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의 얘기가 끝났을 때 나는 그녀의 오로라가 흐릿해지는 것을 명확히 볼 수 있었다. 바깥에서는 이미 비가 그쳤다. 태양은 푸른색과 분홍색을 반짝이는 거대한 흰 구름들 위에서 빛을 발산했다. 나무들은 상쾌한 느낌을 전달했고, 가지들은 부드러운 바람결에 흔들렸다.
나뭇잎에 매달린 물방울들에서는 수많은 무지개가 춤을 췄다. 태양의 복귀를 환영하는 새들의 노랫소리가 햇살에 실려 곤충들의 감미로운 음악과 뒤섞였다. 내가 겪어본 가장 신비로운 순간이었다. 모두 말을 잊었다. 우리의 영혼이 주변의 아름다움을 맘껏 흡입하도록 놔두고 싶어서였다.
행복한 웃음과 목소리가 들리면서 평온이 깨졌다. 뒤돌아보니 비아스트라, 라톨리, 라티오누시가 각자 타라(혁대처럼 허리에 차는 비행 장치)를 이용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들은 도코의 바로 앞에 착륙한 뒤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들어왔다. 우리도 일어나 반갑게 그들을 맞이했다. 티아우바 언어로 인사말이 오갔다. 나는 여전히 모든 대화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의 언어를 말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되지 않았다. 어차피 할 말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프랑스어로 말하면 그들 역시 알아듣지 못했지만 내 말의 뜻을 정신감응으로 이해했다.
우리는 꿀물로 요기한 후 다시 떠날 채비를 했다. 나는 마스크를 쓰고 그들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라톨리가 다가와 내 허리에 타라를 채워주고, 오른손에는 리티올락을 쥐어줬다. 나도 새처럼 날아다닐 수 있다는 생각에 몹시 흥분됐다.
내가 이 행성에 온 첫날 사람들이 이런 장치로 날아다니는 모습을 본 뒤부터 나도 그렇게 해보는 게 꿈이었다. 그러나 너무도 많은 일을 너무도 빠르게 겪다 보니 그럴 기회가 있으리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라톨리, 당신들은 공중부양 능력이 있는데 굳이 타라와 리티올락을 사용해 날아다니는 이유가 뭔가요?" 내가 물었다.
“공중부양을 하는 데는 강한 정신집중이 필요하고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돼요, 미셸. 그리고 속도도 시속 7km밖에 안되죠. 공중부양은 특정한 정신훈련 때 사용되지만, 운송수단으로는 적합지 않아요. 이 장치는 우리 행성의 이른바 ‘차가운 자력(冷磁力)’ 을 중립화시킨다는 점에서 공중부양술과 동일한 원리에 토대를 두고 있어요. 냉자력은 지구의 ‘중력’ 과 같은 것으로 모든 물체를 지면에 붙들어 매죠.
인간도 돌처럼 물질로 구성돼 있죠. 그러나 우리는 특수한 방법으로 ‘무중력 상태’ 가 될 수 있어요. 특정한 고주파 진동을 일으켜 냉자력을 무력화하는 방법이죠. 그리고 이동이나 방향 전환에는 다른 주파수의 진동을 이용해요. 보다시피 아주 간단한 장치에요. 똑같은 원리가 무 대륙, 아틀란티스, 이집트 등지의 피라미드를 건설할 때도사용됐죠. 타오에게서 이미 들었겠지만 이제 당신이 직접 반중력 효과를 체험할 겁니다.”
“이런 장치로 어느 정도나 속도를 낼 수 있나요?"
“당신이 착용한 장치로는 시속 300km를 낼 수 있어요. 고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도 있고요. 자,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니까 일단 가죠.”
“내가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내가 사용법을 가르쳐줄게요. 그런데 처음에는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내 지시를 철저히 따르지 않으면 심각한 사고가 날 수도 있어요.”
모두가 나를 지켜봤다. 나의 긴장하는 모습에 가장 재미있어 하는 사람은 라티오누시인 듯했다. 나는 리티올락을 손에 단단히 쥐었다. 그것의 안전 끈은 팔뚝에 부착됐다. 내가 리티올락을 놓친다 해도 그것은 여전히 팔뚝에 매달려 있게 된다는 얘기다.
