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 베인/히말라야를 넘어서

12장

기른장 2022. 3. 22. 21:43

링쉬라 은자님의 암자에 온지도 한 달이 지났다. 그리고 내가 바라던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나의 기쁨은 더욱 커져만 갔다. 우리 세 사람 사이에는 친화감이 더욱 깊어졌다.

 

칼림퐁에서 만난 나의 스승은 이제 뗄래야 뗄 수 없는 나의 동반자가 되었다. 나는 내게 주어진 나머지 시간 동안 그와 함께 하기를 결심했다. 그의 암자는 라사 너머 잠사르에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또한 은자님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나의 스승은 당시 내가 이해하지 못하던 부분들에 대해 내게 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스승의 암자는 이곳에서 2백 마일 떨어져 있었다. 나의 스승과 함께 한 그곳으로의 여행,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 나눈 경험과 환희 등에 대해서는 다음에 쓰게 될 책에서 말하게 될 것이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나는 은자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 은자님도 나의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나의 사랑은 백배로 보답을 받았다. 나는 그의 아들이었다. 그의 진정한 영적 아들. 우리는 서로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내게 있어서 그는 진정한 영적 아버지였다. 내가 그 말을 하자 그의 눈이 기쁨으로 반짝였다. 그가 나의 어깨를 팔로 감싸자 그로부터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사랑이 흘러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위대한 현자 중의 현자였다. 나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들을 받아 마셨다. 나의 스승 또한 은자님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따스한 사랑을 느끼고 있었다. 나의 스승 역시 그 자신이 아데프트임에도 불구하고 대성자의 지혜를 우러러 보며 여느 사람과는 다른 깊은 집중력으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 진정한 영적 교제의 기쁨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참다운 의미를 드러낼 수 있는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며칠 후면 나는 스승과 함께 세계의 지붕을 넘는 긴 여행을 떠나게 된다. 나의 스승은 나를 만나기 위해 근 3백 마일이나 여행해 칼림퐁까지 왔다. 그의 깨달음의 경지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그는 거짓된 모든 것들을 깊이 꿰뚫어 보았다. 처음에 나를 가장 많이 도왔던 것은 그의 그런 통찰력이었다.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짊어져온 짐을 벗어 던지게 된 것은, 그 이후 내가 꾸준히 올라온 사다리의 첫 가로장에 발을 디딘 순간이었다.

 

마지막 며칠 동안 우리는 호수에서 낚시를 했다. 그것은 오로지 식량을 얻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은자님은 우리가 그날그날 필요한 만큼만 잡도록 했다.

내가 나의 스승에게 물었다. "은자님의 연세가 어떻게 되죠?"

 

"은자님의 나이는 아무도 몰라." 그가 대답했다. "은자님은 그 점에 대해 아무에게도 말하려 하지 않아. 하지만 간덴 사원에서 그가 가르친 이후 아주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지."

 

은자님은 희귀식물과 초근에 대한 권위자이기도 했다. 그는 전 아시아에서 자라는 지극히 희귀한 식물과 초근에 대해 놀라운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그것들의 이름과 용법에 대해 설명해 주시곤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 희귀식물들은 가장 높은 고산지대에서만 자란다고 한다. 고산 지대를 헤매는 험한 과정도 그렇지만 그것들을 발견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에 아주 능숙한 전문가가 아니면 채취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한다.

 

나는 은자님께 그 희귀식물들을 찾아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항상 얻기 힘든 것들을 찾고자하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나의 스승이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표정은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알고는 있어?'

 

아무튼 우리는 4개의 희귀식물을 찾아 나서기로 결정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배낭에 약간의 식량을 넣고 길을 나섰다. 고산의 차디찬 바람으로부터 얼굴과 손을 보호하기 위해 모자와 장갑을 착용했다. 또 우리는 등산용 지팡이, 픽켈, 로프, 작은 삽도 챙겼다.

