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영주/누구나 아름다운 영혼을 지니고 있다

38. 사랑한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

기른장 2021. 3. 31. 21:31

내가 다섯 살 무렵의 가을, 큰어머니의 장지에 다녀오신 아버지는 갑자기 자리에 누워 버렸다. 온몸이 펄펄 끓은 지 며칠. 몸을 데우던 열이 조금 가라앉자 아버지는 병원으로 가서는 그 길로 입원을 했다. 사람들은 초상집을 잘못 갔다드니 액이 붙었다느니 말이 많았는데 한 달 후에야 아버지는 위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겨울 방학 한 달을 꼬박 병원에 있는 동안 집 안 곳곳에는 냉기가 서렸다. 아버지의 병수발을 하느라 병원에서 살다시피하는 어머니 대신 오빠는 아궁이가 벌겋게 달아오르도록 장작을 피워 댔지만 한기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정작 제 몸과 마음을 덮히는 것은 아궁이 밖으로 불꽃이 넘실대도록 불을 지피는 게 아니라 마음에 의지할 무엇을 하나 심어 놓는 일이라는 걸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퇴원해 오던 날 어린 우리 형제들이 그렇게 기뻐 어쩔 줄 몰라 했던 것도, 어머니의 새파랗게 질린 안색을 보며 우리의 마음이 다시 얼어붙은 것도 그래서였는지 모르겠다.

 

병원에서 돌아와 펄펄 끓는 아랫목에 차디찬 얼굴로 자리를 잡으신 아버지는 며칠 후 우리들의 손을 한 번씩 잡아보는 것으로 하고 싶은 말 대신하고서는 눈조차 감지 못하고 운명하셨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살아 생전, 당신이 살아온 지난날을 얘기할 수 있는 기회도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동경 유학생활의 고생담도,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에 대한 후일담도, 두 분에 얽힌 내밀스러운 사랑얘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는 영영 오지 않았다. 아버지의 존재라는 것이 겨우 가슴에 조그마한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내 나이 여섯 살 때, 아직 봄이 오려면 멀었던 그 때, 아버지는 그렇게 돌아가셨고 한 달 뒤에는 내내 넋을 놓고 계시던 어머니도 아버지의 뒤를 따르고 말았기 때문이다.

 

뭐가 뭔지 모를 경황 속에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어머니는 식음을 전폐했다. 한동안 내방객들로 북적이던 집안은 차가운 정적이 감돌았고 아이들은 날개 꺾인 새처럼 볕드는 양지에 모여 조마조마한 마음을 다듬기에 바빴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유품들을 한 곳에 모아 두고서는 하염없이 눈물만 지었고 학교 종소리가 들려오면 미친 사람처럼 귀를 막고 울부짖곤 했다. 한달 동안에 세 번씩이나 자살을 기도했는데 세 번째 극약을 드시는 날 어머닌 49재로 치르지 않은 아버지의 빈소에서 돌아가시고 말았다.

 

나는 그렇게 돌아가신 어머니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다른 이른 새벽에 오빠의 비명소리가 들렸고 넋이 빠져 버린 오빠의 얼굴만 기억할 뿐이다. 피었던 벚꽃이 바람에 날리며 분분이 지고 있는 한길을 따라 풀려 버린 다리를 어쩌지 못하고 제대로 걸음을 옮겨놓지 못하던 오빠의 뒷모습만 마치 각인된 상처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느닷없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주위 사람들이 정말 많은 입방아를 찧었지만 나는, 아니 우리 형제들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어머니가 아버지의 빈소에서 하루 종일을 보내는 동안 우리는 마당에 나와 볕바라기를 하면서 불안한 눈빛으로 안방을 건너다 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아버지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분이었다. 아니, 아버지가 살아 있어야 어머니도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기어코 아버지의 뒤를 따라갔을 것이다. 그것도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될까 봐 첫돌이 지나지 않은 막내를 함께 데려가려 했던 걸 보면 정말 그랬을 것이다.

 

어린 내 눈에 비친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은 어머니가 몰래 신던 아버지의 하얀 고무신에 있었다. 아버진 중학교 교감선생님이셨는데 집에선 언제나 하얀 고무신을 신으셨고, 아버지가 안 계신 동안에는 언제나 어머니가 그 고무신을 조심스럽게 신고 있었다. 고무신을 신은채 집안일도 했고 마당을 거닐면서도 늘상 그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비온 뒤의 저녁이면 아버지가 돌아오기 전에 그 흙물이 튄 고무신을 깨끗이 닦아 놓던 어머니는 그렇게 아버지를 가슴 속에다 고이 간직하고 있었던 셈이다.

 

아아,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어쩌다 아버지가 타지로 며칠씩 나가 있는 날이면 어머니는 흰고무신을 조심스럽게 끌고서 마당에 나가 저무는 서녘 하늘을 바라보며 뜻모를 미소를 짓곤 했다. 붉은 노을빛과 얼굴에 어리는 꿈결 같은 그 미소를 아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런 것이 사랑이고 그래서 그렇게 모질게도 스스로의 목숨줄을 놓을 수 있었던 것일까, 어머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