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구한 인연
세상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기구한 인연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는 부부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남편은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고 아끼는 나무랄데 없는 가장인데 부인은 남편을 싫어한다. 아니 싫어하는 정도를 넘어 증오한다.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도 남편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으며 남편을 미워하는 부인의 정신 상태에 잘못이 있지 않느냐 할 정도면 이것은 분명히 기구한 인연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단 한번이라도 지난날, 남편이 외도를 한 일도 없을 뿐더러 그토록 극진히 아내를 사랑했고, 또 인물도 훌륭한데 어째서 아내는 그토록 남편을 미워하는 것일까?
또 부인이 겉으로 드러내 놓고 남편을 미워하는 데도 남편의 애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도 이것 역시 세상의 상식으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필자가 보기에 그 부인은 절세의 미인도 아니며 오히려 길거리 어디에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평범한 가정주부에 지나지 않고, 오히려 사진으로 본 남편의 인품이 더 훌륭했기에 더욱 여기에는 무엇인가 깊은 사연이, 그것도, 이 세상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닌 전생에 그 원인을 찾아 보아야 되는 것이 아닐까!
첫번째 이야기
수년 전 늦은 가을, 어떤 중년 부인이 필자를 찾아온 일이 있었다.
아들이 심령과학 시리즈의 애독자여서 그 권고로 찾아왔노라고 했다.
심장 기능에 이상이 있는 것을 쉽게 알아볼 수가 있었다.
"혹시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일이 없습니까?"
"그런 일은 없는데요. 제 생각에 제 병은 남편때문에 생긴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지금이라도 남편과 헤어지기만 하면 저절로 완쾌될 것 같습니다."
"남편이 외도를 한다든가 성격이 몹시 거칠다든가 해서 그런가요?"
"아닙니다. 저의 남편은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고 또 저를 지극히 사랑해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리적으로 싫은거야 어떻게 합니까? 말하는 모습도 보기 싫고 걷는 모습이며, 하여튼 남편에 관한한 하나에서 열까지 싫은거죠. 첩이라도 얻어서 따로 살았으면 생각했던 적도 있었죠. 더구나 남편이 흠잡을데 없는 인격자라는 것이 저는 더 견딜 수 없습니다. 제가 당당히 미워할 수 있는 구실을 하나도 주지 않으니까요. 다른 남자같으면 벌써 이혼을 하고도 남았을 겁니다. 인제 남은 일이란 죽을 때가지 견디는 것, 그리고 애들 가운데 누구고 결혼하면 남편 곁을 떠나서 결혼한 아이하고 함께 살게 되는 것만이 제 소망입니다. 물론 죽어도 무덤은 따로 쓸 생각입니다."
이렇게 단호할 수가 없을 정도로 냉정한 표정이었다.
"복에 겨워서 그러시는게 아닌가요. 아니면 혹시 결혼하시기 전에 따로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어떤 사정으로 헤어지게 되었다든가 한 게 아닌가요?"
"원 당치도 않는 말씀이에요. 저는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주위에서도 모두 그렇게들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세상에는 아내를 학대하고 가정에 충실치 못한 남편이 많다는 사실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아무런 이유 없이 이렇게 남편을 미워하다가는 큰 벌을 받게 될 것 같아서 남편을 싫어하지 않으려고 모든 노력을 다해 보았지만 모두가 허사였습니다."
"자녀들은 없나요?"
"왜요. 애들은 넷이나 있습니다. 모두가 착하고 공부들도 잘 합니다. 이 애들이 불행해 질까봐 억지로 참고 살아가는 겁니다." 하고 부인은 한숨을 몰아 쉬었다.
이 부인의 경우는 도저히 상식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반드시 전생에 무슨 원인이 있거나, 아니면 남편을 미워하다가 죽은 사람이 주위에 있어서 그 영혼이 빙의되어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가 필자는 판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진을 보고 전생의 비밀을 푼다
"내일이라도 좋으니 남편되시는 분의 사진을 가져오십시오. 아주머니의 마음 속 깊이 간직되어 있는 아주머니도 모르는 원인을 알아내기 전에는 여기서 시술받는 것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 같군요."
