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은 원래 옛 환인의 가르침이 구전되어 오다가 신시개천(神市開天) 이래로 녹도문(鹿圖文)으로 씌여 역대 환웅의 시대를 거치면서 전승되어 왔던 세계 최고(最古)의 경전이며 《삼일신고》, 《참전계경》과 더불어 우리 민족의 삼대 경전 중 으뜸이 되는 것이다.
《천부경》은 고조선 멸망 후 후대에 전해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통일 신라 시대에 들어 사람들이 고문자로 새겨진 큰 비석을 백두산 기슭에서 발견하게 되었다. 아무도 그 뜻을 풀지 못하다가 당대(唐代)의 석학으로 해동 공자라 불리던 최치원이 이 비문을 보고, 그것이 환국의 옛 문자인 가림다로 적힌 것임을 알아보고 이를 한자로 번역하게 되어 비로소 《천부경》이 후대에 전해지게 되었다. 최치원의 해문(解文)은 전해지지 않으며 여든한 개 글자의 번역된 원문만이 전해졌다. 하지만 지금까지 누구도 그 뜻을 풀지 못하여 《천부경》의 해석을 두고 설왕설래가 많았다.
그러나 기실 《천부경》은 어려운 문장이 아닌 지극히 평이한 서술로 쓰인 것이다. 다만 뜻을 고도로 압축하여 숫자로 표현했기 때문에 얼핏 보면 난해한 경전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뜻을 알기 어려운 구절은 하나도 없다. 나는 한자를 조금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뜻을 알 수 있는 《천부경》을 두고 마치 기문난경(奇文難經)이나 되는 것처럼 온갖 이설이 난무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심지어 시중에 나와 있는 해설서라는 책들은 띄어 읽는 법조차 틀린 것이 많고 그 풀이에 이르러서는 차마 말로 표현키 어려운 억지와 억측으로 점철되어 있어 보기가 심히 민망하다. 재야 사가들이나 민족 종교의 지도자라 하는 사람들까지도 《천부경》을 일컬어 '해석이 불가능한 신비하고 오묘한 경전'이니 '뜻은 알 수 없지만 지고지상의 위대한 경전'이라는 식의 근거 없는 미화를 하고 있다. 내가 아는 한 우리나라에서 《천부경》의 뜻을 제대로 설명한 사람이나 책은 없다.
그러나 '진리'는 어려운 것이 아니고, 어려운 것은 '진리'가 아니다. 오히려 '진리'란 단순하고 명확한 것이다. 《천부경》의 가르침이 바로 그렇다. 분명하고 명확하다. 오해의 여지가 없다. 지금부터 그토록 난해하고 뜻을 알기 어렵다는 《천부경》을, 과연 그러한지 살펴보자.
우선 《천부경》의 전문(全文)을 먼저 보자. 《천부경》의 해석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끊어 읽는 단락의 구분부터가 정확해야 한다. 다음에 적어놓은 대로의 끊어 읽기가 가장 정확한 구분이다. 이래야 운률이 맞는 게송이 되고 정확한 해석이 가능해진다.
天符經(천부경)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
析三極, 無盡本(석삼극 무진본)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一積十鉅, 無櫃化三(일적십거, 무궤화삼)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大三合六, 生七八九(대삼합육, 생칠팔구)
運三四, 成環五七(운삼사, 성환오칠)
一妙衍, 萬往萬來(일묘연, 만왕만래)
用變, 不動本(용변, 부동본)
本心, 本太陽, 昻明(본심, 본태양, 앙명)
人中天地一(인중천지일)
一終無終一(일종무종일)
첫 구절부터 그 뜻을 알아보자.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
여기서의 일(一)이 무엇인가를 놓고 많은 학자들이 여러 해석들을 내놓고 있는데, 시중의 여러 책에서 나열한 것만 해도 10여 가지 해석이 넘는다. 그것도 사람마다, 책마다 전부 제각각이며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는 게 태반이다. 하지만 《천부경》은 그렇게 중구난방 떠들 이유가 없이 문장의 뜻이 분명하다. 이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바로 다음 문장에 그대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즉, 天一一地一二人一三(천일일지일이인일삼)이라는 구절이 그것이다. 이 구절에서 사용된 한자들은 초등학생도 아는 것들이다. 해석을 하려고 애쓸 이유가 없다. 한자 그대로 풀어 하늘(天)은 '1'과 '1'이라는 두 개의 수로, 땅(地)은 '1'과 '2'로, 사람(人)은 '1'과 '3'이라는 수로 표현하겠노라는 설명이다.
