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BOOK/도인(道人)

도인(道人)② - 5. 야간 수업

기른장 2025. 4. 24. 22:03

5. 야간 수업

4명의 도교 수행자는 화산의 은거지로 돌아왔다. 그들의 목숨을 빼앗으려는 시도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여행 중 일어났던 사건에 관해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사이훙은 약속 어음과 편지를 지니고 왔다. 그것들은 말없는 증거인 셈이었다. 사이훙은 북쪽 봉우리 문에서 양식, 보석, 천, 헌금, 약속 문서 등을 수행자들에게 전달하고 수도 생활에 복귀할 준비를 했다.

여행은 사이훙에게 강장제가 되었다. 새로운 결의를 다지면서 절식을 하고, 하루 네 차례의 경전 암송, 여러 과목의 수업과 힘든 노동, 그리고 강도 높은 명상을 할 채비를 했다. 그는 입산 수도를 하며 부딪치는 힘든 도전을 극복하고 스스로 불굴의 의지와 영적 인식력 ― 도관의 고독한 수도 생활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믿는 ― 을 쟁취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쳐 다시 헌신했다. 속세에서 돌아온 후로 그의 내면세계에는 일시적이지만 뭔지 모르게 충만한 만족감이 생겼다.

대사부는 항상 그에게 가르쳤다.

「생에서 누릴 것은 다 누려 보아라. 그 다음에는 은둔하라.」

대사부는 사이훙이 인생으로부터 맛볼 수 있는 최선의 것을 경험한 후 점차로 철학적 통찰력을 얻음으로써 영혼의 성장에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을 단념하기를 원했다. 이렇게 사이훙은 지나온 과거를 아무런 후회 없이 버리고 떠나면서 인생의 몇 단계를 거치면서 성장할 것이다.

대사부는 유능하고 양심적인 스승이었다. 그는 신중하게 제자들을 지도했다. 그가 지식을 전수하는 데 중요한 비중을 두는 저녁반에는 수강생이 단 몇 명밖에 없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며칠 뒤의 어느 날 밤, 사이훙, 두사형, 그리고 다른 제자 하나가 사부의 방에서 만나 수업을 했다. 사부는 명상대에 앉았지만, 제자들은 마룻바닥에 앉았다. 사부는 우아하게 옷소매를 말아 올리고 명상대의 팔걸이에 오른팔을 걸치고 있었다.

이윽고 대사부가 수업을 시작했다.
 
「오늘 밤은 수업을 약간 다른 방식으로 시작할까 한다. 항상 너희들이 나에게 질문을 했지만 이 시간에는 내가 질문을 던지겠다.」

그 질문은 이런 내용이었다.

「도교는 무엇인가? 사이훙, 너는 아홉 살 때부터 계속 나와 함께 여기서 살았다. 분명히 너는 올바른 답변을 할 수 있겠지. 자, 네가 대답해 봐라.」

사이훙은 얼굴이 빨개졌다. 극도의 긴장감 때문에 죽을 것만 같았다. 답변을 논리 정연하게 엮어 보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모든 사물에 배어 있는 어떤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 막강해서 신들조차 그 밑에 종속되어 있는 광대한 우주를 향한 운동이요 힘이요 전진일 뿐입니다. 이 힘은 너무 거대하여 인간은 고작 일부분만 인식할 수 있을 뿐입니다. 별자리, 사계절, 자연의 변화, 문명의 역사, 이 모든 것은 도를 드러내지만 자체로 파악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주의 형이상학적 요소 ― 만물, 5원소, 음양 ― 는 도의 일부분 일뿐 전체는 아닙니다. 인간은 도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지만, 도의 원리를 배울 수 있고 도와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인간이 삶의 흐름을 좇아가면 불사의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도는 신, 현인, 도를 깨달은 인간들에 의해 전해져 왔지만 도에 무지한 인간은 아무리 노력을 해봐도 헛일이었습니다. 현인들은 우리를 해방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도의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도교는 신자들이 계속 탐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내면적인 연금술과 외적인 연금술을 개발하고 경전과 명상을 발전시켰습니다. 이상은 제가 이해한 도교를 간단히 요약한 것입니다.」

대사부는 눈을 감고 앉아 사이훙의 설명을 경청했다. 잠시 침묵을 지키다 눈을 뜨고 그의 젊은 제자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것이 전부냐?」

사부가 물었다.

「지금 이 시간에, 이제껏 제가 터득한 것을 모아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사이훙은 머뭇머뭇 대답했다.

