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추 상(公孫丑 上) 2장
公孫丑問曰 “夫子加齊之卿相, 得行道焉, 雖由此覇王, 不異矣. 如此, 則動心否乎?”
공손추문왈 “부자가제지경상, 득행도언, 수유차패왕, 불이의. 여차, 즉동심부호?”
공손추가 물었다. “선생님이 제나라 재상 자리에 앉으셔서 왕도 정치를 행하실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을 통해 제나라 왕이 왕자가 되든 패자가 되든 사람들은 하등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선생님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까요?”
孟子曰 “否. 我四十不動心.”
맹자왈 “부. 아사십부동심.”
맹자가 대답하였다. “아니다. 나는 마흔이 되고 난 뒤부터는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不動心)을 갖게 되었다.”
曰 “若是, 則夫子過孟賁遠矣.”
왈 “약시, 즉부자과맹분원의.”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제나라의 고대 용사) 맹분의 경지를 훌쩍 뛰어넘으셨습니다.”
曰 “是不難, 告子先我不動心.”
왈 “시불난, 고자선아부동심.”
“그 정도는 어려운 게 아니다. 고자 선생만 해도 나보다 먼저 부동심을 가지셨다.”
曰 “不動心有道乎?”
왈 “부동심유도호?”
“부동심을 기르는 데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曰 “有. 北宮黝之養勇也, 不膚撓, 不目逃, 思以一毫挫於人, 若撻之於市朝.
왈 “유. 북궁유지양용야, 불부요, 불목도, 사이일호좌어인, 약달지어시조.
“있고말고. 우선 (제나라의 유명한 검객) 북궁유가 용기를 기르는 것을 볼 것 같으면, 그는 살을 찔러도 꿈쩍하지 않고, 눈을 찔러도 깜박이지 않았을 뿐더러, 남에게 추호라도 모욕을 당하면 그것을 시장 한복판에서 채찍질을 당한 것같이 여겼다.
不受於褐寬博, 亦不受於萬乘之君. 視刺萬乘之君, 若刺褐夫.
불수어갈관박, 역불수어만승지군. 시자만승지군, 약자갈부.
그리하여 누더기를 입은 천한 사람이라도 그를 모욕하면 용서치 않았고, 아무리 지체 높은 만 승의 군주라도 그를 모욕하면 용서치 않았으며, 만 승의 군주를 찔러 죽이는 것을 마치 누더기 입은 천한 사람을 찔러 죽이는 것같이 여겼다.
無嚴諸侯, 惡聲至, 必反之. 孟施舍之所養勇也, 曰 ‘視不勝猶勝也.
무엄제후, 악성지, 필반지. 맹시사지소양용야, 왈 ‘시불승유승야.
그에겐 두려운 제후라고는 없었던 것이다. (상대가 누가 되었든) 자기를 험담하는 소리가 조금이라도 들리면 반드시 보복하고야 말았다. (또 다른 제나라의 용사) 맹시사가 용기 기르는 것을 보면,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적이라도 이길 수 있는 것처럼 대해야 한다.
量敵而後進, 慮勝而後會, 是畏三軍者也. 舍豈能爲必勝哉? 能無懼而已矣.’
양적이후진, 여승이후회, 시외삼군자야. 사기능위필승재? 능무구이이의.’
전술에 능한 사람들은 적의 기량을 헤아려 본 뒤에야 앞으로 나아가고,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이 선 뒤에야 회전(會戰)에 임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삼군(三軍)과 같이 많은 적을 대하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어찌 나라고 해서 반드시 이긴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다만 나는 어떤 상황에서건 적을 두려워하지 않을 따름이다.’
孟施舍似曾子, 北宮黝似子夏. 夫二子之勇, 未知其孰賢, 然而孟施舍守約也.
맹시사사증자, 북궁유사자하. 부이자지용, 미지기숙현, 연이맹시사수약야.
이렇게 볼 때 맹시사는 증자와 같고, 북궁유는 자하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들 두 사람의 용기 가운데 어느 편이 현명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맹시사가 그 나름대로 자기 본분을 지키는 면에 있어서는 훨씬 더 요령이 있는 듯하다.
昔者曾子謂子襄曰 ‘子好勇乎? 吾嘗聞大勇於夫子矣;
석자증자위자양왈 ‘자호용호? 오상문대용어부자의;
그 옛날 증자께서 자양에게 이렇게 말하셨다. ‘너는 용기를 좋아하느냐? 나는 언젠가 선생님으로부터 큰 용기에 대해서 들은 일이 있다.
