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이 책의 본문에서는 개인적 의견을 밝히는 일이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후기를 덧붙여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저자와의 협의를 거친 편집자 주])
나는 3년 전에 끝낸 원고에 이 후기를 덧붙이고 있다. 그 3년 동안 이 책을 출판하려 노력했지만 뜻대로 안 됐다. 그러다가 아라푸라 출판사(Arafura Publishing)를 알게 됐고, 출판사측은 이 엄청나고 독특한 얘기를 용감하게 출간했다.
내게는 어려운 시기였다. 기대와는 달리 타오는 내게 어떤 징조도 남기지 않았다. 텔레파시든 신체적이든 어떤 접촉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호주의 케인즈에서 이상한 환영(幻影)을 봤다. 틀림없이 나를 계속 지켜보고 있음을 알려주려는 신호였지만 구체적인 메시지는 없었다. 나는 이제는 안다. 출판 지연이 미리 계획된 일이었음을. 타오가 일련의 자연스런 사건들을 통해 내 책이 가장 적합한 출판사의 관심을 끌게 하는 데는 그 후 두 달밖에 안 걸렸다.
‘그들’ (타오와 그녀의 동료들)은 의도적으로 출판을 지연시켰다. 3년 전에는 세상이 아직 그들의 메시지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준비가 됐다. 독자들에게는 터무니없이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다. 나는 그들을 안다. 몇 초 뒤에 최선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되면 각종 사건들의 발생을 초(炒) 단위까지 조정할 능력이 있는 존재들이다.
그 3년 동안 몇몇 친구와 지인들에게 내 책의 원고를 읽게 했다. 그 때서야 나는 충분히 이해했다. 왜 ‘그들’ 이 내게 이 책을 쓰게 했는지, 그리고 왜 나를 ‘육체적으로’ 자신들의 행성에 데려갔는지를. 내가 ‘육체적으로’ 라는 표현을 강조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가장 많은 반응이 “당신은 분명히 꿈을 꿨다. 일련의 꿈을 연속해서 꿨던 게 틀림없다”였기 때문이다.
어떤 종류의 반응이든 원고를 읽은 사람들은 모두 그 내용에 매료됐다. 독자들의 유형은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유형: 과반수를 차지하는 유형으로 그들은 내가 다른 행성에 갔었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책의 내용에 감동을 받았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들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중요한 점은 책에 담긴 강력하고도 근원적인 메시지라고 말했다.
둘째 유형: 한때 무신론자였던 사람으로 이 책을 내리 세 번 읽은 뒤 내 얘기가 사실이라고 확신한다.
셋째 유형: 애당초 영적으로 발전돼 있던 유형으로 처음부터 내 얘기가 진실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독자들에게 충고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최소한 세 번 읽어야 한다. 원고를 읽은 15~16명은 모두 적절한 관점에서 구체적인 질문을 던졌다. 프랑스의 어느 대학 심리학 교수인 친구 한 사람은 그 책을 이미 세 번 읽었고, 침대 옆의 탁자위에 그 책을 놓아둔다.
그러나 한 친구의 반응은 나를 언짢게 만들었다(다행히 그런 사람은 한 명뿐이다). 그는 예컨대 이런 질문을 했다. 그 우주선이 볼트나 너트를 사용해 조립됐느냐, 그리고 티아우바에 전봇대가 있느냐. 나는 그에게 원고를 다시 읽어보라고 권했다. 그의 ‘의견’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미사일과 치명적인 무기들이 동원된 우주선이나 행성들 간의 전투 장면이 책 내용에 더 담겨야 한다고. “그래야만 사람들이 좋아한다.” 고 그는 말했다. 나는 그에게 이 책은 공상과학(SF) 소설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켜 줘야했다. 그 친구에게 책 내용을 이해할 능력이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다른 읽을거리를 찾는 게 나을 것이다. 그는 이 책을 읽을 준비가 안 돼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친구만이 그런 게 아니다. 만일 독자들이 우주 전쟁, 피, 섹스, 폭력, 행성 폭발, 외계 괴물 같은 것들로 자극받기를 기대했다면 나로선 미안할 뿐이다. 내 책 대신 SF 소설을 구입했어야 했는데 그들의 시간과 돈을 낭비하게 만들었으니. 서문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책이 SF 소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독자는 다른 사고방식으로, 즉 객관적이고 긍정적인 시각에서 다시 읽어보길 권한다.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닐 것이다. 책값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삶의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물질적인 보상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보상이다. 그게 가장 중요하지 않은가?
