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도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서 나는 부산에 있던 두 아이를 서울로 불러올렸다. 내가 그렇게 작심한 이상 세 모녀가 따로 떨어져 살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이사를 한 며칠 후, 서울에 살고 있는 사촌 여동생이 아들을 데리고 인사차 우리집엘 들렀다. 그런데 여동생은 다섯 살 된 조카를 내내 들쳐업고 있었다. 내가 미심쩍은 얼굴로 그 연유를 물었더니 동생은 말도 하지 못하고 눈물부터 쏟는 것이었다.
조카의 이름은 승배였는데 뇌성마비였다. 얼굴은 전형적인 뇌성마비의 아이의 그것인데다 허리 아래는 아예 신경이 죽어있는 상태였다. 바늘끝으로 엄지발가락을 찔러 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동생은 아이를 위하는 일이라면 뭐든하고 있는 중이지만 아무래도 소용이 없을거라며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승배는 양쪽 팔로 기어다니는 게 고작이었는데 마치 물고기가 헤엄쳐 다니는 듯했다. 안간힘을 쓰며 양쪽팔로 기어가면 마비된 하반신이 흐느적거리며 뒤를 따르는 것이었다.
‘네가 이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고 하지만 난 이 수련을 통해 아이를 걸을 수 있다는 걸 믿는다. 어차피 병원에서도 완치는 불가능하다고 했다니 승배에게 수련을 시켜보는게 어떻겠니? 설사 수련을 한 후에 별 차도가 없다손 치더라도 승배를 위해서 해볼 건 다 해본셈이 되지 않겠어?’
나는 사촌 여동생한테 내가 하고 있는 기수련에 관해서 간단하게 들려주고는 그렇게 권유를 했다. 그 얘기를 끄집어내는 것도 나는 조심스러웠다. 그때만해도 기(氣)를 이해하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었다. 지금이야 동네마다 기수련에 관한 간판이 쉽게 눈에 띄고 기수련을 생활화하고 있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지만 당시엔 기(氣)를 접할 수 있는 기회나 이야기를 듣는 것도 힘들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실제로 체험한 것을 들려주어도 사람들은 미친사람 취급을 하는게 다반사였다. 다행스럽게도 여동생은 내 말에 선선히 수긍을 했다. 여동생은 매일 상도동에서 버스를 타고선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를 찾아오는 정성을 보였다.
수련을 시작한지 두달이 지났을 때였다. 하루는 수련을 마치고 아이의 발을 주므르고 있는데 발끝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옆에 있던 이쑤시개로 아이의 발가락을 살짝 찔렀더니 움찔하며 발을 피하는게 아닌가. 그런 반응에 너무 놀란 동생은 내 손에 들려 있던 이쑤시개를 빼앗아서는 요동치는 아이를 다잡아 몇 번이고 그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동생의 눈에는 이내 눈물이 고였다. 아이의 엄지발가락에서 선홍색의 핏물이 조금씩 맺히면서 아이는 온 집이 떠나가라고 울음을 터뜨렸다.
승배는 하루가 다르게 마비되었던 신경이 살아나더니 그로부터 다섯달이 지나자 벽을 짚고 일어설 정도가 되었다. 정상아가 걸음마를 하기 위해 애를 쓰는 동작을 이제야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더니 아이는 한걸음씩 발을 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아이는 변해갔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기수련을 하면 어떤 병을 가진 사람도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그 전에도 선생님 밑에서 많은 사람을 회복시킨 적이 있었지만 나 혼자서 그렇게 하기는 승배가 처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면 불치병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신문에서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의 기사를 읽고서는 그 아이들을 돕기 위해 신촌의 세브란스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서도 포기했던 나의 조카가 걸었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을거란 생각만 했다.
내가 미친사람을 취급을 받는 것은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되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는 모든게 현실로 증명이 될 것이고 그러면 사소한 오해도 풀릴거라고 생각했다.정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을 도울수만 있다면 어떤 취급을 받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말이다. 더구나 이런 일로 돈을 벌겠다든지 하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으니.
그러나 세상일이란 내 마음같지가 않았다. 병원으로 달려간 나는 불치병 환자들의 모임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곳에서 백혈병을 앓고 있는 여섯 살 난 꼬마의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모임의 회장이라고 하는 그 사람은 내 이야기를 듣고니 금방 눈꼬리를 치켜세우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차갑게 입을 열었다.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속는지 알기나 해요? 그런 도움은 필요없습니다. 지금 이 아이를 데려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나는 하나님의 뜻에 따를 뿐입니다.’
더 이상 할말을 잃어버린 나는 조용히 병원을 나왔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 섭섭한 것은 없었다. 다만 내가 그 사람의 마음을 열지 못한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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