조금 자연스럽게 풀어보면 '하늘(天)의 수는 일일(一一)이요, 땅(地)의 수는 일이(一二)요, 사람(人)의 수는 일삼(一三)이다'가 되겠다. 천지인, 삼신(三神)의 수를 한 개가 아닌 두 개의 숫자로 표현한 것은 《천부경》의 절묘한 압축법의 백미인데, 그것은 뒤에서 설명하기로 하자. 삼신에 전부 들어가 있는 '1'이라는 공통수를 제외하고 보면 하늘과 땅과 사람을 표현하는 고유 숫자는 각각 '1'과 '2'와 '3'이다. 《천부경》은 전체에 걸쳐서 하늘과 땅과 사람을 이 세 숫자로 쓰고 있다. 따라서 《천부경》에서 '1'이란 숫자는 바로 하늘이란 단어이다. 땅과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첫째 구절의 뜻은 어려울 게 없다.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 즉 '하늘은 시작됨이 없이 시작된 하늘이다'라는 뜻이다. 우주물리학에서 말하는 '끝과 시작이 없는 우주'와 같은 뜻이다. 이 첫구절과 시종대구(始終對句)의 관계에 있는 마지막 구절을 같이 보면 뜻이 한층 명확해 진다. 《천부경》의 마지막 구절은 一終無終一(일종무종일)이다.
따라서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 一終無終一(일종무종일)은 '하늘, 즉 우주는 시작됨이 없이 시작되고, 끝남이 없이 끝나니라'라는 우주에 대한 직관이다. 바로 '우주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이요, 결론이고, 정의이다.
《천부경》의 이 여섯 글자가 바로 동양적 우주론의 핵심이고 골자임을 부정할 사람이 있을까? 시작이 없는 우주, 끝이 없는 우주··· 이것이 1만년도 전에 우리 조상들이 밝혀 놓은 우주의 실체라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고 하는 유치한 서양의 우주론과는 그 차원이 다른 것이다. 훗날 불가(佛家)의 세계관이 여기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천부경》의 첫구절을 보면 누구나 떠오르는 게 있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불교의 모순적(矛盾的) 설명인 반어법(反語法)의 유래를 이에서 찾을 수 있음이다. 반야심경의 핵심이 되는 유명한 구절인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과 같은 표현법인 것이다.
시제법공상(是諸法空相),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구부정(不垢不淨), 부증불감(不增不減)이라는 구절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 세상은 생겨나지도 없어지지도 않는 것'이라는 불교의 통찰과 '시작되지 않고 시작된 하늘, 끝나지도 않고 끝난 하늘'이란 《천부경》의 가르침은 의미뿐만 아니라 표현의 수사법적(修辭法的)인 기법까지도 쌍둥이처럼 닮은 것을 알 수 있다.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 반어법에 의하지 않고는 석가모니도 이 세계를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광대무변한 우주가 한 알갱이의 티끌과 같다'는 말이나 '영겁의 세월이 찰나와 같다'는 말들도 마찬가지다.
