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 베인/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티벳의 성자를 찾아서- 제10장

기른장 2021. 5. 10. 20:05

꼬박 앉아서 밤을 세웠지만, 별로 피로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몸이 훨씬 상쾌하고 가벼웠다. 그도 그럴 것이 거룩한 빛과 맑은 기쁨에 싸인 시간들을 가졌으니까. 점심 식사 후에 잠시 쉬기로 하고 편안히 누웠다. 린시라 은자님 생각이 났다. 눈을 감았다. 끝없이 뻗어 있는 푸른 숲에 뒤덮인 산허리가 보인다. 산기슭 일대는 키가 훨씬 큰 민들레들이 어떤 것은 연분홍, 어떤 것은 짙은 주홍색으로 한창 꽃을 피워 어우러져 있다. 산허리의 그 푸른 바탕을 도려내고 끼워 놓은 그림 처럼 선명한 호수가 있다. 호수 한 가운데에 조그만 섬이 있고, 섬 위에는 관목과 화초로 에워싸인,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집이 한 채 서있다. 이런 경치를 나는 아직 상상도 못했었다. 집이 서 있는 푸른 잔디 둘레에는 또한 푸른 야자 나무들이 서 있다. 대체 이 아름다운 곳이 누구의 것일까? 화초 사이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 린시라 은자님이 보였다.

 

그 때 나의 곁에서 인기척이 났다. 눈을 떠 보니 옆에 나의 스승이 서 있었다.

 

아무래도 제가 먼 여행을 한 것 같군요. 주위에 나무와 화초가 어우러진 그 호수 한 가운데의 섬에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집이 보였어요. 대체 누가 살고 있을까 하고 눈 여겨 보았더니 화초 손질을 하고 계시는 은자님 모습이 보였습니다.」

 

나는 그이에게 말했다.

 

그이의 대답은 이러했다.

 

「자네는 분명히 은자님 계시는 곳을 갔다 온 것이야. 자네가 본 그곳이 은자님이 살고 계시는 곳이지. 그것은 저 멀리 참포강을 건너 산맥 속 깊이 있는 지점이라네. 티벳 속에서도 아직 인적이 닿지 않은 비경이지. 은자님은 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발견하셨고 거기 사시면서 손수 모든 일을 다 하고 계시지. 자네는 틀림없이 유체여행을 한 셈이야. 그것은 또 은자님이 잘 하시는 일이라네. 은자님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를 해주지.

 

은자님께서는 훨씬 전에 ? 옛날이라고 해도 되겠지- 간덴 승원의 승원장을 지내셨고 거기서 철학과 마술을 가르치셨다네. 그 전부터 그 분은 유체 이탈의 연습을 거듭하셨는데 그 무렵에 자네가 본 그 아름다운 호수를 발견하셨고, 실제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여행을 하셨지. 상당히 오랜 기간이 지난 다음 돌아오셔서, “겨우 내가 살 곳을 찾아냈다”고 하시며 그곳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하셨는데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러나 거기는 끊임없는 폭풍이 불어대는 깊은 골짜기이고 아직은 그 속으로 들어가 본 사람이 아무도 없을 터인데요”하고 어리둥절했다네. 그러나 은자님께서는

 

“아니야, 나는 길을 하나 찾았어. 그래서 거기에 암자를 세울 것이야. 거기에는 육체 인간이 발을 들여 놓을 수가 없고, 유체 이탈에 숙달한 사람밖에는 들어가지 못할 것이야. 나에게는 꼭 맞는 곳이지. 나는 이제야 유체여행술을 완전히 닦을 수 있게 되었지” 하고 대답하셨다네. 따라서 그 골짜기로 들어가는 비밀 통로는 은자님 자신만이 알 뿐이고, 그 밖에 아무도 육체의 인간은 거기에 들어가 보지를 못했다네」

 

「그런가요, 은자님은 어젯밤 모임에서 제가 그분 곁에서 잠시 머무르게 될 것이라고 하시던데요?」

 

「그랬지, 자네는 정말로 우주의 존재들과 대화하는 방법을 익히게 될 것이야. 나로서는 오직 자네와 함께 그곳에 갈 수 있는 은혜를 받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라네」

 

그런데 다음날 아침의 일이었다. 나의 침대 옆 탁자 위에 한장의 두터운 양피지(羊皮紙)가 놓여 있었다. 거기에는 은자님의 암자에 이르는 길이 자세히 적혀 있고, 또한 내가 가지고 가야 할 것도 적혀 있었다. 나의 스승되는 분의 방 탁자 위에도 같은 내용의 편지가 놓여 있었다. 그 양피지는 어떤 신비로운 방법으로 밤 사이에 여기에 보내진 것이라고 했다.

 

「이것은 또 유별나게 신비적인 일이로군요」하고 내가 말하자, 나의 스승은,

 

「물질로 된 물건을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그 방법을 안 사람에게는 아주 쉬운 일이라네. 어느만큼 영능이 개발되면 물질 세계에서 옮겨간 높은 요가 행자들과 접촉할 수가 있지. 그들에게는 물체 이동술이 어렵지 않은 일이고 사실 티벳에서는 요가행자들이 그런 실험을 해 보이는 일도 흔히 있다네」

 

「그럼 은자님은 이 편지를 적으셔서 그런 요가 행자의 영들에게 그것을 여기까지 보내도록 부탁할 수도 있겠군요」

 

「그렇고말고. 그런 것은 아무 것도 아니지. 물질화(物質化)나 비물질화(非物質化)의 방법은 잘 알고 있으니까. 물질이란 원래 육안에 보이게 할 수 있는 어떤 불가시(不可視)의 질료(質料)에 불과하다는 것은 자네도 이미 배우지 않았는가. 모든 것은 마음이야, 물질이란 없는 것이라네. 물질이란 육체 인간이 감각으로 보고 느끼는 어떤 질료에 붙인 하나의 이름일 뿐이고, 어떤 것의 이름은 질료 그것은 아니야. 이름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하나의 관념이 될 뿐이며, 대개의 사람들은 그저 자기의 관념대로 이해할 뿐이지. 은자님은 스스로 요가의 대사이시고, 영으로써 접촉하는 요가행자들과 더불어 사람들이 물질이라고 부르는 갖가지 수준의 파동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어디에서 어디까지든 물건을 끌어 오거나 보내거나 할 수가 있는 것이야.

