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샤우버거(Viktor Schauberger)/Living Water

제 1 장 빅터 샤우버거는 누구인가

기른장 2025. 1. 27. 15:49

<물과 숲의 아들>

빅터는 고대 바바리아 귀족 계층 일족의 혈통 속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상들은 1230년경 당시의 권세 있는 성직자중 하나였던 파사우(Passau) 주교와의 분쟁에 휩쓸려 그들의 특권과 샤우버그(Schauberg)라 불리웠던 영토를 빼앗겼다. 1650년경 가문중의 한 사람이 오스트리아로 건너와서 드레이세셀버그(Dreisesselberg)입구에 위치한 플록켄스타인 호수 근처에 정착했다. 그는 여기서 가문을 다시 일으켰는데, 따라서 가족들은 대부분 삼림의 경작과 야생생활에 매우 익숙해 있었다. 당시 그들의 가훈은 ‘대자연에 대한 경의’ 라고 표현할 수 있는데, 이들 가문이 사용한 문장에는 들장미로 화관이 둘려 처진 나무줄기가 새겨져 있었다. 이 가문의 후손으로서 플록켄스타인 호수 근처의 대삼림관리인을 맡고 있던 사람에게 아흡명의 자식이 있었는데, 1885년 6월 30일 다섯 번째로 태어난 아이가 바로 빅터 샤우버거였다. 빅터는 그의 아버지가 걸었던 길을 아무런 의심없이 따르고자 했는데 언젠가 그는 그의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나의 가장 큰 꿈은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들처럼 위대한 삼림관리인이 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빅터는 자연과 관련된 모든 것들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혼자 하루종일 호수근처의 원시림 속을 거닐면서 동식물의 생태를 관찰하거나 산에 인접한 자연 그대로의 강가를 따라 걷곤 하였다. 이내 빅터는 물과 숲들에 대해서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오히려 아버지나 나이 많은 친척들로부터 배우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빅터는 이러한 경험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직접 눈으로 본 것과 직관적으로 느낀 것에 의존하였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물에 내재되어 있는 자연적인 치유력을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좁은 수로를 통해서 깊은 밤에 자신의 경작지에 물을 대주면 그렇지 않은 이웃들의 경작지보다 더 많은 작물수확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그들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실제적으로 물이 숲과 야생지역을 어떻게 유지시키고 치유시켜 나가는가 하는 보다 근원적인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다.”

빅터의 어머니도 매우 자연에 친숙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빅터는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종종 들려주었던 이야기를 회상하곤 했다.

“때로 삶이 정말로 힘들다고 생각해서 네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를 때에는, 강가로 가서 흐르는 물의 음악소리를 들어보렴. 그러면 모든 것은 다시 활기를 되찾아 올바르게 될 거야.”

빅터의 아버지는 그의 아들이 수목재배기술를 가르키는 정규대학 과정을 이수하기를 원했으나, 그와 같은 진로에 대해서 빅터 자신은 별 관심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전문 삼림학교에 입학했고 졸업하자마자 국유림 산림 감시인 선발시험에 응시하여 산림감시인으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첫발견>

산림감시인으로 지내던 그 당시의 생활에 대해서 빅터는 자신의 꿈이 실현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매우 행복했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그는 그 보다 오래되고 나이 많은 산림감시인들로부터 기술을 전수 받기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이 지난 즈음에 그에게는 자신의 관할구역이 주어졌는데 그곳은 비록 멀기는 했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오히려 여러가지 이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아돌프 사움버르그 왕자에게 고용되어 왕자 소유의 원시림 21,000 헥타아르를 관리하는 책임을 맡게 되었다. 여기에서 빅터의 진정한 배움의 시기는 시작되었다. 이 광활한 야생의 지역에서 인간에게 방해받지 않는 상태의 대자연이 어떻게 존재하고 변화하는지에 대해 깊이 고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 지역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야생나무들과 동물들이 살고 있었으며 강에는 연어와 송어 등의 많은 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이 대자연속에서 빅터는 교과서에서 배웠던 지식들은 종종 틀려있으며, 오히려 그가 어릴 적에 가문의 어른들에게 배웠던 것들이 실제 모습에 더 잘 들어맞는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대자연속에서도 빅터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것은 바로 “물”이었는데, 그는 물의 온도와 운동사이의 미묘한 관계와 그 관계를 지배하는 법칙을 알고자 노력했다. 물은 비정상점(anomaly point)라 불리우는 영상 4℃ 에서 가장 밀도가 크고 활성이 좋은 상태에 놓이는데 산골짜기에서 발원된 물이 어떻게 이러한 온도를 유지해 나가는지를 주목하였다. 산란하기 위해 강을 거슬러 올라온 물고기들이 이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지역을 찾아 모여들 뿐 아니라, 이 지역에서의 식물들의 생장 상태가 가장 양호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산림감시인으로 일하던 이 초기시절에 빅터는, 나머지 평생동안 그가 연구해나갔던 주제들에 큰 영향을 미친 그 무엇인가를 알아내었던 것이다.