 

은자님은 우리가 찾는 식물을 발견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은 준령의 윗부분일 거라고 예상했다. 우리는 은자님이 말한 방향으로 꾸준히 나아갔다. 나는 은자님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능숙한 등산가인 우리 두 사람 보다 앞장서서 걸었다. 나는 티베트에 오기 훨씬 전에도 뉴질랜드의 산과 유럽의 알프스 등 많은 등산 경험이 있었다.

 

산림대를 넘어 만년설이 쌓인 높은 고도에 이르자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은자님이 말했다. "아르호타를 찾기 좋은 시간이군. 아르호타의 뿌리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어. 머리, 몸통, 팔, 다리, 손, 발을 가지고 있지. 아르호타의 꽃은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여. 눈 속에서 빛나기 때문에 밤에 찾기가 더 쉽지. 그것은 눈 속 몇 피트 아래에서 자라.

 

하지만 그것은 자기 주위의 눈들을 녹이는 힘을 가지고 있지. 그런 식으로 눈 속에서 길을 내서 표면을 뚫고 나오지. 그 꽃잎은 눈처럼 흰색이야. 만일 꽃이 반짝이는 빛을 내지 않는다면 아르호타를 찾기는 불가능할 거야. 그 꽃은 일종의 인광을 발산하지.

 

"라마들은 아르호타를 모든 질병에 일반적인 강장제로 이용하지. 뿌리는 부위별로 빻아서 신체의 각 부분에 상응하는 부위에 사용돼."

 

우리는 눈을 부릅뜨고 달빛이 반사되는 눈 위를 샅샅이 살폈다. 아르호타를 처음 발견한 것은 은자님이었다. 우리는 눈 속을 파서 마침내 뿌리에까지 닿았다. 은자님이 설명해준 대로 그것은 인간의 형상으로 되어 있었다.

 

날씨는 지독히 추웠다. 바람도 몹시 사나워지고 있었다. 은자님이 말했다. "잠시 동안 투모를 해서 몸에 열을 내야될 거 같군."

 

한쪽으로 비켜서서 내가 나의 스승에게 물어보았다. "은자님이 투모도 하실 줄 아나요?"

 

"그럼." 그가 대답했다. "은자님은 모든 오컬트 과학의 달인이야."

 

투모를 시작한지 몇 분이 지나자 우리의 몸이 불처럼 뜨거워졌다.

 

"아침에는 '천사의 꽃'이라 불리는 느고데봐를 찾아보록 하자." 은자님이 말했다. "그 식물에 딱 어울리는 이름이야. 우리가 그걸 발견할 수 있다면 그 모습을 봐. 그 아름다움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 그 꽃 역시 눈 속 깊은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찾기가 정말 어렵지.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는 눈 위에 생긴 구멍이야. 구멍의 너비는 약 6인치정도 되지. 그것은 지표면 아래의 바위에서 주로 자라지.

 

그것은 눈 속에 감추어져 있지만 자체로 열을 발산해서 주위의 눈을 녹이고 구멍이 생기게 하지. 우리는 해가 떠오르기 전에 그것을 찾아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태양열이 그것 주변의 눈을 녹여버리기 때문에 구멍이 사라져버려."

 

이번에도 느고데봐를 발견한 것은 은자님이었다. 그것을 파서 보니 이제까지 내가 보아온 그 어떤 것보다도 아름다웠다. 그것의 표면은 벨벳 같았다. 그것이 내뿜는 빛은 제대로 설명하기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짙은 자색 중심부로부터 솟아난 꽃잎은 핑크빛 줄무늬가 있는 노란색이었다. 꽃잎들은 모두 같은 크기였고 끝부분은 마치 핑크색과 자주색 점들을 찍어놓은 듯 보였다.

