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기수련을 하면서 어떤 능력이 생겼을 때 뚜렷이 나타나는 징표는 없다.
나의 기수련법은 무슨 관문이나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어떤 능력이 생겼다는 것은 수련중에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나의 기수련법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라 더욱 그렇다.
내가 일정한 경지에 오른 것도 마찬가지였다.
기수련에 전념하다가 어느 순간에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대구에 들렀을 때였다. 친구들과 만나 서로의 근황을 묻는 과정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나의 기수련에 관한 얘기를 조심스럽게 하게 되었다. 귀담아 얘기를 듣고 있던 한 친구가 마침 친척중에 정말 위가 나빠 제대로 먹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며 한번 만나보라고 간곡히 청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채 잠자코 있었는데 동행했던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친구의 안내로 선생님과 나는 그 친구의 친척집으로 향했다. 먹지를 못해 고생하는 친척이라는 사람은 젊은 부부였다. 그들은 그냥 보기에도 눈이 퀭하고 광대뼈가 훌쭉한 것이 오래 고통에 시달린 것 같았다.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내가 젊은 부부를 수련시키는데 몸이 아주 약한 그들 부부는 수련을 시작하자마자 발바닥과 손바닥으로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여자가 드러누워서는 슬피 울기 시작했다. 여자가 빙의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참을 울던 여자는 이윽고 울음을 멈추고 남편의 이름을 불렀고 놀란 남편이 수련을 중단하고서는 여자의 곁으로 다가와 귀를 기울였다.
‘희야, 희야! 이눔아. 사랑하는 내 아들눔아!’
여자에게 빙의되어 있는 영혼은 남편의 어머니, 즉 여자의 시어머니였고 시어머니는 남편이 여섯 살되던 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어머니, 말씀하세요.’
빙의된 영혼은 아들이 어렸을 당시 아들도 모르는 일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때 고3이던 형의 이야기며 아버지가 내가 아파있는 동안 바람을 피웠다는 얘기며 세세한 가정이야기까지 넋두리처럼 늘어놓는 것이었다. 아들과 어머니의 얘기가 오래 계속되는 동안 아들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윽고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갈 무렵 선생님은 날더러 빙의된 영혼을 달래보라는 눈짓을 보냈고 나는 氣운용을 하며 누워있는 여자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영혼과의 대화가 이루어졌다. 여자의 몸에 빙의된 영혼은 이승에서의 제 명도 다하지 못한 데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들이 너무 마음에 걸려서 결국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아들의 주변을 멤돌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며느리감으로 점찍은 여자의 몸에 들어와서는 두 사람을 맺어주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아들도 장성했고 집안도 원만하니 그만 저승으로 가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다음날 빙의된 영혼을 천도시키기로 약속하고서 나는 선생님과 함께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날 밤이었다.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빙의된 영혼과 대화하는 능력이 생겼다는 게 다시 확인되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혼자서 기수련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수많은 영혼들이 구제해 주길 원하며 나를 찾아와서는 무릎 근처에 매달리기 시작했는데 스멀스멀하는 감각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놀란 나는 제발 좀 떨어져 있으라며 무릎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영혼들은 내가 쓸어내리면 잠시 떨어져 있다가도 다시 매달리기를 거듭했다. 내가 당신들을 구제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하나도 빼지않고 모두 구제할 테니 제발 물러가 있어 달라고 애원해도 소용이 없었다. 영혼을 구제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몰랐던 나는 하는 수없이 수련에만 매달렸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문득 후끈후끈 기운이 전신을 휩싸는 듯이 느낀 순간 무릎께에 그렇게 매달려 있던 영혼들이 일순간 확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스멀대는 감각도 없어졌고 이윽고는 영혼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나는 나의 에너지가 영혼을 구제해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道를 공부하던 사람이 깨치는 시기가 되면 구천을 떠도는 영혼들을 구제할 수 있게 된다는 걸 나는 그렇게 깨닫게 되었다.
그 영혼들을 구제해 준 뒤부터 나는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사람을 보아도 독심이 되는 것이었다. 처음 본 사람이라도 그 사람이 처해있는 모든 일들이 그대로 알아지는가 하면 손을 만지기만 해도 그 사람의 과거나 미래가 알아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내가 일단 어떤 경지에 이르자 하늘의 에너지가 일정한 메시지를 담고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강한 에너지가 몸으로 들어오는데 감당할 수 없었다. 문제는 그 에너지가 너무 강해서 스스로도 제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며칠씩 먹지도 자지도 않았으니 물골은 말이 아니었고 어느 누구도 힘으로 나를 제압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람의 운명이 너무 적나라게 보여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보다 못한 오빠가 나에게 정신병원에 입원하길 권했다. 약물로라도 나의 기운을 가라앉혀 보려는 의도였던 것이었다.
나는 선선히 오빠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하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한달가량을 정신병원에 있다가 나와서야 나는 비로소 내가 사람의 몸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가 있었다.
기수련에 심취하여 오로지 수련에만 정진하면서 나는 어느 경지에 이를 수 있었고 많은 능력을 얻게 되었다. 영계를 알게 되면서 사람에게 빙의된 영혼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을 달래서 천도를 시켰고 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다시 회복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평생 道의 길을 걷겠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것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깨달음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면, 자신의 참된 모습을 찾을 수 있다면 그리하여 이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이 실낱같은 목숨마저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길은 얼마나 외롭고 힘든길이며 쓸쓸하기 짝이 없는 자신과의 싸움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인연의 끈을 따라 이 길을 들어서 지금까지 왔지만 나는 이 세계의 끝이 어떤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어쩌랴. 이 육신이 살아 있는 동안은 내 몸에 깃든 영혼이 비로소 윤회의 바퀴를 굴리는 것을 멈출때까지 터벅터벅 걸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모든 영혼들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