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묘사한 휴양실 할리스에 도착해 편하게 자리를 잡자 타오는 이상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미셸, 정확히 135만 년 전 켄타우루스 성운의 바카라티니 행성에서 지도자들이 수많은 회의를 열고 여러 차례 정찰대를 파견한 뒤에 어떤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곳 주민들을 우주선에 태워 화성과 지구로 이주시킨다는 결정이었어요. 이유는 단순했어요. 그들의 행성이 내부적으로 식어가고 있었고, 500년 안에 거주가 불가능해질 것이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주민들을 같은 범주에 속하는 젊은 행성으로 대피 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론을 내린 거예요.
“ ‘같은 범주에 속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나중에 설명 할게요. 지금은 너무 일러요. 그들 얘기로 돌아가자면, 그들은 매우 지능이 높고 고도로 진화된 인간들이었어요. 흑인종이었지요. 두툼한 입술에 납작한 코, 그리고 곱슬머리 등. 그런 점에선 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흑인들과 닮았어요. 그들은 바카라티니 행성에서 800만 년 간 살아왔어요. 황색 피부의 인종도 함께 살았어요.
정확히 말하자면 이들 황인종이 바로 지구에서 중국인이라고 불리는 종족이에요. 그들은 흑인들보다 약400년 먼저 바카라티니에서 살았어요. 두 인종은 그곳에서 살면서 수많은 혁명을 겪었어요. 우리는 때론 그들을 구조하고 도움을 주며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 노력했지요.
하지만 우리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그들 사이에서는 전쟁이 주기적으로 일어났어요. 게다가 자연재해도 여러 차례 발생하면서 두 인종의 수는 줄어들었지요.
결국에는 대규모 핵전쟁이 발발했어요. 행성 전체가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기온은 섭씨 영하40도로 내려갔어요. 방사능뿐만 아니라 혹독한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대다수 인간들이 죽었어요. 기록에 따르면 재앙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흑인 150명, 황인 85명에 불과했어요. 핵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인구는 흑인이 700만 명, 황인은 400만 명이었지요. 생존자 수의 기록은 그들이 서로 죽이는 행위를 중단하고 다시 번식을 시작하기 직전에 작성됐어요.
“‘서로 죽이는 행위’ 란 무슨 의미인가요?"
“전체 상황을 설명해 줄게요. 그러면 좀 더 이해가될 겁니다. 먼저, 생존자들은 지도자들이 아니었다는 점이 중요해요. 특수하게 설계된 대피소에서 안전하게 보호를 받은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뜻이에요.
생존자들은 흑인 세 그룹과 황인 다섯 그룹이었어요. 일부는 민간 대피소에서, 나머지는 대규모 공공 대피소에서 살아서 나왔지요. 물론 핵전쟁 당시에는 그 235명보다 많은 사람들이 각종 대피소에 있었어요. 아마 모두 합해 80만 명 이상이 될 거예요. 그들은 여러 달 동안 어둠과 혹한 속에 갇혀 있다가 마침내 대피소 바깥으로 나가 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흑인들이 용감하게 나왔어요. 그들이 살던 대륙 위에서는 나무, 식물, 동물 등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어요. 산속의 대피소에 고립돼 있던 한 그룹이 처음으로 사람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식량이 없었기 때문에 가장 약한 사람이 죽으면 다른 사람들이 그 사체를 먹었어요. 그러다가 나중엔 먹기 위해 서로를 죽여야 했어요. 그것은 그 행성에서 일어난 최악의 재앙이었지요.
바다 근처에 있던 또 다른 그룹은 몇몇 살아남은 생명체들을 먹으며 가까스로 연명했어요. 심하게 오염되지 않은 연체동물, 몇 종류의 물고기 갑각류 같은 것들이었어요. 이들은 또 지하 깊은 곳에서 물을 끌어올리는 매우 정교한 기계장치 덕분에 오염되지 않은 식수도 구했어요.
물론 행성 위에 남은 치명적인 방사능 때문에 이들의 상당수는 여전히 죽어갔어요. 방사능으로 가득한 물고기를 먹어서 죽기도 했어요. 황색인 지역에서도 거의 똑같은 상황이 전개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살아남은 사람이, 아까 말한 대로, 흑인 150명과 황인 85명이에요. 그리고 마침내 전쟁으로 인한 죽음이 끝나고 번식이 다시 시작됐어요.
이 모든 사태는 그들이 온갖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났어요. 거의 멸종되다시피 한 그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두 인종은 모두 매우 높은 수준의 기술 문명을 누렸어요. 사람들은 무척 편안한 삶을 영위했어요. 그들은 공장, 민간 회사, 정부 기관, 사무실 등에서 일했지요.
지금의 지구상황과 똑같아요. 그들은 돈에 강한 집착을 가졌어요. 돈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권력을 의미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복지를 의미했어요. 후자는 좀 더 현명한 경우지요. 그들은 일주일에 평균12시간을 근무했어요.
바카라티니 행성에서는 일주일이 6일이고 하루는 21시간입니다. 바카라티니인들은 정신적인 측면보다는 물질적인 측면으로 기울었어요. 그리고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거듭 기만당하고 휘둘리며 살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식이었어요. 지구인들처럼요. 지도자들은 공허한 언변으로 일반대중을 우롱했지요. 지도자들은 탐욕과 자존심 때문에 국민들을 멸망의 길로 ‘이끌었어요.’
이들 두 인종은 점차 상대방을 부러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러움과 미움은 서로 종이 한 장 차이지요. 결국 서로 미워했고, 미움은 극도의 증오로 변해 핵전쟁까지 일어났어요. 양측 모두 첨단무기를 보유했던 만큼 공멸하고 만 겁니다.
우리의 역사 기록에 따르면 그 재앙의 생존자 235명 중 여섯 명은 아이들이었어요. 이 통계치는 핵전쟁 발발 5년 뒤에 기록된 겁니다. 그들의 생존은 식인풍습과 몇몇 해양생명체 덕분이지요. 생존자들은 자녀를 낳았지만 늘 ‘성공적이었다.’ 고 할 수는 없었어요.
끔찍하게 기형적인 머리, 또는 피고름을 흘리는 흉측한 상처를 갖고 태어나는 아기들이 흔했어요. 그들은 핵 방사능이 인간에게 끼치는 영향을 감수해야 했지요.
150년이 지난 후 흑인은 성인 남녀와 아이들을 포함해 19만 명으로 늘었고, 황인은 8만5천명이 됐어요. ‘150년’ 의 기간을 언급하는 이유는 그때부터 두 인종이 복구를 시작했고 우리도 그들을 물질적으로 도울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무슨 뜻인가요?"
“몇 시간 전, 우리 우주선이 아레모 X3 행성 상공에 정박해 토양· 물· 공기 샘플을 채집하는 모습을 봤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때.” 타오가 말을 계속했다. “거대한 개미떼가 그곳 마을 주민들을 공격하자 우리가 개미들을 간단하게 몰살하는 모습을 봤을 겁니다.”
“그랬지요.”
“그것은 특별한 경우로 우리는 직접 개입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도왔어요. 당신도 봤다시피 그들은 거의 원시 상태로 살고 있었지요.”
