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 베인/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제7장

기른장 2021. 5. 9. 18:50

다음날 아침 잠을 깨어서도 나는 아직 전날의 린포체 대사님의 이야기에 매료된 상태 그대로였다. 대사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창문으로 다가가보니 대사께서 발코니에 서 계시는 것이 보였다. 곧 해가 떠오를 동녘을 바라보고 계셨다.

 

주변은 아직도 어둡고 시커먼 담요 같은 검은 구름이 골짜기를 뒤덮고 있었으며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았다. 티벳에서 이런 모습은 여태껏 본적이 없었으며 대체 이제부터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생각을 하는 찰나에 갑자기 뇌성벽력이 치면서 요란한 소리가 골짜기 속에서 전후상하로 메아리 치는 것이었다. 그 소리는 겹겹이 둘러싼 산들에 부딪쳐 마치 거대한 포탄이 차례차례 터지는 것처럼 울려퍼졌다. 비는 아직 내리지 않는다. 나는 대사가 계시는 발코니로 나가 보았다. 대사는 깊은 명상에 잠겨 있었다.

 

「나는 자연이 자아내는 여러가지 느낌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다네. 어젯밤은 푸른 하늘에 구름 한점없이 별이 빛나고 있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골짜기와 언덕이 어두워 큰 비가 쏟아질 것 같은 구름이 가득차 있고 금시라도 호우가 쏟아져 강을 범람시키고 사나운 물결이 소용돌이칠 것처럼 보이는군」

 

「그렇군요, 오늘 아침은 정말 날씨가 사납군요」

 

그 찰나에 앞서보다 더 큰 번개가 터지면서 백 미터쯤 떨어져 있는 큰 바위에 벼락이 떨어졌다. 몇 십억 볼트는 될 것 같은 엄청난 굉음이 귀를 찢으며 섬광이 순간적으로 사방에 퍼져나갔다.

 

「승원에 맞지 않아서 다행이군요」하고 나는 말했다.

 

「응」하고 대사는 일단 동의를 하고 나서 「그러나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역사에는 승원에 벼락이 떨어진 일은 없었다네」하고 말을 받으셨다.

 

바로 그 때 구름들이 쫙 갈라졌다. 나는 아직껏 그런 광경은 본적이 없다. 그것은 비가 온다는 따위의 말은 해당이 되지 않는다. 마치 엄청난 그릇을 뒤집어 폭포처럼 물을 내리 퍼붓는 것과 같았다. 골짜기 밑의 강에서는 갑자기 솟구친 분류가 벼락소리에 못지 않은 요란한 소리로 울부짖기 시작했다.

 

「얼른 그쳤으면 좋겠는데요」

 

대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연은 토라지기도 잘하지만 또 풀리기도 잘하지」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구름이 물러가면서 우리를 둘러싼 히말라야 산맥 등 뒤로부터 태양이 얼굴을 내밀었다. 폭풍이 그치자마자 벌써 주변은 정적 그것이었다.

 

「이렇게 어지러운 변화는 본 적이 없습니다. 정말 극단적인 대조로군요」

 

하고 나는 탄성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후에 아침식사로 나는 삶은 달걀 두개에 토스트와 홍차를, 린포체 대사는 참파-보리를 볶아 가루로 만든 것, 티벳의 주식-를 조금하고 차 한 잔을 드시고 나서 다시 발코니로 나와 앉았다.

 

「이 나라 사람들의 풍습을 좀 더 알고 싶습니다」

 

대사는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이셨다.

 

「복장은 어떤가요, 자주 변화가 있나요?」

 

「아니, 아니. 여기서는 복장의 변천이라는 것은 없다네. 지금도 몇백년 전의 남녀와 똑 같은 모양의 옷을 입고 있으며 전혀 변화가 없다네」

 

「서양사람들의 변하기 쉬운 기분에는 잘 맞지 않겠군요」

 

「그렇겠지」

 

대사는 내가 생각하는 바에 대답하시는 것처럼 말했다.

 

「티벳인의 의복양식은 몇 세기동안 변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하층계급과 상층계급 사람들의 의복 사이에는 그 모양과 헝겊의 질에 있어 커다란 차이가 있지. 이것은 이 나라의 법률이 정하고 있다네. 이 나라의 법률은 각 계층마다 의복의 질과 색을 규정하고 있다네」

 

「입는 것까지 일일이 지시를 받는 것에 사람들은 반발하지 않나요?」

 

「아니, 이런 일은 모두 몇 세기에 걸친 습관이라네. 상층계급 부인의 복장 같은 것은 대단히 매력적이지. 집안일을 할 때에도 결코 몸단장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네. 부인들은 모두 보석이나 그 밖에 많은 장신구를 몸에 달기를 좋아하고, 몸에 부적이 든 갑이 달려 있는 목걸이를 하고 있는 것을 자네도 보았겠지」

 

「네, 노약자나 빈부의 차별없이 거의 모두가 목걸이를 하고 있더군요」

 

「그 목걸이의 조그만 갑 속에는 말하자면 기도문이 들어 있다네. 그것이 재난으로부터 몸을 지켜준다고 그들은 믿고 있는 것이야. 상층 계급이 하는 목걸이는 금으로 만들고 보석을 잔뜩 채워넣지. 만약 그 부적이 든 갑을 매달고 있는 보석 구슬에 어떤 자국이 나 있으면 행운이 들어온다고 여긴다네. 그래서 아주 비싸지. 또 옷에 아주 품질이 좋은 비취를 단다네. 개중에는 옷 등에 보석을 수 놓기도 하는데 어떤 것은 수백만원짜리도 있다네. 그리고 온통 화려한 수를 놓은 옷을 입지.

