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지구에 대한 ‘플레이아데스의 사명’
비록 지구를 위한 계획이 만여 년 전에 시작되기는 했지만, 250명 이상의 플레이아데스인들이 우리의 성장을 지켜보기 위해 지구로 온 것은 1600년대 말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감추기 위해 스위스에 지하 기지를 건설하였다. 때때로 그들은 지구인들 사이를 걷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지하 기지 내에서 안전하게 우리를 관찰하거나 정교하게 만들어진 비행선 비임쉽(Beam ship)을 타고 정보를 수집했다. '텔레미터 쉽(telemeter ship)'이라고 부르는 무인 비행선들은 우리 지구인들의 언어와 사고 패턴을 감청하는데 사용되었다. 그들은 지구상에서 진보하고 있는 다양한 문화들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많았던 것이다.
플레이아데스인들과 그들의 먼 조상 라이라인들은 이미 22만여 년 전부터 우리 행성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직접 관찰하고 우리와 연관을 맺기 위해 지구로 온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들은 언제라도 올 수 있었지만, 우리의 문명이 발달하고 지구상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할 시기에 맞춘 방문의 때를 그들은 명확히 했다. 우리들보다 우주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은하계의 거대한 중심 태양(central sun)으로부터 오는 에너지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행성(지구)이 엄청나게 영향을 받게 되는 지점으로 지구가 이동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 행성 지구는 그토록 큰 힘을 가진 중심 태양에서 방사되는 에너지장(fields of energies)을 통과하면서 지구의 모든 생명체들이 그 영향을 받게 된다. 지구의 과학자들이나 종교 지도자들 가운데에는 그 에너지가 우리의 사고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플레이아데스 조상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기로 결정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접어들고 있는 이 위치는 '물병자리 시대(The Age of Aquarius, 별자리상의 물병자리(보병궁)의 영향을 지구가 받게 되는 시대)', '영적시대' 또는 '참된 진리와 깨달음, 지식과 자유, 지혜 및 화합에 대한 사랑의 시대'로 알려져 있다. 불행하게도 이 모든 가르침은 아주 힘든 투쟁을 통해서 얻어질 것이다. 물병자리 시대는 다른 별자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2천155년 동안 지속될 것이며, 2만 5천860년마다 반복된다.
이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면서 우리는 영적 성장과 '창조'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평화를 달성하는 8백 년 동안의 기회의 창(Window of opportunity)을 갖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 기회를 놓쳐서 지구 문명에 평화롭고 영적인 삶의 방식을 도입하는 데 실패하게 되면, 비논리적이고 부정적인 사고에 의해 조종되는 깊고 어두운 시대로 빠질 가능성이 급속히 높아질 것이다. 역사적으로 문명은 1만 년 정도 지속한다. 우리 문명은 대략 8천 년이 되었으며, 가장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영적인 사람들에게는 이 변화의 시대(새로운 시대)는 명확성이나 성장, 그리고 기회의 시대로 뚜렷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류는 삶을 위한 물질적 투쟁에 너무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이때를 좌절과 슬픔, 그리고 비참함의 시대로 간주하게 될 것이다. 산업화 시대의 심리 구조(mind set)가 지구를 마음과 영혼의 새로운 시대로 이끄는 데 반드시 필요한 지혜를 제공하는 것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평화와 사랑이 지구상에 가득할 가능성을
내다보는 비전(vison)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기회가 기다리고 있다.
물병자리 시대는 1844년 2월 3일 오전 11시 20분에 시작되었다. 그전에 지구는 '쌍어궁 시대(the Age Pisces)'에 있었다. 쌍어궁 자리에서 물병자리로 이동을 완성하는 데에는 186년이 걸린다. 그러므로 1937년 초부터 지구는 쌍어궁 자리 시대의 마지막 진동에서 벗어났다. 물병자리 시대는 1937년 2월 3일 오전 11시 20분을 기해 제2단계로 접어들어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 2030년이 되면 변환 시기는 마무리되고, 우리 태양계는 물병자리의 황금빛 광선 사이에 들어 그 광선을 가득히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또 다른 1969년이 흐르고 나면, 다음 별자리의 우주시대(Cosmic Age)가 될 것이다. 이는 3999년 2월 3일 오전 11시 20분에 우리의 태양계가 '염소자리(Capricornus)'로 접어들면서 발생할 것이다.
