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이 영위하고 있는 삶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느낄 때가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지금 나는 오래 전부터 바라던 삶을 살고 있는지, 이대로 살아간다면 머리가 하얗게 세는 때가 오더라도 정말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회의를 품었던 사람들 중에는 어쩔 수 없는 여러 가지 조건 때문에 그대로 주저앉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과감하게 그런 타성적인 삶에서 벗어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방식을 택하든 두 가지 경우 모두 당사자의 결단을 필요로 한다. 전자의 경우에는 자신의 꿈을 접어야 하는 아픔을 감내해야 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성과물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후자의 경우를 선택한 때가 있었다.
도(道)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자기의 모든 것, 심지어는 생명까지도 포기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앞장에서 언급했던 나의 스승님의 아버지 경우가 그랬다. 그런데 나는 전혀 엉뚱하게도(?) 기수련으로 어느 경지까지 오른 다음, 어느 한순간에 기도의 세계를 포기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기수련에 심취하여 오로지 수련에만 정진하면서 나는 어느 경지에 이를 수 있었고 많은 능력을 얻게 되었다. 영계를 알게 되면서 사람에게 빙의된 영혼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을 달래서 천도를 시켰고 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을 다시 회복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언제부터 나는 정말 가장 평범한 인간으로, 두 아이의 어머니인 동시에 한 지아비의 아내로 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가 시달리고 있었다. 길을 가다가 마주치는 사람의 모든 것이 한꺼번에 알아지게 되고 이름만 들어도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있을 일들까지 그냥 알아지는 내 자신에 대해 점차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사는 것이 사람으로서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밤마다 뒤척였다. 정말 나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그리웠다.
인간이란 바로 저만치서 커다란 위험이 다가오더라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그런 유한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 인간이 아니던가. 모든 것을 미리 다 알고 예방한다는 것은 인간으로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인간으로 태어나 생로병사의 고통에 시달린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한번 그렇게 마음에 그늘이 드리워지자 나는 더 이상 수련에 정진할 수 없었다. 그리고는 어느 날 나는 지금까지의 모든 걸 접고서 평범한 인간으로 살기로 작정하고는 아무런 변명도 없이 그 세계를 뛰쳐나왔다.
이후 7~8년을 나는 기나 도에 관해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살았다. 그 세월 동안 나는 어쩌면 남들이 평생을 겪어야 할지도 모를 일들을 거쳤다. 보험설계사를 시작으로 철제가구 제작 공장, 무역상, 심지어는 경마장의 예상지를 만들어 거기에 투자를 하면서 도박꾼의 세계도 들여다보았다. 적절한 수입이 보장되는 일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 도인으로서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으로서도 잘 살아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나는 두 아이를 양육해야 하는 어머니였기 때문이었다.
한동안은 쉰 음식에 파리가 꼬이듯 돈이 들어왔다. 물불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돈이 모이면서 나는 사업을 조금씩 늘려갔다. 돈은 벌릴 때 왕창 벌어야 한다는, 가진 거라고는 몸뚱아리밖에 없는 장사치들의 말을 믿어서가 아니라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자의 몸으로 뭔가를 이루어 낸다는 성취감이 나를 그렇게 앞으로 앞으로만 내몰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벌이는 일마다 안 되는 게 없었던 사업이 어느 순간부터 급속하게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수중에 돈이 모여지지 않았다. 마치 구멍이 성긴 체로 거르는 것처럼 그 많았던 재산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사기를 당하고 부도를 맞는 것은 보통이고 두 눈 뻔히 뜨고 엉뚱한 곳에 투자를 했다가는 원금까지 고스란히 날려 버리는 일이 잦았다.
어쩔 수 없이 벌여놓았던 일들을 하나씩 정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두 해가 지나자 나에게는 조그만 가게 두 개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나마 가게도 영업이 시원찮았고 가게의 보증금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빚이 늘어나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아이들 학비라든지, 아이들에게 뭘 먹이고 사 입혀야 할 때가 되면 또 그런 대로 잠깐 돈줄에 숨통이 트이곤 했다.