어느 날 빅터는 나이 많은 사냥꾼들 틈에 섞여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산속 깊은 곳에 돌 무더기로 덮혀있었던 작은 샘물이 있었는데, 빅터일행이 찾아갔을 때에는 돌무더기들이 무너져내려 샘이 햇빛에 노출되어 있었고 샘물은 거의 말라 있었다. 사람들은 그 샘물이 마르는 것을 처음 보았으므로 대단히 놀랐다. 왜 말라버렸을까? 누군가가 전에 있던 돌무더기들을 복원시키자고 제안했고 다시 돌무더기가 세워졌다. 오래지 않아 샘에는 다시 물이 차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험 등을 통해 빅터는 분명히 물이 삼림과 삼림이 드리우는 그늘과의 깊은 연관성을 갖고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후에 그는 이러한 이론을 확인시켜주는 더 많은 증거를 제시하였다. 빅터의 생각에 따르면 물은 바로 지구에게는 피(blood)와 같은 것이다. 또 만약 물의 흐름을 그 자연적인 경로를 따라 흐르도록 하지 않으면 물은 반드시 그 생명력에 손상을 입게된다. 자연적으로 형성되어있는 물의 흐름은 굽이치는 곡선의 형태를 취하는데 이러한 형태의 강둑에는 나무와 덤불들이 뒤덮여 자연히 그늘을 만들어 준다. 빅터는 이러한 것이 단순히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 자체가 이러한 방식으로 흘러가기를 원한다. 또한 이러한 형태의 흐름 속에서 강둑은 그늘을 만들어 물 스스로를 직사광선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낮은 온도와 자연적인 흐름. 이것이야말로 물이 그 속에 내재한 활성을 보존하는데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빅터는 생각하였다.

1918년 겨울의 일이다. 빅터가 있던 린쯔시에서는 전쟁의 여파로 난방연료가 부족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바로 이웃에 위치한 프리엘 게비르게 언덕 위에는 많은 양의 나무가 세찬 비바람에 쓰러져 있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이 목재들을 운반시킬 가축들도 없었고 이용할 수 있는 수로조차도 없었다. 빅터는 아직 풋나기 신참 산림감시인이었지만, 언덕 위의 목재들을 운반하여 연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어 시장에게 제안을 하였다. 언덕 옆으로 조그마한 개울이 하나 흐르고 있었는데 삼림전문가들은 목재를 운반하기에는 너무 협소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실제로 그것은 좁은 골짜기 사이를 흐르는 조그마한 개천이었으나 빅터는 그것을 이용하기로 생각했다. 내 경험으로부터 나는 물의 흐름이 가장 강해지는 때를 기다렸다. 이른 새벽이 바로 이때다. 특히 보름달이 뜨는 밤에 물은 가장 차가와 진다. 이때 수량은 다소 감소하지만 흐름은 가장 거세어진다. 바로 그때를 기다려 나는 목재들을 개울 속으로 집어넣었다. 이렇게 해서 산능선 위에 있던 1600㎡의 나무들을 모두 계곡 밑에 임시로 만들어 둔 저수지까지 운반할 수 있었다.

빅터는 산속 깊은 계곡에 사는 물고기들의 행동양태를 주의 깊게 관찰하였다. 커다란 무지개 송어들은 급류 속에서도 얼마든지 움직임 하나없이 버틸 수 있다. 그들은 꼬리와 지느러미로 이상한 동작을 취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마치 급류 속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가 위험이 다가오면 번개같은 속도로 물 속으로 사라지는데 그 방향은 뜻밖에도 급류가 흘러내려오는 방향 쪽으로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이러한 송어의 움직임에 대해서 어떠한 책에서도 설명하고 있지 않았다. 빅터는 산에서 흘러오는 물은 그 발원지 근처가 가장 차가우며 발원지에서 멀어질수록 더워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물의 온도와 송어들의 움직임은 서로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그는 더 자세한 관찰을 위하여 몇 가지 실험을 해보기로 하였다. 빅터는 그의 동료로 하여금 100리터의 더운 물을 관찰지점보다 500m 정도 상류계곡에 쏟게 하였다. 계곡은 제법 커서 그 정도의 양으로는 관찰지점의 수온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더운 물을 붓자마자, 급류 속에서도 꼼짝도 않던 송어가 갑자기 큰 몸짓을 하면서 꼬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지느러미를 바둥거리는등 허둥거렸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헛되이 곧 하류 쪽으로 쓸려 내려가서 한참 후에야 상류 쪽으로 거슬러 올라왔다. 빅터는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실제로 물의 온도와 송어의 움직임 사이에는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또 한편으로 그는 송어가 높은 폭포 위를 쉽사리 뛰어 올라가는 것도 관찰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물 속에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어떤 에너지가 있어서 송어들은 이것을 이용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그러한 관찰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른 봄 산란기의 어느 달빛 환한 밤이었다. 나는 계곡 폭포 옆에서 계곡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정같이 맑은 물위로 달빛이 휘영청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물 속의 많은 수의 물고기들의 움직임이 환히 보였다. 이때 물 속에서 무엇인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내 눈앞에 나타났다. 갑작스럽게 커다란 무지개송어 한 마리가 폭포 근처로 헤엄쳐 올라왔기 때문에 다른 물고기들이 흩어져 달아나는 것이 보였다. 마치 다른 물고기들을 방해하려는 것처럼, 큰 무지개 송어는 굽이치는 물결속을 이리저리 빠르게 빙빙 돌면서 헤엄쳐 다니더니 폭포 바로 밑쪽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달빛을 받아 떨어져내리는 물살들이 마치 반짝이는 금속조각들처럼 보였다. 일순간 그 큰 무지개 송어가 순식간에 폭포 위로 빨려 올라가듯이 물살들 속으로 솟구쳐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 무지개 송어가 폭포 바로 밑에서 아주 빠르게 빙빙 돌다가 -그때까지만 해도 이러한 움직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잘 알지 못했지만- 폭포 속으로 들어가서는 아무런 움직임 없이 빨려 올라가듯이 위로 솟구쳤으며, 폭포 꼭대기에 도달해서는 흘러내려오는 물살 쪽으로 엎혀지면서 맹렬히 꼬리지느러미를 흔들어 물살을 거슬러 사라져 버리는 것을 확실하게 보았다. 담배 파이프를 물고 깊은 생각에 잠긴 채 나는 집으로 향했다. 그 후에도 나는 종종 높은 폭포 위를 뛰어오르는 송어가 똑같은 동작을 취하는 것을 보았다. 비슷한 관찰을 몇 번 더 한 후에 나는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데,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내게 설명해 줄 수 있는 과학자는 한명도 없었다.”