우주의 에너지와 그것이 인간의 의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플레이아데스인들에게 있어서 지구 인류를 삶의 새로운 방식-미래를 위한 영적 인식과 화합의 길-으로 이끌어 가기 위한 이 기회를 택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우리 인간들에게 있어서는 스스로의 보다 높은 의식을 활용하여 주입되는 에너지를 인식하고 거기에 적응해야 할 때이다. 이같이 강력한 에너지의 결과는 결코 과소평가되거나 가볍게 다루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물병자리 시대는 세계의 파괴가 촉박했음을 선포하는 시기가 아니라, 오히려 영적 인식의 가속화를 포고하는 시기라는 것이 명백히 밝혀져야 한다. 일부 종교와 예언자들은 물병자리 시대를 세상이 끝나는 때로 옳지 못하게 해석해 왔다. 이것은 매우 부정확한 것이다. 왜냐하면 깨달음과 인식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때이기 때문이다. 이때는 또한 새로운 발명, 마음과 영혼의 개발, 그리고 우주에 존재하는 다른 생명체와의 빈번해지는 접촉으로 놀랍고 흥분되는 시기가 될 것이다. 앞으로 다가올 과학 기술의 빠른 변화와 발견은 우리의 삶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 대한 인식을 바꿀 것이다.
중심 태양으로부터 오는 에너지 증가로 우리 사회의 자연적 발전 속도는 가속화될 것이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가 겪어 온 놀라운 발명과 변화를 생각해 보라. 우리는 덮개 달린 마차의 시대를 벗어나 세계 대부분 지역의 산업화를 거쳐 진보해 왔으며, 이제 우주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과거 8천 년보다 지난 1백 년 사이에 더 많은 진보를 이루어 왔다. 살기에 가장 자극적이고 도전할 만한 시기인 것이다.
영적인 사람들은 이때를 중요한 기회의 시기로 볼 것이다. 왜냐하면 에너지의 증가는 개인적 성장과 깨달음을 가속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우리의 가슴과 마음의 길을 발견하는 진실과 이해를 위한 시기이다. 평화와 이해의 새로운 시대로 우리를 이끌 새로운 아이디어와 사고방식을 발견하는 시기이다. 우리의 영혼이 창조와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되고, 우리를 잘못 이끌고 있는 종교적 교의(doctrines)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예언자, 스승, 그리고 빛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들(lightworkers)에게는 좋은 시기가 될 것이다. 이 새로운 에너지의 파동이 1937년 2월 13일 오전 11시 20분에 발생했기 때문에,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새로운 시대의 리더십이 물병자리로 지구가 들어선 첫날 태어난 사람들에게서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 영혼의 대부분은 지구 행성에서 가장 오래된 영혼에 속하므로 대중의 환호를 얻을 필요도 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많다. 그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지구의 새로운 시대에 스승들과 지도자들이 될 것이다.
지구상의 보다 높은 의식 에너지의 증가는 저승의 영체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왜냐하면 물질적 삶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평균 소요 기간이 짧아지기 때문이다. 통상 한 영체가 물질적 삶으로 되돌아오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152년이다. 그러나 이 같은 에너지 증가의 시대에는, 그것이 15년까지로 단축될 수 있다. 그것은 또 보다 높이 진화된 영혼들이 물질적 삶으로 태어나는 것을 촉진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때를 혼돈의 시대로 볼 것이며, 변화의 속도와 사건들에 적응하느라 아주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다. 이렇게 급속하게 변화하는 시기가 갖는 불행은 많은 사람들이 혼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것과, 그들이 스스로에 대해 책임을 지는 좋은 기회를 갖는 대신 인위적 믿음의 체계와 오도(misleading, 잘못된 길)로 이끄는 종교적 교의에 도움을 구하는 일이 점점 더 늘어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때 영적으로 깨어 있는 지도자들은 인내와 이해, 그리고 정신적 균형으로 사랑을 주고 모범을 보여야 한다.