「네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아마도 도를 이해하는 정도가 그리 깊지 않은가 보구나. 우리는 도 자체를 먼저 다루어야 한다는 네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도는 우주 전체의 진정한 뼈대임을 먼저 확실히 해두자. 우선 관찰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현상의 세계에는 질서가 있느니라. 별과 위성과 사계의 규칙적 순환을 보면 우주를 깨달을 수 있다.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여기서 말한 것이 존재하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더욱 심오하게 질문을 해봐야 한다. 우주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주의 모든 것은 어디에서 왔는가? 누구는 대답하기를 신이 우주를 창조했으며 우주를 지배하고 있다고 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만족스럽지 못한 답변이다. 왜냐하면 그 다음으로 우리는 〈신들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의문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전이나 단순한 민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신 자신도 인과에 종속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주의 기초적인 힘을 탐구하다 보면 신을 능가하는 어떤 힘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질적인 사물의 근원과 관련이 있는 어떤 힘이 틀림없이 존재한다.

내가 힘을 거론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거라. 우주는 물질로 환원될 수 없다. 바위를 아무리 곱게 빻아도 인생, 움직임, 시간, 차원 등을 설명할 수는 없다. 아니, 자연도 신도 물질도 우주의 궁극적 구조는 아니다. 경전에 이르기를 〈존재는 비존재가 낳는다.〉고 한다. 이 말을 되새겨 봐라. 우주의 유일한 가능성이요, 전적으로 환원이 불가능한 우주의 기원은 비존재일 수 있다. 단지 비존재만이 환원될 수가 없는 것이다.
 
태초에는 무였다. 무에서 하나의 우연한 생각이 터져 나왔다. 생각은 무의 정지 상태 속에 움직임을 일으키고 그 결과 무한한 파문이 일어났다. 움직임은 기를 발생시켰다. 이것이 생명의 원천이 되는 호흡이니라. 호흡은 5원소로 응결되었다. 금속, 물, 나무, 불, 흙이 그것이다.

그 다음 이 혼돈 상태는 음과 양에 의해 조직화되었다. 호흡은 들숨과 날숨이다. 우주는 그 원칙과 질서로 정돈되었다. 양극단 사이의 상호작용과 긴장 속에서만 운동과 진화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상호작용은 마침내 신, 인간, 무수한 현상들을 낳았다. 처음에 떠오른 생각은 원시 상태의 잔잔한 연못 속에 돌 하나를 떨어뜨린 것과 같은 효과를 냈다. 그 뒤에 나타난 모든 것을 도라고 부를 수 있느니라.

따라서 도는 전적으로 환원 불가능한 것은 사실 아니다. 전적으로 환원 불가능하다는 정의에 합당한 것은 오직 무(無)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는 무와 약간 떨어져 있을 뿐이다. 도는 무와 밀접한 상호작용을 벌인다고 말할 수 있겠다. 도의 변화와 보이지 않게 일어나는 도의 변환 작용 ― 연못 위의 파문들 ― 으로 하늘과 땅과 만물이 생겨났다. 그것들은 여전히 도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말은 신비의 지혜에 이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는 길을 암시하고 가리킬 수 있을 뿐. 너희들 스스로가 이것을 인식해야만 하느니라. 내 말이나 앞서 깨달은 이들의 말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너희들의 경험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내가 지금 하는 말은 명상을 하면서 내가 직접 체득한 것이다. 성인들이 〈문 밖에 나가지 않고서도 현인은 하늘과 땅을 안다.〉고 말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느니라. 너희가 그것을 깨달았다면 명상을 해야만 한다.

그러면, 도교가 뜻하는 바는 무엇이냐? 도교는 연구하고 우리 스스로 도와 화합하는 방법인 것이다. 나아가서는 도 그 자체와 하나가 되기 위한 과정이니라. 현인들은 말한다. 〈도는 영원하다. 그리고 도를 소유한 자는 비록 육신이 사그라진다 해도 파멸되지 않는다.〉 그러나 단순명쾌한 한 가지 방법은 없다. 사람들은 다양하고 도는 결코 정적이지 않다. 인생의 다양한 면모는 개개인의 필요와 운명에 따라 재단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죽서칠판(竹書七板)에 360가지 자기수양법을 실어 놓은 이유이니라.
 