긴장으로 침이 말랐다. 솔직히 별로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라톨리가 다가와 내 허리에 한팔을 두르면서 안심시켰다. 내가 그 장치에 익숙해질 때까지 그렇게 부축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또 내 허리의 타라에는 신경 쓸 필요 없지만 리티올락은 단단히 쥐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먼저, 대형 버튼을 세게 잡아당겨야 했다. 자동차의 시동키를 돌리는 것처럼 리티올락을 조종 가능한 상태로 만드는 동작이었다. 작동준비가 됐음을 알리는 작은 불빛이 들어왔다. 리티올락은 세로로 길쭉한 서양배(pear)처럼 생겼다. 밑 부분이 아래쪽을 향하게 목 부분을 손으로 붙잡는데, 윗부분은 버섯 갓처럼 생겨 손가락들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돼있다.
라톨리는 그 리티올락이 나를 위해 특수 제작한 것이라고 했다. 내 손의 크기가 그들 손의 절반 정도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리티올락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리티올락의 크기는 사용자의 손에 딱맞는 게 중요하다. 리티올락은 고무 소재인 양 부드러웠고 내부는 물로 채워졌다.
지시 사항을 들은 뒤 나는 리티올락을 붙잡았다. 그런데 너무 세게 쥐는 바람에 우리는 급작스럽게 공중으로 솟구쳤다 (라톨리는 솟구치기 직전 간신히 나를 붙잡았다).
우리는 공중으로 3m 정도 올라가 있었다. 지면에서 2m 정도의 공중에 떠있던 다른 사람들은 라톨리의 놀라는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다.
타오가 그녀에게 말했다. “조심해요. 미셸은 행동파에요. 그의 손에 어떤 장비를 쥐어주면 그는 즉각 사용할 거예요!”
“리티올락의 손잡이 부분을 전체적으로 균등하게 압박하면 수직으로 상승해요. 그리고 엄지손가락으로 누르면 오른쪽으로, 나머지 네 손가락으로 누르면 왼쪽으로 갑니다. 하강하고 싶으면 손의 압박을 풀고 더 빨리 하강하려면 왼손으로 아랫부분을 누릅니다.
라톨리는 사용법을 설명하면서 내게 연습해보라고 했다. 우리는 약 50m 공중으로 상승했다. 타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 했어요, 미셀. 이제는 혼자 해보라고 하세요, 라톨리. 그도 사용법을 아네요.”
나 역시 그녀가 더 이상 지시하지 않기를 바랐다. 내 생각대로 해보고 싶었다. 라톨리가 ‘날개’ 처럼 옆에 붙어서 보호해 주기 때문에 훨씬 더 자신감이 생겼다. 말로만 그런 게 아니었다. 마침내 라톨리가 내게서 떨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같은 높이에서 가까이 있었다.
리티올락을 쥐고 있던 손의 압박을 부드럽게 풀자 상승이 멈췄다. 압박을 더 약하게 하자 하강하기 시작했다. 자신감이 생겨 리티올락의 목 부분을 고르게 누르자 화살처럼 치솟았다. 너무 멀리 올라가 손가락이 얼어붙은 듯했다. 계속 상승 했다.
“손의 힘을 빼요, 미셸. 손의 힘을 빼요.” 눈 깜짝할 사이에 따라온 라톨리가 소리쳤다.
맞아! 나는 손의 힘을 뺐다. 바다 위로 대략 200m 상공에 날아와 있었다. ‘얼어붙은’ 엄지손가락에 무의식적으로 너무 강한 힘이 들어갔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200m 높이에서 합류했다. 내가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모양이다. 라티오누시조차 폭소를 터뜨렸다. 그가 그렇게 웃는 모습은 처음 봤다.
“부드럽게 하세요, 미셸. 이 장치는 감촉에 매우 민감해요. 자, 이제는 여행을 떠나도 되겠네요. 우리가 앞장서죠.”