 

은자님은 느고데봐를 보고 아시아에서 가장 희귀한 식물이라고 평했다. 실제로 그것은 지극히 아름다운 꽃이었다. 은자님의 말에 의하면 이 식물의 뿌리는 신장이나 방광의 질병, 수종증 등에 특효약이라고 한다. 라마들이 이 꽃을 발견하면 그것을 매우 아껴서 사용하였다. 그것은 지극히 소량만으로도 효과를 발휘했다.

 

나는 점점 더 흥분돼가고 있었다. 우리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온 종일 밖을 헤맸다. 우리는 이미 두 번의 식사를 했지만 아직도 한 번 더 먹을 만큼의 식량은 충분히 남아 있었다.

 

"저기 바위들 있는 곳으로 올라가보자. 어쩌면 저기에 촘덴다가 있을지 모르겠는데. 촘덴다는 정복자라는 뜻이야. 이 식물은 높은 암반지대의 바위틈에서 자라지. 그것의 뿌리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 그걸 캐려면 그야말로 바위를 쪼개내야 할 정도지. 촘덴다의 색깔은 흑회색이고 줄기와 꼭대기는 풀색이야.

 

"이 식물을 섭취하면 몇 날 몇 달도 끄덕없게 되지. 라마들은 산을 넘거나 장기 여행을 할 때 그것을 복용해. 그것은 체력을 유지시켜 주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어. 라마들은 촘덴다 속에 산山 바위의 힘이 담겨 있다고 믿어. 어떤 이들은 촘덴다를 불로장생약이라고 부르지. 그것을 옥수수술에 섞어 주조酒造하여 마시면 세포 조직을 새롭게 활성화시키는 효능을 가지고 있어.

 

그것은 수행인들이 오랜 고행을 할 때 탈진하는 것을 막아주지. 이 식물로 조제한 약을 다량 섭취하면 깊은 트랜스 상태나 혼수상태를 초래하게 돼. 심장의 박동이 정지하고 생명 활동이 정지하지. 그 상태에서는 몸을 몇 주 동안이고 냉동 창고에 집어넣거나 눈 속 깊은 곳에 매장할 수 있어.

 

티베트 요기들은 때때로 그 약을 사용해서 자신의 몸을 동굴 속에 둔 채 여러 주 동안 아스트랄계를 여행하곤 하지. 다시 돌아와도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

 

이번에도 촘덴다를 발견한 것도 역시 은자님이었다. 그는 그것을 캐내기 위해 픽켈로 바위를 쪼아내야만 했다.

 

내가 은자님에게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이것 저 주시면 안돼요?" 그러자 두 분이 껄껄거리며 웃으셨다. 왜 웃는지는 알 수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 동안 같이 웃었다. 나의 스승이 혼자 저만치 먼저 가기에 내가 따라가 물어보았다. "왜 웃으신 거죠?" 그가 대답했다. "나중에 알게 될 거야."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나는 그 이유를 모른다.

 

"우리가 찾는 마지막 희귀 식물은 야르차굼바야." 은자님이 말했다. "그것은 '여름풀, 겨울벌레'라는 뜻이야. 야르차굼바의 가장 놀라운 특성은 겨울에는 벌레가 되고 여름에는 풀이 된다는 거야. 겨울에 그 벌레가 뿌리가 되면 그 머리에서 꽃이 자라나. 이 식물은 정말 희귀해서 거의 발견할 수 없어. 하지만 이번에 우리는 찾아낼 수 있을 거 같아. 밑으로 내려가 낮은 지대에서 그것을 찾아보도록 하자."

 

당연히 이번에도 그것을 발견한 것은 은자님이었다. "지금은 여름과 겨울의 중간이기 때문에 벌레 절반이 이미 딱딱하게 굳어서 뿌리가 되었어. 봐, 머리에서 꽃이 피기 시작하고 있잖아." 그 변화 과정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야르차굼바는 두뇌를 맑게 해주는 효능을 가지고 있다. 라마들은 이 식물을 두뇌 센터들을 자극하는 데 사용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며칠 동안 수면 욕구를 느끼지 않고 깨어 있을 수 있다. 눈 내리는 한 겨울에 장기간 여행하다가 졸음이 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렇게 되면 금방 눈 속에 묻혀 버린다. 야르차굼바는 강한 신경자극제이다. 라마들은 그것을 사용해 며칠 동안 잠을 자거나 쉬지도 않고 여행할 수 있다.

