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의 조그만 항구도시에서 학원을 경영하는 사람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작년 봄이었다.
‘신문에 선생님 기사가 난 걸 보고 전화를 드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마침 볼일이 있어 서울에 왔는데 한번 찾아뵐까 합니다. 괜찮겠습니까?’
‘언제든지 오세요. 여기 문은 언제나 활짝 열려 있으니까요.’
나는 수련원의 위치를 알려 주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두 시간쯤이 지났을까 30대 초반의 낯선 남자가 쭈뼛거리며 수련원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이었다.
‘전 아주 건강한 편이거든요. 그런데 지난달부터 컨디션이 너무 좋질 않아요. 온몸이 욱씬거리는 데다 숨이 가빠져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잠이 들었다 하면 악몽을 꾸는데 어찌나 생생한지.’
남자의 얼굴은 몹시 피곤해 보였다. 생판 처음으로 병원에서 건강진단까지 받았지만 아무런 이상은 없었다고 했다. 푹 쉬면서 요양을 하면 곧 괜찮아질 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남자는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했다. 푹 쉬려면 우선 잠을 잘 자야 하는데 도무지 잘 수가 없는 것이었다.
‘억지로라도 누워서 잠을 청하면 꼭 누가 인정사정없이 패는 것처럼 아픕니다. 게다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갑갑하구요. 또 겨우 잠이 들어도...’
꿈속에서 그는 정신없이 쫓긴다는 것이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몰라도 산비탈이며 계곡을 구르다시피 도망가는데 그 거친 숨소리가 그대로 귀에 들린다는 것이었다. 쫓아오는 사람은 세명인데 모두 안기부 직원이라고 했다. 그들에게 잡혀서는 또 까무라칠 정도로 몰매를 맞는다는데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식은땀으로 이부자리가 축축할 지경이라고 했다.
나는 첫눈에 그 남자가 빙의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먼저 얘기를 해주지는 않았다. 늘 하던대로 그 남자를 수련실로 데려가서는 기수련을 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있던 남자는 내가 일단 해보기나 하라고 다그치자 마지못한 듯 수련에 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차한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비명과 함께 빙의되어 있던 영혼이 입을 열었다.
‘나는 이철규입니다. 작년에 무등산에서 이 사람의 몸에 들어왔어요.’
빙의되어 있던 영혼의 말에 정작 놀란 것은 그 남자가 아니라 나였다. 이철규라는 이름은 아주 귀에 익었기 때문이었다. 어디서 들었더라.
‘나는 도망치다가 잡혀 그 자리에서 맞아 죽었습니다.’
순간 나의 머리에 번쩍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80년대 말 광주 무등산의 수원지 부근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던 조선대 4학년 이철규. 당시 사인은 익사라고 했는데…
‘날 패죽인 사람들이 거기에다 갖다 놓고 그렇게 말한 겁니다. 그 사람들은 아직 살아 있어요.’
빙의된 영혼의 얘기는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고통에 못이겨 내지르는 비명과 살려달라는 고함소리에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나는 수련을 중단시켰다.
‘수련중에 본인도 들었겠지만 재작년에 광주에 간 일이 있었나요?’
‘글쎄요. 처가가 광주라서 해마다 갑니다만...’
‘잘 생각해보세요.’
‘아! 재작년 5월인가 처남들이랑 동서들하고 무등산에 산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바람이 어찌나 심하게 불어대던지.’
그 남자는 등산로를 따라 무등산에 오르다가 원체 날씨가 궂어 중도에서 그만두고 내려왔다고 했다.
‘그런데 난 이철규라는 사람을 모릅니다. 운동권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고요.’
‘그 사람과 꼭 연관이 있어야 빙의되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의 몸에 들어와 있으면 나를 만나게 될 거고, 그렇게 해서라도 이제는 그만 저승으로 가고 싶었을 겁니다.’
그 남자는 내 설명을 듣더니 한참을 얼이 빠진 얼굴로 앉아 있었다. 세상에 이런 얄궂은 일도 있나 왜 하필이면 전혀 상관도 없는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 하는 표정이었다.
‘바쁘더라도 며칠 시간을 내세요. 이런 영혼은 빨리 천도시켜야 합니다. 당신 몸이 지금 그렇게 아픈 것도 몸에 들어와 있는 영혼의 작용 때문입니다. 빨리 천도시켜 달라는 것이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당신만 더 힘들어집니다.’
그 남자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만간 연락하겠다며 돌아갔다. 나는 사람을 시켜 그 길로 신문사를 돌며 이철규에 대한 당시 사건기사들을 스크랩하게 했는데 워낙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사건이라 힘들이지 않고 자료를 모을 수 있었다.
이철규는 89년 5월 13일에 광주의 석곡수원지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당시 그는 조선대 전자공학과 4학년이었고 조선대 교지 편집위원이었는데 게재했던 논문과 관련되어 안기부의 수배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문제는 그의 사인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나중에 검찰이 밝힌 사인도 의문투성이었다는 데 있었다.
공개된 이철규의 시신에는 팔과 겨드랑이에 결박된 자국이 있고 다른 곳에서 죽은 뒤 옮겨져 왔다는 최초 부검의의 진술이 언론을 타면서 사건은 일만만파로 번졌다. 당시에는 워낙 정부와 일반 국민들 사이에 불신의 골이 깊었던데다 시위나 시국사건의 주동자들에게 대한 강압적인 수사와 고문조작이 횡행할 때라서 한달이 넘도록 전국은 이 사건으로 혼란스러웠다.
나는 스크랩된 당시의 신문기사를 읽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밝혀내지 못한 영혼들이 얼마나 많을 것이며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이렇게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를 생각하니 가슴이 막막해지는 것이었다.
인간이 역사라는 이름하에 저지르는 숱한 살육과 타인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광기 때문에 자신부터 얼마나 오랜세월을 고통속에 시달려야 하는지 일반인들은 잘 모른다. 내가 다른 사람을 상하게 하면 그 상대방뿐만 아니라 결국은 자신까지도 억겁의 시간을 고통과 탄식속에서 보내야 하는 줄도 모른다.
작년에 김재규가 빙의되어 날 찾아왔던 사람은 지금 행방불명인 상태이다. 대통령을 죽인 사람의 영혼이 이제는 살아 있는 사람의 육신을 뒤흔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죄업은 자신의 윤회의 사슬을 끊어 버리지 않는 한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다.
곧 다시 오겠다던 그 남자는 아직도 오지 않았다. 맞아 죽었다는 영혼이 자신의 몸에 빙의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는 두세번 전화만 하고서는 그만이었다. 그의 몸과 마음이 그렇게 휘둘리고 있다는 것을 그 사람은 알고나 있는지.
그러나 또 어쩌겠는가. 자신의 몸에 빙의된 영혼을 천도하는 것도 나와 인연이 되어야만 하는 것을. 말을 물가로 끌고갈 수는 있어도 결국 물을 먹고 안먹고는 전적으로 말 자신에게 달려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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