기독교의 가르침 십계(the Ten Commandments)는 바람직하고 정직한 삶을 위한 기본을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자신들이 신의 중재자이며 천국의 길을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있다. 다가오는 시대가 점점 더 혼란스러울 것이므로 많은 종교 분파들이 생겨나서 사람들의 두려움과 무지(lack of knowledge)를 악용할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행동과 영적 성장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자기를 대신해서 이를 행해 줄
어떤 신이나 다른 성스러운 존재도 없기 때문이다.
인식이라는 모래밭에는 줄이 하나 그어져 있다. 그 한편에는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를 기회와 선도(leadership), 그리고 성장의 시대로 보는 깨달음이 높고 영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한 편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주위를 둘러보고 관찰해 보면 이 말이 진실임을 알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에만 사로잡혀 영적 무지 속에서 살고 있어서 우리 사회의 성장 또는 창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반면, 일부의 사람들은 이 놀라운 기간에 배우고 이해하며 성장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은 물병자리 시대의 에너지가 지구 인류에게 미칠 영향을 알고 있고, 한 문명으로서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을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성장하고 올바른 길로 진화하는 것을 도울 수 있는 지식과 이해를 가지고 우리를 돕는 쪽을 택했다. 그들은 러시아에 또 다른 지하 기지를 이미 건설해 놓았다. 이는 그들이 보다 더 지구 인류의 발전에 관여하기 위해서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우리의 생각을 신중하게 분석하고 세계 지도자들의 행동을 연구한 끝에 지구 인류가 평화롭게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을 돕기 위해서 그들은 우리가 여러 분야에서 진실을 알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우리에게 제공함으로써 도움이 되는 가장 중요한 정보는 바로 우리 삶의 의미와 목적에 관한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 어쩌면 사람들에게 이것보다 더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질문은 없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때때로 발길을 멈추고 자신이 존재하는 목적을 돌이켜 본다. 영적인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왜 사는지를 이해하지 않고는 산다는 것이 거의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물질적 세상에 탐닉하여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가던 길을 멈추는 일은 없다.
종교와 신앙의 목표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 답을 얻기 위해 전 세계를 다 돌아다닌다고 치면, 세상에 있는 나라들의 숫자만큼이나 많은 답을 얻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종교와 신앙이 답을 저마다 하나씩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모든 답이 다 옳을 수 없다는 것은 아주 명백하다. 과학과 통신의 발달로 세계가 좁아짐에 따라서 그들 간의 충돌이나 대립이 생길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많은 답들이 이제는 서로 마주쳐야 하는데, 더 이상은 과거에 그래 왔던 것처럼 서로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지구의 문명은 여러 차례 죽음과 파괴를 향해 왔던 혼란에 빠져 있는 문명이다. 그들의 눈에는 우리 삶의 의미에 관한 몇몇 종교의 오도된 설명이 사람들을 암흑 속에 갇혀 있도록 하고 수천 년 동안 혼란과 전쟁 및 피 흘림을 초래했다. 지구상에서 종교 전쟁과 재판에 의해 잃은 것보다 더 많은 인명 손실은 없었다. 대중을 손아귀에서 좌지우지하고, 어느 누구라도 가능한 개인적인 발견-우주 만물을 인도하는 창조의 무한한 논리적 발견-을 방지하기 위해 공포라는 요소가 너무 자주 사용되었다.
