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 베인/히말라야를 넘어서

05장

기른장 2022. 3. 22. 21:32

해발 약 1만 6천 피트의 큐라령嶺을 넘은 뒤 그 발치에서 우리의 고상한 친구들, 즉 산적들과 만나 흥분의 시간을 가진 우리는 덕분에 다소 늦게 해발 1만 1천 피트 담탕의 휴게 산막에 도착했다.

 

티베트는 평균 높이가 해발 1만 피트에서 1만 2천 피트에 달하고, 사방이 만년설을 인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1만 5천 피트에서 2만 피트 높이의 준령들을 넘어야만 접근이 가능하다. 그 준령들 중 많은 수가 겨울에는 지나다닐 수 없다. 티베트는 60만 평방 마일이 넘는 면적을 차지하고 있고, 그 안에 약 2백만 명이 살고 있다. 그들 중 단순히 생존 차원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일부는 상대적으로 부유하여, 빈부의 격차가 아주 컸다.

 

비록 늦은 저녁이었지만 아직도 햇빛이 남아 있었다. 해가 텐첸 사원 뒤의 산맥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사원은 약 5마일 떨어진 산허리에 감추어져 있었다.

 

우리는 그날 밤 산막에서 지낸 뒤 다음 날 아침 10시경에 양탕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짐꾼이 요리 도구들을 꺼내고 불을 피운 뒤 닭구이와 감자구이를 맛있게 요리했다. 우리는 그날 긴 여정을 소화했고 거의 먹지를 못했다. 자연히 허기가 졌기 때문에 우리는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그것은 이제까지 내가 먹은 음식 가운데 가장 맛있었던 것 같다.

 

짐꾼은 아코디온을 잘 다루었다. 나는 그에게 노래 몇 곡을 연주하게 시켰다. 그 소리는 낭만적이었고 주변과 잘 어우러졌다. 산막 앞에는 깊은 협곡이, 뒤에는 산이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메아리가 명확하게 생겼다. 세계 어느 곳도 그곳보다 더 메아리가 잘 들리는 곳을 나는 경험하지 못했다. 그 소리는 마치 두 사람이 떨어져서 동시에 연주하는 것 같았다. 마치 서로 주고받는 듯 장단이 척척 잘 맞았다. 우리는 11시가 훨씬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피곤했던 터라 통나무처럼 잠에 빠졌다.

 

아침에 깨어보니 태양이 막 떠오르고 있었다. 나는 부득이한 경우를 빼고는 결코 일출과 일몰을 놓쳐 본 적이 없다. 이곳에서의 일출은 내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놀라운 색상의 향연은 내 안에 티베트의 신비스러운 느낌을 일깨워주었다. 그만큼 티베트는 신비로 드리워져 있었다. 티베트에는 극도의 미신과 최상의 숭고함이 나란히 존재했다.

 

사실상 티베트는 지극히 어두운 무지와 위대한 지혜가 함께 하는 극단적인 땅이다. 이곳에서는 기적들이 숨 쉬는 것만큼이나 쉬운 것 같다. 거친 자연은 야생중의 야생이다. 그러면서도 지극히 아름다운 산들과 협곡들이 존재한다. 크고 작은 폭풍과 고요함이 있고, 한 낮의 열기와 밤의 냉기가 반복된다. 하나가 사라지자마자 거의 동시에 다른 하나가 들어온다. 인간성도 지독한 더러움과 지극한 섬세함, 최악과 최상이 병존한다. 이곳은 진정으로 극단과 극단이 대비되는 나라이다.

 

이런 상념들이 마음에 지나가는 동안 햇살이 텐첸 사원의 정문에 부딪히고 있었다. 멀리서 길고 깊은 음색의 총가 소리와 거대한 징소리가 라마들의 옴 마니 반메 훔 영창 소리와 함께 들려왔다.