그들이 서서히 날아갔다. 라톨리는 내 곁을 지켰다. 우리는 같은 고도를 유지했다. 나는 손바닥으로 리티올락을 누르면서 매끄럽게 나아갔다. 누르는 압력을 조절해 마음대로 속도를 늘릴 수 있음을 곧 깨달았다. 손가락 힘으로는 고도와 방향을 통제했다.
예상치 못하게 이탈하는 경우도 여전히 있었다. 특히 우리의 진로를 가로질러 가는 세 명의 사람들 때문에 관심이 분산 됐을 때 그랬다. 그들은 지나치면서 나를 힐긋 쳐다보고는 무척 놀란 듯했다.
30분쯤 지난 뒤부터는 장비를 다루는 데 능숙해졌다. 적어도 바다 위를 원활하게 날아가는 데는 충분했다. 장애물이 없는 만큼 우리는 서서히 속도를 높였다. 나는 심지어 동료들과 대형을 이뤄 비행하면서도 별로 빗나가지 않았다.
정말로 유쾌했다. 이런 느낌을 경험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장비에서 생성된 일종의 포스 필드가 내 주위를 감싸고 있어 나는 무중력 상태였고, 그래서 떠있다는 느낌조차 없었다. 마치 큰 풍선 속에 들어가 있는 듯했다. 바람이 얼굴을 때릴 때의 감각도 느끼지 못했다. 주변 환경의 일부가 된 느낌이었다.
그 새로운 운송 수단을 더 많이 사용할수록 즐거움도 커졌다. 조종 기술을 시험하고 싶어 약간의 하강과 상승을 몇 차례 반복하면서 동료들과의 비행 고도 수준을 바꿔보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타오에게 다가가 텔레파시로 나의 행복감을 전달하면서 수면 위를 스치듯 날아가고 싶다는 뜻을 알렸다. 밑에는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었다.
타오도 동의했다. 그룹 전체가 나를 따라 수면 가까이로 내려왔다.
시속 100km의 속도로 파도 꼭대기를 스치듯 날아가는 기분은 정말로 환상적이었다. 마치 전능한 신이 된 듯한, 중력의 지배자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가끔 은빛 물보라가 일 때면 물고기 떼의 위를 날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너무 흥분된 나머지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대충 3 카르세(티아우바에서의 1시간) 정도 비행한 듯했다.
어느 쪽을 쳐다봐도 수평선만 보일 뿐이었다. 그 때 타오가 텔레파시를 보냈다. “저쪽을 보세요. 미셸.” 아득히 먼 수면 위에서 작은 점이 하나 보였다. 그 점은 급속도로 커지면서 적당한 크기의 산 같은 섬이라는 게 드러났다.
곧이어 검푸른 색깔의 거대한 바위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바위들은 날카로운 기세로 청록색 바닷물을 찌르고 있었다.
우리는 고도를 높여 섬 전체를 내려다 봤다. 백사장은 보이지 않았고, 거대한 바위투성이의 해안은 바다에서의 접근을 어렵게 만들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는 위압적인 바위 덩어리의 아랫부분에 부딪친 후 햇빛 속에 무지개를 뿌리며 흩어졌다. 무지갯빛 물보라와 검은색 현무암 바위들이 묘한 대비를 연출했다.
내륙 경사면의 중간 지대에는 거대한 나무들이 숲을 이뤘다. 잎사귀는 기묘하게도 짙은 파랑색과 황금색이고, 줄기는 피처럼 빨간색이었다. 이런 나무들이 연두색 호수의 가장자리까지 이어진 가파른 경사면을 뒤덮었다. 호수 표면은 군데군데 황금빛 물안개로 몽롱하게 보였다.
호수 한가운데에서는 물에 떠있는 듯한 거대한 도코를 볼 수 있었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직경이 560m나 되는 도코였다.
