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전 서울 단성사에서 상영된 〈신들린 여인〉이라는 영화를 보면 빙의령에 의해 얼굴의 인상이 싹 바뀌는 장면이 있었다.
일반 관객들은 영화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생각하겠지만 필자 자신은 자주 그런 경험을 겪은 바 있다. 이번에는 부령(浮靈)이 되자 얼굴이 바뀐 경우와, 제령이 되면서 다른 사람의 얼굴로 변모가 된 이야기들을 몇가지 소개해 볼까 한다.
첫번째 이야기
이것은 진동수를 마시고 온 환자가 필자로부터 시술을 받은 뒤에 일어난 일이었다.
필자는 시술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몸에서 나쁜 가스를 빼어내기 위하여 젖은 수건을 쓰는데 (이 환자는 중년부인이었다.) 수건을 물에 담그니 물이 꼭 우유를 풀어놓은 것 같이 변하는 것이었다.
지난 몇년 동안 수천명의 환자를 다루어 보았지만 이런 일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별난 일도 다 있구나 생각하면서 시술을 끝내고,
“자아 일어나십시오.” 했다.
그 순간이었다.
맞은 편에 앉아서 부인 시술하는 것을 보고 있던 남편이 두 눈을 부비면서 부인을 거듭 보더니 한숨을 '후'하고 몰아 쉬는 게 아닌가.
“원장 선생님, 이거 큰일났습니다. 저 사람은 제 처가 아닙니다.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그게 무슨 당치도 않은 말씀이오. 사람이 바뀌다니요.” 하고 환자를 본 순간, 필자는 입이 딱 열린채 닫혀지지가 않았다.
조금 전에 시술실에 들어올 때와는 영 딴판인 얼굴의 부인이었다.
가느다랗던 실눈이 커졌고 약간 들창코였던 코가 아래로 내려앉았으며 갸름하던 뺨 모양이 바뀌었고 붉던 얼굴 빛이 희게 변한 것이었다.
하나하나 놓고 보면 작은 변화지만 전체 인상은 완전히 다른 부인이었다.
조금 전에는 성분을 의심할 만큼 야한 인상이었는데 지금은 품위있는 가정부인의 얼굴인 것이었다.
“왜들 그렇게 보십니까? 제 얼굴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는데 목소리도 카랑카랑하던 조금 전과는 달리 아주 유순한 느낌을 주는 음성이었다.
“이거 큰 일 났는데요. 애들이 저희 엄마 찾아내라고 하겠는데요. 이렇게 얼굴 인상이 바뀔 수가 있습니까?” 하고 남편은 탄식하는 것이었다.
필자가 다시 한번 영사를 해보니 6·25때 여덟살이었던 소녀에게 공습에서 죽은 부인이 딸로 잘못 알고 빙의했던 데서 빚어진 일임이 밝혀졌다.
그동안 이 부인은 빙의령의 생전의 모습을 자기 얼굴로 알고 살아왔던게 분명했다.
시술을 받는 순간, 빙의령이 놀라서 이탈했고 이 때문에 갑자기 얼굴의 인상이 바뀐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필자로서는 두고 두고 잊혀지지 않는 인상적인 사건이었다.
두번째 이야기
어느날 시술실에서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십니까?” 하고 내다보니 처음 보는 59세쯤 되는 남자가 들어서는 것이었다. 얼른 보아서 중풍(中風)을 앓고 있는게 분명했다.
“곧 보아 드릴테니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하고 필자는 다시 서재로 들어왔다.
잠시 뒤 손님을 보내고 응접실로 나간 필자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전에는 분명히 예순이 다된 노인이었는데 응접실에 앉아 있는 사람은 40세 가량 되는 중년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거죠. 아까는 분명히 예순이 다 된 할아버지로 보였는데 지금은 40대 분이시니……” 라고 해도 환자는 어리둥절해 할뿐 필자가 한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는 태도였다.
“어떻게 해서 오셨죠.” 하고 필자는 곁에 앉아있는 부인인듯 싶은 여인에게 물었다.
“네, 이분은 제 남편인데 혈압이 아주 높으십니다. 어지러운 증세가 아주 심해서 그래서 왔습니다”
“혹시 바깥양반이 혈압이 아주 높은 예순쯤 된 노인과 말다툼을 한 일이 있고, 그때 말다툼 도중에 그 노인이 졸도해서 죽은 사건이 없었던가요?”
“아니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그런 일이 있었는데요.”
