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바바지(Babaji)

인류의 영원한 스승 '바바지'-두번째 이야기

기른장 2021. 3. 26. 21:16

 

제 9장

진리, 단순, 사랑, 합일에 대한 바바지의 가르침

 

나는 세상 모든 사람이 최상으로 있기를 바란다. 오늘날에는 휴머니즘이 완전히 파괴되어, 인간이 동물처럼 되고 말았다. 나는 모든 영혼이 휴머니즘을 회복하기 바란다. 인간성의 결핍으로 인해, 사람들은 긴장과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바바지 中 23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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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나와 내것이라는 관념을 지워버려야한다. 너희는 사명감을 가지고 전사처럼 용감하게 전진해야한다. 자기 혈족에 대한 집착은 사람을 소인으로 만든다. 너희가 우주 전체에 속해 있다면 '나'와 '내것'이 어찌 있을 수 있겠느냐? 우리는 우주 가족으로 하나되어 행진해가야 한다. 오직 이렇게 할때만 너희는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으니 이것은 한 개인이 아니라, 우주 전체를 배려하는 일이다.

반드시 모든 사람이 '인류애'를 키워야한다. 이것만이 성공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인류애는 강의나 말로써 고양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모든 사람들 안에 잠들어 있는 휴머니즘을 일깨워야 한다. 모두가 자신과 남을 구분하지 말고 세상 속에서 하나되어 일해야지, 그렇지 않았다가는 점점 확산되어가는 이 세상의 혼란을 치유할 방도를 찾지 못할 것이다.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유일한 종교는 인류애다. 여기에는 관용과 용서가 필수이며, 우리 임무는 그 본보기를 보이는 것이다. 모두가 인간이 되어야 한다.

모두가 삶의 어려움에 직면해서 용감해져야 한다. 너희 자신과 사람들을 세상의 무법으로부터 구해내라. 비겁한 사람은 죽은 사람과 같다. 나는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용감한 사람들의 세상을 만들고 싶다. 우리는 인간의 잔혹함으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을 불행의 수렁에서 건져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바바지 中 239p~2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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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지는 서로에게 그토록 무관심하고 비인간적인 이 칼리 유가의 시대에 남을 침략하고 착취하는 자들에게 나머지 뺨마저 내주는 것에 찬성하지 않았다. 그는 이성적이거나 부드러운 말로는 통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손이나 지팡이를 쓰는것을 망설이지 않았으며, 부당한 대우를 용납하고 나중에 가서야 울분을 터뜨리는 겁쟁이를 싫어했다.

 

"나는 지금 세상에 만연해 있는 비폭력을 뿌리뽑고자 한다. 그것은 무관심과 나태의 원인이 된다. 사람들의 피를 차디차게 만드는것이 바로 이 비폭력이다. 이 비폭력적 태도가 선과 악의 분별을 흐리게 만들어버린다. 모든 사람이 용기 있게 살아야 한다. 용기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과 같고, 용기 없는 삶은 더 이상 삶이 아니다. 지금 세계 도처에서는 온갖 악행들이 빚어지고 있지만, 아무도 이런 악에 맞서 싸울 용기가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용기를 갖고 거기에 맞서야 하며, 확고한 결의로 자신이 진실하다고 믿는것을 지켜야 한다. 일관성과 사명감을 가져라. "

-바바지 中 243~244p-

자파의식을 행하는 바바지 250p

하지만 인간의 마음을 오염시키는 것은 이보다 더 위험하다. 우리가 시기심과 질투와 증오에 맞서 자신의 마음을 단련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모든 존재와의 합일에서 오는 사랑과 자비의 감정을 느끼지 못한 다면, 우리는 자연의 힘이 인류를 멸망시키기 전에 우리 스스로 지구에서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우리 인간의 태도와 생각, 말과 행위 자체가 이 우주의 생명 수준, 나아가 그 가능성에까지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바바지가 진리와 단순과 사랑으로 사는 삶을 가르친것은 세계와 우주의 치유 및 조화에 기여하기 위해서였다.

"너희가 평화로우면 나 또한 평화롭다. 너희에게 문제가 있으면 나 또한 문제가 있느니라. 너희가 하는 모든 일에서 조화를 구하라. 나는 조화이다. 너희의 사랑에 감사한다. "

-바바지 中 248p -

하이다칸 아쉬람에서 꽃을 바라보고 있는 바바지 296p


제 10장

구루로서의 바바지: 자파와 카르마 요가

바바지가 행한 최초의 공신적인 가르침은 사람들에게 '옴 나마하 시바이' 라는 만트라를 반복하여 암송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 만트라는 '나는 시바에게 절한다' 또는 '나는 시바에게 나 자신을 맡긴다', 혹은 '시바 안에서 피난처를 찾는다' 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은 신에게 귀의한다는 선언이고, 자기 삶에서 신을 가장 중시하겠다는 맹세이며, 신성 실현의 길로 나아가겠다는 약속이다.

바바지 中 25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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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는 명상을 강조하면서 사람들에게 크리야요가를 가르쳤던 바바지가 이번 현신에서는 더 간단한 집중방식인 자파를 가르친것은 현대인들의 집중력 부족 때문이었다. 바바지는 고대의 현자나 수행자처럼 명상할 수 있는 사람이 현대에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나마 자파'는 쓸모없는 생각들을 없애주는 것 외에 또다른 가치가 있다. 하이다칸 아라티를 보면, '나마 자파'를 가리켜 '신의 이름이라는 감로주를 마심으로써, 인간이 신의 신성하고 영원한 임재를 얻을 수 있게 해주는 것' 이라고 설명한 글이 있다.