自反而不縮, 雖褐寬博, 吾不惴焉; 自反而縮, 雖千萬人, 吾往矣.’
자반이불축, 수갈관박, 오불췌언; 자반이축, 수천만인, 오왕의.’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바르지 못하면, 비록 누더기를 입은 천한 사람 앞에서도 벌벌 떨며,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아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으면 천만 대군이 밀어 닥쳐도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孟施舍之守氣, 又不如曾子之守約也.”
맹시사지수기, 우불여증자지수약야.”
그러니 맹시사가 자신의 기를 지키는 것은 증자가 자기 본분을 지키는 것만큼 요령이 있다고 할 수 없다.”
曰 “敢問夫子之不動心, 與告子之不動心, 可得聞與?”
왈 “감문부자지부동심, 여고자지부동심, 가득문여?”
공손추가 말했다. “감히 여쭙겠습니다. 선생님의 부동심과 고자의 부동심에 대해 말씀을 들려주실 수 없겠는지요?”
“告子曰 ‘不得於言, 勿求於心; 不得於心, 勿求於氣.’
“고자왈 ‘부득어언, 물구어심; 부득어심, 물구어기.’
“고자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말로써 이길 수 없다고 마음에서 구하지 말라. 마음으로 이길 수 없다고 기에서 구하지 말라.’
不得於心, 勿求於氣, 可; 不得於言, 勿求於心, 不可.
부득어심, 물구어기, 가; 부득어언, 물구어심, 불가.
마음으로 이길 수 없다고 기에서 구하지 말라고 한 것은 옳지만, 말로써 이길 수 없다고 마음에서 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夫志, 氣之帥也; 氣體之充也. 夫志至焉, 氣次焉.
부지, 기지수야; 기체지충야. 부지지언, 기차언.
대저 뜻이라는 것은 기의 주재자이고, 기는 우리 몸에 가득 차 있는 본원적인 에너지이다. 그러므로 ‘뜻이 확립되면 기는 거기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뜻을 굳게 지키고 그 기를 헛되이 해쳐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 것이다.”
故曰 ‘持其志, 無暴其氣.’”
고왈 ‘지기지, 무폭기기.’”
“선생님께서 ‘뜻이 확립되면 기는 거기에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라 말씀하시고는
“旣曰 ‘志至焉, 氣次焉.’ 又曰 ‘持其志, 無暴其氣’ 者, 何也?”
“기왈 ‘지지언, 기차언.’ 우왈 ‘지기지, 무폭기기’ 자, 하야?”
또다시 ‘그 뜻을 굳게 지키고 그 기를 헛되이 해쳐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曰 “志壹則動氣, 氣壹則動志也. 今夫蹶者趨者, 是氣也, 而反動其心.”
왈 “지일즉동기, 기일즉동지야. 금부궐자추자, 시기야, 이반동기심.”
“뜻이 하나로 집중되면 기가 움직이고, 반대로 기가 하나로 집중되어도 뜻을 움직일 수 있다. 급히 달리다가 넘어지는 것은 (의지의 작동이라기보다는) 기가 흐트러져 그리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넘어지게 되면 그로 인해 사람의 마음이 움직여 감정이 상하게 되는 것이다.”
“敢問夫子惡乎長?”
“감문부자오호장?”
“감히 여쭙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느 방면에 뛰어나십니까?”
曰 “我知言, 我善養吾浩然之氣.”
왈 “아지언, 아선양오호연지기.”
“나는 남의 말을 잘 알아듣는다. 또 나는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
“敢問何爲浩然之氣?”
“감문하위호연지기?”
“감히 여쭙겠습니다. 호연지기란 대체 무엇입니까?”
曰 “難言也. 其爲氣也, 至大至剛, 以直養而無害, 則塞於天地之間.
왈 “난언야. 기위기야, 지대지강, 이직양이무해, 즉새어천지지간.
“그것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호연지기란 지극히 크고 지극히 굳센 것이니, 바르게 함양하고 손상을 입지 않는다면 천지 사이에 가득 차게 된다.
其爲氣也, 配義與道. 無是, 餒也. 是集義所生者, 非義襲而取之也.
기위기야, 배의여도. 무시, 뇌야. 시집의소생자, 비의습이취지야.
그 기는 항상 의와 어울리고 도와 함께 하는 것이니, 이것이 없으면 인간은 시들해진다. 또 그것은 언제나 의를 행하는 동안에 자연히 생기는 것이지, 의를 돌발적으로 행하여 억지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行有不慊於心, 則餒矣. 我故曰, 告子未嘗知義, 以其外之也.