도교는 다단계로 분류된 영적 체계이다. 보통 종교가 타종교는 배척하고 전적으로 자신의 신앙만을 규정지으려고 기를 쓰지만 도교가 드넓게 뻗어가는 영역은 전우주를 품고 있다. 도교의 철학적 기원의 가장 기본적인 요점 가운데 하나는 인류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니라.

먼저 인류를 놓고 보자. 도인은 인간 고유의 특성을 간파하였다. 즉 죄와 소망, 비열함과 고귀함, 야만과 기예, 감정과 지성, 억지와 순결, 그리고 가학성과 동정심, 폭력과 평화주의, 자기본위와 초월 등등을 간파하였다. 다른 현인과는 달리 도인은 인간의 악마적 충동을 거부하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양성은 둘 다 받아들여져 함께 작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원론의 양면이 받아들여졌을 때 도인은 선과 악이 여러 가지 비율로 혼합되어 있는 것이 인간임을 확실히 깨달았다. 따라서 도교는 다양한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거대한 체계로 발전하였다. 도인은 범인에게 도덕과 경건함을 선사하였다. 영웅에게 신의와 충성을, 권력에 굶주린 자에게 무예와 마법을, 지식인에게는 지식을 선사하였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을 구하고자 하는 극소수에게는 명상과 초월의 비법을 선물하였다. 그 다음 그들은 내면에 들어있는 모든 것을 밖으로 표출시켰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것들은 속인의 일부분일 뿐 아니라, 소우주와 대우주의 질서에 따르는 모든 개인의 내적 실재이기도 하다.〉

도인은 이상주의자가 아니고 항상 실용주의자니라. 그의 관심사는 현실에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는 데 있기보다 늘 자신의 앞에 있는 존재의 처리에 있었다. 아마도 이렇기 때문에 종종 도교의 정의를 간파하기 어렵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자는 심지어 이렇게까지 말할 것이다. 도교는 기회주의자의 교리라고. 하지만 실제로 앞에 놓인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가 도교의 관심사의 전부이니라. 그 눈앞의 상황이 늘 변하는 것 또한 도인 것이다.
 
역사적으로 도교에 앞선 다섯 가지의 중요한 흐름이 있다. 샤머니즘, 철학, 양생술, 연금술과 봉래파는 대대적인 정신운동으로 발전하게 될 요소들이다. 샤머니즘은 도교의 시초이니라. 원시 종족들은 신, 악마, 조상의 혼령, 그리고 알 수 없는 무정한 존재로 다가온 전능한 자연을 신봉했다. 원시 종족들은 병든 자를 치료하고 숨은 것을 예언하고 결과를 통제하기 위해 마법을 쓰는 그들의 지도자 즉 샤먼의 힘에 의존했다. 샤먼은 자기를 떠받드는 백성과 백성에게 괴로움을 끼치는 세계 사이를 개인적인 힘으로 파고든 것이다.

신을 숭배하자 인생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그중 최고로 꼽히는 숭배는 조상 숭배 ― 농사의 공동 작업이 가족 단위의 중요성을 부각시켰기에― 와 땅, 산, 호수, 나무, 추수 등의 자연신 숭배였다. 사실 자연물과 농경 사회의 특징이라고 할 만한 것들은 전부 그 속에 신성이 들어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황허(黃河)는 많은 강 중에서 〈강의 백작〉이라고 불렸다. 그 강은 거북이가 끄는 마차를 타고 있다고 믿어졌다. 사람들은 아주 잔인하게도 인간을 희생시킴으로써 끔찍하고 일시적인 강의 범람을 달래려고 애썼다.

사람들의 의식이 차츰 발전하였던 것은 뛰어난 현인들의 중재 덕이었다. 황제(黃帝)는 약에 대한 가르침 때문에 유명해졌다. 복희씨(伏羲氏)는 점을 가르치고 팔괘의 체계를 세웠다. 신농씨(神農氏)는 자신의 몸에다 약초를 실험했고 우(禹)임금은 홍수를 다스렸다. 이들 선사시대의 임금들은 샤머니즘을 한 단계 끌어올렸고 오늘날까지 존속하고 있는 도교의 여러 요소들을 창안했다. 자연 숭배, 점, 흙점, 부적, 액풀이 그리고 성령의 계 등의 유래는 기원전 수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도교 학파의 하나로 순수 이론에 치중하는 대화파는 주 왕조 시대에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노자는 이 학파의 도인이었다. 그는 세속을 떠나 출가하기 위해 뤄양(洛陽)을 떠났을 때 한동안 화산에 와 있었다. 그러나 왕실에서 나눈 공자와의 대화 때문에 그의 철학은 두 갈래로 갈라졌다. 한 갈래는 도교의 분파가 되었고 다른 한 갈래는 세속 철학이 된 것이다. 3세기경 장자, 열자 계열의 사고를 앞세운 학파는 논쟁 부재, 덕치, 대립의 상대성, 명상을 통한 도의 탐구 등을 강조하는 도교를 주창하였다. 이 시대에 태동한 학파들은 점복, 샤머니즘, 신체 단련에는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지적인 부류의 도교를 추구했던 것이다.
 