자신의 아집(ego)을 제쳐 놓고 의식의 영역을 두루 여행하는 영적 인간은 삶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찾을 수 있다. 거기에서 창조를 발견하고 모든 생명체 사이의 영적 유대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 무한한 영적 에너지에 대한 이해는 실현될 수 있으며, 물질적 삶의 목적에 대한 인식 또한 깨달을 수 있다. 일단 영적 존재가 이해되면 물질적 삶의 이유는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영적 존재들이다. 물질적으로 존재함으로써 배우는 지혜를 통해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기 위하여 여러 차례의 물질적 삶을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이것이 영적 진보가 일어나고 우리가 개별적 영체로서 창조 자체와 창조의 진화에 이바지하는 과정인 것이다. 정보를 얻고 경험을 함으로써 논리를 형성하려면 영혼에게 물질적 감각이 필요하다.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지혜가 창조의 입장에서 진실이라면 그것은 그 개인의 삶의 한 부분이 되고, 그 후에는 그것이 영혼의 영역(저승, the realm of the spirit, 물질적 삶에서의 경험은 아카식 레코드에 기록된다)으로 전해져 그 영체가 축적한 지식의 일부가 된다. 이것이 영적 진화의 의미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다.
우리의 기술적 진보는 사회적 발전을
훨씬 앞서고 있다.
이 사실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명백한 위험,
실제로 존재하는 위험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우주의 과학
지난 300년간 플레이아데스인들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우리의 기술적 진보를 책임 있게 다룰 수 있을 만큼 인류가 사회적으로 빠르게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전쟁을 위한 기계의 개발에는 많은 과학적 노력이 기울여졌지만, 마음과 영혼의 과학에 대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 왔는가? 과학자들은 사물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해답을 찾고 있다. 가장 간단한 의문에서 시작하여 가장 커다란 수수께끼들을 조사하면서 우주가 어떻게 생성되었는지, 그 속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설명을 항상 찾아왔다. 자신의 지식 탐구에 대해 과학자가 어떤 형태로든지 영적인 결론을 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다 물질적이거나 가시적인 답변만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이르면 공식과 계산의 활용은 우주의 보다 영적인 측면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될 것이다. 우주의 수수께끼들을 설명할 수 있으려면 그것을 만들어낸 창조적 영적 에너지(the Creational Spiritual Energy)를 우리가 보다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인간이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물질적 과학이 제기한 질문에서 얻어진 결론과 영적인 지식을 함께 뒤섞어야 될 것이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우주 과학에 대한 해답은 그것을 이끌고 있는 영적 능력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면 과학자들과 영적 지도자들의 목적지는 똑같은 것이다. 단지 목적지로 가는 길이 다를 뿐이다.
창조는 우주를 이끄는 영적인 힘이다. 우주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창조이다. 일단 그 생각이 떠오르면 생각은 하나의 작은 에너지 형태로 존재하는 실체가 되며, 그 실체는 하나의 우주를 형성하기 위한 정보를 담고 있다. 그 생각은 생각을 시작한 창조적 힘과 항상 연결되어 있으며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창조는 바로 그 연결을 통해 끊임없이 진화의 방향을 이끄는 가이드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나의 우주란 그것을 만들기 시작한 창조에게 지혜를 공급하기 위해 발달과 진화를 겪어 나가는 하나의 물질적 생명체로 묘사될 수 있다.
우주의 장래 형태를 결정하는 청사진을 그리는 것은 창조이다. 창조는 물질적 우주에 의해 공급되는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깨우침의 과정을 통해 진화해 간다. 창조에게는 깨어 있는 시기가 있어서 자신의 공부를 위해 물질적인 우주를 하나 만들게 된다. 그리고는 수면의 시기를 맞는다. 그때 물질적인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면 그것은 다시 잠에서 깨어나 보다 높은 진화 단계에서 또 한 번 사이클을 시작한다. 만물에 충만해 있는 것도 이 패턴(pattern)이며, 모든 생명체가 어떻게 진화하는가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는 것도 바로 이 패턴이다. 모든 생명체는 창조가 만들어 놓은 이 패턴에 따라 진화해야 하는 까닭에, 지구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의 발달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창조의 진화에 대한 이해인 것이다.