행유불겸어심, 즉뇌의. 아고왈, 고자미상지의, 이기외지야.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하고 난 뒤 마음으로 뭔가 켕기는 게 있으면 곧 시들해지게 된다. 고자가 아직 의를 알지 못한다고 한 까닭은 그가 의를 인간의 외부에 있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必有事焉, 而勿正, 心勿忘, 勿助長也.
필유사언, 이물정, 심물망, 물조장야.
그러므로 반드시 그것을 힘쓰되, 어떤 목적을 두어서는 아니 되고, 마음속으로 잊지 않되, 일부러 조장해서도 아니 되는 것이다.
無若宋人然; 宋人有閔其苗之不長而揠之者, 芒芒然歸.
무약송인연; 송인유민기묘지부장이알지자, 망망연귀.
이를테면 송나라의 어떤 사람처럼 해서는 안 된다. 송나라에 곡식의 싹이 빨리 자라지 않는 것을 걱정해서 싹을 일일이 조금씩 뽑아 올려놓은 사람이 있었다.
謂其人曰 ‘今日病矣! 予助苗長矣!’ 其子趨而往視之, 苗則槁矣.
위기인왈 ‘금일병의! 여조묘장의!’ 기자추이왕시지, 묘즉고의.
지친 모습으로 집에 돌아와서는 집안사람들에게 말했다. ‘오늘 정말 피곤하구나. 내가 싹이 자라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의 아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달려가 보니, 싹이 모두 말라 죽어 있었다.
天下之不助苗長者寡矣. 以爲無益而舍之者, 不耘苗者也; 助之長者, 揠苗者也. 非徒無益, 而又害之.”
천하지부조묘장자과의. 이위무익이사지자, 불운묘자야; 조지장자, 알묘자야. 비도무익, 이우해지.”
세상에는 이렇게 싹이 자라는 것을 도와주지 않는 자가 별로 없다. 호연지기가 무익하다고 해서 내버리는 행위는 김매기를 하지 않아 잡초가 우거지게 만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 반대로 호연지기가 소중하다고 해서 (앞서의 북궁유나 맹시사처럼) 이를 억지로 조장하는 행위는 억지로 싹을 뽑아 올리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도리어 해가 될 뿐이다.”
“何謂知言?”
“하위지언?”
공손추가 다시 물었다. “남의 말을 잘 알아듣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曰 “詖辭知其所蔽, 淫辭知其所陷, 邪辭知其所離, 遁辭知其所窮, 生於其心, 害於其政; 發於其政, 害於其事. 聖人復起, 必從吾言矣.”
왈 “피사지기소폐, 음사지기소함, 사사지기소리, 둔사지기소궁, 생어기심, 해어기정; 발어기정, 해어기사. 성인부기, 필종오언의.”
“한편으로 치우친 말을 들으면 그가 무언가를 은폐하려 한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지나친 말을 들으면 그가 무엇에 빠져 있는지 알 수 있고, 삿된 말을 들으면 그가 무언가 도리에 벗어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교묘하게 회피하는 말을 들으면 그가 무엇 때문인지 궁지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정자의) 마음에 이런 네 가지 말이 생기게 되면 반드시 그 정치에 해를 끼칠 것이고, 정치하는 과정 중에 그런 말이 나오게 되면 나라에서 하는 모든 일들에 해를 입히게 될 것이다. 옛 성인께서 다시 나타나신다 해도 내 말을 수긍할 것이다.”
“宰我子貢善爲說辭, 冉牛閔子顔淵善言德行. 孔子兼之, 曰 ‘我於辭命, 則不能也.’ 然則夫子旣聖矣乎?”
“재아자공선위설사, 염우민자안연선언덕행. 공자겸지, 왈 ‘아어사명, 즉불능야.’ 연즉부자기성의호?”
“(공자의 제자 가운데) 재아와 자공은 말에 능했고, 염우와 민자건, 안연은 덕행에 뛰어났는데, 공자께서는 이것을 모두 겸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공자께서는 ‘나는 말재주가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호연지기도 쌓고 다른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들으시는) 선생님께서는 이미 성인이 되신 것이 아닙니까?”
曰 “惡! 是何言也? 昔者子貢問於孔子曰 ‘夫子聖矣乎?’
왈 “오! 시하언야? 석자자공문어공자왈 ‘부자성의호?’