엄청난 규모 외에도 독특한 점이 더 있었다. 색상이었다. 지금까지 봐온 도코들은 흰색 계열이었다. ‘아홉 도코의 도시’ 에 있던 도코들도 그랬다. 그러나 이것은 순수한 금으로 만들어진 듯했다. 일반적인 계란형 모양임에도 불구하고 햇빛 속에서 빛나는 이 도코의 특출한 크기와 색상은 더욱 장엄한 이미지를 자아냈다. 더 놀라운 것은 호수 물에 도코의 그림자가 없다는 점이었다.
친구들은 나를 그 황금 도코의 둥근 지붕 쪽으로 데려갔다. 우리는 수면선상에서 서서히 날아갔다. 낮은 위치에서 보는 도코의 모습은 훨씬 더 웅장했다. 다른 도코와 달리 이것은 출입구 표시가 전혀 없었다. 나는 타오와 라톨리를 따라갔고 그들은 곧 안쪽으로 사라졌다.
다른 두 사람은 내 곁에서 내가 물에 빠지지 않도록 부축했다. 놀랍게도 내가 손에서 리티올락을 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코의 장대한 모습에 넋을 팔고 있었던 것이다.
황금 도코 안에서 본 광경은 이러했다.
약 200명의 사람이 아무런 장치의 도움도 없이 허공에 떠있었다. 모두 잠들어 있거나 깊은 명상에 빠져 있는 듯했다. 우리한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은 수면 위 6m 높이에 떠 있었다. 도코 안에는 바닥이 없었다. 사실 도코의 밑바닥은 수면 아래에 있었다.
이미 설명했듯이 도코 안에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었다. 나와 도코 외부 사이에 아무런 벽도 없는 듯이 말이다. 어떻든 도코 바깥의 호수와 언덕, 배경 숲이 전경으로 보이고, 이런 ‘자연 경관’ 의 한 가운데에 있는 나의 근처에 200여 몸뚱이들이 떠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는 독자들도 짐작할 것이다.
동료들은 말없이 나를 쳐다봤다. 다른 때 같았으면 나의 놀라는 모습에 웃음을 터뜨렸을 댄데 지금은 심각한 표정들이었다.
좀 더 자세히 관찰해 보니 그들은 대체로 나의 동료들보다 체구가 작고, 일부는 아주 이상하고 괴물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저들은 뭘 하고 있는 건가요? 명상중인가요?" 곁에 있는 타오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리티올락을 손에 쥐세요, 미셸. 팔에 걸려 있어요.”
나는 그 말대로 했다. 그녀가 내 질문에 답했다. “저들은 죽었어요. 모두 시신들이죠.”
“죽어요? 언제요? 모두 함께 죽었어요? 사고가 있었나요?"
“일부는 이곳에 있은지 1,000년 정도 됐어요. 가장 최근에 죽은 사람은 60년 정도 될 거예요. 지금 당신의 놀란 상태를 보니 리티올락을 제대로 조종하지 못할 것 같군요. 라톨리와 내가 당신을 인도할게요.”
두 사람이 나를 양쪽에서 부축한 채로 우리는 시신들 사이를 이동하기 시작했다. 예외 없이 모두 벌거벗은 상태였다.
결가부좌를 한 시신도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은 길고 불그스름한 금발이었다. 서 있었다면 키가 2m 정도 될 듯했다. 피부는 황금빛인데 남자로서는 매우 잘생긴 용모였다. 사실 그는 자웅동체보다는 남성의 모습이었다.
좀 떨어진 곳에 여성이 누워있었다. 피부는 뱀이나 나무의 껍질처럼 거칠었다. 이상한 용모 때문에 나이를 짐작하기는 어려웠지만 젊은 여성 같았다. 피부색은 주황이고, 짧은 곱슬머리는 녹색이었다.
가장 놀라운 점은 그녀의 유방이었다. 무척 큰 유방인데 서로 10cm 정도 떨어져 있는 젖꼭지가 두 개씩 있었다. 키는 대략 180cm였다. 허벅지는 가늘고 근육질이며 종아리는 아주 짧았다. 발에는 커다란 발가락이 세 개씩 있었지만 손은 우리와 똑같이 생겼다.