 

손가락에는 보석이나 또는 자기가 좋아하는 귀한 돌을 박은 금반지를 낀다네. 비취 귀걸이는 언제나 달고 있고, 그러면서도 이 나라처럼 오물에 대해 무관심한 곳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을 것이야. 부인들은 정말 현란한 의상을 입고 있으면서 우리들이라면 자기가 탄 말까지도 밟지 않게 할 오물속을 그 의상을 질질 끌면서도 걷고 있는 모습을 보는 수가 흔히 있지. 오늘 아침에는 자네도 그 부인들의 의상을 직접 보게 될 것이야」

 

대사는 날 이 지방의 한 명문가의 굉장한 결혼식에 주례를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네도 함께 가면 좋을 것이야. 자네를 귀빈석에 앉히도록 신랑 양친에게 말해두었으니까. 귀빈석에서는 전부 똑똑히 볼 수 있다네」

 

이런 경위로 우리는 마을로 가게 되었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신부가 화려하게 장식된 조랑말을 타고 신랑집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신부는 머리에 화려한 색깔의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다.

 

「저 스카프는 무엇 때문에 하는 건가요?」

 

「아, 저것은 신부가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서라네」

 

결혼 식장에서는 세 군데에서의 다과 접대가 베풀어지고 있었다. 세 군데가 다 서로 가깝게 붙어 있었으며 결혼식장 바로 곁이었다. 여러가지 과자들을 세 군데에서 직접 만들고 신부와 그 일행이 먼저 그것을 시식했다. 신부가 신랑집 문에 도착하자 누군가가 신부 얼굴에 “톨마”를 던졌다. 톨마라는 것은 보리가루를 반죽하여 그것을 빚어서 조그만 칼모양으로 만들어 삶아가지고 빨갛게 칠을 한 것이다.

 

「왜 저런 짓을 할까요?」

 

「아, 저것은 만약 악령이 신부에게 붙어 오면 그것을 쫓으려는 예방이라네」

 

「별난 풍습이군요」

 

하고 나는 웃었다.

 

신랑과 그의 모친이 대문까지 나가 신부를 맞아들였다. 신랑의 어머니가 신부 머리 위에 거룩한 오색리본이 달린 화살을 하나 얹었다.

 

그 이유를 대사에게 물었더니

 

「그것은 어머니가 신부를 받아들인다는 뜻이고 말하자면 신부의 대한 결혼 승낙서 같은 것이야. 사실 결혼을 증거하는 것으로는 저 형식 밖에는 이 고장에는 없다네」

 

참석자 모두가 집안으로 들어가 신랑은 신부 바른편에 앉았다. 친구와 친척들이 두 사람 발 밑에 선물을 갖다 놓았다.

 

린포체 대사는 두 사람의 목에 명주스카프를 걸어주고 그것으로서 두 사람은 떳떳한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했다. 신랑 어머니가 앞으로 나와 신랑 신부 목에 다시 한 장의 스카프를 각각 걸어주었다. 그 것으로 결혼식은 끝난 것이며 모두는 연회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연회는 밤늦게까지 계속된다는 것이었다.

 

나도 조금 잔치 음식을 먹었지만 온갖 종류의 설탕과자라든가 굉장한 양의 보리로 담근 맥주 같은 술을 포함하여 열 여섯번이나 다른 요리들이 나왔다. 오래지않아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며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도 없게 된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린포체 대사는 다른 볼일도 있어서 우리는 잠시후에 그 자리를 떠났다. 다른 볼일이란 어떤 아가씨를 방문하는 일이었다.

 

한 여자가 형제 두 사람 가운데 형쪽과 결혼을 했는데 실은 그 아가씨는 그렇게 함으로서 자기가 정말로 사랑하고 있는 동생과도 함께 살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가씨의 예상과는 달리 동생은 형과 함께 그 아가씨와 살기를 거절했기 때문에 아가씨는 비탄에 젖어 있다는 것이다. 대사의 용무란 그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일이었다.

 

「저는 그 동생의 심정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군요. 선생님은 어떻게 하시렵니까?」

 

「두고보게나」

 

그 집에 가보니 아가씨는 현관에 앉아서 꿈이라도 꾸고 있는 양 먼 하늘을 멍청히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들이 온 것을 알고 그녀는 정신을 차리며 린포체 대사 앞으로 달려와 대사의 옷자락에 입술을 댔다.