 

야르차굼바는 나를 매혹시켰다. 그것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확실히 서양에서는 야르차굼바를 아는 사람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어쩌면 그것에 대해 들어본 사람은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직접 본 사람이 있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다.

 

우리는 그날 밤 암자로 돌아왔다. 딱 이틀 낮 하루 밤의 여정이었다. 은자님은 대단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아르호타와 느고데봐를 발견하려면 며칠 때로는 몇 주가 걸리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먹고 땅 파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내내 산길을 헤맸다. 나는 피곤함이 느껴졌다. 나는 따뜻한 풀에 몸을 던져 수영을 했다. 그렇게 하고 나니 무척 상쾌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나서 그날 밤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평소처럼 나의 스승이 나를 흔들어 깨울 때까지 아침이 된 줄도 몰랐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 나는 슬퍼졌다. 이별이 가까워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더 오래 머물고 싶었다. 그러나 은자님이 말했다. "아들아, 머지않아 너는 네가 태어난 목적인 특별한 사역을 하기 위해 너의 세상으로 돌아가야만 해. 너는 남은 시간 동안 너의 스승과 함께 머물게 될 거야. 그 기회를 잘 활용하도록 해. 내가 전반적인 것을 보여주었다면 그는 너에게 세부사항들을 가르쳐 줄 거야. 지금 하게 될 이야기는 너에게 주는 마지막 가르침이 될 거야."

 

우리는 모두 자리에 앉은 뒤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흘러나올 지 귀를 기울였다. 그가 말했다. "신성한 이성과 자아에 대한 인식은 너를 거짓으로부터 해방시킬 거야. 하지만 신성한 이성의 활동조차 그쳐야만 너는 실재를 체험할 수 있어. 왜냐하면 실재는 이성과 마음을 초월해 있기 때문이지. 거짓에 대한 식별은 너를 그 거짓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어.

 

"하지만 너에게 이미 얘기했듯이 기지의 것은 창조적이지 않아. 오로지 미지자만이 창조적이야. 기지의 것은 결코 미지자가 될 수 없어. 아들아, 너도 알다시피 모든 나라, 모든 그룹에는 실재에 대한 개념이 있어. 사람들은 그것을 신이라 부르지. 하지만 그것은 단지 실재-신에 대한 지적인 접근에 불과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실재가 무엇인지 발견하기 위해 실재에 대해 토론해. 그렇기 때문에 그토록 많은 여러 철학, 그룹, 종교들이 있는 거지. 실재는 미지자이고 유일하게 창조적이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니?"

 

"예, 이해됩니다." 내가 대답했다.

"마음은 실재를 이해할 수 없어. 실재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진정한 자비와 사랑이야. 이 점을 이해함으로써 너는 실재를 일상적인 삶 속으로 끌어 올 수 있어. 그때 너는, 너 자신이 실재 그 자체에 표현을 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거야. 이런 식으로 너는 실재를 너의 매일의 삶 속으로 끌어올 수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을 통해 실재에 다가가지 않아. 적의와 두려움을 통해 다가가지. 어떤 집단의 구성원들은 실재를 찾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들에게 적대감을 가지곤 하지. 이것은 어리석은 넌센스야."

 

나는 이제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기지의 것이 실재는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그것을 표현하는 길을 찾고 있었다. 이제 나는 열쇠가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과거에 너는 너의 힘으로 어떻게든 실재의 단편이라도 찾으려고 발버둥 쳤어. 아들아, 그렇지 않니? 하지만 그것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지. 너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실재를 찾기를 욕망했어. 너에게 있어서 실재는 단지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어. 그것은 실재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야. 그것은 너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의 암시에 대치되는 또 다른 암시에 불과해.