우리는 시신들을 하나씩 관찰하며 돌아다녔다. 박물관에서 밀랍 인형들 사이를 이리저리 다니며 관찰하는 기분이었다. 모든 시신의 눈과 입은 닫혀있었다. 자세는 둘 중의 하나였다. 결가부좌로 앉아 있거나 두 팔을 옆구리에 가지런히 붙인 채 누워있었다.
“어디서들 왔나요?" 내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여러 행성에서요.”
우리는 한 남자의 시신 앞에서 긴 시간을 보냈다. 한창 나이에 죽은 듯했다. 긴 곱슬머리는 밝은 밤색이었다. 손발은 나와 비슷했다. 지구인과 무척 닮은 용모를 하고 있었다. 신장은 180cm 정도였다. 얼굴은 부드러운 표정에 귀티가 흘렀고, 턱에는 부드러운 수염이 나 있었다.
타오를 쳐다보니 그녀의 시선이 내게 고정돼 있었다. “지구인이라고 할 수도 있겠어요.” 내가 말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고, 다른 의미에서는 안 그래요. 당선도 그에 관해 많은 얘기를 들어 잘 아는 사람이에요.”
흥미를 느껴 그의 얼굴을 좀 더 자세히 관찰했다. 타오가 텔레파시로 “그의 손발과 옆구리를 보세요”라고 말했다.
타오와 라톨리는 나를 그 시신에 더 가까이 데려갔다. 그의 두 발과 손목에 흉터가 있고 옆구리에는 20cm 길이의 베인 상처가 있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죠?"
“십자가형을 당했어요, 미셸.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아침에 얘기했던 그리스도의 시신이에요(종교적인 그림과 조각들을 보면 사람을 십자가형에 처할 때 손바닥에 못이나 징을 박는 것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인제 해부학에 따르면 손바닥 뼈 사이의 부드러운 조직은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의 체중을 지탱할 만큼 강하지 않다. 따라서 징은 손가락사이로 빠져버린다, 반면 손목에 박힌 징은 뼈 사이에 고정되므로 훨씬 더 강력한 지지력을 보인다. 편집자 주).”
다행히 동료들은 나의 반응을 예상해 나를 단단히 부축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너무 놀라서 리티올락을 제대로 조종할 수 없었다.
지구에서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숭배의 대상이자 대화의 주제였던 그리스도. 지난 2,000년 동안 그토록 많은 논의와 연구의 대상이었던 그리스도의 시신이 내 눈앞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시신을 만져보려고 손을 뻗었다. 그러나 동료들은 그렇게 못하게 하면서 나를 뒤로 끌어당겼다.
“당신의 이름은 도마가 아니에요. 왜 꼭 만져봐야 하나요? 마음속에 의심이 남아있나요?" 타오가 말했다. “당신은 오늘 아침 내가 한말을 확인시켜 주는군요. 사람들은 증거를 원한다는 말이요.”
시신을 만져보려 했던 것이 몹시 부끄러웠다. 타오는 내가 후회하는 것을 이해했다.
“알아요, 미셸. 당신이 본능적으로 그랬다는 걸. 이해해요.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이곳의 시신들을 만지면 안 됩니다. 7인의 타오라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그러면 안돼요. 사실 시신들을 이곳에 떠있는 상태로 보존하도록 만든 것은 타오라들이에요. 보면 알겠지만 시신들은 아무런 장치의 도움도 없이 저렇게 떠 있잖아요.”
“시신들은 모두 생전의 모습 그대로인가요?"
“물론이죠.”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보존하나요? 모두 몇 명이나 되고 또 왜 보존하죠?"
“당신을 지구에서 데려올 때 이런 말을 해줬는데 기억하나요? 당신의 질문 중에는 우리가 대답해줄 수 없는 것들이 있을 거라고 말했었죠. 당신이 꼭 알아야 할 내용은 우리가 가르쳐 주겠지만, 어떤 점들은 당신이 기록해선 안 되기 때문에 계속 ‘미스터리’로 남을 것이라고 설명했었죠. 당신이 방금 질문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 답변해줄 수 없어요. 하지만 이 도코 안에 147구의 시신이 있다는 것은 말해줄 수 있어요.”