 

자, 일체의 것은 마음 속의 파동이며, 의식이 그것을 지배하는 요인이니, 은자님은 물질인 질료의 진동수(振動數)를 올려 다른 차원의 파동으로 바꾸고 그 상태를 유지시킬 수가 있지. 그것은 은자님이 물질의 본성을 속속들이 깨달아 모든 고정 관념에서 해탈하셨기 때문이지. 더구나 요가행자들이 은자님과 더불어 협력을 하기 때문에, 가령 양피지에 무엇을 적어가지고 그대로 아무런 내용의 변화없이 파동을 올리고 그 상태를 유지한 채로 에텔층 속을 어느 지점까지 이동시킨 다음 다시 물질화한 것이 지금 자네가 보는 그 편지야. 비물질화, 물질화의 과정과 방법을 알고나면 아무런 신비도 없다네」

 

「과연 그렇군요. 시드니의 벨리씨 댁에서 심령 실험의 모임을 가졌을 때 물품을 원거리에서 끌어오는 실험을 본 일이 있습니다. 그때 원거리에서 이동시켜 온 물건 가운데 제가 지금도 지니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이런 일에 대해서는 오래지않아 은자님과 직접 만났을 때 더 자세한 가르침을 받게 될 것이네. 은자님은 일반적으로 저 위대한 머라레파 대성자와 같은 수준에 계신 분이라고 여겨지고 있다네」

 

「그렇다면 정말 하루라도 빨리 가 뵙고 싶은데 언제가 될까요? 아시다시피 저는 티벳에 머물 기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지요. 정말 세월이 살과 같습니다」

 

「내일 출발하기로 하세」

 

「당신께서 같이 가 주시니 참 마음이 놓입니다. 저 혼자서라면 아무래도 잘 해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더구나 이렇게 미개한 땅에서는 혼자서 먼 길을 간다는 것이 별로 즐거운 것만도 아닐 터이니까요」하고 나는 정직하게 속을 털어 놓았다.

 

「나도 자네와 같이 가는 것이 기쁘다네」하고 스승은 나를 안심시켜 주면서,「너무 긴장하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즐겁게 가도록 해야지. 아무튼 이 여행은 상당히 힘든 것이 될 터이니까. 편한 길이라면 벌써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든 드나들었을 터이지만 정말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고 그렇기 때문에 은자님은 거기를 선택하신 것이라네」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다음날 우리들은 출발했다. 단 둘이서만 가는 길이다. 처음부터 둘만이 길을 떠나기로 한 이유는 도중의 어려움과 또한 둘 이외의 보조자를 데리고 간다 해도 그 가장 거룩한 곳으로 받아들여질 턱이 없었기 때문이다. 식량은 모두 가면서 어떻게든 조달하기로 하고 만사는 하늘에 맡기기로 한 것이다.

 

이른 아침 우리는 건체를 향하여 활기차게 출발했다. 얼어 붙을 것 같은 바람이 쵸모리하리 산꼭대기에서 울부짖으며 쏟아져 내려 온다. 그 산은 아직 구름에 싸여 있다. 우리가 지나가는 땅은 아주 메말라 돌멩이 투성이인데 그래도 야크가 몇 마리씩 여기저기서 먹이를 뒤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대체 먹을 것이 무엇이 있는지 이상했다.

 

나의 스승은 에베레스트 탐험대들이 흔히 지나는 길을 가리키면서,

 

「우리는 건체까지는 통상로를 따라가고, 거기서 왼편으로 꺾어 참포강-그곳 버돈 지방에서는 그 강을 브라마프트라 강이라고 한다-에 닿아 거기서 야크 가죽으로 만든 배를 입수하기로 하지」하고 말했다. 아무래도 나의 스승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저녁 무렵 우리는 드첸이라는 곳에 도착하여 깨끗한 물이 고인 호수로 내려갔다. 그 호수 건너에는 만년설을 이고 있는 웅장한 산맥이 병풍처럼 솟아 있다. 우리 둘은 잔잔한 물 속에 뚜렷이 보이는 물고기들을 한참 들여다 보았다.

 

「이 고요함도 얼마나 갈까?」하고 나는 문득 아슬아슬한 기분이 들었다. 이 나라에서는 더구나 이렇게 깊은 산간에서는 언제 맹렬한 폭풍이 불어 닥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야영 준비를 하고, 저녁밥을 먹고나서 해지는 모습을 보러 나갔다. 호수 수면에 비치는 저녁 노을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완전한 정적 속에서 수면에 산줄기가 모습을 뚜렷이 떨어뜨리고 있다. 그 풍경을 한장 카메라에 담았다. 수면에 비친 것이 진짜 산줄기인지 솟아있는 산줄기가 진짜인지 분간이 잘 안되는 풍경이다.

 

뭔가 화제를 만들어 나의 스승의 말씀을 끌어내려고 나는 이렇게 말을 꺼냈다.

 

「이곳이 미국이라면 1년만 지나면 벌써 관광지로 만들어 놓겠지요」

 

「그렇지, 세상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그저 법률이나 규칙이나 신조나 독단을 만들어내는 객관 세계밖에는 알지를 못하지. 그들은 인공의 세계밖에는 모른단 말이야. 그렇게 인공적인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인공적인 것만 알고 대자연까지도 자기들의 틀에 맞추어 바꾸어 놓으려 한단 말이야. 자기들이 만들어 낸 것에 사로잡혀서 ‘창조되지 않은 것’의 창조성을 잃고 만단 말이야」

 

이렇게 말할 때의 스승의 모습은 이미 린포체 대사의 모습과 흡사했다. 한 마디 한 마디 그 뜻을 내가 옳게 알아 들을 수 있도록 천천히 또박또박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대 생명이 어떤 형태를 취하여 현현하든 대 생명 그것에는 아무 변함이 없다. 이것을 완전히 알았을 때 대 생명의 창화작용(創化作用)이 자네의 내재 실상(內在實相)이 된다. 형태는 이 살아있는 에너지의 현상적 모양일 뿐이다. 꽃잎 하나를 따 보아도 ‘그것’은 거기에 있다. 그리고 또 자네가 손에 쥐는 한 웅큼의 흙에도 그것은 실재한다. 그렇다면 세계는 이미 감옥이 아니다. 왜냐하면 공기가, 하늘이, 그 발랄한 실존을 계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 잘들어보게. 만약 내가 말하는 것이 자네에게 뭔가 가치가 있다면 자네는 그것을 깊은의식상태에서 체험해야 하는 것이야. 그저 예사로운 관념 구조가 아닌 생생히 살아있는 것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네가 자신의 마음에서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 버렸을 때 비로소 그렇게 된다. 더구나 자신의 미망을 깨달았을 때 자동적으로 그것은 이루어진다. 그때 비로소 마음에서 만들어냈던 모든 허구들이 진리는 아니었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우리가 만약 이것을 한낱 지적인 논리로 그치고 만다면 자네는 그것을 체험하지 못할 것이며, 몸 속에서 일어나야 할 변성(變性)을 겪지 못하고 만다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네가 물질에 관하여 마음 속에서 만들어냈던 갖가지 관념이 문제라는 것을 알면, 물질의 견고성(堅固性)을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이나 그것이 의식의 진화에 장애가 된다는 사고방식이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물질이란 ‘드러나지 않는 것’의 나타남임을 깨달았을 때, 자네는 자신을 한정하고 있는 그와 같은 관념의 허구로부터 자네 자신을 해방할 것이다. 그리고 자네에게는 전에는한정하는 것일 뿐이었던, 그러나 실은 한계가 없고 거칠 것이 없는, 우주 전체를 그대로 나의 무대로 하는 대자재를 맛볼 것이다」

 

나의 스승은 여기서 말을 멈추었다. 그것은 나의 마음 속에서 어떤 변화가 저절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잠시후 다시 말을 이었다.