다음날 그녀는 남편의 사진을 갖고 왔다. 사진을 본 순간, 필자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환자와 그녀의 남편과의 전생에서의 연연이 너무나 뜻밖의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진을 본 순간, 두 사람의 전생에서의 인연이 그대로 그림으로 떠올라 왔고 그 사연을 알고 보니 부인이 남편을 싫어하는 까닭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으로부터 몇 백년 전인 이조(李朝) 중종(中宗)시대가 아니었던가 한다.
경기도 과천 땅에 이름난 양반 댁이 있었다. 조부 대에서는 정승판사를 지낸 집안이었는데 이집 외며느리가 시집온지 9년이 되어도 출산을 하지 못했다.
잘못하면 집안의 대가 끊어질 판이라, 집안 식구들은 물론이오 문중에서도 말들이 많았다.
더 늦기 전에 어서 며느리를 친정으로 돌려보내고 새색시를 맞아들이자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지만, 당사자들이 남달리 의가 좋고 또 며느리의 인품과 사람됨이 나무랄데가 없었기에 시부모들은 쉽게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이들 집안은 독실한 불교신자들이었다.
그들이 다니는 절은 용화사(龍華寺)라는 절이었다.
이 절의 부처님께 백일치성을 드리고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를 누구에게서 들은 새댁은 시부모에게 간청을 했다.
어차피 자식을 낳지 못해 조만간 친정으로 돌려보내기로 마음먹었던 며느리였다.
시부모들은 쾌히 승낙을 했다.
새댁은 그날부터 용화사에서 기거를 하면서 정성으로 기도를 드렸다.
백일동안 한번도 자기 처소를 떠나지 않고 오직 마음은 한 가지 귀한 아들 낳기가 소망이었다.
부인이 절에 들어온 것은 한 여름이었는데 백일이 지나자 가을이었다.
무르익었던 녹음이 누렇게 단풍이 드는 계절이었다.
뒷산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울음소리도 어쩐지 더 구슬프게 들리곤 했다.
백일째 되던 날 아침 주지스님이 새댁을 찾았다.
"오늘로서 백일치성이 끝나는 날입니다. 목욕재개 하시고 열심히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혹시 밤중에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절대로 소리를 지르거나 놀라거나 해서는 안됩니다."
부인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저녁 주지스님은 이상한 옷을 한벌 갖다 주었다.
속옷도 입지 말고 이 옷만 걸치고 있으라고 하면서 어쩐 일인지 스님은 부인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했다.
순간, 부인은 왜 그런지 불안한 느낌이 들면서 가슴이 뛰었으나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그날 밤이었다.
밤늦게까지 정성껏 기도를 드리다가 부인은 너무도 고단해서 그 자리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여느 때하고 달리 이상하게 잠이 쏟아져 왔다.
저녁 식사후 마신 식혜가 왜 그런지 마음에 걸렸다.
(자서는 안 된다. 오늘이 마지막 치성을 드리는 날인데 잠들어서는 안 된다. 나무관세음보살)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두 눈은 자꾸 잠기기만 했다.
부인은 어느덧 깊이 잠이 들어버리고 말았다.
얼마를 잤던 것일까?
부인은 꿈에 법당 부처님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한 동자를 자기에게 안겨주는 것을 보았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부인은 부처님이 주시는 어린아이를 정성껏 받아 안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 아이가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었다.
가슴이 짓눌리는 것 같았다.
몸부림치다 잠에서 깬 부인은 자기 몸이 육중한 사나이에게 짓눌려 있음을 알았다.
달도 없는 깜깜한 밤이었다.
지척을 분간할 수가 없었다.
부인은 정신을 차렸으나 이미 사나이와는 한 몸이 된 뒤였다.
백일 동안이나 남편과 멀리 했던 부인이었다.
자기와 한 몸이 된 사나이가 누군지 알 수가 없었고,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으나 한편 꿈에 부처님이 어린아이를 품에 안겨준 것이 너무나도 자상했기에 부인은 끝까지 사나이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애쓰지는 않았다. 아니 어느덧 부인은 생후 처음 맛보는 황홀경에 빠져들어 가는 자기 자신을 어쩌지 못했다.