 

"실재를 표현하는 유일한 길은 사랑과 자비야. 그렇게 되면 거기에는 좌절도 대립도 없어. 이때의 사랑은 네가 목적한 바를 얻기 위해 행하는 단순한 관념적인 사랑놀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야.

 

"사람들은 사랑의 신을 추구하면서도 자신의 적들을 증오하지. 그들은 평화를 위해 기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 준비를 하고 있어. 그들은 이웃을 희생시켜서라도 자신의 성공을 원하지. 하지만 사실 그들은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거야.

 

"그들의 시야를 외부로 향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내적인 가난이야. 그래서 그들은 항상 지금 존재하는 영원한 창조성을 놓치게 되는 거지. 과거에 너는 실재를 하나의 관념으로 논하고 있었어. 그렇기 때문에 그 관념이 너에게는 진리가 된 거야. 그것이 전혀 진리가 아닌데도 말이야."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나의 스승이 나를 만나서 내게 처음 이런 말로 그 잘못을 순식간에 없애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그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알고 있던 것은 실재가 아니었다. 나는 그 순간 그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이런 말씀을 드리자 은자님이 말했다. "그래, 맞아, 아들아." 그러고 나서 그가 계속 말했다.

 

"진리나 철학에 대한 거의 모든 책들이 실재를 하나의 관념으로 논의하고 있지. 실재는 생명이야. 마음은 그것이 무엇인지 캐치할 수 없어. 따라서 생명에 대한 관념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은 소용 없는 짓이야. 관념은 하나의 모방, 정신적 개념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것은 죽어서 사라지게 돼. 그렇게 되면 항상 지금 존재하는 생명은 네 안에서 실재가 되지. 너는 실재를 만들 수 없어. 네가 만든 것은 실재가 아니야. 실재는 하나의 관념이나 심적 구성물이 아니라 사랑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실제적 생명이야. 네가 그것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는 한 너는 결코 그것을 알지도 체험하지도 못할 거야.

 

"아들아, 너는 실재가 살기 때문에 너도 산다는 것을 반드시 깨달아야만 해. 실재는 생명이야. 미지자는 생명이야. 생명은 창조적이야. 너는 생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다만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만 알 뿐이지."

 

"예." 내가 말했다. "나는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생명입니다."

 

"그래. 실재에 대한 관념을 만들려고 애쓰지 마. 만일 너의 기도가 네 자신의 조건화에 불과한 관념이나 신조로부터 일어난 것이라면 그것은 아무런 결과도 가져오지 못해. 이 조건화는 반드시 그쳐져야만 해. 그래야만 미지자가 현현할 수 있어.

 

"너는 철학 속에서 너 자신을 잃어버려서는 안 돼. 만일 내가 너에게 실재의 경이로움에 대해 철학적으로 얘기한다면 너는 실재에 대한 관념만을 쌓게 될 거야. 하지만 관념을 통해서는 결코 실재는 현현되지 않아. 그것은 오로지 사랑과 자비를 통해서만 현현할 뿐이야.

 

"너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하지만 너는 사랑을 체험할 수 있어. 소유는 사랑이 아니야. 사랑은 영원하며 항존해. 하지만 소유적인 사랑은 끝이 있지.

 

"신은 미지자야.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신을 알 수 없어. 네가 신을 알았다고 생각한 순간 너는 신을 안 게 아니라 신에 대한 관념을 안 거야. 그것은 투사된 이미지로, 우리가 미지자를 발견하는 걸 방해하지.