 

협곡을 내려다보니 산 그림자가 사라지고 있었다. 이상한 경이감이 느껴졌다. 대기는 차갑고 청명했다. 바람이 향 내음을 실어오고 있었다. 그러자 경치가 더욱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태양이 산 위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세차게 흐르는 강물이 협곡을 따라 실처럼 이어져 있었다. 반짝이는 분무가 무지갯빛으로 반사되었다. 기묘한 음악, 라마들의 깊은 음성, 향내음. 이것들만으로도 여기 온 보람이 있었다.

 

어떤 사원들은 거대한 향단지를 계곡을 마주하는 정문에 설치하여 향을 끊이지 않고 계속 피우고 있었다. 해가 솟아오르면서 전체 분위기가 내게 수천 년 동안 감추어져 온 어떤 신비한 힘이 계시될 것만 같은 기대감을 선사하였다.

 

텐첸, 걈두, 양탕, 세 사원이 서로 수마일 안에 위치해 있었다. 그중에서도 양탕 사원이 가장 멀었다. 양탕은 황모파의 사원으로 내가 먼저 찾아가야할 곳이었다.

 

우리는 길을 따라 내려갔다. 길은 거칠게 흘러가는 강변을 따라 나 있었다. 계곡 위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물방울이 얼굴에 튀었다. 산들이 깔때기 역할을 하여 바람이 강하게 불어왔다. 심지어 길 위의 작은 돌들이 얼굴을 때려왔다.

 

우리는 대나무 로프를 엮어 만든 약한 다리에 이르렀다. 그 위를 걸으니 좌우로 흔들렸다. 다리는 강의 양 측면으로부터 매달려 있었다. 강물이 두 개의 거대한 암반 사이로 거세게 돌진해 와서 깊은 협곡을 이루고 있었다. 대나무 로프가 툭 끊어지는 날이면 나는 황천행이었다. 저 거대한 빙하의 급류 속에 떨어져 살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기 때문이다. 청백색의 포말이 바위 양 측면을 거세게 때리고 있었다.

 

우리는 맞은편으로 건너 간 뒤 약 2마일 정도 가파른 경사를 올라 양탕 사원에 도착했다. 라마들에게 있어서는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오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이 낯선 광경이었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과거에 서양인이 그곳에 온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약간 기분이 묘했다. 내 곁에 얘기해 줄 나의 스승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게쉬 린포체가 내게 준 서찰을 통해 나를 소개할 수밖에 없었다.

 

사원에 도착하자 통역이 나를 대신해 얘기했다. 그가 우리를 마중 나온 라마에게, 내가 게쉬 린포체로부터 다르 창 원장에게 전하는 서찰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였다. 나는 이미 인내심을 배운 상태였다. 이 신비한 금단의 땅에서는 아무 것도 빨리 움직이지 않았다. 한 참 뒤 나는 사원을 둘러봐도 좋다는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안내 라마는 아주 지적인 얼굴을 지닌 연로한 사람이었다. 그가 나를 바라보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것은 깊은 경이감이었다. 나는 그의 생각이 짐작되고도 남았다. '여기서 당신이 원하는 게 뭐요?' '당신 어디서 왔소?' '당신 사는 곳은 어떤 곳이오?' '게쉬 린포체로부터 받은 서찰에는 뭐가 적혀 있소?'

 

양탕 사원의 벽은 거칠게 잘라낸 거대한 돌들로 지어져 있었다. 이 건물의 총무게를 따지는 것은 불가능했다. 벽의 두께는 7피트정도 되었다. 거대한 돌들이 놀라운 기술로 차곡하게 쌓아져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지어졌는지, 나로서는 하나의 신비였다.

 

지붕은 약 2인치 두께의 노란 슬레이트로 덮여 있었다. 황모파 사원이기 때문인 모양이다. 지붕을 채색하는 방법은 대량의 노란색 안료를 만들어 지붕 위에 씻듯이 쏟아 붓는다고 한다. 벽도 마찬가지 방식인데, 흰색 안료를 사용한다.