영적 교육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우리 사회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자신들의 지하 실험실 속에 몸을 감춘 채로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우리를 책임지는 일 없이 어떻게 지구에 가장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항상 문제였다. 우리의 자유의지를 간섭하지 않으면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특히 영적 교육의 문제에 있어서는 말이다. 마음과 영혼의 활용에 대해 우리를 깨우쳐 주는 방법을 찾는 일은 그들의 윤리관과 배치되었다. 왜냐하면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우리의 정치 또는 권력 구조에 대해 불간섭의 법칙을 세워 놓고 있으므로 여기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예언자들이나 깨우친 존재들을 통해 정보를 퍼뜨리는 데 의존할 수밖에 없다.
서양 세계에는 그 어느 곳에도 우리의 삶과 진화를 통제하는 서로 다른 수준의 무수한 마음과 의식을 활용하는 방법을 이해할 수 있도록 공공 교육 과정으로 만들어 놓은 데가 없다. 어디에서 자라고 어떤 학교를 다니는가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는 읽고 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더 배운 것 없이 일을 해야 살 수 있는 사회로 떠밀려 나와 줄을 서고 자신을 스스로 보호해야 하기 십상이다.
세상 문제의 대부분은 논리적이지 못한 생각에 기인한다. 비참, 우울, 상심, 그리고 다른 형태의 감정적 질병은 모두 비논리적인 방식으로 생각하는 데 원인이 있다. 한 번 상상해 보라. 우리가 세상 전체의 생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를. 정보를 받아들인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것이 어떻게 우리의 물질적 의식에 의해 저장되고 활용되는지, 또 우리 생각이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모든 이에게 내재한 영적인 힘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이해하는 논리적인 과정을 알고 있다면 말이다. 우리의 교육 체계에 이러한 가르침이 들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의식의 다양한 수준과 정보를 활용하는 우리 마음의 내면 작업에 대해 어느 누구라도 배울 수 있는 논리적인 방법이 하나 있다. 명상을 하는 것이다. 명상을 통해 우리의 생각을 스스로 이해하고 다스리는 간단한 훈련을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를 보다 높은 차원의 생각과 지식의 영역으로 연결시켜 주는 영적 능력들과 통하는 방법을 배울 수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우리가 삶을 즐길 만하고 보람 있는 것으로 만드는 데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마음과 영혼의 균형을 잡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삶은 힘들고 어렵다는 말을 한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한 개인이 자신의 생각을 다스리고 자신의 영혼을 일상생활에서 활용하는 것을 배우고 나면, 모든 문제는 햇빛에 눈이 녹듯 사라져 버리게 된다. 행운(luck)이라는 것은 마음이 균형을 잡고 있는 상태에서 올바른 이유로 올바른 일을 했을 때 발생하는, 스스로 만든 마음 상태이다. 삶 속에서 행운을 만들어 내는 마음 상태를 유지하는 과정은 누구든지 배울 수 있고 활용할 수 있다.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균형을 이해하고 아집을 다스리는 일이 가능하면, 인간은 행복이 지속되는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지구상에서의 인간의 역사
플레이아데스 사명의 다른 부분은 우리에게 지구상에서의 인간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의 기록된 역사는 매우 간략하고 불완전하며, 문명의 기원에 대한 정보를 거의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종족이 지상에서 자연적으로 진화되었다는 것은 별로 그럴듯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상에서의 우리 존재에 대한 실질적이거나 과학적인 설명을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어째서 아시아인, 백인, 아랍인, 미국의 인디언, 그리고 아프리카인들은 그처럼 다를까? 모두가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것은 가능한 일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 사이의 많은 차이가 수천 년 동안 편견과 전쟁을 불러일으켜 왔다. 현대의 무기들은 점점 더 파괴적으로 되어 가고 있으므로, 과거 어느 때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한 겨레, 즉 지구 겨레로서 뭉치는 것이 중요하다.