이와 같은 세계의 실상은 모순이 아니라 우주 자체가 그러한 모순의 토대 위에 서있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밝혀짐에 따라, 환단 시대의 우주관이 얼마나 무서운 통찰력에 의한 것이었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시작됨이 없이 시작된 우주, 끝남이 없이 끝나는 우주'는 오늘날의 우주물리학이 내릴 수 있는 결론과 다르지 않다. 과학은 우주에 대해서 이것과 다른 어떤 결론도 끌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우주의 생성 이유로 꼽는 대폭발(빅뱅)도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대폭발의 원인이 되는 우주 알의 이전(以前)이 가정되지 않고서는 빅뱅에 의한 우주의 탄생도 있을 수 없고, 중력에 의한 우주의 최후도 모든 것의 최종적인 마지막, 최후의 최후는 아닐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즉 빅뱅의 앞에도 무엇인가가 있었고 우주의 종말 이후에도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라는 것이 우주물리학의 추정이다. 우주도 환생과 유전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 우주의 탄생과 소멸에 대해서 《천부경》의 열 글자 외에 어떤 결론이 가능할 것인가?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 一終無終一(일종무종일)' 이것은 현대 우주물리학의 결론임과 동시에 고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동양적 우주관의 근본이었다.
불경에는 석가세존이 설법을 하는 자리에 세상의 많은 신들이 자리를 함께 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자리에 환인(桓因)이 있다는 점이다. 부처의 설법 시에는 시방삼세, 삼만팔천 대천세계의 모든 신들과 보살들과 선인들이 초대되는데, 그 가운데 가장 상석에 자리잡는 이가 바로 환인이다. 어떻게 석가모니 당시의 인도인들이 환인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는지 신기한 일이거니와 환인이 불가(佛家)의 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서방 정토를 다스린다는 아미타불도 아니고 지옥을 통치한다는 염라대왕도 아니고 제석천왕도, 도솔천왕도 아니며 보살들과도 성격이 다른 높은 반열의 상제(上帝)로 등장하는 이가 환인이다. 다른 부처나 천왕, 보살 등은 석가세존의 설법 자리에 의레 자리를 같이 하지만 환인만큼은 아미타경과 같은 아주 특별하고 지고한 설법을 할 때만 자리를 함께 한 기록이 나온다. 이를 통해 볼 때 붓다와 당시의 인도인들이 마음 속에 모셨던 우주의 신들 중에 환인이 있었으며 환인의 가르침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불경의 어디에도 환인에 대한 소개나 자세한 설명은 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천부경》과 불교의 우주관을 같이 놓고 볼 때 적어도 불교는 동이족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해 보인다. 불생불멸, 색즉시공과 같은 맥락의 우주관은 현대의 우주물리학이 등장하기 이전에는 우리 민족의 삼신 사상과 불교 외에는 어떤 고대의 철학이나 종교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인도의 왕녀 허왕옥이 불교의 모토(母土)를 찾아 신라에 온 것은 왜였을까? 이미 인도인들은 석가세존의 모국이 어디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왜 인도인들은 만리 바다를 건너 궁벽한 반도 끝의 조그만 나라 신라에 공주를 보내어 부처님의 사리를 전했을까? 다 부처님의 전생 인연에 의한 귀향이 아니었을까?
신라의 유적에서 발견되는 쌍어 문양(물고기 두 마리가 주둥이를 맞대고 있는 형상이다)이 인도인의 신앙적인 상징임은 한민족과 불교의 혈연을 보여주는 증거다. 붓다의 초상과 조상(彫像)들이 보여주는 인종적인 특성은 아리안이 아니라, 동이족이었음을 보여준다. 《천부경》을 만든 환인 천제의 인연이 그대로 불가로 전해졌음이다. 《천부경》은 불경보다 5천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럼 다음 구절을 보자.
析三極, 無盡本(석삼극, 무진본)
이 구절에서의 삼(三)이란 숫자는 앞서 설명한, 사람(人)을 지칭하는 수가 아니고 숫자로서의 석 삼이다. 세 개의 극이 무엇인지 알려면 바로 뒤의 구절을 먼저 해석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 이해가 빠를 것이므로 잠깐 보류해두고 다음을 먼저 보기로 하자.
