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강하게 싫어했고 저항했던 것은 내가 나의 주변에서 보는 고통 – 병과 빈곤 – 이었다.
그것이 나를 격노케 했고 — 나는 열성적으로, 큰 소리로 화를 냈는데, 누더기를 걸친 사람들, 야위고, 굶주리고, 병에 걸리고, 불구가 된 사람들을 볼 때, 여전히 그들이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무정하게 협박당하는 것을 볼 때 말인데, 그 지도자들은 사람들이 복종하지 않으면 여호와의 징벌로 그들을 위협하면서, 사람들에게 의미 없는 전통적 율법과 그 준수를 강요했다. 나는 나에게 귀를 기울일 모든 이들에게 선언했는데, 이 가난한 사람들이 기쁨을 억제하는 무자비한 조치들로 억압하지 않아도 견뎌야 할 충분한 것을 가졌다고 말이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면, 도대체 삶의 요점이 무엇인가?
무엇을 보고 깨닫고 지각했는가
나는 유대 전통들에 따른 "정의로운" 신을 믿기를 거부했다. 사람들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과 분노"에 관한 성경의 경고 예언들은 혐오스러웠다. 사람들은 인간이며, 인간의 속성상 인간은 그들이 하도록 자극받는 일을 결국에는 하게 된다. 그들이 진정 처음부터 죄인으로 태어났다면(창조되었다면).. 그렇다면 왜 그들이 태어난(창조된) 대로 살아서 십계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고통스럽고 빈곤한 삶을 살면서 심판받고 저주받아야만 하는가? 그러한 설명들의 어디에 진실한 의미가 있는가?
나는 이 유대 신앙이 "비논리적이고 잔인한 신"을 묘사했다고 느꼈으며, 나는 "그"와 아무런 관계가 없기를 원했다. 만약 그러한 신이 존재한다면.. 내게는 인류가 영원한 고통으로 저주받은 것처럼 보였다. 언덕의 기슭에서, 평원에서, 호수에서, 산에서 찾은 단순성과 자유는 나의 가장 깊은 내면(영)에 생기를 주었고 유대의 신(여호와)에 관한 화난 중얼거림을 가라 앉혔다. 결과적으로 나는 유대의 장로들이 가르치려고 했던 말을 거부했다.
그러나 20대 중반에 새로운 의문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혼자서 때때로 언덕을 걸을 때에 나의 전통적 가르침들에 대한 반항심은.. 창조를 통해 확실한 영감을 주고 생명이 호흡하게(살아있게) 하는.. 그러한 진정한 속성을 알고 이해하려는 '진실에 대한 열망'으로 점차 대체되었다.
나는 나의 생활방식을 검토했고. 나의 행동이 어머니와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고통을 가져왔는지를 보았다. 비록 내가 약자와 고통받는 자들에게 그처럼 깊은 연민을 느꼈다 해도.. 나의 반항적인 속성은 가족들에 대한 많은 경솔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유발했다. 그들에 대한 근본적인 사랑이 이제 내 안에서 솟아올랐고. 나 자신의 과거의 행위에 대해서도 똑같이 거부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나는 세례 요한에 대해서 들었고(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유대인들 가운데서 그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들었다.) 그의 말을 듣고 그를 통해 나 자신을 세례하기 위해 그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세례 요한을 찾아 요단강으로 가는 길에서.. 나는 세례 받고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는 전망에 기쁨을 느꼈다. 나는 나의 거침없는 감정에도 불구하고 또한 스스로 민감한 지능과 통찰력 있는 인상적인 토론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음을 알고 있었으며.. 의도적이고 부정적으로 그 능력을 사용하면서 사람들을 난장판 논쟁으로 이끌고. 아집과 나태와 쾌감에 잠긴 생활을 함으로써 나의 재능들을 버렸다. 그 결과 다른 이들은 나에 대한 존중심을 버렸으며 또한 나는 참된 자존감도 갖지 못했다. 처음으로 나는 스스로 이것이 참을 수 없는 일임을 발견했다. 나는 앞으로 나의 천부적 능력들을 더 좋게 사용할 수 있으며.. 또한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재능으로 논쟁을 일으켜 소란을 만드는 대신에.. 그처럼 깊이 동정했던 자들의 짐들을 가볍게 해줄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 시간까지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나의 세례 MY BAPTISM
요한에게 세례 받기 위해 요단강의 물속으로 들어갔을 때.. 나는 일단 나의 행위를 바로잡는 긍정적 걸음을 취했다는 안도감 외에 다른 것은 기대하지 않았다. 집에 가서 어머니와 이웃들을 친절한 태도로 놀라게 해주려는 결심이 있었다.