“어허! 그게 무슨 말이냐! 옛적에 자공이 공자님께 ‘선생님께서는 성인이시지요?’라고 물었더니
孔子曰 ‘聖則吾不能, 我學不厭而敎不倦也.’
공자왈 ‘성즉오불능, 아학불염이교불권야.’
공자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성인은 내 능력 밖이니라. 나는 다만 배우는 데 싫증을 내지 않고,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을 따름이다.’
子貢曰 ‘學不厭, 智也; 敎不倦, 仁也. 仁且智, 夫子旣聖矣.’
자공왈 ‘학불염, 지야; 교불권, 인야. 인차지, 부자기성의.’
그러자 자공이 다시 이렇게 말했다. ‘배우는 것을 싫증 내지 않는 것은 지(智)이고, 가르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것은 인(仁)입니다. 인과 지를 겸하였으니, 선생님께서는 이미 성인이십니다.’
夫聖, 孔子不居, 是何言也?”
부성, 공자불거, 시하언야?”
이렇듯 공자께서도 성인을 자처하지 않으셨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
“昔者竊聞之, 子夏子游子張皆有聖人之一體, 冉牛閔子顔淵則具體而微, 敢問所安.”
“석자절문지, 자하자유자장개유성인지일체, 염우민자안연즉구체이미, 감문소안.”
“예전에 제가 듣기로, 공자의 제자인 자하와 자유, 자장은 모두 공자라는 성인의 일면만을 갖추었고, 염우나 민자건, 안연은 성인으로서의 덕을 모두 갖추었으나 조금 미흡했다고 합니다. 감히 여쭙겠습니다만, 선생님께서는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지요?”
曰 “姑舍是.”
왈 “고사시.”
“그 이야기는 그만두세.”
曰 “伯夷伊尹何如?”
왈 “백이이윤하여?”
“그러하오면 백이와 이윤은 어떠합니까?”
曰 “不同道. 非其君不事, 非其民不使; 治則進, 亂則退, 伯夷也.
왈 “부동도. 비기군불사, 비기민불사; 치즉진, 난즉퇴, 백이야.
“각자가 걸어간 길이 다르다. 섬길 만한 임금이 아니면 섬기지 아니하고, 다스릴 만한 백성이 아니면 다스리지 않고, 치세에는 나아가 벼슬하고, 난세에는 물러나 은거한 것이 백이였다.
何事非君, 何使非民; 治亦進, 亂亦進, 伊尹也.
하사비군, 하사비민; 치역진, 난역진, 이윤야.
어떤 임금이라도 섬기고, 어떤 백성이라도 다스리며, 치세에도 나아가 벼슬하고, 난세에도 나아가 벼슬을 한 것이 이윤이었다.
可以仕則仕, 可以止則止, 可以久則久, 可以速則速, 孔子也.
가이사즉사, 가이지즉지, 가이구즉구, 가이속즉속, 공자야.
그러나 출사할 만할 때 출사하고, 물러날 만할 때 물러나며, 오래 머물러 있어야 할 곳에는 오래 머물러 있고, 빨리 떠나야 할 때에는 빨리 떠나는 것이 공자이다.
皆古聖人也, 吾未能有行焉. 乃所願, 則學孔子也.”
개고성인야, 오미능유행언. 내소원, 즉학공자야.”
세 사람은 모두가 옛적의 성인이시다. 나는 이 세 분 가운데 어느 한 분도 충실히 따르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공자를 배우고자 한다.”
“伯夷伊尹於孔子, 若是班乎?”
“백이이윤어공자, 약시반호?”
“그렇다면 백이와 이윤 역시 공자와 같은 반열에 드는 성인입니까?”
曰 “否. 自有生民而來, 未有孔子也.”
왈 “부. 자유생민이래, 미유공자야.”
“아니다. 이 세상에 사람이 생겨난 이래로 공자보다 위대한 인물은 없었다.”
曰 “然則有同與?”
왈 “연즉유동여?”
“(하지만 기왕에 세 분 모두 옛적의 성인이라 하셨으니) 그렇다면 세 분에게는 뭔가 공통점이 있단 말씀이신가요?”
曰 “有. 得百里之地而君之, 皆能以朝諸侯, 有天下. 行一不義, 殺一不辜, 而得天下, 皆不爲也. 是則同.”
왈 “유. 득백리지지이군지, 개능이조제후, 유천하. 행일불의, 살일불고, 이득천하, 개불위야. 시즉동.”