 

대사는 여자 머리 위에 한 손을 얹고 그녀를 축복해주고나서 티벳말로

 

「딸아, 일어서라. 이제는 안심해도 된다」

 

하고 다독거려 주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에 나는 놀랐다. 정말로 반듯하고 입 언저리의 선이 단정하여 입술 모양도 곱다. 웃을 때는 반듯한 치열이 빛난다. 이름은 놀부라고 하며, 이 이름은 아름다운 보석이라는 뜻이고 그녀에게 꼭 맞는 이름이었다.

 

대사의 말씀으로는 티벳 사람들의 이름은 아름다운 산, 아름다운 계곡, 꽃, 보석 따위 어떤 장소나 귀한 물건의 이름이 대부분이고 각자 말 뜻에 따라 이름을 고른다는 것이다.

 

놀부는 결혼을 했지만 아이가 하나도 생기지 않았다. 그녀에게 있어 그것은 큰 타격이었다. 티벳여성이 이 세상에서 가장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이를 갖는 일이다. 아이가 없는 결혼은 그들에게는 결혼이 아니며, 스스로 그 결혼을 취소해도 되는 것이 이 나라의 풍습이다.

 

그녀는 탄리-평탄한 고개라는 뜻-의 소식을 린포체 대사로부터 들으면서 차츰 흥분했다. 탄리란 바로 남편의 동생이다. 그에 대해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왜 돌아오지 않는지 모르겠어요」하고 말하면서고 그 큼직한 푸른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그는 너를 사랑하고 있단다. 그러니까 너를 형과 함께 가질 마음이 되지 못하는 거야」

 

「저는 그 사람에게로 가겠어요」

 

「좋지. 가보아라. 그는 저 산너머 다즐링에 있단다. 히말라야가 너희들 둘 사이를 갈라놓고 있지만 어디 산을 넘어갈 수 있겠느냐?」

 

「있고 말고요」

 

하면서 그녀는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 후 그녀는 히말라야를 넘어서 다즐링으로 가 그곳의 불교 승려의 주례로 다시 결혼했다는 소문을 나는 들었다. 몇 달 뒤에 그녀의 소식을 린포체 대사에게 물어보았다.

 

티벳에서는 희귀한 사랑이야기였기에 그녀의 일은 내게 큰 감명을 주었던 것이다. 대사의 말씀으로는 둘이 다 매우 행복하게 살고 있으며 이미 임신을 했고 지금은 매우 명랑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둘의 사랑은 잘 되어갈 걸세. 참된 사랑의 유대는 언제나 잘 되는 법이니까」

 

「형쪽은 어떻게 되었나요?」

 

「아하 그쪽도 잘됐다. 형도 재혼했다네」

 

「정말 이상한 나라도 다 있군」하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튼 그 여자의 집을 나와 다시 다른 집으로 갔는데 그 집에서는 한 남자가 죽어가고 있기 때문에 친척들이 린포체 대사를 모셔온 것이다. 우리가 도착하고 얼마 안있어 그 남자는 숨을 거두었지만 대사가 거기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가족들의 슬픔은 훨씬 누그러지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하나의 인간이 죽었는데도 마치 새 생명이 탄생한 듯이 각자 퍽 명랑하게 자기 할 일을 해나가는 것이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요?」

 

「아아, 내일이나 모레 시체는 처리장으로 보내지지」

 

「그럼 거기서 화장을 하는가요?」

 

「아니, 서양에서는 하는 식과는 다르다네. 저기 저 앞 언덕 중턱에 독수리들이 날아다니는 것이 보이지?」

 

「네」

 

「저 독수리들은 살을 뜯어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야. 저 언덕에 보이는 사람들은 라갸파라고 불리우는 시체 처리인들이고. 그들은 시체를 잘게 토막내어 독수리에게 주는 일을 한다네. 그러고나면 아무 것도 남지 않지. 그렇게 하는 것이 보통사람의 시체를 장사지내는 방식이라네」

 

나는 그 현장을 보고 싶다고 했다.

 

「정말 보고 싶은가? 기분이 나쁠텐데」

 

「실지로 보아두지 않으면 어떻게 하든지 그저 상상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좋아, 그럼 가보지. 거기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시체가 있어서 동물들이 뜯어먹고 있다네」

 

그렇게하여 우리는 언덕 중턱으로 올라가 이 고장 사람들이 ‘해골’이라고 부르는 장소에 가서 정말 무서운 장면을 보았다. 그들은 먼저 큰 바위 위에 시체를 눕히고 날카로운 연장으로 뼈만을 남기고 고기를 말끔히 갈라내어 살을 떼어내는대로 독수리에게 던져주었다.

 

그러면 무리지어 기다리며 날고 있던 육식조(肉食鳥)들이 소리치며 내려와서 라갸파들의 손을 쪼을듯이 살을 물고 날아가 먹어치우는 것이었다.