요한이 나를 세례 했을 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은.. 내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그 무엇과도 전혀 다른 체험이었다. 그 순간에 나는 몸을 통해 강렬하게 쇄도하는 파도같이 거대한 에너지를 느꼈다. 그 순간 말 그대로 망연자실했다. 내가 강에서 비틀거리며 나왔을 때 나는 가장 특별한 방식으로 의식이 고양된 자신을 느꼈다. 타오르는 행복감의 거대한 유입이 나의 의식을 희열의 상태로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나는 황홀해졌고 거대한 빛을 자각했다. 나는 비틀거리면서 강물로부터 걸어 나오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걷고 또 걸었다. 나는 보지도 않으면서 계속 사막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부디 특기할 것! 사막에서의 6주간은 나의 인간적 의식의 완전한 내적 청산의 시간이었다. 옛날의 태도와 믿음과 편견들이 완전히 용해되었다.
내가 '느꼈고' '보았고' '깨달았고' '이해했던'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과 나눌 시간이 왔다.(사람들이 성경의 "신(deity)"에 대한 낡은 상상적 그림들을 버리는 것을 돕기 위해서.. 나는 그 단어로 "신(God)"을 지칭하는 것을 피할 것이고. 모든 지구의 형태와 색깔과 소리와 감정과 이해를 넘어서.. "진정 존재하는 것(what really is)"을 포용하도록 당신들의 마음을 확장하는 의도된 용어를 사용할 것이다. 이 용어는 당신들이 명상과 기도 속에서 묵상할 때 더욱 의미가 깊어질 것이다.)
사막에 있었을 때 내가 느꼈던 것 WHAT I FELT WHEN IN THE DESERT
나는 내면의 환한 빛 속에서 들어 올려졌고 활기를 느끼며 힘과 함께 경이롭게 살아있음을 느꼈다. 나의 내면은 모든 의심을 넘어 희열과 기쁨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 힘이 창조된 모든 것들이 그 존재를 부여받은 진정한 창조자였음을 알았다. 더이상 덧붙일 필요가 없는 그 아름다운 순간에 느낀 이 영광스러운 내적 조화와 평화와 완전한 성취의 느낌은 "실재(reality)"의 바로 그 속성이었고 창조와 존재에게 생명을 주는 "창조적 힘(Creative Power)"이었다.
사막에 있었을 때 무엇을 보았고 깨달았고 지각했는가?
나는 의식적 지각의 또 다른 차원으로 들어 올려졌고 그것을 통해 나는 생명과 존재에 관한 진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선명하고 명확하게 '실재인 것'과 인간 생각 속의 '거짓인 것'을 보았다. 내가 체험하고 있던 이 "창조적 힘"이 무한하고 영원하고 우주적이며 하늘과 대양과 지구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넘어 모든 공간을 채우고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것이 마음의 힘임을 보았다. 그것은 마음의 창조적 힘이었다. 이 "신성한 창조적 마음의 힘(DIVINE CREATIVE POWER OF MIND)"이 없는 곳이 없었다. 나는 인간의 마음이 신성한 창조적 마음으로부터 나왔으며 동시에 그것이 태양이 비추는 하나의 촛불에 지나지 않음을 깨달았다.
가끔 인간적 시각이 너무나 영적으로 고조되어서 바위나 흙이나 모래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이것들이 이제는 "아주 작은 티끌들의 아른거림"으로만 나타날 뿐이다. 정말 아무것도 진실로 단단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것이 진정 그럴 수 있는가 하고 의심하는 그 순간 현상 속의 변화들이 멈추었고 훨씬 나중에야 나는 그것을 알았다.