 

"예, 이해가 됩니다." 내가 말했다. "처음에 저는 거짓을 던져버리는 게 두려웠어요. 나의 마음은 항상 집착할 어떤 것을 원했죠.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얼마나 거짓된 것인지, 그리고 나의 무지가 어떻게 나를 눈멀게 했는지 알았을 때 그 거짓은 떨어져 나갔어요. 내가 느낀 해방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죠. 나는 더 이상 신조나 관념 속에 갇히지 않게 됐어요. 그리고 그것들이 내 자신의 창조물들이라는 걸 알게 되자 나의 두려움들은 녹아 사라졌어요."

 

"그래." 그가 말했다. "모두 맞는 말이야. 하지만 실재는 결코 거짓의 제거에 대한 결과가 아니야. 너는 그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야만 해. 거짓은 어떤 근거도 가지고 있지 않아. 그것은 하나의 허구야. 그것은 스스로 만든 환영이야.

 

"신조는 마음의 과정이고 기지의 것으로부터 태어난 거야. 만일 네가 '신은 미지자이다.'라고 말만 한다면 너는 미지자에 대한 관념을 만들고 있는 거야. 미지자에 대한 너의 심적 창조는 미지자, 실재가 아니야.

 

"부를 축적하고 사원을 짓고 종교를 조직하는 사람들, 주교, 추기경, 목사들뿐만 아니라 폭탄을 떨어뜨리는 사람들도 신이 자기편이라고 말하지. 확실히 그들의 믿음은 단지 일종의 자기 확장에 불과할 뿐이야. 그것은 단지 그들 자신의 상상에 불과해. 자신의 마음을 그들이 종교라 부르는 특정한 패턴에 맞추어 조건화시킨 사람들은 궁극적 실재를 결코 깨달을 수 없어."

 

"예." 내가 말했다. "그 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적대감의 원인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상이한 패턴, 종교,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자기들의 관념에 따르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만일 그것이 무위로 돌아가면 다른 사람을 자신들과는 다른 별종으로 취급합니다.

 

사람들은 분리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모든 전쟁, 파괴, 불행의 원인입니다. 사람들은 분리되어 그룹과 국가로 무리 짓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 마음의 조작에 불과합니다. 오로지 하나의 신, 하나의 창조주만이 존재합니다. 만물은 그의 피조물입니다. 창조주와 그의 피조물은 하나입니다."

 

"그래." 그가 말했다. "미지자가 현현하려면 뭘 믿는다, 안 믿는다 할 것 없이 마음이 완전히 텅 비어야만 해. 너는 네 마음의 전체 내용물, 관념과 망상의 전 과정을 이해해야만 해. 그렇게 함으로써 너는 어떤 감각의 축적도 없이 순간순간 깨어있게 돼. 마음은 절대적으로 고요해야만 해. 거기에 수용, 저항, 비난 등이 있어서는 안 돼. 자아가 죽었을 때만이 실재가 현현하게 되지.

 

"너에게 말은 더 이상 중요치 않아. 왜냐하면 관념도 말도 자아의 표현도 아닌 창조성의 상태가 존재하기 때문이지. 그 상태에 있을 때 너는 존재 그 자체가 무엇인지, 표현 불가능한 존재가 무엇인지 알게 될 거야.

 

"표현 불가능한 존재를 표현하는 것은 단지 기억의 사육에 불과해. 표현 불가능한 존재, 미지자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그것을 시간 속에 가두는 것이야. 하지만 시간에 속한 것은 결코 무시간적 존재가 될 수 없지.

 

"이 앎은 기지의 것에 대한 결과가 아니야. 이 앎은, 기지의 것은 결코 미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야. 실재는 이성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어. 왜냐하면 그것은 이성을 넘어서 있기 때문이지. 하지만 그것은 이성에 반하는 것은 아니야.

 

실재는 공간이나 시간적 요소를 통해서는 얻을 수 없어. 왜냐하면 그것은 영원 속에서 항존하기 때문이지. 따라서 매 순간 모든 생명은 네가 실현시키기를 선택한 지점에 강력한 힘으로 집중되지."

