다.

 

다만 그의 경우에는 워낙 병이 위중한 상태였으므로 따로 방을 잡아 수련하게 하였는데 나는 별다른 일이 없는 한 항상 그의 곁에 있어 주었다.

 

겔드는 워낙 몸 상태가 좋지 않았으므로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수련을 하고서는 몇 시간을 쉬고 다시 수련을 하게 했다. 처음에는 별로 기감을 느끼지도 못했고 몸 상태도 호전되지 않아 낙담하는 것 같았는데도 그는 무섭도록 수련에 매진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겔드는 예상 밖으로 빠른 정진을 보였다.
아마도 삶에 대한 절박한 그의 마음이 정진에 큰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사흘째 되던 날부터 겔드의 몸은 완연히 호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수련을 하는 중에 그의 두 손이 수술한 부위를 가볍게 두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수술자국이 남아 있는 살갗은 감각이 완전히 죽어 시퍼렇게 변해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의 손은 길게 흉터가 나 있는 목과 어깻죽지를, 그리고 사타구니 사이를 격렬하게 두드려 댔다. 뿐만 아니라 서양식 입식생활로 뻣뻣해진 무릎을 굽혀 가부좌를 트는 것은 물론이고(다리를 굽혀 앉아본 일이 없는 서양인에게는 가부좌 자체가 특별한 묘기쯤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가부좌를 한 상태에서 그대로 물구나무를 서기도 하는 것이었다. 수련이 끝나고 나서는 자신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까지 지어 보였다.

 

그런데 무엇보다 그의 병이 호전되고 있다는 뚜렷한 증거는 수련을 거듭할수록 그의 몸에서 지독하게 풍겨나오는 냄새였다. 그 냄새는 서양인 특유의 체취가 아니라 몸 속의 탁한 기운이 수련으로 인해 방출되는 냄새였던 것이다. 그 냄새 때문에 겔드가 수련하는 방에는 나 외에는 아무도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수련을 통해 나날이 호전되어 가는 자신을 느끼기 시작한 겔드의 얼굴에는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일 주일이 지나자 잃었던 웃음도 되찾았고 입에 맞지 않던 우리네 음식도 거뜬하게 비워 냈다.

 

3주 예정으로 나를 찾았던 겔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련에만 정진했다. 어떡하든 남은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데까지 수련을 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그의 몸을 휩싸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열흘쯤이 지나자, 첫번째 임파선 암 수술을 했던 목 언저리의 흉터에 감각이 살아났다.
이 무던하고 착한 독일 청년의 두 눈에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과 감격의 눈물이 흘려내리는 순간이었다.

 

밤이고 낮이고 수련실에만 틀어박혀 있는 그가 안 돼 보여서 내가 잡아끌다시피 경복궁과 덕수궁을 비롯해 이태원을 데리고 간 한나절을 제외하고 겔드는 꼬박 3주를 그렇게 결사적으로 수련만 하고서는 독일로 돌아갔다. 공항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고맙다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하다 내 뺨에 키스를 하고는 내년에 꼭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서.

 

겔드는 독일로 돌아간 뒤에도 편지며 팩스를 통해서 거의 매주 안부를 전해 왔다. 자신의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가 자신을 진찰하고는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으면서 이제 완치되었으니 더 이상 정기검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정을 내렸다는 얘길 듣고 부모와 함께 펑펑 울었다는 얘기며, 한국에서 수련을 하면서도 매일 맞아야 했던 항암주사를 돌아가자마자 더 이상 맞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맥주를 한 병 마셨는데 맛을 모르겠더라는 얘기, 수련중에 자신이 느꼈던 여러 현상들에 대해 설명을 해 달라는 얘기 등등이 편지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편지 중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그가 수련중에 방정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고환암 수술을 받았던 그는 발기는 되지만 사정은 할 수 없는, 즉 정자의 생산이 중단되어 있는 상태였다. 현대의학의 견해로는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여서 영원히 아이도 가질 수 없는 생식 불능 판정이 내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편지에다 자신의 수련 모습과 그 때의 상황을 예쁜 그림으로 그려서 첨부하기까지 했다. 기간이 문제이지 성기능까지도 회복될 것이라고 믿고 있던 나로서도 의외로 빠른 그의 진척에 놀랐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기수련에 매달렸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았으며, 무엇보다 한창 나이의 청년이 다시 인생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에 무엇보다 감사했다.

 

나는 답장에다 그의 빠른 성취를 축하한다고 쓰고 그러나 당분간은 여성과의 성적인 접촉은 극력 피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직은 몸 상태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런 그가 약속대로 다시 오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전화를 끊고서는 마음이 좀 급해졌다. 귀엽고도 귀중한 손님이 오는 것이다.

 

일 년 만에 다시 만난 그는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몸은 다소 여위었지만 얼굴이며 몸에는 건강한 기운이 넘치는 듯했고 입가에는 한시도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 꺾다리는 공항에서 나를 보자마자 바닥에서 넙죽 큰절을 올렸고 힘주어 나를 끌어안는 바람에 뭇사람들의 시선을 한번에 끌어모았다.