지구 행성이 된 구형(ball)의 가스가 형성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6천260억 년 전이라고 플레이아데스인들은 말한다. 그 기간의 대부분은 영적 에너지로부터 생명을 지탱할 수 있는 물질세계로 전환시키는 데 사용되었다. 지구상에서 인간의 생명이 탐지된 것은 과거 4천만~ 5천만 년 전 사이다. 현대 과학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지혜를 가진 인류)가 지중해 부근에 최초로 나타난 것은 50만 년 전이며, 어떤 종류이던 기록이 시작된 것은 불과 6천여 년 전부터라고 믿고 있다. 우리의 현대 문명은 지구의 오랜 역사 속에서 아주 짧은 기간에 불과하다. 지구의 역사를 일 년이란 기간으로 보면 단 1초를 넘지 않는다.
인류학자들은 이전 시대로부터 남겨진 사물과 뼈, 그릇이나 물건, 그리고 유물들을 연구함으로써 지구상의 인류 역사에 관한 설명을 찾는다. 그러나 인간의 기원에 대한 발견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남겨진 수수께끼이다. 조각들이 모두 다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상에서의 인류의 체류에 대해 우리가 더 많이 배움에 따라 지식의 단면(cutting edge)은 계속적 바뀌고 있다.
빠진 것은 지구상에 어떻게 (인간) 생명이 시작되었는가 하는 것과 수백만 년 동안 그것이 어떻게 조작되고 변화되고 또 실험되어 왔는가 하는 데 대한 이해이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을 통해 우리는 고대로부터 다른 세계에서 무수한 여행자들이 어떻게 지구로 왔고 또 정착했는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어떻게 지구상에 이토록 다른 피부색, 크기, 그리고 종족들이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과거 수백만 년에 걸쳐 지구상에 정착했던 이주자들의 역사 속에서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난 10만 년 동안에 있었던 '이주와 이식화(Colonization)'이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수백만 년 동안 지구상에서 사용된 모든 언어를 연구해 왔다. 그들은 이곳에서 발견된 다양한 이주자들에 관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주자들은 함께 뒤섞여서 오늘날 지구인들에게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혼합 형태를 초래했다. 우리는 대부분의 행성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스스로 진화하도록 내버려 두어지지 않았다. 그 바람에 우리는 수백만 년에 걸쳐 이곳을 찾아온 다른 종족들과 혼합체가 되었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운 시기는 저마다 다른 영적 진화 수준에 있는 종족들이 뒤섞여 있는 것에 근본 원인이 있다. 대부분의 행성에는 단지 한 종족만 존재한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문제가 훨씬 적다. 많은 호전적(war-like) 종족들이 지구로 와서 우리의 족보(family tree)와 피비린내 나는 역사에 이바지했다.
지구상의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들
지구 역사 가운데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시대는 피라미드와 이스터섬, 나즈카의 선들과 같이 설명되지 않는 많은 신비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무수히 남겨 놓았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의 설명은 인간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한 이해를 제공할 것이다. 과거의 풍요한 역사 속에서 우리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되면, 우리는 지구를 수백 개의 독립 국가들이 권력과 통치권을 위해 서로 싸우고 있는 분단된 세계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인류가 존재하는 행성으로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될 것이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은 그들의 조상이 곧 우리의 조상이었다고 말한다. 플레이아데스인들과 우리는 모두 여러 차례 지구에 후손을 퍼뜨렸던 라이라인(Lyran, 라이라 행성의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인류의 후손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우리를 먼 친척으로 간주하고 우리를 도우려고 노력하는 것은 바로 공통의 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우리의 기원과 우리가 어떻게 다 같이 있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해를 통해 지구 인류의 독특한 인간성이라는 퍼즐 조각들을 제대로 맞출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바야흐로 우주로 나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인류의 가족들과 자리를 같이 할 참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접촉
플레이아데스인들이 우리의 성장에 어느 정도까지 간섭하는지 분명하지는 않다. 어쨌거나 그들이 간섭을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그들의 윤리적 가치를 어느 정도 알아볼 수 있다. 그들은 약 100년 전에 우리 지구인(Earthling)들 몇을 깨달음으로 이끌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는 그들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어떤 종류의 발명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그 발명들이 어떤 것이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들이 아이디어를 전하기 위해 사용한 그 방법은 매우 흥미롭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지구 인류를 스스로 파멸을 향해 무모하게 치달리고 있는 광란의 사회로 보고 있으며, 오직 집단의식의 변화에 의해서만 그 파멸에서 돌이킬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가 수면 상태에 있을 때 잠재의식을 통해 그들의 아이디어와 영상, 사고 등을 송신한다. 