 

"예." 내가 말했다. "신성한 이성은 신성한 깨달음을 도와준다는 걸 알겠습니다. 나는 궁극적 존재를 이성적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성의 작용을 멈추기 전에는 결코 마음을 넘어서서 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결코 알 수 없다는 걸 인식할 때 그 순간 실재가 현전하게 됩니다."

 

"그래, 아들아. 이제 이해하는구나. 이 이해와 더불어 너는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어. 끝은 없어. 끝이 있는 것은 실재가 아니야. 현현계를 낳은 것은 미현자야. 불가시不可視의 존재가 가시적인 존재를 낳지. 불가지자不可知者는 내적인 창조성이야. 그것은 항상 창조의 배후에 남아 있지. 우리는 피조물을 인식할 수 있지만 창조성은 영원히 미지인 채로 남아 있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실재를 모색하는 자들은 다른 자들에게 적대적이 되지. 따라서 거기에는 사랑도 없고 실재의 표현도 없어. 오로지 자아만이 있지. 길을 막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자아야."

 

"그렇습니다." 내가 말했다. "예수는 '내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지요. 그런 상태에서야 사랑과 전체가 현현하게 됩니다. 누가복음 12장 20절에는 이렇게 씌어 있지요.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사람들이 날마다 기도를 하면서도 세상에서 거짓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만일 교조주의자와 분리주의자들이 영적 스승들의 가르침을 자기들 구미에 맞게 마구 잘라내지만 않았어도 인류는 세상 속에 그토록 많은 투쟁을 낳고 있는 모방, 신조, 관념 등으로부터 오래 전에 해방되었을 겁니다. 올바른 기도는 타인에 대한 사랑과 자비이고, 거짓된 기도는 우리의 말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

 

"그래, 아들아." 그가 말했다. "필요한 것은 지적인 반응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의 표현이야. 그렇게 되면 변화는 즉각적으로 일어날 수 있어. 사랑과 자비가 행위라면 지성은 단지 반응에 불과해. 시간이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야. 오로지 자아에 대한 이해만이 변화를 가져다주지. 그렇게 되면 즉각적인 반응이 생기고, 옳고 그름에 대한 기억은 망각 속으로 사라져버려."

 

내가 은자님을 바라보자 그가 마치 태양처럼 밝은 빛에 감싸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노라."

 

그러나 이제 나는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문제를 종식시켜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기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는 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오히려 세상 속에서 다른 사람들을 형제자매로 보고 그들과 함께 살며 일하고 자기가 소유한 것을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가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자유를 향해 분투하고 있지만 그것에 이르는 길을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이 만든, 전쟁과 사회문제로 들끓는 문명에 갇히게 되었는지 알았다. 세계는 사람들이고 사람들은 세계이다. 그것은 두려움, 불안, 불신으로 황폐화된 세계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거짓을 보지 못하고, 따라서 사랑, 자비, 용서, 선의 등 진정한 생명의 원리를 이해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중요한 것은 경시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에는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심지어 지금도 우리는 원인을 제거하려 하지 않고 결과만을 고치려 애쓰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자문해야만 한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우리가 개인적이나 집단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진정한 생명의 그리스도 원리를 수용한다면 우리는 성자의 얼굴을 보며 '형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들아, 나도 너와 함께 세상 속으로 가고 싶어. 하지만 사람들은 아직 나를 이해하지 못해. 우리는 세상의 끝 날까지 너와 항상 함께 있을 거야. 왜냐하면 우리 사이에는 분리란 없기 때문이야. 영계와 물질계는 하나야. 이것을 이해하면 세계는 어둠으로부터 나와 길 위에서 인류를 영원히 비추고 있는 빛 속으로 들어가게 될 거야."

 

그가 말할 때 이런 말이 나의 마음을 스쳐갔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의 말에 귀 기울이는 자는 결코 어둠을 모르리라.'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우리는 사람들이 거의 알지 못하는 방식으로 고요히 기도하고 있었다.