 

살을 다 떼어낸 뼈는 잘게 부숴서 개에게 준다. 시체에서 잘라낸 머리가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 라갸파들은 두개골을 깨고 눈알과 골을 손으로 끄집어내어 독수리에게 준다. 두개골은 부수어 가루로 만들어 죽은 사람의 친척이 희망하면 넘겨주고 그렇지 않으면 개에게 준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광경이기는 했습니다만 보아두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대는 무엇이든 피하지 말고 있는대로를 보아야 한다네. 그렇지 않으면 해탈이 되지 않는 것이야」

 

「말씀하신 대로 입니다. 저에게는 아직도 많이 해탈해야 할 것이 있지요」

 

「자, 그건 그렇고. 다시 죽은 사람의 집으로 가서 그 자리를 정화하는 의식을 해주는 것이 라마승으로서의 일반적인 계율이라네」

 

「그것도 보아 두어야 할 것 같은데요」

 

「그것도 보고 싶은가?」

 

「네, 전부 봐두는 것이 좋겠다고 여겨집니다. 결혼, 죽음, 장례 지내는 것을 차례로 보아왔으니까 이젠 정화의 의식도 보아야지요. 앞으로 탄생하는 것까지 보게 되면 사람의 일생을 다 보게 되는 것이 되고 티벳 사람들의 생활 전체-탄생, 생활, 죽음-를 본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젠 라마승들이 와 있을 거야」

 

그리하여 우리는 죽은 사람의 집으로 다시 돌아갔는데 과연 라마승이 와 있었다. 정화의 의식은 아직도 시작되지 않고 있었다. 라마승들은 그 의식을 집정하는 역할을 린포체 대사에게 양보하려 했지만 대사는 손을 들어 그들에게 그대로 집전을 하게 했다.

 

그 의식에는 여러가지 재미있는 과정들이 있었다. 라마승은 먼저 종이 한 장을 꺼내어 사자(死者)의 인형(人形)을 만들고는 그것을 불에 던져 태우면서 다 탈때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종이인형이 환하게 타오르면 사자의 혼이 가장 높은 하늘로 올라간 것이고, 붉게 타면서 퍼지면 혼이 집에서 나간 표시라는 것이다. 활활 타오르지 않고 있으면 혼은 아직 집안에 떠돌고 있는 것이며, 그러면 라마승이 그 영혼에게 집에서 나가 가족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고 좋은 안식처를 찾아 다시 태어날 때까지 기다리도록 타이르는 것이다.

 

「제 마음에 드는 것이 한 가지 있군요. 그것은 이땅의 사람들이 죽음이라는 것이 없음을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종이를 태우는 것은 한낱 미신이 아닐까요?」

 

「그야 그렇지. 그러나 유족들은 그것으로 위안을 받는다네. 그들은 그것을 굳게 믿고 있으니까. 그들은 우리들처럼 진리를 아는 데까지는 와 있지 못하는 것이야」

 

「그렇겠군요. 진짜와 가짜를 분별하는 데까지 진화하기 전에는 무엇인가 종교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겠습니다. 거짓된 것을 알 때 비로소 참된 것도 알 수 있는 것이군요」

 

「자, 그러면 여태까지 보통사람들의 사망, 장례, 사자의 집을 정화하는 의식도 보아왔는데, 도승이 죽었을 때는 전혀 방식이 다르다네. 그 시체는 안치소에 보존을 하고 그 위에 무덤이 세워지지. 무덤은 금으로 씌우고 속에 보석을 채워 넣으며 그 속에는 값을 매길 수도 없을만큼 엄청난 금불상이나 비단을 함께 넣는다네. 보통 사람들의 경우와는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다고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라네. 그대도 그런 무덤을 승원에서 많이 보았을 터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을 보려면 달라이라마의 무덤을 보아야 한다네」

 

「네, 귀국할 때까지는 꼭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그런데 얼마되진 않지만 티벳에 입국이 허용된 고관들은 어찌하여 아무 것도 아닌 표면적인 것 말고 생명의 진실한 이치를 탐구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 대답은 그대 자신이 가지고 있을 터인데 내게 미룰 것까지도 없지 않은가?」

 

나는 아무 말도 안했지만 정말 대사가 말씀하시는 대로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원래 그런 것은 묻는 것이 덧없는 일이었다. 그 까닭은 나에게는 자명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들이 가짜에 젖어 있어 참 실재(實在)에 대하여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겉에서 살고 있는 자는 겉에 있는 사물밖에는 보지를 못한다. 삶의 진실을 파악하지 못한 그들이 가는 곳은 바로 인류의 비극뿐이다.