이후 다른 모임에서 빅터는 자연적인 물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내버려두면 흐름과 반대방향으로 어떤 에너지 흐름이 형성된다고 제안하였다. 송어가 이용하고 있는 에너지의 근원도 바로 이것이다. 적당한 조건의 폭포에서 보면 이러한 에너지 흐름은 쏟아져내리는 물살 속에서 마치 빛살같은 좁은 관들처럼 잘 드러나 보인다. 송어는 이 에너지 흐름을 발견해서, 마치 소용돌이 안으로 끌려가듯이 위로 빨려 올라갔던 것이다. 자연적인 물 속에서 이러한 신비한 현상을 보이는 것은 단지 송어뿐만은 아니었다.

어느 쾌청한 겨울밤 늦게 빅터는 산속 개울의 연못가에 서 있었다. 연못의 깊이는 몇 미터나 되어 보였지만 물이 맑아서 바닥이 훤히 보였다. 바닥에는 많은 돌멩이들이 깔려있었는데 그 중에는 사람머리 크기만한 돌들도 있었다. 그가 이것들을 바라다보고 있을때, 갑자기 돌덩이 몇개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서로 끌어당기는 것처럼 충돌하는 것이었다. 그때의 일을 빅터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나는 정말로 내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사람머리 크기만한 돌이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지난번에 폭포에서 보았던 그 무지개 송어처럼 움직였다. 그 돌은 달걀 모양이었다. 다음 순간 그 돌이 수면위로 둥실 떠올랐다. 돌 주위로 둥그렇게 얼음들이 급속히 생기기 시작했다.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몇개의 다른 돌들이 같은 방식의 운동을 거쳐 수면위로 떠올랐다. 결국 달걀모양의 돌들은 모두 수면위로 떠올랐고, 각이 지거나 모양이 일정하지 않은 돌들은 바닥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당시에는 나는 이 현상들이 어떤 독특한 형태의 운동을 야기시키는 어떤 상승작용에 의해 일어났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즉 일련의 독특한 형태의 운동을 통해, 그에 감응하는 모양의 돌들이 중력을 극복하는 힘이 생기게 되고 따라서 수면위로 떠올랐던 것이다.”

빅터는 이후에 이 ‘춤추는 돌’은 금속을 내부에 포함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여하간 이러한 관찰이후에 그는 「운동(Motion)」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도대체 운동이란 무엇일까?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다른 형태의 운동은 또 어떤 것이 있을까. 이러한 생각을 진행시켜가면서 서서히 어떤 독특한 형태의 운동에 관한 그 나름대로의 이론이 정립되기 시작했다.

그는 그의 이론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고 진전시킬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였지만 도대체 당시의 과학자나 기술자들에게 그가 발견한 “새로운 어떤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된단 말인가!