 

나는 거대한 중앙 홀을 통해서 1층으로 들어갔다. 사방에 보관소들이 있었고 그 위에는 신들을 모신 작은 사당들이 있었다. 이 사당들 안에는 많은 금은 조상들이 있었다. 그 값어치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고가이다.

 

법당 위에는 사원의 여러 도구들을 두는 다양한 방들이 있었다. 거대한 본당 주위에는 라마들이 거주하는 부속 건물들이 있었다.

 

대법당의 문은 링마탕의 그것처럼 크기가 거대했고, 양 측면에는 금술이 달린 커다란 능라 휘장이 드리워져 있었다. 대법당 주위에는 멋진 벽화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것들은 그 지방의 수호신과 악마들이었다. 좌측면에는 생명의 바퀴가 있고, 진언 '옴 마니 반메 훔'과 더불어 무수한 기도문들이 가득 적힌 커다란 기도 바퀴가 양옆에 있었다. 기도 바퀴의 높이는 약 8-10 피트, 지름은 약 5-6 피트정도 되었다.

 

기도바퀴는 크랭크 핸들로 돌렸다. 한 번 돌 때마다 벨이 울렸다. 이것은 죄를 사함 받았다는 신호이다. 사원의 벽면 주위에는 작은 기도바퀴들이 있었다. 라마가 지나가면서 그것을 손으로 돌렸다. 그것은 공덕을 쌓는 행위로 여겨졌다.

 

나는 보석들이 박힌 많은 금불상과 비단 깃발들을 보았다. 아마도 수천 파운드의 가치는 될 것이다. 사원은 사방이 온통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내 몸의 두 배는 됨직한 튼튼한 나무 기둥들이 천장을 받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 주위에 진귀한 디자인의 기다란 비단 띠들이 걸려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라마들의 작품으로, 사원을 수호하는 신들 뿐만 아니라 붓다들과 성자들을 묘사한 것이었다.

 

법당의 저 끝에는 제단이 있었고 발치에는 금과 은으로 된 수백 개의 버터 등잔들이 타오르고 있었다. 불이 계속 타오르도록 라마가 등잔들에 야크 버터를 계속 채워 넣었다. 달라이 라마만이 사용할 수 있는 제단 옥좌의 꼭대기에는 아름다운 비단 능라 천개天蓋가 매달려 있었다. 우측에는 보다 낮은 자리가 있었다. 그것은 의식 집행자의 자리였다. 좌측에는 원장이 앉는 자리가 있었다. 의식의 집전자는 예불을 인도하고 원장은 라마들에게 설법을 하였다.

 

그 앞에는 고위 라마들을 위한 자리들이 있었다. 그리고 바닥으로부터 약 6인치 높이로 긴 열의 자리들이 많이 있었다. 그 자리들은 법당의 위와 아래로 모두 한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라마들이 연화좌 자세로 앉았다. 예불이 진행중이었다. 사이사이에 차를 마시는 시간이 있었다. 차를 나누어주는 사람이 차를 따라주었다. 각각의 라마는 자기 찻잔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하루 종일 수시로 차를 마신다고 한다. 거무칙칙한 공양간에는 높이 약 5피트, 직경 약 4피트의 거대한 무쇠 솥들이 있었다. 차는 그 솥들에서 끓여졌다. 그 속에 중국차와 냄새 고약한 버터 덩어리와 소금을 넣고는 하루 종일 계속 달였다. 필요할 경우 물과 다른 재료들을 첨가했다. 수백만 파운드의 차가 매년 티베트로 수입된다고 한다. 하루에 한 사람이 먹는 평균 양은 20-30잔에 달했다.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 차가 계속 공급되었다.

 

법당 중앙에는 총가와 징들이 놓여 있었다. 총가의 길이는 대략 10피트가 넘었다. 거대한 징은, 직경이 약 5-6피트 되었다. 총가들은 금박이 된 받침대 위에 놓여졌고, 징들은 금박이 된 두 기둥 받침 위에 놓여 있었다.