이미 원고를 읽은 사람들로부터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에 관한 다양한 피드백을 받았다. 그 점에 관해 대답할 의무를 느낀다. 독자가 종교인, 특히 크리스천이고 ‘성경 내용의 수정’ 때문에, 특히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의 정체에 관한 내용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면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 점을 강조해야겠다. 이 책은 어떤 종교를 비판하려는 의도에서 집필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또 책 내용은 나의 개인적 관찰 결과가 아니라 타오라의 말을 타오가 구체적으로 ‘구술’ 해준 것을 내가 받아 적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내게 설명해준 내용을 어느 것도 바꾸지 말고 정확히 기술하라고 충고했다. 나는 그 지시를 따랐다.
타오와 나눈 대화중에는 이 책에 소개되지 않은 것들도 많다. 분명히 그들은 진화의 측면에서 모든 측면에서 우리보다 우월한 존재들이다. 나는 책에 기술된 내용보다 더 믿기 어려운 것들도 알게 됐지만 그런 부분을 소개하는 일은 허락되지 않는다. 아직은 우리에게 그것을 이해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 후기에서 개인적 의견을 피력할 기회를 갖고자 한다.
독자들은 몇 가지 아주 중요한 점들에 유념해야 한다.
이 책과 관련해 나에 대한 몇몇 가당치 않은 얘기들을 들었기에 소개한다. ‘그는 자신이 새로운 그리스도라고 생각한다’ ‘그는 위대한 영적 지도자다. 우리는 그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 ‘당신은 수행자 마을을 세워야 한다. 그러면 번창할 것이다’ ‘당신은 새로운 종교를 창시해야 한다’ 등등.
나는 그들 중 다수가 나의 모험에 관해 소문으로만 들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실제로 읽은 게 아니라는 뜻이다. 이 책을 여러 번 읽어야 한다고 다시 강조한다. 소란스런 집회를 멀리하고 조용한 곳에서 그 책을 읽으면 되는데, 왜 사람들은 하느님과 우주 창조 같은 중요한 문제를 소문으로만 들으려하는가? ‘말은 소멸되지만 글은 유구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왜 그들은 이 책의 내용으로 새로운 종교를 만들려 하는가? 지구에는 이미 수백 개의 종교가 있지만 그다지 좋은 일은 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은가?
십자군 전쟁 때 이슬람과 로마 가톨릭은 신과 종교의 이름으로 서로 싸웠다.
스페인 가톨릭교도들은 아즈텍인들(그들의 문명은 당시로는 매우 진보된 문명이었다)을 약탈하고 강간했다. 아즈텍인들이 가톨릭을 실천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실 아즈텍인들은 고유의 종교를 갖고 있었지만 그 종교 역시 나을 게 없었다. 인간을 수천 명씩 제물로 바쳤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바카라티니인들 역시 약 100만 년 전 북아프리카에서 그런 짓을 저질렀다.
신도들을 계속 자신들의 지배 아래 두고 싶은 성직자들은 종교를 철저히 연구했다. 그래야만 권력과 부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도자들의 오만함과 권력욕이라는 면에서 모든 종교는 정치와 비슷하다. 그리스도는 당나귀를 탔고, 십자가에서 죽었다. 그리고 하나의 종교가 탄생했다. 그 당나귀는 오늘날 롤스로이스로 변했다. 바티칸은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권력 중 하나다.
성실치 않은 정치인들(그런 정치인들이 많다)은 자만심으로 기고만장해 있다. 그들은 부와 권력을 이용해 찬양을 받고 싶어 한다. 그래야만 만족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속는 수많은 국민은 어떤가? 국민도 만족하는가?