<아직까지도 기술적으로 해명되지 않은 신비스런 목재운반수로>

그 당시 빅터를 고용하고 있던 아돌프 왕자에게는 커다란 문제거리가 하나 있었는데, 전쟁과 통화 팽창, 전쟁후의 여러문제들, 씀씀이가 헤픈 젊은 아내등으로 인해, 나이든 왕자는 그의 지출을 감당할 수 있는 다른 수익원을 찾아야만 했다. 왕자는 그의 소유로 되어있는 토지들을 모두 조사해 보았는데, 빅터에게 주어진 관할구역 외에는 이미 모두 이용해버린 후 였다. 이 지역만이 아직 남아있는 이유는, 이 지역에는 목재로 적당한 나무들이 대단히 많은데도 불구하고 이곳의 위치가 목재의 수송에 아주 적합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결국 왕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상금을 내걸었는데 삼림기술자들, 목재운송전문가등으로부터 제안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제안 중에 왕자의 눈길을 끄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빅터 자신도 이 현상공모에 참가하여 하나의 제안을 내놓았었는데, 정작 이 제안은 왕자의 면전에조차 가지 못하였다. 심사위원회가 예비심사에서 미리 그것을 탈락시켰던 것이다. '풋내기 신참 산림감시원이 제 분수도 모르고 전문가들과 경쟁하려한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그 제안이라고 하는 내용 자체가 도대체 말도 안되는 것이다.' 라는 것이 심사위원회의 한결같은 생각이었다. 심사위원회는 빅터에게 현상공모를 너무 가볍게 보았다는 엄중한 질책과 함께 그 제안을 그에게 되돌려주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은 종종 다른 방향에서 예기치 않게 오는 법이다. 때맞추어 왕자의 젊은 아내가 사슴사냥을 위하여 빅터가 관할하는 삼림지역을 방문하였고, 안내를 맡게된 빅터에게 왕자가 파산직전에 처해있으며 따라서 곧 마저 남은 부동산을 처분할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이러한 사적인 만남을 통해 빅터의 제안은 왕자에게 닿게 되었는데, 왕자는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비용을 얼마나 절감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빅터는 목재를 제재소까지 운반하는데 까지 평상적인 방법으로 1평방미터당 12실링이 든다면, 자신의 방법으로는 1평방미터당 1실링 정도와 목재 운반용 구조물의 건축비 정도만 들어갈 것이라고 제안했다. 일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면 보수를 후불로 주겠다는 조건으로 왕자는 그의 제안을 수락하였다. 그러나 정작 작업의 초기단계에서부터 일반 목재수송 전문가들로부터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빅터가 만들기 시작한 구조물은 50km 길이에 달하는, 나무로 만든 홈통모양의 운송수로 같은 것이었는데, 그 자체로도 이상스럽지만 그 전체 모양은 더욱 사람을 의아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목재운송을 위한 가능한 최단 거리의 직선이 아니라, 계곡의 골짜기들을 따라 지그재그의 형태로 설치되어지는 건축물이라니! 더욱 우스꽝스러운 것은 빅터의 행동이었다. 설치되어지는 운송수로 여기저기에 물을 뿌린 후, 인근의 개천이나 샘에서 막 퍼낸 신선하고 차가운 물로 다시 가득 채우는 것이다. 물이면 그냥 물이지, 찬물이라니! 이러한 운송수로에서는 어떤 목재도 뜨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과는 쉽게 장담할 수 없는 법이다. 빅터 본인의 말을 인용하자.

“네달뒤에 비로소 건축물이 완성되었다. 산 위에는 운송을 위한 많은 목재들이 이미 준비되어있었다. 시운전을 앞두고 나는 간단한 확인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중간 크기의 통나무 하나를 목재활송장치의 출발점에 집어넣었는데, 통나무는 100m쯤을 잘 떠내려 가다가 갑자기 바닥에 가라 앉아버렸다. 나는 건축기술자들의 비난어린 시선을 의식하면서 무언가 잘못 계산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통나무를 치우고 다시 곰곰히 들여다보고는, 물을 너무 적게 쓰고 경사를 너무 가파르게 한 것이 실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몸에 힘이 쫙 빠졌다. 내가 취한 최초의 행동은 일단 일꾼들을 집에 돌려보내는 것이었다. 혼자서 조용히 생각해 보기 위해서이다. 운송수로의 홈통의 곡률은 잘못되지 않은 것이 확실한데 도대체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나는 천천히 운송장치를 따라 걸어올라가서, 이윽고 맨 꼭대기의 물을 가두어 놓은 저수지에 도착했다. 저수지둑 바로 옆의 바위 위에 잠시 걸터 앉아 쉬려는 순간에 갑자기 무언가가 내 가죽바지 아래에서 꿈틀거렸다.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서 피한 후에 바라다보니, 또아리를 틀고 있는 뱀이 보였다. 나는 그 뱀을 발로 차서 저수지 물위로 던져버렸다. 이 뱀은 건너편 둑쪽으로 헤엄쳐가서는 둑 위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둑의 경사가 너무 가파르기 때문에 쉽지 않은 듯했다. 뱀은 올라가기 쉬운 길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것의 움직임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나는 지느러미도 갖고있지않은 뱀이 마치 화살처럼 빠르게 앞으로 헤엄쳐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하였다. 이윽고 그 뱀은 건너편 저수지 둑을 기어 올라가버렸다. 얼마동안 꼼짝 않고 나는 마음속에서 뱀의 움직임을 계속 그려보았는데 그것은 수직방향과 수평방향의 곡선의 율동이 합해진 것이다. 그 순간 나는 확실하게 그러한 움직임이 의미하는 바를 깨달았다.”