天一一, 地一二, 人一三(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이 구절은 천지인 세 가지를 대신해서 사용할 수를 밝혀놓은 것이다. 천지인은 각각 '1', '2', '3'이라는 고유수를 가지면서 동시에 '1'이라는 공통수를 모두 가지고 있다. 왜 《천부경》은 천지인을 '1', '2', '3'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1,1', '1,2', '1,3'이라는 두 수의 조합으로 나타내었을까? 여기에 숫자를 이용한, 《천부경》의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표현의 압축법을 발견할 수 있다. 《천부경》의 위대성은 그 내용만이 아니라 경이로운 표현 방식에 있다. 글로 풀어서 쓰자면 수백, 수천 줄의 문장이 되어야 할 것을 숫자를 이용해서 단지 몇 글자만으로 대신해 버린 것이다. 불과 81글자만으로 하늘, 땅, 사람의 관계를 밝힌 《천부경》의 기술 방법에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어쨌건 그 이유를 알려면, 다음 구절을 가져와서 두 줄을 같이 보면 된다. 바로 뒷 구절은 다음과 같다.
天二三, 地二三, 人二三(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자, 이 두 구절을 다음과 같이 나란히 놓고 보면 무언가 보일 것이다.
天一一地一二人一三(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天二三地二三人二三(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천지인 각각에 네 개씩의 숫자가 쓰였다. 그것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이 된다.
천(天)에 사용된 수 : 일일이삼(一一二三)
땅(地)에 사용된 수 : 일이이삼(一二二三)
인(人)에 사용된 수 : 일이삼삼(一二三三)
천지인은 각각 자기 고유의 수(천=1, 지=2, 인=3)를 두 개씩 가지고 있고 자기 외의 두 가지 수를 하나씩 갖고 있다. 천(天)을 예로 들면, 천의 고유수인 '1'이 두 개이고, 땅의 고유 수인 '2'와 사람의 고유 수인 '3'을 하나씩 갖고 있다. 지는 땅의 고유 수 '2'를 두 개, 하늘과 사람의 수인 '1'과 '3'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사람은 어떨까? 마찬가지로 고유수 '3'을 두 개, 천과 지의 고유수 '1'과 '2'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수로 표현된 위의 두 구절을 뜻으로 읽으면 이런 문장이 된다.
"하늘, 땅, 사람은 고유수 '1', '2', '3'이 서로 다른 수이듯이 각각 달라 보인다. 그러나 기실 천, 지, 인은 근본이 같은 것이다. 각자 고유 수를 두 개씩 가지고 있으면서 나머지 두 가지의 고유 수를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하늘은 하늘이면서 땅과 사람의 본성을 가지고 있고, 땅은 땅이면서 하늘과 사람의 본성을 가지고 있고, 사람은 사람이면서 하늘과 땅의 본성을 갖고 있다"
이렇게 길고 장황하게 설명해야 뜻이 통할 이야기를 《천부경》은 수자를 사용해서 단지 12글자로 훌륭하게 표현하고 있다. 어떤 장문의 설명도 사실 열두 개의 수를 이용한 《천부경》의 두 구절보다 적절한 표현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 건너 뛰었던 앞의 문장, 析三極, 無盡本(석삼극, 무진본)을 돌아보면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세 개의 극이 나뉘었어도 그 본은 다함이 없다(변함이 없다)"란 뜻이다. 여기서의 극(極)은 '진여(眞如)', '우주알(물리학적으로)', '무극(無極)' 등으로 일컬어지는 우주의 본체이다. 이 원우주가 세 개로 나누어진 것이 천지인의 삼신(三神)이다. 주역으로 말하자면 적청황(赤靑黃)의 삼태극(三太極)이다. 《천부경》은 삼신이 현상계에 나타난 모습이 달라도 그 본질에 있어서는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만유일체의 사상이 여기서 나왔음을 볼 수 있다. 불교의 진여 개념과 다르지 않다. 하늘과 사람이 같은 것이라는 이 사상은 그대로 불교의 자재불성으로 이어졌다.
