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측 모두가 폐허가 된 이후 옛 문명을 이룩하기까지는 2천 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이때부터 아틀란티스인들은 무서운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첨단과학으로 지구의 지각과 지층의 모양을 정밀하게 조사한 후 간단한 방법을 동원하여 드넓고 기름진 레무리아 대륙과 함께 흑인들을 순식간에 바다 속으로 가라앉게 만드는 계획이었다.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후 2천 년의 세월이 지나간 후에야 레무리아 침몰계획이 완성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지질을 조사하여 지층의 압력과 방향 그리고 핵폭탄이 터질 경우 그 진동의 위력 등을 연구한 뒤 그 힘을 이용하여 거대한 레무리아 대륙을 수몰시키는 무시무시한 계획이었다. 계획이 완성된 직후 이제 버튼만 누르면 될 시기가 왔다.
그러나 계획이 완성된 직후 애석하게도 정작 버튼을 눌러야 할 당시의 아틀란티스 통치자 <마스트> 대왕이 원인 모르게 죽고 말았다. 버튼의 번호는 암호로 되어 있었고, 그 암호를 아는 자는 <마스트> 대왕뿐이었다.
아틀란티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철두철미한 대아틀란티스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마자 아틀란티스인들은 분열되었고 급기야는 레무리아를 또다시 침공하였다. 그리고 또다시 양측은 상처만 남은채 원시적 생활로 들어갔다. 이때가 BC 25000 년경이었으니 흑백인류는 미움과 미움이 거듭되는 역사 속에서 2주기의 세월을 보내고 3주기의 삶이 시작되었다.
바로 이 무렵, 그 옛날 무우인들의 역사를 뒤집어 버렸던 푸레데아드의 혁명가들이 찾아오게 되었다. 푸레데아드인들은 참으로 뛰어나고 위대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삶의 전문가였기에 끝없이 싸움만 하는 흑백의 인류들을 평화롭고 전쟁 없는 사회로 유도시키기 위하여 흑인으로 백인으로 태어나 그 흐름을 이끌고 나갔다.
흑인과 백인 양측 모두가 물질 만능주의의 문명으로 언제나 부딪칠 수밖에 없는 삶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흑백의 삶의 방향을 다른 방향으로 유도시켰다.
백인들이 살아가는 아틀란티스에서는 물질 문명을 고수시켰고 레무리아인들은 예술과 신비주의의 방향으로 역사를 유도시켰다. 서로가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어야 하는 새로운 인종의 역사를 이끌고 나갔다. 이때에 찾아온 푸레데아드인들의 목적은 평화적 삶을 정착시키기 위한 것이었지 이들을 부처의 길로 유도시키기 위하여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무우인들처럼 북두칠성에서부터 도를 닦은 수행인들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푸레데아드인들이 흑인으로서 백인으로서 끝없이 재생하는 과정에서 두 대륙은 점차 삶의 방향이 뚜렷이 구분되어 갔다. 그리고 물질 사회와 예술과 신비주의 사회로 그 색깔이 구분되어지자 그에 따라서 더 이상 흑백의 전쟁은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푸레데아드인들은 또다시 성공함과 함께 지구성을 떠나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서 흑인 예술사회는 분열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레무리아 대륙에 머물던 많은 수의 흑인들이 아프리카로 이주를 했다. 백인들도 분열하여 무우 대륙으로 많은 수가 이주를 했다. 이때가 BC 13000 년이 조금 못 되던 시기였다. 흑인들 사회에서는 예술과 신비주의는 극치에 이르렀던 때였었고, 아틀란티스의 백인 사회에서는 물질 만능주의가 극을 치닫고 있는 때였다.
흑인과 백인들의 싸움이 사라지자 이제는 레무리아와 아프리카로 이주한 흑인들끼리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흑인과 백인 사이에 태어난 미색의 여인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전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결국 레무리아 흑인들의 승리로 돌아갔지만 그 감정의 대립은 오랜 세월을 지속시켰다. 그 사건 이후 아프리카 흑인과 레무리아 흑인은 서로 대립국이 되어 버렸다.