이러한 아이디어들은 꿈의 일부가 되어 우리는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면서 대단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잠에서 깨어나게 된다. 이런 방법을 쓰면서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자신들이 우리의 자유 의지에 대한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 아이디어를 받기는 하지만, 오직 일부만이 스스로 그에 대한 실천적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어느 누구에게도 그 사고의 근원을 깨닫게 하는 일이 없다. 그것은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장래를 만들어 나갈 권리를 간섭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가 스스로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고 주도적으로 결정할 것을 바라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고 그들의 존재가 탐지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을 실제로 겪으면서 배웠다. 과거에 그들은 지구와 다른 세계에서 그렇게 해 보았으나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어떤 때는 신으로 숭배되기도 했고, 때로는 침략자로서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으며, 또는 누군가가 도와주기를 바라는 가엾은 주민들이 사는 행성(planet)을 떠맡기도 했다. 그 어느 것도 자신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으므로, 이번에는 자신들의 존재를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탐지되지 않도록 노력해 왔다.
20세기에 들어설 무렵 그들은 지구상의 어떤 사람과 물리적인 접촉을 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한 시도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행해졌으나, 대부분의 경우 선택된 사람에게 성실함이 결여되었거나 하여 계획(Mission)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번 접촉의 목적은 지구 인류가 우주에서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아이디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는 데 있었다. 그들은 행성 전체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연구했다. 그러나 다른 세상에도 생명이 있다는 것에 대해 대부분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당시에는 불과 몇 안 되는 사람들만 다른 세상, 즉 외계에도 생명이 있다는 생각에 관심을 기울였다. 삶 자체가 힘들고 대부분의 생각과 에너지가 생계유지 및 자신과 가족을 돌보는 데 쏠려 있었다. 극소수의 예외는 있었지만 삶의 진정한 의미나 영적 성장에 관해서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인류가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세상에 전할 지상의 누군가와 접촉을 하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그 계획을 위해 플레이아데스인들이 선택한 여성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계획이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몇 번의 물리적인 접촉을 통해서 은하계 전체에 걸쳐 존재하는 다른 생명체들에 대해, 그리고 지구상의 생명의 발전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그녀는 그 정보를 가지고 대중 앞에 나아가 그녀가 배운 것을 알리도록 부탁받았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제대로 진척되지 않았다. 그녀의 첫 시도는 가족과 친구들의 조롱을 받았다. 그리고 그녀는 미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목숨과 사회에서의 위치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외계인들과의 접촉에 대해 언급하려는 생각을 버렸다. 사람들은 그들의 교육을 전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강력한 종교적 관점에 대항하는 정보에 마음을 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사람들이 스스로 책임을 지기에는 그들의 영적 발전이 너무나 모자란다는 것이 곧 드러났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을 돌봐 주기로 되어 있는 신들의 신화나 전설에 매달려 있는 것이 더 쉬운 일이었다. 삶에서 겪는 많은 어려움과 문제에 대한 변명을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그들로서는 자신의 결정이나 실수, 성취 및 의심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보다 '신이 그렇게 원하기 때문이야' 또는 '그것이 신의 의지야' 하고 말하는 것이 쉬운 일이었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우리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접촉을 멈추고 다시 관찰자의 위치로 물러섰다.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우리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에두아르트 알베르트 마이어의 탄생
1930년대 들어 지구와의 물리적인 접촉이 다시 거론되었다. 인류가 다가오는 물병자리의 새로운 변화의 시대를 겪게 될 것이라는 것 때문에, 인간들이 삶의 의미에 대한 진실에 눈을 뜨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지구는 영적으로 불모지대라서 권력과 탐욕에 사로잡혀 돈을 벌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 휘두를 수 있는 권력과 통제력을 얻는 것을 다른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인간들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었다. 정말로 인류는 실제로 겪고 나서야 교훈을 얻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행성을 지배하는 어둠의 세력과 비논리적 사고에 사로잡혀 점점 더 그에 대항할 수 있는 아무런 힘도 갖추지 못한 양떼처럼 되어 버렸다.