신체 단련은 양생술에서 생겨났다. 우리 분파는 크게 보아 양생술의 전통을 물려받고 있다. 이 계통의 핵심적 가설은 육체와 정신은 훈련을 받아야 하고 영적인 득도에 이르는 수단으로서 연마되어야 한다는 것이니라. 소위 육체적이라 함은 순수한 정신주의로 확대시키는 그 연장선상의 한 측면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단다.

양생파는 기원전 4세기 경에 발생했다. 그러나 5백 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크게 명성을 떨치지는 못했다. 1세기부터 4세기까지 이 분파의 가르침은 처음에 《황정옥경(黃庭玉經)》에서 나중에 《대동진경(大東眞經)》으로 성문화되었다. 초기에는 단전의 세 개의 생명력의 중심으로부터 교리가 생겨났다. 그 교리는 호흡의 순환, 식사, 명상과 무술이었다. 이 모든 것은 인체 내의 3만6천 신들의 존재를 주장하는 원리로 집대성 되었다. 사람을 신이 담긴 그릇으로 가정해 보면 어째서 인체는 청결하고 강인해야 한다고 믿게 되었는지 이해하기가 쉽다. 왜냐하면 건강하지 않은 몸은 신들이 단념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욕주의 경향이 강해진 것이다. 포도주와 약 등 모든 외적 수단은 거부되었다. 사람의 몸 안에 있는 신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양생파의 목표는 초기에는 육체적 영생이었다. 하지만 점차 환생의 교설을 깨닫게 되었다. 이때부터 우선 순위는 육체의 껍데기 속의 죽음을 초월할 수 있는 불사의 영혼을 창조하는 쪽으로 변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연금술사들은 육체의 영생을 계속 믿었다. 연금술 학파는 추연(鄒衍)의 오행설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추연은 기원전 325년경 명성을 날린 인물이다. 방법의 대가, 즉 방사(方士)들은 항상 불사의 공식을 찾으려고 실험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단다. 그들은 약초, 광물, 화학재료와 그 밖의 모든 것을 섞어서 용해시키는 과정을 끝없이 계속했다. 초기에 기울인 노력은 대부분 수은, 유황, 납같은 광물에 집중되었는데 불행히도 그 광물은 건강에 해가 되었다. 마침내 그들은 자신들의 연구를 ― 단지 자기 보존을 위해서만 ― 약초의 사용, 의식, 성적 연금술, 명상과 마술을 사용하는 방향으로 조정하였다. 연금술파는 악귀 다스리기와 마법과 같은 초기 샤먼들의 관심사를 물려받았다. 연금술사가 외적인 방법을 제안한 반면, 양생술사는 내면적 수단을 고수했다는 점에 양자의 커다란 차이가 있다.

마지막으로 봉래(蓬萊)의 숭배에 대해 얘기해 보자. 이 분파는 단순히 육체적 영생에만 관심을 둔다는 점에서 뻔뻔스럽기 그지없다. 기원전 4세기쯤 언젠가 태평양의 어느 이상한 섬에 불로초가 자라난다는 전설이 있었다. 수차례의 탐험끝에 그 섬을 드디어 발견하였다. 그때가 기원전 221년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 시절이었다. 그는 화산에서 불과 10킬로 거리에 있는 지역까지 통치했다. 화산은 연금술과 마법을 병행하는 봉래파를 신봉하였지. 연금술사와 마법사는 영혼을 소유하는 기술, 마법의 기술과 함께 봉래파를 지지했다.

진시황제는 영생불사가 소원이었다. 만리장성의 축조를 명했던 황제는 봉래파와 연금술의 광신도가 되었다. 황제는 성공하지 못하면 처형하겠다는 칙명을 내려, 봉래섬을 찾도록 만 명의 소년 소녀를 파견했다. 그들은 일본 섬을 발견하였지만, 불사의 버섯은 찾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죽음을 택하느니 차라리 그 섬에 머무르기로 했다. 결국 자신의 옥체를 연금술로써 보존하려던 황제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사실은 황제가 독약 처방전을 복용함으로써 병에 걸려 사망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기도 하다.
 