흑인과 흑인 사이의 대립이 시작되던 시기에 무우 대륙에서도 크나큰 전쟁과 불운을 예고하는 씨앗이 돋아나고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무우인과 백인 여성 사이에 태어난 반신반인(半神半人)들 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무우 대륙에서는 무우인과 반신반인들 그리고 백인 사이에는 점차 갈등이 심화되어 갔다. 이 갈등은 보통인간인 백인들 쪽에서 생각할 때에는 몇십 년만 살다 보면 죽어야 하는 육체인간이며 초능력이 전혀 없는데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반신반인들의 입장이 더욱더 애매모호한 상태였던 것이다. 신통자재한 신체를 지니고 있던 반신반인들은 백인보다는 우월하였으나 무우인들처럼 신선의 차원에 도달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반신반인들은 신통자재함 속에서 무우인처럼 죽지 않는 신선이 되고 싶었다. 결국 반신반인들은 백인도 될 수 없었고 무우인도 될 수 없다는 비애를 느끼면서 살아가게 되었다. 날이 갈수록 반신반인들의 갈등은 심화되고 결국엔 백인들에 대한 행패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무우의 초인들은 왜 백인여성과 성의 접촉을 하였던가? 이미 성 초월상태에 있던 무우인들이 무엇이 답답하여 백인여성과 접촉하였고, 튀기를 태어나게 한 것인가?
무우인들은 이때에 벌써 깨달음을 향하여 가고 있었고 마음의 눈으로 머나먼 미래에까지 예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숙한 마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백인들과 흑인들 모두가 무우인과 같은 상태로 되기까지는 수없는 나날의 삶을 필요로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끝없는 윤회를 돌아야 함을 알고 있었다. 허구한 날 전쟁과 미움의 갈림길에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를 위하여 무우인 스스로가 동반자임을 보여 준 것이고, 무우인들만의 해탈이 아닌 전인류가 똑같이 해탈하고자 알면서도 뿌려야 했던 씨앗이었다. 이미 무우인들 스스로는 눈에 보이는 영혼의 스승 없이도 진리의 세계에 도달할 만큼 무르익어 있었다.
그러나 진리의 세계에 갈 수가 없었다. 방황하고 미워하고 싸움이 곧 삶의 목적으로 착각한 이들을 두고서 어찌 해탈을 할 수 있는 것인가?
본래 북두칠성의 계획은 지구성에서의 올바른 수행으로 해탈에 이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우인들 스스로가 깊고 깊은 정신세계에 이르게 되자 흑백인들과 함께 진리의 세계로 가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행위의 씨앗을 뿌린 것이고 죄업의 씨앗을 뿌린 것이다. 행위의 씨앗은 반신반인으로 나타나 오늘에 이르른 것이다.
어느 누구라 하여도 무우인들의 행위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리라. 그러나 깊고 깊은 마음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이때에 무우인들이 뿌렸던 씨앗은 분명 자비의 행위였다. 무우인들로 인하여 태어난 반신반인들 그리고 그로 인해 백인들과의 싸움, 서로간에 당해야 했던 고통은 수억 겁의 윤회의 수레 속에서 치러야 할 고통을 가볍게 치를 수 있는 매우 지혜로운 방법의 업장 소멸의 길이었다.
날이 갈수록 경거망동으로 변해 가는 반신반인들을 바라보던 무우인들은 어느날 책임감을 느끼며 최후통첩으로 무우 대륙 내의 백인국가 울카제국에 귀속하던가 아니면 반신반인의 나라를 세우든가 결정을 내리게끔 압력을 가하였다. 그러나 반신반인들은 무우인의 말을 한마디로 일축해 버리고는 난동만을 부리며 살아갔다. 무우인들은 마지막으로 그와 같은 말을 남긴 채 서부지역으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무우의 백인제국 울카가 생긴 지 1천년이 지나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니 이때가 BC 12060 년이었다. 무우인이 자취를 감추어 버리자 드디어 세상은 반신반인들의 세상이었다. 비교적 평화를 유지하며 민주적으로 살아가고 있던 본국 아틀란티스로 반신반인들은 넘어가 정권을 가로채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울카제국의 정권도 자연 반신반인들의 것이 되어 버렸다.
그로부터 2천년의 장구한 세월 동안 백인 남녀들은 곤욕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이때에 반신반인들이 레무리아와 아프리카의 흑인들과 몇 번에 걸쳐서 불편한 관계로까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신비주의와 예술의 지향적인 흑인과는 제법 구거니 받거니 죽이 잘 맞아들었다. 그것이 반신반인과 흑인과의 마찰이 없었던 간접적인 결과였고, 또 한가지는 반신반인들인 자신들을 탄생시킨 존재가 흑인들이 아니라는 점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2천년의 세월동안 백인들은 온갖 곤욕 속에서 레무리아와 아프리카 흑인들에게 반신반인들을 몰아내는 데 도와달라고 수없이 간청해 보지만 그때마다 흑인들은 백인들의 간곡한 청을 거절하였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였지만 신비주의를 추구하는 흑인조차도 반신반인들의 신통력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 어느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었고 무조건 당할 수밖에 없었던 백인 남녀들, 특히 여인들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2천년의 세월은 백인 남녀들을 최면시켜 버렸다. 반신반인들에게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고 금발의 여인들은 모두가 창녀적인 삶이 곧 백인들의 본래 삶인 것처럼 깊고 깊은 최면의 삶으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백인들에게 무지개빛을 던져 주는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머나먼 안드로메다에서온 사파엘라였다. 그녀는 반신반인들을 몰아내고 여인제국을 만들었고 백인들을 해방시켜 주었다.
