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코를 떠나기 전에 타오는 내게 마스크를 씌었다. 전에 쓰던 마스크와는 다른 것이었다.
훨씬 더 선명하고 빛나는 색깔들을 볼 수 있었다.
“미셸, 새 보키(‘마스크’를 뜻하는 그들의 단어)를 써보니 어때요? 빛을 견딜 만한가요?"
“네……. 좋아요……. 너무 아름답고 기분도……. ” 그 말과 함께 나는 타오의 발쪽으로 쓰러졌다. 그녀는 나를 안아서 비행 플랫폼으로 데려갔다.
깨어나 보니 놀랍게도 내가 숙소로 사용하는 도코 안이었다. 어깨가 쑤셨다. 본능적으로 손을 갖다 대고는 얼굴을 찡그렸다.
“정말 미안해요, 미셸.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타오의 표정에서 약간 후회하는 기색이 보였다.
“어떻게 된 거죠?”
“당신이 기절했어요. 적합한 표현은 아니지만. 뭐라고 할까, 아름다움에 압도됐다고나 할까요. 당신의 새 보키는 색깔의 진동을 50% 통과시켜요. 전에 쓰던 보키는 20%만 통과시켰죠.”
“겨우 20%요? 놀랍군요! 내가 봤던 그 모든 멋진 색깔들하며, 나비, 꽃, 나무, 바다 등등 겨우 20%였다니! 내가 압도돼 기절한 것도 무리가 아니군요. 프랑스에서 뉴칼레도니아(호주 동쪽의 프랑스령 섬)로 여행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잠시 타히티 섬을 들렀어요. 가족 친구들과 함께 자동차를 빌려 타고 섬을 돌아다녔어요. 주민들은 명랑했고, 사는 모습도 낭만적이었어요. 초호(礁湖:환초에 둘러싸인 얕은 바다)의 기슭에 밀짚 오두막들이 있었는데, 손질이 잘된 잔디밭에는 빨강· 노랑· 주황· 자주색의 부겐빌레아, 하이비스커스, 엑소라스 같은 열대 초목들이 만발했고 코코넷 나무가 그늘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배경에는 푸른빛 바다가 펼쳐져 있었어요. 우리는 온종일 돌아다녔고, 나는 일기장에 ‘내 눈은 하루 종일 아름다움에 취해 있었다.’ 고 썼어요. 실제로 나는 주변의 아름다움에 취했어요. 그러나 이제 그 모든 것도 이곳 티아우바의 아름다움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는 점을 인정해야겠어요.”
타오는 미소를 머금은 채 내 말을 관심 있게 들은 뒤 내 이마에 손을 얹고는 말했다. “이제 쉬세요, 미셸. 한숨 자고나면 기분이 나아지고 나와 함께 갈 수 있을 거예요.”
나는 곧바로 잠이 들었고, 꿈도 꾸지 않은 채 평화롭게 잤다. 24시간 정도 잔 것 같았다. 깨어났을 때는 기분이 편안하고 원기가 회복됐다.
옆에는 타오와 함께 라톨리와 비아스트라도 있었다. 그들은 원래 체구로 되돌아가 있었다. 내가 그 점을 언급하자 비아스트라는 이렇게 설명했다. “형태 변형은 간단하게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오늘은 당신에게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 매우 흥미로운 사람들을 소개시켜 줄게요.” 라톨리가 다가오더니 손가락 끝으로 내 어깨를 만졌다. 타오가 꼬집어 멍이 든 곳이었다. 즉각 고통이 사라지면서 온 몸에 행복감의 진동이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라톨리는 나의 미소에 미소로 화답하고는 새 마스크를 건네줬다.
바깥에서는 여전히 빛 때문에 눈을 가늘게 떠야 했다. 타오가 라티보크에 올라타라고 손짓했다. 그들은 비행 플랫폼을 라티보크라고 불렀다. 다른 두 사람은 직접 날아가면서 라티보크 주변을 장난치듯 오갔다. 그들은 실제로 장난을 치며 날았다. 이 행성의 주민들은 늘 즐거운 듯이 보였다. 심각해 보이는 사람은 7인의 타오라들뿐이었다. 사실 그들은 자비심이 넘쳤지만 약간 엄숙해 보였다.
우리는 수면 위로 몇m 높이에서 빠르게 날아갔다. 끊임없이 호기심이 일어났지만 눈부심 현상이 사라질 때까지 눈을 자주 감아야 했다.
하지만 머지않아 익숙해질 것 같았다……. 만일 타오가 내게 빛의 70% 이상을 통과시키는 마스크를 줬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우리는 대륙의 해안으로 빠르게 접근했다. 녹색, 검정, 주황, 황금빛의 바위들 위로 파도가 부서졌다. 수직으로 내리쬐는 한낮의 태양광선 밑에서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의 무지개는 오래 기억될 장관을 연출했다. 빛과 색깔의 띠가 형성됐다. 지구의 무지개보다 100배는 선명했다. 우리는 200m 높이로 올라가 대륙 상공을 날아갔다.