 

우리는 잠시 침묵에 잠겨 있었다. 나는 나대로, 대사는 또 대사대로의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두 사람의 생각이 같은 차원에 있었다고 여겨지는 것은 대사가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아들아 그대는 모레는 출발하여야 한다. 내일 차비를 하고 어려운 여행을 대비하여 쉬어야 해. 그대의 친구인 대사가 그대를 부르고 있는 것을 난 느낀다」

 

「그건 저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제가 지금 이곳에서 떠날 수가 있겠습니까?」

 

「아들아, 그런 헤어짐도 또한 우리들이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대는 자기가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곳에 머물고 싶다고 바라는 때가 간혹 있겠지만, 그러나 그대를 다른 곳에서도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대는 그대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고 또 그렇게 하는 것이 그대의 기쁨이었을 것이다」

 

「네 그렇습니다. 그대로 머물고 싶은 곳도 많이 있었지만 영의 힘은 육보다 강하여 그 때문에 저는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차례차례 옮겨 갔었지요」

 

* * *

 

이 책을 왜 조금 더 일찍 집필하지 않았을까 하고 스스로 의아해 하는 일이 가끔있다. 나는 처음 “당신이 쓸 수 있는 보다 높은 힘”을 서술한 뒤로 계속하여 “나는 생명이다” “스스로 고쳐라” “영유(靈癒)와 심유(心癒)” “나의 것은 그대의 것(2部作)” “이완법과 부활법” “심신의 신유-주는 다시 말씀하신다” “생명은 나날이 새롭다”의 순으로 썼으며, 이제 이 책 “히말라야를 넘어서”를 쓰고 있는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쓴 책들에는 모두 일관된 무엇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책들은 나로서는 별다르게 어떤 계획을 세우지 않았는데 나오게 된 것이며, 그러면서도 책마다가 서로 연관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직도 더 말해야 할 것이 있고, 그것이 이 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이 나오면 나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리고 또 신이 바라는 일이라면 이 책과 같은 것을 다시 쓸 작정이다. 린포체 대사도 이렇게 말씀하실 것 같다. -「그렇다. 아들아, 그대는 이 물질계에서 살아 있는 한 책 쓰기를 계속하게 되리라」

 

출발의 아침이 왔다. 린포체 대사에게 잠시의 이별을 고했다. 대사의 표정으로 그의 나에 대한 사랑을 눈으로 보는 듯 했다. 대사도 또 나의 모습에서 같은 느낌을 받으셨을 것임이 틀림이 없다.

 

이제 대사에게서 떨어져 승원의 계단을 내려가 나는 계곡으로 향했다. 자주 뒤돌아 보면 대사는 여전히 서 있던 자리에 서 계셨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스승이시여! 모두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벗으로서의 상대방에게 구하는 것-사랑, 동정, 이해, 친절, 용서-을 당신은 모두 갖추고 계십니다」

 

언젠가 나는 대사에게 「저 때문에 곤란을 당하신 일이 분명히 여러 번 있었을 터인데요」하고 말씀 드린 일이 있다. 그 때 대사는 이렇게 대답하셨다.「아니, 그런 일은 없어. 육(肉)은 약하지만 영(靈)은 강한것이야. 그대가 다른 사람에게 너그러운 것은 그대 자신의 그런 약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힐러(심령치료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야. 그대는 남을 탓하거나 책망하거나 심판해서는 안되네. 우리가 남들 속에 발견하는 것은 자기 자신속에도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것들이라네」

 

대사의 말씀을 나는 잊은 적이 없다. 이 말씀으로 나는 이분의 위대함을 알았던 것이다.

 

계곡에 내려섰을 때는 승원이 거의 시계에서 사라져 있었다. 외로운 정감이 사무쳐왔다. 나는 오크 계곡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다정한 나의 벗이요 스승인 그의 생각을 떠올렸다. 그도 틀림없이 흥미 있는 이야기를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린마톤을 뒤로 하여 소로를 더듬어 고츠아라는 곳에 닿았다. 린마톤에서 약 30킬로미터 되는 곳이고 거기에 산막이 있어 하룻밤을 보냈다. 길은 형편없고 산의 눈이 녹아내려 강이 범람하고 있었으며, 마치 미친듯이 소용돌이치며 계곡을 흘러간다. 우리는 강가로 나가는데 매우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산 허리는 가파르기 이를데 없고 깎아세운 듯이 내리치는 벼랑도 여러군데 있었으며 전체의 행정(行程)이 험하기 짝이 없었다.

 

홍수로 불어오른 강줄기를 따라 겨우 돌멩이 투성이의 소로에 이르렀다. 그러나 군데군데 강물이 덮치고 있어 위험하다. 강 위에는 여기저기 야생의 장미와 그 밖의 꽃들이 한창 피어나고 있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이루고 있었다.

 

그때까지 나는 여러 번 스냅사진을 찍어왔지만 사진 찍기에도 이젠 지쳐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경치가 너무 많고 또 날이 가면서 여러모로 촬영 대상을 딱히 결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이 앞에는 더 아름다운 풍경이 있을 것이야」하고 혼잣말을 하게 됐다. 사람은 수확이 너무 많이 되는 때는 그렇게 되는 법이다. 산 허리에 라마승의 암자가 몇 채 보였다. 나는 린포체 대사가 말씀하신 것을 상기했다.