“맞아요. 그런데 그 행성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핵전쟁이지요. 항상 반복되는 현상이에요. 미셸,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원자이며 만물은 그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당신의 몸은 원자들로 구성돼 있어요. 내 말의 요점은, 모든 은하계에서 한 행성에 인간들이 살기 시작할 때마다 진화의 특정 단계에 이르면 원자의 존재가 발견된다는 거예요.
물론 원자를 발견한 과학자들은 원자의 붕괴가 강력한 무기로 사용될 수 있음을 조만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어느 시점이 되면 지도자들은 그 무기를 사용하고 싶어지죠. 마치 아이들이 성냥갑을 갖고 있으면 호기심에서 건초더미에 불을 붙이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다시 바카라티니 행성 얘기로 돌아가죠. 핵 재앙이 있은지 150년 뒤 우리는 그들을 돕고 싶었어요. 그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식량이었어요. 그들은 여전히 해산물에 의존해 살았어요. 때론 잡식성 욕구 때문에 식인(食人) 행태를 보이기도 했어요. 채소와 육류가 필요했어요. 채소, 과일, 나무, 곡식, 동물 등 식용 가능한 모든 것이 사라졌어요. 대기 중에 산소를 공급할 식물들은 남아 있었지만 먹지 못하는 것들이었지요.
지구의 사마귀 같은 곤충도 살아남았어요. 핵 방사능 때문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거대한 크기로 진화했지요. 길이가 8m 정도로 커져서 인간들에게는 매우 위험한 존재였어요. 게다가 천적이 없기 때문에 급속히 번식했지요.
우리는 행성 상공을 날아다니면서 그 곤충들이 있는 곳을 찾아냈어요. 우리가 태고 적부터 갖고 있던 기술 덕분에 그것은 비교적 쉬운 일이었지요. 곤충들을 찾아낸 뒤에는 제거하기 시작했고,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아 완전히 절멸시켰어요.
다음에는 가축과 식물을 다시 도입해야 했어요. 핵전쟁 전에 특정 지역의 기후에 적응한 종(種)들을 가져왔지요.그 작업 역시 비교적 쉬웠어요.”
“그런 작업을 하려면 여러 해가 걸렸겠네요!”
타오의 얼굴에 큼직한 미소가 나타났다. “이틀밖에 안 걸렸어요. 하루 21시간씩 이틀이요”
믿지 못하겠다는 내 표정에 타오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혹은 그가 하도 포복절도하듯 웃는 바람에 나도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사실을 약간 과장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은 여전했다.
내가 뭘 알겠는가? 내가 듣는 얘기 자체가 어차피 환상적인 내용이 아니던가! 내가 환각을 일으키고 있든지 아니면 약물에 중독돼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지구의 내 침대에서 곧 ‘깨어날지도’ 모른다. “아니에요, 미셸.” 타오가 내 생각을 읽고 말했다. “그런 식으로 의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텔레파시만으로도 확신을 갖기에 충분하지 않나요.”
그녀의 말에 퍼뜩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아무리 정교한 속임수라도 이처럼 많은 초자연적인 요소들을 다 갖추기는 불가능하리라. 타오는 내 마음을 속속들이 읽을 수 있었고, 그걸 여러 차례 증명했다. 라톨리는 내게 손을 얹는 동작만으로도 지극한 행복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나는 그런 증거들을 인정해야했다. 내가 엄청난 환상적인 모험 여행을 하고 있음은 분명한 현실이었다.
“완벽한 결론이군요.” 타오가 말했다. “얘기를 계속할까요?”
“그러세요.” 나도 기꺼이 대답했다.
“그렇게 우리는 그들을 물질적으로 도왔어요. 하지만 우리가 개입할 때는 늘 그렇듯이 우리의 존재를 알리지는 않았어요.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째는 보안 때문이고 둘째는 심리적인 이유에요. 저들이 우리의 존재를 알게 되면 즉 우리가 자신들을 도우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저들은 수동적으로 도움만 받으려하면서 자신들의 처지를 비관하게 됩니다. 이는 그들의 생존 의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요. 지구에서도 그런 말이 있지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이유가 중요합니다. 우주의 법칙은 확고하다는 것이에요. 행성들이 항성 주위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공전하듯 엄격히 적용된다는 뜻이에요. 당신이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해요. 그것이 즉각적이든, 10년 뒤든, 아니면 10세기 뒤든, 반드시 치르게 된다는 얘기에요. 물론 우리가 가끔 허락이나 충고를 받아 도와줄 때도 있지만, 원칙적으로 ‘밥을 떠먹여 주는’ 식의 도움은 금지됩니다.
그래서 이틀 동안 우리는 그 행성에 몇 쌍의 동물들이 다시 살게 하고, 다양한 식물들을 다시 자라게 했어요. 언젠가는 그들이 다시 동물을 사육하고 식물을 재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지요.
그들은 원점에서 새로 시작해야 했어요. 우리는 그들이 발전하도록 꿈이나 텔레파시로 이끌었지요. ‘하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로 그렇게 할 때도 있었어요. 다시 말해 그 ‘목소리’ 는 우리의 우주선에서 보냈지만 그들에게는 ‘하늘’ 에서 나는 소리였지요.”
“당신들을 신으로 여겼겠군요.”
“맞아요. 그런 식으로 전설이나 종교가 만들어지지요. 그러나 그 행성에서처럼 상황이 급박한 경우에는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어요.
몇 세기 뒤, 그 행성은 핵 재앙 전의 상태로 거의 회복됐어요. 일부 지역에선 사막이 확실히 형성됐지만, 영향을 덜 받은 지역들에서는 각종 식물상과 동물상이 잘 발달됐어요.
15만 년 뒤에는 고도의 문명이 생겨났어요. 하지만 이번엔 단순히 기술적으로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다행히도 그들은 과거의 교훈을 잊지 않고 정신적 영적으로도 높은 수준에 도달했어요. 이런 현상은 흑인과 황인 모두에게 일어났고 두 인종은 끈끈한 우정을 맺었어요.
평화는 오래도록 지속됐습니다. 과거 역사의 대부분이 기록으로 남아 확실히 전승됐기 때문이에요. 후세들은 무엇이 핵 재앙을 초래했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어땠는지를 알게 됐지요.
앞서 얘기했듯이, 바카라티니인들은 자기네 행성이 500년 안에 살수 없는 곳이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은하계 안에 생명제가 살고 있는, 혹은 살 수 있는 행성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은 진지한 탐험 여행에 나섰습니다.
결국 그들은 당신네 태양계로 진출했어요. 첫 방문지는 화성이었지요.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곳으로 알고 있었고, 실제로도 당시에는 인간이 살고 있었어요.
화성의 인간들은 기술은 없었지만 영적으로는 고도로 발달 했어요. 키는 120~150cm로 매우 작고 몽골인종처럼 생겼고, 부족 단위로 석조 오두막에서 살았어요.
