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처 : 여인왕국③
자동기술 : 박충원
심령감수 : 김경보
이글은 BC 106년 12월 1일 경북 안동에 개국된 여인왕국의 역사를 자동서기로 기록하는 가운데 밝혀진 지구성의 역사로 부터 시작하여 아틀란티스, 무우, 레무리아 대륙의 이야기와 함께 그들이 멸망하게 된 이유와, 그이후 한인들의 역사에 대한 기록입니다..
현재 개정판은 무린바타 전4권(행림출판)으로 나와 있는데 개정판에는 이 내용이 빠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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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우주의 저편.....
반짝이는 7개의 별......
우리 지구인들이 말하는 국자모양의 북두칠성......
이곳에서는 오래 전부터 수행성(*깨달음을 추구하는 이들의 행성)이 운영되고 있었다. 미숙한 영혼을 보다 완전하고 보다 성숙하게 성장시켜 후에는 깨우침의 세계로 이끌고 가기 위한 뜻깊은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북두칠성의 지고한 의식은 어느날 수행성을 바라보게 되었다. 제1성으로부터 시작하여 제7성까지 차례대로 보고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수행목적이 그리고 그 길이 부처로 향하는 길이어야 할텐데 제3성과 7성의 수행성에서는 그 방향이 부처의 길이 아닌 신선(神仙)의 길이었다. 수많은 수행자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말해 마음을 비우고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진실에 이르는 것이 바로 신의 뜻일진대, 제3성과 7성에서는 엉뚱하게 신선의 세계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되어갔다.
물론 부처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신선으로 가는 행위 역시도 결국은 부처(*현실적으로 적당한 용어가 없어 빌린 것뿐이다. 오해 없으시길 바라며, 문자 이전의 뜻으로 새겨 주시길 바란다)의 세계로 가고 있는 과정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신통자재하며 황홀한 속을 거닌다 하여도 신선은 어디까지나 불보살이 될 수 없는 것이며 중생의 차원에 속하는 존재였다. 해서 북두칠성의 의식은 신선의 세계로 가고자 노력하는 제3성과 7성의 존재들을 더 이상 방치 할 수가 없었다. 이들의 길이 분명 잘못 된 것을 확인시킴과 함께 보다 빠르고 보다 감각적인 삶을 살아가게 하여 여행을 시켜야 한다는 뜻을 세우게 되었다.
그래서 택한 곳이 가장 감각적이고 진화가 빠른 지구성이었다. 이미 제3성과 7성의 존재들은 수행을 지금껏 해 왔으니 육체적인 삶이라면 불과 5만년의 삶으로도 충분히 마음이 일어나거나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로 깊은 삼매상태로까지 유도시킬 수가 있으리라고 여기게 되었고 공의 상태까지 쉽사리 이끌 수가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북두칠성의 의식은 어느날 이들을 한곳에 모이게 하였다. 그리고 이들을 가장 빠르게 그리고 부처의 길로 갈 수 있는 계획이 수립되었다.
거대한 UFO(*다른 별세계에서는 지구의 과학문명보다 고도의 과학문명을 이루고 있다. 현대 과학이 최고인 것 같지만, 걸음마 단계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갈 것이다. 지저문명(地底文明) 세계가 있음도 알려준다. 미래에는 이들과 교류가 있을것으로 보나, 먼저 인간의 잔악한 마음이 바뀌어야 할 것이다)의 모선에는 선의 의식의 인도에 따라 수많은 수행인들이 탑승을 했다. 이때에 제3성과 7성에서는 북두칠성의 의식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들이었지만 모선에서는 또 다른 수행자들도 함께 타게 되었으니 이들은 제1성과 2,4,5,6성에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육체적인 삶을 통하여 부처의 길로 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함께 동반하는 자들이었다. 이렇게 되니 모선 속에는 북두칠성 제1성에서부터 7성가지 골고루 한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북두칠성의 각 행성 자리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깊은 의미가 담겨져 있다. 그러나 이들은 깊은 의미도 모르는 육체의 인간이 되기 위하여 지구성에 찾아오게 되었다. 이때에 모선의 이름은 〈알태〉였고 탑승자는 9천만이었다. 알태란 지금의 인간 언어로 말한다면 〈찾음〉그리고〈발견〉이란 말로 번역된다.
알태 모선의 출발지는 제3성이었다. 모선은 출발하였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지 않는 상태하에서 60여 일 만에 지구성이 속해 있는 태양계에 진입하게 되었다.
