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적인 숲과 인공적인 숲의 차이점>
빅터는 물이 신선하게 유지되어야만 인류의 먹거리도 신선함을 유지하며 이를 바탕으로 인류의 문명도 건전하게 발전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숲이 건강해야 한다고 보았다. 빅터는 오늘날 상업적 목적으로 임업에서 말하는 숲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숲을 정의하였다. 빅터가 말하는 숲은 수많은 종류의 식물들이 자연스럽게 생태학적 조화를 이룬 혼합림을 의미한다. 1930년대에 그가 게재하였던 글을 통해 직접 살펴보자.
인간이 만든 소위 임업기술의 영향을 받지 않은 자연적인 숲에서는 여러 식물들이 이상하게도 혼합되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쭉쭉 뻗어 올라가 하늘을 덮고 있는 커다란 나무들로 뒤덮힌 지역 안에서도 분명히 무질서의 상황들이 보여지고, 이러한 무질서는 종종 우리들에게 불규칙적인 혼돈상태인 것처럼 비추어진다. 하지만 숲은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존재이다. 이러한 자연계의 조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잣대로서 모든 것을 판단하여, 쓸모 없다고 여겨지는 -특히 상업적으로- 모든 것들을 제거하려고 한다. 오늘날의 인류의 지식에서 보면, 자연은 분명히 혼란스런 무질서를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무질서의 진실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주의와 관심을 필요로 한다.
오늘날의 임업은 자연스런 생태계로서 숲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오히려 자연적인 숲에서 이루어지는 정상적인 생태계의 균형을 완전히 무시하고 혼란만을 야기하고 있다고 빅터는 계속 이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건강한 숲속에서는 어린 묘목들이 인간과 인간의 기술에 의한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도 수십년씩 살았다. 이 기간 중에 건강한 성장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온도·습도·햇빛 등의 조화로운 균형을 위해서 키 큰 나무들의 보호를 받았다. 커다란 나무들이 수명을 다하여 죽게 되면, 성목으로 자란 묘목은 이제는 그 가지를 활짝 펼치고서 직사광선과 따뜻함을 즐길 수 있게 된다. 나무들의 나이테를 살펴보면 맨 안쪽의 아주 조밀한 나이테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초기의 아주 오랜 성장시기를 대변하는 것이다. 증가된 햇빛의 양과 더운 조건은 어린 나무의 성장을 가속화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시기에도 나무의 대부분은, 가지의 꼭대기 부분을 제외하고 태양의 직접적인 영향으로부터 여전히 보호받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식물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햇빛의 효과만을 이해하고 있는 상업적인 임업업자는 빠른 생장결과를 얻기 위해 소위 과학적 방법을 도입하는데, 그 방법이 비록 자연적 순리와는 모순될지라도, 보다 빨리 나무를 자라게 할 수는 있다. 인위적으로 숲을 빨리 육성시킨다는 이러한 새로운 임업기술은 어린 묘목들을 너무나도 많은 일조 조건과 더운 조건에 노출시켜서, 그 결과로 매년마다 나이테가 너무 지나치게 빨리 자라도록 한다. 이러한 방법은 오히려 숲에서 자라는 나무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임업사업으로 말미암아, 빛에 민감해서 그늘에서 자라야 하는 나무조차도 자연적인 원기축적 과정인 성목(成木)들의 보호과정없이 외부에 노출되어 홀로 자라야만 한다. 주위의 다른 나무들을 갑자기 제거했기 때문에, 빨리 생장해 버린 전나무의 나이테는 센티미터에 이를 정도로 넓어져서, 질이 형편없는 스폰지처럼 무른 나무로 자란다. 나무를 베고나서야 그러한 전나무는 내구성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된다. 건조과정을 거친 후에, 이러한 스폰지처럼 무른 나무는 정상적으로 자란 나무와는 전혀 다르게 헐값으로 거래가 이루어진다. 그러한 질이 떨어지는 나무는 건축재료로도 이용할 수가 없다.