화성의 동물상은 빈약했어요. 작은 체구의 염소, 대형 산토끼처럼 생긴 짐승, 몇 종류의 쥐 등이 있었고, 가장 큰 동물은 버펄로처럼 생겼는데 머리는 맥(tapir)을 닮았지요. 몇 종류의 새와 세 종류의 뱀도 있었고 어떤 뱀은 독성이 강했어요. 식물상 역시 빈약했어요. 가장 큰 나무도 높이가 4m밖에 안 됐어요. 메밀처럼 생긴 식용 식물도 있었지요.
바카라티니인들은 탐사를 계속했어요. 그러나 화성 역시 내부 온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4,000~5,000년 뒤에는 거주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또 기존의 동식물 자원으로는 기존 주민들의 식량을 충당하기에도 충분치 않았어요. 그러니 대규모의 바카라티니인 이주민을 감당하기는 불가능했지요. 게다가 화성은 매력이 없었습니다.
결국 두 대의 이주민 우주선은 지구로 향했어요. 첫 착륙지는 오늘날의 호주 지역이었지요. 당시 호주, 뉴기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는 모두 한 대륙에 속해 있었어요. 그리고 오늘날의 태국 지역에는 폭300km의 해협이 있었지요.
당시 호주에는 거대한 내해(內海)가 있었고, 거기로 여러 개의 큰 강이 흘러들었어요. 그런 만큼 다양하고 흥미로운 동식물상이 번성했지요. 바카라티니인들은 모든 점을 감안한 뒤 호주지역을 첫 이민지로 선택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흑인종은 호주를 택했고 황인종은 오늘날의 미얀마 지역에 정착했어요. 미얀마 지역에도 야생 생물이 풍부했어요. 벵골 만 주변에 정착 기지들이 신속히 세워졌지요. 한편 흑인들은 호주 내해 주변에 첫 정착 기지를 건설했습니다. 나중에는 더 많은 기지가 뉴기니 지역에 세워 졌어요.
그들의 우주선은 초광속으로 비행할 수 있었는데, 약 50년에 걸쳐 흑인과 황인 이주민들을 각각 360만 명씩 지구로 실어 날랐어요. 이는 두 인종이 서로를 철저히 이해하고 단합돼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그들은 새로운 행성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아남기로 결심했어요. 양측의 합의 하에 노약자들은 바카라티니에 남았어요.
바카라티니인들은 정착 기지를 건설하기 전에 지구 전체를 샅샅이 탐사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이 도착하기 전의 지구에는 인간이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어요. 인간처럼 생긴 생명체들을 자주 보긴 했지만 좀 더 자세히 조사해본 결과 대형 원숭이 종류였음이 확인됐어요.
지구의 중력은 바카라티니에서보다 강해 처음에는 상당히 불편했지만 두 인종은 훌륭히 적응해 나갔습니다. 도시와 공장을 건설할 때 그들은 바카라티니에서 매우 가벼우면서도 강한 자재들을 들여왔어요.
아직 설명하지 않은 게 있는데, 당시 호주는 적도 지역에 있었지요. 지구는 오늘날과는 다른 축을 중심으로 회전했는데, 자전 주기는 30시간 12분, 공전 주기는 280일이었어요. 당시 적도의 기후는 오늘날과는 달랐어요. 대기 상태가 변한 오늘날보다는 훨씬 더 다습했어요.
거대한 얼룩말 떼가 평원을 돌아다녔고, ‘도도’라고 불린 거대한 식용 새와, 초대형 재규어도 있었어요. 또 지구인들이 ‘거대 모아 새’ (Dinornis)라고 부르는 4m 높이의 새도 당시에 존재했어요. 어떤 강에는 길이 15m짜리 악어와 25~30m의 뱀이 살았는데 이따금 이주자들을 잡아먹었지요.
동식물상의 대다수는 바카라티니와 완전히 달랐어요. 영양학적 생태학적 관점에서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해바라기, 옥수수, 밀, 사탕수수, 타피오카 같은 식물들을 지구의 기후에 적응시키려고 수많은 실험농장들이 세워졌어요.
이들 식물은 지구에 존재하지 않았거나, 존재했다 해도 원시 상태였기 때문에 먹을 수가 없었지요. 염소와 캥거루는 바카라티니에서 수입됐어요. 이주민들이 유달리 좋아해서 바카라티니에서 즐겨 먹던 동물들이었거든요. 그들은 특히 캥거루 사육에 열성적이었어요. 하지만 지구 생태계에 적응시키는 데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지요.
가장 큰 문제 중하나는 먹이였어요. 바카라티니에서 캥거루는 ‘아릴루’ 라는 가늘고 질긴 풀을 먹고 살았는데, 이 풀은 지구에는 없던 것이었어요. 그 풀은 이주민들이 재배하려고 애썼지만 번번이 미세한 진균류(眞菌類)의 공격으로 죽었어요. 그래서 캥거루는 몇 십 년 동안은 사료를 먹고 살았지만 점차 지구의 토종 풀들에 적응해 갔지요.
흑인들은 아릴루 재배 노력을 계속해 결국 성공했어요. 하지만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난 터라 캥거루들은 이미 토종 풀에 적응했기 때문에 성공의 의미가 퇴색됐어요. 훨씬 더 긴 세월이 흐른 뒤 일부 아릴루 종은 지구 토양에 뿌리를 내렸지만 이를 먹는 동물이 없다 보니 호주 전역으로 퍼졌어요.
그 식물은 ‘크산토로에아’ 라는 학명으로 아직도 존재하는데, 일반적으론 ‘그래스 트리’ (grass tree: 백합과의 상록 관목. 저자의 원고에는 ‘black boy’ 로 돼 있다. 하지만 이 용어는 인종적인 합의 때문에 호주에서는 기피하는 표현이다.)로 불리지요.
이 식물은 바카라티니에서보다는 지구에서 훨씬 더 크고 두텁게 자랍니다. 식물종이 다른 행성으로부터 도입되는 경우에 자주 있는 일이지요. 이 식물은 고대의 흔적을 보여주는 드문 경우에 속해요.
이 식물은 캥거루처럼 호주에서만 발견됩니다. 그것은 바카라티니인들이 지구의 다른 지역들로 진출하기 전에 아주 오랫동안 호주에서 살았음을 보여줍니다. 이 점에 관해 설명 할게요. 하지만 먼저 그들이 적응을 위해 극복해야 했던 문제들을 당신에게 좀 더 잘 이해시키려고 캥거루와 크산토로에아의 경우를 언급하고 싶었어요. 물론 그것은 수많은 문제들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황인종은 앞서 말했듯이 벵골 만의 내륙지대에 정착했어요. 대다수는 지금의 미얀마 지역에서 살았지요. 그들 역시 도시들을 건설하고 실험농장을 운영했어요. 채소류에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였어요. 그래서 바카라티니로부터 양배추, 상추, 파슬리, 고수풀 등을 수입했어요.
과일로는 체리나무, 바나나, 오렌지 나무 등을 들여왔지요. 바나나와 오렌지는 재배하기가 어려웠어요. 당시 기후가 지금보다는 추웠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바나나와 오렌지 나무 일부를 흑인들에게 넘겨줬는데, 흑인들은 재배에 성공했어요.