헤엄치는 풀뱀. 몸의 모양, 움직임, 파도 형태가 모두 하나로 합쳐집니다.

뱀이 헤엄칠 때의 움직임은 빅터에게 그가 당면한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주었다. 그는 인부들을 불러와 목재들을 가져오게 한 후, 운송수로를 약간씩 뜯어고치는 작업을 시작했다. 운송수로의 전체적인 모양을 뱀의 움직임과 거의 똑같은 모양으로 개조시켜, 수로를 흐르는 물이 마치 헤엄치는 뱀의 동작과 일치하도록 하는 작업이 밤새 진행되었다. 개막행사가 바로 다음날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자정이 훨씬 지난후에 그가 숙소로 돌아갔을 때 산림청 최고책임자로부터 온 통보가 놓여있었는데, 다음날 아침 10시에 왕자 부처와 다른 귀족들이 개막행사를 위해 도착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완벽하게 보수작업을 마치려면 밤을 새워도 주어진 시간 내에 끝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모든 것이 잘되어가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빅터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다음날 아침, 나는 저수지의 수문 근처에서 손님들을 맞이하였다. 이윽고 왕자부처와 함께 나의 반대파들인 삼림전문가, 목재운송기술자들이 도착하였다. 나는 왕자부처와 산림청 최고책임자에게만 인사를 건네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눈길한번 주지 않았다. 약간은 염려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왕자부처의 뒤쪽에는 산림청의 목재운송담당관이 비웃음을 가득 머금은 채 서 있었다. 나는 저수지로 내려가서 수문을 조금씩 열기 시작했다. 이에 맞추어 인부들이 저수지 물위의 목재들중 작은 통나무들부터 목재운송수로 쪽으로 흘러 보냈다. 순간적으로 두께가 90cm에 달하는 아주 커다란 통나무 한 개가 원치 않게 운송수로 안으로 섞여 들어왔다. "저런! 안돼!!!" 나이든 인부 한 사람이 외쳤다. "저렇게 큰 통나무를 함께 흘러보내면 안돼!"

나는 재빨리 수문의 입구를 활짝 열어, 물살이 보다 거세게 운송수로로 흘러들어 가게 하였다. 이 물길은 커다란 통나무에 부딪쳐서, 즉시 수로안의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개막행사에 참석한 모든 사람은 한마디 말도 없이 오로지 운송수로와 통나무를 응시하고 있었다. 물살은 드디어 수로위로 넘치기 시작했다. 이 순간, 우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통나무는 물살과 함께 떠밀려 내려가기 시작하였고, 지그재그 형태의 운송수로를 따라 앞부분을 약간 물위로든 헤엄치는 뱀과 똑같은 모양으로 화살처럼 빠르게 떠내려갔다. 이윽고 몇 초 지나지 않아, 눈에 보이는 첫번째 지그재그 커브를 완전히 통과하여 산밑으로 내려가 결국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완벽하게 대 성공이었다. 그 대가로서 왕자는 빅터에게 그의 삼림과 사냥구역 전체를 관리하는 수석산림감시인의 권한을 부여하였다. 인근 유럽 여러 나라에서 과학기술자들이 그 구조물을 조사 연구하고자 방문하였다. 이 소문은 전 임업계에 퍼져나가 마침내 비엔나에 있는 정부에서까지 관심을 갖기에 이른다.

<목재운송에 대한 정부의 기술고문으로 임명되다>

첫 번째의 목재운송 일을 성공적으로 끝마치자 마자 이어서, 연방정부의 총리로 있던 부칭게르(Buchinger)로부터 정부산하의 목재운송 관리국의 기술고문으로 일해주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빅터는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고 그에게는 그 당시 대학교수직의 두배에 해당하는 급료가 주어졌다. 게다가 그의 급료는 당시처럼 인플레이션이 심한 시기에는 가장 확고한 가치가 있는 금으로 지불되었다. 이 시기동안 빅터는 기술고문의 자격으로 몇년동안 오스트리아 각지를 여행할 수 있었는데 그러는 동안 몇 사람의 진정한 친구들을 새로이 사귈 수 있었으나 과학기술계의 사람들과는 더욱 반목이 심해졌다. 학계에서는 정규학위도 갖지 못한 신출내기가 오히려 자신들보다 많은 급료를 받을 뿐아니라, 때로는 자기들을 명령하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에 대해 불만의 기색이 역력했던 것이다.