평원이 나타났다. 다양한 종류의 동물들이 보였다. 작은 타조를 닮은 두 발 동물들과, 매머드와 비슷하지만 두 배나 큰 네 발 동물들도 있었다. 하마들과 나란히 풀을 뜯는 소들도 보였다. 소들은 지구의 소와 너무 비슷하게 생겼다. 마치 동물원에 온 아이처럼 흥분해 소떼를 가리키며 타오에게도 보라고 재촉했다. 타오는 폭소를 터뜨렸다.
“미셸, 왜 여기엔 소들이 있으면 안 되나요? 저기 보세요. 당나귀도 있어요. 저쪽엔 기린도 있고. 지구의 기린보다 다소 크지만 말이에요. 저기 함께 달리는 말들이 너무 사랑스럽네요.”
나는 신이 났다. 하기야 여기 와서 끊임없이 신나는 일이 생기지 않았던가? 다소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말이다. 정말로 말문이 막혔던 것은 아주 예쁜 여자의 머리 모양을 한 말들을 봤을 때였다. 금발머리, 적갈색 혹은 갈색 머리, 심지어 푸른색 머리 등 색상도 다양했다. 말들은 질주하면서 수십m씩 뛰어오르기도 했다. 아 그렇다! 사실 그 말들은 날개를 갖고 있었다. 날개는 뒤로 접혀 몸통에 붙어있었는데 이따금 그것을 사용했다. 날치류가 선박을 따라오거나 앞서가는 광경과 비슷했다. 말들은 고개를 들어 우리를 쳐다보고는 라티보크와 경주하려 했다.
타오는 속도와 고도를 낮춰 말들과 수 m 거리 이내로 접근했다. 깜짝 놀랄 일이 더 있었다. 이들 여성 머리 모양의 말들 중 일부가 우리를 향해 인간의 목소리 같은 언어로 소리쳤다. 나의 세 동료들도 같은 언어로 대답했다. 분명히 유쾌한 내용의 대화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 낮은 고도에서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말들이 같은 높이로 날아올라 라티보크와 스치다시피 하면서 다칠 염려가 있어서였다.
평원에는 거의 같은 크기의 작은 산들이 군데군데 솟아 있었다. 비아스트라는 그 산들이 수백만 년 전에 화산이었다고 설명했다. 아래 보이는 숲에서는 풍요로움이 없었다. 티아우바에 처음 도착했을 때 ‘체험’ 했던 숲과는 달랐다. 이곳의 나무들은 몇몇 좁은 지역에 몰려 있었고 높이도 25m밖에 안됐다. 우리가 지나가자 수백 마리의 커다란 흰색의 새들이 날아올랐다가 ‘안전한’ 거리로 가서 다시 내려앉았다. 꾸불꾸불 한 큰 물줄기가 평원을 해부하듯 흘러가며 지평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강굽이 한 곳에 소형 도코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타오는 강물 위로 라티보크를 몰고 가서는 고도를 수면 가까이로 낮춘 채 그 마을로 다가갔다. 우리는 두 개의 도코 사이에 있는 자그마한 광장에 착륙한 뒤 주민들에게 둘러싸였다. 그들이 서로 밀쳐가면서 서둘러 우리 주위로 몰려들지는 않았다. 그냥 하던 일을 멈추고 침착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서로 불편하지 않도록, 또 모두가 한 ‘외계인’ 을 직접 볼 수 있는 균등한 기회를 누리도록, 커다란 원을 형성하며 우리 주위를 둘러섰다.
그들 역시 모두 나이가 같아 보였다. 여섯 명 정도만이 약간 더 나이가 많은 듯했다. 이곳에서 나이가 많다는 사실은 인간의 품격을 떨어뜨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고귀함을 더해 줬다.
티아우바에서 아이들이 안 보이는 점도 이상했었다. 그러나 이 마을에서는 다가온 군중 속에서 예닐곱 명의 아이들을 보았다. 그들은 매우 귀여웠고 아이들치고는 꽤 성숙해 보였다. 타오에 따르면 8~9살 된 아이들이었다.
티아우바에 도착한 이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기는 처음이었다. 우리를 둘러선 그들에게서 침착함과 자제력을 느낄 수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얼굴도 무척 아름다웠다. 그리고 모두가 형제자매인 양 생김새도 매우 비슷했다. 하기야 흑인이나 아시아인 집단을 만나도 첫 인상이 모두 같아 보이지 않는가? 사실 이곳 주민들의 얼굴 생김새도 지구인들처럼 서로 차이가 있었다.