 

「창조하는 생명으로 하여금 노력없이 저절로 생명 본연의 완전 무결한 상태를 나타내 보이는 작용을 가능케 하는 의식 차원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유일 무이의 대생명이 아무런 힘씀도 꾸밈도 없이 완전한 창조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 그것은 자네나 나의 내재 생명과 우주에 편재하는 대생명 사이에는 그 전지 전능 편재인 면에서는 어떠한 분리도 단절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자네는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완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사람이 스스로 멋대로 만들어낸 관념의 허구에서 해탈한 마음을 통하여 ‘절대자’가 거기에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네의 부단한 자각을 통하여서만 알아지는 것이며, 안에서 지금 활발히 작용하고 있는 말없는 자각을 거쳐서만 절대자는 기능하는 것이다.

 

따라서 마음이 멋대로 만들어낸 온갖 허구, 신조, 관념에서 해탈했을 때 시간을 초월한 그 침묵, ‘나’라는 존재의 실상을 깨닫게 되는 그 침묵이 찾아 온다. 이 해탈의 경지에서 창조의 에너지가 평범한 사람들은 미처 엿보지 못하는 어떤 힘, 의식하고 지시하는 어떤 힘에 의하여 방출된다.

 

모든 큰 일, 산업, 미술, 공예, 치병, 연설을 하게 될 때, 해탈의 심경에서 이 대생명의 창조적 지혜와 어울리면 그것은 그대로 천재의 업적이 되고, 그 성과에 사람들은 모두 경탄할 것이다. 이것이 온전한 깨달음 속에 있는 마음을 통하여 내재하는 창조의 힘이 스스로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과정이다. ‘아직 나타나지 않은 것’,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것’, ‘절대의 것’은 마음이 제멋대로 지어 놓은 자기 한정에서 자기를 해방시킨 마음을 통하여 나오는 것이다 」

 

스승은 여기서 다시 말을 끊었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이것을 분명히 깨달아 주기 바란다. ‘어제’와 ‘내일’이라는 것은 인간이 만든 것이며 신이 만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마음 속에서 멋대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 대체 어디에 어제라는 시간이 있는가, 또한 내일이라는 날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그런 것은 사람의 마음 속에만 있는 것임을 이제 알았습니다. 신은 항상 ‘지금’속에 있습니다. ‘어제’는 한낱 기억이 될 뿐이며, ‘내일’은 그저 기억의 투영일 뿐입니다. ‘지금’만이 실재하는 시간입니다.」

 

나도 모르게 힘찬 말이 나왔다.

 

「좋아, 자네는 슬기롭게 깨달았군. 나는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네. 자 이제 우리는 또 전진할 수가 있다」스승도 힘주어 말하면서 미소 지었다.

 

「영원한 현재 속에 사는 것이 해탈이요 자유이다. 왜냐하면 선, 악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과거도 미래도 없는 것이요, 성공도 실패도 없는 것이며, 건강도 불건강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영원의 지금인 있음’ 속에는 그런 대립하는 것들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다만 서로 대립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이것에서 저것으로, 저것에서 이것으로 우왕좌왕하는 마음 속에만 있을 뿐이다」

 

「아아, 세상 사람들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나는 감동을 참지 못하고 외쳤다.

 

「그렇다. 그런 고통스러운 투쟁이 또한 그들에게 보다 큰 짐이 되는 것이다. 아버지인 신의 외아들인 ‘보편자 그리스도’는 온 인류 모든 사람 속에 실존하며 늙음 없고 죽음 없는 것이다. 이것을 자각하고 발견했을 때 영원한 그리스도가 삶의 순간 순간마다 현현하는 것이다」

 

「‘나’를 이해한 그 만큼의 인물로 된다는 말이 있지요」

 

「2천년 전도 지금도 그리스도에는 변함이 없다. “하늘 위, 하늘 아래의 모든 힘이 나에게 주어져 있다”는 말 그대로이지」

 

「이제야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모든 제약, 지옥이나 악마 따위, 그런 것들이 이젠 없어졌어요」또다시 나도 모르게 외쳤다.

 

「그래. 그런 헛된 것들은 ‘참 나’ 아닌 것의 영향에 말려든 마음 속에만 존재한다. 그러나 모든 영향이 없어졌을 때 비로소 우리는 인간을 해방하는 진리를 획득하는 것이다. 그 때 거기에는 이미 의식(儀式)이나 어떤 형식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신앙도 적대감도 없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 속에는 지켜야 하고 따라야 할 형식 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일정한 형식에 따르는 것은 곧 모방이며, 모방은 깨달음이 아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영향에서 자기 자신을 해방하지 않는 한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진리를 발견하지는 못하는 것이다」

 

「바로 그렇습니다. 인간은 선, 악의 지식이라는 나무 열매를 아직도 계속 먹고 있는 것이지요. 인간은 자기가 하는 일의 진상에 눈떠야 비로소 생명의 나무를 굳게 지키게 되겠지요. 생명의 나무만이 인간에게는 구원이니까요」

 

「그렇고말고. 선, 악의 지식이라는 나무는 인간 자신의 마음에서 돋아나지만, 구원의 나무, 곧 생명은 영원한 실재인 신에게서 돋아나와 선, 악에 대하여는 전혀 아는 바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여전히 선, 악을 설하고 지옥이나 악마에 대하여 설교를 계속하고 있으며 그리하여 소경이 소경을 이끄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다. 인간은 ‘한결같이 있는 것’, 곧 신과 자신이 하나임을 자각하고 선과 악, 공포와 신앙, 신과 악마 사이의 싸움의 포로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실재란 저 멀리 어디엔가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실재는 지금 여기 그대로 있는 것이다. 이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평화는 온다. 그 평화란 이 속세가 주는 것 같은 평화는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평화는 전쟁과 모순 갈등에서 나오는 것이며, 영원, 절대의 평화는 신에게서만 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들의 사이는 깨달음을 통하여 행복 그것이 나타날 것이다」

 

스승은 잠시 명상에 잠긴 듯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말을 잇는다.