4세기부터 현재까지 이 다섯 가지 기본 국면들이 서로 복잡한 상호작용을 일으켰던 것이니라. 1천6백년에 걸친 도인들의 운동은 끝없이 결합을 거듭해왔다. 수천에 이르는 도교의 후기분파들과 형식들은 좌파의 도교와 우파의 도교로 구분될 수 있다. 왼쪽에는 마술, 연금술, 방중술과 악귀 다스리기의 도교가 있다. 대충 보면 외적 방법을 신봉하는 길이니라. 오른쪽은 금욕주의, 독신, 명상을 주창한다. 대략 내적인 길이라고 하겠다. 양쪽에 공통점이 있다면, 경전 연구, 숭배, 명상, 점, 주문과 불로장생의 추구, 흙점, 부적술, 그리고 영상 탐구등이 있다. 표면상으로 볼 때 이들은 모두 도와의 합일을 추구한단다. 단지 다른 점이라면 방법론과 도교 원리의 해석에 있느니라. 모두 타당성도 있고 정통적 방법도 갖춘 것으로 생각된다. 모든 도교 분파는 그 결과를 산출한다. 어떤 분파는 고위 사부들이 초자연적인 힘을 과시할 수 있고 위대한 정신적 통찰력을 증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엄격히 좌파의 길은 반대한다. 거기에는 너무 많은 유혹이 따르기 때문이다. 고행을 진실되고 정직하게 수행하면 만족감, 정적 그리고 경건함만은 확실히 얻을 수 있느니라. 물론 시련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좌파의 길은 단순히 주문을 외거나 약을 복용함으로써 큰 힘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정직하게 얻은 것이 아니다. 일련의 건전한 가치관으로 높은 지위를 얻기 위한 힘든 투쟁을 겪지 않고 어떤 경지에 오른 사람은 유혹에 너무 쉽게 빠져 힘을 남용하고 싶어진다. 공중부양, 변신, 예언술, 악마를 조종하는 것 모두를 좌파의 방법으로는 순간적으로 취할수 있다.

그러나 인생에 공짜는 아무것도 없느니라. 어두운 측면과 조화를 이루려면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유일한 교환의 형식은 인간의 영혼이니라. 어두운 도교의 힘이 들어갈 때마다 도는 인간의 본질을 조금씩 마모한다. 온전한 인간은 궁극적으로 어두운 도를 위한 대리자로 변신한다. 영생과 커다란 능력은 영원히 너의 것이 된다. 그러나 너는 그것을 얻기 위해 영혼을 희생시켰다.
 
결론적으로 도는 두려운 것이고 인간의 개념을 초월하는 것이다. 수 세기 동안 위대한 정신들이 매달렸던 도교는 크게 팽창하여 서로 다른 교리와 종파가 난마처럼 얽혀 있다. 비록 이런 현상은 도의 부정적 측면이지만, 도의 다양한 측면 때문에 도인들도 종류가 다양하다. 그러나 어마어마하게 쏟은 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는 여전히 수수께끼이며 불가사의다. 그렇지만 우리의 삶과 운명을 냉혹하게 둘러싸고 있다.」

대사부는 여기서 잠시 말을 멈췄다.

「질문 있느냐?」

「사부님, 어떻게 하면 도를 제대로 쫓아갈 수 있습니까? 방법이 너무 많아 망설여집니다.」

사이훙이 질문했다.

「사실 그렇다. 사이훙, 너는 죽서칠판의 내용을 완전히 통달하고 초월해야만 한단다. 그런 후에야 너 자신이 갈 길을 확실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저는 그 책을 본 일도 없고 내용에 관해 들은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그것들을 익힐 수 있나요?」

「책이 아니다. 말도 아니야. 가르침이니라.」

「왜 저는 볼 수가 없나요?」

「준비가 아직 덜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에는 계속해야 할 연구의 과정이 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바를 안다면 더 능률적이지 않을까요?」

칭 수이셩이 물었다.
 
「왜 안되겠느냐? 도는 정해진 틀이 없다. 도는 자유롭다! 유연하다! 항상 변화한다! 그래도 역시 길을 따르는 자는 따라가야 한다.」

대사부는 어리둥절해하는 제자들을 보고 껄껄 웃었다.