바로 이 무렵, 여인제국과 백인 남성들이 하나의 나라로 합쳐지던 BC 9766년 무우대륙의 서부지역에 머물러 있었던 무우인들은 정들었던 대륙을 등지고 떠나가고 있었다. 옛 나반과 아만이 머물렀던 그 거리로 가버렸다.
무우인들은 알고 있었다. 얼마후면 지독한 싸움으로 인하여 대지는 바다에 가라앉고 산더미 같은 물기둥은 자연을 휩쓸어 버릴 것이며 하늘마저도 먹구름에 뒤덮일 것이란 것을 예견한 것이었다. 그래서 가장 안전한 장소를 찾아 자리를 옮겼던 것이다. 무우인들이 머문 그곳이 바로 지금의 만주이며 백두산을 바라다보던 곳이었다. 그 어떤 대지의 요동이 몰아칠지라도 그곳만큼은 안전한 곳이었다.
무우인들이 만주에 머물게 되자 그간에 백인사회와 흑인사회 그리고 소수의 반신반인들이 무우인들 곁으로 다가왔다. 이들은 무우인들의 정신세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자들이었고 무우인들을 존경하고 있었다.
바로 이 무렵부터 무우인들의 인구는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12성좌의 별자리에서 무우인들 못지 않게 깊은 정신세계를 향해 가고 있던 수행인들이 무우인들과 합류하여 역사를 이끌어가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무우인들의 몸을 빌어 태어나는 것이었다. 무우인들은 미래의 역사를 꾸미려고 만주 대륙에 머물며 인구를 늘려가고 있을 무렵, 아틀란티스 대륙에서는 울카제국의 반신반인들을 죽여 없애려고 혈안이 되어있었다. 이미 울카제국에 머물러 있던 소수의 백인들마저도 본국으로 귀환하였던 터라 무우대륙에서는 이제 모두가 반신반인들 뿐이었고 그 인구도 상당수에 이르렀다.
분열된 나라수는 모두 12개국이었고, 또한 매우 강력하였다. 풍부한 지하자원은 울카제국의 반신반인들을 더욱 강성하게 하였다. 그래서 아틀란티스 백인들은 함부로 반신반인들을 대할 수가 없었다. 이미 백인들은 반신반인으로부터 최면에서 깨어났고 여인들의 과학의 힘에 의해 고도의 첨단무기를 갖추고 있었지만 무자비한 학살은 할 수가 없었다. 여인 과학자들에 의해 오래 전에 개발된 진동핵 폭탄을 사용하여 반신반인들을 완전 멸절시켜 버리려고 계획을 세워 놓았지만 만약 그렇게 한다면 그 피해는 백인들 스스로도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아틀란티스의 백인들 모두는 연일 데모를 하면서 정부를 향하여 울카제국을 멸절시켜 버리자고 외쳐댔다. 우유부단한 정부를 전복하기 위하여 대규모 군중이 동원되고 닥치는 대로 부수어 버렸다. 그런데 백인들의 통치자 모두가 반신반인들이라면 이를 갈고 있었고 국민들의 분노하는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칫 핵공격을 감행할 때 지반이 약한 아틀란티스 대륙이 가라앉을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아틀란티스의 군수뇌부들이 공격을 망설이게 하는 이유였다.
그래서 아틀란티스의 지질학자들은 그 무렵부터 지구성 전역을 대상으로 지질과 지층 모두를 조사하기에 이르렀다. 연일 수많은 군중이 데모와 집회가 이루어지는 과정속에서 면밀히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조사를 했다. 그래서 얻은 지식은 지진에 가장 안전하다고 판정난 곳이 지금의 북아프리카였다.