밀 재배에서는 황인들이 훨씬 더 성공했어요. 사실, 바카라티니산 밀은 낟알이 매우 커서 커피콩 크기만 했고, 이삭의 길이도 40cm나 됐어요. 네 가지 품종의 밀이 재배됐는데, 황인들은 얼마 안 돼 아주 높은 수준의 생산력을 갖게 됐어요.”
“바카라티니인들이 쌀도 지구에 도입했나요?”
“아뇨. 쌀은 순전히 지구의 토종 식물이에요. 하지만 지금 같은 종자가 된 것은 황인들이 여러 차례 품종을 개량한 덕분이에요.
거대한 식량창고들이 건설됐고, 곧이어 두 인종 간 교역도 시작됐어요. 흑인들은 캥거루 고기, 도도 새(당시에는 새끼를 많이 낳았다), 얼룩말 고기를 수출했어요. 흑인들은 얼룩말을 사육하는 과정에서 맛은 캥거루 고기와 같지만 영양가는 더 높은 품종을 개발했지요. 교역은 바카라티니 우주선을 이용해 이뤄 졌고, 곳곳에 우주선 기지들이 세워졌지요.
“타오 잠깐만요. 당신 얘기는 지구 최초의 인간이 흑인과 황인이었다는 것인가요? 그렇다면 내가 백인인 것은 어떻게 된 건가요.”
“미셸, 너무 앞서 나가지 마세요. 지구에서 최초의 인류는 분명히 흑인과 황인이었어요. 일단은 어떻게 그들이 사회를 조직하고 살아갔는지부터 설명할게요. 그들은 물질적으로 성공했어요. 하지만 거대한 집회장을 건설해 종교 생활을 하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어요.”
“그들에게 종교가 있었어요?”
“예, 그래요. 그들은 모두 ‘타키오니’ 이었지요. 다시 말해 환생(reincarnation)을 믿는 사람들이었어요. 오늘날 지구의 라마교도의 신앙과 비슷한 것이에요.
두 나라 사이에는 왕래가 잦았어요. 지구의 다른 지역을 좀 더 깊이 탐사하려고 공동으로 노력하기도 했지요. 어느 날 흑인과 황인의 합동탐사대가 남아프리카 끝에 착륙했어요. 오늘날 희망봉으로 불리는 곳이에요. 그 시절 이후 아프리카는 거의 변하지 않았어요. 사하라, 북동부 지역, 홍해는 제외하고요. 그곳들은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은 별도의 얘기로 나중에 설명해줄게요.
탐사대가 그곳에 착륙한 때는 이미 바카라티니인들이 지구에 정착한지 300년이나 흐른 시점 이었어요.
아프리카에서 그들은 코끼리, 기린, 버펄로 같은 새로운 동물과, 전에 본 적이 없었던 토마토 같은 새 과일을 발견하였습니다. 미셸, 그 토마토가 당신이 알고 있는 토마토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처음 발견됐을 때 토마토는 매우 작은 건포도 크기에 신맛이 강했어요. 황인들은 그동안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그 후 몇 세기 동안 토마토 품종개량에 나섰어요. 벼 품종을 개량한 것과 마찬가지였죠.
그 결과 당신이 알고 있는 토마토가 생긴 것입니다. 그들은 바나나나 무를 처음 봤을 때도 놀랐습니다. 자신들이 수입해온 바나나와 너무 닮았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바나나를 들여온 것을 후회하지는 않았어요. 아프리카 바나나는 식용에 적합지 않은 데다 속에 큰 씨앗들이 가득 들어있었기 때문이에요.
그 아프리카 탐사대는 흑인 50명과 황인 50명으로 구성됐는데, 코끼리와 토마토, 그리고 많은 몽구스를 가지고 귀국했어요. 몽구스들은 곧 뱀의 천적임이 밝혀졌지요. 불행하게도 그들은 요즘 ‘황열병’ 이라고 불리는 끔찍한 바이러스성 질환도 함께 가져왔습니다.
매우 짧은 시간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심지어 의사들조차 어떻게 병이 퍼졌는지를 몰랐어요. 황열병은 모기에 의하여 주로 퍼졌고 적도 지방에는 모기 수를 줄일 겨울이 없어 모기들이 더 많았지요. 그 결과 호주의 흑인들이 더 많이 희생됐어요. 황인보다 희생자가 네 배나 많았어요.
바카라티니의 황인종은 의학과 병리학 분야에서 늘 뛰어났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질병의 치료제를 발견할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그 사이에 수십만 명이 끔찍한 고통 속에 죽어갔어요. 마침내 황인들은 백신을 만들어냈고, 흑인들에게도 즉시 백신을 보내줬습니다. 두 인종 간의 우정은 더욱 돈독해졌지요.”
“흑인의 체격은 어땠나요?”
“바카라티니에서 왔을 때 흑인의 키는 약 230cm이었고, 여성도 비슷했어요. 그들은 아름다운 종족이었어요. 황인들은 상대적으로 작았어요. 남자는 평균 190cm, 여자는 180cm 이었죠.”
“하지만 당신은 현대 흑인들이 그들의 후손이라고 말했는데, 후손들이 훨씬 더 작은 이유는 뭔가요?”
“중력 때문이죠. 바카라티니보다는 지구의 중력이 더 강해 두 인종은 점차 키가 작아졌어요.”
“당신은 또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와준다고 했는데, 황열병이 발생했을 때는 왜 도와주지 않았나요? 당신네도 백신을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나요?”
“도울 능력은 있었어요. 우리 행성에 와보면 우리의 능력을 알게 될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개입하지 않았어요. 예정된 프로그램에 없던 일이었기 때문이에요. 이미 말했지만, 우리는 너무 자주 개입하지 못하게 돼 있어요. 특정 상황에선 도와주지만 그 외에는 안 돼요. 어느 정도를 넘어서면 도움을 주는 것이 법으로 엄격히 금지돼 있어요.
간단한 예를 들어보죠. 배우기 위해 매일 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생각해 보세요. 저녁에 집에 돌아온 아이가 숙제를 도와달라고 합니다. 현명한 부모라면 아이가 과제물을 제대로 이해하도록 도와주고 숙제는 혼자 힘으로 하도록 합니다. 반면에 부모가 숙제를 대신 해주면 아이는 배울 기회를 놓치게 되겠죠. 그러면 아이는 같은 내용을 다음해에도 반복해야 합니다. 그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할 도리가 아니죠.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당신이 지구에 존재하는 목적은 어떻게 살고 고통 받고 죽느냐 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지요. 동시에 영적으로 최대한 발전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죠. 나중에 ‘타오라’ 가 당신과 대화할 때 이 점을 다시 얘기할 겁니다. 지금은 이 사람들에 관해 더 얘기하고 싶어요.
그들은 황열병을 이겨내고 지구에 뿌리를 더욱 깊이 내렸어요. 호주뿐만 아니라 오늘날 남극대륙으로 알려진 지역에도 많은 인구가 살았어요. 물론 당시 그 지역은 적도 쪽으로 좀 더 가까이 있었으므로 기후가 온화했어요. 뉴기니에도 많은 사람이 정착했어요. 황열병 전염이 종식될 무렵 흑인 인구는 7억 9500만이었어요.”