 

「편견을 지닌 자아로 맺는 인간관계에는 항상 모순이 따른다. 그러나 지기의 미망을 분명히 볼 때 사람은 자기 안의 ‘무한한 것’, ‘사랑하는 것’을 발견한다. 그 때 그의 애정은 집착에서 풀려나고 탐욕에서 벗어나 그것이 나타나는 모습은 영광 찬란한 모습일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의 이웃이 실은 자기 자신밖에 아무 것도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이들 가운데 아주 작은 자에 대하여 너희가 하는 일은 그것이 무엇이든 나-신-에 대하여 하는 일이다”라는 말은 진리다」

 

침묵이 우리 둘을 에워쌌다. 그 침묵 속에서 안으로부터의 변성의 움직임이 잔잔히 일어나고 있었다. 이미 나는 나의 스승과 처음에 만났을 때의 내가 아니라 실상(實相)의 개현을 막고 있었던 것이 씻겨 내려간다. 지금 이 순간에 나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야말로 틀림없는 그 변성인 것이다. 그 기쁨… 무엇에 견줄 수 있을까!

 

이미 여기저기 하고 불안 속에서 찾아다닐 것이 없다. 어렸을 때부터 나를 짓눌러온 짐에서 이제야말로 해방된 것이다.

 

그날 밤 나는 해탈의 단잠을 즐겼다. 참으로 해탈한 자의 단잠을 사람들은 상상할 수 있을까? 그것은 체험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경지이다.

 

아직도 갈 길은 까마득 했기에 우리는 해뜨기 전에 일어났다. 태양이 떠오를 무렵에는 이미 그 빛쪽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항상 해뜸과 해짐의 전경에는 말할 수 없는 감각을 맛보아 왔지만, 그 날 아침은 더더구나 모든 것이 아름답고 평화에 가득 차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하늘은 끝없이 맑고 푸르고 부드러운 구름이 한 장의 모포처럼 퍼져 골짜기를 덮고 있다. 춥다. 언제 어느 때 바람이 일고 폭풍이 될 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산들바람도 없다.

 

그 날은 둘이가 라마승의 법복을 두르고 있었다. 많은 라마승들이 왕래하고 있었다. 우리는 서민들이 만날 때마다 경의를 표하도록 되어 있는 높은 지위의 라마승들이 입는, 별나기는 하지만 티벳 사람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법복을 입었기 때문에 남들의 시선을 그다지 받지 않아도 되었다.

 

「자네, 오늘의 여정을 두배로 잡을 수 있겠는가?」하고 스승이 나에게 물었다.

 

「네, 있고 말고요. 이젠 아주 기력이 강해진 느낌이 드니까요」하고 대답했다. 사실 나는 그 사이에 군살이 모두 빠져 조금 마르기는 했지만 근육은 강철처럼 강인해져 있었다.

 

「과연, 무척 정력이 세어진 것을 나도 느낀다네」

 

「그렇겠지요, 이렇게 줄곧 산을 넘고 고개를 넘노라면 약해질 수야 없지요. 덕분에 이젠 아주 전문가가 되었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거의 모든 짐을 오크 계곡에 놓고 왔기 때문에 가벼운 몸으로 여행을 계속했다. 꼭 필요한 것만 바랑에 넣어 짊어지고 걸었다. 수백마리의 야크와 산양이 아침 먹이를 뜯고 있는 호반을 따라 가다가 호수가 끝나는 곳에서 또 하나의 강줄기에 이르렀다. 강 건너 퍼진 골짜기다. 거기에는 시커먼 천막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아츠리카의 사나운 원주민들 비슷한 이곳 유목민의 천막이다. 주위에는 야크와 양들이 무리지어 있었다.

 

우리가 계곡 평지에 내려가자 유목민들이 몰려와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나의 스승은 그들을 골고루 축복해 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관습대로 그들과 식사를 함께했다. 촌락이나 유목민 무리와 만날 때 마다 도처에서 ‘환영’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성가신 대접을 받았다. 나의 스승과 같은 분이 함께 같은 천막에서 잠이라도 자 준다면 거기가 그대로 신성한 곳이 되는 그런 풍습이었던 것이다.

 

「이 유목민들은 온 티벳을 방랑하며 야크의 털로 짠, 보다시피 이렇게 큰 검은 천막을 치고 산다네 그들의 살색이 검은 것은 그들이 불을 땔 때 나오는 연기 때문이고, 땔감은 대개 야크의 똥과 마른 풀이고 그것을 천막 안에서 땐다네」

 

「텐트에 불이 붙지는 않는가요?」

 

「아니 천막 한 가운데서 불을 때니까. 그들은 불을 피워놓고 그 둘레에서 잠을 자는 거야」

 

스승의 말로는 우리의 앞길이 아직도 멀어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유목민들의 우두머리인 추장이 뭔가 모르지만 투명한 마실 것-나에게는 물처럼 보였다-을 나에게 내놓는 것이었다. 나는 무심코 그것을 받아 마셨다. 갑자기 온 몸에 불이 붙는 것 같았다.

 

그것은 서숙과 보리로 만든 술이었다. 손가락 끝까지 활활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나는 스승에게 말했다.「우리도 이것을 조금 가지고 가면 좋을 것 같은데요」

 

「그럴 필요 없어. 앞으로 이런 것은 얼마든지 있다네. 더구나 자네가 아직 이런 술에는 익숙하지 않은데 가지고 간다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닐 것이야」

 

난생 처음 한모금 맛본 술이었지만 영국의 위스키보다 독한 것 같았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나서 혼자 웃었다. 보통 위스키는 물을 섞어서 마시는데, 아버지는 누구든 위스키를 권할 때마다 함께 물을 내놓으며 「물은 위스키 속에 이미 들어있지」하고 웃기가 일쑤였다.

 

의사에게 진찰을 받으러 간 어떤 스코틀랜드 사람의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진찰이 끝나고 의사가 말하기를,「맥퍼슨씨, 위스키는 이제 끊어야 하겠군」맥퍼슨이 일어나 방을 나가려 하자 의사가 그를 불러세우고,「맥퍼슨씨 당신 뭔가 잊은 것이 없소?」했다. 맥퍼슨이 대답하기를「아니오 잊은 것이 없을 텐데요?」「아니 있지요, 나의 충고 대금 3기니어의 지불을 잊었지요」「아 그거요, 뭐 나는 당신의 충고는 받아들이지 않았으니까요」하고 맥퍼슨씨는 커다란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는 이야기이다.