타오는 이 책의 목적이 지구인들을 계몽하고 눈뜨게 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에 대해 지구인들을 각성시키는 데 있다고 했다. 타오와 동료들은 지구인들이 극소수 부패한 정치인들에게 휘둘리는 현상을 매우 우려한다. 썩은 정치인들은 교활한 방식으로 우리가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다고 믿게 만든다. 그러나 우주 법칙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양떼보다 더 자유롭지 않다. 우리는 가끔 길에서 벗어나고는 자유롭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이다. 우리는 깨닫지도 못한 채 결국에는 도살장으로 끌려가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민주주의란 말을 연막으로 이용한다. 대다수 정치인들에게는 세 종류의 신(神)이 있다. 권력, 명예, 돈이다. 그러면서도 일반대중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아르키가 보여줬듯이, 진정으로 단결된 국민 대중은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반드시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소련 공산당마저 이제 붕괴됐다 KGB가 얼마나 사악하고 막강한 조직이었는지는 세상이 안다. 그러나 나의 아니 우리의 친구들(타오등)은 ‘신호’를 보냄으로써 대규모 유혈 참사를 피했다. 나는 그것을 오랫동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이 책의 출간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킨 것은 아마도 내가 그 부분을 후기에 포함시킬 수 있도록 하려는 목적에서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선택의 자유를 갖도록 창조됐음을 명심해야 한다. 이를 부인하는 모든 전체주의 정권은 언젠가는 붕괴된다. 나는 독자들에게 중국을 지켜보라고 권한다.
많은 나라의 지도자들은 소위 민주적 방식으로 선출됐어도 일단 권좌에 앉으면 제멋대로 한다. 그 전형적인 예가 프랑스정부다. 여전히 태평양에서 원폭 실험을 수행하면서, 마지막 남은 인류의 거대한 자원인 바다를 오염시킨다.
믿을 만한 소식통에게서 들은 바에 따르면, 무루로아 환초의 프랑스 과학자들은 그 수역의 일부 물고기 종류, 특히 비늘돔에서 거대증(巨大症)이 나타나 몹시 우려한다. 무루로아 핵실험장 인근에서 방사능에 노출돼온 물고기들로 정상크기의 세 배로 자랐다. 똑 같은 증상이 거대한 백상어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자!
게다가 무루로아의 수중 핵폭발 실험 일자들을 추적해 보면 폭발 2시간 뒤(일반적인 경우는2~3일 뒤)에는 늘 지구 어디에선가 대규모 지진이 일어난다.
프랑스 정치인들은 이렇게 지난 수십 년 간 지구 차원의 범죄를 저질러왔다. 내가 프랑스인으로 태어난 게 미안하고 부끄럽다…….
사담후세인 역시 수백 개의 유정을 방화했을 때 지구 전체에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그는 쿠웨이트에서 저지른 만행에 대해서도 심판받아야 한다. 도대체 유엔은 뭘 하고 있는 건가?
브라질에서는 역대 정부들이 아마존 우림을 조직적으로 파괴하면서 역시 지구 차원의 범죄를 저지른다.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실제로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다. 모두들 잘못된 형사제도에 관해 불평한다. 물론 잘못된 제도다. 법은 사기꾼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진 듯하다. 그러니 무엇인가를 하라!
바카라티니인들의 형사제도를 기억하는가. 그들의 제도는 효율성에서 우수한 아즈텍의 제도와 다르지 않았다.
‘제도가 나쁘니까, 그들이 그것을 바꿔야 한다’ 고 말하는 것으론 충분치 않다. 그들이라니, 누구를 얘기하는 건가? 국회의원, 국가원수, 모든 민선 공직자들? 제도를 바꾸려면 법과 함께 그런 지도자들부터 바꿔야한다. 국민을 대표하는 정치인들로 하여금 비능률적인 법과 제도를 단호하게 바꾸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정치인들은 자발적으로 그런 일을 하기에는 너무 태만하다. 법의 제정이나 개정에는 많은 노력과 책임이 요구된다. 정치인들에게 그런 일을 요구하기는 무리다. 왜냐하면 이미 말했듯이 대다수 법은 권력자와 재력가를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훌륭한 정치가들을 유치하려면 먼저 그 직급의 봉급부터 깎아야 한다. 그러면 지원자가 줄어들겠지만 그래야만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봉사하려는 참된 일꾼들만이 참여할 것이다.