“나는 남극대륙이 실제로는 대륙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당시 그것은 호주에 붙어있었고 요즘보다 훨씬 따뜻했어요. 지구가 다른 축을 중심으로 회전했기 때문이지요. 당시 남극대륙의 기후는 지금의 러시아 남부와 비슷했어요.”
“그들이 바카라티니로 돌아가지는 않았나요?”
“아뇨. 지구에서의 생활이 안정되자 그들은 아무도 돌아가지 않는다는 엄격한 규칙을 제정했어요.”
“그들의 행성은 어떻게 됐나요?"
“예상대로 냉각되다가 사막으로 변했어요. 화성처럼.”
“그들의 정치제도는 어떤 것이었나요?”
“매우 단순했어요. 손을 들어 찬반을 표시하는 선거로 마을이나 구역의 지도자를 뽑았어요. 그리고 구역 지도자들이 모여 시장을 선출하고, 동시에 지혜, 상식, 성실성, 지성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들 중에서 8명의 원로를 뽑습니다.
재산이나 가문을 기준으로 뽑는 경우는 결코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이는 모두 45~65세입니다. 도시나 지방(한 지방은 8개 마을로 구성된다)의 지도자는 8인의 원로와 의논하는 역할을 맡습니다. 그 8인으로 구성되는 원로회의는 주(州) 평의회 모임에 참가하는 대표를 선출합니다(비밀투표로 하며 의결 정족수는 7명 이상이다).
예컨대 호주에는 8개 주가 있었고, 각 주는 8개 도시나 지방으로 구성됐습니다. 따라서 주 평의회 모임에는 각자 특정 도시나 지방을 대표하는 8명의 대표자가 참석했습니다.
한 사람의 위대한 현인이 주재하는 주 평의회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어떤 정부나 직면하는 일상적인 사안들을 의논했습니다. 예컨대 상하수도, 병원, 도로 같은 문제들이죠. 도로 교통의 경우, 흑인과 황인들은 수소 발동기로 작동하는 매우 가벼운 차량을 이용했어요. 반자기력과 반중력에 입각한 시스템 덕분에 지면 위로 부상한 채 이동하는 차량이었지요.
정치제도 얘기로 돌아가서, 소위 ‘정당’ 같은 조직은 없었어요. 모든 것이 인격과 지혜에 대한 평판에 달려있었죠. 수많은 경험을 통해 그들은 오래 지속될 질서를 수립하기 위해선 공정성과 원칙이라는 두 개의 핵심 요소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배웠습니다.
그들의 경제 및 사회 조직에 관해선 나중에 얘기하고, 지금은 사법제도를 간단히 소개할게요. 예를 들어 절도범으로 확인된 사람은 새빨갛게 달군 쇠붙이로 평소 사용하는 손의 등에 낙인을 찍습니다. 오른손잡이는 오른 손등에 찍는데, 도둑질을 또 하면 왼손을 잘라 버립니다. 최근까지도 지구의 아랍인들 사이에서 유지되는 오래된 관습이지요. 도둑질을 계속하면 오른손마저 절단하고 이마에도 지워지지 않는 낙인을 찍습니다.
양손이 없어졌기 때문에 절도범은 식사를 비롯해 만사를 가족이나 행인들의 자비와 동정심에 의존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 낙인의 의미를 알기 때문에 절도범의 인생은 매우 힘들어졌어요. 차라리 죽는 게 나았을지도 모릅니다.
절도범은 이런 식으로 상습범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본보기가 됐어요. 말할 필요도 없지만 절도는 희귀한 범죄였지요.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살인 역시 드물었어요. 살인 용의자는 특별실에 데려가는 데 커튼 뒤에는 ‘독심술사’ 가 있었어요. 독심술사는 특수한 정신감응 재능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특수 교육기관에서 그런 재능을 부단히 증진시킨 사람이었지요. 그의 임무는 용의자의 생각을 간파하는 것이었어요.
훈련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비우는 일이 가능하다고 반박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6시간 내내 그렇게 하기는 불가능해요. 게다가 용의자가 생각을 비우려할 때마다 특정한 음향이 들리면서 그의 정신 집중을 방해합니다.
예방책으로 6명의 다른 ‘독심술사’도 동원됐어요. 멀리 떨어진 다른 건물에서는 목격자에게도 동일한 절차가 적용됐어요. 말은 한마디도 필요 없었습니다. 다음 이틀 동안에도 같은 절차가 반복됐는데, 그때는 8시간씩 했어요.
나흘째 되는 날 독심술사들은 판사 세 명으로 구성된 재판부에 각자의 보고서를 제출하고 판사들은 피고와 목격자들을 상대로 신문과 반대신문을 합니다. 변호사나 배심원은 없었습니다. 판사는 사건에 관한 모든 세부적인 정보를 확보한 후 범죄 사실이 절대적으로 확실할 때에만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왜냐하면, 살인죄의 형벌은 죽음 그것도 끔찍한 죽음이었거든요. 살인자는 산채로 악어들에게 던져졌어요. 강간은 살인보다 더 나쁜 범죄로 간주됐는데 그런 만큼 형벌도 더 잔인했지요. 강간범은 온몸에 꿀을 바른 뒤 개미굴 근처의 땅속에 어깨까지 파묻혔어요. 죽을 때까지 10~12시간이 걸렸지요. 이제는 이해하겠지만 두 나라의 범죄율은 지극히 낮았어요. 그래서 교도소를 지을 필요도 없었지요.”
“형벌이 지나치게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예를 들어, 강간당한 뒤 살해된 16살짜리 소녀의 어머니 심정을 생각해 보세요. 어머니는 가장 잔인한 고통을 견뎌야 합니다. 자신의 잘못도 아니고 바라지도 않았던 일 때문에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반면 범인은 자기 행동의 결과를 알고 있어요. 따라서 매우 잔인하게 처벌받는 게 정당합니다. 그러나 이미 설명했듯이 범죄 행위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종교로 돌아가죠. 앞서 말한 대로 두 인종은 환생을 믿었어요. 하지만 그들의 신앙에는 분파들이 있었고, 그래서 때론 그들을 분열시켰어요. 다양해진 교파의 성직자들은 신도들을 자신의 지도력 아래로 끌어들였어요. 흑인종 내부의 교파 분열은 재앙을 낳았어요.
결국 약 50만 명의 흑인이 성직자들을 따라 아프리카로 이주해갔습니다. 지금의 홍해 지역이었어요. 당시에는 홍해가 존재하지 않았던 만큼 그 지역은 아프리카 땅이었어요. 그들은 마을과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대로 여러 면에서 공정하고 효율적이었던 그 정치제도는 폐기됐어요.
성직자들이 정부 수장들을 직접 선정했어요. 결국 정부 지도자들은 성직자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로 변해 갔어요. 그때부터 사람들은 부패 매춘 마약을 비롯한 온갖 비리들을 겪어야 했어요. 오늘날 지구인들에게 매우 익숙한 문제들이지요.