“그 노인의 영혼이 빙의되어서 댁의 주인에게 이런 병이 생긴 것입니다.” 하고 필자는 빙의령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이 환자는 정식으로 〈제령〉을 받자 그 어지럽던 증세가 없어졌을 뿐 아니라 혈압도 거의 정상이 되었다고 한다.
세번째 이야기
마지막으로 아주 색다른 이야기 하나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지금부터 한 10여년 전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저녁때가 다 되었는데 누군가가 현관에서,
“안(安)형 계십니까?” 하는 소리가 들렸다.
필자도 그때 나이 50이 다 된 터이라 안선생이라는 이름만을 듣는 습관이 되었고, 안형이라고 불리워 보기는 정말 오랫만이었다.
누군가 하고 나와 보니 40여년 전 필자가 서울 문리대(文理大)에 다닐 때의 후배였다. 같은 국문과는 아니고 분명히 정치과(政治科) 다니던 한 반 아래 후배였다.
“아니 웬일이시오. 우리 집을 다 찾아오고.”
“네, 제가 간(肝)이 나빠서 간장염을 앓고 있는지가 1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병원치료도 받아보고 좋다는 약은 모두 써 보았는데 영 차도가 없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손에 잡히는 것이 아무래도 간경화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누가 소개하기를 안선배께서 체질개선법을 연구하셔서 많은 사람들을 체질개선시켜서 건강하게 해 주셨다고 하기에 찾아 왔습니다. 저를 소개한 사람도 간장이 나빴는데 안선배님의 시술을 받고 건강해졌다고 하더군요.”
“알았어요. 보아드리죠. 그런데 요즘은 어디 나가시오.”
“네, K대학 영문과 교수직을 맡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필자는 별 이상한 일도 다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분명히 학교 다닐 때는 정치과 학생이었는데 언제 영문학 공부를 해서 이름난 사립대학인 K대학의 교수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방안에 들어와서 자세히 살펴보니 간경화 증세가 분명한 듯했다.
“생각한것 보다 가볍지는 않군요. 진동수를 3개월 가량 복용하고서 시작하는게 좋겠군요.”
“진동수가 뭐죠?”
하고 묻는 그에게 필자는 자세한 설명을 해 주었다. 허나 모처럼 선배라고 찾아온 사람을 그냥 보내기가 안되어서 두 눈을 눌러 〈옴진동〉을 해 주고 진동수를 만들어서 세수를 하게 했다. 그런데 말이다.
잠시 뒤, 방안에 들어오는 그를 보니 아까와는 영 다른 사람이었다. 분명 그는 필자가 알고 있는 정치과 후배가 아니라 영문과 후배였던 시인 김용목(가명임)이었다.
“아아니 이거 김용목씨 아니야!” 하고 필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그럼 안형은 저를 누군줄 아셨습니까?”
“정치과 후배였던 박명식인 줄만 알았지 뭐겠오.”
“그럴 수가 있습니까? 이거 섭섭하군요.”
“아니 내가 김용목씨를 모를 까닭이 있겠오. 경기 후배고, 전에 D고교에 있을 때 한번 찾아간 일도 있었고, 현대문학지를 통해서 시인이 된 것도 알고 있는데!”
“그럼 어떻게 저를 몰라 보셨나요?”
“얼굴이 바뀌었기 때문이지. 아까 처음에 들어왔을 때는 분명히 박명식이었거든.”
“허긴 제 얼굴이 전과는 많이 달라진 게 사실입니다. 이 병을 앓게 되면서부터였죠.”
“자아 여기 거울을 좀 보라구.” 하고 필자는 거울을 들려 주었다.
“아니, 이럴 수가! 이건 분명히 병 앓게 되기 전의 제 얼굴인데요.”
놀라는 후배에게 필자는 자세히 설명을 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박명식은 4·19때 총상을 입고 오랫동안 병상에서 고생을 했고 얼마 전에 죽은 게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죽은 영혼이 빙의됨으로써 일어난 간장병이라는 것도 잊지 않고 설명을 해 주었다.
“어디 손 한번 봅시다.” 하고 후배의 손을 본 필자는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간경화를 나타내는 붉은 반점을 손바닥에서 하나도 찾아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환부도 만져보니 손에 잡혀지지도 않았다.
“깜쪽 같이 좋아졌는데요.” 하고 그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그 다음날 그는 필자를 다시 한번 찾아왔다. 자기는 카셋트 녹음기가 없고 구형인 릴 녹음기 밖에 없노라고 녹음 테이프를 가져 온 것이었다.
그뒤 2년 가까이 지냈지만 그에게서는 다시 아무런 연락이 없다.
그때 이후로 병이 완쾌되었기를 빌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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