나의 생각들이 만약 확신으로 강하게 부추겨진다면 "티끌들의 아른거림(보이는 물질들)" 속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으며(과학은 현재 그것을 전기적으로 충전된 입자들로 부른다.) 따라서 나는 바위의 모양이나 내가 집중하고 있던 모양에 변화를 만들 수 있었다. 이 시점에서 나는 명령이나 신념을 말하는 순간에.. 확신이나 흔들리지 않은 믿음이 환경에 강력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더욱 놀란 것은 나의 마음의 열림을 통한 "우주적 의식 cosmic consciousness"의 깨달음이었는데.. 목격했던 모든 것은 진실로 "아주 작은 티끌들의 아른거림" 속에 그 자신을 보이게 만든 신성한 마음 그 자체의 "창조적 힘(Creative Power)"이었다. 이것뿐만 아니라 목격된 존재들의 형상(모양)이 인간 생각의 활동으로 인하여 심오하게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우주에는 진정 단단한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보이는 모든 것은 각각의 의식 상태를 나타내고 있음을.. 그것이 "티끌들의 아른거림(보이는 물질들)"의 구성과 형태를 결정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므로 모든 외적 형태는 내적 의식의 표현이었다. 생명(LIFE)과 의식(CONSCIOUSNESS)이 하나였고 같은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이것은 생명이고(This is LIFE) 저것은 의식이다(That is CONSCIOUSNESS)"라는 말은 진실한 말이 아니었다. 의식이 곧 생명이었고 생명이 곧 의식이었으며.. 둘 다 "창조적 힘(Creative Power)"이었고. 우주를 넘어 우주의 내부와 배후에 있는 "신성한 우주적 마음(DIVINE UNIVERSAL MIND)"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마음속에서 개체성과 형태에 최고의 중요성을 주었음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개별적 형태의 물체만을 인식하는 것 이외에 다른 효과적인 방식으로 일하는 마음이나 지능을 상상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유대인들은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인간 존재의 모든 특성을 가진 지고하고 방대한 존재에 대한 정신적 이미지를 창조하였고.. 그렇기에 예언자들이 여호와의 분노나 징벌의 위협이나 인간의 고집에 대한 반응으로 병과 전염병들이 온다고 굳게 믿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정신적 이미지들이 허구임을 깨달았다. 그런 것은 존재(실제)하지 않았다.
존재의 모든 차원에서 창조와 인간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요인이 곧 나타난 지성인 마음임을 지각했다. 그러므로 창세기는 다시 쓰여야 한다. 창조가 있기 전에 창조 그 자체의 내부와 배후에 "우주적 마음(UNIVERSAL MIND)"으로서의 창조적 힘이 있었다.
모든 논의를 넘어서 너무나 명확하게 우주적 마음의 창조적 힘이 하늘의 무한성 안과 지구의 형태 안을 포함한 모든 곳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본 다음, 내면을 통해 주위를 보도록 지시되었고 그 순간에는 오직 자갈과 바위만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갑자기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식물과 관목과 나무들이 자라고 심지어 나무들 속을 새들이 돌아다니고 동물들이 풀을 뜯는 한 아름다운 땅의 모습을 내면에서 계시 받았다.
나는 이 비전을 경탄스럽게 보면서 식물과 나무들을 포함한 그 모든 것이.. 심지어 새와 동물들이 실제로 무한히 작은 실체들의 수백 개의 커뮤니티들(과학자들이 "세포들(cells)"이라고 부르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모든 것들이 내부 시스템의 물질들과 다양한 기관들을 통하여 "살아있는 완성된 실체의 외형을 형성하기 위해서 협력하는" 전체적인 조화로운 영속에서 끊임없이 일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긴 시간 동안 이 경이로운 활동을 숙고했다. 응시하고 응시하며 생각했다. "과연 누가 털과 가죽의 외부 껍질 안과 실체들의 아주 작은 커뮤니티들 안에.. 그토록 다양한 종의 몸과 생명과 형태에 영양과 치유와 보호와 인내를 주기 위해 함께 일하는 그처럼 강렬한 활동이 있다고 추측할 수 있었을까?"
나의 관심을 끌어당긴 것은 "전 존재를 위하여 초월적인 지성으로 수행된 일(WORK)"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깨달은 그러한 일(work)은 창조적 힘의 활동의 일부였는데.. 그러한 일은 살아있는 시스템들 안의 가장 작은 "실체(entity)"인 하나의 세포로부터 우주에서 가장 진보된 실체인 인간 그 자신까지도 아우른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시스템들 안에서 모든 노동(work)이 궁극적으로 신성한 창조적 힘의 지시 아래에 있었으며 그 안에 창조의 계획과 설계들이 있었다. 나는 이 계획과 설계들이 실제로 "의식 상태"들 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또한 그것들이 말들(WORDS)로 표현될 수 있음을 보았는데 그것은 각 단어(WORD)가 각각의 독특한 "의식"의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조적 힘 의식(Creative Power Consciousness)"의 본래 말(WORD)이 보이는 세계에 나타나게 되었다. 그 단어, 즉 그 "의식 패턴(Consciousness Pattern)"이 그 자신을 지속적으로 나타내면서 신성한 창조적 마음 안에 남아있다. 그때 우주의 모든 것이 우주적 마음의 창조적 힘(Creative Power of UNIVERSAL MIND)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그 존재를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었는데.. 그것은 무한하고 영원하며 개체화된 모든 형태의 모든 실현들 배후에 있는 "유일한 진짜 실체(Reality)"였다.