물론 다른 한편으로는 역(易)의 기본 원리가 되었다. 천지인의 삼극(三極)에 음(陰)과 양(暘)과 중(中)을 대입시켜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이것이 주역(周易)의 제일 원리이고, 주역은 《천부경》과 《삼일신고》에서 시작된 환역(桓易)이 그 뿌리인 것이다. 불교의 진아일여(眞我一如)나 우리 한사상이 지향하는 삼신합일(三神合一)의 상태가, 우주 본래 자리, 그대로의 본모습인 태극이다. 곧 무진본(無盡本)인 것이다.
이와 같이 《천부경》에 숫자가 사용된 이유는 뜻을 알 수 없는 기이하고 신비스러운 주문이어서가 아니라 수백,수천 줄의 문장으로 설명해야할 것을 극도로 압축하기 위한 방법에서 나온 것이다.
그 다음에 《천부경》에서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한 구절이 나온다.
一積十鉅, 無櫃化三(일적십거, 무궤화삼)
"1이 열번 쌓여도 상자가 없어서 3으로 변한다"라고 글자 풀이가 되는 구절인데, 이대로는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1'이 하늘이고 '3'이 사람을 뜻하는 수라는 것을 알고 읽으면 그 의미를 금세 알 수 있다. 즉, "하늘이 열겹으로 쌓인 것이 담을 상자가 없어서 사람으로 화한다"는 뜻이다. 조금 다듬어서 문장을 만들면, "사람은 하늘의 정기가 겹겹이 쌓인 끝에 마침내 탄생하게 된 것이다"라는 말이다.
여기서 동양 사상의 정수(精髓)가 되는 하나의 외침이 나왔다.
인간은 하늘이 모습을 바꾼 것이다!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이 바로 《천부경》의 가르침에서 나온 말이다. 사람을 섬기기를 하늘과 같이하라 했던 유교의 인본주의 사상이 여기서 발원되었음이다. 공자가 동이족이었다는 것이 우연한 일이겠는가? 불가의 자재불성, 중생이 곧 부처란 사상이 여기서 나왔음이다. 하늘이 있고,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와 피조물이 나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변한 것이 사람이니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궁극의 가르침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것이 1만 년 전 고대인의 종교관이었다고 누가 믿을 것인가?
우리 민족의 종교적 차원은 태양신을 섬기거나 창조주를 찾던 타민족들의 그것과는 하늘과 땅만큼의 격차가 있었다. 유불선을 포함한 동양 사상을 단하나의 말로 압축하면 바로 '인간'이란 두 글자가 된다. 하늘의 기가 쌓이고 충만한 과정을 거쳐 인간(혹은 생명이란 말로 대치해도 되겠다)으로 화한다는 이 말은 이 우주에서 생명이 모습을 드러내는 원리를 극명하게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겹겹히 하늘이 쌓인다는 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주의 응축된 기의 발현으로 생명과 인류의 출현이 있었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우주의 근본기(根本氣)가 모습을 바꾼 존재이다.
언젠가 현대 과학이 생명의 탄생을 밝히게 되는 날이 온다 해도, 과학자들이 이 이상의 말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인간이란 하늘을 담아놓은 그릇(櫃 : 상자)이다." 그 그릇을 함부로 하고 가벼이 대해서야 되겠는가? 모든 사람이 다 하늘일진데.
서양이 신본주의라면 동양은 인본주의다. 서양이 신과 인간을 대립 관계요, 종속 관계로 본다면 동양의 그것은 일체 관계요, 수평 관계다. 사람이 곧 하늘인데 어찌 사람 밖에서 신을 찾을 것인가? 마음 밖에 부처가 있겠는가? 《천부경》의 전체 문장은 그 뜻이 애매하거나 모호한 것이 한 구절도 없다. 모든 것을 가장 분명한 문장으로 말하고 있는 경전이다. 이래도 이 《천부경》이 해석 불가능한 괴기문(怪奇文)이라 할 것인가?
바로 뒤에는 천지인의 세 가지 수가 아닌 다른 숫자들이 처음으로 나온다.