주민들의 신장은 280~300cm이었는데, 몸의 균형이 잘 잡혀 있어 보기에도 즐거웠다. 지나치게 근육이 많거나 빈약하지 않았고, 어떤 종류의 기형도 없었다. 엉덩이가 다소 큰 사람들이 있었는데, 아기를 출산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주민들은 모두 멋진 머리카락을 지녔다. 대다수는 황금빛 금발이고, 나머지는 백금색 혹은 구리색 금발이었다. 가끔 밝은 밤색 머리도 눈에 띄었다. 타오와 비아스트라처럼 윗입술 위에 솜털이 난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것 외에는 체모가 일절 없었다(물론 이는 그 당시에 관찰해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나중에 나체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아주 가까이서 본 뒤에 알았다). 주민들의 피부 유형은 햇빛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아랍 여성들을 생각나게 했다. 빛나는 눈동자를 지닌 금발 미녀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창백한 피부가 아니었다. 사실 주민들의 연한 자주색 눈과 푸른색 눈은 너무 반짝여서, 만일 지구에서였다면 그들을 맹인으로 오인할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들의 긴 다리와 둥글넓적한 허벅지는 여성 장거리 달리기 선수를 연상시켰다. 형태가 예쁘고 탱탱한 가슴 역시 무척 아름다웠다. 내가 타오를 처음 만났을 때 거구의 여성으로 착각한 것을 독자들은 이해하리라. 지구 여성이라면 이들의 가슴을 가장 부러워하고 남성은 그런 가슴을 보며 가장 즐거워했을 것이다.
타오의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이미 언급했다. 이곳 주민들 역시 ‘고전적인’ 외모를 지녔다. ‘매혹적인’ 내지 ‘유혹적인’ 이라는 표현도 지나치지 않았다. 그들의 얼굴은 형태와 특징에서 약간 차이가 있었지만 예술가가 디자인한 듯했다.
각각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들의 얼굴과 태도와 언행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지성미였다.
한마디로, 우리 주위로 몰려든 사람들에게서는 어떤 결점도 찾을 수 없었다. 밝은 환영의 미소를 지을 때면 새하얗고 완벽한 치열이 드러났다. 이런 신체적 완벽함에 놀라지는 않았다. 그들이 인체 세포를 의지대로 재생할 수 있다는 얘기를 이미 타오에게서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훌륭한 신체가 늙어갈 이유가 없었다.
“우리가 저들의 일을 방해하고 있나요?" 마침 내 곁에 있던 비아스트라에게 물었다.
“아뇨. 그렇지 않아요. 이 마을의 대다수 사람은 휴가 중이에요. 이곳은 사람들이 명상을 하러 오는 곳이기도 하죠.”
세 사람의 마을 ‘장로’ 가 다가오자 타오는 내게 프랑스어로 인사하라고 했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말하라고 했다. 내가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여러분들과 함께 하게 돼서 무척 기쁩니다. 여러분들의 멋진 행성에 정말로 감탄했습니다. 당신들은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저도 여러분들과 함께 살고 싶습니다.”
사방에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처음 들어보는 언어 때문만이 아니었다. 나의 진심이 이심전심으로 전달됐기 때문이었다.
비아스트라의 신호로 우리는 세 ‘장로’ 를 따라갔다. 그들은 어느 도코로 우리를 안내했다. 우리 일곱 명이 편안하게 자리를 잡자 타오가 말을 시작했다. “미셸, 라티오누시를 소개할게요. 그녀가 세 장로 중 한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라티오누시는 지구에 존재했던 무(Mu) 대륙의 마지막 왕이었습니다. 지구 나이로 1만 4,000세 정도 됐지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알고 싶지 않은 거예요, 미셸.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다른 많은 지구인들과 닮았어요.”
내가 당황한 듯이 보였던 모양이다. 타오, 비아스트라, 라톨리가 큰소리로 웃어댔다.
“그런 표정 짓지 마세요, 미셸. 그냥 농담한 거예요. 이제 라티오누시가 있는 앞에서 제가 여러 가지 미스터리를 설명하려고 해요. 지구의 많은 전문가들이 불가사의라고 부르는 것들이에요. 덧붙여 말하자면 그 전문가들도 귀중한 시간을 좀 더 유용한 것들을 발견하는 데 사용하는 게 나을 겁니다.”
우리들의 좌석은 원형으로 배치돼 있었다. 타오는 라티오누시 옆에 앉았고, 나는 그들을 마주보고 앉았다.
“티아우바에 오는 동안 이미 설명했듯이, 바카라티니인들은 지구에 135만 년 전에 도착했어요. 그로부터 3만 년이 지난 뒤 그 끔찍한 재앙이 발생했어요. 지표면이 파헤쳐지면서 바다가 생기고, 섬들과 심지어 대륙들이 솟아올랐습니다. 태평양 한가운데 거대한 대륙이 융기했다는 것도 얘기했지요.