더 이상 캐물어봤자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시신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나는 또 다른 뜨거운 질문을 던졌다.
“모세의 시신도 있나요? 그리고 모든 시신들이 바닥도 없는 이 도코 안에 떠있는 이유는 뭔가요?"
“지구 출신으론 그리스도의 시신밖에 없어요. 이들이 떠있는 이유는 완벽한 보존을 위해서지요. 이 호수 물의 특별한 성분이 보존에 도움이 되죠.”
“다른 시신들은 누구인가요?"
“다양한 행성들에서 왔는데, 생전에 모두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사람들이죠.”
지금도 잘 기억나는 시신이 하나 있었다. 키는 50cm 정도였지만 형태는 지구 생명체를 닮았다. 다만 피부색이 어두운 노랑이고 눈이 없었다. 대신 이마에 뿔 같은 게 있었다. 어떻게 사물을 볼 수 있느냐고 묻자 그 뿔 같은 돌기의 끝에 파리의 눈 같은 다면체 눈이 두 개 있다고 했다. 감긴 눈꺼풀에 여러 개의 균열이 나 있는 게 보였다.
“자연은 정말로 이상하군요.” 내가 중얼거렸다.
“말했듯이 이곳의 시신들은 각각 다른 행성에서 왔어요. 각 행성 주민들의 생김새는 자연이 결정하고, 그들은 그 조건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아르키처럼 생긴 시신은 안 보이네요.”
“미래에도 못 볼 거예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문제를 계속 거론해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소름끼치는 장소에서 나는 북미 인디언을 닮은 시신들을 봤지만 그들은 인디언이 아니었다. 아프리카 흑인을 닮은 시신들도 봤지만 역시 아니었다. 일본인 같은 시신도 봤지만 역시 일본인이 아니었다. 타오가 말했듯이, 지구에서 온(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면) 시신은 그리스도뿐이었다.
이 특이하고 흥미로운 장소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낸 후 친구들은 나를 밖으로 데리고나왔다. 숲의 향기를 실은 미풍이 우리들을 어루만졌다. 기분이 무척 상쾌해졌다. 무척 흥미롭긴 했지만 그런 장소를 구경한 뒤여서 그런지 매우 피곤했다. 타오가 눈치를 채고는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미셸, 준비됐어요? 집으로 가죠.”
그녀는 의도적으로 프랑스어로 말했다. 억양도 명백히 ‘지구인 같은’ 억양이었다. 저녁의 산들바람만큼이나 기운을 북돋는 말투였다. 나는 리티올락을 손에 쥐고 친구들과 함께 하늘로 솟아올랐다.
우리는 바위산 경사면을 뒤덮은 거대한 숲 위로 날아갔다. 산꼭대기 상공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를 찬탄하며 바라봤다. 으스스한 오후를 겪어서였는지 그것과는 대조적인 이 행성이 훨씬 더 아름답게 보였다. 이 모두가 꿈이나 환영은 아닐까 내 마음이 나를 속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다시 떠올랐던 게 기억난다.
늘 그렇듯이 타오는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채찍질처럼 날카로운 명령이 텔레파시로 내 머리 속에서 울리면서 나의 부질없는 의심을 몰아냈다. “미셸, 리티올락을 누르지 않으면 해수욕을 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서둘지 않으면, 어둡기 전에 도착하지 못해요. 밤이 되면 당신이 약간 불편해질지도 몰라요.”
실제로 생각에 빠진 사이에 내 몸은 수면을 향해 하강하다가 거의 파도에 닿을 뻔했다. 리티올락을 쥔 손에 힘을 줬고, 내 몸은 화살처럼 치솟았다. 나는 하늘 높이 있는 타오 일행과 다시 합류했다.