 

「은둔 하는 것으로 진리가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암자들에는 아랑곳 없이 앞으로 앞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이따금 잠시 발길을 돌려 그 암자들을 한번 들여다 보고 싶은 생각이 나기도 했지만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대로 전진했다. 얼마 안있어 다시 오르막의 산길을 올라가기 시작했지만 줄곧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는 길이어서 지루한 여행이 되고 말았다.

 

이윽고 전망이 확 트인 곳으로 나왔다. 수목 사이에서 평원이 바라보였다. 평원은 우거진 풀로 뒤덮여 푸르르고 수백 마리의 야크가 무리를 지어 풀을 뜯어 먹고 있었다. 야생의 꽃들이 현란하게 피어나 평원의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었다. 그 아름다움을 필름에 담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그것은 불가능이었다. 물론 몇 장 사진을 찍기는 했지만 필름에 담긴 것으로는 도저히 그 풍경의 맛이 나오지 않으며, 다만 지금도 나는 마음 속에서만 생생하게 그 한없는 아름다움을 되새길 수 있을 뿐이다.

 

잠시 지나 우리는 다시 삭막한 풍경 속으로 들어섰다. 참으로 삭막하다고 밖에는 할 수 없는 풍경, 조금 전과는 너무나 대조가 심해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길이라는 것부터가 그랬다. 폭이 겨우 1미터도 못되며 그것이 산허리를 누비면서 끝없는 계곡의 윤곽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 계곡 속에서는 강이 울부짖고 있다. 때때로 한적한 들판이 나오고 들판에는 어김없이 야생의 꽃들이 피어 또 많은 야크들이 풀을 뜯고 있었다. 삭막하기 짝이 없는 풍경과 말할 수 없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경관이 엇바뀌면서 이윽고 우리가 하룻밤을 보내게 되어 있는 산막이 강 건너에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저 산막에서라면 색색가지의 야생꽃들이 융단처럼 깔린 아름다운 골짜기의 들판이 좀 더 또렷이 보일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강에 걸린 외나무 다리에 이르렀다. 조심조심 그 외나무 다리를 건넜다. 그 날 걸은 길은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었지만 대부분이 오르막길이어서 산막에 닿았을 때는 상당한 피로를 느끼는 상태였다.

 

즐거운 저녁식사-하루의 여정을 마친 뒤에는 언제나 식사가 가장 큰 즐거움을 준다-뒤에 이제는 아예 버릇이 된 듯 하인이 아코디온으로 몇 곡의 노래를 켜주었다.

 

잠자리에 들자 이 짧은 여행 중에 나에게 닥쳐온 여러가지 일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삼스럽게 나는 ‘꿈이 아닐까’하고 몸을 꼬집어 보고 싶을 정도였다. 대체 그 모든 일들이 정말로 내 눈 앞에서 일어났을까?

 

그 몇주 동안에 내가 보고 들은 일들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한권의 책이 될 만하다. 그러나 나의 저서에서 무엇인가 진리를 공부해보려는 독자들에게는 별로 큰 가치가 없을 것이다. 내가 보고 들은 견문기 이상의 것을 찾아내려는 독자들은 생명과 그것이 의미하는 것에 대하여 보다 깊이 알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티벳 여행을 통하여 나는 많은 기도 깃발을 보았다. 위험한 지점에는 반드시 기도 깃발이 세워져 있다. 여행자가 그 위험한 길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여행자에게 산사태가 덮치지 않게 기도하는 깃발이었다. 정말 이 땅의 사람들은 착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기도 깃발을 무시하거나 심지어는 비웃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었다. 그것은 그 위험한 길을 지나는 모든 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하나하나 담겨져 있음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날은 프하리존까지 갔다. 계곡을 나서자 우리는 전날 얼핏 엿볼 수 있었던 광막한 몇 개의 목초지들을 거쳤다.

 

아름답고 비옥한 계곡이다. 수많은 야크 떼가 야생꽃 무리속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거기에는 또 산들을 넘어 인도까지 양모를 운반하는 다른 야크의 대열도 있었다.

 

인도라고 하면 그 지점에서는 마치 수만리나 떨어진 완전한 딴 세상처럼 여겨질 수 밖에 없는 곳이었다. 아득히 저멀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그리고 또 가장 더럽다고 소문난 프하리가 보였다.

 

프하리는 해발 5천미터가 넘는다. 우리는 겨우 골짜기 끝에 있는 프하리의 변두리에서 오두막집을 하나 찾아내어 거기서 다시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언제나처럼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하인은 아코디온을 켰다. 다음날 아침 별 일 없이 아침식사를 일찍 마치고 출발했다.

 

이제 우리는 프하리에 들어서는 것이다. 이 거리를 대체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지? 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푸른 목장이고 야생꽃들이 그 푸른 화폭을 채색하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챰비 계곡보다 더 곱기까지 했다. 야크, 티벳양, 산양을 비롯하여 온갖 동물들이 풀을 뜯고 온갖 종류의 새가 날아다니며 우리들을 환영하는 것처럼 지저귄다. 여태까지 본 적도 없는 동물들이 몇가지 있었다. 그것들은 대개가 들토끼류이고 땅 밑에 굴을 파고 산다.