「그것이 비록 도인의 규범에서 파생된 것이라도 어떤 엄격한 틀을 지우려는 것은 잘못이다. 도복을 입고, 상투를 틀고, 경전을 낭송하고, 매일 기도를 올리는 것은 다 쓸데없는 짓이니라. 날마다 향불을 피울 수는 있지만 하늘이 너의 기도를 듣고 있지 않으실지도 모른다. 무슨 일이 벌어지게 만드는 자는 오로지 너 자신뿐이다.」

「그렇다면 왜 저는 스스로 탐닉에 빠지면 안 됩니까?」

사이훙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방종도 역시 도이니라. 그러나 그것은 목적이 없다. 동기도 없다. 따라서 도에 비교해 보면 자기방종은 죽어있다.」

〈그것은 또 다른 함정인 셈이로군.〉

사이훙은 생각했다. 대사부는 말을 이어 나갔다.

「사람은 목적, 신념과 목표가 있어야만 하느니라. 방종도 역시 도이다. 그러나 그것이 자유이냐? 방종에 빠지면 너는 완전히 만신창이로 자멸할 수도 있다. 방탕한 생활을 계속하면서도 뭔가 하고픈 충동이 생길 수는 있다. 그러나 너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것을 성취할 수는 없을 것이니라. 따라서 너는 자유를 누리지 못할 것이다. 내 판단은 단순한 방탕의 생활보다 자유가 더 좋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도 생활을 빠져 나올 길은 없습니까?」

사이훙이 물었다.
 
「만일 목표를 달성하고 싶다면 없는 것이지. 천박한 본능을 채우려고 몰두하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면, 뭔가 위대한 것을 성취하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목표를 세우면 저속한 것은 기꺼이 희생하고 보다 고상한 것을 추구해야 할 것이니라.」

「도인의 삶은 희생의 삶인 것 같군요. 역설적인데요.」

린 쭝우가 의견을 말했다.

「그저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맹목적인 자기부정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순수한 고행이 불균형 상태가 되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불행해질 수도 있다.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강장약초를 쓰지 않는 채식주의는 옳지 않다고 본다. 이것은 네가 달성한 경지를 시험하는 것이다. 즉, 어떻게 균형을 얻을 것인가? 너는 항상 이 문제를 스스로 자문해야 한다.

금욕주의는 단지 잠재 능력을 발휘하려는 것일 뿐이다. 엄격함은 너희들을 신속히 특별한 인간으로 발전하게 한다. 그러면 너희는 자신들의 운명을 완수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입장이 된다. 그것 또한 도이다.」

대사부는 제자들을 보고 미소지었다.

「도교 수행자들을 위해서 한 말이지만, 너무 장황해졌구나. 말이 아닌 행동이 정말 중요한 것이니라. 사색이 아닌 변화가 목표이다. 너희들의 발전의 중요한 부분은 육체적 정서적 안녕을 확보하는 데 있다. 오늘 밤에 나는 너희에게 육어기공(六語氣功)을 가르쳐 주고 싶구나.

이것은 장기를 보존하기 위해 개발된 방법이니라. 몇 주 전에 너희는 주문에 대한 바이투 은자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었다. 오늘 나는 장기를 자극하고 유지하기 위해 말을 사용하는 간단하고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겠다.

방법은 이렇다. 너희는 지시를 받은 소리를 내는 동시에 그 소리와 연관된 부분을 소주천(小周天) 운행중에 마음으로 추적하면서 암시된 동작을 수행한다. 여섯 개의 낱말이 쓰인다. 즉 슈, 케, 후, 쉿, 치, 시 이니라. 이 말들이 영향을 미치는 기관은 각각 간장, 비장, 심장, 폐장, 신장과 삼초(三焦)이니라.」

대사부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수련생들도 그의 뒤를 따랐다. 동작은 서서히 근육을 이완시키면서 마치 수중 발레를 하듯이 행해졌다. 간 운동은 두 팔을 양쪽으로 벌리고 나서 팔을 접는다. 다음 힘을 주면서 두 팔을 밑으로 내린다. 팔을 올리면서 동시에 숨을 들이마신다. 팔을 내릴 때는 숨을 내쉰다. 날숨은 〈슈 우우우우우우〉 소리를 내면서 숨을 오랫동안 내뿜는다. 숨쉬기와 동작을 끝내면서 소리도 멈춘다.