태양은 이미 상당히 낮아졌고, 하늘은 무척 깨끗했다. 바다는 놀랍게도 오렌지색을 띠고 있었다. 바닷물이 그런 색상을 보일 수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 점에 관해 텔레파시로 묻자, 하루 중 이 시간에는 오렌지색의 거대한 플랑크톤 떼가 수면으로 올라온다는 설명이 되돌아왔다. 그 바다에는 플랑크톤이 엄청나게 많은 듯했다. 얼마나 멋진 광경인가! 하늘은 청록색이고 바다는 오렌지색. 그리고 만물은 황금색 빛에 감싸여 있었다. 티아우바에서는 사방에서 황금빛이 발산되는 듯했다.
갑자기 친구들이 고도를 높였고, 나도 따라 올라갔다. 우리는 해발 1,000m 정도의 고도에서 처음에 왔던 방향(북쪽인 것 같았다)을 향해 시속 300km까지 속도를 높였다.
석양 쪽을 바라보니 수면에서 폭넓은 검은 띠가 나타났다. 물어볼 필요도 없이 곧바로 대답이 왔다.
“여러 대륙 중 하나인 누로아카에요. 아시아 대륙 전체만큼이나 넓은 곳이에요.”
“저곳에 가나요?" 내가물었다.
놀랍게도 타오의 응답이 없었다. 그녀가 내 질문을 무시하기는 그 때가 처음이었다. 나의 텔레파시 힘이 약했기 때문 이었을까. 그래서 이번에는 프랑스어로 재차 큰 목소리로 물었다.
“저길 보세요.” 타오가 말했다.
고개를 돌려보나 온갖 색상의 새떼가 구름처럼 몰려왔다. 우리의 진로와 교차하기 직전이었다. 나는 충돌을 우려해 수백m 아래로 급강하했다. 새떼는 엄청난 속도로 스치듯 지나갔다. 새들의 속도가 빨라서였을까, 아니면 우리의 속도가 빨라서였을까? 새떼가 그토록 빠르게 사라진 이유는 양측의 속도가 결합됐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깜짝 놀랐다.
위를 쳐다보니 타오 일행은 고도를 변경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어떻게 새떼와 충돌하지 않았을까? 타오를 보며 그녀가 내 질문을 들었음을 알았다. 방금 전 그녀가 내 질문을 무시한 이유는 마침 그 때 새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미 타오에게 익숙해진 만큼 그녀가 내 질문을 무시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서임을 알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그 문제를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날개 없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회를 맘껏 즐기기로 했다. 또 태양이 수평선을 향해 내려가면서 서서히 변해가는 주변의 아름다운 색조에 한껏 취하기로 했다.
하늘을 뒤덮은 파스텔풍의 색조들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장엄했다. 이 행성에서 볼 수 있는 온갖 색상의 조화를 이미 목격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현재의 비행 고도에서 보이는 하늘의 색채 효과는 때론 바다의 색상과 대비되고 때론 그것을 완벽하게 보완하면서 장관을 이뤘다. 늘 변하면서 항상 아름다운 이런 색상의 조화를 자연이 만들어 낼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가! 전에 나를 기절하게 만들었던 ‘취기(醉氣)’ 가 다시 느껴졌다. 간단명료한 명령이 전달됐다.
“즉시 눈을 감아요, 미셀"
눈을 감았다. 취기가 약해졌다. 그러나 눈을 감은 채 리티올락을 조종해 대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이 분야에선 초보자였다. 결국 나는 좌우상하로 오락가락 비행했다.
또 다른 지시가 떨어졌다. 이번에는 덜 긴박했다. “라티오누시의 등을 쳐다보세요, 미셸. 그에게서 눈을 떼지 말고 그의 날개를 주시하세요.”
눈을 뜨고 앞에 있는 라티오누시를 쳐다봤다. 이상하게도, 그의 어깨에서 검은 날개가 돋아나와 있다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았다. 모든 정신을 그 날개에 집중시켰다. 시간이 흐른 뒤 타오가 다가와 프랑스어로 말했다. “거의 다 왔어요, 미셸. 우리를 따라오세요.”