이 대륙은 ‘라마르’ 로 불렸지만 당신에게는 무 대륙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요. 융기할 때는 한 덩어리였는데 2,000년 뒤에는 지진의 충격으로 세 개의 대륙으로 쪼개졌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곳에서 식물이 자랐습니다. 대륙의 대부분 지역은 적도 지방에 위치했습니다. 풀이 자라고, 숲이 우거지면서 점차 동물들이 생겨났어요. 동물들은 매우 좁은 지협을 통해 무대륙에서 북미 지역으로 이주했습니다.
재앙의 결과에 좀 더 잘 적응했던 황인종은 최초로 선박을 만들고 바다를 탐험했습니다. 지구 시간으로 약 30만 년 전 그들은 무 대륙의 북서쪽에 상륙했고 결국에는 그곳에 소규모의 거류지를 건설하게 됩니다.
그 거류지는 여러 세기에 걸쳐 힘들게 건설됐습니다. 이주상의 어려움이 많았기 때문인데, 설명하기엔 너무 길고, 또 지금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지구 시간으로 약 25만 년 전 아레모 X3 행성의 주민들이 우주 탐험을 시작하면서 당신네 태양계로 들어갔습니다. 아레모 X3는 우리가 이곳으로 오는 도중 표본 채취를 위해 잠시 들렀던 행성이지요. 그들은 토성, 목성, 화성, 수성을 둘러본 뒤 지구에 착륙했습니다. 지금의 중국 지역이었어요. 그들의 우주선은 선주민들 사이에 엄청난 공포를 야기했습니다.
선주민들의 전설에는 ‘불을 뿜는 용’들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묘사돼 있지요. 두려움과 불신감이 커지면서 마침내 선주민들은 외계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외계인들도 자위 차원에서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외계인들은 무력 사용을 싫어했어요. 기술력이 월등하게 앞서 있는 데다 영적으로도 발달한 존재들이었던 만큼 살생을 혐오했기 때문이에요.
그들은 이동하면서 지구 탐사를 계속했습니다. 그 결과 무대륙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두 가지 이유가 있었지요. 첫째는 사람들이 거의 살고 있지 않은 듯했고, 둘째는 위도 덕분에 진짜 낙원 같은 곳이었거든요.
그들은 중국 지역 선주민들과의 충돌 이후 각별히 조심했습니다. 그리고 만약의 경우를 위해 후퇴할 수 있는 기지를 건설하는 게 현명하다고 판단했어요. 지구인들로부터 또 다른 심각한 공격이 있을 경우에 대비하려는 것이었지요. 아직 설명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그들이 지구를 탐사하는 목적은 수백만 명의 아레모 X3 주민들을 이주시키려는 것이었어요.
그곳의 인구가 심각할 정도로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기지는 어떤 위험도 없는 곳에 세워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지구가 아니라 달에 세우기로 결정됐습니다. 무척 가까운데다 매우 안전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어요.
달 기지를 건설하는 데 50년이 걸렸습니다. 그런 뒤에야 무대륙으로의 이주가 시작됐어요. 만사가 순조롭게 진행됐습니다. 무대륙의 북서쪽 중국 지역에 존재했던 선주민들의 거류지는 그 사이에 완전히 파괴됐습니다. 결과적으로 아레모 X3에서 온 사람들이 무대륙을 독차지하게 됐지요.
곧바로 도시, 운하, 도로의 건설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도로는 거대한 판석(板石)들로 포장했습니다. 그들의 일반적인 운송수단은 우리의 라티보크와 비슷한 ‘날으는 전차'였어요.
그들은 아레모 X3로부터 개와 아르마딜로 같은 동물들을 들여왔습니다. 그들이 유달리 좋아하던 동물들이었지요. 또 돼지도 수입했습니다.”
그 동물들에 관해 듣는 순간 나는 그 행성에 갔을 때 돼지와 개들을 보고 놀랐던 일이 기억났다. 갑자기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그들의 평균 신장은 남자가 180cm, 여자는 160cm이었습니다. 머리카락은 거무스름했고, 눈동자는 아름다운 검은색, 그리고 피부는 구리 빛이었어요. 당신은 아레모 X3에 갔을 때 그런 사람들을 봤어요. 이쯤 되면 그들이 폴리네시아인의 조상이라고 짐작했을 겁니다.
그들은 그렇게 무대륙 도처에 19개 도시를 포함해 주거지를 건설했습니다. 도시들 중 7개는 성소(聖所)였습니다. 소규모 농촌 마을도 수없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고도로 발전된 농민이자 목축업자들이었거든요.