황인종의 경우는 매우 잘 조직화되었습니다. 약간의 경미한 종교적 왜곡이 있긴 했지만 그쪽 성직자들은 국사에 대한 발언권이 없었어요. 황인들은 평화를 누리며 풍요롭게 살았어요. 아프리카로 떠나간 분리론자 흑인종과는 매우 달랐지요.”
“그들은 어떤 종류의 무기를 가지고 있었나요?”
“아주 단순한 무기였어요. 단순함이 복잡함보다 우월한 경우가 많듯이, 그 무기는 매우 효과적이었어요. 두 인종은 일종의 ‘레이저 무기’를 가져왔습니다. 무기는 특수 집단의 통제 아래 있었고, 그 집단은 각국 지도부의 통제를 받았어요. 양측은 합의에 따라 100명의 ‘참관인’을 상대국에 상주시켰어요. 참관인들은 자국을 대표하는 대사와 외교관들로서 상대국이 과다한 무기를 보유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도 맡았어요. 그 시스템은 완벽하게 작동했고, 평화가 3,550년 간 유지됐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로 이주한 흑인들은 분리주의 세력이었던 만큼 레이저 무기를 갖고 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서서히 퍼져나가면서 지금의 사하라 사막 지역에 정착했습니다. 당시 그 지역은 온화한 기후의 비옥한 땅이었어요. 많은 동물의 먹이가 되는 식물이 풍부한 곳이었어요.
성직자들은 사원들을 건설하도록 시켰고, 부와 권력에 대한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람들에게 많은 세금을 부과했습니다.
가난을 몰랐던 사람들 사이에서 이제 두 개의 계층이 명확히 형성됐어요. 아주 부유한 계층과 아주 가난한 계층이지요. 물론 성직자들은 전자에 속했고, 그들을 도와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한 사람들도 부유층에 속했어요.
종교는 우상숭배로 변질됐고, 사람들은 돌 또는 나무로 만든 신들을 숭배하면서 제물을 바쳤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직자들은 인간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분리가 시작됐을 때부터 성직자들은 일반대중을 가능한 한 무지 속에 가둬놓으려 애썼습니다. 사람들의 지적, 물질적 발전 수준을 낮춤으로써 그들에 대한 지배를 더 쉽게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성직자들이 말하는 ‘발전한’ 종교와, 애당초 분리 독립에 영감을 준 ‘종교 의식’ 사이에는 이제 아무런 공통점도 없어졌습니다. 그런 만큼 일반대중을 통제하는 일은 필수적인 과제였어요.
우주의 법칙이 명령하는 바, 인간의 으뜸가는 의무는 그가 어느 행성에 살든 영적으로 발전하는 일입니다. 이들 성직자는 전체 국민을 무지 속에 가두고 거짓으로 이끌며 정신적 수준을 떨어뜨림으로써 그 보편적인 근본 법칙을 어겼습니다.
우리는 그 시점에서 개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개입하기 전에 성직자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정신감응과 꿈을 통해 그들의 최고 성직자에게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인간 제물 관행을 종식시키고 국민들을 다시 올바른 길로 인도하라. 인간은 오로지 영적 발달이라는 목적을 위해 물질적으로 존재한다. 당신이 하는 일은 우주법칙에 위배된다.’
그 최고 성직자는 몹시 혼란스러워 했어요. 그래서 다음날 성직자 회의를 소집해 꿈 얘기를 공개했습니다. 일부 성직자는 그가 배신하려 한다고 비난했습니다. 그가 너무 노쇠했다든가 환각에 빠졌다고 매도하는 성직자들도 있었어요.
여러 시간에 걸친 토론 끝에 참석자 15명 중 12명은 기존의 종교 관행을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일반대중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면서 ‘복수심에 불타는 신’ 에 대한 믿음과 두려움을 심화시키고, 그런 신의 대리인이 바로 성직자라고 믿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성직자들은 최고 성직자가 자신의 ‘꿈’ 에 관해 해준 얘기를 한마디도 믿지 않았어요.
우리의 입장이 매우 미묘해질 때가 있어요, 미셸. 우리가 그들 앞에 우주선을 타고 나타나 성직자들에게 직접 얘기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들도 분리하기 전에 우주선을 갖고 있었던 만큼 우리 우주선을 식별할 수 있었지요.
그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즉각 우리를 공격했을지도 모릅니다. 의심이 많은데다, 자신들이 ‘국가’ 안에서 차지하고 있던 우월한 지위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또 혁명이 발생할 경우 진압하기 위해 군대와 강력한 무기도 보유하고 있었어요. 물론 우리는 그곳 주민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 성직자 세력을 제거하고 직접 주민들과 대화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럴 경우 심리적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었어요. 주민들은 성직자들에게 순종하는 데 길들여졌고 자기네 나라 일에 우리가 개입하는 까닭을 이해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렇게 되면 우리의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지도 몰랐어요.
그래서 어느 날 밤 우리는 ‘소형 구체’를 타고 날아가 그 나라의 상공 1만m 높이에 정박했습니다. 그들의 사원과 ‘성스러운 도시’는 도시에서 1km 정도 떨어져 있었어요. 우리는 텔레파시로 최고 성직자와 그를 따르던 두 명의 성직자를 깨웠어요.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성스러운 도시’ 에서 약 1.5km 떨어진 곳에 있는 아름다운 공원으로 걸어가게 했습니다.
그런 후 우리는 교도소 교도관들에게 집단 환각을 일으켜 교도소 문을 열고 수감자들을 풀어주게 했습니다. 시종들과 군인 등 사실상 ‘성스러운 도시’ 의 모든 주민을 대피시켰어요. 그 12명의 사악한 성직자들만 제외시켰지요. 하늘에서 보이는 이상한 ‘환영’ 에 감을 잡은 주민들은 도시 변두리로 피신했어요. 밤하늘에는 밝게 빛나는 백열 구름 주위를 날개 달린 존재들이 떠다니고 있었지요.”
“그건 어떻게 한 것인가요?”
“집단 환상 작용을 일으킨 겁니다, 미셸. 그렇게 해서 매우 짧은 시간에 ‘성스러운 도시’ 에는 12명의 사악한 성직자만 남게 됐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소형 구체’는 사원을 비롯한 모든 건물을 파괴했습니다. 당신도 이미 본적이 있는 무기를 사용했지요. 모든 구조물이 파괴되고 무너지면서 약 1m 높이의 폐허로 변했습니다. 그들이 저지른 ‘죄악’ 의 말로를 보여주는 증거였지요.
사실 그런 폐허마저 남아있지 않게 파괴했다면 사람들은 곧 잊어버렸을 겁니다. 원래 사람들은 쉽게 잊지요…….
더 나아가 주민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백열 구름으로부터 경고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신의 분노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환기시키면서, 최고 성직자에게 순종하고 그가 안내하는 새로운 길을 따라가라는 내용이었어요.
그것이 끝나자, 최고 성직자가 주민들 앞에서 연설했습니다. 그는 가난하고 가엾은 주민들을 향해 그동안 자신이 잘못 했으며 이제는 모두 합심해 새로운 길을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어요.