수목재배법이라고 불리는 소위 과학적 방법이 도입된 후로는, 공명을 일으키는 나무(resonance wood)라고 불리는 최양질의 나무는 완전히 사라졌다. 이처럼 천천히 자란 나무는 현대적 방법으로 속성 재배한 나무와 외견상으로는 구별하기 어렵지만, 나이테로 보면 서로 완전히 다르다. 자연스럽게 자란 나무의 내부구조는 아주 균일하다. 이러한 나무를 이용하여 제작된 경이적인 목재 악기(스트라디바리어스는 자신의 이름을 딴 유명한 바이올린을 바로 이러한 나무를 이용하여 제작하였다.)는 그 재질이 아주 수려할 뿐 아니라, 내구성을 가진다. 이들 나무가 보여주는 최상의 품질에 비해 오늘날의 수목재배법에 의해 생산된 나무의 품질을 비교해 보면, 자연적인 과정에 대한 인간의 잘못된 이해로 인하여 앞으로 우리 인류가 겪을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숲이란 우리 인간이 파괴하고 약탈해도 되는 자원의 창고가 아니라, 생태계내에서 특별히 중요한 역활을 담당하고 있는 한 부분이다. 특히, 산악 지역에서의 숲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오늘날 숲을 파괴함으로 인하여 인류가 겪는 손실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과학사에 한 획을 그었던 획기적인 과학발명들 - 초기에는 인류의 복지에 막대하게 기여할 것이라 여겨졌던 - 조차도 이제는 재앙의 원흉으로 밝혀지고있다. 아마도 지금까지 우리가 저질러 왔던 잘못으로 인하여 인류문명이 파국을 피하기에는 너무 늦었는지도 모른다. 어떠한 특정형태의 식물들이 이미 멸종했고, 그로인하여 생태학적 균형을 깨트리는 커다란 구멍이 발생하였다. 연쇄적으로 또 다른 종류의 식물이 동반되어 사라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이유로 지하수의 공급량이 줄고, 지하수를 통해 공급되던 영양물들도 줄었다. 오늘날의 산업구조하에서 목재의 수요는 오히려 늘어나서 속성재배에 바탕을 둔 현대적 목재생산방식이 널리 이용되고, 그 결과 목재의 질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숲에서는 자연스런 생태계가 파괴되고, 그로 인하여 숲을 둘러싼 대지로의 영양공급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남벌로 인하여 숲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특정 형태의 수목들이 죽어버린 결과, 토양에서도 영양결핍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태양광선이 쉽게 지표면에 도달하기 때문에 지표면의 온도는 올라만 간다. 이러한 상황은 생태계에는 필수적인 영양소를 포함한 지하수가 더 이상 지표면으로 분출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필수 무기물질이 묘목의 뿌리보다 더 깊숙이 머물게 한다. 묘목의 뿌리는 더 이상 영양을 원활히 공급받지 못한다. 결국 많은 식물들이 죽어 사라질 것이고 쓸모 없는 땅으로의 사막화 현상을 초래할 것이다.
<숲은 대지의 에너지 공급센터다>
‘자연적으로 조성된 숲은 주위 대지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센터다’라고 빅터는 강조한다. 개개의 나무에서는 일련의 복잡한 과정에 따라 그 주변으로 에너지를 방출한다. 빅터는 이러한 이유로 나무를 소형 발전기로 보았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물을 통해서도 이러한 에너지는 방출된다. 이러한 에너지는 식물이 성장하기 위한 기본요인이 되고, 또한 지하수가 생성·용출하도록 도와준다. 오늘날의 임업기술로 인하여 숲에서의 자연적인 생태계는 바뀌었다. 생태계가 바뀐 숲에서는 더 이상 이들 에너지를 방출하지 못한다. 이제 그 피해는 너무나 막대하다. 다양한 형태의 초목이 어우러졌던 숲에서는 숲 전체에서 에너지가 방출되었다.
빅터는 식물이 생화학적 재생과정과 생동력적 순환과정을 통해서 광물질의 축적과 변환 과정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였다. 활엽수나 침엽수의 개개의 잎들은 아주 효과적으로 작동되는 일종의 금속공장이다. 이 녹색잎의 작동여부는 실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
단풍으로 물든 나뭇잎들은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로 흩어지면서 그 속에 포함 된 금속들을 대지에 공급한다. 식물들이 많은 지역일수록 유기 금속염들은 더 많이 대지에 공급되게 되고, 겨울동안 내린 눈에 의해서 단단하게 압축된다. 이렇게 공급된 금속은 인체에서의 피부와 똑같은 역활을 하게되는 절연피부(insulating skin)층을 대지위에 형성시키는데 중요한 역활을 하게 된다고 빅터는 생각했다.