라티오누시의 날개가 이젠 안 보인다는 사실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따라 수면을 향해 하강했다.착색 된 식탁보에 박힌 보석처럼 보이는 섬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나의 도코가 자리 잡은 섬이었다. 석양이 파도 속으로 잠길 때쯤 우리는 환상적인 색채의 불길을 뚫고 빠른 속도로 섬을 향해 하강했다.
서둘러 도코에 가야했다. 아름다운 빛깔들로 야기된 ‘취기’ 가 다시 나를 압도할 것 같았다. 두 눈을 약간 감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우리는 수면선상에서 날아갔다. 곧이어 해변을 가로질러 나의 도코를 둘러싼 숲속으로 진입했다. 그러나 나의 착륙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도코안의 의자 등받이에 걸터앉아 있었다.
라톨리가 즉각 내 곁으로 달려왔다. 그녀는 내 리티올락의 시동 버튼을 끄면서 괜찮은지 물었다.
“괜찮아요. 그런데 그 색깔들…….” 나는 말을 더듬었다.
그 자그마한 사고에 웃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약간 슬픈 듯이 보였다. 내가 그토록 내팽개쳐지듯 착륙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우리는 모두 자리에 앉아 붉은색과 녹색의 음식과 꿀물을 먹었다.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았다. 마스크를 벗었더니 좀 더 정신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빠르게 어둠이 내려깔렸다. 티아우바에서는 늘 그랬다. 우리는 어둠속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들을 간신히 구별했지만 그들은 대낮처럼 쉽게 나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경이감을 느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모두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별들이 하나둘씩 나타나, 마치 하늘에서 터진 불꽃이 그대로 ‘얼어붙은 듯’ 찬란한 색깔로 빛났다. 티아우바의 대기권 가스층은 지구와 달라서 별들이 다양한 색상으로 훨씬 크게 보였다.
내가 돌연 정적을 깨며 지극히 자연스런 질문을 던졌다.
“지구는 어디 있죠?”
마치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그들은 일제히 일어섰다. 라톨리가 나를 아기처럼 안아 올린 후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다른 사람들이 길을 안내하면서 우리는 해변으로 이어지는 넓은 길을 따라갔다. 라톨리는 해변의 축축한 백사장에 나를 내려놓았다.
하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별빛으로 밝아졌다. 마치 거대한 손이 샹들리에의 전등을 켜는 듯했다.
타오가 다가와 그녀답지 않은 슬픈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수평선 바로 윗부분에 네 개의 별이 보이세요, 미셸? 거의 사각형을 이루고 있지요. 위쪽 오른 편의 녹색별은 나머지 보다 더 밝게 빛나요.”
“네, 그것이……. 맞아요. 사각형이에요. 그리고 녹색도……. 맞네요.”
“거기에서 사각형의 오른쪽을 보세요. 약간 더 높은 곳을. 그러면 두 개의 붉은 별이 서로 아주 가까이 있는 게 보일 거예요.”
“보여요.”
“그 중에 오른 쪽 별을 기준으로 약간 더 높은 곳을 보세요. 아주 작은 흰색별이 보이나요? 간신히 보일 거예요.”
“보이는 것 같아요……. 네, 보여요.”
“그 왼쪽으로 약간 높은 곳에 작은 노란색별이 있죠.”
“네, 있어요.”
“그 작은 흰색별이 지구를 밝혀주는 태양이에요.”
“그러면, 지구는 어디 있죠?"
“여기서는 안보여요, 미셸. 우리는 너무 먼 곳에 있어요.”
나는 그 작은 흰색별을 한동안 응시했다. 형형색색의 큰 별들로 가득한 우주에서 그 별은 너무도 하찮게 보였다. 그러나 그 별이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 나의 가족과 집에 따뜻한 햇볕을 보내주고 식물들의 발아와 성장을 촉진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의 가족’ 이란 말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호주’ 가 지구에서 가장 큰 섬이란 사실을 떠올리기도 부질없어 보였다. 지구 자체가 안 보이는 판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같은 은하계에 속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우주에는 그런 은하계가 수천 개나 존재한다고…….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 인간의 몸뚱이는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은 원자보다 훨씬 더 큰 존재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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