정치 제도는 아레모 X3의 제도를 본떴습니다. 국가를 제대로 통치하는 유일한 방법은 정부의 최고위직에 7인의 인격자를 앉히는 것이라는 점을 그들은 오래 전에 깨달았습니다. 이들 최고 통치자들은 특정 당파를 대변하지 않고 진심으로 국민에게 봉사하려는 사람들이었어요.
7인 중 한명은 ‘최고 심판관’ 으로 그의 투표는 2표의 가치를 지녔습니다. 특정 사안에서 그와 같은 견해를 가진 사람이 2명이고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이 4명이라면 표결은 4대 4 무승부가 되죠. 그러면 몇 시간 내지 며칠 동안 토론이 이어집니다. 7인 중 적어도 한 사람이 견해를 바꿀 때까지 계속됩니다. 토론은 국민에 대한 배려 사랑 그리고 지성이라는 맥락에서 이뤄졌습니다.
7인의 지도자는 국가를 이끄는 대가로 큰 물질적 보수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국가를 이끄는 일을 천직으로 여겼고, 국가에 대한 봉사를 보람으로 삼았습니다. 이런 제도는 국가 지도자 그룹에 기회주의자들이 끼어드는 것을 막았습니다.”
“지구에서의 요즘 국가 지도자들과는 다르군요.” 내가 쓴 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런 지도자들을 어디서 찾아냈나요?"
“절차는 이렇습니다. 마을이나 지역에서 청렴한 사람을 주민투표로 뽑습니다. 행실이 나빴거나 광신주의 성향을 보인 사람은 선출되지 못합니다. 선출된 사람은 모든 면에서 청렴성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그는 인근의 여러 마을 대표들과 함께 가장 가까운 도시로 보내집니다. 거기서 다시 선거를 치릅니다.
예컨대 60개 마을이 있으면 60명이 대표로 선출됩니다. 선출 기준은 청렴성이지 그들이 내세운 지키지도 못할 공약이 아닙니다.
전국각지의 대표들은 수도에 모입니다. 그들은 6명씩 그룹으로 나뉘고, 각 그룹에는 회의실이 배정됩니다. 그룹 구성원들은 다음 10일 동안 함께 지내며 토론하고 식사하고 오락을 즐깁니다. 그런 후 그룹 지도자를 뽑습니다. 따라서 60명의 대표들이 있고 이들이 10개 그룹으로 나뉘었다면, 10명의 그룹 지도자가 생깁니다. 이들 10명 중에서 7명이 같은 절차를 통해 선출되고 그 7명 중에서 최고 지도자가 나타납니다. 그에게는 왕(王)의 칭호가 부여됩니다.”
“공화국의 왕이 되는 셈이군요.” 내가 말했다. 내 말에 타오는 미소를 지었고, 라티오누시는 약간 얼굴을 찡그렸다.
“전임자가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사망했을 경우에만, 혹은 그 후계자가 7인 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인준되지 않을 경우에 이런 식으로 국왕이 선출됩니다. 그에게 왕(King)이라는 칭호가 붙는 이유는 우선 그가 지구에서 성령의 대변자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가 십중팔구 전임자의 아들이거나 가까운 친족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제국의 방법과 비슷하군요.”
“예, 맞아요. 그러나 국왕이 조금이라도 독재의 경향을 보이면 7인 위원회의 동료들에 의해 축출됩니다……. 이제 아레모 X3의 이주민 얘기로 돌아가죠.
‘사바나사’ 라는 이름을 가진 그들의 수도는 수바투 만을 내려다보는 고원지대에 위치했습니다. 고원의 높이는 300m 였는데, 남서쪽과 남동쪽에 있는 두 개의 산을 제외하고는 무대륙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어요.”
“타오, 말을 끊어서 미안하지만 하나 물어볼게요. 지구 축을 기울어지게 만든 대재앙을 설명할 때 당신은 그때는 달이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그곳으로 피난갈 수 없었다고 말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들 이주민이 달에 안전 기지를 세웠다고 말하는군요……. ”
“흑인들이 호주에 살 때는 달이 없었어요. 그 후로도 아주 오랫동안 그랬어요. 그보다 훨씬 앞선 시기인 약 600만 년 전에는 두 개의 아주 작은 달이 있었어요. 그 달들은 지구주위를 돌다가 결국에는 지구에 충돌했어요. 끔찍한 사태가 벌어졌지만 당시에는 지구에 사람이 살지 않았으니까 문제될 게 없었지요.
약 50만 년 전, 지구는 훨씬 더 큰 달을 ‘붙잡았습니다.’ 지금 존재하는 달이죠. 지구에 너무 근접해 지나가다가 지구 궤도에 편입됐어요. 흔히 일어나는 현상이에요. 어쨌든 그 사건으로 또 다른 재앙이 초래됐어요…….”