알태 모선은 어느덧 지구성의 주위를 돌고 있었다. 모선 속의 수행인들은 선의의 안내에 따라 깊은 가사상태의 동면 속으로 들어갔다. 수행인들을 동면 속으로 유도하고 있을 무렵, 또 다른 선의는 작은 소행성을 타고서 모선을 이탈했다. 그리고는 몇 개월에 걸쳐서 지구성의 생태계를 면밀히 조사하였다. 물론 지구성의 초성의식(*지구를 수호하는 의식)과의 협조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때에 지구성은 매우 불모지였고 육체인간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악조건이었다. 모든 생태계가 불균형을 이루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추운 기후였다. 이 같은 환경조건은 곧 북두칠성의 의식에게 알려지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어떤 조치를 취하게 되었다. 그것은 현상태에서 지구성에 맞게끔 육체의 구조가 이루어지든가 아니면 본래 의도했던 육체인간에게 맞는 환경이 이루어지든가 하는 일이었다.
결국 북두칠성의 의식에 따라서 후자로 결정되어 지구성의 의식은 변화를 시작했다.
아-----. 그것은 지구성을 뒤엎는 변화였다. 지구성의 움직임은 막 시작되었다.
첫째날------. 그리고 둘째날------. 셋째날------. 마지막날에 이르러 북두칠성의 의도대로 창조된 육체인간 나반과 아만이 깊은 가사상태 속에서 소행정에 실려 지구성의 대지 위에 내려오게 되었다. 잠자고 있는 나반과 아만의 모습은 지극히 평화로웠고 그 미소는 행복 그 자체였다. 나반과 아만이 살아가야 할 환경의 조건이 이루어지기까지 지구성의 전체 모든 것이 변화하였다. 그것은 하나의 창조적 혁명이었고 지구의 운명을 달리하는 역사였다.(*지구성에는 18만년, 30만년, 50만년, 1백50만년, 3백만년 그이전에도 인간의 역사는 있었다)
나반과 아만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 자리에는 이미 신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고, 온갖 동식물과 함께 생소한 위에서 두 남녀는 홀로 서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두 존재는 당황했다. 전혀 경험 못한 세상에 홀로 서 있다는 사실 앞에서 두 존재는 신비함과 강한 의문 속에서 육체를 통하여 보여지는 동물과 식물 등 모든 사물을 관찰했다.
나반(那般) 그리고 아만(阿曼)은 누구인가? 나반, 그는 제3성의 대표의식이었고 아만은 제7성의 대표의식이었다. 그러나 두 존재는 육체 속에서는 과거에 대한 그 어떤 기억조차도 할 수 없었다. 전생도 기억 할 수 없고 미래에 일어날 일도 전혀 예상 못하는 인간, 오직 세포감각을 통하여 알 수 있고 앞뒤가 막혀 버린 인간이었다. 그들은 선악의 개념조차도 모르는 일종의 백치와도 같은 존재였다. 말하자면, 그들은 고요한 마음을 이루고 있었는데, 〈입정〉상태라고 표현하면 더 정확할 것이다.
나반과 아만은 평화롭고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푸르고 울창한 숲이 이루어져 있었고 뛰어노는 동물들이 두 남녀의 시각을 즐겁게 하였다. 두 남녀는 자신들처럼 걷고 행동하며 같은 모습을 한 존재는 아무도 볼 수 없다는데 대하여 조금은 두렵기도 하고 외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두렵고 외롭다는 느낌, 이것이 육체 모습을 한 나반과 아만이 최초로 떠오른 마음이었고 생각이었다.
두 남녀는 언어도 몰랐고 단지 감정의 흐름으로 쳐다볼 뿐이었는데. 털도 없고 알몸으로 서 있는 자신과 같은 존재가 아무도 없다는데 에서부터 작은 마음의 파문이 일어난 것이다. 외롭고 두려운 마음의 파문은 두 남녀의 몸을 가까이 접근하게 만들며 서로의 손을 잡도록 자연스럽게 되어갔다. 그리고 서로 손과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신비로움과 강한 호기심이라는 마음의 파문이 일어났다.
날씨는 무더웠다. 두 남녀는 이제 막 육체인간이 되었고 마음이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였건만 본능적으로 더우면 물가에 가서 몸을 식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덥다. 그러니 물가에 가서 목욕하면 시원할 것이다. 어서 가자>하는 마음이 없이 덥기 때문에 그냥 물가로 뛰어가는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깨끗한 상태였다.
그런데 물가에 다다른 나반과 아만은 물 속에 비친 또 다른 자신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놀라워했다. 두 남녀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물가를 응시했다.