大三合六, 生七八九(대삼합육, 생칠팔구)
여기서 '대삼(大三)'이란 천지인의 셋을 말하는데 그 수들을 합하면 육이란 뜻이다. 하늘의 수 '1'과, 땅의 수 '2'와, 사람의 수 '3'을 합하면 6이다(1+2+3). 이 세 수의 합이 필요한 이유는 천지인은 나누어진 것이라도 본래 그것은 하나이기 때문이고, 나뉘었을 때는 '1'과 '2'와 '3'이지만 그 전체는 '6'이라는 하나로 통합됨을 의미하고 있다. 때문에 천지인은 합일된 상태로서는 모두 '6'이란 숫자로 말하게 된다. 하늘도 '6(1+2+3)'이요, 땅도 '6(1+2+3)'이요, 사람도 '6(1+2+3)'이다. 천지인은 근본에서 같은 존재다.
이 천지인이 하나로 합일한 조화에서 세상 만물이 생겨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7', '8', '9'는 세 개의 숫자를 주욱 나열함으로서 세상 만물을 문학적인 표현처럼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천지인이 조화롭지 못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멸칠팔구(滅七八九)가 될 수밖에 없다. 계속해서 다음의 구절을 보자.
運三四, 成環五七(운삼사, 성환오칠)
글자대로 풀이하면, "3이 4를 움직여 5와 7로 가락지(둥근 반지)를 이룬다"가 된다. 여기서 '3'은 알다시피 '사람'이다. 그렇다면 '4'는 무엇일까? 이 '4'의 의미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5'와 '7'을 보자. '5'와 '7'은 '6'을 사이에 둔 두 개의 수다. 앞에서 '6'이란 수는 천지인이 합일한 큰 수였다. 바로 '우주 전체'를 뜻하는 수이다. '5'와 '7'이라는 수가 '6'을 사이에 끼고 있듯이 대우주를 가락지처럼 둘러싸고 있는 것이 바로 '5'와 '7'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겠는가? 사람이 움직여 이 우주를 둘러쌀 수 있는 것. 그건 바로 인간의 '기(氣)'뿐이다. '부처의 대자대비한 기'와 같은 것을 제외하고는 답이 없어 보인다. 물론 '인간의 위대한 정신'으로 표현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후의 구절들은 평이하고 쉬운 문체로서 하늘(우주)에 대해 말하고 있다.
一妙衍, 萬往萬來(일묘연, 만왕만래)
하늘은 묘하고도 넓어서 만물이 드나들며,
用變, 不動本(용변, 부동본)
쓰임은 변해도 근본 자리는 바뀌지 않으니,
本心, 本太陽, 昻明(본심, 본태양, 앙명)
본래 마음, 본래의 큰 빛은 밝고도 밝다.
人中天地一(인중천지일)
사람 가운데 하늘과 땅이 하나이다.
사람 속에 천지가 합일되어 들어 있다는 뜻인데, 이 대목에서 하늘을 '1'이란 수가 아닌 '하늘 천(天)'으로 쓴 것은 마지막의 '일(一)'이 하늘이 아닌 '하나' 또는 '합일(合一)'의 의미로 쓰였기 때문이다). 사람이 하늘(신)의 피조물인 것이 아니라 하늘이 사람 속에 내재한다는 사상이다. 불교의 자재불성, 동학의 인내천, 유교의 '인(仁)'이 여기서 나왔음이다['仁'은 하늘과 땅이 사람(人)과 함께 있는 형상의 글자다]. 지구상에 이보다 더 인간을 존중하는 종교나 사상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환(桓) 사상'을 이어받은 석가는 '천상 천하에 유아독존'이라 말했다.
《천부경》의 가르침을 하나로 말하면, 그것은 '천(天)'도 아니고 '지(地)'도 아닌 오직 '인(人)'이란 한 글자다.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을 받들라는 인본주의의 지평이다. 한 인간이 우주만큼 소중한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천부경》의 마지막 문장은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이다. 앞서 말한 대로 '우주는 끝남이 없이 끝난다'이다.
구름~~
[출처] 마음의 여행 (과학으로 풀어본 삶·죽음·영혼) p305~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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