“ ‘너무 근접해 지나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요. 왜 지구와 충돌하지 않았나요? 그리고 도대체 달이라는 게 뭔가요?"
“충돌할 가능성도 있었지만 자주 일어나는 현상은 아닙니다. 원래 달이란 것은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작은 행성이에요. 그런데 나선형으로 공전하기 때문에 점점 태양에 가까워지죠. 작은 행성은 큰 행성보다 관성력이 약하기 때문에 더 빠르게 나선형 궤도를 따라 움직입니다.
나선형 공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작은 행성은 큰 행성을 따라잡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너무 근접하게 되면, 큰 행성의 인력이 태양보다 강해져 작은 행성은 큰 행성의 궤도 속으로 편입됩니다. 그리고 작은 행성은 여전히 나선형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조만간 두 행성은 충돌하게 됩니다.”
“각종 시와 노래에서 찬미해 온 우리의 아름다운 달이 언젠가는 우리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는 말인가요?"
“언젠가는 그렇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19만 5,000년 뒤의 일이에요.”
내가 깜짝 놀랐다가 안심하는 모습이 다소 우스꽝스러웠는지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타오의 설명이 계속됐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다시 말해 달이 지구와 충돌하면 지구의 종말이 될 겁니다. 그 때에 지구인들이 영적으로 기술적으로 충분히 발전해 있지 않으면 모두 전멸할 거예요. 하지만 발전해 있다면 다른 행성으로 피신해 있겠죠. 미셸, 이제는 무 대륙 얘기를 다시 해야겠어요.
사바나사는 광대한 고원 위에 자리 잡았고, 고원 아래에는 해발 평균 30m의 펑야 지대가 있었어요. 고원의 중심부에는 거대한 피라미드가 세워졌습니다. 피라미드 건설에 쓰인 돌 들 중에는 50t이 넘는 것도 있었고, 모두 ‘초음파 진동 시스템’을 이용해 0.2mm 이내로 정확히 절단돼 사용됐습니다. 그 작업은 홀라톤의 여러 채석장에서 이뤄졌어요. 지금도 이스터 섬에 있는 채석장이에요. 무대륙 전체에서 이런 특수한 돌이 발견되는 곳은 이스터 섬밖에 없습니다. 대륙의 남서쪽 노토라에도 채석장이 있었어요.
거석들은 반중력 기술로 운반됐습니다. 그들에게는 잘 알려진 기술이죠(거석은 플랫폼에 실려 포장도로 위 20cm 높이로 운반됐다. 도로는 피라미드와 같은 방식으로 건설됐다). 전국에 깔린 이런 도로들은 수도 사바나사를 중심으로 거미집처럼 연결됐습니다.
사바나사로 운반된 거석들은 피라미드 건설 총책임자의 지시에 따라 배치됐습니다. 완공된 피라미드의 높이는 정확히 440.01m였고 4면은 정확히 동서남북을 향했습니다.”
“피라미드는 국왕의 궁전 혹은 무덤이었나요?" 모두의 표정에 관대한 미소가 번졌다. 내가 어떤 질문을 할 때 자주 나타나는 미소였다.
“그런 것은 아니에요, 미셸. 그 피라미드는 훨씬 더 중요한 의미가 있어요. 그것은 일종의 도구였지요. 엄청나게 크지만 그래도 역시 도구였어요. 이집트 케옵스(쿠푸)왕의 피라미드도 규모는 훨씬 작지만 역시 도구였어요.”
“도구?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잘 모르겠네요. 타오의 말을 따라가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세계 최대 불가사의 중 하나가 이제 막 베일을 벗으려한다는 것은 감지할 수 있었다. 수많은 호기심을 자아내고 수많은 저술의 주제였던 미스터리가 풀리려는 참이었다.
“짐작했겠지만,” 타오가 말을 계속했다. “그들은 고도로 발달된 사람들이었어요. 우주의 법칙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지요. 피라미드는 지구의 에너지는 물론 우주의 광선, 힘, 에너지를 포착하는 도구로 사용됐습니다.
정밀한 계획에 따라 배치된 내부의 방들은 국왕과 여타 위대한 입회인들에게 강력한 통신 센터로 사용됐습니다. 우주의 다른 세계 및 다른 행성들과의 교신(정신감응에 의한 교신. 저자의 동의를 얻은 편집자 주)을 가능하게 해주는 통신소였어요. 요즘의 지구인들에게는 외계 지성체와의 이런 교신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무 대륙 주민들은 자연의 수단과 우주의 힘을 이용해 외계의 존재들과 끊임없이 교신했고, 심지어 평행우주도 탐색할 수 있었어요.”
“그것이 피라미드의 유일한 존재 이유였나요?"