이럴수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짜릿한 느낌과 황홀감에서 영 헤어날 수가 없었다.
자기와 한몸이 된 사나이는 남편과 달라 우람하기 비할 데 없었다.
힘이 장사였다.
두 사람은 운우(雲雨)의 정이 무르익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면서 힘껏 끌어안았다.
이어 부인은 물밀듯이 밀려드는 깊은 잠 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부인은 새삼스럽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곁에는 이미 사나이의 그림자는 찾을 길이 없었다.
어쩌면 어젯밤 있었던 일은 꿈같기도 했다. 그러나 얼룩진 자리를 보니 분명 꿈은 아니었다.
이날 총총히 작별인사를 하는 부인을 주지스님은 어쩐지 바로 보지 못했다.
이날 이후 부인은 태기(胎氣)가 있어서 귀여운 아들을 낳았다.
시댁에서는 경사가 났다고 잔치를 벌리고 기뻐했지만 부인은 아무래도 이 아이가 남편의 자식 같지가 않았다.
차차 성장함에 따라서 주지스님과 닳은 데가 있는 것 같기만 했다.
세월은 흘러서 아들은 열여섯이 되었다. 지난해에는 이미 향시(鄕試)에도 합격을 했고 과거에도 장원급제를 했다.
그 뒤 순조롭게 출세를 해서 어머니가 환갑이 되던 해에는 이조판서까지 벼슬이 올랐고, 아들 딸 합해서 6남매를 두었다.
그러나 부인은 언제나 마음 한구석이 어둡기만 했다.
한편 용화사 주지스님의 일생도 번민에 싸인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부처님을 섬기는 스님으로서 큰 죄를 지었다는 뉘우침과 더불어 아들을 아들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괴로움이 엇갈리는 가운데 그의 번민은 끝날줄을 몰랐다.
(부처님 소승은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일로 해서 부인은 시댁에서 쫓겨나지 않았고 또 집안이 번성했습니다. 원하옵건데, 제가 성불하는 것을 뒤로 미루어도 좋으니 다음 세상에서는 떳떳하게 지아비와 지어미가 되게 하여 주소서.)
"그러니까 그때의 스님이 바로 지금의 남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전생에서 파계(破戒)하면서까지 부인을 구해준 사람입니다. 부인은 그때 절에서 받은 너무나 큰 충격때문에 생리적으로 남편을 싫어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현재도 남편은 부인을 사랑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을 깨닫게 되면 부인의 남편에 대한 감정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을 미워했고 철도사고로 죽은 시어머니가 계시다고 했죠."
"예."
"부인이 남편을 미워했기에 같은 마음을 가진 시어머니의 영혼이 빙의된 것이죠. 그분의 영혼을 천도를 시켜드리면 아마 부인의 가정은 화목해질 것입니다."
필자의 이야기를 듣고 부인은 크게 깨닫는듯 했다.
다음날 와서 남편이 이제는 전과 같이 보기 싫지가 않아졌노라고 했다.
"정말 이상합니다. 선생님에게서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갑자기 눈 앞을 가리고 있던 짙은 안개가 걷히워진 느낌이 들었읍니다. 남편이 불쌍한 생각이 들기도 하구요." 하고 그녀는 밝게 웃었다.
물론 필자가 영사한 그녀의 전생이 사실인지 아닌지 이를 증명할 길은 없는게 분명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깊이 깨닫고 화평한 가정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두번째 이야기
이번에는 남편되는 사람이 첫선 볼 때부터 아내 될 사람을 싫어했고, 그뒤 20년 가까운 결혼생활이 불행했던 한 가정의 경우를 예로 들어볼까 한다. 남편이 아내를 싫어하는 경우는 사실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일이지만, 첫선때부터 싫었던 여인과 끝내 결혼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실이라든가 또 그 남편이 레이노씨병이라는 특이한 난치병을 앓게 된 이유 등, 독자 여러분들에게 하나의 작은 참고가 될 듯 싶어 굳이 이 이야기를 소개해 보려는 것이다.