<아----- 물 속의 그것이 무엇일까?>
두 남녀는 이렇게 생각하였고 겁에 질려 있었지만 언어가 존재하지 않았었기에 마음의 파문만이 있을 뿐이었다. 두 남녀는 엉금엉금 기어가 물 위로 손을 몇번씩 움직이며 어떤 존재인가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물 속에서 다가오고 손을 내미는 것이 다름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발견한 이후 두 남녀에게는 물가에서의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물가에서의 새로운 발견은 강한 기억이 되어 두 남녀의 마음에 영상의 상태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이후 두 남녀는 언제 어느 곳에서든 물로 인한 두려움은 사라져 버렸다.
나반과 아만이 소행정에 실려서 지구성에 내려온 곳은 지금의 타클라마칸 사막(*중국의 천산산맥(天山山脈) 밑에 위치해 있다. 그간 지구는 여러번의 지각변동으로 기후와 구조가 많이 변하였다. 이때 당시는 비옥한 땅이라 생각하는 것이 이해가 빠르리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잠에서 깨어나 물을 탐구하던 때는 BC 64460년 이었다. 그들의 삶은 행복하였고 평화스러웠다. 어떤 대상도 그들의 마음을 어지럽혀 놓는 것은 없었다.
두 남녀는 환경에 적응이 되어지자 그때부터는 서서히 거닐며 살아가게 되었다. 동으로 몇 날 며칠을 거닐어 보았고 또다시 되돌아와 서쪽으로 향해 걸었다. 다시 북으로 남으로 거닐어 보면서 점점 더 육체인간이란 자각 속에 빠져들어 갔다.
그러던 어느날 두 남녀는 너무나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보게 되었다. 그 모습은 자연이 창조한 위대한 예술의 극치였다. 두 남녀는 저녁노을의 모습을 보고 그 아름다움과 장엄한 순간에 감탄하여 이렇게 외쳤다.
<에----- 하------>
나반은 몇 번에 걸쳐서 이렇게 외쳤다. 이것이 첫 번째 언어였고 나반이 아만을 부르는 이름이 되었다.
두 남녀는 이튿날 아름답고 장엄한 저녁노을을 잡기 위하여 서쪽으로 서쪽으로 가게 되었다. 이들은 노을을 잡기 위해 해가 뜨고 지는 나날을 30여 차례 반복하도록 서쪽을 향해 계속 걸었다.
얼마나 걸어왔을까. 그들의 눈앞에 울창한 밀림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지쳤고 신선한 나무열매가 그리웠다. 눈앞에 보이는 숲을 향하여 두 남녀는 뛰어갔다. 지치고 배고픔 속에서 두 남녀는 먹을 것을 찾아서 정신없이 먹어댔다.
그런데 여기서 나반과 아만은 잠깐의 부주의로 인해 밀림 속에서 떨어지게 되었다. 둘은 먹을 것 때문에 밀림 속에서 길을 잃고 찾아 헤매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를 찾기위하여 넓고 우거진 숲을 가르며 정신없이 뛰어 다녔다. 그러나 둘은 아무리 애를 써 봐도 찾을 길이 없었다. 나반은 <에--- 하>를 수도 없이 불렀고 아만은 울며불며 무어라고 외쳐댔지만 소용이 없었다.
바로 그때 아만 앞에 검은 피부를 가진 여러 명의 인간이 나타났다. 검은 피부의 인간들은 하나같이 목과 허리 등에 뱀을 둘둘 말아 감고 있었다. 이들은 피로에 지친 아만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서로들 무엇이라고 지껄여댔다. 아만은 창백해지도록 놀랐다. 우람한 체구의 흑인 2명이 아만을 일으켜 세우며 자신들의 거처로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아만은 겁에 질려 있었지만 한편으로 강한 호기심이 발동되어 이들을 따라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누구인가? 말하자면 검은 피부의 인간들은 지구에서 진화된 존재였다. 이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있어온 지구인(*18만년전 지구성에 와서 원시인과 같은 생활을 하며 지냈다.)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언어가 있었고 동물을 잡아먹는 자들이었고, 시도때도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섹스를 하는 자들이었다. 이들에게는 또한 신앙이 있었고 윤회의 법칙을 알고 있는 종교관이 있었다. 악한짓을 하면 죽은 후에 반드시 뱀으로 태어난다는 괴팍스런 종교관이었다.