 

그런데 이 아름답고 드넓은 경관 속에 자리한 프하리라는 거리는 ‘더러움’이라는 명예롭지 못한 얼룩이 져있다. 오랜 세월 먼지 한 번 치워진 일이 없고 사람들은 그저 쓰레기나 먼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마구 집 밖으로 내던지고 만다. 그것이 해마다 서리나 눈을 맞아 쌓이고 또 쌓여 이제는 사람들이 사는 집들 지붕 꼭대기까지 보이지 않을 정도의 높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청결이나 정돈 같은 것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는 듯하다.

 

사람들은 모두가 그저 행길 위에서 쭈그리고 앉아 남자도 여자도 아이들도 아무 스스럼없이 배설을 한다. 설마, 저렇게까지…… 내 자신의 눈을 의심할 정도이다. 또 그 곳 사람들은 결코 몸을 씻는 일이 없다. 씻는 것이 아니라 다만 한 가지 썩은 야크 버터로 몸을 문지르는 것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기름기는 그대로 그들이 입은 옷에 깊이 배어 있는 것이다.

 

내가 프하리의 거리를 기꺼이 떠나간 것은 누구에게도 이해가 갈 것이다. 프하리를 나서자 길은 다시 오크 계곡으로 향하게 되었다. 나는 다시 신선한 흥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카린퐁에서 나를 맞아줄 그이, 나 자신보다도 더 나를 잘 알고 있는 그 대사를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나는 정말 놀라운 스승과 벗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초자연적인 스승이나 벗이 아니라 자연의 스승이요 벗이었다.

 

린포체 대사 말씀처럼 초자연적인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초자연적인 인물이란, 사람에는 자연 초자연 두 가지가 있다고 믿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지만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초자연이라 보이는 것도 속속들이 이해하면 완전히 자연인 것이다. 이것을 나는 이미 배웠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벗과 스승을 만날 수 있었던 이 땅을 떠나기 싫은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되며 또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나는 보다 할일이 있는 세계로 돌아가야만 한다고 스승들도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 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위해 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나는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대사들의 깊고 깊은 예지는 그야말로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다. 예수의 말씀이 생각난다.「나와 우리들을 창조하신 이를 믿어라」

 

모래나 흙 정도가 아니라 돌멩이가 날려서 얼굴에 정면으로 부딪힐 정도로 사나운 바람, 티벳에서도 가장 바람이 사나운 고개를 몇 개씩 넘으면서 우리는 오크 계곡으로 넘어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정말 바람은 무섭게 몰아치고 있었다. 참으로 평온한 날씨가 홀연히 일렁이면서 무서운 소용돌이 바람이 되고 그리고는 다시 홀연히 그 소용돌이 속에서 말할 수 없는 정적이 나타난다. 이 얼마나 놀라운 대조일까?

 

쵸모리하리의 얼어붙은 대기로부터 얼음 같은 돌풍이 닥쳐왔다. 얼굴이 얼어붙는 느낌이다. 손가락은 차츰 감각을 잃어간다.

 

「이래도 한 여름이란 말이지」나는 하인에게 말했다.

 

「해가 뜨면 또 따뜻해진다구요」하인의 대답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얼어죽겠지. 아니면 투모라도 해야 하겠군」

 

이날의 쵸모리하리는 그야말로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원래가 아름답기 그지없는 쵸모리하리, 그것이 이날은 더더욱 놀라왔다. 까마귀들이 이리저리 날으는 하늘 저쪽, 20 킬로미터는 족히 떨어져 있는데도 방금이라도 머리 위로 덮쳐들 것 같은 봉우리이다.

 

우리는 길을 바른쪽으로 꺾었다. 오크 계곡으로 빠지는 고개 정점은 겨우 수십킬로미터 아래에 있다. 이 길은 어느 조그만 호수를 지나간다. 호수에는 백설을 인 쵸모리하리가 뚜렷이 모습을 비추고 있다. 그 앞에는 우리들이 건너기를 기다리고 있는 강이 있다. 강 저편에 조그만 산맥이 쵸모리하리의 허리 아래를 감추고 있다. 올려다보면 쵸모리하리의 장엄한 정상은 만년설이 덮여 있다. 이날의 쵸모리하리는 그야말로 그 장엄한 아름다움의 극치를 다 보여주고 있었다.

 

해는 떠올랐지만 주황색은 아직 떠나지 않고 눈에 반사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쵸모리하리가 방금이라도 우리들 머리로 덮쳐버릴 것 같은 착각을 낳는다. 외계로부터 완전히 감추어져 있는 이 유래없는 경관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우두커니 서서 송두리째 빨려들 듯 바라보고 있었다.

 

해발 5천미터가 넘는 산길치고는 걷기가 수월했다. 얼마 안가서 눈에 익은 아름다운 경치가 저쪽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파른 산허리에 숨바꼭질하듯 오크 계곡의 승원이 서 있었던 것이다.

