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군 구물의 삼조선 선포
이어서 선군에 구물이 추대되었다. 선군 구물은 물리가 하려 했던, 북방인들을 한인으로 정하는 제사를 지냈다. 그리하여 구물은 '선제의 이름으로' 하늘에 제사 지내면서 북방인과 중원의 민족까지 조선인으로 정한다는 것을 선언했다. 이 선언이야말로 매우 중요하며 하늘의 뜻이 담긴 것이었다.
《이로써 모두가 한인이 되었다. 미래에 모든 조선인은 한인의 의식으로 승화될 것이며, 이 땅 위에 불국토가 이루어진다는 역사의 순간이었다. 한인이란 씨가 한인이라기보다 의식#1)이 '한'에 이른 자가 곧 한인이기 때문이다. 백인도 흑인도 황인도 의식이 한에 이른다면 그도 역시 한인이다.》
#1) 여기서 편의상 의식을 분류하여 보면 3차원: 육체 의식, 4차원: 영체 의식, 5차원: 상념체(창조 의식), 6차원: 신적 의식, 7차원: 한 의식, 8차원: 초성(超性) 의식, 9차원: ●(깨달음의 본자리)
북방인도 중원인도 한인의 피를 이어받았으니 모두가 한인이요, 아득한 미래를 향하여 한인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며 끌고 가는 것이다. 이제 중화인도 한인들도 모두가 완벽하게 꿈을 꿀 차례였다. 그런 점에서 한인들로서는 자신들을 완전히 망각하고 역사의 흐름을 덧없이 보내야 하는 서글픈 역사의 시작이기도 하였다.
구물은 이때에 한인들에게 선언하기를....
"그대들은 한인이라…… 미래를 향한 역사는 망각의 역사이나니 그리 알라. 그러나 후세에 지금의 이 자리에 모여 조선을 움직일 수 있는 맥을 그대들에게 주나니, 그것은 하늘의 뜻이니라. 허나 미래를 위하여 천상의 시간으로 사흘 동안 망각하라."
그리고 북방인을 향하여서는
"그대들은 이 드넓은 사백의 땅을 지켜라. 이는 매우 중요한 말이니라. 그것만으로도 그대들은 벅찰 것이다. 또한 하늘의 뜻으로, 선제의 이름으로 그대들은 이제 조선인이니라……."
또한 중화인을 향하여서는,
"이 땅 위에서 먼 미래에까지, 그러나 그것은 천상의 시간으로 사흘이니라. 그 동안 그대들이 역사의 맥을 잇도록 하라. 그것이 그대들의 할 일이니라……." 하였다.
그러고는 통틀어서 '삼조선'이라 불렀다.
이것은 선군만이 할 수 있는 하늘의 뜻이 통하는 천지공사였으니 누가 이 뜻을 알겠는가?#2) 꿈속에서 헤매이는 무리들이 과연 이 깊은 뜻을 어찌 헤아리겠는가? 이때부터 우리의 주위에서는 눈에 띄게 소도의 모습이 사라져갔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우리의 눈이 점점 멀어졌다는 것이 더 옳은 말일 것이다.
#2) 멀지 않은 미래에 이들 국가들이 연합형태의 국가로 변모하여 서로가 조화를 이루는 시대가 오리라.
이때부터 이해할 수 없는 선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정말 기막힌 일이었다. 삼조선이 되자 이제 조선끼리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날이 가고 세월이 갈수록 한인들은 위축되어 갔고, 북방조선과 중화조선은 조금씩 힘이 커졌다. 중화조선은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이어지면서 통일을 위한 싸움을 시작하고, 북방조선도 영토확장으로 인하여 수많은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
이미 구물 선군에 의해 수도를 서장(장당경)에서 낭랑(낙랑)땅으로 옮긴 후였다. 이것은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것이었다. 이제 평양#3)으로 옮긴 선군의 나라는 지도적인 나라가 아니라 상대적인 입장에서 북방인과 중화인을 대할 수밖에 없었다.
