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영주/누구나 아름다운 영혼을 지니고 있다

33. 만성 신장염으로 가산까지 탕진한 사람

기른장 2020. 11. 23. 21:08

‘아무리 몸이 불편하더라도 이런식으로 사람을 찾는 건 예의가 아닙니다. 내가 언짢아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여길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나는 도대체 며칠을 씻지 않았는지 짐작도 할 수 없을정도로 엉망인 몰골을 하고 있는 중년의 남자를 향해 딱딱 부러지게 말했다. 그의 머리칼은 찌들대로 찌들어 엉겨붙은 데다 비듬이 수북했다. 몸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풍겨나와 가까이 있는 사람은 코를 싸쥐어야 했던 것이다. 

 

 ‘몸이 아프면 그렇잖아도 자신이 서러운 법입니다. 아무도 자기 마음처럼 돌봐주지 않아요. 더구나 이런 몰골로 다녀보세요. 누가 제대로 사람 취급을 해주겠어요.’

 

사실 그랬다. 사람이 건강해야 한다는 건 자신을 위해서도 지극히 당연한 얘기지만 하나의 인격체로서 제대로 대우받기 위해서도 건강해야만 한다. 오래 자리보존을 하고 누워있는 사람은 대부분 가족들에게서도 자신이 건강할 때와 대우를 받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챙기질 못해서 그렇습니다. 시간에 맞춰 서두르다 보니 그만...’

 

중년의 남자 대신 같이 온 아주머니가 어쩔 줄 모르고 안절부절이었다. 중년의 남자는 앉아 있기도 힘에 겨운지 한손을 바닥에 짚은 채 비스듬히 앉아있는 폼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다. 숨만 붙어있을 뿐이지 반송장이나 다름없었다.

 

중년남자의 이름은 철하라고 했다. 이제 40대 초반이었지만 처음봤을 때는 60대 중반의 할아버지로 보였다. 같이 온 그의 부인을 딸로 여겼을 정도였으니까.

 

그는 만성 신장염을 앓고 있는 중이었다. 혈액 투석기에 의지하여 목숨을 이어온지도 벌써 3년이 되어 간다고 했다. 결혼한 지 몇해 되지 않아서 신장염이 찾아왔고 한해 걸러 낳은 아이 둘이 훌쩍자라 청년이 된 지금까지도 아랫목에 누운채 실낱같은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다.

 

그랬으니 집안은 거덜나기 일보 직전이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좀 있었지만 가장의 벌이가 한푼도 없는데다 그 동안 몸에 효험이 있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으니 지금가지 버텨온 것만도 대단하다 싶었다. 

 

채 10분을 제대로 앉아 있지 못하는 사람을 수련실까지 옮길 수는 없어서 나는 그를 응접실의 벽에 기대게 한 채 수련을 하기로 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수련을 하다 중단하기를 몇차례.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그가 그렇게 힘들어 하면서도 계속 수련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수련을 하던 그가 녹초가 되어 그 자리에서 잠들었을 때 그의 아내는 근심스러운 얼굴로 나에게 물었다. 

 

‘저 사실은 오늘 병원에 가서 투석을 받아야 하거든요. 내일 가도 괜찮을지...’

 

‘저렇게 지쳐서 잠들었는데 오늘 어떻게 갈 수 있겠어요. 내일 가더라도 오전에 와서 수련을 하고 가도록 하세요.’

 

너무 피곤했던지 오래 잠들었던 남자가 눈을 뜬 것은 저녁 무렵이었고 밖이 어둑어둑해서야 그들 부부는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오전에 기수련을 하고서 병원에 갔더니 담당의사가 외국에 출장나가서 다른의사가 진료를 하고 있더란다. 웬지 꺼림칙한 생각이 들기도 하고, 철하라는 남자의 생각으로는 몸의 컨디션이 좋아 담당의사가 돌아올 때까지는 견딜만 하다고 생각되더란다. 그래서 다시 오겠다며 약만 처방받아 돌아왔다고 했다.

 

그래서 틈틈이 수련을 하다 병원에 들렀더니 혈액검사의 결과를 받아든 담당의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번에는 2주일치의 약만 처방하는게 아닌가. 

 

꾸준히 기수련을 하면서 그렇게 병원에서 약만 처방하기를 두달여, 더 이상 검사에서 신장의 이상을 발견할 수 없다는 소견이 떨어진 것이다. 

 

철하라는 사람은 그 뒤로도 수련원에 들르는 걸 멈추지 않았다. 한동안은 아내의 부축없이는 수련원의 문턱을 넘지도 못했던 그가 혼자서도 아무렇지 않게 와서는 수련을 하고 돌아가곤 했다. 

 

그러던 그 해 여름이 막 저물 무렵이었다. 점심시간이라 막 수저를 들려고 할 때 등산복 차림의 그가 아내의 손목을 잡고 수련원으로 들어서는 게 아닌가. 걷기는 고사하고 제대로 숨쉬기도 힘겨워하던 그가 신혼 이후 처음으로 아내와 관악산엘 갔다 오는 길이었다.

 

병석에 누우면서 아내에게 다시는 당신과 산책도 할 수 없을거라고 얘기한지 꼭 10년이 된다면서 철하라는 남자는 목놓아 우는 것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며 내내 눈물을 흘리는 그를 보며 나는 숙연해졌다.

 

그 10년 세월동안 그의 마음에 차곡차곡 쌓였을 온갖 회한들이 범벅이 된 채 그의 눈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눈물을 닦으며 나에게 연신 고맙다고 이 사례를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묻는 그를 향해 나는 조용하게 말했다.

 

‘나에게 사례할 생각보다 먼저 다른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세요. 여기 있는 부인과 두 아이들에게 먼저 고맙다고 하시고 만나는 우리 회원들에게도 고맙다고 하세요. 그리고 나서 본인이 다른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하세요. 그러면 됩니다.’

 

너무 의례적이고 딱딱한 말처럼 들릴지는 몰라도 나는 병이 나은 사람에게 입버릇처럼 그렇게 말한다. 듣기에 따라서는 무슨 폼잡는 얘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꼭 이 말을 잊지 않는다.

 

죽음이 지척에까지 이르렀던 사람들일수록 병이 나은 다음에도 다른 사람의 고마움을 그대로 간직하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람으로서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목숨이 위독했던 사람들의 경우는 더 이상 병이 진행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 동안 자신을 격려해 준 사람들에게, 이런 인연을 만들어 준 사람들에게, 또 자신이 섬기는 종교가 있다면 그분에게, 아니면 이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거대한 에너지에게라도 감사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이란 또 얼마나 쉽게 망각하는 동물인가. 자기가 살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것처럼 말하던 사람도 일단 몸이 낫고나면 모든게 그만인 경우를 나는 수없이 봐왔다. 허나 어쩌겠는가. 그것이 사람인 것을.

 

그런 사람들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기도(氣導)를 해나가는 것이 또 나의 일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