“꼭 그렇지는 않아요. 두 번째 용도는 비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그들은 은(銀)을 주성분으로 하는 특수합금 재질의 금속판 시스템을 이용해 며칠 만에 두터운 구름층을 만들고 필요할 때 비를 내리게 했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무대륙에 사실상 낙원을 창조할 수 있었어요. 강물과 샘물은 마르는 법이 없이 수많은 평야지대를 가로 질러 천천히 흘렀습니다.
과일나무들에는 가지가 휠 정도로 많은 오렌지, 귤, 사과 등이 주렁주렁 매달렸어요. 지구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이국적인 과일들이 풍부하게 수확됐습니다. 그런 과일 중 하나인 라이코티에는 두뇌활동을 자극하는 성분이 들어있어서, 그 과일을 먹으면 평소에 풀지 못하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었지요. 그 성분이 마약 같은 것은 아니었지만, 현자들은 그 과일을 경계시켰어요.
라이코티는 왕의 정원에서만 재배할 수 있었습니다(라이코티를 ‘지식’ 과 관련된 이유로 먹지 못하게 하는 그들의 전통과 아담과 비슷한 이유로 사과를 먹지 못하게 한 구약성경의 내용이 놀랄 정도로 유사하다. 이 책을 집필하면서 그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
그러나 인간이 원래 그렇지요. 라이코티는 대륙 곳곳에서 몰래 재배됐어요. 그러다가 적발된 사람들은 국왕의 명령을 정면으로 어긴 것인 만큼 엄벌에 처해졌어요. 종교와 정치 문제에서 왕에게는 절대 복종해야 했어요. 그는 위대한 성령의 대변인이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왕은 숭배의 대상은 아니었어요. 단지 신의 대변자였을 뿐이죠. 그들은 ‘타로아' 를 믿었습니다. 타로아는 성령, 유일신, 만물의 창조자를 의미합니다. 물론 그들은 환생도 믿었지요.
미셸,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주 먼 옛날에 지구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교훈을 현대의 지구인들에게 전해주는 일이에요. 그런 만큼 무 대륙에 관해 너무 상세하게 설명하진 않을 거예요. 무대륙은 지구에 존재했던 가장 뛰어난 문명들 중 하나의 터전이었어요. 그러나 5만 년이 지난 뒤 무대륙 인구는 8,000만 명이나 됐어요.
지구의 여러 지역을 탐사하고 연구하는 작업이 정기적으로 실시됐습니다. 이런 탐사 여행에는 비행선이 이용됐어요. 당신들이 ‘비행접시’ 라고 부르는 비행체와 비슷하게 생겼지요. 지구의 대부분 지역에는 흑인, 황인, 백인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어요.
그런데 백인들은 기술 문명에 관한 지식을 상실하면서 원시 상태로 퇴보한 상태였습니다. 사실 백인들은 아주 적은 규모로 지구에 도착했어요. 시기적으론 바카라티니인들의 지구 도착과 무 대륙의 개척 사이였지요. 백인종은 당신들에게 아틀란티스로 알려진 대륙에 정착했어요. 하지만 정신적 물질적 이유 때문에 그들의 문명은 완전히 실패 했습니다.”
“ ‘물질적 이유’ 란 무슨 의미인가요?”
“자연재해를 말하는 겁니다. 그것으로 인해 거의 모든 도시와 기술적 진보의 수단들이 파괴됐어요.
이 점은 강조해야겠군요. 무 대륙 주민들은 지구 탐사에 나서기 전에 사바나사의 피라미드를 이용해 조사를 해봤습니다. 조사 결과 비행선을 파견하기로 결정됐습니다. 그리고 뉴기니와 남아시아 지역, 즉 무 대륙 서부 지역을 개척했어요. 남미와 중미 지역에도 식민지를 세웠습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티티카카호(남미 최대의 담수호)에서 멀지 않은 지역에 식민지를 세웠는데 그것이 거대한 도시로 발전했다는 사실입니다. 현대 고고학자들에게는 티아쿠아노(‘티아후아나코’로도 표기한다. 편집자 주)의 고대 도시로 알려져 있지요. 당시엔 안데스산맥이 존재하지 않았어요. 곧 알게 되겠지만 산맥은 나중에 형성됐습니다.
티아쿠아노에는 큰 항구가 세워졌습니다. 당시 북미와 남미는 평지였어요. 그리고 나중에는 브라질 지역의 내해와 태평양을 연결하는 운하가 건설됐습니다. 그 내해에는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유출구도 있었어요. 그래서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넘어가는 일이 가능해졌고, 그 결과 아틀란티스 대륙을 식민지로 만들 수도 있었지요…….”