부패한 정치인들을 선출한 것은 바로 국민이다. 그런 정치인들은 이미 지나치게 많다. 그들은 국민이 바라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시민들이 정치인들로 하여금 의무를 다하도록 강제하는 날이 올 것이다. 선거 공약을 충실히 이행하도록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오해하지 말라. 무정부주의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단지 원칙을 강조하는 것이다. 한 나라에는 원칙이 필요하다. 전체주의 정권의 원칙이 아니라 공약은 지켜져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원칙이다. 공약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시민들은 행동에 나서야 한다. 권좌에 오른 정치인들이 수백만 시민을 실망시키고 ‘다음번’ 선거 때까지 국민을 우롱하게 방임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소속 정당 내의 당권 투쟁에 몰두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국가적 소임을 다하는 게 나을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겠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고 말한다. 바로 그런 태도가 잘못이다! 국민들은 자신들이 선출한 정부가 본래의 임무를 다하도록 강제할 수 있고, 강제해야 한다.
국민에게는 엄청난 힘이 있다. 아르키가 말했듯이, 인간이 지닌 강력한 무기 중 하나는, 지능적인 ‘비활동의 힘’ (power of inertia: 여기서 inertia는 ‘불복종’ 의 뜻도 있다)이다. 일종의 비폭력 저항으로 가장 위대한 힘이다. 폭력은 폭력을 부를 뿐이다. 그리스도는 ‘칼로 일어선 자는 칼로 망하리라’ 고 말했다.
중국 베이징에서는 비무장의 청년이 혼자서 군(軍)탱크 행렬을 멈추게 만들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탱크 속의 군인들은 무기도 없는 그 청년의 자기희생적인 행동에 감화돼 감히 그를 깔아뭉갤 수 없었다.
수많은 세계인들이 그 장면을 TV로 목격했다.
간디는 혼자서 끔찍한 유혈사태를 막아냈다. 마운트배튼경은 만일 5만 명의 병력을 캘커타로 파견했었다면 대량학살을 당했을 것임을 깨달았다. 간디는 비폭력적인 수단으로 대학살 사태를 예방했다.
아르키의 행성에서는 시민들이 소위 ‘고장 난’ 차량들로 많은 도로를 봉쇄했다. 시위에 동원된 그런 차들은 1만대나 됐다. 경찰은 그것이 의도적인 저항임을 알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시민들은 소방차나 구급차의 경우는 자신들의 차를 한쪽으로 밀어내서라도 통과시켰다. 그러곤 다시 그 고장 난 차들을 제자리로 밀어 넣었다. 그것이 바로 ‘비활동의 힘’ 이다. 시민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먹지도 않고 구호를 외치지도 않았다. 당국의 진압부대와 대치하며 조용히 저항했다. 시민들은 도로봉쇄를 풀 수 있다면 자신들도 기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수리공과 중장비의 도움 없이는 도로를 정비하기도 어려워졌다. 국가 전체가 마비됐다. 시위 군중 속에는 깃발도 슬로건도 함성도 없었다. 조용한 저항만이 있었다.
시민들은 최고 당국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는 더욱 더 스스로의 거짓과 기만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시민들은 이미 정부에 공개서한을 보내 놓은 상태였다. 정부는 시민들의 요구사항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시위를 벌이는 이유도 알았다. 그 펀지의 발신자 이름은 ‘시민’ (Mr Citizen)이었다…….
아르키가 말했듯이, 약 10만 명의 시민이 활주로, 철도, 거리에 조용히 드러누웠다. 그들은 경찰에게 ‘나도 집에 가고 싶어요. 집에 데려다주세요. 몸이 아파요. 제발 데려다주세요’ 라고 간청했다. 경찰은 차마 그런 군중 속에 최루탄을 발사하지는 못했다. 어떻게 발사하겠는가?
시민들은 ‘폭력 없이’ 불복종의 힘으로 나라 전체를 멈추게 만들었다. 결과는 신속하게 뒤따랐다. 경제계를 틀어뭔 ‘뚱뚱한 자본가’ 들과 한통속인 썩은 정치인들은 겁에 질리기 시작했다. 주식시장이 붕괴되고 금값이 요동치면서 수백만 달러를 날릴 판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시위 참가시민들이 일을 하지 않음으로써 잃는 돈의 수십만 배를 잃고 있었다. 결국 성스러운 돈의 이름으로 그들은 굴복했고, 시민들은 승리했다.
지구의 인간들은 차츰차츰 길들여지고 있다. 외계인 친구들은 그 점을 우려한다. 우리는 인간이지 로봇이 아니다. 지금 당장 깨어나라!