어느 레이노씨병 환자의 경우
월남전선에 작전부장으로 참전한 예비역 중령인 서갑길씨(가명임)가 필자를 찾아온 일이 있었다.
그는 10년 전부터 레이노씨병을 앓고 있는 환자였다.
레이노씨 병이란 교감신경의 이상에서 오는 난치병으로서 말초혈관이 점점 막혀 들어가서 손가락, 발가락이 썩어 들어가는 아주 난치에 속하는 질병이다.
필자는 현재까지 모두 3명의 레이노씨병 환자를 다루어서 모두 완치시킨 바 있는데, 이 병은 영혼의 빙의에 의해 생기는 것이 그 특징이었다.
심령치료와 체질개선 연구를 시작한 뒤, 수천명의 환자들을 다루는 가운데 필자도 3명밖에 만나보지 못한 아주 희귀한 난치병이다.
그런데 그에 대해서 영사를 해보니 월남전선에서 여러명의 월맹 사람들 망령이 빙의되어 있음이 드러났다. 서갑길씨는 월남전에서 대신 폭사를 하고 부하들의 목숨을 건진 이인호 소령과도 아주 친한 사이였었노라고 했다.
양생, 진오랑, 양수이, 고량, 풍하이, 이중하 중사(한국군인 전사자)
이렇게 여섯 사람들의 이름이 떠올라 왔다.
진동수를 한달 동안 마시게 하고, 시술을 시작한 지 몇번째 되던 날, 날을 받아서 이들 빙의령들(살아있는 사람에게 빙의되어 있는 영혼)을 이탈시켜서 유계로 돌려 보냈다.
당장 결과가 나타나서 환자의 상태는 매우 좋아졌다.
나날이 심해가던 증상은 정지되었고, 전에는 밤에 통증때문에 잠을 거의 이루지 못하던 환자가 잠도 잘 자게 되었노라고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마땅히 완치가 되어야 하는데 그 속도가 매우 더딘 것이었다.
필자는 아무래도 여기에는 또 다른 곡절이 반드시 있으리라고 판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하루는 서갑길씨에 게 이렇게 물었다.
"부인하고 사이가 원만하신 편입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집사람이 마음에 들지를 않았습니다. 절대로 결혼할 생각이 없었는데 집안끼리 정혼을 해 버렸다고 형님이 찾아오셔서 정 살다가 못살겠으면 그때 가서 이혼을 해도 좋으니 우선 결혼을 해 달라고 울면서 호소하시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한 결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뒤 어떻게 되었나요?"
"저는 군인이라는 것을 구실 삼아서 가능한 한 아내와 헤어져 살았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아내를 사랑하게 되기는 커녕 자꾸만 미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고 보니 큰아들이 고등학교 학생이 되었지요. 어쨌든 이것도 끊을 수 없는 인연인 모양인데 이제부터는 아내를 미워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을 하자 이 병이 발병하게 된 것입니다."
"자녀들은 어떻습니까?"
"네, 애들은 드물게 보는 효자, 효녀들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정답게 지내기를 간절히 원하고들 있지요."
필자는 이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두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부인도 진동수를 마십니까?"
"절대로 안마십니다. 아내도 튼튼한 몸이 아니어서 진동수를 마시라고 아무리 권유해도 영 듣지를 않습니다."
"서선생은 부인의 도움 없이는 병이 완쾌되기가 힘들겠어요. 당신이 나를 그토록 오랜 세월에 걸쳐 구박을 하더니 그것 셈통이다 하는 마음이 부인에게는 있습니다. 겉으로는 남편이 건강해지기를 바라고 있겠지만 속마음은 부인으로서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아닌게 아니라 곧잘 나가다가도 어쩌다 다투는 일이 있으면 내가 자기를 구박해서 이런 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그것 보세요.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라는 것이 공연한 말이 아닙니다. 부부 가운데 어느 한편이 상대편을 미워하면 그 집안은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꼭 진동수를 마시게 하십시오."