나의 내면은 세계 속의 모든 것이 신성한 마음(Divine Mind)의 지고한 "창조적 힘(Creative Power)"으로부터 나왔고 여전히 그 안에 있다는 찬양으로 가득 채워졌다. 나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살아있는 것들 안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이 모든 숨겨진 활동에 경탄했으며 어떻게 그 모든 것들이 오류 없이 목적된 모든 형태들을.. 나무 기둥과 잎과 꽃과 열매와 곤충과 새와 동물과 인간의 몸을 형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에 따라 지적으로 일하는 무수한 작은 단위들일 수 있는지 의아했다.
나는 그때 그 "창조적 힘"이 우주 속의 모든 "지적 활동"의 근원이었음을 더욱 명확히 깨달았다. 만약 인류가 지성을 소유했다면.. 그것은 오직 그(인류)가 "모든 존재의 우주적 근원(Universal Source of All Being)으로부터 지성을 끌어왔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그 순간 나에게는 신성한 창조적 힘이 항상 어떤 근본적이고 정확한 건축 원칙들에 따라서 일한다는 것이 보였다.
그것이 나에게 보였다.
인간들이 세상으로의 "자기-표현"을 통해서 대체로 분명한 특성과 잘 규정된 "속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창조적 힘도 명확히 규정된 "속성"과 구분된 "특성"을 가지며.. 그것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인 식물과 동물과 새와 인간들 각각이 독창적으로 형성되고 유지되는 양식으로 명확히 인식될 수 있었다.
나는 분명히 창조의 과정에서 관찰되는 이러한 "원칙(principles)"들과 "특성(characteristics)"들이 존재의 모든 것들을 다스리는 불변의 법칙들(LAWS)로 정해져 있음을 "보았다." 이러한 법칙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생명의 현상이어서 결코 질문되지 않는다. 그것은 정도를 벗어나지 않고 일관적이나 우주를 통해 그 자신을 나타내는 "창조적 지적 힘(Creative Intelligent Power)"이 없다면 그러한 법칙들도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창조의 ‘원칙’, 창조적 힘의 특성들은 다음과 같다. (그것을 당신들의 현재 시제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들 ‘원칙’들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1. ‘창조적 힘(Creative Power)’의 ‘속성(Nature)’은 성장(GROWTH)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항상 자란다. 성장(GROWTH)은 우주적 특성이고, 존재의 벗어나지 않는 원칙이다.
2. ‘창조적 힘’의 ‘속성’은 영양(NUTRITION)과 음식(NOURISHMENT)이다.
영양과 음식은 몸 안에서 정상적이고 경이롭게 조직된 모든 과정에 봉사하고 이 사실은 그것들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이들에게 명백하다. 영양은 각 개체의 선호에 따라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게 공급되며 음식은 건강과 행복을 촉진하기 위해 소화된다. 작은 생물이 태어날 때 젖이 어머니 속에서 이미 만들어지고 새로 태어난 아기를 위해 준비되고 기다린다. 이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존재의 신비스러운 원칙이다. 어떤 과학자도 "어째서" 종의 생존을 보장하는 시스템 안에 그러한 우연한 행운의 기능이 본래부터 존재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실제의 기능 그 자체는 이해될 수 있지만 그것이 존재하게된 본래 이유와 그 기능의 주된 부분이 이해되지 않는다.
3. ‘창조적 힘’의 ‘속성’은 치유(HEALING)이다.
치유는 존재의 자연적 특성이자 완전해지는 자연적 과정으로 말할 수 있으며.. 그것은 개인적(개체의) 위안을 보장하기 위해 일어나지만 아무도 무엇이 치유의 활동을 재촉하는지 설명할 수 없다.
4. ‘창조적 힘’의 ‘속성’은 보호(PROTECTION)이다.