“그러나 그들이 비행선을 갖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왜 그것들을 이용하지 않나요? 운하를 뚫었다면 선박을 이용할 의도였던 것 같은데……. ”
“물론 그들은 비행체를 이용했습니다. 요즘의 지구인들이 비행기를 이용하듯이 말이죠. 하지만 아주 무거운 하중을 운반할 때는 반중력 장치를 이용했습니다. 마치 지구에서 대형 선박이 사용되는 것과 같은 이치죠.
어쨌든 그들은 아틀란티스 대륙을 식민지화했습니다. 그러나 아틀란티스의 선주민인 백인종은 무 대륙 출신 정복자들의 정부와 종교를 받아들이지 않고 북부 유럽으로 이주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백인들은 증기와 풍력으로 추진되는 선박을 타고 떠나갔습니다. 사실 백인종은 ‘선사 시대’ 를 거치면서 증기력을 발견했어요. 또 하나 설명할 것은……. 당시 영국은 섬이 아니라 북유럽에 붙어있었고, 지브롤터 해협은 존재하지 않았어요. 아프리카와 남부유럽이 연결돼 있었다는 것이죠. 북아프리카에서는 백인종과 원주민 사이에 대규모 교배가 일어나면서 새로운 인종들이 생겨났습니다. 당신도 알고 있는 베르베르 종족과 투아레그 종족 등이 그 후손이에요.
당시 우리는 지구를 자주 방문했어요. 적절한 때라고 판단되면 우리는 무 대륙 왕을 공개적으로 방문했어요. 그의 요청에 따라, 혹은 그가 준 정보에 따라, 우리는 새로운 식민지들을 방문하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인도 혹은 뉴기니에서 무 대륙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명과 선주민 문명을 동화시키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때가 가끔 있었어요. 그럴 때 우리는 우주선을 타고 공개적으로 나타나곤 했습니다. 당신이 티아우바에 타고 왔던 것과 형태는 다르지만 비슷한 종류의 우주선 이었어요.
아직 문명 수준이 낮고, 심지어 식인종도 있었던 당시 지구인들의 눈에 큰 체구와 눈부신 미모를 지닌 우리는 신으로 보였어요.
우리는 임무상 식민지 개척자들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그들의 눈에 우호적인 신으로 비치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그들 역시 나름대로 진보된 문명과 신념과 종교를 갖고 있었던 만큼 전쟁을 혐오했습니다.
그 시기의 지구에 ‘거인족’과 하늘에서 내려온 ‘불의 전차’를 묘사한 전설들이 많았던 이유는 바로 우리의 잦은 방문 때문이었어요.
우리는 무 대륙 주민들과 무척 친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나의 성기체는 지금 내가 ‘걸치고 있는’ 육신과 매우 비슷했어요.
무 대륙 미술가들과 조각가들은 우리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국왕과 상의한 끝에 그의 허락을 얻어 우리의 형상을 불멸의 작품으로 남기기로 했습니다. 이스터 섬 홀라톤(무 대륙의 남동부에 위치해 있었다)에 있는 거대한 석상군은 그런 작업의 소산이에요. 당시 문명의 기준으로 볼 때 그 석상들은 규모와 형태면에서 고도로 양식화된 위대한 예술의 극치였어요.
나의 석상은 그렇게 조각되었어요. 완성된 석상을 대형 플랫폼에 실어 운반할 준비가 끝났어요. 플랫폼은 무 대륙 전역을 누비고 다녔는데 종착역은 늘 사바나사였어요. 석상은 왕의 정원에, 그리고 피라미드로 가는 길을 따라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를 상징하는 석상과 몇몇 다른 석상들을 운반하려던 참에 대재앙이 발생해 무 대륙은 완전히 파괴됐습니다.
하지만 홀라톤의 일부는 무사했어요. ‘일부’ 라는 표현을 쓴 것은, 당시 홀라톤 채석장의 넓이가 오늘날 남아 있는 유적보다 10배나 넓었기 때문이에요. 대재앙 때 내 석상이 서있는 곳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지 않았어요.
양식화된 나의 이미지는 그렇게 이스터 섬에 보존됐어요. 당신이 꿈속에서 이스터 섬 석상형태로 된 나의 모습을 봤다고 했을 때 내가 그 꿈이 맞다고 말한 적이 있죠. 당신은 내가 비유적으로 말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절반만 옳은 생각이에요. 미셸, 어떤 꿈들은, 특히 당신의 꿈은 ‘라코티나’ 의 영향을 받아요. 지구인들의 언어 중에 ‘라코티나’ 에 상응하는 단어는 없습니다. 당신이 그 현상을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라코티나의 영향 아래에서는 꿈 내용이 사실이에요.”
타오는 거기에서 얘기를 끝냈다. 그녀는 특유의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당신이 이 모든 얘기를 기억하기 어렵다면 나중에 내가 도와줄게요.” 라고 말했다.
그 말과 함께 타오는 일어섰다. 나머지 사람들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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