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nta rei (‘Everything is in motion’): Heraklitos
판타 레이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다’): 헤라클리토스
<운동의 두 가지 형태>
1939년까지 빅터는 주로 목재 운송 장치를 설치하는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타 다른 많은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며 연구에 몰두하였다. 특히 그 중에서도 물을 조절하고 되살리는 방법뿐만 아니라, 나아가 살아있는 물에 내재하고 있는 그러한 형태의 유용한 에너지를 인위적으로 얻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세밀한 관찰과 실험을 통해서, 자연의 실제적인 작동원리와 인간이 개발한 과학기술사이에는 서로 대조적인 면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는 파악해낼 수 있었다.
빅터는 인간이 개발한 기술은 점점 더 우리 인간의 삶 자체를 위협하며, 생명의 진화를 가로막는다고 확신하였다. 그것은 단지 공기와 물이 오염되고 있다는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바로 자신의 문제인 환경문제에 보다 진지해진다고 할지라도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사람들의 어리석음은 이차적인 문제였다. 보다 근본적으로 산림, 물, 토양, 그리고 모든 생명체에 대해서 그토록 심각한 결과를 야기시키고 있는 현대 과학기술은 그 자체의 기본원리에서부터 이미 잘못된 길을 접어들었던 것은 아닌가? 대자연을 이토록 황폐화시켜버린 결과적 상황은 차치하고서, 이러한 결과를 빚어낼 수 밖에 없었던 기술적인 효율성을 보더라도 지금까지 과학기술은 무언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있다. 이러한 의문들로 인하여 빅터는 오랫동안 괴로워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의 과학 기술은 봄날 7개의 토마토 씨앗을 심어서 가을에 겨우 하나의 토마토를 수확하는 농부처럼 한심하게 작동하고 있다 (Our modern techniques behave like a farmer, who in the spring plants seven potatoes and in the autumn harvests one).”
오늘날 세상사람들이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증기기관과 연소기관은 고작 50%의 효율조차도 얻질 못한다. 사용한 에너지의 50% 이상은 파괴되거나 쓸모없이 되어버린다. 왜 그토록 비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이용해야만 할까? 자연은 이 질문에 대하여 빅터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우리는 잘못된 종류의 운동을 사용한다 (We use the wrong sort of motion)”
물, 혈액, 수액 등의 순환 운동에 대하여 빅터가 이해했던 원리들을 이제는 다른 모든 운동들에 대해서도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자연계에는 크게 두 가지 형태의 운동방식이 존재하는데, 그 하나는 파괴·소멸작용을 야기시키는 운동이고, 다른 하나는 창조·정화작용을 일으키는 운동이다. 이 둘은 서로서로 맞물려 가면서 자연의 변화원리로서 작동되고 있는 것이다.
창조·발전·정화·성장시키는 성질을 지니는 운동의 형태는 평면적으로 보면 구심점을 향해 끌려 들어가는 구심성 회전운동이며 입체적으로 보면 구심점을 중심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원추형 나선(hyperbolic spiral : 쌍곡선 나선형) 운동'이다. 우리는 성장이나 창조적 운동이 일어나는 자연 현상에서는 어디에서나 이러한 원추형 나선 운동을 관찰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우주 공간에서의 성운들의 나선형 배열, 우리 행성계(태양계)의 운동 모양, 물·혈액·수액 등의 자연적인 흐름 형태 등에서 원추형 나선운동을 관찰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파괴·분해시키는 형태의 운동은 자연계에서는 ‘원심성(centrifugal) 직선운동’이다. 이러한 운동은 움직이는 물체를 중심점으로부터 중심점 밖을 향해 직선적으로 움직이게 한다. 물체의 입자들은 중심으로부터 밖으로 향하도록 힘을 받게 되므로 그 물체는 먼저 약해지고, 그후에 그 물체는 분해되거나 파괴된다. 자연은 자신의 활력을 상실하거나 생명을 잃어버린 물체들을 분해하기 위해서 이러한 운동을 사용한다. 이렇게 파괴되어버린 조각들은 다시 구심성의 창조적 운동을 이용하여 에너지를 농축시켜 새로운 형태의 다른 성질의 개체로 재창조될 수 있다.