빅터가 만든 목재운송장치를 모방해보려는 자신들의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그들은 빅터가 만든 건축물과 똑같은 형태의 구조물을, 빅터에게는 한마디 조언도 구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힘만으로 만들어 보고자 하였다. 라이쯔라민그(Reichsraming)에 세워졌던 이 목재운송구조물은 외관상으로는 빅터의 건축물과 거의 유사하였지만, 실제로 작동시켜본 결과, 단 한 개의 통나무도 운반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자존심을 짓누르며 그들은 빅터의 도움을 받아 다시 건축물을 개조하였고, 그제서야 이 목재운송구조물은 완벽하게 작동하였다. 빅터는 다른 여러 지역에도 목재운송수로를 설치하였는데, 부칭게르 총리는 그의 이러한 성과들에 대해 대단히 만족해하였으나 오히려 빅터를시기하는 사람들은 더욱 많아졌다. 결국 살츠부르그(Salzburg)에서 열린 임업전문가들의 학술회의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의하여, 빅터의 지위와 급여수준의 부당성을 제기하는 탄원서를 의회에 제출하게 된다. 이러한 학계의 반대여론 때문에 부칭게르 총리는 빅터를 불러들여서, 그의 급료가 지나치게 많이 책정되었기 때문에 절반으로 줄여서 지급하겠다고 통보하였다. 또 그 절반의 급료마저도 정부의 공식예산이 아닌 부칭게르 총리 자신의 사적인 계좌에서 나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빅터는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는 바로 사표를 제출했다.

연방정부의 기술고문을 그만둔지 얼마 안되어 빅터에게 다른 제안이 곧 바로 주어졌다. 오스트리아 내에서 최대 건설청부업자중 한 사람인 슈타인하르드(Steinhard)라는 사람으로부터 유럽전체를 관통하는 엄청난 규모의 목재운반수로를 만들자는 새로운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빅터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몇년동안 그와 함께 일하게 되었다. 슈타인하르드는 네우베르그(Neuberg)일대에 목재운송수로를 건설하는 공사계약을 정부로부터 따내었는데, 내용상으로는 만약 한시간 동안 1000평방미터의 목재를 운송할 수 있다면 정부가 1백만 실링의 대금을 지불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전체 건축구조물을 시공자 자신이 비용을 들여서 철거해야만 한다는 불리한 계약이었다. 이 목재운송수로는 1928년에 완성되었다. 실제로 이 운송수로를 통하여 한시간에 1400평방미터의 목재를 운반할 수 있었는데, 슈타인하르드가 정부로부터 대금을 지불 받게 된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개막 기념식상에서 정부는 그 소유권을 넘겨받았고, 슈타인하르드는 빅터에게 그를 경하한다는 어귀가 새겨진 금시계를 선사하였다. ‘불가사의한 기술’이라는 제목으로 연방정부 비망록에 표시되어진 이 목재운반수로는 실제로 1951년 산림자원이 모두 고갈될 때까지 이용되었으며 그 이후에 철거되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증명자료로서 1930년쯤에 오스트리아 여행안내국에서 제작한 운송 수로(Tragendes Wasser)라는 기록 영화 필름이 남아있다. 이 영상자료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소실되었으나 그 후 조사결과 1961년에 동베를린의 기록보관소에서 발견되었다. 복사본은 서독 및 스웨덴의 생명기술연구소(Biotechnical Organization)에서 소장하고 있다. 원본의 일부분은 없어진 상태이고 복사본마저도 매우 낡고 손상되어있는 상태이지만, 이 영상자료야말로 그 당시에 그토록 치열한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소위 학식있는 전문가들로 하여금 골머리를 싸매게 만들었던 빅터의 목재운송장치를 가장 잘 증명해주고 있다.

네우베르그(Neuberg)의 목재운송수로를 완공한 이후에도, 빅터와 슈타인하르드는 오스트리아 뿐아니라 유고슬라비아, 터어키 등등의 다른 나라에서도 성공적으로 목재운송수로를 가설하였다. 이러한 이들의 동업관계는 1934년에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와 계약을 체결할 때를 기점으로 깨어지게 된다. 슈타인하르드가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와의 계약시에 이중 장부를 만들어 자신만의 부당이익을 취하려한 것이 발각되어, 결국 계약이 파기되었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들의 동업관계는 끝을 맺게 된다. 어쨌던 슈타인하르드와 동업했던 이 시기동안, 빅터는 이론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상당한 진보를 이루었다. 그러나 동시에 학계에 있는 그의 적대자들과 계속 싸워야만 했던 것도 사실이다.

<목재운송수로의 원리>

빅터가 만들었던 이 불가사의한 목재운송수로의 원리는 과연 무엇인가. 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나는 어릴 적에 아버지가 수십만평방미터나 되는 목재더미들을 먼 거리에 걸쳐 강물을 이용해서 운반하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그때는 언제나 날 밝을 때가 아니라 밤이었다. 특히 보름달이 휘영청 뜨는 날이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아버지는 나에게 이렇게 설명하였다. 낮에는 물이 태양광선에 노출되어 게을러지고 늘어져 활성이 둔해지지만, 밤에는 특히 보름달이 비치는 밤에는 물이 생기가 넘쳐, 자기보다 무거운 전나무나 너도밤나무들도 능히 물위로 띄울 수 있게 된다라고.