그는 두 명의 성직자의 도움을 받아 일을 했어요. 물론 어려운 때가 많았지요. 하지만 그들은 순식간에 ‘성스러운 도시’를 파괴하고 나쁜 성직자들을 죽인 그날의 사건을 기억하면서 용기를 얻었어요. 말할 필요도 없지만 그 ‘사건’은 신이 일으킨 기적으로 간주됐지요. 그 다음날 인간 제물로 바쳐질 예정이었던 200여 명의 수감자들이 풀려났다는 사실도 기적으로 간주됐어요.
그 사건의 모든 내용은 자세히 기록됐습니다. 하지만 여러 세기에 걸쳐 신화와 전설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왜곡되기도 했지요. 어떻든 그 사건은 즉각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어요. 주민 착취에 가담했던 부자들은 ‘성스러운 도시’ 와 사악한 성직자들에게 일어난 일을 목격한 뒤부터는 자신들도 같은 운명에 처하지 않을까 두려워했어요. 그들은 상당히 겸손해진 태도로, 새로운 지도자들의 개혁을 도왔습니다.
점차 주민들은 분리하기 전과 같은 만족스런 삶을 되찾았어요. 산업화한 도시보다는 전원적인 분위기를 좋아해서 그 후 수 세기 동안 아프리카 여러 곳으로 퍼져 나갔어요. 인구도 수백만 명으로 늘어났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홍해 지역과, 아프리카 중앙을 관통해 흐르는 큰 강의 양쪽 둑을 따라서만 세워졌어요.
그들은 영적인 능력을 고도로 발달시켰어요. 가까운 거리는 공중부양으로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았어요. 정신감응의 중요성도 다시 강조되면서 흔히 사용되는 능력이 됐지요. 상처 부위에 손을 얹기만 해도 치료가 되는 경우도 빈번히 일어났습니다.
호주와 뉴기니의 흑인들과도 우호 관계가 다시 수립됐어요. 그들은 정기적으로 ‘불의 전차’를 타고 아프리카를 방문 했지요. 아프리카 흑인들은 호주 흑인들이 여전히 이용하는 우주선을 그렇게 불렀어요.
가까운 이웃인 황인종이 소규모로 북아프리카에 이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불의 전차를 탄 하느님의 강림’ 전설에 매료됐지요. 우리의 개입은 그런 식의 전설로 전해졌어요.
황인종과 흑인종 사이에 처음으로 육체적 결합이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바카라티니에서도 인종간의 결합은 있었지만, 지구에서만큼 광범하게 일어나지는 않았어요. 인종학자들은 그 결과에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런 대규모 교배로 지구상에 새로운 종족이 생겨났습니다. 이 ‘헌혈 종족’ 은 흑인보다는 황인 피와 더 많이 섞였는데, 세월이 흐를수록 흑인이나 황인보다는 자기네끼리 어울려 사는 것을 좋아했어요.
결국 그들은 함께 모여 살면서 지금의 알제리와 튀니지 지역에 정착했습니다. 이렇게 새로 탄생한 인종이 바로 아랍인이죠. 하지만 그들이 처음부터 지금의 아랍인과 같은 모습을 하지는 않았어요. 오랜 세월과 기후의 영향이 있었지요. 나는 단지 지구의 인종이 어떻게 상호 교배를 통해 형성됐는가를 간단히 설명하는 것뿐이에요.
그 후 지구의 주민들은 오랫동안 별 탈 없이 잘 지냈습니다. 그러다 한 가지 문제가 생겼어요……. 천문학자들에게는 큰 걱정거리였지요. 거대한 소행성이 지구에 접근하고 있었어요. 아직은 너무 멀리 있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지구를 향하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것을 처음 관측한 것은 호주 중부에 있는 이키리토 천문대였어요. 몇 달 뒤 소행성은 육안으로도 보였어요. 몹시 불길하게도 선명한 붉은 빛을 내며 다가왔지요. 몇 주 뒤 소행성은 훨씬 더 쉽게 눈에 띄었습니다.
호주, 뉴기니, 남극의 각국 정부들은 중대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황인종 지도자들도 곧 그 결정에 동의했어요. 소행성과의 필연적인 충돌이 있기 전에 비행 가능한 모든 우주선이 의사와 기술자 같은 전문가들을 최대한 많이 태우고 지구를 떠난다는 결정이었어요. 그들 전문가는 대참사 이후의 문명 재건에 가장 도움이 될 만한 사람들이었어요.”
“그 우주선들은 어디로 갈 예정이었나요? 달인가요?”
“아니에요, 미셸. 당시 지구에는 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우주선이 시간적으로 공중에 떠 있을 능력은 12주뿐이었어요. 장거리 우주여행 능력을 상실한지 꽤 오래됐어요. 그들의 계획은 지구 궤도에 머물면서 가능한 한 빨리 착륙할 준비를 하고 가장 필요한 곳에 도움을 준다는 것이었어요.
호주에서는 우주선 80대가 엘리트 집단을 운반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엘리트 집단은 밤낮으로 열린 수많은 회의에서 선발됐어요. 황인종도 비슷한 절차를 밟아 98대의 우주선을 준비했어요. 물론 아프리카지역엔 우주선이 없었습니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이 있어요. 각국의 최고 지도자를 제외하고 어느 ‘각료’ 에게도 탑승 자격이 부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에요. 당신에게는 낯설게 들릴지도 모르겠네요. 오늘날 지구에서 동일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많은 정치인들이 자기네 목숨부터 구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테니까요.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 때서야 일반대중에게도 임박한 소행성과의 충돌을 알렸어요. 그러나 우주선의 역할에 대해서는 비밀로 했습니다. 왜냐하면 국민은 지도자들에게 배신당했다고 믿을 테고, 그러면 공황상태가 조성되면서 우주선 발사기지가 공격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어요. 같은 이유에서 지도자들은 충돌로 초래될 재앙의 위기를 축소해 알렸어요. 국민의 공포심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지요.
소행성의 속도로 볼 때 이제 충돌은 거의 임박했고 필연적이었어요. 겨우 48시간 남았죠. 대다수 전문가가 그런 계산에 동의했어요. 우주선들은 예상 충돌 시간 2시간 전에 일제히 이륙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늦게 출발하는 이유는 재앙 발생 후 우주에서의 체공 가능 시간인 12주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였어요. 충돌 지점은 지금의 남미 지역으로 예상됐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났고, 이륙 지시는 호주 중부 시간으로 예정일 정오에 내려지기로 결정됐어요. 그런데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계산 착오가 있었는지, 아니면 소행성의 속도가 예기치 못한 갑작스런 원인으로 빨라졌는지 소행성이 예정일 오전 11시에 오렌지색 태양처럼 빛을 내며 하늘에 나타났어요. 황급히 이륙 명령이 떨어졌고 모든 우주선이 하늘로 날아올랐죠.
지구의 대기권과 중력을 빨리 벗어나려면 ‘워프’ 를 이용해야 합니다(여기서 워프[warp]는 중력이 약한 지역인 이른바 ‘중력 구멍‘ 을 의미한다. 저자의 설명에 입각한 편집자 주). 당시 워프는 오늘날의 유럽 상공에 있었지요. 우주선들은 최대 속도로 워프를 향해 날아갔지만,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할 때까지 그곳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소행성은 지구 대기권에 진입하면서 세 개의 거대한 덩어리로 부서졌어요. 가장 작은 덩어리는 직경이 수km이었는데 홍해 지역에 떨어졌습니다.