#3) 지금의 평안남도 평양이 아니고 중국 산시성 북부의 다퉁(大同)
조선에서는 구물 선군 이후에 통용되지 않았지만 북부여를 마한이라 하였고, 중화인들이 모여 사는 동쪽의 제나라를 가리켜 번한이라 하였다. 그러나 번한은 중화와 함께 중화되었으니 번한이 아니었다. 이제는 싸울 수밖에 없는 나라로 변신했다. 말하자면, 번한은 완벽하게 중화조선국이 되기 위하여 가고 있는 중이었다.
이 시기에 마한인들 중에서 많은 수가 북방의 세력들, 즉 스키타이를 비롯하여 흉노와 타타르인에게 건너갔다. 일부러 건너간 것이 아니라 마한과 북방의 싸움 속에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아― 아― 한인이여! 조선인이여! 이제 점점 꿈의 역사를 향해 가고 있구나! 꿈을 꾸며 울고 웃는 우리들의 삶과 역사, 하늘이 내려준 이 고귀한 시간의 역사 앞에서 한인들은 침묵을 지키며 받아들이나니. 한인들이여 꿈을 꾸어라! 그리고 춤을 추어라. 미래를 향하여 그대가 춤을 출 때에 그대의 피를 이어받은 저 수많은 인간들은 성숙해 갈 것이며 파도를 치던 그 마음이 고요히 잠들지 않겠는가? 그대들의 희생과 노력은 결코 헛됨이 없으리라. 그대들이 괴로울 때 저들의 마음은 눈에 띄게 변할 것이요. 그대들이 번뇌를 느낄 때에 저들의 심성은 변하리니. 그대들이여 고통스러운가? 내 이름 선제를 부르라. 이름을 부를 때에 그대들의 아픔을 씻어주리라!
평양에서 고열가 선군을 고비로 평양의 역사는 막을 내리고 선군 해모수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해모수의 시대가 시작되면서 소도라는 정신적 지주는 흔적만 남은 채 깨우친 이를 찾기란 깊은 산속에 가야만 그것도 힘들게 찾을 수가 있었다. 세속에서 중생과 더불어 살아가는 소도인들이 없었다. 아― 이것이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이었다. 선제여! 선제여! 어찌하여 이 땅 위에서 모습을 감추었나이까? 선제가 잠자는 세속인에게서 떠난 것은 우리 모두가 울어야 하는 역사이니, 모든 것이 꿈대로 움직이며 한인들의 슬픈 서곡이 이 땅 위에서 연주되어야만 하였다.
부루가 왕검의 뒤를 이었을 때에 밀라 여선군의 인도로 저 북만주 홍안령산맥 사이에 7만의 아름다운 여인들로 이루어진 여인왕국이 있었으니, 그들은 모두가 정신세계를 추구하던 아름다운 여인들이었다. 왕검시대가 시작되면서 여인의 시대도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장에서는 여인선군에 관하여서는 깊이있게 다룰 수 없다.
그대들의 가슴속에 여인에 대한 애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더욱 혼돈스러운 기록이 되겠기에 이렇게 적는 것이다.
왕검시대 이전부터도 한인사회에서는 음양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그런 사회였다. 따라서 하늘을 보며 천신을 섬겼고 땅을 가르켜 지신을 받들었다. 인간사회에서도 한웅이라는 남자선인이 나라를 평정케 하였고, 웅녀라 불리는 선녀가 한웅과 함께 나라를 다스렸으니 이 얼마나 슬기로운 나라였던가? 나라일을 다스릴 적에 한웅 어른은 나라 안보다는 밖을 치중하였고, 웅녀는 바깥보다는 안을 치중하여 나라를 다스렸다.
한웅시대를 거쳐 왕검시대가 시작되었어도 그 맥은 이어져갔다. 삼한이 이루어져 진한·마한·번한의 삼황이 시작되었어도 그 제도는 함께 이루어졌다. 왕검이 개국을 알릴 때에 왕검과 함께 나라를 열었던 여인선군이 있었으니 그가 설후였다. 왕검이 양의 시대를 열었다면 설후는 음의 시대를 열었으니, 조선의 역사는 음과 양의 시대였다. 이것이 이 시대에는 당연한 것이었고, 남과 여는 서로가 사랑과 신뢰 속에서 보내던 시대였다. 따라서 진한·마한·번한의 황제는 삼황이 아닌 육황이라야 맞는 것이었다.