그즈음에 나는 빚에 쪼들리는 것 외에도 자꾸만 죄어드는 불길한 앞날에의 예감으로 더욱더 힘들었다. 숙세의 인연으로 도의 길을 걷게 되어 있는 사람이 그 길을 포기했을 때 닥칠지도 모르는 우환이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평범한 인간의 길을 걷고 싶었던 나는 그러나 이를 악물면서 악몽 같은 나날들을 견뎌 냈다. 그냥 이대로만이라도 살 수 있다면, 아니, 우리 세 모녀가 굶어죽지 않고 살아갈 수만 있다면...... 나는 최소한 지금 상태대로만이라도 살게 해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모든 게 소용이 없었다. 숙세의 인연으로 한 번 정해진 길을 끝내 떨쳐나올 수는 없었던 것이다. 내가 다시 기도의 세계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마음이 졸아들고 있을 무렵에는 나만 망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동업했던 사람들까지 폭삭 망하는 일이 잦았다.
나는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숙세의 인연에 의해 내 몸을 얻은 영혼이 날 그냥 두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됐을 때, 기도의 세계를 박차고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주변의 상황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지만 나는 다시 예전의 세계로 되돌아 앉았다. 정리할 게 많다고 미적거려 보았자 상황이 더 좋아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나는 과거의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돌아가야겠다고 자신을 다잡은 나는 평안한 마음으로 그 동안 벌여 두었던 일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라고 해 봤자 전부가 빚이었다. 방배동에다 수련원을 냈지만 겨우 수련원을 유지할 수 있을만큼만 수입이 있었다. 그렇다고 허풍이나 떨면서 수련원에 오는 사람들을 현혹해서 돈을 벌 수도 없었다. 일단 기도의 세계로 들어오게 되면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돈을 모을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찾아오면 내가 그 사람 입장이 되어서 어떡하면 이 사람을 도와 줄까를 고민하게 되지 그 사람을 이용해서 돈을 벌겠다는 자체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매일의 일상에 허덕대던 나는 어느 날, 모든 것을 전폐하고 수련원의 문을 닫아걸고는 40일 동안 혼자서 수련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건 엄밀하게 말하면 일종의 투정이었다. 나를 다시 이 길로 들어서게 한, 숙세의 인연이 나에게 준 내 운명에 대한 투정이었다. 아니, 이 우주를 관장하는 거대한 에너지, 그 조물주에 대한 투정이었던 것이다. 나를 다시 돌아오게 했으면 나에게 좀더 많은 능력을 주든지 아니면 최소한 지금 이 상태의 생활의 질곡에서는 벗어나게 해 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투정 말이다.
식음과 수면을 거의 전폐하고 행한 40일 동안의 수련이 끝나자 나는 스스로도 놀랄 만큼 마음이 편안해졌고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인가에 대해 불안해하고 전전긍긍했던 것을 이해 못할 지경이었던 것이다.
나는 담담하게 내 마음부터 다스리는 데 열중했다. 틈나는 대로 하늘을 향해 나의 바람을 실어보냈다. 그런데 놀랄 일은 내가 그렇게 수련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자 모든 것이 바람대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난 뒤 나의 수련원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했다. 회원들을 맞이하느라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지금에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이 나에게 보여 준 섭리였음을, 굴곡 많은 세상살이의 여러 측면을 직접 느껴 보라는 의미였음을 이해한다. 어쩌면 한눈 팔지 않고 아무 고민 없이 이 길을 걸었더라면 마음 고생은 덜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살이의 깊은 구석구석을 하나도 모른대서야 어떻게 나를 찾아오는 회원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겠으며 그들의 다양한 마음의 빛깔을 짐작이라도 할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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