"워낙 황소 고집인데요."
"그러면 좋은 수가 있습니다. 부인의 사진을 가져 오십시오. 제 시술실에 놓아 두면 모르면 몰라도 한달 안에 어떤 변화가 올 겁니다. 부인이 진동수를 마시게 되든지 아니면 저를 찾아 오게 되든지 할 겁니다."
서씨는 필자의 권유대로 이튿날 부인의 사진을 가져 왔다.
그 뒤 한달쯤 지났을 무렵이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인데 난데없이 서씨가 부인을 동반하고 나타났다. 부인을 본 순간, 남편이 처음부터 아내를 싫어하게 된 까닭을 알 수가 있었다.
두 과부 이야기
이조 숙종 때에 있었던 일이었다.
경상도 경주에 두 과부가 사는 집안이 있었다.
시어머니는 일찍 외아들을 얻고 과부가 되었고, 며느리 역시 혼인하자마자 자손도 얻기 전에 역질로 남편을 잃었다.
두 과부는 일생을 함께 살았는데 시어머니의 성품이 여간 까다롭지가 않았다.
과부가 한가해지면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서 잠시도 쉴 틈 없이 며느리를 부려 먹었다.
본시 넉넉지도 못한 살림이라 바느질 품을 팔았는데 그 일이 여간 고되지가 않은 데다가 밤이 되면 늦도록 며느리에게 팔 다리를 주무르라고 했다.
며느리가 어쩌다가 졸든지 하면 추상같은 호령을 내리곤 했다.
"너 이년! 어디 시어머니 앞에서 조느냐!"
"에그머니나! "
며느리는 속으로 시어머니를 원망하면서 다시 부지런히 두 손을 놀려야만 했다.
어느덧 세월은 흘러서 며느리의 나이가 쉰이 넘었다.
이제는 노망기까지 생긴 시어머니의 극성은 날로 더해 가기만 했다.
산다는 것이 지겨웠다.
시어머니가 잠든 뒤, 달 밝은 뒤뜰에 나와 며느리는 정안수를 떠놓고 칠성님께 마음 속으로 기도를 드리곤 했다.
(제발 시어머니가 제 생전에 돌아가시게 되어 하루라도 좋으니 시어머니 안 모신 편한 날을 갖게 하여 주소서. 그리고 다음 번 세상에는 제발 비오니 남자로 태어나게 하여 주소서!)
머리가 백발이 가까운 며느리의 주름진 두 뺨에는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뒤바뀐 두 사람 사이
"서선생은 전생에서의 간절한 소망대로 남자로 다시 태어났지만, 시어머니가 죽기를 빌었기 때문에 시어머니가 부인이 되어 다시 함께 일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부부는 필자 앞에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부인은 아마 그렇게 생각해 오셨을 겁니다. 나는 남편을 지성으로 섬겼는데 그토록 미워했으니 못된 병에 걸린 것은 당연하다고요. 하지만 남편이 부인을 싫어한 것은 전생에서 너무나 고통을 주었던 시어머니가 다시 아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원인은 먼저 부인이 만든 것입니다.
이제는 진심으로부터 남편을 용서하십시오. 그리고 병에서 완쾌되기를 바라십시오. 남편은 남편대로 제 앞에서 뉘우쳤습니다. 한국 남편들이 아내 앞에서 정식으로 사과하는 법은 여간해서 없습니다. 저에게 고백하고 뉘우쳤으면 부인 앞에서 뉘우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그 순간 부인의 두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줄기줄기 흘러내렸다.
감정이 격한 나머지, 흐느껴 우는 부인은 말없이 지켜보는 남편의 두 눈에도 이슬이 맺혔다.
"이제 되었습니다. 두 분은 오늘로서 영적으로 다시 부부의 인연을 맺은 것입니다."
필자는 두 사람의 손을 서로 마주 잡게 해 주었다.
"이제 댁에는 평화와 행복이 깃들게 될 겁니다."
이날 이후 서갑길씨는 다시 필자의 연구원에 나타나지 않았다. 경과가 좋아진게 아닌가 생각된다.