“있고말고. 그분들께 사방 백 리 되는 땅을 주어 임금이 되게 한다면, 모두가 제후들로 하여금 조공케 하고 천하를 보유하는 왕업을 이룩할 것이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불의한 일을 행하거나, 한 사람이라도 무고한 이를 죽이거나 하는 일은 비록 그로 인해 천하를 얻을 수 있더라도 절대 그런 짓은 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점에서 그분들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曰 “敢問其所以異?”
왈 “감문기소이이?”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분들의 다른 점을 듣고자 합니다.”
曰 “宰我子貢有若, 智足以知聖人, 汚不至阿其所好.
왈 “재아자공유약, 지족이지성인, 오부지아기소호.
“(공자의 문인인) 재아와 자공과 유약은 성인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지혜를 갖고 있었으니, 그 사람됨이 각각 약간 손색이 있긴 했으되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아첨할 정도에 이르지는 않았다. (그러니 이들의 말을 통해 공자의 사람됨을 한번 살펴보기로 하자.)
宰我曰 ‘以予觀於夫子, 賢於堯舜遠矣.’
재아왈 ‘이여관어부자, 현어요순원의.’
재아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보기에 선생님께서는 요 임금이나 순 임금보다 훨씬 더 훌륭하시다.’
子貢曰 ‘見其禮而知其政, 聞其樂而知其德. 由百世之後, 等百世之王, 莫之能違也. 自生民以來, 未有夫子也.’
자공왈 ‘견기례이지기정, 문기락이지기덕. 유백세지후, 등백세지왕, 막지능위야. 자생민이래, 미유부자야.’
자공 역시 이렇게 말했다. ‘그 나라의 예제를 보면 그 나라의 정치를 알 수가 있고, 그 나라에서 유행하는 음악을 들어 보면 그 나라 도덕의 수준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부터 백 세대 이후에 그간 등장한 역대 제왕을 평가한다 해도 그 어떤 임금이라도 공자께서 세운 도리에서 크게 벗어난 이가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 사람이 생겨난 이후로 선생님 같은 분은 나오지 않았다.’
有若曰 ‘豈惟民哉? 麟之於走獸, 鳳凰之於飛鳥, 太山之於邱垤, 河海之於行潦, 類也. 聖人之於民, 亦類也. 出於其類, 拔乎其萃, 自生民以來, 未有盛於孔子也.’”
유약왈 ‘기유민재? 기린지어주수, 봉황지어비조, 태산지어구질, 하해지어행료, 류야. 성인지어민, 역류야. 출어기류, 발호기췌, 자생민이래, 미유성어공자야.’”
유약은 또 이렇게 말했다. ‘어찌 백성 가운데 이렇게 뛰어난 존재가 있겠는가? 달리는 짐승으로 말하자면 기린, 날아다니는 짐승으로 말하자면 봉황, 이 땅 위의 언덕으로 말하자면 태산, 흐르는 물로 말하자면 황하나 바다가 동류라고 할 수 있거니와, 인간으로 말하자면 성인이 그와 같은 부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와 같은 부류 가운데서도 뛰어나고, 모든 성인 중에서도 특출난 것이, 이 세상에 사람이 생겨난 이래로 아직까지 공자보다 덕이 크신 분은 없었다.’”
해설
그 유명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설명한 대목이다. 앞서 말한 대로 호연지기의 바탕이 되는 것은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서도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이다.
“‘호연’은 넓고 큰 모습을 형용하는 의태어이다. ‘호연지기’는 크고 넓게, 즉 왕성하게 뻗친 기운이라는 뜻이다. 맹자는 흔들리지 않는 굳센 마음을 얻는 데 이 호연지기를 기르는 것이 필요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을 키우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아서 억지로 키우고자 해도 키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맹자는 유명한 ‘알묘조장(揠苗助長)’이라는 비유를 들어 그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결국 호연지기를 떠받치는 힘은 자기 정당성이다.
“호연지기는 떳떳함에서 오는 용기이다. 떳떳함은 내 마음이 속삭이는 ‘올바름(義)’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얻을 수 있다. 올바름에 대한 믿음이 강해지면, 그 믿음은 자연스럽게 행동을 동반한 것이다. ······ 그런데 이런 일들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내면의 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들으려고 해야 하며, 어떤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 내면의 소리를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 진실에 대해 항상 깨어 있으려는 의지, 옳은 것을 실천해야 한다는 의지를 갖는 일이 맹자가 말하는 ‘일삼음’일 것이다.
출처 : 맹자의 호연지기 - Daum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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