 

아무튼 그 검은 천막들은 춘하추동 줄곧 유목민들의 유일한 주택이다. 그들의 의복은 야크의 털과 양털을 손으로 짠 것이며, 어떤 사람은 털이 있는 대로의 양가죽 한장을 몸에 걸치고 있기도 했다. 그런데 그 의복에는 온통 쇠기름이 더덕더덕 두껍게 발라져 있고, 새 옷을 입게 되면 먼저 썩은 야크 버터를 잔득 바르며 그것을 또 온몸에 바른다는 것이다. 마시는 물 이외에는 어떤 때에도 물을 쓰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의 옷이나 살갗이 어떨까는 독자들도 상상이 가능할 것이다.

 

그들이 먹는 고기는, 보통은 남아프리카에서 흔히 보는 말린 고기이다. 날고기를 햇빛에 말린 것이다. 천막 속에는 그 말린 고기가 즐비하게 매달려 있었다.

유목민들은 콩이나 옥수수, 보리를 재배하며 야크, 산양, 면양, 노새, 당나귀의 큰 무리를 거느리고, 대개 몇마리의 털이 많은 티벳조랑말도 기르고 있으며, 그들이 무리지어 사는 광경은 정말 재미있는 한 폭의 그림 같다.

 

다음날 우리는 둘레가 깊은 산인 건체의 부락에 닿았다. 부락 저 편에는 역시 큰 산이고, 그 산허리에는 주변을 높은 담으로 에워싼 승원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승원 바른쪽 꼭대기에는 한층 높은 벽인데, 매년 한 번씩 몇 시간 동안 거기에 신성한 융단이 내 걸린다. 그 융단을 만드는데는 10년이상이나 걸린다고 한다. 가로 세로가 거의 30미터 쯤이나 되고 한 가운데는 거대한 불상이 수놓아져 있다. 나의 스승을 이 건체 승원의 승원장이 잘 알고 있어서 우리가 하룻밤 머무는 것을 기꺼이 허락해 주었다. 그 승원은 다른 티벳 승원과 흡사하기는 하지만 다만 한가지, 승원 한 가운데에 지·수·화·풍·에텔의 오대(五大)가 그려져 있는 거대한 촐텐 즉 묘(廟)가 있는 점만이 다르다. 묘의 높이는 20미터도 넘는 것 같다. 그 촐텐의 꼭대기 부분은 금박으로 씌워져 있었다. 새벽 해뜨는 시각에 승원의 라마승들이 ‘옴 마니 받메 흠’을 일제히 외우기 시작하고, 우리는 여로의 안전을 빌어주는 축복을 그들에게서 받았다. 이 세계의 문명을 잠시 완전히 떠난 우리의 특별한 여행이 실은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바른쪽으로 가면 라사에 이르고 왼쪽 길은 시가체에 이른다. 그 둘은 다 교역로이다. 우리가 가려는 길은 해발 약 6천미터인 융고개보다 더 올라가는 길이며 그 일대는 거의가 무인지경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더 많은 축복을 받았고, 또한 그들은 기도 깃발까지 하나씩 주었다. 골짜기를 내려가면서도 계속 라마승들의 제창소리, 거대한 징의 깊은 울림, 나팔 소리가 한참을 뒤따라 마치 2천명도 넘는 그 라마승들의 간곡한 작별인사를 받는 느낌이었다.

 

한낮이 되어서야 융 고개를 넘었는데, 고개 위는 눈섞인 폭풍이 광란하고 있었다. 눈의 깊이가 2미터도 넘는 곳이 있었으며, 어떤 지점에서는 가슴에까지 이르는 눈 속을 헤치고 나가야 했다. 그런 가혹한 고갯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덧없이 목숨을 잃는 것도 차라리 당연했다.

 

겨우 고개를 넘어서 야크피오라는 조그만 마을에 닿았다. 그 마을에서 가장 깨끗하다는 농가로 안내되어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집안은 2층으로 되어 있는데, 문을 들어서면 집안이 그대로 흙바닥이다. 그 흙바닥 아래층은 당나귀, 닭 따위 가축 우리인 것이다. 윗층이 사람이 사는 곳이고 우리도 거기로 안내되었다. 한 가운데 난로가 하나 있었다. 아무튼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묘한 체험이었다. 남자도 여자도 모두가 그 이층 마루 바닥에 그대로 뒹굴어 자며, 당나귀는 밤새도록 울고, 야크는 야크대로 밤새 되새김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층 마루 바닥 한 구석에 네모난 구멍이 하나 뚫려 있고, 거기에 이집 식구들이 쭈그리고 앉아 용변을 보는 것이다. 아래로 떨어진 오물은 그대로 야크나 당나귀들이 밟고 다닌다. 그 냄새와 소리를 막아줄 코마개와 귀마개가 얼마나 아쉽던지, 앞으로는 차라리 밖에서 자련다고 나는 스승에게 말했다. 부락 사람들 이외에는 이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기 때문에, 다음 날 다시 길을 떠나게 되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도중에 여러 개의 물줄기를 건넜다. 모두가 눈과 얼음이 뒤섞인 물줄기이고 곧바로 참포 강을 향하여 돌진해 가는 급류들이었다.

 

우리는 얕은 곳을 찾아 그 물줄기들을 건너서 건넜다. 그 무렵에는 나는 이미 습기와 추위에 익숙해져 있었다. 이 땅에서 습기와 추위는 당연한 것이어서 가장 끈질기고 굳센 사람만이 살아 남을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린시라 대성자를 만나 그이와 함께 지내게 된다는 기대가 나에게는 밝은 용기를 주며 앞으로 떠밀어 주는 것이었다. 다음 날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거룩하며 거대한 참포강, 일명 대브라마프트라 강에 닿았다. 오래 전부터 한 번 보았으면 하던 참포강이 우리가 서 있는 가파른 산 허리에서 아득히 저 밑으로 내려다 보였다. 참포강은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꿰뚫어 히말라야 산맥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얼음과 눈을 품고 하염없이 흘러간다. 강 폭은 6백 미터가 넘고, 계곡을 돌진하는 그 사나운 물소리는 소름이 끼칠 정도이다. 그로부터의 앞길은 그야말로 위험한 고비였다. 한발 헛디디면 그대로 벼랑 아래서 울부짖는 얼음물 속으로 곤두박질친다.