 

일련의 라마들이 총가를 부르면 그것이 끝나기 전에 다른 라마들이 불었다. 그렇게 연속적으로 소리가 이어지며 울렸다. 사이사이에 깊은 저음의 징소리가 사원 전체를 울렸다. 이것은 라마들의 '옴 마니 반메 훔' 영창의 '옴'과 '훔' 소리에 맞추어 울렸다. 그 사이에 수 백 개의 작은 종소리가 짤랑였다. 이 모든 것이 의식 집전자의 인도에 따라 진행되는 것 같았다.

 

내가 법당 안에서 진행되는 의식에 깊이 빠져 있는 동안 서찰이 마침내 다르창 대사에게 전달된 모양이었다. 한 라마가 나를 다르창의 방으로 안내하였다.

 

나는 그의 너무도 젊은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가 내게, 내가 잘 아는 힌두어로 말을 걸어왔다. 그의 힌두어는 아주 뛰어났다. 우리는 원활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나는 통역을 통하지 않고 말할 수 있어서 기뻤다.

 

그는 나를 만날 수 있어서 기뻐했다. 게쉬 린포체의 서찰에 만족한 듯 보였다. 티베트어로 씌어져 있었기 때문에 나는 린포체가 나에 대해 뭐라고 말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덕분에 그가 나에 대해 큰 호감을 갖게 되었음에는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극히 높은 라마를 만나려고 할 때 당하는 냉대를 나도 받았을 것이다.

 

나는 그에게 어떻게 힌두어를 배우게 되었는지 물었다. 그러자 자기를 가르친 요기Yogi가 인도인이었다고 말하였다. 나는 그 얘기가 흥미로웠다. 왜냐하면 나 역시 인도 요기와 함께 지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말했다. "사원에는 당신보다 훨씬 더 연로한 라마들이 많은 걸 보았습니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어떻게 이 거대한 사원의 원장이 될 수 있었죠?"

 

그가 대답했다. "나는 그들보다 나이가 더 많아. 그렇게 안 보이지?"

내가 물었다. "높은 식견과 연륜을 가지고 계시니 당신은 신이니 지옥이니 하는 것들을 믿지 않으시겠죠?"

 

"오, 그럼." 그가 대답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다른 아무 것도 모르고 자라왔어. 투모술을 마스터한 나의 제자들은 의식儀式과 미신이 단지 마음에 영향을 미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모든 사람에게 그걸 가르칠 수 없어. 그렇게 되면 내 목숨이 위태롭게 될지도 몰라. 사실상 목숨 부지하기 어렵지! 이 나라의 종교가 그런 식이야. 우리는 말하자면 서양의 종교 재판 시대를 지금도 살고 있는 것이지."

 

그가 성직자들의 야만성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에 나는 놀랐다. 내가 말했다. "법이 없다면 우리는 아마 지금도 박해를 받겠죠?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종교적 광신에서 아주 멀어져 가고 있어요. 그 때문에 서구의 교회들이 대부분 텅 비어 있죠."

 

내가 계속 말했다. "인류는 종교, 국적, 그룹, 신조, 관념 등에 의해 나누어져 있어요. 그것들이 얼마나 거짓된 것인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일단 사람들이 그것들의 허구성을 알게 된다면 그것들을 버릴 거예요. 그리고 그 때 비로소 우리가 모두 하나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인류는 한 생명의 진리를 통해 자기 자신을 해방시킬 거예요. 유일한 실재, 유일한 진리가 그들을 자유케 할 겁니다."