 

겔드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일 년 전만 하더라도 찾아볼 수 없었던 서양인 특유의 농담까지 섞어가며 지난 얘기를 해대는 바람에 좌중은 늘상 웃음이 터져나오곤 했다. 입을 호호 불어가며 우리의 매운 음식도 곧잘 먹었고 어머니에게서 배워왔다며 독일식 저녁을 준비해서 우리 회원들에게 대접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겔드가 완연히 달라진 점은 수련을 하는 중에 나타나는 그의 반응이었다.
그는 예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빨리 기감을 느꼈고 또 그런 만큼 격렬하게 진동을 하는 것이었다. 다리를 들어 목의 뒷부분에 올려놓는 등 요가를 오래 수련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동작을 보이는가 하면 결가부좌의 상태에서 물구나무를 서서는 20분이고 30분이고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현상이 특별한 것은 아니다. 몸에 들어온 우주의 기운이 움직이는 대로 몸을 맡기다 보면 누구든지 그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에전의 그와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고 건강도 몰라보게 좋아서 나는 흡족했다.

 

겔드는 나의 수련원에서 2주 동안을 머무르다 돌아갔다. 내 곁에서 수련을 하면 훨씬 기감이 강해진다며 한시도 나와 떨어지지 않고 수련을 하면서 틈틈이 새로운 친구도 사귀었다. 나의 두 딸과 함께 노래방을 가기도 했고 나를 따라 멀리 목포까지 가서 낯선 섬의 조그만 절을 찾기도 했다. 일산에 사는 한 가난한 소설가의 집에 초대를 받고서는 한없이 기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다.

 

내년에는 꼭 독일에 와 달라며 그는 정중하게 나를 초대하고는 독일로 돌아갔다. 공항에서 내가 선물한 우리 북을 들고서 눈에 가득 물기를 머금고는 꼭 독일에 한 번 와 달라며 나를 힘껏 끌어안고는 발길을 돌렸던 것이다. 그의 뒷모습이 어찌나 건강해 보이는지 나는 그와의 헤어짐을 섭섭해 하기보다는 그가 건강을 완전히 회복하게 된 것에 마음 뿌듯했다.

 

겔드의 경우에서 보듯이 나의 수련법은 인종이나 국경, 성별이나 나이에 관계없이 일정하며 그 성취의 정도도 개인차만 조금 날 뿐 대체로 일정한 수준까지는 누구나 오를 수 있다. 다만 수련하고자 하는 마음가짐과 믿고 수련에 임하는 자신의 자세에 따라 차이가 날 뿐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자신의 건강은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지킬 수 있다.
특별히 운이 좋은 사람은 기연을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제대로 된 기수련법을 통해 자신의 몸과 영혼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 저자에게 보낸 겔드의 편지 부분 번역 수록

 

1997년 11월 14일

성영주 선생님께

 

애정어린 편지를 보내 주신 데 감사드려요. 선생님의 소식을 듣게 돼 너무 기뻤답니다. 저는 선생님의 제자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자주 선생님이 제 가까이에 있다고 느낍니다. 또 기수련을 하는 동안 제 사고(생각)는 선생님과 함께 있습니다. 한국에 있고 선생님 안에서 훈련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기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항상 선생님 사진 앞에 절을 합니다. (수원에서 저와 함께 손을 맞잡고 높이든 채로 찍은 사진) 또 우주 에너지(기)를 요청하면서 3번 절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마음비우기"를 시작합니다. (중략)

 

근래 저(제 몸)는 공중부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제가 공중부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하겠지만요. 그렇게 되기 전과 지금은 10~20cm 정도로 떠서 그것을 행하고 있습니다. 제 몸을 마사지하고 기수련을 하는 동안의 저를 관찰하면서 어떻게 에너지가 운용하는지를 알게 됐습니다. (중략)

 

선생님은 한국의 제 마음의 고향이기를 바라시지요. 저도 실제로 제 전생의 고향은 한국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스트레스가 심하고 복잡한 서울이 아니라 편안하고 평화로운 산이 있는 (팔공산/계룡산) 곳 말이예요. (중략)

 

저는 저희 부모님에게 언젠가는 에너지를 주려고 해요. 선생님이 어떻게 생각 하실지는 모르겠지만. 그분들이 수년동안 제게 주셨던 것들 사랑과 에너지 모두를 되돌려 줄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으면 좋겠어요. 특히 지난번에 말씀드렸듯이 몇 년 전에 심장발작을 일으켰던 아버지에게는요.

 

이제 저희 부모님의 인사를 전해야겠군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선생님이 제게 주신 은혜에 너무나 감사하다고 전해 달라고 하셨어요. 저도 가슴 깊이 무척 감사하고 있어요! 일생 동안 선생님은 제 가슴 속에 자리할 겁니다. 선생님은 제게 사랑이 가장 강한 힘이라고 말씀하셨지요. 저는 (선생님의 제자로서) 결코 선생님을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 제 지식과 힘을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하겠어요. (중략)

 

선생님의 최고의 제자

 

겔드 부르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