세번째 이야기
이번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정신분열증을 앓아 온 어느 처녀의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여학교 3학년때 부모를 따라서 기도원에 갔다가 산 속에서 길을 잃고 마음에 충격을 받고 정신분열증에 걸린 처녀의 이야기이다.
어머니 되시는 분이 데리고 온 것을 보니 몸이 매우 비대했었고 잠시도 쉴새없이 무엇인가 중얼거리고 있는게 여간 중증이 아니었다.
"굉장히 뚱뚱한 편이군요."
"네, 여간 대식가(大食家)가 아니랍니다. 서너 명 정도의 식사를 하니 몸이 뚱뚱해지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어머니의 인상을 보니 젊어서 술장사를 한 것과 같은 그런 인상이었다.
"혹시 아주머니는 후처(後妻)가 아니신가요?"
"네. 맞습니다."
"그래 전처(前妻) 되시는 분은 어떻게 되었나요?"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아주머니 때문에 그렇게 된 게 아닌가요?"
부인은 얼굴이 붉어지더니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도 할 수가 있겠죠. 부인 있는 그이를 제가 좋아해서 가정 풍파가 일어났고, 그 결과 자살을 한 것이니까 저 때문이라도 해도 틀림없는 말이지요."
"그래서 그 전처가 돌아가신 뒤에 부인이 되신 거로군요."
"네, 그렇습니다."
"전처의 영혼이 따님에게 빙의가 된 것입니다. 이를테면 복수를 하기 위해서죠. 그리고 그밖에도 잡귀들이 많이 빙의되어 있는 모양이니 진동수를 백일동안 마시게 한다음 데려오십시오." 하고 그날은 카셋트 태이프만 주어서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 뒤, 백일이 지나는 동안 처녀의 어머니로부터 몇번에 걸쳐서 전화가 걸려 왔었다. 증세가 더 심해졌다고 하기도 했고, 반대로 밤낮 없이 잠만 잔다고 보고해 온 일도 있었다. 그때마다 필자는 그것은 진동수를 복용시킨데 대한 반응이니 계속 진동수를 마시게 하라고 지시하곤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백일이 지난 뒤였다.
어머니는 딸을 데리고 왔다.
몇번에 걸쳐서 체질개선 시술을 한 뒤에 '제령'을 했다.
그러나 다른 환자의 경우와 달라서 빙의령들이 잘 이탈하려고 하지 않았다. 몇번에 걸친 실패를 거듭한 끝에 겨우 '제령'이 되는 듯했다.
환자의 용태가 많이 좋아졌다는 보고가 있었기에 필자는 그녀가 아주 완치가 된줄 알았는데, 제령을 한 뒤 한 달이 지나 또 다시 재발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이런 일은 여간해서 드문 일이었기에 필자가 미처 알아내지 못한 무엇인가 깊은 사연이 있는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환자를 데려오게 해서 다시 한번 영사를 해 보았다.
분명히 앞서 '제령'한 영혼들은 빙의되어 있지를 않았다. 그런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많은 여인들의 원혼과 물고기의 영들이 수없이 빙의되어 있었다.
"따님이 아버지를 싫어하지 않습니까?"
"네, 굉장히 미워하고 있습니다."
"바깥양반이 낚시 좋아하시는 편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낚시도 좋아하시고요. 또 지금은 낚시가게를 하고 있습니다."
"바깥어른은 전생에서 동학혁명의 주모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주인 어른 인솔 아래 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그 결과 많은 여인들이 과부가 되었습니다. 그 과부들은 평생을 두고 자기 남편을 죽게 만든 사람을 원망했습니다. 따님도 그런 과부들 가운데 한 여인으로 재생한 것 같습니다. 또 그뿐만이 아닙니다. 물고기의 혼들이 많이 빙의되어 있는게 분명합니다."
환자의 어머니 이야기로, 딸은 땅 위에 올라 온 붕어들이 괴로워하는 시늉을 노상한다고 했다.