 

"핵심을 말하는군." 그가 말했다. "관념들이 의식적 마음에 전달되면 그것은 무의식으로 전달되지. 그러면 그것들은 기존의 신조나 관념에 의해 즉각적으로 받아들여지거나 거부돼. 그것은 이해가 아니야. 그것은 무지야. 하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 왜냐하면 신조나 관념이 그들에게는 실재이기 때문이야. 그들은 관념이 무엇인지, 그리고 환경이나 모방에 의해 마음속에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아직 알지 못해. 따라서 그들은 혼란과 적대감 속에 있게 되고 세계는 전쟁과 불행을 겪게 되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내가 말했다. "나는 종교나 기타의 지도자들이, 무분별한 대중들이 받아들이는 주장을 펼치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대중은 깃발을 흔들고 소리치지요. 이것은 무지한 군중입니다. 대중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조사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종교적 광신과 극단적 국수주의에 빠진 지도자들은 우리 문명의 저주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위험에서 피해야만 돼요. 그들은 계명되지 않은 인류에게 많은 고통의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맞는 말이야." 그가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최악의 것은 사람들이 증오심에 찬 상태로 사랑의 신에게 기도를 드린다는 것이지. 그들의 기도는 우상숭배야. 증오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이해할 때에만 그들은 사랑의 신에게 어떻게 기도하는지 알게 될 거야.

 

"분리 속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 자신이 만든 거짓된 신에게 기도를 하지. 우리가 세계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거짓된 예언자들의 가르침이 바로 그것 아닌가? 각각의 종교 그룹들이 자신들의 종교만이 진리라고 주장하면서, 그걸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들에게 온갖 무시무시한 형벌이 내린다고 선전하지. 그런 미신 때문에 인간은 무지 속에 계속 갇히게 되고 혼란과 공포에 빠지게 되는 거야."

 

나는 또 한 명의 친구를 발견하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급속히 친해졌다.

"내 생각에 여기 머무는 동안 자네가 교사의 법복을 입는 것이 좋을 거 같군." 그렇게 말한 그가 내게 자주색 옷을 건네주었고, 나는 그것을 입었다. "게쉬 린포체가 서찰에서 자네가 프라나야마와 치유의 달인이라고 말하더군."

 

나는 세계 곳곳에서 많은 치유를 해왔고, 아주 성공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 공을 나를 초월한 어떤 힘에게로 돌렸다.

"그래." 그가 나의 말에 동의했다. "우리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때 영이 우리를 통해 현현하게 되지."

 

그가 직접 티베트어로 주석을 단 책을 한 권 꺼내더니 페이지를 펼쳐 거기 씌어진 글을 읽었다. "자기 목숨을 구하려고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포기한 자는 그것을 얻을 것이다." 그가 말했다. "이 책 속에서 나는 위대한 마스터들의 말들을 실었어. 이 말씀은 진리야."

 

그러고 나서 그가 갑자기 화제를 바꾸었다. "자네는 사대, 냉기와 열기의 지배술인 투모에 대해 알기 위해 여기에 왔지. 자네는 시간을 너무 짧게 잡았어. 그것은 아주 어려운 오컬트 과학의 하나야. 왜냐하면 그것은 무엇보다 느낌, 감각이 아주 중시되기 때문이지."

 

"예. 시간이 제한돼 있다는 것은 압니다. 하지만 저는 투모의 과학을 실제로 완전히 이해하고 마스터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련을 통해 최소한의 적용만 할 수 있을 정도면 됩니다."

"그렇다면 지체할 필요 없이 시작하도록 하지."

 

그가 나를 그의 내실로 데려갔다. 거기서 우리는 아주 편안한 쿠션 의자에 앉았다.

 

"자," 그가 가르치는 자의 톤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하나의 생명만이 있어. 몸은 그 생명과 떨어져 사는 것이 아니야. 이 점은 자네에게 이미 단순한 관념이 아닐 거야. 생명만이 의식을 가지고 있어. 육체가 가지고 있는 의식은 생명이야. 신경계통과 혈관계통을 통해 생명은 육체 전체에 스며들어 있어."

