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영주/누구나 아름다운 영혼을 지니고 있다

34. 결혼한 지 10년이 넘도록 아기를 갖지 못하던 여자

기른장 2020. 11. 23. 21:16

내가 사람의 이름만 듣고서도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살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아는 회원들은 가끔 제 주위 사람들의 신상을 물어오기도 한다.

 

‘선생님. 제 조카 며느리의 이름이 채옥인데...’

 

평소 행동이 단정하고 성격이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는 회원 한분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말문을 여는 것이었다.

 

‘채옥이라는 사람 아주 안좋아요. 몸에 火氣가 너무 강해서 물기가 없어요. 극단적으로 말하면 채옥이라는 사람은 물기가 말라 버려 울지도 못해요. 당연히 아이도 가지지 못할거고 아이를 가질 수 있는지 하는 문제로 저한테 채옥이라는 사람을 물어 보는 거죠?’

 

‘그, 그렇습니다.’

 

나에게 말을 건넨던 회원은 아주 놀란 눈치였다. 내가 이름만으로 상대를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살피는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채옥이라는 사람 한번 데려오세요. 아이를 가질 수 있는지 어떤지는 기수련을 시키면 되는데 뭔가 다른게 짚혀져서 그래요.’

 

내가 채옥이를 만난 것은 그런 인연을 통해서였다. 채옥이는 커다란 눈망울이 아주 예쁜 서른살의 여자였다. 적당한 키에 첫눈에 보기에도 무척 선한 인상이었다. 그러나 채옥이는 풀이 죽어 보였다. 말이 없었고 잘 웃지도 않았으며 눈을 들어 똑바로 사람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내가 무슨 얘기를 해도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모기소리 만하게 겨우 대답을 하곤 했다. 

 

채옥은 별 망설임 없이 수련에 임했다. 시고모님을 통해서 기수련이 어떤 것이라는 걸 익히 듣기도 했으려니와 정말 기수련을 하면 아이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도 발동했을 것이다. 그런데 시고모 되는 사람과 함께 채옥이가 수련을 시작한 지 30분쯤 되었을 때였다. 갑자기 채옥이의 몸이 뼛뼛하게 굳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굳어진 자세로 내내 그렇게 앉아만 있는게 아닌가. 시고모되는 회원의 수련을 멈추고 걱정스런 눈길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채옥이는 빙의되어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빙의된 영혼이 도무지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채옥이의 입에서 끙끙대는 신음만 흘러나올 뿐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채옥이 앞에서 기(氣)를 보내주고 있던 나는 그만 수련을 중단시켰다. 

 

 ‘남편과 잘 상의해서 아예 여기서 기거를 하면서 수련을 하는게 좋을거야. 집이 멀어서 오가는 데 불편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니까.’

 

채옥이를 먼저 돌려보내고 나서 나는 채옥이를 데려온 회원을 내 방으로 들어오게 했다. 

 

 ‘조카 며느리가 빙의되어 있는 건 아시겠죠.’

 

‘네. 그런데 어떤 영혼이 들어와 있는지는...’

 

‘채옥이는 출생하기 전부터 이미 빙의되어 있는 겁니다. 전생의 인연으로 인해서 생명이 잉태될 때 이미 들어온 영혼이예요.’

 

‘그, 그럼...’

 

마주앉은 회원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는 걸 보면서 나는 가볍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천도를 시키면 되니까요. 내가 회원님께 부탁하고 싶은 건 다름이 아니라 조카에게 잘 얘길해서 채옥이의 몸이 온전해질 때까지 여기서 기거하도록 해주라는 겁니다. 채옥이를 위해서도 그렇게 하는게 바람직해요.’

 

채옥이는 다음날로 간단하게 짐을 꾸려서 수련원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열심히 수련에 임했다. 

 

채옥이는 내가 처음 그녀의 이름만 듣고도 살핀대로 몸에 火氣가 너무 강했다. 도무지 물기라고는 남아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눈물을 흘린 적이 없었다고 했다. 몸을 다쳤을 때도 울음소리만 크게 나왔을 뿐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땀도 거의 나지 않았고 생리도 몇 달씩 건너뛰기는 예사이고 생리가 있어도 겨우 흔적만 약간 있을 뿐이라고 했다. 

 

채옥이가 수련하는 동안 나는 잠시도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보았다. 그녀의 몸에 빙의된 영혼은 종내 말을 하지 않았으므로 그녀에게 주파수를 맞추고서 빙의된 영혼의 마음을 읽기 위함이었다. 천도를 시키는 것도 빙의되어 있는 영혼이 그렇게 하겠다고 해야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흘이 지나고서야 나는 채옥이의 천도재를 지낼 날짜를 잡을 수 있었다.

 

채옥이에게 빙의된 영혼은 화가였다. 고려시대 말엽에 주로 사찰의 탱화를 그리거나 단청 작업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왜 그녀에게 들어왔는지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빙의된 영혼 탓이었는지 채옥이는 절에 가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참배를 하거나 불공을 드리는 것보다도 벽에 그려진 불화나 추녀에 그려진 단청을 바라보는게 그렇게 좋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절에 가서 몇시간이고 구경을 하고 나면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채옥이에게 빙의된 영혼을 천도시키는 날이었다. 오후 세시에 재를 올리기로 하고 정성껏 준비를 했다. 채옥이와 함께 장을 보고 음식을 마련하는 동안 채옥이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그녀가 수련원에서 기거를 하고 있는 동안 여러차례 빙의된 사람들을 목격하기도 했지만 막상 자신의 몸에 빙의된 영혼을 천도시키려니 왠지 두려운 마음이 드는 모양이었다. 

 

천도재를 올릴 준비가 끝나고 채옥은 앉아서 기수련을 시작했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나는 채옥이에게 빙의되어 있던 영혼을 내보내기 위해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런데 그녀의 몸은 흡사 불덩이 같았지만 정작 본인은 끙끙대기만 할 뿐 땀은 한방울도 흘리지 않는 것이었다.

 

채옥이의 몸 곳곳에 기(氣)를 넣어 주던 나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냉장고에서 얼음을 가져오게 했다. 빙의된 영혼이 뿜어내는 열기 때문에 내 몸은 금방 땀으로 젖어버렸고 이런 상태가 계속되다가는 내가 화상을 입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나는 두 손을 번갈아 얼음물에 담그며 채옥이에게 빙의된 영혼을 다독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애쓰고 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내 오른쪽 손바닥에 확하고 불덩이가 놓이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뜨거웠던지 나는 이빨을 깨물며 비명을 삼켰고 얼른 얼음물에 두 손을 담갔다. 그러자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얼음물을 담은 그릇 위로 김이 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채옥이의 몸에 깃들어 있던 영혼은 그녀의 몸을 나왔다. 단 한마디의 말도 남기지 않은 채.

 

채옥이는 영혼을 천도시킨 뒤에도 거의 한달 가량 수련원에서 꾸준히 기수련을 했다. 그녀는 그 동안 나날이 변해갔다. 침울하기만 했던 인상이 활짝 펴진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잘 웃었다. 나와 같이 한증막에 가면 금방 온몸에 땀이 흐르곤 했는데 그녀는 그게 얼마나 신기했는지 울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열흘쯤 지나자 채옥이는 생리를 시작했고 나는 그녀에게 이제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말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