구심력이 작용하는 원추형 나선운동은 온도를 떨어뜨리고, 수축·농축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와는 달리 원심성의 운동은 온도를 끌어올리고, 열·확대·확장·폭발시키는 경향이 있다. 자연에는 하나의 운동에서 다른 하나의 운동으로의 끊임없는 전환이 일어나고 있지만, 성장·발달·개발작용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생명창조의 운동형태인 구심성의 나선운동이 더 우세하게 진행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죽음의 기술이냐!, 생명의 기술이냐!>
이러한 운동 방식과 현대 인류의 과학 기술과는 어떠한 관련이 있을까? 빅터는 그의 이론의 중심 테마로서 현재 인류의 모든 과학 기술은 열, 연소, 팽창, 폭발을 매개로 한 파괴 중심의 개념 위에서 개발되었고 개발되고있다 말하고 있다. 오늘날의 과학 기술에 의해 빚어지고 있는 모든 나쁜 결과들은 자연의 운동 방식 중에서 한쪽 면에 불과한 파괴와 분해의 기술만을 추구해온 인간의 편향된 경향에 의한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우리의 과학 기술은 죽음에 직면하고 있다. 우리는 과학 기술이라는 미명하에 석탄과 석유-에너지원으로서보다 그 자체로서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를 효율성도 별로 없는 멍청한 기계들 속에서 함부로 태워서 낭비하고 있으며 그 결과로 엄청난 산업쓰레기와 환경오염만 빚어내고 있다.”
1930년대에 이미 빅터는 이러한 용기있고 현명한 견해를 피력하였다. 오늘날 이러한 견해는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우리는 이미 환경재해의 중심부에 살고 있으며 매일 매일 산업폐기물에의한 부수적인 해로운 결과들을 접하고 있다. 잘못된 운동형태에 대한 빅터의 견해는 아직도 이해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러한 파괴적인 운동형태와 에너지를 주로 사용하고 있는 우리의 과학기술들은 여전히 세상에 혼돈과 무질서를 더 크게 야기시키면서 자연의 질서들을 문란시키고 있는 것이다. 만약 빅터의 생각이 옳다면 유해물질을 걸러내는 여과 장치, 탈황 처리된 석유, 혹은 100% 안전한 원자력 발전소를 개발한다 할지라도 별로 쓸모가 없다. 우리 인류가 지금까지 개발한 장치로는 파괴적인 힘을 이용하는 기술 원리에 의해서, 혹은 원자를 핵 분열시킴으로서 초래되는 생명체에 대한 파괴적인 영향을 제거할 수 없다.
산업 폐기물의 파이리스 강으로 방출로 인한 수질 오염
이러한 죽음의 기술과는 달리 생명의 기술이라 불리울 수 있는 다른 방식의 에너지개발기술을 얻어내기 위하여, 빅터는 공기나 물로부터 자연스럽게 잉여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는 나선형 형태의 운동을 이용하였다. 원자 핵 분열과 핵 에너지의 개발은 우리 인류 사회의 미래를 완전한 파멸로 이끈다. 말년에 빅터는 우리 인류에게 절박하게 다가와 있는 재앙을 일깨워주려고 노력하였다.
“우리가 시급히 해야할 일은, 핵분열을 통해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아인슈타인등의 이론은 자연에 대한 무지막지한 공격행위이며, 그러한 핵반응을 통하지 않고서도 생명의 기술인 구심성 폭발(Implosion : 내파, 응폭)현상을 통해서 원자력 에너지를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만인에게 알리고, 무엇보다도 행정부에 제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빅터는 어떠한 연료를 사용하지 않고서도 스스로 작동되는 동력장치를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이 장치의 근본원리로서 자연에서 일어나는 구심성 폭발(Implosion : 내파)을 모방하고자 노력하였다.