빅터의 일가는 그들 나름대로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목재운송방법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물이 범람할 때면 때로 목재운송을 위해 설치해둔 시설물들이 손상을 입기도 했다. 이 시설물들은 물이 시계방향 또는 반시계반향의 나선형 형태의 뱀과 같은 모양으로 흘러가게 만드는 작용을 하는 것이었는데, 가족들이 이 ‘원추형 나선운동’에 깃든 정확한 의미를 알고 있었을 리는 없지만, 이 운동이 주는 효과를 목재를 운송하는데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예를들어 시설물을 통과하여 나온 물길과 운송목재사이에 어떤 이상한 작용이 일어나, 어떤 때에는 운송목재가 마치 중력의 법칙을 비웃는 듯이 상류 쪽으로 떠올라가기도 했던 것이다.

빅터는 목재운송수로를 건설해야겠다고 마음먹게된 다른 원인에 대해서도 언급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목재운송을 위해 가축동물들을 부려먹고 있는데, 실제로 이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왜 그토록 다른 편리한 운송방법을 찾기 위해 몰두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수로를 이용하여 목재를 운송한다는 발상은 항상 거부당했는데, 그 이유는 수로를 통하여 목재를 운송하는 과정에서 종종 목재가 손상을 입게 된다는 경제적인 측면과, 아르키메데스의 원리에 따라 물보다 무거운 너도밤나무 등은 물에 뜨지 않는다는 기술적인 면이 거론되었다. 이에 따르면, 내 생각은 완전히 비현실적인 것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산악지역에서 물길을 따라 목재를 운반하는 것 자체는 비교적 간단하고 쉬운 일이었다. 목재가 있는 산림지역에서 계곡까지 표고차가 큰 경우가 많지만, 중간 중간에 물을 담는 작은 저수지들을 만들어 수위를 조절하면서 목재를 함께 흘러보내면 운송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렇게 흘러가는 물은 상당히 물살이 거세어서 목재들이 이리저리 바위에 부딪쳐 상처를 입게 된다. 따라서 이런 목재운송방법은 비경제적이고 환경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되어진다. 그렇다고 통상적인 운송수로를 건설하는 것은 시설비용뿐아니라 너무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따라서 빅터가 전혀 새로운 형태의 운송수로를 계획했을때, 가장 핵심적인 기술로써 고려했던 것이 적은 양의 물로서 높은 운반력을 어떻게 얻어낼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가 어릴 적부터 보아왔던 옛 전통적 방법들이 많은 영감을 주었다. 문제에 대한 해답은 물이 가장 활성이 넘치게 되는 온도와 운동형태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이것을 실제로 실현시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빅터는 목재운송장치에 대한 많은 특허를 제출하였는데, 이 사실은 그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반적으로 많은 분야에서 고심초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결국 그가 최종적으로 고안해낸 목재운송장치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달걀의 반쪽형태와 똑 같은 모양의 홈통구조를 가진 나무로 만든 수로장치인데, 홈통의 폭이 1.5m에 높이가 90cm의 크기로서, 그 당시에 운송되던 목재들 중 가장 큰 목재를 여기에 집어넣으면 운반하는데 드는 물이 거의 없을 정도로 딱 알맞았다. 이 길다란 나무수로 구조물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차가운 물을 계속 공급해주면서, 한편으로 일정간격에 따라 배수구를 만들어 더워진 물을 배출시켜서 전체 수로안에 흐르는 물이 적당한 온도로 유지되도록 만들었다. 차가운 물을 공급하는 장치나 배수장치의 밸브는 정교하게 설계되어, 필요에 따라 수로내부를 흐르는 물의 온도를 임의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 수로의 전체적인 형태는 강이나 하천이 빚어내는 자연스런 곡선 모양을 그대로 본따서 만들어졌는데, 비록 이런 모양이 전체적으로 더 길기는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가장 효과적인 물의 운동을 얻어낼 수 있다. 이에 관해 빅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물을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놔두면, 물자체가 어떤 방식으로 흐르고 싶어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는 그 흐름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말을 통해서 우리는 빅터의 인생을 지탱해주는 그의 자연관을 엿볼 수 있다. 즉, 먼저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으로부터 배우라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자연은 우리의 가장 뛰어난 스승이다. 우리는 자연의 법칙을 따라가려고 해야지, 그것을 정복하려해서는 안된다” 이러한 관점은 그 당시의 과학기술자들의 견해 -가장 짧은 운송 경로가 가장 경제적이다- 에서보면 터무니없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심지어 물의 온도가 0.1℃ 차이만 나더라도 물의 행동에는 큰 영향이 미친다는 빅터의 이야기는 비웃음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 당시의 유명한 대학교수였던 샤페르나크(Schaffernak)는, 물에 있어서는 큰 온도차이만이 의미가 있다는 것은 상식적인 것이라고 빅터에게 반박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 의견에 동의하였다. 빅터가 여기에 반박하면서 0.1℃ 의 체온의 차이가 사람의 육체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똑같다 라는 논리를 펴자, 사람들은 이제 드디어 빅터가 미쳐버렸다고 수근거렸다. 세상에 피와 물을 똑같이 취급하다니! 따라서 빅터와 그의 이론은 학계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별다른 관심을 얻지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만든 목재운송수로는 소위 '불가사의한 기술'로서 작동되어졌다. 그는 당시의 학식 있고 저명한 과학기술자들이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인가를 알고 있었음은 틀림없는 것이다. 사람들도 그가 고안했던 목재운송수로 안에서는 물보다도 밀도가 큰 목재들, 심지어는 돌조차도 물에 떠서 흘려가곤하는, 소위 아르키메데스의 원리가 지켜지지 않는 상황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의 공식적인 조사위원회가 결성되었다. 이 조사위원회는 네우베르그에 가설되었던 목재운송수로를 전반적으로 조사.검토하는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 당시의 저명한 수문학자(水文學子 : hydrologist)인 비엔나의 포르사이메르(Forcheimer)교수가 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포르사이메르 교수의 새로운 경험>