검은 인간에게 끌려온 후 아만은 이들에 의해 언어를 배우게 되었다. 그런데 검은 인간의 종교관은 너무나도 선과 악이 구별되어 있었다.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강요하면 죄였고 악이었다. 모든 것이 다 선과 악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그 선악이라는 틀 속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바로 이 같은 종교관으로 인하여 아만의 육체는 흑인들에게 점령당하지 않게 되었다. 흑인들의 손이 아만의 몸에 닿는 순간 비명소리가 나는 통에 흑인들은 엄두도 낼 수가 없었다. 하얀 피부를 지니고 성기를 드러내 놓고도 조금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천진난만한 아만을 그들은 서로가 갖고 싶어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도마뱀이나 능구렁이로 태어나고 싶지가 않았기에 아만을 건드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흑인들은 아만을 차지하기 위하여 서로가 언어를 가르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러는 사이 나반은 숲속에서 아만을 찾기를 포기하고는 동으로 향하게 되었다. 쓸쓸함 그리고 외로움과 함께 가슴 아프도록 아만을 그리워하며 처음 떠나올 때의 그 거리로 향해 떠났다.
그러나 아만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언어를 알게 되었고 선악을 알게 되었다.
아----. 그 순간 아만은 자신의 성기를 풀잎으로 감추게 되었다. 부끄러움을 모르던 상태에서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 아만은 옛날의 아만이 아니었다. 고요하며 평화스럽던 아만의 마음은 파도가 일어날 정도로 거세게 출렁이기 시작하였고 선의 파도와 악의 파도는 부딪치기 시작하였다. 아만은 갑자기 나반이 생각났다. 아만은 스스로가 무엇인가 달라졌음을 알아 차리게 되었다. 자신의 달라진 마음을 나반에게도 체험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아만은 나반이 어디쯤에 있을 것이라는 것을 추리해 가며 찾아가게 되었다.
아만은 예상대로 옛거리에서 나반을 찾게되었다. 반가운 재회였다. 아만은 나반과 얘기하고 싶었고 선과 악을 알게끔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지체없이 나반의 손을 이끌고 흑인들의 거리로 끌고 들어갔다. 나반은 흑인 여인들에 의해서 또다시 아만이 흑인 남성들에게 배웠던 과정이 반복되었다.
얼마 후 나반도 옛날의 나반이 아니었다. 선악을 알았고 부끄러움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곧 옷을 입게 되었다. 그러나 아만이 흑인들과 함께보내는 동안 나반은 자연과 함께 살았었다. 아만이 선악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동안 나반은 자연이라는 웅장하고 기쁜 그것에 도취되어 어느덧 나반의 영혼을 점령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반은 아만처럼 선악을 깊이 있게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고 부끄러움도 아만처럼 병적인 상태가 될 수가 없었다. 이미 나반에게는 자연의 <그것>이 깊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자질구레한 선악의 개념이 깊이 들어올 수가 없었다.
이 같은 두 남녀의 역사는 묘한 운명이라고 할 수가 있었다. 오랜 인류의 역사가 이어지는 동안 남자는 여자보다 좀더 스케일이 컸고 역사를 이끌어 나가는 존재로 부각된 것이다. 이때 두 남녀의 체험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옛거리로 돌아온 나반과 아만은 밤이 시작됨과 함께 섹스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나반과 아만의 자녀들이 태어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선악의 구분 속에서 우울한 나날이 지속되었다. 어떤 행위를 하여도 <이것은 죄일까? 아닐까?> 조바심에 떨게 되었고 두려움의 나날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특히 아만은 더욱 그러하였다. 옛거리에서 두 존재는 서로를 조금씩 의심하는 일조차도 빈번히 생기게 되었다. 자녀들이 태어나 성장하고 식구가 불어나도 그들이 체험한 선악 그리고 죄와 벌(*실상은 선과 악이 없는 것이다. 원죄 의식을 갖는 것은 스스로를 학대하는 자학 의식으로 볼 수 있다)의 생각은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아 아----. 그것은 괴로움이었고 번뇌였다. 그때부터 아만과 나반은 뱀을 몸에 두른 흑인족을 싫어하게 되었다. 이미 자신들의 터전속에 들어와 살고 있던 흑인들도 적지 않은 숫자로 불어나 있음을 보게 된 나반과 아만은 어느날 자녀들을 이끌고 미지의 땅으로 이주를 하게 되었다.
그곳이 바로 무우 대륙이었고, 지상에 첫발을 내디딘 지 3백33년이 지난 후였다. 이미 자녀들의 숫자는 9명의 아들과 64명의 딸을 두게 되었다.(*이것은 우주선을 타고 함께왔던 영체인의 영혼이 아만의 몸에 수태되어 자손이 점차 늘어나는 것이다.)
이들은 드디어 무우 대륙으로 이주하게 되었고 북두칠성의 제1성으로부터 7성에 이르는 수행인들은 모두가 나반과 아만의 자손에 또 자손으로 태어나 육체를 지닌 지구인이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