대사부는 그들에게 하나하나의 소리와 동작을 가르치고 각각의 동작을 일곱 번씩 행하도록 지시했다.
 
그들이 동작을 다 배웠을 때, 대사부는 상상을 하기 위한 소주천 운행법을 가르쳤다. 숨을 내쉬고 소리를 내기 시작할 때 그들은 마음속으로 이 끝에서 저 끝으로 소주천 운행을 시작했다. 종착지에 도달할 때까지 약 10초의 시간이 지났는데 소리와 숨쉬기가 끝났다. 마침내 전체의 선을 찬란한 불빛이 엮어진 것처럼 상상할 수 있었다.

도교와 내공술은, 정신적인 내용과 유리된 단순한 물리적인 기술은 헛되다고 강조한다. 모든 기술은 표출된 동작말고도, 에너지의 흐름을 조정하는 정신적 진행 순서를 가지고 있다. 기는 몸의 형태에 따라서 일정한 형태를 취했다. 그러나 기는 또한 그 기술을 충분히 발휘하기 위해서 정신을 필요로 했다.

많은 서양인들은 진정한 〈과학적〉 기술은 운동인의 마음의 상태와는 무관한 채로 작용한다고 믿는다. 육체와 정신의 건강은 신비함을 덧씌우지 않고 명쾌한 운동에 의해 개발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도인들이 인간의 참된 본성이라고 믿는것 ― 사람은 육체뿐 아니라 정신과 영혼이며 정신은 육체의 문제를 통제한다 ― 을 간과하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육체는 그 자체가 단지 우주의 정신을 조잡하게 나타낸 것이었다.

「이 방법은 너희가 장기를 조정할 수 있게 해준다.」

대사부는 인체 해부도가 그려져 있는 두루마리를 풀면서 말을 계속했다.
 
「소리는 전기적 충격처럼 소주천 행로로 들어간다. 에너지는 막힌 점들을 뚫고 가면서 건강과 균형을 회복한다. 그것은 침술의 바늘과 똑같은 효과를 낸다. 수련자는 바늘 대신 소리와 마음의 집중을 이용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막히지 않은 소주천 행로만이 에너지를 적절히 각각의 장기로 운반한다. 적절한 자세와 소리에 의해 장기는 사실상 잔잔하게 떨리면서 어루만져지는 것이다. 이것이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도인이 가야 할 길이니라.

장기는 감정의 거처로 믿어지고 있다. 《황제내경(黃帝內經)》은 기원전 27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생각되는데, 762년 왕평(王平)에 의해 24권의 책으로 확대, 증보되었다. 그 책에는 장기와 감정 사이의 일치점이 기술되어 있다. 간은 노여움, 비장은 동정심, 심장은 기쁨, 폐는 슬픔, 신장은 두려움 그리고 오장육부 작용의 실질적인 조직체인 삼초는 보정 기관으로서 여타 장기들을 강화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감정은 장기와 상호관계에 있기 때문에 장기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거꾸로 감정이 장기의 통제를 받을 수도 있다. 도인들은 육체의 기관을 감정을 다스리는 데 이용할 수 있느니라.

육어(六語)는 수행자의 건강과 안전을 보전하기 위해 유용한 수단이 된다. 육체의 보존은 정신적 성취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사람이 지나치게 연구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명상을 하면, 장기와 육체는 허약해질 수 있다. 너희들이 매일 충실하게 운동을 하면 육어는 너희를 지켜줄 것이니라.」

대사부는 도관에서 울리는 종소리의 낮은 떨림음을 들었다. 그는 기도와 함께 수업을 마쳤다. 학생들은 처소로 갔다.

밤공기는 차고 약간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이끼 냄새와 소나무 냄새가 한데 어우러진 가운데 나무들이 숨을 쉬고 있었다. 사이훙은 지붕이 덮여 있는 도관의 보도를 따라서 조용히 걸었다. 기둥들이 세워진 사이사이의 공간은 정원을 균형이 잘 잡히고 시적인 완벽한 전경들로 분리시켰다. 사이훙은 고독한 명상의 방으로 들어가 촛불을 켰다.