포르사이메르 교수는 아주 열정적으로 이 조사연구를 수행하였는데, 그는 빅터가 설치했던 목재운송수로에 대해 그가 지니고있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하여, 전체모습을 분석하고 곡률을 수학적으로 계산해가면서 물의 흐름과 온도를 점검해가는등 다양한 검토를 진행하였으나 결국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그로서는 어떻게 해서 이 운송수로가 작동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작전을 바꾸어, 이제는 빅터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로 마음먹었다. 빅터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다니면서 끊임없이 질문을 퍼부었다. 처음에는 빅터로부터 종종 냉대를 받으면서 이해되지 않는 대답들만 듣곤 했었다. 그래도 그는 실망하지 않고 빅터의 행동이나 말들을 면밀히 계속 지켜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빅터도 이 노교수가 그가 지금까지 상대해온 일반적인 과학자들과는 뭔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을 비웃지도 않았고, 현학적인 거드름도 피우지 않았으며 무엇보다도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점차로 빅터는 이 노교수에게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이내 그들 사이에는 깊은 우정이 싹트게 되었다. 그들은 숲과 계곡들을 돌아다니면서 빅터가 오랫동안 연구해오던 자연현상들을 함께 관찰하였다.

첫 번째 나들이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두사람은 산을 끼고 흐르는 개울가에서 토론을 나누고 있었다. 갑자기 빅터가 질문을 던졌다. “교수님, 저 개울안쪽의 저 돌 말이예요, 저 돌 주위로 흐르는 물은 돌의 앞부분이 더 차겠어요, 뒷부분이 더 차겠어요?” 그러면서 그는 흐르는 물에 깎이어 특별한 모양을 가진 바위하나를 가리켰다. “의심할 여지없이 바위에 부딪히기 전의 물이 더 차요.” 포르사이메르 교수는 재빨리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바위와 물이 마찰을 일으켜서 수온이 상승하는 원리를 열심히 설명하였다.

빅터는 무심히 대꾸하였다. “틀렸어요, 하류쪽의 물이 더 차가워요” 한참동안 이 문제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포르사이메르 교수는 개울가 옆의 모래사장에다 마찰력에 의한 수온의 상승에 관한 과학적 도표를 그려가면서, 자신이 옳다는 것을 계속 주장하였다. 잠시후 빅터가 대꾸했다. “누가 옳은지 알아보려면 실제로 온도계로 측정해보는게 확실하겠지요.” 그는 온도계를 가지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물의 온도를 측정한 후에 빅터는 의기양양하게, 바위를 지나친 물의 온도가 바위에 부딪히기 전의 물의 온도보다 0.2℃ 낮다는 것을 포르사이메르 교수에게 보여주었다. 포르사이메르 교수는 더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외쳤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요, 틀림없이 잘못 측정했을 거요. 내가 직접 해 보겠소.” 그리고는 그는 신발과 바지를 벗고 내복까지 걷어올린 후, 꺼리낌없이 물 속으로 뛰어들어갔다. 당시 그의 나이가 72세의 고령임을 감안한다면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포르사이메르 교수는 자신이 차가운 물 속에 서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린듯, 한참동안이나 온도계를 움켜쥔 채 침묵에 빠졌다. 이윽고 그는 놀라움이 여전히 가셔지지 않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당신이 옳군요, 빅터씨.” 그 문제에 관해 여전히 골똘하게 생각에 잠긴채, 그는 물 밖으로 걸어나와 다시 신발을 신었다. 이날 이후로 포르사이메르 교수는, 빅터라는 이 고집 세고 다혈질의 괴짜 사내가 비록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로서 알아듣기 어렵게 설명하고 있긴 하지만, 분명히 객관적인 사실을 다루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자연 하천 프로파일. 구불구불한 강은 흐르면서 굽이치는 지점에서 이차 해류를 형성합니다. 가파른 강둑의 작은 흐름이 다음 굽이 바깥쪽의 큰 흐름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