 

나는 그의 완벽한 해부학적 지식에 감탄했다. 내가 그 사실을 말하자 그가 대답했다. "투모를 실행하려면 해부학을 알아야만 돼. 모든 형상은 안 보이는 질료를 통해 생겨나. 그것은 모든 형상의 기초이지. 그것과 분리된 형상은 존재하지 않아. 그 불가시不可視의 질료는 그것에 대한 의식을 변화시킴으로써 응고돼 가시화될 수 있어. 반대의 과정을 통해 고형의 물질도 불가시의 질료로 용해될 수 있지.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문제점은 그들의 의식이 훈련돼 있지 않다는 거야. 그래서 그들의 느낌이 방해 요소가 되지."

 

나는 그의 말을 아주 주의 깊게 들었다. "자네도 잘 알거야. 치유 작업 속에서 감정과 두려움이 환자의 치료 과정에 방해가 된다는 것을 말이야."

 

내가 대답했다. "너무 잘 압니다.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의식의 변화가 필요하지요."

 

"맞아." 그가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심인성이든 체인성이든 어떤 질병의 원인과 치료를 고려할 때 우리는 질료가 우리의 상념과 느낌에 가소可塑적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되지. 이 이점은 투모의 실행에 있어서는 훨씬 더 중요해. 정신 과정을 완전히 이해함으로써 자네는 오류의 결과인 특정한 상태를 녹여 없앨 수 있게 돼."

 

"그렇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열기와 냉기는 실재 안에는 존재할 수 없어. 이 상태들은 오로지 마음속에서만 존재해. 만물의 바탕인 영은 더위나 추위에 영향 받지 않아. 열기와 냉기를 함께 일으키면 둘 다 사라져버려."

"이해됩니다." 내가 말했다.

 

"자," 그가 계속 말했다. "아움Aum의 진동을 사용한 호흡 수련을 통해 그것이 가능해. 아움의 진동이 몸 전체에 퍼지도록 하는 거지. 그러면 너는 주관적인 상태에 빠지게 돼. 그 속에서 원소들을 컨트롤하는 거지. 그렇게 열기와 냉기의 원소들을 지배하는 거야."

 

내가 말했다. "이제 알 것 같습니다."

 

"그래.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야. 창조의 소리인 아움을 계속 반복함으로써 주관적 의식은 창조와 분해, 양자의 힘에 대해 자각하게 돼. 왜냐하면 둘은 분리된 두 개의 원리가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이지. 아움의 소리는 모든 피조물 속에서 들을 수 있어. 광물, 식물, 동물, 인간 그 모든 형태 속에서. 아움은 기본적인 소리야. 유일한 차이점이라면 진동의 차이지.

 

"창조력이 너의 의식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아움의 소리를 발성하면 에테르파와 음파가 함께 혼합되게 돼. 그러면 너의 상념은 전자기적이 되지. 그것은 가시可視와 불가시不可視 질료의 통제 요소야. 음파는 질량을 지닌 질료의 파동이야. 너는 그것의 크기를 위아래로 조정할 수 있어. 불가시의 상태에서 가시의 상태로. 둘 사이에는 구분이 없어.

 

구분은 외형적인 것일 뿐이야. 의식 속의 창조적 상념이 에테르 속으로 불가시의 파장을 보내고, 소리는 그것들이 가시화되게 만들지. 이것이 바로 소위 물현이라는 거야. 그 반대는 환원이지. 이해가 되니?"

 

"예." 내가 대답했다. "의식儀式 중에 영창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거의 모르고 있다는 것 또한 알겠습니다. 또 조화로운 진동을 발산하는 소리의 치유력이 심신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알겠습니다."

 

"그 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소리의 색깔이야." 그가 말했다. "색깔은 우리의 에테르체와 아스트랄체에 영향을 미치지. 생명의 호흡을 하면서 정확하게 '아움'을 발성하면 우리 육체의 모든 세포들을 조화롭게 하고 젊음을 유지해 주지. 이것이 일반적인 지식이 되면 위대한 문명이 흥기할 거야.