색이 바랜 나무 차양 너머로 사원에 칠흑 같은 어둠이 몰려오면서 이윽고 밤이 찾아왔다. 사방은 캄캄하고 정적이 깃들였다. 하루의 모든 힘든 일과는 끝났다. 아직 남아 있는 걱정거리는 다음 날로 미룰 수 있다. 근심거리가 있었지만 걱정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외로움과 갈망도 있었지만 그는 그것들을 한쪽으로 치워 버렸다. 계획도 떠올랐지만 그저 마음속의 몇 마디 중얼거림에 그쳤다. 구체적인 말로 표현 할 수는 없었다. 적막했다.
 
아마도 침묵을 고집하는 스승들이 옳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인간이 불순하고 신성모독적인 말을 하면 신들을 쫓아내게 된다고 말했다. 신을 끌어들이기 위한 충분한 정적은 침묵 속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는 마음의 초조함과 내면에서 일어나는 대화를 외면했다. 그것조차 의무이며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아무 생각 없이 의식 속에서 연달아 떠오르는 기억을 지워 버렸다. 할아버지 집에서 정원을 걷던 일, 언젠가 가본 적이 있는 북경의 어느 식당, 야간학습, 사부의 친구들 중 한 명이 짓던 미소, 암살자의 결투, 사이훙은 자기 인생의 흔적과 그림자를 몰아내고 대신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사이훙은 누구라도 자신의 운명을 감지할 수 있는지, 혹은 누구라도 더 높은 수준의 충동을 이겨낼 수 있는지 정말 궁금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몇 년 동안 몸에 밴 자세를 찾아 척추가 자동적으로 곧게 뻗었다. 방의 우중충하고 어두운 빛깔이 확실한 평온함으로 바뀌었다.

자신과의 대화는 내성에 자리를 비켜 주었다. 내성은 명상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러자 하루에 대한 집착이 희미해졌다. 명상은 부드러운 리듬을 타며 밀려왔다 밀려가는 호흡에 집중되었다. 그는 맥박의 움직임을 느꼈다. 심지어 피의 흐름이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어느 방향인지는 몰라도 신경이 흥분하는 소리가 났다. 그러나 사이훙은 그 순간 내면 더 깊은 곳으로 쿵하고 떨어졌다. 의식은 신체의 기능을 초월했다. 영성은 육체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부드러운 비장, 얼얼한 체액, 끈적이는 혈액, 뒤엉킨 정맥, 나뭇결 모양의 뼈, 그리고 더러운 배설물 속에서 영성이 일어났다.
 
사이훙은 인간 정신의 근원은 등뼈 끝에 있다는 것을 배웠다. 머릿속이나 어떤 다른 감상적인 지점이 아니었다. 신경의 끝이 모여 있는 늪지, 사타구니, 생식기와 항문 가까이 파묻힌 곳이었다. 검고 어둡고 신비스럽고 모든 것을 감추고 있는 우물의 밑바닥이었다. 그는 깊은 심연으로부터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자아 내듯이 계속해서 부드럽게 한 오라기의 가는 실을, 한 줄기 빛을 뽑아 내야만 했다. 그 다음에 인체의 최하위 요소들을 머리의 정문을 향해 뿜어내면서 등뼈의 통로를 따라 위로 에너지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 정문은 천엽연(千葉蓮)이라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불렸다. 명상 속으로 깊이 침잠한 사이훙은 팽창하는 에너지에 강한 자극을 주어 위로 밀어 올리려고 노력했다.

사이훙은 에너지를 더 높이 밀어올려 연꽃을 정문에서 만개시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것이 그의 목적이었다. 그 자신의 신성이 담긴 연꽃을 지저분하고 혼란스러운 속세의 삶과 자신의 불완전한 생체에서 끌어내는 것이었다. 그는 존재의 깊은 어둠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가없는 무의식의 정신을 초월하고 마침내 샘물의 밑바닥에 당도한 다음, 존재의 중심인 본질을 끌어올려야만 했다.

잠재의식의 저 깊은 곳에서 사부님이 오래 전에 말씀하시던 그 무언가가 솟아올랐다.

〈완벽한 인간의 가슴은 순수하다. 그가 늪 속에 빠진다 해도 더렵혀지지 않는다. 벼락이 떨어져 산이 무너진다 해도, 4대양에 폭풍이 휘몰아친다 해도, 그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구름 속을 날아다니고 태양과 달 위에서 유영하고 이 세상을 초월한다. 생과 사는 세상에 대한 그의 일체감을 단절시킬 수 없다. 그의 가슴은 이 모든 것과 함께 하지만, 그는 그것들의 일부는 아니다.〉

마지막으로 가물거리는 의식이 밝은 빛 속으로 녹아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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