 

겨우 우리는 계곡 바닥에 닿았다. 강의 양 기슭은 온통 야생의 꽃들로 뒤덮여 있었다. 장미, 민들레, 양귀비 같은 꽃들이 문명사회의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모습으로 피어나 현란하게 어우러져 있고 더구나 이 꽃들은 여태껏 사람의 눈에 뜨인 적도 별로 없었던 것이다.

 

나는 스승에게 말했다.「이것만으로도 보러 올 가치가 있겠군요」

 

우리는 이 지점까지 오는 몇 시간 동안을 서로 말 한 마디 나누지 못했었다. 말을 나눌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여기까지의 행정이 너무나 아슬아슬하고 위험해서 줄곧 스승은 앞에서 걷고 나는 뒤를 따라갔기 때문이다.

 

차츰 날이 저물어 우리는 강가에서 야영 천막을 쳤다. 밤의 어둠 속을 계속 걷는다는 것은 이런 곳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목적지인 버돈까지는 아직도 10여킬로미터가 남아 있다. 버돈에서 우리는 참포강을 건너게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하긴 어떻게 이 강을 건널 수 있는건지 나는 몰랐지만 아무튼 강에 닿기는 했으니 이제 한시름은 놓을 수 있었다.

 

스승이 우리가 야영할 지점 주변을 살피며 돌아다니다가 동굴 하나를 찾아냈다. 그런데 놀랍게도 거기에는 그야말로 속세를 떠난 사람이 한 명 있었던 것이다.

 

「당신은 여기에 얼마나 있었는가?」하고 스승이 그에게 물었다.

 

「오늘로 꼭 22년이 됩니다.」하고 그가 대답했다. 마침 그 날에 우리가 거기에 닿은 것은 우연의 일치였을까?

 

「무엇을 먹고 살아 왔을까요?」하고 내가 물었더니,

 

「아아, 그야 물고기나 그 나름대로 알고 있는 여러가지 풀이나 나무 뿌리를 먹었겠지. 참포강은 물고기가 잘 잡히니까」하고 스승은 대답했다.

 

그 사나이는 나의 스승이 현세에서 큰 스승 중의 한 분임을 눈치 채고는 우리와 동행하고 싶다고 나섰다. 그는 인상도 좋고, 어떤 계기에 밀교 과학을 알게 된 유목민 중의 한 사람이었다. 스승은 그의 태도가 진지하고 아주 순진한 인품임을 보고 퍽이나 감동을 했지만, 우리가 특별한 일로 가고 있기 때문에 데리고 갈 수는 없다고 타일렀다.

 

그리고나서 새삼스럽게 스승이,

「자네는 그 22년 동안에 무엇을 공부했는가?」하고 묻자,

 

「이 참포 강을 걸어서 건널 수가 있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뿐인가?」

 

「네」

 

「원 저런, 그 무슨 시간 낭비인가」하고 스승은 탄식하는 것이었다.

 

스승은 그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것은 내가 스승과 함께 지냈던 어떤 때에 나 자신도 배운 것이었다. 스승의 이야기는 그 수행자의 열의를 더더욱 부추겨 놓았다. 그는 가까운 장래에 반드시 이 스승 밑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어야겠다고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스승은 그의 희망을 받아들이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네가 받아들일 준비가 정말로 되었을 때 내가 자네에게로 갈 것이야. 내가 있는 곳은 차추 강 가까이의 자무을이라네. 언젠가 자네는 큰 가치가 있는 진주를 찾아내게 되겠지」하고 말했다.

 

이제 진리를 알려는 열망이 마음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듯 우리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그를 뒤에 남기고 우리는 다시 길을 떠났다.

 

나는 몇번씩 뒤돌아보고 그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가는 곳마다 식량이나 숙소가 우리를 위해 마련되어 나가는 모양을 보며 나는 그저 놀라기만 했지만, 스승은 처음부터 절대의 확신 속에 있었다.「나도 스승처럼 흔들림 없는 신념을 가지고 싶다. 그러면 산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터인데」하고 나는 자주 혼잣말을 하곤 했다. 때때로 스승은 나의 그런 생각을 알아차리고는 「자네도 그렇게 된다네」하고 격려해 주기도 했다. 그저 짧은 그 한 마디이지만 그것은 나의 귓속에서 언제까지나 강하게 울리는 것이었다. 나의 스승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나 항상 그것을 주도하는 임자인 까닭이 그런 순간마다 퍼뜩퍼뜩 깨달아졌기 때문이다. 약 3킬로미터쯤 따라 내려가 야영을 하기로 했다. 저녁 식사는 물고기로 했고, 다음날 아침도 물고기를 먹었다.

 

스승이 어떻게 물고기를 입수했는지 아직도 나는 모르는데, 왠지 그 때는 그것을 스승에게 물어서는 안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다음날 다시 출발하여 약 4시간만에 버돈에 도착했다. 4시간의 행정은 더더욱 어렵고 위험했다. 하루에 50킬로미터는 무난한 우리들의 걸음이었지만 그 때는 2,3 킬로미터를 걷는데도 거의 1 시간이 걸리는 그런 어려움이었다.

 

그 길을 지난 사람은 거의 없다. 곳에 따라서는 전혀 길도 없었다. 대체 어떻게 참포 강을 건너가자는 것일까? 궁금증을 스승에게 털어 놓았더니 스승은,

 

「만사 잘 되도록 준비되어 있다네」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스승은 나의 신념이 약한 것에 실망했으리라 여겨진다. 그러나 사실 만사가 다 준비되어 있고 충족된다는 것이 차례차례 일어나는 사건에 의하여 증명되어감에 따라 나의 신념도 차츰 강해져 갔다.

 

대소사를 막론하고 모든 일의 배후에는 어떤 지혜가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일에나 아주 자질구레한 데까지 빈틈 없이 일이 되어 나갔다. 차츰 나는 「과연!」하고 수긍하게 되었으며 드디어는 아무런 의심이나 염려 없이 그대로 확신하게까지 되었다. 우주를 지배하는 예지가 있고, 그 예지는 또한 우리들까지도 지배하고 있음이 깨달아졌다. 그 예지는 완전하기 때문에 아무리 미세한 사물이라도 빠뜨리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로부터 이 신념은 항상 나에게서 떠나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이제는 나 스스로는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으며, 우주의 예지에 모두를 그대로 맡겨 버린다. 그러면 일체가 나 자신이 계획한 것보다 몇천배나 자유롭게 진행된다. 그러나 제 생각으로 계획을 하면 결국 다시 그것을 뒤집어야만 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모든 일이 스스로 제 마음으로 계획을 세우면 일체를 다 알고 움직이는 우주의 예지가 이끌어 진행시킬 때처럼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은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자비로운 빛이시여, 나를 이끌어주소서. 나는 보기를 원치 않나니, 한 걸음이라도 좋으니 나를 이끌어 앞으로 나가게 하소서”하는 경건한 기도 그것이다. 주 예수의 말이 자주 생각난다. 일컬어, “나의 눈에 비치는 아버지인 신이 하시는 일을 나 또한 그와 같이 한다”이다. 이것은 신의 완전한 예지가 모든 운동을 가장 미세한 데까지 이끌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런 신념을 가지고 행동함을 뜻하는 말씀이다.