“지금까지 우리인류가 개발하여 사용하는 발전기의 경우에는 전기나 혹은 다른 종류의 출력을 얻기 위해서 출력의 9배에 해당하는 화석 연료가 그 대가로 소모되어야만 한다. 지구상의 에너지를 잔혹하게 약탈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이러한 기술들은 원심성의 원리에 의해 작동하는 원심성폭발(EXPLOSION) 모터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이와는 달리, 구심성폭발(Implosion) 모터는 전혀 다른 방식에 의해 작동된다. 이것은 물과 공기와 같은 반자성체를 사용하여 모터 자신의 추진력으로부터 출력을 생산한다. 이러한 방식의 모터는 석탄, 석유, 우라늄 등의 화석연료와 같은 어떠한 기존의 에너지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생명의 기술을 이용하면 아무 비용 없이도 무한한 양의 에너지를 모터 자신이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풍부한 매개체인 물과 공기-물과 공기는 에너지를 소생시키는 효과가 있는데-를 이 구심성의 운동방식에 따라 잘 운용하면 충분한 잉여에너지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지금까지도 우리들은 간과하고 있다.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방법은 원심성의 운동방식과 구심성의 운동방식의 두 가지 방법이 존재하며 발생된 에너지 자체도 이러한 양극성을 지닌다. 원심성(Explosion)의 에너지는 파괴적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구심성(Implosion)의 에너지는 창조적으로 작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구심성의 원리(IMPLOSION)와 생명자장(BiologicalMagnetism)>
빅터는 구심성운동(Implosion)의 효과와 그것과 관련된 생명자장(Biomagnetism)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그리고 빅터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반대론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객관적인 자연 현상들을 나름대로 설명하려고 노력하였다.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부터 생각해보자. 빅터의 말에 따르면 물과 공기를 구성하는 주요 성분인 수소와 산소 원소들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서로 상반된 작용을 한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힘은 두 가지 양극성을 띠고 있는데, 성장·고양현상을 유도하는 에너지형태인 생명자장을 형성시켜서 농축시키는데에 수소의 역활은 중요하게 작동한다. 수소원소는 냉각될 때 오히려 활력을 띠면서 능동적으로 산소와 결합하여 구심성(Implosion)의 에너지를 발생시킨다. 이 생명자장의 에너지는 지구중력장에 반대하여 부양(levitation)하려는 성질을 지니는데, 식물체가 중력의 힘을 이겨내면서 오히려 위로 쭉쭉 성장해나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성장이 어느 정도 진행되면 식물체의 무게는 늘어나고 결과적으로 중력의 영향이 더 세진다. 일반적으로 전기를 생성시키는 전자기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철과 기타 금속류의 자성체들과는 달리, 생명현상의 근본이라고 할 물과 공기를 생성시키는 수소와 산소원소들은 반자성(Diamagnetism)혹은 생명자장성(Biomagnetism)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작동된다. 따라서 생명활력을 상실한 물과 공기는 생명자장을 통해서만 다시 활력을 회복하게 되고 마찬가지 방식으로 증식되어 진다.
수소와 달리 산소는 열이 가해질때 활력이 강화되는 반대 성향을 지니고 있어서, 가열반응속에서는 산소가 능동적으로 작동하여 수소를 끌어당겨서 결합을 이루는데 이때 에너지가 발생한다. 이 에너지는 원심성의 직선적 팽창에너지(Explosion)이며 그 자체적으로 파괴적인 성향을 지니고있다. 현재 우리가 에너지를 얻어내는 방식은 거의 이러한 원심성의 방식에 의존하고 있어서 이 방식의 에너지가 전쟁목적으로 사용되던 평화적목적으로 사용되던 무관하게 원심성의 파괴, 분해의 성향을 띠게 된다.