예를 들어 보자. 물건 값을 인식하는 바코드 시스템과 현금등록기를 새로 장만한 슈퍼마켓에서 정전이 된 상황을 생각해 봤는가? 가격이 바코드에 암호화돼 있어 계산대 직원들은 물건 값을 계산조차 못 한다. 소비자 역시 나중에 목록표를 받아보기 전에는 통조림 한 개의 가격조차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해 봤는가? 계산 목록표를 살펴보는 것도 간단치 않은 일이다. 결국 소비자들은 자신이 얼마나 지출하는지를 더욱 더 모르게 되고, 자본가들은 소비자 모르게 그들의 돈을 통제한다.
내가 아는 붙임성 있는 상점주인의 현금등록기가 고장 난 적이 있었다. 나는 1달러 38센트짜리 물건을 두 개 구입하고 5달러짜리 지폐를 냈다. 그는 종이쪽지 위에서 약3분에 걸쳐 물건 값을 계산하더니 거스름돈으로 2달러 34센트를 내게 줬다. 간단한 덧셈 뺄셈을 직접 계산하는 습관을 잃어버린 탓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처럼 그 역시 기계를 신뢰한다. 사람들은 신용카드와 컴퓨터에 의존한다. 이는 잘못이다. 소비자들이 더 이상 혼자 힘으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자본가들이 대신 계산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서서히 자신의 돈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간다.
작은 실험을 해 보자. 그러면 내 말뜻을 이해할 것이다. 앞서의 상점주인은 내게 2달러 34센트를 거스름돈으로 돌려줬다(10센트를 더 줬다). 그 대목에서 책읽기를 멈추고 직접 계산해 본 독자들은 남의 말에 쉽게 이끌려 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직접 확인해 보지 않은 독자들은 지금 당장 태도를 바꾸는 게 낫다. 당신은 신(神)의 속성을 지닌 존재다. 자부심을 가져라. 더 이상 양떼처럼 끌려 다니지 말라.
당신은 이미 이 책을 끝까지 읽었다. 그 자체로 훌륭하다. 정말로 훌륭하다. 이는 당신이 스테이크, 감자칩, 햄버거, 소금 절임 양배추, 맥주 같은 것들 이상의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계속 정진하시길!
지금부터 하는 얘기는 전 세계 젊은이들을 위한 것이다. 타오가 내게 쓰도록 한 모든 내용과 내가 후기에서 덧붙인 모든 내용은 젊은이들에게도 해당된다. 하지만 여기서는 특별히 그들만을 위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실직과 권태 속에서, 혹은 도시의 번잡함 속에서 희망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다. 청년들이여, 라이프스타일을 근본적으로 바꿔 보라! 당신들은 건강하지 못한 환경에서 침체된 삶을 사는 대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삶을 조직할 수 있다.
나는 특히 호주에 관해 얘기하고자 한다. 다른 나라들에 어떤 자원이 있는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내용은 분명히 어느 나라에나 적용될 수 있다.
한데 뜻을 모아 조직을 만든 후 정부로부터 경작지를 임차하라(임차 기간은 99년으로 한다. 그런 땅은 분명히 있다). 그곳에 공동체 농장을 세우고 자급자족의 생활을 한다. 그럼으로써 자신이 더 이상 ‘식충이’ 가 아니라는 사실을 주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 그리고 농장을 정부보다 더 잘 운영한다는 점을 증명함으로써 만족감과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국법을 준수하는 동시에 자체적인 내부 규율을 갖춘 독자적인 ‘지방자치단체’ 도 만들 수 있다.
제대로 된 정부라면 기꺼이 그 지자체에 교부금을 지원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어차피 예산낭비가 많을 수밖에 없는 정부인만큼 한 번 정도는 좋은 목적에 예산을 지출할 것이다).
물론 젊은이들도 그런 지원에 상응하는 책임의식을 갖고 행동해야 한다. 그들을 ‘구제불능’ 으로 단정한 험담꾼들이 호시탐탐 비판거리를 찾고 있을 테니 말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젊은 세대가 보다 깨끗하고 보다 영적인, 그래서 보다 나은 세계를 건설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타오라의 메시지를 전해 듣지 않았는가?