보호는 창조적 힘의 통합적 특성의 일부이고. 세상에서의 외관상 "기적적인" 활동의 모든 것이 보호를 목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날의 의학 교과서들이 몸속의 다양한 보호 시스템들을 묘사하지만, 내가 사막에 있었을 때 나는 다른 방식으로 지적 창조적 힘 속에서의 일관된 보호의 특성을 "보았다.") 식물과 새와 동물들이 영감을 주는 관찰을 위해 나에게 제시(오게) 되었을 때.. 나는 어떻게 몸속의 모든 보호의 필요가 그토록 세심하고 지극한 관심으로 사랑스럽게 충족되었는지 볼 수 있었다.
5. ‘보호’의 이 특성은 필요성의 달성(FULFILLMENT OF NEED)의 다른 역동적 특성과 결합되어 있다.
이것은 머리카락과 털과 날개의 공급에서 명백하게 보았는데.. 살아있는 생물의 피부를 보호하고 추위 속에서 온기를 공급하고 열기 속에서 피난처를 제공하기 위해서 중요하고 민감한 손가락과 발가락의 부드러운 말단이 굽과 손톱/발톱으로 모두 공급되어 있음을 보았다. 눈썹은 땀으로부터 눈을 보호했고 눈꺼풀과 속눈썹은 먼지와 손상으로부터 눈을 보호했다. 또한 나는 파리가 꼬인 동물들이 파리를 재빨리 쫓기 위해 꼬리들을 갖추고 있음을 깨달았다.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 사랑과 배려가 이들(생명)의 작은 육체적 특성들 안에 표현되어 있는가? 너무나 작고 하찮게 보이는 그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편의는 그처럼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기본적인 육체적 설계에 덧붙여진 이러한 육체적 부가물들은 분명히 지능의 산물이었고. 그러한 지능의 근원은 창조가 안락하고 행복한 방향으로 이루어지기를 의도했으며.. 이러한 "부가물들"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인간과 동물은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다른 자연적 기능들도 감사하는 마음을 불러올 만큼 너무나 지적이고 안락하게 설계되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 은밀하고 훌륭하게 정돈되고 설계되었다. 인간이 그처럼 경이롭게 주어진 삶으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이고 얼마나 복된 일인가! 다시금 나의 기도들이 내면으로부터 솟아올랐고 황홀한 경이감의 내적 황금빛으로 들어올려졌는데, 내가 그순간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이 스트레스로부터의 자유와 더불어 또한 창조적 힘의 생동하는 사랑스러운 속성을 표현하도록 설계되어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들이 그 모든 수족들을.. 팔과 손과 다리와 발과 손가락들과 발가락들을 갖추었는데, 그렇기에 그들은 돌아다니고 달리고 뛰어오르고 춤출 수 있고 그들의 내면의 생각과 느낌들을 표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만약 인간이 나는 것을.. 날개를 갖기를 열망한다면, 그들이 온 가슴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인간은 날 수 있게 만들어줄 부가적인 것을 기르기(창조하기) 시작할 것임이 보였다.
"창조적 힘"의 속성을 이해하는 이 시점에서 나의 내면은 우주적이고 지적인 창조적 힘의 일을 지시하는 사랑의 완전한 의식 속으로 왔다. 이 사랑을 숙고했을 때.. 나는 창조 속의 "어머니"가 모든 생명에게 영양을 주고 보호하고 필요한 것을 성취하게 하며 자손의 치유를 촉진하려고 부단히 노력함을 깨달았는데 이것이 곧 사랑의 활동이다.
6. 또한 모든 창조물들에게 그 모든 개별적 형태와 "존재성(being)"를 준 "사랑스러운 지적 창조적 힘(LOVING INTELLIGENT CREATIVE POWER)"의 내적 특성은 "일(WORK)"이다.
그것은 우리를 위해..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통해 일한다. 그 "일(Work)"은 언제나 어느 때나 모든 순간에 사랑으로 재촉된다. 이 우주적 계시는 나를 기쁨과 경이로 가득 채웠다. 우리는 얼마나 경이로운 세계에 살고 있는가! 그러한 깨달음은 "전 존재의 근원에 관한 진실"에 대한 나의 깨우침과 나의 전체 견해에 절정의 점이 되었다.
나는 살과 뼈와 피로부터 눈과 머리카락에 이르기까지.. 몸의 다양한 구성 부문들을 생산하기 위해 협력과 조화의 영(spirit)속에서 일하는 동일한 "무한히 작은 실체"들의 다양한 커뮤니티들로 구성된 육체의 실체를 이미 "보았다."