 

이윽고 은자님이 말했다. "아들아, 내일 너는 내 곁을 떠나게 될 거야. 너를 보내는 것이 한편으로는 서운하고 한편으로는 기뻐. 무엇보다 네가 여기 온 게 기뻐. 내가 너를 나의 아들로서 사랑하고 있다는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없겠지."

 

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가 말했다. "저는 당신을 아버지로서 사랑하고 있습니다. 세상적인 사랑을 넘어서 말입니다."

 

나는 눈물이 흐르는 것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지극히 높은 동기와 진정한 영적 이해로부터 나오는 참된 우정을 알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은자님과 함께 있다는 것은 크건 작건 모든 존재들을 사랑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사랑 그 자체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났다. 그날 어둡기 전에 준령을 넘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은자님이 길 중간까지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나는 몇 번이고 고개를 뒤로 돌려 그곳의 아름다운 풍경, 호수, 섬, 암자 등 내게 의미 있는 모든 것들을 보았다. 나의 이 육신의 눈으로 이 풍광을 보는 것은 마지막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우리는 일렬로 고개를 올라갔다. 은자님이 앞장을 섰고, 그 뒤를 나의 스승이, 그리고 맨 뒤에 내가 따랐다.

 

산림대 바로 위에서 우리는 은자님과 작별했다. 은자님은 거기에 서서 우리가 고개를 오르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긴 흰 수염과 흰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우리는 오르고 또 올랐다. 하지만 여전히 은자님은 그 곳에 서 있었다.

 

내가 나의 스승에게 말했다. "물질계에서는 이별이 있지만 영계에서는 그런 게 없다는 사실을 신께 감사드리게 되네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그 말이야." 그가 대답했다.

 

준령 위의 거센 바람을 피하기 위해 암반을 돌아서면 더 이상 은자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다. 나는 마지막으로 잠시 멈춰 서서 은자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제 다시는 내 육신의 눈으로 당신을 볼 수 없겠죠. 지금 그것이 슬퍼요." 그러고 나서 나의 스승을 향해 몸을 돌려 말했다. "영靈속에서 분리는 없습니다. 언젠가 나는 당신 곁도 떠나야만 하겠죠. 그걸 생각하면 더 슬퍼져요. 하지만 내가 여기 와서 서로 육신으로 만나게 된 것이 기뻐요. 그리고 영속에서 우리는 분리돼 있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너무 기뻐요."

 

이제 은자님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 순간 은자님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길이 너무 좁아 두 사람이 나란히 갈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앞뒤에 자리해 고개를 올라갔다. 우리는 상념에 젖었다. 그것은 거의 비슷한 상념이었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 우리는 준령의 맞은편에 도착했다. 거기서 우리는 동굴 하나를 발견해 그날 밤 머물 수 있었다.

 

우리는 가져온 식량을 꺼내 맛있게 먹었다. 밖에서는 거센 바람 소리가 울부짖고 있었다. 우리는 안전한 동굴 속에서 옷으로 몸을 돌돌 만 뒤 곧 잠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창포 강에 도착했다. 거기에는 고리배와 함께, 한 남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스승이 그에게 티베트어로 말했다. "당신은 우리가 여기 올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죠?"

 

그가 대답했다. "지난 밤 은자님이 내게 오셔서 오늘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하더군요." 나의 스승이 그 말을 내게 전해주자 내가 말했다. "계속 경이의 연속이군요."

 

우리는 강을 건너 그날 밤 파동에 머물렀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잠사르까지의 150마일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을 시작했다. 그것은 긴 여행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순간을 즐겼다.

 

나의 스승은 진정한 영적 교사였다. 그의 지혜는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놀라웠다. 그는 진정한 아데프트였다. 그 여행길에서 일어난 일들, 잠사르에서의 결코 잊을 수 없는 시간들, 거기서 내가 배운 것들은 머지않아 쓰게 될 다른 책에서 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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