젊은이들은 책임 있게 행동하고 자율적인 규칙을 준수할 수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우선 마약은 절대 안 된다. 알다시피 마약은 진정한 자아인 성기체를 어지럽힌다. 그런 약물은 전혀 필요가 없다. 마약의 덫에 걸린 친구들이 당신의 도움으로 빠져 나올 수도 있다. 당신 앞에는 큰 일이 놓여있다. 친구들을 돕는 일 외에 새로운 길을 따라 자신의 삶을 개편하는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엄청난 기쁨을 누리게 된다. 물질주의적 관점에서 벗어나 ‘자연으로의 복귀’ 를 이루게 된다. 이런 일을 진지하게 실천하는 최초의 사람들이 될 것이다. 생존에 필요 한 것이 무엇인가? 공기, 물, 빵, 야채, 고기가 있으면 된다.
화학제품을 사용하지 않고도 그 모든 것을 조달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키부츠’는 완벽하게 작동한다. 호주는 다문화 사회인만큼 그런 공동체가 훨씬 더 잘 작동할지도 모른다. 이는 남보다 더 잘한다는 경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감을 갖고 바람직하게 살아가는 차원의 문제다. 또 정신적이면서 오락적인 측면에서 나름대로 디스코장을 세울 수도 있다. 드넓은 전원의 디스코장은 도심의 디스코장만큼 재미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독자적인 도서관과 극장을 만들어도 된다. 그 극장에서 독자적인 희곡을 창작하고 연기할 수도 있으리라.
서양장기, 탁구, 테니스, 볼링, 당구, 축구, 네트볼, 양궁, 펜싱, 세일보딩, 승마, 서핑, 낚시 등도 즐길 수 있다. 고전 댄스나 무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과도한 적대감을 조장하는 과격한 게임은 피하게 될 것이다.
자연에서는 도심 길거리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또 요가를 통해 정신적 신체적 건강과 행복을 크게 증진할 수 있다. 나는 요가, 특히 차크라를 통한 호흡법을 권장한다. 매일 아침과 저녁에 30분씩만 요가를 해도 충분하다.
대다수 젊은이들은 자연 및 환경과 함께 살아야지 어긋나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이해한다.
자연에 어긋나게 살아가는 바보들은 숲을 보호하자고 시위를 벌이는 당신을 비판한다. 그들은 당신을 ‘숲에 미친 놈’ 혹은 ‘히피’ 라고 경멸적으로 부른다. 당신이 남에게 설교하는 내용을 실천하고 있음을 전 세계에 그리고 주로 자신에게 증명하라. 공동체 농장에서 살기 시작하면 당신은 환경 보호를 뛰어 넘어 숲을 창조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두머리나 지배자가 아닌 책임감 있는 사람을 민주적 방식에 따라 조언자 내지 고문으로 선발하라. 구린내 나는 정치인들이 국가를 이끄는 것보다는 이들 젊은이들이 공동체를 더 잘 운영할 수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우주’ 의 이름으로 그대들에게 감사한다.
종교와 정치는 가장 나쁜 두 개의 사회악이라고 타오는 말했다(9장참조).
그러니 날더러 소원을 들어달라거나 정신적 스승이 되어달라거나 종교를 창시하라는 내용의 편지를 출판사에 보내는 일은 하지 말기 바란다. 그것은 내 뜻에 반할 뿐만 아니라 타오라와 타오의 뜻에도 반하는 행동이다.
타오는 이렇게 말했다.
“가장 위대한 성전(temple)은 마음속에 있다. 인간이 명상과 정신집중으로 자신의 초월자아라는 중개인을 통해 어느 때라도 조물주와 교신할 수 있는 장소는 바로 그곳이다.”
나에게 사원, 교회, 성당, 신앙촌을 건설하자고 말하지 말라.
여러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라. 그러면 조물주와의 교신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당신이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 모든 것을 그곳에 갖다 놓은 사람이 바로 조물주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쓰도록 요구한 타오라와 타오의 전달자로서 나는 그대들에게 이 점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어떤 종교도 위대한 성령과 조물주가 이미 창조해 놓은 것을 바꾸지는 못한다.
어떤 종교나 믿음도, 또 이 책을 포함한 어떤 책도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질서와 진리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강물은 늘 수원지로부터 바다를 향해 흐른다. 아무리 많은 종교와 종파가, 혹은 아무리 많은 사람이 반대로 믿고 싶어도 그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유일한 불변의 진리는 조물주의 섭리다. 그것은 태초에 그분이 ‘원했던’ 우주의 원리이자 그분의 법칙이다. 누구도 그것을 변경하지 못한다.
M. J. P. 데마르케
1993년 4월, 호주케언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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