일단 아틀란티스 정부는 지진에 가장 안전한 장소를 알게 되자 백인들의 분노를 식히기 위하여 울카제국에 선전포고도 없이 재래식 무기를 동원하여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하늘에는 싸쿠(전투기)가 날아다니고 지상에는 아단(전차)이 움직였다. 대규모의 아틀란티스 육,해.공군이 무우의 울카제국을 향하여 진격했다.
걷잡을 수 없는 분노의 격정 속에서 보복을 감행한 것이다. 핵전쟁 만큼은 그들 스스로도 억제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울카제국을 없애기 위하여 핵공격을 한다면 결과적으로는 아틀란티스 자신들에게도 자멸의 길로 들어서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재래식 무기로 단시일 내에 무너뜨리려고 최고의 재래식 무기로써 공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또 그럴 수 밖에 없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핵공격을 감행한다면 무궁무진한 무우제국의 지하자원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리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재래식 무기의 공격을 택했던 것이다.
울카제국의 그들도 분노한 아틀란티스 제국의 군대에 대항하지만 이들은 아틀란티스의 백인들처럼 두뇌 집단이 아니었다. 신통력은 구사할 수 있었어도 백인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전쟁은 말하지 않아도 아틀란티스의 승리일 수밖에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울카제국에서는 무조건 항복과 함께 협상을 제의했다. 그리고 그 협상에서 울카제국의 반신반인들은 무력침공의 이유를 밝히라고 아틀란티스 제국에게 물었다. 이에 아틀란티스 제국에서는 그 옛날 백인들에게 2천년간 통치당했던 반신반인들을 향한 분노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혔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백인들의 잘못이었다. 백인들을 통치했던 반신반인들은 소수였고 울카제국의 탄생 때부터 골머리를 앓던 소수의 집단이었다. 그들 소수의 집단이 반신반인들 전부일 수는 없었다.
여기서 알아두어야 할 것은 소수의 반신반인 후예들은 울카제국 내에서 자리를 차지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아니, 더욱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아틀란티스 제국의 백인들을 괴롭혔던 반신반인들은 여인제국의 무력에 의해 도망친 후에 울카제국으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작은 집단을 이룬 채 모여살고 있었던 것이다. 울카라는 거대한 반신반인들의 제국에서도 이들을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쫓아버리자니 같은 반신반인의 입장이었고 그냥 두자니 언젠가는 아틀란티스 정부로부터 좋지 않은 일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틀란티스 정부에서 그 옛날 2천년 동안을 통치했던 반신반인들의 후예들(션밀족 : 울카제국인들이 부르던 이름)을 아틀란티스 제국으로 넘겨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무우의 울카제국 에서는 정식으로 거절을 한 것이며 그로부터 몇 년후에 공격을 당한 것이다. 울카제국으로 들어온 <션밀족>은 같은 반신반인들 사이에서도 멸시를 당하였고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다. 어디를 가도 말썽이었고 사고를 내는 민족으로 전락되었다.
울카제국으로서 본다 해도 션밀족은 분명 눈에 굴러 다니는 모래알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백인들의 무차별 공격에 의해 무조건 항복을 한 채 전쟁이 끝난 뒤에 울카제국에서는 션밀족을 한곳에 집결시켰다. 이미 무우의 전역이 초토화된 뒤였고 울카인들은 더 이상 션밀족들을 보호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울카 정부에서는 션밀족에게 두 가지 방향을 제시하였다. 첫째로, 아틀란티스인들의 요구대로 백인들에게 끌려가 지난날의 죄가를 씻는 길과 두 번째는, 옛 무우인들이 이주한 북방의 대륙으로 도망치든가 하는 두 가지의 방법이었다. 두 가지 방법 모두가 결국은 울카제국을 떠나는 것이었고 반신반인 사회에서는 영원한 이별이었던 것이다. 이에 션밀족도 더 이상 어쩔 수 없음을 알게 되자 울카제국을 떠날 것을 말하였다. 이때 울카제국의 대사제는 떠나는 션밀족에게 아틀란티스로 가기보다는 북방으로 들어가 옛 무우인을 찾아 정신적 길을 걸으라고 충고를 했다. 울카제국은 션밀족으로 인하여 흘린 피는 참으로 컸다. 같은 반신반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엄청난 희생을 치른 것이다.
울카제국은 이때부터 아틀란티스 백인들에게 미움의 감정을 갖기 시작하였다. 무한한 무우대륙의 지하자원을 갈취해 가다시피하였고 울카인들을 인간으로 취급하지도 않았다. 이 같은 착취의 세월은 오래도록 지속되었다. 2천년 동안을 당해야 했던 백인들은 철저하게 반신반인들에게 되돌려 갚아 주는 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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