이들 커뮤니티들 사이의 유일한 차이점은 그들의 공통된 목표가 요구하는 일의 종류에 있었다. 확실히 몸속의 지적인 목적을 가진 모든 활동 배후의 신성한 충동은.. 사람들이 계획된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일체가 되어 있을 때 인간의 행동을 돕는 영감의 근본이었다. 인간은 창조적 힘으로부터 지성과 목적을 끌어왔으나, 각자가 세속적 건설이나 다양한 모임의 일(과제)에 종사할 때.. 인간의 행위는 각자가 얼마나 다른가? 그렇기에 그것은 불가피하게 논쟁과 갈등의 씨앗으로 남는다.
나는 어떤 곳, 어느 때의 인간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질서와 협력과 조화와 매일의 생산성을 유지하면서 창조 안에서 언제나 활동하는 "지적 창조성"의 무한한 힘을 깨닫게 되었다.
7. 생존(SURVIVAL)은 ‘창조적 힘(Creative Power)’의 하나의 자연적 특성이었다.
개개의 경우에서,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이 지구상에서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그 자손을 생산하기 위해 성장하고 병과 부상으로부터 치유되고 영양분을 받도록 가장 훌륭한 공급이 이루어졌다. 이것은 인간이 절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현실이었고 그 활동은 해마다 한결같았다. 태양과 달과 별들.. 모든 것들이 몇 천 년 동안 그들의 자리에 있고 모두가 그들 자신의 운동 경로를 가지고 있음이 인식되었으며 이 현상은 창조 속의 생명의 생존을 위한 장대한 계획의 모든 부분이었다.
만약 이것이 그렇다면, 우주 속의 모든 창조된 실체들 안에 숨은 "사랑스러운 지적 창조적 힘"인 영원한 불꽃의 생존이 어떻게 없을 수 있는가? 그러므로 이 세계는 이 차원을 넘어서 있는 "사랑스러운 지적 창조적 힘"의 숨은 세계들의 하나의 그림자와 이미지에 지나지 않았다. 창조의 총체적 실재가 이 보이는 세계 너머에 놓여 있었다.
8. 사랑스러운 지적 창조적 힘의 일관된 특성은 "리듬(RHYTHM)"이었다.
나는 세계 속에서 일하는 하나의 리듬이 있음을 보았다. 모든 것이 생명의 개화와 급성장과 점진적인 휴식과 죽음을 준 계절들로 종속되었고. 성장하는 계절에는 식물들이 무르익어 수확으로 이어지며 식물 생명의 생존을 보장하는 씨앗들의 생산으로 갔다. 그런 다음 점진적인 죽음과 겨울의 휴식 기간이 있었다. 그러나 창조된, 살아있는 어떤 것도 멸종하도록 허용되지 않았고. 살아있는 생명들은 피할 수 없는 변화를 거치며 끊임없이 이어졌다. 태양과 달은 우주 안에서 이러한 특성들을 표현했다. 이러한 리듬은 생명체의 "여성/암컷" 안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창조 속의 모든 것은 나타남과 수확을 위한 적당한 때를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 인간 자신도 성장과 성공 그리고 휴면의 조수에 종속되어 있었다.
9. 사랑스러운 지적 창조적 힘의 고유한 특성은 "법과 질서(LAW AND ORDER)"였다.
창조 안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 질서와 신뢰, 심지어 "몸속의 아주 작은 실체들(세포들)"의 다스림은 정말 놀라웠고 그 어떤 인간의 노력보다 일관되고 경이로웠다. 진실로 전 우주가 완전한 "법과 질서(LAW AND ORDER)"의 하나의 시스템 아래서 일하고 있었다.
나는 점점 높아지는 영적 고양의 수준들에서 "창조적 힘"이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위해 지적인 목적감과 사랑스러운 관심을 보여주었음을 깨달았다. 생명이 희미하거나 형태가 없는 것이 아니며.. 내가 실제로 나 자신 안에서 엄청나게 고조된 존재의 상태.. 지각의 빛남과 희열과 기쁨과 사랑으로 느낄 수 있는 지적이고 사랑스러운 창조의 힘을 보고 느끼고 깨달았다. 나 자신이 그것과 하나됨을.. 그것으로 가득 채워져 있음을 알았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과 하나임을.. 하늘과 별들도 나와 하나임을 알았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경이롭고 영광스러운 것은.. 이 "아버지(Father)"의 바로 그 "속성(Nature)"과 "기능(Function)", 즉 창조의 힘(Creative Power)이 인간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서.. 기쁨과 아름다움과 위안을 창조하기 위해 일한다는 것, 인간 안에서 내적 기쁨과 건강과 위안을 공급하기 위해 일한다는 것, 인간에게 새로운 깨우침과 이해와 영감을 주면서 인간을 통해 일한다는 것이었다.