훨씬 더 큰 또 다른 덩어리는 오늘날의 티모르 해(Timor Sea)에 떨어졌고, 가장 큰 덩어리는 갈라파고스 섬에 충돌했습니다.
그 충격은 끔찍했어요. 태양은 흐릿한 붉은색으로 변했고, 떨어지는 풍선처럼 지평선 쪽으로 미끄러져 내리는 듯이 보였어요. 그리고 곧바로 멈췄다가 다시 천천히 올라가더니 절반쯤 가다가 다시 ‘떨어졌어요.’ 지구 축의 기울기가 갑자기 변했던 것이에요! 두 개의 큰 소행성 덩어리들이 지각을 뚫고 들어가면서 엄청난 위력의 폭발이 발생했습니다. 호주, 뉴기니, 일본, 남미 등 사실상 지구 전역에서 화산들이 폭발했습니다.
산맥이 치솟았고, 높이가 300m 이상 되는 파도가 호주의 80%를 휩쓸었습니다. 태즈메이니아가 호주 대륙에서 떨어져 나갔고, 남극대륙의 상당부분이 물에 잠겼어요. 그러면서 호주와 남극 사이에 두 개의 거대한 해저 협곡이 생겼어요. 남태평양 한가운데에서는 광활한 대륙이 솟아올랐지요. 미얀마의 일부는 가라앉아 지금의 뱅골 만이 됐습니다. 또 다른 분지가 가라앉아 홍해가 형성됐어요.”
“우주선들이 빠져나갈 시간이 있었나요?”
“아뇨, 미셸. 전문가들은 한 가지 실수를 저질렀어요. 그들을 변호하자면, 사실 무엇이 일어날지는 예상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지축이 기울어질 것이란 점은 예측했지만 지구가 진동하리란 점은 예측할 수 없었지요. 우주선은 소행성의 지구 대기권 재진입으로 야기된 ‘역류’ 에 휘말렸어요. 게다가 소행성을 따라다니는 수백만 개의 암석 조각들이 우주선들을 폭격하다시피 했어요.
흑인 우주선 3대와 황인 우주선 4대 등 겨우 7대의 우주선만이 간신히 재앙을 피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들은 눈앞에서 지구가 파괴되는 모습에 몸서리를 쳤을 거예요.”
“태평양에서 당신이 언급한 대륙이 솟아오르는 데는 시간이 얼마나 걸렸나요?”
“몇 시간 정도에요. 그 대륙은 지각변동 때문에 지구 중심부에서 솟구쳐 올라온 가스층에 의해서 들어 올려졌어요. 지각변동은 여러 달 계속됐습니다. 세 개의 소행성 덩어리가 충돌한 지점에는 수천 개의 화산이 형성됐어요. 유독성 가스가 호주의 대부분 지역으로 퍼지면서 흑인 수백만 명이 몇 분 만에 사망했어요. 우리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호주에 살던 인간과 동물이 거의 멸종됐어요. 상황이 진정됐을 때 조사해 보니 겨우 180명이 살아남았습니다. 사망자가 이렇게 많았던 주된 원인은 유독 가스였어요. 가스가 비교적 적게 퍼졌던 뉴기니에서는 사망자가 더 적었어요.”
“타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네, 그러세요."
“호주의 흑인이 뉴기니와 아프리카로 퍼져나갔다고 했지요. 그렇다면 오늘날 애버리지니(호주 원주민의 생김새가 여타 지역의 흑인들과 그토록 다른 까닭은 무엇인가요?”
“좋은 질문이에요, 미셀. 저의 설명이 충분치 못했군요. 지각변동으로 지표면의 우라늄에서 강력한 방사능이 방출됐어요. 호주에서만 그랬죠. 생존자들은 그 방사능에 심하게 노출 됐어요. 마치 원자폭탄이 터진 것 같았지요.
유전자도 영향을 받았어요. 아프리카 흑인의 유전자와 애버리지니의 유전자가 다른 까닭이지요. 게다가 환경과 음식도 완전히 변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호주의 바카라티니인 후손들은 오늘날의 애버리지니 인종으로 ‘변형’ 됐어요.
지각변동이 계속되면서, 때론 갑작스럽게, 때론 며칠에 걸쳐 산들이 형성됐습니다. 지면이 갈라져 도시 전체를 삼키고는 다시 닫히면서 문명의 흔적을 사그리 없앴어요. 그 모든 끔찍한 사태도 부족해 이번에는 지구 역사상 최대 규모의 홍수마저 일어났어요. 지구 전역의 화산에서 공중 높이 동시에 분출된 화산재 때문에 하늘이 어두워졌어요. 바다에서는 수천 평방km 넓이의 바닷물이 도처에서 끓어오르면서 증기를 발생시켰어요. 그 증기와 화산재 구름이 뒤엉키면서 두터운 먹구름이 형성됐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내렸어요…….”
“지구 궤도를 돌던 우주선들은 어떻게 됐나요?”
“12주 후 지구로 귀환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들은 지금의 유럽 지역을 향해 하강하기로 선택했어요. 지구의 나머지 지역은 가시도가 제로였어요. 7대의 우주선 중 착륙에 성공한 것은 한 대뿐이었어요. 나머지는 지구 전역에서 몰아치는 강풍에 휘말려 추락했어요. 시속 300~400km의 태풍이었어요. 강풍 발생의 주된 원인은 갑작스런 화산폭발로 인한 현격한 기온 차이였습니다.
유일하게 남은 우주선은 지금의 그린란드에 간신히 착륙했어요. 황인 95명이 탑승한 우주선인데, 다수는 의사와 각 분야 전문가들이었어요. 지극히 나쁜 상황에서 착륙하다 기체에 손상을 입는 바람에 우주선이 다시 이륙하기는 불가능해졌어요. 하지만 피난처로는 쓸 만했죠. 식량 등 보급물자는 오래 버틸 만했고,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최선의 상태로 조직하려 애썼어요.
그런데 약 한 달 뒤 지진이 일어나 그들과 우주선을 몽땅 집어삼켰습니다. 그 마지막 재앙으로 지구 문명의 모든 흔적이 파괴됐어요. 소행성과의 충돌 이후 발생한 일련의 재앙으로 뉴기니, 미얀마, 중국 등지에서 살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진 채 사라졌어요. 사하라 사막 지역은 여타 지역보다 충격이 덜했어요.
그렇다 해도 홍해 지역의 모든 도시와 마을은 물속으로 잠겼습니다. 간단히 말해 지구상에서는 단 하나의 도시도 남지 않았고, 수백만의 사람과 동물이 죽었어요. 얼마 안 있어 대부분 지역에서 기근 사태가 발생했어요.
말할 필요도 없이 호주와 중국의 놀라운 문화는 전설을 통해서만 기억됐습니다. 그리고 (지표면이 갈라지고 새로운 바다가 생기면서 갑자기 뿔뿔이 흩어지게 된) 사람들은 지구 최초로 식인 행태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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