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조문덕원장님 13

이 길을 들어서면서 인류 모두는 ″빛″임을 알게 되다.-1-2. 연구회 “천부경”의 실체를 찾기까지의 여정

이 길을 들어서면서 인류 모두는 ″빛″임을 알게 되다. 1-2. 연구회 “천부경”의 실체를 찾기까지의 여정 사업에 실패하고 자금줄도 막혀버리자 원장님께서는 집과 사무실의 월세보증금까지 일부 반환받아서 생활비로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삶의 모든 것에 의욕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마침, 원장님은 3년 이상 서울에 거주한 자들 중에서 서울 외곽지역으로 옮겨 가면 서울시에서 이주금을 지원해준다는 공고문을 보게 되었습니다. 거의 자포자기의 심정이셨던 원장님께서는 ‘그 지원금이면 빚도 갚고, 부인과 아이들은 허름한 집이라도 얻어서 어떻게든 살아가겠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안양에 있는 어느 종교 단체를 방문하고 나오는 길에 약 10차선에 걸친 긴 횡단보도를 건..

이 길을 들어서면서 인류 모두는'빛'임을 알게되다.-1-1.연구회 '천부경'의 실체를 찾기까지의 여정

이 길을 들어서면서 인류 모두는 ″빛″임을 알게 되다. 1-1. 연구회 “천부경”의 실체를 찾기까지의 여정 서울 동대문시장 한 모퉁이에서 장사를 하며, 아내와 형제자매를 먹여 살리셨던 원장님의 부친께서는 1950년 6.25가 터지면서 그나마 겨우 꾸려가던 노점상마저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막막해진 상황 속에서 생계를 유지할 방법을 찾기 위해 부친께서는 서울에 남게 되셨지만, 만삭이시던 원장님의 모친께서는 무거운 몸으로, 그것도 살을 에이는 추위가 매섭게 몰아치던 한 겨울에 고향을 향해 떠나셨습니다. 이미 수개 월 전 한강 다리가 폭파되어 꽁꽁 얼어붙은 한강 얼음판을 걸어서 말입니다.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요? 다행히도 모친께서는 고향인 경기도 용인에서 12남매 중 막내인 원장님을 1951년 봄에 출산하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