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영주/누구나 아름다운 영혼을 지니고 있다

31. 문제아인 진웅이

기른장 2020. 11. 23. 20:57

진웅이가 날 찾아온 건 8월의 셋째 주 일요일이었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수련원으로 들어서는 진웅이는 옷차림새며 하는 폼으로 보아 속칭 문제아라고 말하는 그런 아이였다. 힙합바지라는 걸 엉덩이에 겨우 걸쳤는데 바짓가랑이는 너덜너덜하니 길바닥을 쓸고 다녔는지 먼지투성이였다.

 

나는 진웅이의 우스꽝스러운 모습과 근심으로 눈가에 촘촘하게 주름이 진 진웅이의 어머니를 한참 바라보았다. 얘기를 나누지 않았지만 이 모자가 왜 나를 찾아왔는지 금세 짐작이 갔다.

 

나는 두 사람을 내 방으로 들이지 않고 마침 회원들이 모두 돌아간 뒤라 텅빈 응접실에서 맞았다. 진웅이는 무슨 호기심이 발동했는지 잠시도 가만히 있질 못하고 연신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고 어머니는 한숨을 간간이 내쉬며 저간의 사정을 얘기했다.

 

그녀의 어머니에 의하면 진웅이가 빗나가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면서부터라고 했다. 한창 잘 나가던 진웅이 아버지의 사업이 꼬이기 시작했고 마침내 아버지가 고혈압으로 쓰러졌다고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진웅이 아버지의 병세가 위중하지 않았고 그 와중에서 급하게 사업을 정리해서 가세가 크게 기울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지 그 때부터 진웅이가 집에 잘 들어가지 않고 나쁜 친구들과 밖으로만 떠돌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겨우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은 했는데 갈수록 성격이 난폭해진 데다 큰 사고까지 일으켜 1년을 쉰 뒤 어쩔 수 없이 공업계통의 고등학교로 전학을 했다고 한다. 사고를 수습하고 전학을 하는 데 돈도 수월찮게 들었지만 무엇보다 일일이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당한 수모가 더 컸다고 했다. 지금도 학교에는 거의 가지 않고 친구들과 휩쓸려 다니는 모양이라고 진웅이 어머니는 한숨 끝에 기어이 눈물을 내비쳤다.

 

나는 어머니의 하소연을 듣고서 진웅이를 바라보았다. 옷차림이며 팔뚝의 화상 자국만 아니라면 얼핏 보아서는 그런 일을 저지르고 다닐 아이 같지는 않았다.

 

나는 다른 때와 달리 진웅이를 곧장 수련실로 데리고 가지 않았다. 대신 응접실에 마주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진웅이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행동했다. 예상했던 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진웅이는 내가 묻는 말에 꼬박꼬박 대답을 했고 우리 둘은 금세 친구처럼 친해졌다.

 

진웅이는 자연스럽게 내가 하자는 대로 수련에 임했다. 말로만 듣던 기수련이란 게 어떤지 호기심에 눈빛을 반짝이면서 말이다. 

 

수련을 마친 후,

 

“그저 마음 편하게 몸이 가는 대로 생활하는 것이 좋아. 그게 정신 건강에 좋으니까 말이다.”

 

진웅이는 처음으로 환하게 웃더니 꾸벅 인사를 건넸다. 나는 진웅이와 어머니에게 아무런 부담 없이 다음 주에 어느 때라도 오라고 했더니 꼭 일주일 만에 어머니와 다시 왔다. 어머니의 말인즉슨 진웅이가 일요일만 손꼽아 기다렸다는 것이었다.

 

“지난 주엔 하루만 결석하고 내내 학교에 갔습니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진웅이는 앞장서서 수련실의 층계를 오르며 밝게 웃었고 지난 번보다 훨씬 강한 기운행을 하며 수련에 빠져들었다. 수련을 마친 후 기감을 강하게 느꼈다며 환한 얼굴로 돌아갔다.

 

그러나 진웅이나 어머니에겐 얘길 하지 않았지만 진웅이는 빙의된 상태에 있었고 그 영혼이 이끄는 힘에 의해 살고 있었다. 진웅이가 수련을 하는 동안 빙의된 영혼이 드러나지 않았던 것은 내가 기운행을 해서 빙의된 영혼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절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빙의된 사람들과 달리 진웅이에게 내가 그렇게 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진웅이는 아직 영의 세계를 직접 체험할 만큼의 훈련이 되어 있지 않았다.

 

문제아인 진웅이는 이제 겨우 학교 생활에 적응해 가고 있었고 처음으로 자신이 흥미 있어 하는 세계를 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아이에게 빙의된 영혼을 불러내는 일은 좀더 조심스럽게 결정해야만 한다.

 

진웅이의 몸만큼이나 정신이 성숙해질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하지만 무작정 빙의된 영혼의 존재를 숨기고 수련을 계속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진웅이가 수련하는 걸 지켜보면서 그 시기를 결정해야 하는 새로운 숙제를 나는 또 하나 떠맡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