 

"유일한 힘은 대령大靈으로부터 나와. 그것은 전체야. 그것은 모든 곳에 항상 편재해. 그것은 인간을 포함한 만물의 원천이야. '지금'은 영원이야. 시간 같은 것은 없어. 인간의 마음 속 외에는 과거나 미래는 존재하지 않아.

 

"자, 그러면 내가 시키는 대로 숨을 쉬어봐. 날숨을 쉬면서 '아움' 소리를 내. 너에게 맞게 소리를 내야 해. A키로 해 봐."

 

나는 그가 지시하는 대로 호흡을 시작했다. (자세한 설명은 여기에 싣지 않겠다. 왜냐하면 비입문자에게는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니 유사 트랜스 상태가 왔다.

 

"자, 다시 숨을 내쉬면서 '아움' 소리를 내. 그 소리가 머리에서 발까지 흐르도록 해. 그 진동을 느끼면서 생명파를 보내. 그것을 의식하면서 몸 전체로 보내. 그러면 몸이 불에 댄 것처럼 느껴질 거야. 그 열기에 대한 느낌이 너를 도와줄 거야. 이제 이해되니?"

 

"예, 이해됩니다." 내가 말했다. 나의 몸이 불에 댄 것처럼 달아올랐다. 내가 덧붙여 말했다. "느낌이 기초라는 걸 이제 알겠습니다." 수차례 연습한 뒤 나는 진짜로 해 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어느 날 아침 우리는 산을 등산하기 시작했다. 거의 하루 종일 산을 오른 우리는 저녁 9시경에 설선雪線에 이르렀다. 해가 떨어지자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얼어붙기 시작했다. 나는 투모에 능숙한 두 명의 제자 사이에 앉았다. 나는 배운 대로 투모를 실행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굉장한 열기가 올라와 내 주변의 눈이 녹기 시작해 마치 작은 시냇물처럼 물이 줄줄 흘렀다.

 

나는 이것이 나의 노력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내 곁의 두 제자에 때문인지 물어보았다. 다르창이 말했다. "너는 아주 잘했어. 곁의 두 사람은 단지 너를 돕기 위해 둔 거야."

 

나는 결과에 무척 기뻤다. 그러나 투모의 달인이 되기 위해서는 수년 동안의 수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투모를 하는지 알기를 원했고, 만족스러웠다. 나는 그로부터 10일 동안 계속 투모를 수련했다. 그 사이 사원의 연례행사가 다가왔다. 그 때 나는 원소들의 통제로 열기와 냉기를 다루는 모습을 실제로 볼 수 있었다.

 

다르창과 두 명의 수제자가 활활 타오르는 불에서 백열의 쇠막대기를 꺼내더니 입 속에 집어넣었다. 입 속의 물기에 지글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입 속에서 그 백열의 쇠막대를 둥글게 말았다. 그런데도 입에는 덴 흔적이 하나도 없었다. 그 쇠막대기들은 너무도 뜨거워 가까이 댈 수조차 없었다.

 

다른 사원으로부터 온 라마들, 인근 마을에서 온 사람들이 이 사원의 종교무와 퍼레이드를 관람했다. 나중에 다르창은 두꺼운 강철을 가지고 와서 그걸 비틀어 매듭을 지었다. 그는 그것을 환원의 기술로 행하였던 것이다. 그의 손속에서 강철이 엿가락처럼 되었다. 그는 그것을 철사줄처럼 비틀어 매듭을 지어 묶어 놓았다.

 

내가 그 매듭지어진 강철을 손에 쥐고는 온 힘을 다해 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직후 다르창은 그것을 쥐고는 매듭을 풀어 다시 원래대로 곧게 펴 놓았다. 정말 믿기 힘든 일이었다.

 

그렇게 할 수 있으려면 몇 해의 수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그렇게 해도 성공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나 내 눈으로 그것을 보았기 때문에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가능하다는 확신이 들었다.