영광스러운 창조성의 멋진 광경들이 마음으로 왔다. 일단 우리가 진실로 "하나가 될 때".. 그리하여 "지적 창조력"의 순화된 채널과 도구가 될 때.. 우리 모두는 우리의 마음과 가슴을 통해 "우주적 창조력"의 바로 그 "속성"을 진실로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점차 의식에서 상승할 수 있다. 그때 "지구상에서의 삶"이 실로 모든 순간에 "천국의 상태"가 되며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상태로 들어간다!
이것이 창조의 배후에 있는 진정한 목적임에 틀림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의 의식이 진화하고 발달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라는 것이 고양과 사랑스러운 기쁨의 고조와 함께 나에게 왔다.
그러나 현재 이 시간에도, 비록 인간의 생각과 행위가 그토록 불완전하고 오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인류에게는 그 어떤 일도 불가능하지 않은데.. 그것은 인류가 "창조적 힘"과 하나이고. 그러한 "창조적 힘"이 그의 안에 있으며 그에게 생명과 수족과 그가 필요로 하는 다른 모든 것을 주기 때문이다.
이 모든 깨달음이 나의 의식을 거의 참을 수 없을 정도의 황홀감, 고양됨, 지고의 희열의 높이로 들어 올렸다. 나는 몸 안의 힘이 확장되어 용해되었음이 틀림없다고 느꼈다. 나는 빛으로 빛났고 내 주위로 온통 사막의 풍경을 밝히는 빛을 볼 수 있었다. 나의 가슴이 찬양 속에서 노래 불렀다. 우리 속에서, 우리를 통해,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일하는 사랑스러운 창조적 힘은 얼마나 경이롭고 아름다운가! 창조는 얼마나 놀라운 기적인가!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고 창조자이면서 피조물 안에서 그것을 통해 실현했습니다. 전체 우주안에는 신성한 생명이자 당신 자신인 "창조적 힘"의 의식의 제한 없고 영원한 무한으로부터 떨어지거나 분리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그런데 어떻게 인간이 그처럼 죄를 짓는 것이 가능하며 그리고 왜 사람들이 질병과 불행과 빈곤의 고통을 겪습니까? 나에게 말해주세요. 오 사랑하는 사랑의 "아버지", 창조적 힘이여.. 내가 그들의 불행한 삶의 고통으로 무겁게 부담을 느낍니다."
그때 나에게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세속적 조건"의 현실이 보였다. 나는 광대한 흥분을 느꼈는데 마침내 내가 그토록 사랑스러운 신성한 "창조적 힘"이 어떻게 창조물들이 그러한 불행을 견디도록 허용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창조 안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서로에게 오직 사랑만을 펼치는 존재들의 질서 있는 사회 안에서 빛나도록 건강하게 보살펴지고 양육되고 보호되며 치유되고 평화 속에 유지되며 풍요롭게 번성하는 것이 보였다.(그러나 창조의 순간에, 두개의 기본적 충동이 개체성을 보장하면서 존재로 나왔는데 이것은 인간의 의식을 지배하는 것이었다. 이 충동들은 세부적으로 설명되었지만 이 지식은 당신들이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때 제시될 편지를 위해 남겨둔다.)
이어서 뒤따르는 생생한 비전이 보였다. 무엇보다도 먼저 나는 "빛"으로서 "창조적 힘"의 생명 형태로 새로 태어난 아기를 보았다. 그 아기가 어린아이로 이어서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창조적 힘"의 순수한 빛이 점차 흐려졌고. 그런 다음 사슬들과 끈들로 무겁게 감겨서 그 안에서 온통 불투명해졌다. 나는 비전의 의미를 질문했고 곧바로 나의 마음으로 뚜렷한 이해가 왔는데 그것은 다음의 말로 표현될 수 있다.
탄생으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그들의 시각과 청각과 접촉(촉각)과 냄새(후각)와 맛보기(미각)의 오감이 정확히 그들 자신의 "현실"과 그들 주위의 우주를 구성한다고 믿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들이 신성한 "창조적 힘"으로부터 직접 그들 자신의 "생각의 힘"을 끌어오므로 그것이 그들의 믿음에 따라 그들에게 이루어진다.