1937년, 지구에 보낼 메시지를 전하고 인류에게 만연한 비논리적 사고와 영적 암흑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영체를 저승에서 찾기로 하는 결정이 내려졌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의 위대한 영적 의식이 저승의 영역으로 들어가 라슨에서 왔던 그 오래된 영체를 찾아서 이승으로 다시 데려왔다. 지구 인류에게 다시 한 번 예언자로서 봉사하면서 인간의 영혼을 일깨우는 지식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그 일은 1937년 2월 13일 오전 11시 스위스의 불리크(Bulach)에서 일어났다. 라슨에서 온 영체는 물질적 세계로 태어났으며 에두아르트 알베르트 마이어(Eduard Albert Meier)라고 이름 지어졌다. 그의 부모는 땅과 신의 말씀을 전부로 알고 사는 단순한 농부들이었다. 이 일을 발생시키기 위해 플레이아데스의 권위 있는 영적 지도자 일곱 명의 잘 통제된 생각이 필요했다. 지구는 이제 새로운 예언자 하나를 맞은 것이다.
그로부터 20분 뒤 오전 11시 20분에 장차 그 계획에 도움이 될 영혼들이 셋 더 태어났다. 그들 또한 유럽에서 태어났고, 장차 필요할 때 도울 수 있도록 에두아르트와 가깝게 살게 될 것이었다. 그 계획은 에두아르트가 물리적 피접촉자가 되는 것이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앞으로 어려운 시기에 에두아르트를 돕기 위해 ‘사념이동(telepathy, 텔레파시)’으로 플레이아데스인들과 접촉을 하게 될 것이었다. 그들에 관해서는 두 사람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는 것을 빼고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세 번째 사람은 익명으로 남는 쪽을 선택했다.
플레이아데스인들은 새로운 예언자를 통해 지구에 전해주게 될 지식이 지구인 스스로를 더 잘 이해시키고 새로운 의식 수준으로 고양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했다. 현대 문명은 조상들의 지식과 창조의 영적 가르침으로부터 단절된 채 무지(ignorance)의 틀 속에 갇혀 오랜 기간을 보냈다. 인류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기에 와 있다. 왜냐하면 지구인들이 우주에서 유일하게 지성을 갖춘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에 눈을 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깨우침의 의미는 암흑, 무지, 그리고 영적 불모의 오랜 세월을 뒤로하고 우주 인류의 가족으로 합류하는 것이다. 그것이 플레이아데스의 지구에 대한 사명과 계획(The Pleiadian Mission)이다.
[출처] 제2장 지구에 대한 ‘플레이아데스의 사명’|작성자 그린파파야
'빌리 마이어(Billy Meier) > 플레이아데스의 사명(The Pleiadian Miss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플레이아데스의 사명-제4장 인간의 역사 (0) | 2021.03.14 |
---|---|
플레이아데스의 사명-제3장 플레이아데스로부터의 접촉 (0) | 2021.03.14 |
플레이아데스의 사명-제1장 예언자, 지구에 오다 (0) | 2021.03.08 |
플레이아데스의 사명-목차/서문 (0) | 2021.03.08 |
플레이아데스의 사명(The Pleiadian Mission) (0) | 2021.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