선군만이 아니었다. 9한의 나라 모두가 남왕이 있으면 여왕이 있었고, 그래서 내외의 정치를 펴나갔다. 그렇다고 그들이 부부는 결코 아니었다. 왕검의 뒤를 이어 부루가 즉위하듯 설후의 뒤를 이어 밀라가 여선군이 되었다.
선군 부루시대에 밀라 여선군에 의해 개국되었던 여인왕국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왕검과 설후 시대가 개막되면서 소도의 세계에서는 깨우친 여인들이 점차 줄어만 갔다. 깨우침까지도 음양의 세계가 이루어져 남자가 깨우치면 어디에선가 여자가 깨우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인들 중에 깨우치는 수가 줄어들자 밀라 여선군은 수행의 길을 걷는 여인들을 한곳으로 이주케 하였으니, 그곳이 지금의 치치하얼(齋齋哈爾)이었다. 그리고 부르기를 미로국이라기도 하였고 설화국·설국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그러고는 밀라 여선군이 이들을 직접 제도하였다. 그래서 깨우친 여인들이 늘어갔다. 그리고 점차 세월이 흐르면서 미로국을 나라로 인정하게 되었다. 가장 작은 나라이면서 여인들끼리 모여 사는 곳, 하지만 가장 깨우친 여인이 많은 곳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깨우치면 이미 초월한 인간이요 음양을 따로 두지 않는 존재였으니, 이들이 나라일을 제도하는 바는 어느 곳보다도 아름다운 것이었다.
화랑의 역사는 바로 미로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9한의 나라로부터 수행자가 미로국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남자들이 그러했다. 수행자는 깨우친 여자에 의해 깨우침을 받았다. 그러는 동안에 남자수행자에 의해 미로국의 여인들은 아이를 갖게 되었다. 미로국의 여인들은 모두가 어머니와 같은 심성을 지닌 여인들이었다. 여인들의 마음에 모성의 심성이 없다면 그 얼마나 추한 모습일까? 그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아니, 미로국의 여인들뿐만 아니라 조선국 여인들 모두가 모성적이었다.
선군시대의 남과 여의 삶을 본다면 결코 남녀평등을 놓고 말할 수가 없다. 남자는 개척자였고 여자는 언제나 남자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라는 그 아름다운 모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 따스한 마음, 그리고 그 포용성, 여인들은 남자들의 마음을 모성으로 감싸면서 사회를 이끌어 나갔다. 부락의 여인들 모두가 그랬고 나라의 여인들 모두가 그랬다. 삼한의 9한 모든 여인들이 그렇게 어머니의 심성을 가졌으니 어느 누구도 외롭지 않았다. 나라의 평화스러움과 번영이 모두 여인의 모성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이들은 알고 있었다.
그 후 수많은 깨우친 자가 미로국에서 탄생되었고, 미로국의 역사는 1천 년이나 지속되었다. 그러나 선군 고흘에 이르러 그때의 여인선군 '나래다'에 의해 해체되어 일부는 부여인이 되었고, 일부는 북부여인, 그리고 북옥저인이 되었다. 그러고는 부족으로서 오랫동안 이어져갔다.
여인선군이 직접적으로 선군의 권한을 상실한 것은 선군 색불우에 의해서였다. 그는 여인을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여인이 정치일선에서 물러날 것을 주장하였다. 그로 인하여 교운 여선군을 마지막으로 지위가 욕살#4)로 내려가게 되었다.
#4) 장관에 해당되는 직위
그리고 권한도 축소되었다. 그로 인해 삼한에서 삼조선을 선언하였던 구물에 이르러 욕살의 지위에 있던 여인들 모두가 정치일선에서 완전히 밀려나니, 권력과 통치는 이제 남자들의 독무대가 되어버렸다.
여인들이 힘을 상실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소도의 세계도 점차 없어졌으니, 이는 참으로 묘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여인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그것은 곧 어리석음의 시작이었다.
원출처 : 행림출판 발간 여인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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