각각의 끈은 한 사람의 습관적인 생각과 사람과 사건에 대한 반응, 편견과 증오와 적대감과 근심과 슬픔들을 나타내며.. 그 모든 것이 그를 묶으면서 "창조적 힘"으로부터 그의 내적 비전으로 오는 빛을 차단한다. 그리하여 그는 어둠 속으로 들어가지만 스스로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는 스스로가 전진할 수 있고. 지구상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목표인 삶을 "좋게" 만들어 주고 성공하게 해줄 수 있는 세상의 방식으로 자신이 자라고 있고 성숙해지고 있다고 믿는다.
사실 그가 더 성숙해지고 세상 방식들에 능숙해질수록 그의 사슬과 끈들이 "유대를 맺거나 Bonding-거부하는 Rejection" 대립된 충동들(IMPULSES)의 장악 안에서 그를 더 단단히 묶는다. 더욱이 각 사슬은 이기적이고 기만적인 욕구와 탐욕과 공격성과 폭력과 강간으로 형성된다. 이러한 사슬들은 그의 주위에 무겁게 걸려있고 그의 내면의 깊은 곳에 있는 "창조적 의식의 힘"인 심령체(psyche)를 짓누른다. 첫 번째로 그가 자신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깨닫고, 두 번째로 성실하게 각각의 끈과 사슬을 뉘우치고, 세 번째로 그가 해를 끼친 다른 이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만들기까지.. 각 사슬과 끈은 시간이 흐르며 그를 더 단단히 묶을 것이다.
이 비전으로 나는 존재의 가장 귀중한 측면을 배웠다. 인간은 그 자신을 위한 아름다운 삶을 만들 모든 잠재성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이기적인 욕구와 증오에 빠짐으로써 자신의 삶에 불행한 감옥을 창조하는데, 그가 존재의 진실을 깨닫게 되기까지 그곳으로부터의 도피란 없다.
인간 삶의 모든 힘든 문제들은 인간 자신의 사고 과정 안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오직 사람들의 "의식 구조", 즉 그들의 생각과 말과 느낌과 행동들이 그들의 의식과 모든 잎과 나무와 곤충과 새와 동물과 인간 안의 우주로 스며들어 있는 "우주적 창조 의식(Universal Creative Consciousness)" 사이에 짙은 밀도의 장애물을 창조했다. 나에게는 또한 새로운 상황과 환경이나 관계나 달성이나 실패 및 번영이나 빈곤을 창조하는 인간 능력을 지배하는 존재의 법칙들(LAWS OF EXISTENCE)이 보였다.
인간이 자신이 될 것으로 심오하게 믿는 것이 무엇이든.. 좋건 나쁘건 간에 그는 그것이 될 것이다.
한 인간이 다른 이들이 자신에게 할 것이라고 두려워하는 그 어떤 일이든 간에 그들은 그렇게 할 것이다. 반면에 한 인간이 다른 이들이 그에게 하기를 희망하는 그 어떤 일이든 간에 그는 먼저 그들에게 그렇게 해야 하는데.. 그것은 그가 그 순간 하나의 "의식 패턴"을 창조하기 때문이고. 결국 그가 다른 이들을 축복한 정도로 그를 축복하기 위해 그에게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한 인간이 무서워하는 질병이 무엇이든 그는 그것의 먹이가 될 것인데.. 왜냐하면 그 순간 그가 가장 체험하고 싶지 않은 바로 그것의 "의식 패턴"을 창조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과 가슴으로부터 내보내진 것이 무엇이든, 이런저런 형태로 적절한 때에 그 자신에게 돌아오며 그렇게 같은 것이 항상 같은 것을 키운다는 것(두려움이 두려움을 키우고 사랑이 사랑을 키움)을 기억하라. 강한 감정적 생각들은 인간 자신의 의식의 궤도 안에 심어진 "의식의 씨앗들"이다. 그것은 자랄 것이고 그가 거두어야 할 같은 종류의 열매를 맺는다. 그것은 자유 의지로 심어지고 길러지고 수확되는 열매들이다.
인간은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과 행하는 것으로부터 도피할 길이 없는데.. 그것은 그가 신성한 창조적 의식의 힘으로부터 태어났고 마찬가지로 그의 상상력이 창조적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 좋은 것을 열망하는 자들은 먼저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주어야 한다. 당신의 존재 자체가 다른 이들에게 축복이 되게 하라.
출처 : http://www.abundanthopekorea.net/index.php?mid=board2_1&page=3&document_srl=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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