낙엽들 속에 포함되어있던 금속 물질들은 지표면에서 일종의 정밀한 금속격자층를 형성하여, 음극으로 대전된 지면과 양극으로 대전된 대기가 서로 분리될 수 있도록 유기적인 확산여과막을 조성한다. 이러한 체계는 식물의 성장과정에 있어서 필수적인 선결요건이다. 이와 같이 나무에서는 모든 생명체에 미세원소의 형태로서 필요한 중요 금속물질이 합성된다. 자연스럽게 조성된 숲을 통해서 물이 흐르고 다양한 형태의 금속물질들은 주변의 대지로 공급된다. 이들 미세 원소들은 또한 물이 살아 있도록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기본 매체이다.
빅터에 따르면, 숲은 기후를 개선시킬 뿐만 아니라 다양한 활성작용을 한다. 그는 이상적인 지표수에 대한 규정 조항으로 이러한 숲의 작용을 포함시키고, 이러한 숲의 작용을 ‘물의 요람’이라고 불렀다. ‘물의 요람’은 미세 원소와 무기물을 생산하며, 다양한 영양소를 합성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
<숲이 파괴 되었을 때 발생하는 생태학적 결과>
우리가 더 이상은 숲을 파괴해서는 안된다고 인류에게 경고했던 여러 선각자중의 한명이 빅터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 저질러진 숲에 대한 약탈 행위에 대하여 빅터는 괴로워하고 걱정하면서, 그가 행한 연설과 글들을 통해 열정적으로 강연하고 있다. 숲을 개발하여 자원화하려는 일반 대중들의 생각을 바로 잡기 위해서 그는 정부에 탄원하기도 하였는데 1928년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기고 있다.
“숲과 숲이 처한 상황에 관하여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불행히도 나는 숲은 죽어가고 있다고 쓸 수밖에 없다. 자연에 대하여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 사람들의 손에 의해 죽어가는 숲을 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일깨워야만 한다. 사람이 죽으면 종을 울린다. 숲이 죽게되면 숲과 함께 한 사람도 남김없이 우리 인류도 썩어 사라질 것이다. 숲의 죽음은 인류의 죽음에 대한 전주곡을 의미한다. 숲을 수십년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 놓기 위해서는 아마도 수백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일반 대중들은 숲의 상태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숲을 볼 수 있고, 오늘도 옛날처럼 많은 목재(木材)가 문제없이 생산되고 있다는 통계자료에 현혹되어 진실을 모르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은 그나마 남아있는 숲의 상태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는 진실을 단순히 덮어 둔 것일 뿐이다.”
빅터는 쓰라린 경험을 통해서, 주요 숲들이 파괴된 결과 수자원도 더불어 고갈되는 것을 알고 있었다. 1930년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 인류가 울창한 숲에 대한 무의식적인 파괴 행위를 이제라도 멈출 수 있는 힘과 의지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 인류가 받을 수 있는 최상의 구원일 것이다. 불행하게도 숲은 인간의 생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인류는 어떠한 방식으로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숲은 모든 생명체의 생명원 인 물을 보살펴주는 물의 요람이며 물의 천국이다. 만약 인류가 물의 천국을 파괴하면, 그때 물은 안식처를 잃고 최악의 위험에 처할 것이다. 숲이 사라지면 물이 사라지고, 물이 사라지면 먹거리도 사라지고, 먹거리가 사라지면 모든 생명체도 사라져 버릴 것이다. 종국에야 사람들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의 모든 재앙은 토양, 물, 그리고 공기 등을 오염시킨 바로 인간 자신의 잘못된 행위로부터 야기된 것이라는 것을....”
빅터에 따르면, 숲에 대한 문제는 인간이 파괴하지 않은 숲이 아직도 남아 있느냐는 사실이 아니라, 현재 인류가 사용하는 방법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숲과 물에 관한 자연의 법칙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숲에 대한 파괴 행위는 오늘도 대대적으로 계속되고 있으며, 어느 곳에서나 놀라운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지하수 수위까지 땅이 함몰되고, 무시무시한 홍수가 유발되고, 비정상적인 폭우가 내리고, 농업에서는 소출이 줄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우리 인류가 자연을 잘못 관리한 댓가이다.
