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올라온 첫날, 자정 무렵부터 청담동 선생님의 집에서 기수련을 하다 잠이 들었던 내게 다음 날도 선생님은 기수련을 하게 했다. 역학을 공부했으면 한다는 나의 바람을 완곡하게 전달했지만 선생님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미 대구의 일은 모두 정리하고 짐까지 싸서 온 터라 나는 선생님의 말을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의 수련에 임했을 때 나의 몸에 일어나는 변화는 전날과 좀 달랐다. 방법은 같았지만 조금 더 강한 진동이 일었던 것이다. 그렇게 사흘째 되던 날부터 손이 몸을 치기 시작했다.
처음 일주일 동안은 배꼽 윗부분으로만 기감을 느꼈지 하반신은 별로 감각이 없었다.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면서부터 진동이 본격적으로 오기 시작했다. 전신을 훑는 기감에 나는 데굴데굴 구르거나 기(氣)가 모인 손으로 온몸을 쳐대는 것이었다.
그러기를 며칠 내 몸은 온통 시퍼런 멍투성이었다. 멍은 동전만한 크기의 동그란 형태로 동글동글 나타나 있었는데 특히 위장이 좋지 않았던 복부주위가 아주 심했다. 나쁜 기운들이 모두 표출되는 현상이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시퍼렇게 멍이 들었는데도 전혀 아프지 않다는 점이었다.
나는 자살기도를 세 번씩이나 했던 탓에 위가 심하게 망가져 있어 소화기능이 말이 아니었다. 음식을 먹기만 하면 아랫배가 사르르 아파오며 설사를 했고 남들이 소변을 보는 횟수만큼 나는 설사를 하며 지냈던 것이다. 근 20여년을 그런식으로 지내오던 터라 만성이 된 탓에 아픈 것도 화장실을 가는 것도 나에게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수련을 시작한지 1주일이 지나자 신기하게도 식후에 배가 사르르 아파오던 증상이 싹 가셨다. 그리고 화장실을 하루에 한번만 가게 된 것이다.
내 몸에 일어난 변화가 너무 신기해서 그 사실을 선생님께 말했더니 선생님은 싱긋 웃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게 대수냐? 암이나 에이즈도 낫게 할 수 있어. 사람의 몸에 병이 드는 것은 몸의 질서가 흐트러졌기 때문이야. 감기든 암이든 에이즈든 마찬가지야. 몸의 균형만 회복하면 원래 태어날 때의 건강한 몸이 될 수 있지. 기도(氣導)라는 것은 가장 먼저 인체의 질서를 잡아 주는 것이므로 모든 병의 증상이 호전되다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거다.’
내 몸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기수련에 정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어떻게 결말이 날지는 모르지만 한번 해볼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1분 1초를 아껴가며 수련에만 전념했다. 기(氣)의 흐름이 온몸으로 느껴지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다리까지 진동이 오기 시작했다. 얼마나 진동이 심하던지 1층의 사무실에서 내가 수련하고 있는 4층의 소리가 다 들릴 정도였다.
나는 무섭게 기수련에 심취했다. 식사를 할때나 눈을 붙일 때나 나는 하루 24시간을 몽땅 수련에 쏟아부었다. 매일매일 다른 변화가 일어났고 한달쯤 지난 후에는 지금까지 나에게 고통을 줬던 사람들이 고마워지기 시작했다. 전 남편을 생각하면서 그 사람이 나에게 그만한 고통을 주지 않았다면 내가 어찌 이런 귀한 만남을 가질 수 있겠는가 하는 마음이 들어 이혼하게 된 것까지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즈음에 들어서야 선생님과 나는 가끔씩 속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한테서 뭘 체계적으로 배울 생각은 버려라. 기도(氣導)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다. 깨닫는데 무슨 체계나 방법이 있겠느냐. 이것만은 꼭 명심해라. 네가 기수련을 하면서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남들의 눈에 보여주기 위한 기운용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남들에게 보여주며 쇼를 부려서 진정으로 사람을 유익하게 해주는 건 없다. 정말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뭔가를 항상 생각하거라. 그리고 서두르지 마라. 서두른다고 해서 될 일이라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이란 없는 법이다. 스스로 알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좋은 공부다.’
그 당시의 나로서는 선생님의 말씀이 아리송하기만 했다. 아직 세상의 때를 제대로 벗지 못한 나에게 있어 선생님의 그런 말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설명할 수 있을 텐데도 선생님은 쉽게 그렇게 하지를 않았다.
‘사람의 힘으로 우주 질서를 깨뜨리는 일을 해서는 안되는 거야. 너는 절대로 눈에 보이는 기운용은 하지 마라. 먼저 네 자신이 고통과 회한의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말아.
생각해 보거라. 유리겔라가 초능력이란 것으로 식물의 싹을 트게해서 뭘 유익하게 해주며 고장난 시계를 움직인다고 해서 사람에게 어떤 큰 도움을 주겠느냐. 그런데다 에너지를 소모한다면 시간 낭비밖에 더 되겠느냐?
눈에 보이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웬만큼 해결되었고 또 앞으로도 해결될 거다. 그런것보다 인간의 마음과 영혼에 대한 것이 더 큰 문제다. 고통받고 있는 인간의 영혼을 달래고 올바로 인도하는 것이 우리처럼 도를 닦는 사람들에게 더 큰짐으로 다가오고 있어.’
나는 선생님의 마지막 말이 무슨 뜻인지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 말을 덧붙였는지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우이동에 사는 도반의 초대를 받고 선생님과 동행했을 때의 일이다. 선생님이 미간을 찌푸리더니 주위를 둘러보고 불쑥 한 마디를 뱉는 것이었다.
‘이 집 조상 중에 사지가 잘려 죽은 사람이 있어요. 그 영혼이 지금 여기에 와 있는데...’
그런데 정작 크게 놀란 것은 내가 아니라 우리를 초대한 도반이었다.
‘경찰이었던 시아버님이 6.25 전쟁때 공산군에게 끌려가신 뒤 사지가 잘려 돌아가셨습니다.’
그 도반은 너무 놀라 제대로 대답을 하지도 못하는 것이었다.
‘한이 맺혔던 분이니 잘 모셔야 합니다. 지금 집안에 우환이 많은 것도 그 영혼 때문에 그래요. 빨리 천도를 시켜드리는 게 좋아요.’
처음 그런 일을 목격한 나로서는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었다. 그리고는 왜 선생님이 며칠전에 그런말을 나에게 했는지도 퍼뜩 알아차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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