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영주/누구나 아름다운 영혼을 지니고 있다

58. 이 땅의 여성들에게 1

기른장 2021. 4. 4. 20:43

아주 가끔은 어떻게 소문을 듣고 왔는지 결혼을 앞둔 젊은 남녀 한쌍이 궁합이라는 걸 봐 달라고 수련원의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있다. 나는 좀처럼 사주나 궁합을 봐 주지 않는 사람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회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사주나 궁합을 봐 달라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 걸 보면 나는 쓴웃음을 짓곤 한다.

 

사주를 봐 달라고 오는 사람들은 거두절미하고 그냥 돌아가시라고 이르지만 궁합을 봐 달라고 오는 사람들에 나는 꼭 몇 마디를 건네는 버릇(?)이 있다.

 

“두 사람이 정말 사랑해요?”

 

나의 느듯없는 질문에 결혼을 앞둔 사람은 백이면 백, 그렇다고 대답한다. 당연하지 않은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 결혼할 이유도 없거니와 더군다나 둘이서 손잡고 궁합이 어떤지 보러다니는 정신나간 짓은 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뭣하러 궁합을 봐요?”

 

“네?”

 

“지금 두 사람이 그렇게 사랑하고 있는데 내가 궁합이 좋지 않다면 헤어질 건가요?”

 

“..........”

 

“궁합 같은 데 신경 쓰지 말고 어떡하면 두 사람이 더 재미있게 잘 살 것인가를 고민하세요. 두 사람이 함께 같은 방에서 한 침대를 쓰고, 아침에 같이 눈을 뜬다는 건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잖아요. 그렇게 좋은 생각만 하고 살면 나쁜 궁합도 좋아질 겁니다.”

 

그것으로 그만이다. 설사, 두 사람에게서 뭔가 짚이는 게 있어도 나는 더 자세한 얘기를 해 주지 않는 편이다. 궁합이 안 좋다고 지금 헤어지는 아픔을 감수하는 것이나 어쨌거나 같이 살아 보다가 틀어져서 헤어지는 아픔을 감수하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잠시의 행복이라도 서로 나누는 게 더 아름답지 않겠는가 말이다.

 

나를 찾아오는 남녀의 궁합이 좀 좋지 않아도 나는 두 사람에게 노력하라고 얘기한다. 건강도 건강할 때 지키는 게 더 중요한 것처럼 사랑이란 것도 서로가 사랑할 때 그 사랑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것은 원래 그 뿌리가 없는 법이다. 이러저러한 연유로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래서 사랑이란 건 금방 델 것같이 뜨거워졌다가도 어느 새 식고 마는 것이다.

 

궁합에 대한 얘기나 나왔으니 내친김에 결혼에 대해서도 평소에 하고 싶은 말을 ‘아주 간단히’ 했으면 한다. 내가 결혼 경력 10년에다 이혼 경력도 15년이니 하고 싶은 말이야 오죽 많을까만 괜한 잔소리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야 옛 사람들보다는 훨씬 똑똑하고 자기 주장도 강해서 무슨 충고라도 하려면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결혼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보고 판단하는 눈이 있어서 대개는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내 말도 새겨 들어 주었으면 싶다.

 

첫째는, 결혼하기 전에는 눈을 뜨고 결혼한 후에는 눈을 감으라는 것이다. 결혼 전에는 정말 이 사람과 살아도 되는지를 두 눈 부릅뜨고 살펴서 마음을 굳히고 일단 결혼한 뒤에는 상대방의 단점까지도 감싸안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반대인 것 같다. 결혼하기 전에는 눈을 감고 있어서 상대방의 단점은 보지 못하다가 결혼을 하고 나면 두 눈을 부릅뜨고서는 먼저 상대방의 단점부터 찾아 내는 것이다.

 

자기가 사랑해서 결혼을 했다면 상대방이 어떤 짓을 하더라도 허용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려고 애써야 한다. 평범한 사람들로서는 아주 힘들겠지만 그러나 노력은 해야 한다. 상대를 정말 사랑한다면서 그 사람의 단점을 시시콜콜 얘기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며 그렇게 맺어진 결혼은 두 사람의 행복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 단지 섹스를 위해 같이 사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둘째는, 젊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들으면 아주 흥분할지도 모르겠는데, 결혼을 하면 결혼한 사람답게 처신하라는 것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결혼이란 제2의 탄생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는 다른 삶이 요구되는 것이다. 나 혼자의 영역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게 미혼시절이었다면 결혼은 두 사람의 모든 게 공유되는 공간이다. 심지어는 자신의 육체까지도 그렇다. 그러니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고 새로운 삶에는 새로운 질서와 방법이 모색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여자가 시집을 가면 처녀 때의 모든 것은 없애 버리고 아줌마로 살아야 한다. 이 점에 있어서는 남자도 마찬가지이다. 결혼이란 두 사람이 새로 생명을 얻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결혼생활은 서로의 삶에 윤기를 더해 주게 되는 것이다.

 

셋째는, 욕심을 불리라는 것이다.

 

내 동생이 결혼하고 나서의 일이다. 동생이 어쩌다 우리 집에 와서는 괜찮다 싶은 물건을 보면 몹시 탐을 내곤 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너무너무 예뻐 보였다. 배우자와의 삶이 바로 제 삶이란 걸 알고 두 사람이 가꾸는 공간이 바로 제 가정이란 걸 알고 있는 여자의 마음은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사소한 것 하나라도 마침 온김에 언니 집에서 챙기려는 동생의 마음이 너무 예뻤다.

 

정당한 욕심은 결코 나쁜 게 아니다. 욕심은 자기의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만이 부릴 수 있는 마음의 사치이다. 사람이 자기 현실을 정확하게 모르면 별 욕심이 없다. 그러므로 욕심을 부린다는 건 현실에 아주 충실하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결혼을 한 사람들이 아무 욕심이 없다는 건 두 가지 경우뿐이다. 아주 바보들이거나 세상이 뭔지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들이거나.

 

출처 : cafe.daum.net/keedo/Q8yM/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