“우리 인류는 자연의 질서가 어떻게 잘 유지되고 있는지 혹은 자연의 운동법칙은 무엇인지 거의 이해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인류는 자연의 자기조절 작용을 방해하기만 하는 아주 조잡한 기술들을 도입하여 자랑스럽게 이용하고 있다. 사람들은 숲이나 식물계가 기름진 토양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실제로 우리 인간의 피부와 육체와의 관계 만큼이나 밀접한 관계이다. 사람들은 오로지 숲에서 생산되는 것을 이용하고 싶은 욕심때문에 숲을 둘러싼 주변환경이 완전히 파괴된다 할지라도 그 점에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러나 잘못된 개발로 인하여 숲의 경제적 가치는 분명히 계속 떨어지지만, 숲을 개발하려는 무책임한 방법들이 지금도 여전히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다. 그 결과 모든 문명의 가장 기본요건이 되는 숲의 운명은 죽음에 직면하고 있다.”
비록 이러한 글들이 1930년대에 기록되었지만, 지금 1980년대말에 이르러 오히려 더욱 강렬하게 메세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수백만의 사람들이 직업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다. 이제는 다시 숲을 되살려야 하며, 숲과 조화를 이룬 물길과 그 물을 저장할 수 있는 호수가 되살아나야만 하며, 모든 생태계가 올바른 균형을 회복해야만 한다. 그러면 숲을 통해서 강물이 흐르고, 강물은 우리에게 건강한 물을 충분히 제공해 줄 것이다. 그 동안 자연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시킨 결과를 초래한 우리 인류의 어리석음을 이러한 시도를 통해서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계획만이 문자 그대로 인류의 구원을 위한 마지막 남은 희망이다.”
빅터는 자연적으로 조성된 숲만이 모든 생명체를 위한 건강한 물과 양식을 제공하는 바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자연적인 숲이 파괴되면, 자연적인 생명수가 제일 먼저 영향을 받고, 그와 더불어 다른 모든 유기체들도 영향을 받는다. 음식물의 질이 떨어지고, 사람들은 생명활력이 점점 결핍되고, 그 결과 각종 결핍성 질환, 순환계통 질환, 종국에는 암 같은 질환에 대한 면역성을 상실하게 된다. 빅터는 이러한 현상을 숲과 물의 자연적 과정이 교란되어 발생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숲을 자연상태 그대로 보존해야만 우리 인류의 건강한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건강한 숲이 사라지면 건강한 물이 있을 수 없고, 건강한 식물도 동물도 존재할 수 없다. 숲과 물에 대한 잘못된 관리체계로부터 오늘날의 모든 생명체의 근본적인 질(質)저하가 초래되었다.”
우리 주변의 숲을 파괴하면 생태계에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빅터는 자신의 경험중 하나를 예를 들어 이야기 한적이 있다.
짤즈캄머구트(Salzkammergut)에는 상당히 유독하다고 알려진 샘이 하나 있었는데, 이 샘물은 방목하는 짐승들이 마시지 못하도록 폐쇄되어 있었다. 한번은 빅터가 늙은 사냥터지기와 함께 그곳을 방문했었다. 사냥터지기는 그 샘 주위로는 접근조차 하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잠깐 부주의한 순간에 빅터의 개가 달려가서 그 샘물을 마셨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도, 개는 아무 탈없이 지극히 정상적으로 뛰어 다녔다. 이러한 일이 있었기에, 빅터 자신도 용기를 내어 샘물을 직접 마셔 보았다. 물을 마시자 처음엔 약간의 현기증이 느껴졌지만, 금새 모든 감각이 평상시보다도 휠씬 신선하게 회복되었다. 그는 그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샘 주위로는 산양이 왔다간 흔적이 있었다. 샘 주위에는 다양한 고산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 식물들에서 묻어 나온 액체 때문인지 우리의 등산화엔 기름막이 만들어졌고, 수정처럼 맑은 샘물 위에도 드문드문 기름막이 떠 있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샘 주위에 피어있는 핏빛처럼 붉은 색의 알프스 장미였다. 