 

자, 버돈에 닿기는 닿았지만 참포 강을 건널 방법 따윈 어디에서도 찾아지지 않았다. 아무튼 강 넓이가 거의 1 킬로미터나 되는 것이다. 그런데 스승은,

 

「여기에 잠시 앉아 있게나」하고는 그이 자신은 잠시 말없이 침묵 속에 잠겨 있더니, 잠시 후에,

 

「곧 가죽배가 여기로 온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티벳 사람 하나가 가죽배를 머리에 이고 왔다.

 

가죽배란 간단히 말하면, 대나무로 엮은 뼈대 겉에 야크의 가죽을 씌운 일종의 보트이다. 깊이 약 1미터, 폭은 약 1.5미터, 길이가 대개 2미터쯤의 사각형 배다.

이 부근의 강은 유리처럼 맑고 잔잔하여 이따금 스쳐가는 산들 바람이 보일까 말까한 잔물결을 이룰 뿐이었다. 스승은 가죽배를 이고 오는 사내에게로 가서「강을 건너줄 수 있겠는가?」하고 물었다.

 

「건너드리고 말고요, 린시라 은자님께서 두 분이 오늘 여기로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죽배를 가지고 오는 길에 두 분을 만난것이지요. 저는 피드돈이라고 합니다」

 

스승은 그 이상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우리는 가죽배를 타고 기슭을 떠났다. 물은 잔잔하여 소리도 나지 않지만, 흐름이 굉장히 빠르기 때문에 피드돈은 힘껏 노를 저었다. 가죽배는 10킬로미터 이상을 떠내려가서야 건너편에 닿았다.

 

이런 가죽배는 매우 가볍고 크기도 여러가지가 있다. 길이가 어떤 것은 3미터나 되는 것도 있으나 워낙 무게가 가볍기 때문에 머리에 이거나 등에 지고 운반을 한다. 무게라고 해 보았자 그저 40 킬로그램 정도에 불과하다.

 

이제 우리는 전혀 인적이 닿지 않는, 그저 얼마간의 야크나 산양만이 있는 티벳의 처녀지에 들어선 것이다. 거기에는 밤이 되면 깊은 산 속에서 나와 닥치는대로 잡아 먹으려는 설표나 승냥이로부터 가축을 지키기 위해 무시무시한 맹견들을 데리고 다니는 유목민들이 이따금 오갈 뿐이다. 그 사나운 개들은 야수가 습격을 해도 과감하게 맞서 끝내 물어 죽이고 만다고 한다. 더구나 그 맹견들은 낯선 사람에게도 가차없이 덤벼들어 죽이고 만다. 그 때문에 우리는 말하자면 한쪽 눈만은 언제나 열고 있으면서 조심을 해야 했다. 겨우 우리는 높은 고개에 이르는 골목까지 다다랐다. 피드돈의 말로는 그 고개는 해발 8천 5백미터나 되며, 연중 끊임없이 불어닥치는 바람이 너무나 사나워, 골짜기- 티벳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골짜기라고 한다-속 깊이에 살고 계시는 은자님 한 분을 제외하고는 살아있는 사람으로 그 고개를 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언제나처럼 , 그러나 이번에는 퍽이나 엄숙한 표정으로 스승이 앞서 나간다. 전도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스승은 알고 있는 것이다.

 

스승은 나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곳에는 흔히 여러가지 전설이 있는데, 그 중에는 사실도 있거니와 그저 이야기로 꾸며낸 것도 있다네. 그러나 이 고개의 전설에는 몇가지 실화로 여겨지는 것이 있다네」

 

그러면서 「자 저기를 보게」하고 스승이 손짓을 했다. 가리키는 쪽을 보니 사납기 그지없는 돌풍이 칼날처럼 쑤시고 들어갈 때마다 찢겨져 나온 눈덩이들이 소용돌이치면서 공중으로 날아오르고 있지 않은가! 만약 나 혼자였다면 도저히 이런 여행을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고맙게도 스승이 동행하여 주었기 때문에 모든 장애를 스승의 신념으로 극복해 나갔던 것이다. 한걸음 한걸음 단단히 밟고 나가면서 강한 의지로 끊임없이 채찍질하여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어려움을 이기면서 우리는 그저 힘을 다하여 위로 기어 올라갔다. 이미 수풀띠는 넘어섰고, 빈 땅으로 들어서면서 땅의 표면이 얼어붙은 눈이기 때문에 바람은 더더욱 사납게 몰아부치는 것이었다. 「대체 이 고개 꼭대기에 살아서 가 닿을 수가 있을까?」하고 문득문득 나는 생각하기도 했다.

 

물론 길도 없고 그저 여기저기 산양이 지나간 흔적이 있을 뿐이니 우리는 스스로 신중하게 진로를 잡아야만 했다. 그러나 스승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언제나 바른 방향을 잡아 나갔다.

 

눈은 얼마나 깊은지 짐작도 안되지만, 표면이 단단히 얼어붙어 있기 때문에 무너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자칫 그 얼어붙은 표층이 무너지는 날에는 대체 어느 만큼 눈 속으로 가라앉아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때마다, 마치 호수에서 베드로가 느꼈던 것 같은 불안이 솟곤 했다. 스승은 나의 그런 불안을 그대로 느끼는 듯,

 

「지금 이곳의 눈은 바위처럼 단단해」하고 말해 주었다.

 

간신히 기어오를수록 바람은 더더욱 맹렬해졌다. 까마득히 솟은 거대한 설산들을 겨우 좌우로 갈라놓은 듯한 틈새로 마치 어떤 거대한 힘이 마구 밀어 넣는 듯 차례차례로 사나운 바람이 밀려든다. 밀려드는 바람은 세력이 엄청나게 커지면서 위로 물러나가는 것이다. 그저 압도적인 두려움만을 불러일으키는 광경이었다. 한편 엄청난 빙하들이 산허리를 밀고 내려오면서 바위를 깎으며 계곡 바닥으로 내리 꽂힌다.

 

우리는 도중에서 발견한 동굴 같은 바위틈 속에 들어가 잠시 숨을 돌리면서 그 엄청난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그 때 굉음이 들렸다. 올려다보니 눈과 얼음의 거대한 사태이다. 수백만 톤의 눈과 얼음이 천둥 같은 소리를 울려대면서,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산산히 찢어 발겨 휩쓸어 가지고 깊은 계곡 속으로 내리 꽂힌다.