빅터의 견해에 따르면 열(Heat)이란 자연계에 발생하는 에너지 형태 중에서 최저급 형태의 에너지이다. 열이 발생하거나 열을 가할 때 분자들의 구조가 다시 재배열되는데 이 형태는 구심성의 원리가 아니라 원심성의 직선적 팽창(Explosion)의 형태를 취한다. 따라서 열작용을 받은 물의 경우에도 점차 본래의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물속에 녹아있던 양질의 미량원소들도 파괴되어가서 마침내는 물이 죽어버리게 된다. 이러한 물에는 병원균이 쉽게 증식하기 시작하여, 고등생명체의 경우에는 종양과 암이 발생하며 스스로의 자연적 치유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종양을 자라게 하고 발병을 일으키는 분자 배열형태는 물리적, 화학적, 정신적인 제반 자극들에 의하여 촉진되어진다. 모든 형태의 에너지(열, 전기, 자성, 혹은 반자성)는 구심성과 원심성이라는 양극성의 상호 작용의 결과에 다름 아니다. 전체 우주속에서 여러형태로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은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망치, 손도끼, 혹은 폭약과 같은 도구들을 수고롭게 이용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최소한의 노력으로 대자연의 품에서 안식을 취하며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다. 그것은 자연과의 투쟁이 아니라 ‘영원의 어머니(Eternal woman)’ 또는 ‘영원한 연인’과의 친밀감과 같은 것이다. 이제 우리 인류도 대자연이 창조, 생성, 성장의 원리로 사용하는 구심성의 원리(Implosion)에 의한 생명의 기술을 일으킬 때가 되었다고 빅터는 말하고 있다.
“강물이 굽이 굽이 흘러가는 것을 생각해보면 강물은 마치 새끼를 꼬는 사람의 손안의 새끼처럼 이리저리 흘러가고, 회전하고, 자신을 휘감으며 흐른다. 강물은 소용돌이, 회오리, 나선형 흐름을 형성하면서 그 자신의 축을 따라서 회전하고 농축되어진다. 이렇게 휘몰아 소용돌이치는 흐름속에는 자연스럽게 진공상태가 생성되어 구심성의 원리에 따라 외부로부터 신선한 공기 흐름이 유도되어진다. 이것이 강물이 호흡하는 방식이며 스스로 온도를 낮추는 방편인 것이다. 현재의 물리학은 이러한 현상을 역학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이용하여 고안해낸 것이 ‘나선형 흡입 동력장치(suction spiral, suction turbine)’이다. 지금 우리는 파괴·분열을 기본 원리로 하고 있는 현재의 열기술(fire-technology)를 하루빨리 ‘생명의 기술’로 전환시켜야 할 시점에 있다. 원심성(Explosion) 모터를 구심성(Implosion) 모터로 대체시켜야 할 긴박함 속에 있다.”
빅터는 이러한 에너지 발생의 원리와 그 효과를 지협적인 규모로 제한하지 않고, 보다 훨씬 넓은 규모인 모든 생명체에 적용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만약 자연계에서 자연계의 질을 저하시키는 힘인 파괴·분해의 에너지가 자연의 원리에 반하여 역학적으로 계속 작동하여 생성되어진다면, 그때에 암세포는 계속 만들어 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원심성의 에너지는 우리 인류가 자연을 더 이상 자연과 어울려 살 수 없게 만들 것이고, 결국 우리 인류는 살아남을 기회를 박탈당할 것이다.”
빅터는 현재 인류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원심성(Explosion)에 기반한 제반 기술들이 만연해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창조적인 구심성의 에너지 발생 장치를 개발하려는 태도의 전환이야말로 자연이 창조적 진화에로의 과정을 계속 걸어나갈 수 있도록 인류가 일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구심성의 에너지와 장치들은 그 매개체인 물과 공기를 원래의 생명력으로 점차 되돌리게 되고 이렇게 되살아난 물과 공기는 그 생명활력을 식물과 동물같은 고등생명체에게 제공하게 된다. 만약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모든 생명체들의 성장 과정은 신선한 자극을 받아서 다시 활력을 회복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바로 우리 인류를 맑고 깨끗한 본래의 자연으로 인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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