바바지 中 25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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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이름을 암송하는 것은 바바지의 가르침 가운데에서도 핵심적인 부분의 하나지만, 그렇다고 다른 행위는 모두 그만두고 오직 자파나 명상만 하도록 가르치지는 않았다.

 

"나는 게으른 사람을 원치않는다. 자파는 카르마를 대신하지 못한다. 자파와 일은 병행되어야 한다. 일을 하면서 자파를 수행하라. 그러면 자유를 얻게 될것이다. 나는 신의 이름이 더럽고 고인 물이 아니라, 맑게 흐르는 물이 되기를 바란다. 일하라, 그리고 빛이 되라! 신의 이름을 암송하라. 마음을 집중하여, 항상 신의 이름을 암송하라."

-바바지 中 2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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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지가 일반 대중에게 전한 최초의 메시지는 자파였지만, 그가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강력하게 강조한 가르침은 카르마 요가였다. 카르마 요가란 이기적인 동기나 목적 없이 창조주 및 모든 창조물과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일컫는 말이다. 그것은 또한 인간이 이 세상에서 자신의 의무로서 행하는 활동을 말한다.

-바바지 中 259p-

불 의식을 행하는 바바지 345p

"지구는 카르마의 장이다. 모두가 적극적으로 일해야한다. 과거의 위대한 인물들이 카르마 요가를 통해 풍요로운 결실을 거두었듯이, 지금도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만이 성공하고 번영한다. 오직 카르마 요가를 통해서만 너희는 진화할 수 있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카르마 요가를 포기해서는 안된다. 행동하지 않는건 죽음과 같다. 이것이 바로 너희가 계속 일하고 전진하며 진화해야 하는 이유다."

 

바바지는 카르마 요가를 가장 중요한 종교 행위로 보았다. 종교적인 의식이나 예배는 그 다음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이 곧 예배다' 라는 구절을 항상 되뇌곤 했다.

2천년이 넘는 동안 인도는 여러 형태의 요가를 찾아냈다. 바바지는 지금 시대의 카르마 요가는 특히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이전에 너희에게 수많은 요가가 있다고 말한적이 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가장 우선해야 할 것이 카르마 요가다. 다른 요가는 연후에 부수적으로 행할 수 있다."

"카르마 요가는 이 시대의 가장 높은 수련이며, 이것이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경전에서도 각 시대의 끝에는 오직 카르마 요가만이 너희를 도울 수 있다고 단언하고 있다."

"오직 카르마 요가만이 시대를 변화 시킬 수 있다. 다른 형태의 요가로는 이것을 이루어 낼 수 없다. 시대가 바뀔때마다 카르마 요가는 과학을 비롯하여 인간 활동의 결과물인 모든 진보 속에서 자신을 표현한다."

-바바지 259~261p-

바바지

"카르마는 피할 수 없는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다. 모든 생명체가 이 법칙에 따라 자신의 행동과 생각의 결실을 거두어들인다. 예수는 '뿌린대로 거두리라' 는 말로 이를 설명했다. 카르마의 법칙은 모든것에 우선한다. 마음속에서 움직임이 시작될 때, 카르마도 시작된다. 카르마를 멈추기 위해서는 마음을 침묵과 공의 상태로 가져가야 하며, 그것을 넘어서야만 신을 알 수 있다... 그렇지않으면 인간이 숨쉬고 있는 한 카르마를 만들게 된다. 누구든 단 1분도 행동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희의 모든 행위를 신에게 바치는 법을 배워라."

 

카르마 요가는 어쩌다 한번 행하는 예배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다. 바바지가 말했듯이, 카르마 요가의 실천은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즉시 가져다주긴 하지만, 그럼에도 대부분의 경우, 이기적인 고정관념을 대신 할 정도로 카르마 요가가 확실히 자리잡기 위해서는 간단한 훈련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

-바바지 中 264~26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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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무상하다. 너희는 오직 카르마 요가의 길 위에서만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직 행하는 것만이 사람을 신으로 데려갈 수 있으며, 해탈에 이르게 해준다. 카르마의 법칙은 너무나 심오해서 어떤 위대한 말로도 충분히 설명해낼 수 없다. 이 지상에서 카르마가 멈추는 날, 바로 그날이 지구 소멸의 날이 될것이다. 모든 용감한 이여, 계속 일하라! 오직 카르마를 통해서만 너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길은 이것뿐이다. "

 

바바지는 진정한 안정, 또는 안전은 내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임을 가르치려고 했던 것 같다. 외부의 물질적인 것들은 변화하고 소멸하기 마련이다.

-바바지 中 266~267p-

재현신 초기의 젊은 바바지 122p

"너희가 선한 행위를 하겠다고 맹세하고 이것을 계속 지켜나가면, 너희는 잘 자고, 식욕도 좋아지며, 나쁜 생각도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항상 서로 비판하는 마음에 사로잡힐 것이다. 카르마 활동은 모든 악을 몰아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바바지 中 271p-

[출처] [아아 요가]인류의 영원한 스승 '바바지'-두번째 이야기|작성자 마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