 

「이건 신들이나 즐길 풍경이다. 사람이 여기를 통과할 수는 없다」 이런 말이 내 입에서 새어 나갔지만 스승은 아무 대답도 없었다. 스승이 불안을 느끼고 있다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그런 분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안 일이다. 한참만에 스승은 입을 열었다.

 

「자, 다시 전진하자」

 

고개 정상까지의 3분의 2쯤의 지점에 다다랐을 때에 스승은 멈추어섰다. 그리고는 「저기를 보라」고 한다.

 

비스듬히 눈 아래 약 100미터, 암반 위에 서 계시는 은자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은자님은 우리에게 더 이상 위로 올라가지 말고 이 위로 내려와 바른쪽으로 꺾이면 바람이 없다고 소리쳐 알려주시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 말씀대로 하여, 산허리를 따라 거의 100미터쯤 튀어나온 바위에 닿았다. 거기서 골짜기가 내려다 보인다. 그것은 정말 여태껏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말할 수 없이 화려한 경관이었다. 저 멀리 자그마한 그림 같은 호수가 있고, 그 한가운데에 달랑 섬이 하나 떠 있다. 섬 위에는 얌전한 집 한 채, 바로 내가 명상 속에서 영시한 그 집이다. 골짜기는 온통 연두색으로 피어나고 색색가지의 야생꽃들이 융단처럼 깔려 있다. 호수 수면에는 둘레의 설산과 골짜기가 비치어 이 또한 연두색이다. 산들의 기슭은 야생의 장미와 민들레의 무리가 한창 피어나 있다.

 

「이건 정말 말 못할 경치로군요. 더구나 은자님 외에는 누구도 본 일이 없는 곳을…」하고 나는 스승에게 말했다.

 

골짜기 여기저기에는 야생의 야크나 당나귀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곳이 보였다. 나는 어서 아래로 내려가고 싶었는데 그 때 다시 은자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심하라, 서둘러서는 안돼. 바위가 떨어진다. 산양들이 가끔 발을 헛디뎌 떨어뜨리는 돌맹이가 바위사태로 되어 밀려내려오는 수가 있다. 그렇지만 자네들은 지켜지고 있으니까 걱정없어」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만사 잘 된다는 자신이 그 말씀으로도 나에게도 솟아났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은자님이 계시는 곳으로 내려갔다. 드디어 살아서 그이를 뵙게 된 것이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여기에만 바람이 없는 것은 어째서입니까?」하고 물었더니 은자님은,

 

「자 바위들을 보라. 자네 위 쪽에 큰 바위가 여러 개 튀어나와 있는 것이 보이지?」올려다 보았더니 거대한 바위들이 튀어나와 있다.

 

「저 바위가 바람을 튀겨내기 때문에 이 일대는 평온한 것이야. 살아서 저 고개를 넘은 사람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지. 이것이 나의 골짜기로 들어오는 단하나의 길. 비밀 통로이지」

 

「반대쪽의 지형은 어떤가요?」하고 물었다.

 

「그쪽은 더 어렵지」

 

「이 골짜기 전체가 은자님의 것이라니 참 놀랍군요」

 

「이 골짜기에도 사람이 사는 시대가 오래지 않아 온다. 결국 여기로 들어오는 길을 찾아낸다. 그러나 아직은 성역이야. 여기서는 하늘과 땅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 영적인 사람이나 유체 여행을 할 수 있는 자만이 여기로 올 수가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은 말해 주어도 되겠지」

 

우리는 함께 호수를 향하여 걸었다. 나머지 길은 참으로 편안했다. 호숫가에 닿았다. 이 세계에서 이곳보다 더 아름다운 땅이 있을까? 푸른 나무들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답다. 전체의 색조는 부드럽고 엷은 연두색이다. 호숫가에는 가죽배 하나가 메어져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타고 은자님이 섬까지 노를 저어 주셨다.

 

그 풍경을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인공이 가해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나무들의 푸르름, 역시 자연 그대로의 푸른 잔디가 빈틈없이 퍼져 있으며, 그 부드러운 풀을 야생의 짐승들이 맛있게 뜯어 먹음으로써 너무 자라는 것을 막고 있다. 야자 나무가 우뚝 솟아 있다. 일부러 심어서 특별히 손질을 한 것이리라, 둘레의 수풀 속에 여기저기 서 있는 나무가 야자와 같은 종류임이 얼핏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은자님 말씀으로는 처음에 삽목을 하여 키워냈고, 제대로 모양을 갖출 때까지 특별히 보살펴 가꾸었다는 것이다. 야자의 무리 밑둥 언저리에는 야생의 꽃들과 이상하리 만큼 파아란 양귀비가 널려 있다. 그런 풍경 한 가운데에, 교묘히 돌을 짜맞추어 지은 집이 서 있다. 대나무 뼈대 위에 야자 잎을 겹겹히 씌운 것이 지붕이다. 집 안은 청결하고, 바닥에는 가까이의 바위를 떼내어 다듬은 고운 바위 판이 깔려 있다. 가구는 대나무와 풀을 엮어 만든 것들이고, 구조 또한 아주 단단하게 되어 있다. 음식을 만드는 기구도 있었다. 그것은 은자님이 이따금 바깥 세계로 여행하실 때 조금씩 가지고 돌아오신 것들이다. 침대나 긴 의자도 대나무와 풀줄기로 단단히 짠 것들이고 디자인은 여러가지이다. 그 하나에 앉아 보았다. 나도 모르게「아아, 이것 참 편안하군!」하고 탄성을 올렸다.

 

은자님이 마른 나뭇가지들을 쌓아놓고 부싯돌로 불을 붙였다. 잠시 후에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곧 즐거운 모닥불이 되었다.

 

「은자님은 무엇이든 다 잘하시는군요」하고 내가 말하자,

 

「응, 그러나 나는 일 때문에 온 세계를 돌아다니지. 오크 계곡에서 만났을 때에도 말했지만,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스려주고 편안해지도록 여러 곳을 여행한다네. 그런 일을 이제 자네는 여기서 나와 함께 배워 나가는 것이야」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은자님의 긴 머리카락과 수염, 지혜에 번쩍이는 깊은 눈은 그이의 모습과 동작에 인간을 넘어선 위엄을 더해주고 있다. 키는 2미터 가깝고, 정신으로서만이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거인의 느낌을 그대로 풍긴다.

 

「그야말로 이 분은 아시아에서도 가장 높은 현인이시다!」하고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