장미는 핏빛 카페트처럼 샘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는데 장미의 잎은 마치 금분을 뿌려 둔 것 같았다. 금분은 돋보기로 보아야 겨우 보일 정도로 아주 미세하였는데, 이러한 형태의 장미 잎에는 분명히 금속 물질이 함유되어 있다. 이상하게도 이 샘물은 영하 30℃의 혹독한 겨울날씨에도 얼지 않았다. 늙은 사냥터지기는 샘 주위로 여우덫을 설치했다. 샘 주위는 이끼로 덮여 있어서 빛에 전혀 노출되지 않았다. 샘물은 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부드러웠고 냄새도 없이 잘 유지 되어 있었다. 외부 온도가 내려 갈 수록 샘물은 오히려 더 따뜻해졌다. 대기 중의 온도가 영하 30℃일 때, 물의 온도는 영상 10℃까지 상승했다. 반면, 지독히 더운 여름날에는 샘물의 온도는 항상 영상 4℃ 정도의 온도(물은 영상 4℃ 에서 밀도가 가장 높고, 물의 에너지도 강화되는 특이한 성질을 보여준다.)로 유지되었다. 이 때가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숲은 대략 600∼800m 넓이 만큼씩 줄어들었다. 전쟁이 끝난 그 다음해 봄쯤에 이 샘물은 거의 말라 버렸다. 앞서 언급했던 기름막도 완전히 사라졌다. 물은 신선도를 잃었고, 덩달아 주위의 약초들도 사라졌다. 뒤이어 산양들이 즐겨 뜯어먹던 풀들도 말라죽었다. 갑자기 이 지역엔 옴이 발생했다. 이러한 질병은 지금까지 이 지역에서 발생한 전례가 없었던 것이다. 대부분의 산양들이 이 질병의 희생물이 되었다. 단지 길을 잃어버리지 않고 샘 바로 주변에 머물렀거나 숲이 손상을 입지 않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산양들만 살아 남았다. 지나친 벌목으로 인하여 금속 물질형태를 다량 함유한 약초들이 더 이상 살아 남지 못하게 되었고 산양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높이의 산에서는 더 이상 그들의 생명활성을 유지시키는 필요한 먹이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병에 걸려 죽거나 보다 높은 산 속으로 옮겨가야 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면, 숲을 뿌리째 제거하면 산양들이 겪은 것과 똑같은 고통을 인류도 받게 될 것이라고 빅터는 말한다.
숲에 대한 빅터의 견해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숲이란 단지 인간에게 필요한 기초 물질이나 양질의 음식물을 얻게 해주는 창고로만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그것과 동시에 신선한 물과 기름지고 풍성한 토양을 유지시켜주는, 활력이 넘치는 생명의 근원이다. 숲은 다양한 에너지를 생산하고 숲 자신의 경계를 넘어서 그 주변까지도 활력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숲은 바로 생명수가 만들어지고 살아가는 요람인 것이다.
2. 다양한 종류의 나무와 덩쿨 그리고 풀들이 자연스럽게 자랄 수 있고, 그것들이 서로 땅 위나 뿌리 근처에서 상호 관련을 맺을 수 있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숲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물의 완전한 순환은 적절히 이루어 질 수 없다. 미생물이 풍부하게 존재하는 지표 토양이 기름질 수 있는 바탕은 미세 원소와 다양한 영양원인 금속염이다. 이들 미세원소와 금속염의 생산은 물이 완전한 순환을 이루어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3. 자연스럽게 조성된 숲이 없다면, 물은 땅속에서 충분히 성숙되었을 때 지표면으로 샘솟을 수 없고, 강물을 따라 흘러 갈 수가 없다. 물은 자연적인 숲으로 감싸주지 않으면 지표면에서 물 자신의 자연적 기능을 발휘할 수 없다.
4. 자연스럽게 조성된 숲은 흘러가는 물줄기를 따라서 주변지역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발전소다.
5. 나무를 심고, 솎아주고, 벌목하는 방식인 소위 말하는 현대적 임업방법은 살아있는 유기체들의 복잡한 상호관계를 교란시킨다. 그러한 숲에 대한 개발 방법은 물과 음식물에 대한 생물학적 쇠퇴 효과를 보이기 때문에, 바로 인류 자신에 대한 심각한 위협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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