 

「대체 어떻게 해서 저런 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까? 아무튼 승원의 승려들은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쵸모리하리의 경관을 볼 수 있으니…… 저기에 서면 자연의 온갖 모습을 다 볼 수 있을 것이야」

 

이런 말이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왔다.

 

뒤따른 하인에게 말을 흘리며 문득 머리를 드니 저 앞에 나의 그 다정한 대사가 서 있지 않은가!

 

대사가 나를 보고 한 첫 말은 따뜻한 사랑 그것이었다. 어떤 벗이 이런 우정을 나누어 줄 수 있을까!

 

「나는 얀탄, 건사카 그리고 다코우까지 줄곧 자네를 따라 갔었다네. 자네는 다추안 대사, 머라파 대사, 특히 토운라 대사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지.」

 

「그런 것을 어떻게 아시지요?」

 

「이 사람아, 나는 그 현장에 있었다네」

 

대사는 아스트랄체로 움직인다는 것을, 마치 내가 숨쉬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을 잊고 있는 것처럼 깜빡했던 것이다.

 

「여기는 아름다운 곳이야. 우린 여기서라면 많은 일을 할 수가 있지. 이곳의 추위도 자네가 볼 수 있는 해가 뜨고 질 산의 경치가 다 보상해 줄 것이야. 그렇지, 내가 잊었군. 자네는 벌써 투모를 얼마간 배웠으니 추운 것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겠지」

 

미소를 머금으며 대사는 말했다.

 

나는 웃으면서,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주 멋진 실험 조건이 될테니까요」

 

하고 대답했다.

 

「여기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자네에게 영감(靈感), 특히 가장 높은 차원의 영인(靈人)들로부터 보내지는 영감을 자네가 더 잘 받을 수 있게 되도록 숙달시키는 일이라네. 그러는데는 완전히 격리된, 높고 한적한 여기가 가장 알맞아」

 

「텔라파시는 전보다 더 숙련됐다고 생각합니다」

 

「그야 그렇겠지. 그러나 이쪽은 좀 더 어려워. 이것은 영통(靈通)이니까. 이 가르침을 받는 것은 텔레파시보다 완전하고 더 확실한 방법이지. 까닭은 이것이 보다 직접 접촉하는 길이니까 자네는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고정된 상념을 모조리 떨어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가르쳐지는 것들은 자아(自我)의 마음으로 물들이고 말게 되지.

 

그렇다고해서 자네의 두뇌를 완전히 지배할 수는 없는 일이야. 자네의 뇌를 쓰려면 자네를 자네의 육체에서 내보내야 되겠지. 그러려면 굉장한 영력을 써야 하니 그것은 온당치 못해. 그런 일은 우리가 자네에게 하는 것은 옳지가 않아. 자네의 마음과 몸과 조직은 우리에게도 아주 귀중한 것이어서 그것을 손상시키면 안되기 때문이야」

 

「그렇게 말씀하시니 뭔가 좀 거북하군요」

 

나는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아니 그렇지 않아, 자네는 아주 희귀한 일종의 영매 능력을 지니고 있어. 자네는 그런 별 밑에서 태어났고 바로 이 일을 위해 자네는 태어난 것이야」

 

「전에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렇겠지. 앞으로도 들을 것일세」

 

대사는 진지한 어조로 다시 덧붙였다.

 

「자네가 얼마만큼 영력을 감당할 수 있는지 우리는 보고 싶은 것이야. 만약 자네가 성공하면 자네는 주님(그리스도) 스스로 쓰시게 될 것이야」

 

「아니, 그런 일이…… 내게는 그런 값어치는 없어요」

 

「없을지도 모르지. 그러나 자네는 선택된 것이야」

 

「그게 정말이라면 저는 어떤 시련도 달게 받겠습니다」

 

이야기를 주고 받다보니 우리는 벌써 승원에 닿아 있었다.

 

「이런 일들을 모두 기록하여 책으로 발표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황당무계하다고 누구도 믿어주는 사람도 없겠지요.」

 

「무지한 자는 믿지 않겠지. 광신자들도 믿지 않겠지. 그러나 그것은 그런 사람들에게는 소용이 없다네. 그것은 형이하인 물질계를 초월한 자. 그것을 보고 듣도록 이 땅위에서 선택된 자들만을 위한 것이지. 앞으로 위에서 가르쳐지는 것들은 모두 기록하고 한마디도 흘려서는 안되지」

 

대사의 이 중대한 뜻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대사의 이 말이 없었다면 “심신의 신유-주는 다시 말씀하신다”(저자의 또다른 저서)는 쓰여질 수 없었을 것이다.

 

알고보니 우리는 승원으로의 가파른 경사 길을 어느 틈엔가 다 올라가 있었다. 뒤돌아보니 굉장한 거리여서 나는 놀라버렸다.

 

「아니, 벌써 이렇게 높은 곳까지 왔군요」

 

나의 말을 듣고 대사는 소리없이 웃음을 지여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