 

열 원소를 통제하는 것은 냉기를 다루는 것과 동일하다. 하지만 통달하는 데는 전자가 후자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린다. 무엇보다 의식의 '상태'가 중요하다. 의식적으로 깊은 주관 의식 상태에 들 수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두려움과 느낌을 완전히 정복해야만 통제력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외부세계에서는 이런 일이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외부 세계가 이런 것들이 실행되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행해진 것은 사실로 남아 있다. 자신들이 모른다고 해서 부인하는 자들은 자신의 무지만을 드러내는 것이다.

 

예수는 수많은 사람들을 먹이고, 물 위를 거닐고, 무리 중에서 사라지고, 물을 포도주로 바꾸고, 병자를 치유했다. 이런 사실을 설하는 사람들도 다음 순간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부인한다.

 

예수는 위대한 마스터였다. 그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일들을 했다. 그러나 동일한 힘이 당시에게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원한 현존이기 때문이다.

 

물질의 고형성에 대한 관념과 우리 자신의 무능력에 대한 관념만 없앨 수 있다면 우리는 기적을 행할 수 있다. 예수는 이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이렇게 말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일들을 했지만, 깨닫기만 한다면 너희는 이것보다 더 위대한 일들을 행하게 될 것이다." 그는 또한 믿음이 산을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신의 믿음은 이런 사람의 믿음과 같아서는 안 된다. 집 앞에 언덕이 있는 어떤 여자가 있었다. 그 언덕 때문에 바다 경치가 가려졌다. 그녀가 성경에서 이런 글귀를 읽게 되었다.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을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녀가 창가로 가더니 언덕을 바라보며 말했다. "언덕이여, 들리어 바다에 빠져라." 다음 날 아침 일어난 그녀가 창가로 갔다. 하지만 언덕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녀가 외쳤다. "그러면 그렇지 움직일 리가 있나."

 

세계 곳곳에서는 이른바 믿음을 통해 치유가 일어났다. 소위 불치병이라는 것들도 믿음을 통해 무수히 치료돼 왔다. 나 역시 수백 건의 기적적인 치유 사례가 있다. 그러나 나는 이점을 잘 알고 있다. '내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고 나를 통해 역사하는 것은 아버지의 영이다.' 치유가와 환자 사이에는 동일한 하나의 생명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상투어가 되어서는 안 되고 시간과 관념과 마음을 초월한 지금 이 순간의 살아있는 체험이 되어야만 한다. 마음속에 있는 것은 단지 그것에 대한 관념, 그것에 대한 믿음에 불과할 뿐 그것 자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신이란 단어는 신이 아니다. 당신이 신에 대해 당신의 마음속에 구성해 놓은 것은 신이 아니다. 당신이 실재를 가리고 있는 말, 관념, 믿음의 허구성을 인식할 때에만 실재는 현현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시간에 속하지 않은 생명이 매 순간마다 새롭게 태어나게 된다.

 

과거가 된 순간을 다시 붙잡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소용없는 짓이다. 왜냐하면 과거가 된 순간은 살아 있는 '지금'이 아닌 기억이 되기 때문이다. '지금'은 영원한 생명이다. 당신은 그것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만을 안다.

 

그것이 다시 올 거라고 상상하는 것은 결코 오지 않는 '내일'과 같다. 내일은 항상 내일이다. 무언인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항상 지금 있는 어떤 것을 추구하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결코 그것을 실현할 수 없다. 그것은 오로지 살 수 있는 것이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지금 존재한다! 항상 순간순간 영원한 현재 속에 살고 사랑과 자비의 표현을 통해 매 순간 그것을 경험할 때 거기에는 옳거나 그른 것도 과거나 미래도 없고 오로지 영원한 현재만이 존재한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그러므로 길을 막고 있는 자아가 녹아사라질 때에만 실재는 현전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생명이다. 생명은 사랑이고 사랑은 실재이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기 위해서는 당신은 진아를 사랑해야만 한다. 이웃 속에 당신의 진아가 있다. 왜냐하면 실재 속에는 분리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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