그리고, 가끔가다 자기 아버지를 보고, "너는 살인자다. 벌을 받아야 한다." 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일이 많다고 했다.
"앞서 '제령'한 것은 이승에서의 지난 날의 잘못 때문에 생긴 것이지만, 이것은 따님의 아버지 전생에서의 업장과 이승에서의 살생에 원인이 있으니 아버지 되시는 분이 한번 오셔서 제령하는 자리에서 이들 빙의령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셔야 해원이 될 것같습니다." 라고 필자는 이야기 했다.
전에는 시술실 안까지 들어오던 환자가 이제부터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아예 필자 근처에는 가까이 오려고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며칠 후 환자의 아버지가 찾아 왔다. 그러나 그는 아무래도 영혼의 존재를 믿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게 해야 딸이 좋아진다니까 마지못해서 온 것 같았다.
딸과 아버지가 한자리에 앉은 뒤, 필자는 영사한 결과를 다시 한번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딸이 대뜸 소리를 질렀다.
"이 사람은 사과할 생각이 없습니다."
이것은 딸이 아버지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거친 여인의 목소리였다.
그때서야 마지못해 아버지는 사과를 했으나 딸에게 빙의된 영혼들은 여전히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환자의 아버지는 어려운 사과를 했는데 왜 '제령'이 되지 않느냐고 필자를 나무라는 표정으로 바라다 본다.
"오랫동안 한이 맺혀 있었던 것이 한번 사과했다고 금방 풀어지겠습니까? 좀더 두고 봅시다. 세분이 함께 사진 하나 찍어서 보내세요. 원격치료를 해 볼테니까요." 하고 이들을 돌려보냈으나 여느 때와 달리 필자의 마음은 몹시 어두웠다.
죄지은 사람이 진심으로 뉘우치지 않을 경우, 업장이 소멸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여튼 이 환자의 경우, 미해결의 장으로 남아 있다는 것만은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번째 이야기
지난 1976년도 이른 봄이었다고 기억된다.
중년이 넘은 남매가 필자를 찾아온 일이 있었다.
오빠는 42세의 늙은 총각이었고 또한 가슴을 앓고 있었고, 실직한 지 3년이 된다고 했다.
누이동생도 이제 마흔인데 지난날의 고생 탓인지 머리는 거의 반백이 다 되어 있었다.
누이동생은 한국계 미국 군인과 결혼했다가 남매를 두고 이혼당한 이혼녀였다.
큰딸은 헤어진 남편이 주선하여 현재 스웨덴에 유학중이었고, 그녀는 상업고등학교를 다니는 외아들을 데리고 있는 처지인데 생활이 매우 어렵다고 했다.
"남편하고 헤어질 때 위자료도 안 받으셨던가요?" 하는 필자의 질문에 그녀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몰아 쉬었다.
"안 받기는요. 많다고 할만큼 받았는데 사업을 하다가 모두 없애버린 거죠. 여섯번 까지는 하는 일마다 잘 되었는데 일곱번째 가서 사기꾼에게 걸려서 몽땅 날려버리고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한편 오빠는 오랫동안 미군기관에 종사하고 있었고, 도장(칠일)이 전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기관이 해산하면서 실직했고, 그리고는 영 직장을 얻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다가 폐까지 앓는 신세가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날 정말 기적이 일어났다.
오빠 되는 사람이 한 번 시술을 받자 그 자리에서 변화가 일어난 것이었다. 이런 일은 여간해서 드문 일인데 필자로서도 여간 대견스럽지가 않았다. 신장이 나쁘던 누이동생도 그 뒤 며칠 시술을 받고는 완쾌했다.
이들 남매를 보내면서 필자는 예언 아닌 예언을 했다.
"아주머니께서는 7월 20일경, 일생의 큰 전기가 마련될 것 같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기회를 받아들이면 8월 이후에 생활이 완전히 안정되겠습니다."
"그럼 오빠가 해외 취업이 될 모양이군요."
"하여튼 두고 봅시다."
그뒤 한달이 지났을 무렵, 누이동생이 다신 필자를 찾아왔다.
어느 해외 용역회사 사장댁에 들어가서 3년동안 가정부 노릇을 해주면 오빠의 중동지역 취업을 책임지고 알선시켜 주겠다는 그런 기회가 왔다는 것이었다.
"아주머니께서는 그동안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하지만 남의 집 가정부 노릇까지는 안해보신 모양인데, 한번 아주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십시오. 무엇인가 크게 얻는게 있어서 앞으로 운명을 호전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기 쉬울 겁니다." 하고 필자는 격려해 주었다.
그녀는 필자의 뜻을 순순히 받아드리겠노라고 하면서 돌아갔다.
그뒤, 얼마가 지난 7월 20일 무렵이 아니었던가 한다.
이 부인이 다시 필자를 찾아 왔다. 자기가 일하고 있는 집 사장이 취업사기로 구속되었다는 것이었다. 즉, 오빠 취직은 완전히 가망이 없어졌다는 이야기였다.
"주인 여자가 어찌나 심하게 부려먹고 말끝마다 멸시를 하는지 이거 어디 서러워서 살겠습니까? 이렇게 고생을 할 바에야 노인에게라도 시집을 가서 제 살림을 하는게 차라리 좋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하고 불만이 많았다.
마침 기다리는 다른 손님이 있어서 순서가 되거든 다시 들어오라고 내어보낸 순간, 문득 필자의 머리 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어려서 높은데서 떨어져 뇌수술을 받은 막내 남동생이 홀아비로 살고 있는데 그의 부인이 되지 않겠느냐는 그런 느낌이었다.
필자가 동민문화사를 경영할 때, 이 동생은 삽화가로서 일을 했었고 《한국 아동문학 선집》의 컽은 거의 대부분이 그가 그린 그림이었다.
사람은 그지없이 착하고 노력가지만 머리에 상처를 입은 후유증 때문에 언어장해가 있고, 아무래도 지능이 보통 사람보다 좀 모자라는 이 동생이 필자는 항상 마음에 걸려 왔던게 사실이었다.
선친께서 생존해 계실 때, 결혼시킨 계수는 그 뒤 남매를 낳고는 다른 남자의 품으로 달아나 버려서 동생은 지금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처지였다.
필자가 질머진 십자가 가운데 하나라고 늘 생각해 온 필자로서는 지극히 사랑하는 동생이 갑자기 이 부인과 결부되어 생각되는 것이었다.
필자는 머리를 저었다. 그렇게 될 까닭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 부인은 고등교육까지 받은 사람인데 동생한테 시집올 까닭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일은 뜻하지 않게 진행이 되었다.
필자가 이야기 끝에 이 동생 이야기를 하면서 고충을 말하자 대뜸,
"제가 부인이 되면 안되겠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먼저 부인도 남매를 낳도록 살았다면 저라고 못 살 것은 없지 않습니까? 세 식구에게 제가 필요한 존재가 되면 될게 아닙니까?"
"부인의 결심이 그렇다면 나로서는 이 이상 다행한 일이 없습니다. 그대신 아드님의 교육 문제는 내가 책임지겠어요." 하고 필자도 확언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혼담은 급속도로 진행되어 76년 8월 3일 종로 태화관에서 간소한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는 강화도 오상교회의 목사이신 박문종(朴文鍾) 목사님이 서 주셨다.
결혼식을 치르고 나서 생각해 보니 필자가 한 이야기가 다시금 생각되었다.
7월 20일 무렵에 일생에 큰 전기가 마련되고 욕심을 부리지 않고 기회를 받아들이면 8월 이후에는 생활이 안정될 것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필자는 계수와 동생을 결부시켜서 생각한 것은 절대로 아니었었다.
왜 그런지 꼭 그렇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그렇게 이야기했던 것뿐인데 그 예언이 결과적으로 맞은 셈이었다.
또한 1976년 8월 3일은 필자가 〈체질개선 연구원〉을 연지 꼭 만 3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었다.
하나님께서 그동안의 애쓴 것을 알아주셔서 필자로 하여금 수신재가(修身齋家)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이들 부부의 앞날이 평탄하기 만을 빌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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