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크 사원은 모든 점에서 양탕 사원과 흡사했다. 나는 스승의 바로 옆방을 숙소로 받았다. 그것은 승원장의 별실로, 침실 하나와 방석들이 놓인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바닥에는 아늑하고 편안하게 보이는 티베트 융단이 깔려 있었다. 물은 고산의 눈으로부터 흘러내려 사원의 옆을 지나는 개울로부터 풍부하게 얻을 수 있었다.
몸을 깨끗이 씻고 나서 나는 한 젊은 티베트인을 소개받았다. 그는 25살이 채 되지 않았고 이름은 창타파였다. 그는 아주 지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사원의 신탁神託 영매였다. 그를 발견한 사람은 게쉬 린포체였는데 사연이 극적이었다. 게쉬 린포체 자신이 내게 직접 말해준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한번은 게쉬 린포체가 여행 중이었을 때 우연히 창타파를 만났다. 당시 창타파는 15세에 불과했다. 장소는 에베레스트 산 뒤편의 한 계곡이었다. 게쉬 린포체는 며칠 동안 음식을 먹지 못했고 아무 먹거리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어디선가 갑자기 이 젊은 소년이 나타나 음식과 음료를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창타파는 바로 삼매에 들었고, 위대한 성자 밀라레파가 그를 통해 말하는 것이었다. 밀라레파는 게쉬 린포체 앞에서 창타파가 가진 기적적인 힘들을 증명해 보여 주었다.
게쉬 린포체는 이 소년을 통해 말하고 있는 존재가 정말로 위대한 기적의 사역자 밀라레파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삼매에서 깨어난 뒤 그 소년은 린포체가 여기로 오고 있고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음식을 가져오게 되었노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말한 젊은 소년은 게쉬 린포체를 비밀 통로로 안내했다. 길을 따라 가니 그들 앞에 많은 야크 떼가 풀을 뜯고 있는 광대한 계곡이 나타났다. 게쉬 린포체가 소년에게 저 야크들이 누구의 소유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가 대답했다. "제 것입니다, 대사님."
이상하게 여긴 게쉬 린포체가 물었다. "부모님은 어디 있지?"
"아주 멀리요."
흥미가 동한 게쉬 린포체가 물었다. "여기에는 어떻게 왔지?"
그러자 소년이 대답했다. "아, 대사님. 저는 이렇게 왔어요." 그러면서 그가 룽곰파를 해 보이는 것이었다. 그것은 너무도 놀라운 일이었다. 어떻게 어린 소년이 룽곰파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게쉬 린포체가 그에게 물었다. "누구한테서 배웠지?"
"그분한테서요."
"그분이 누구지?"
그러자 소년이 다시 말했다. "그요."
마치 소년 곁에 누군가가 있는 듯이 말하는 것이었다. 게쉬 린포체는 이제까지 자신이 만나온 영매들 중에서 이 소년이 가장 놀라운 존재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래서 린포체는 소년을 칼림퐁에 있는 한 위대한 요기에게 데리고 갔다.
소년은 수년 동안 그 요기와 함께 지냈고, 지난 3년 동안 오크 사원의 신탁 영매로 있게 되었다. 이제 그의 지위는 승원장보다도 더 높았다.
이 이야기에 나는 흠뻑 매료되었다. 내가 창타파에게 힌두어로 말했더니 그가 영어로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깜짝 놀랐다.
그가 인도 요기와 함께 지내는 동안 그 요기가 그를 칼림퐁의 영국 학교에 보냈다. 거기서 그는 다른 사람들이 쫓아 올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배웠다. 나중에 나는 실제로 창타파가 가장 뛰어난 학생이었다는 걸 확인하게 되었다.
그의 영매로서의 능력은 지극히 정확한 것이었다. 우리는 서로 아주 친하게 되었다. 그는 영매술을 통해 내가 세상을 떠난 많은 존재들과 교통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를 통해 말하는 자들의 신원은 의심의 여지없이 정확한 것이었다.
나는 사원을 책임지고 있는 원장에게 소개 되었다. 원장 역시 영어로 말했다. 그래서 우리의 대화는 쉬웠다. 어떤 통역도 필요 없었다. 원장은 쾌활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계속 웃었다. 사실상 나는 그의 웃음이 너무 전염적이어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선물로 1파운드 가량의 비스킷 박스들을 가지고 왔다. 나의 스승, 원장, 창타파, 나, 이렇게 우리 네 사람은 함께 비스킷을 맛있게 먹었다. 비스킷은 더할 나위 없는 간식이었다. 우리는 차를 마시며 아껴가며 비스킷을 먹었다.
사원의 음식은 아주 훌륭했다. 야크 고기, 보리, 감자, 참파, 야크 버터, 우유, 크림, 치즈로 이루어져 있었다. 구운 닭고기와 구운 감자는 일주일에 최소한 한 번, 때때로 두 번 나왔다.
저녁이 다가올 무렵 나는 초몰하리의 일몰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메인 홀의 꼭대기로 올라갔다. 지붕은 납작했다. 우리는 거기서 계곡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 멀리 초몰하리가 있었다. 내가 본 그토록 아름다운 장관을 글로 정확히 묘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해가 초몰하리 뒤로 지고 있었다. 그 핑크빛 색상을 나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세상에서 그런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핑크빛이 보다 짙은 붉은 색으로 바뀌더니 계곡으로부터 자색의 안개가 솟아 올라왔다. 그 안개의 색깔이 점점 더 어두워지더니 구름으로 변해 위로 기어 올라가 서서히 산을 덮었다. 결국 산꼭대기 부분만 남아 붉은 햇살을 반사하였다. 마침내 산꼭대기마저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제 자색에서 붉은 색으로 천변만화하며 빛나는 구름 양탄자가 계곡과 산 전체를 덮었다. 나의 부족한 묘사력으로는 그 장관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일출 또한 일몰만큼이나 아름다웠다. 그러나 색깔의 변화는 정반대 순이었다. 해가 떠오르면서 구름이 흩어지기 시작하고 일몰 때와는 반대로 색상이 변화되었다. 그것은 잊을 수 없는 전율할 체험이었다.
우리는 매일 해가 솟기 전에 일어났다.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나는 그 절차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이 다 잘 되고 성공하리라는 것에 만족감을 느꼈다.
나의 스승은 가르치는 자로서 정식 법의를 입었다. 그의 지혜와 지식은 심원했다. 그와 게쉬 린포체는 동일한 차원에 있었다.
나의 스승은 분명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아주 중요한 말을 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주의 깊게 귀를 기울였다.
그가 말했다. "진리는 마음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야. 사람들은 자신들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종교와 문명을 만들고 있어. 그들은 자기들을 인도해줄 어떤 것을 원하고 있어. 하지만 그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노예가 되는 거야."
나는 창타파를 바라 보았다. 그가 특히 자기가 믿는 종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스승은 내 생각을 읽었음에 틀림없었다. 그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창(그는 그를 이렇게 불렀다.)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마. 그는 오래 전에 노예의 족쇄를 벗어던졌어."
스승이 계속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됨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들이 속한 분파에 집착하지. 그들은 자기들의 신조, 국적, 신앙, 정치 노선 등을 포기하기를 원치 않아. 왜냐하면 그것들에 속박되어 거짓된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지. 사람과 사람을 분리하는 것은 종교든 국적이든 관념이든 신조든 거짓된 거야. 왜냐하면 실재 속에는 분리라고 하는 건 없기 때문이지.
"사람들은 평화와 자유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기도하고 명상해야만 한다고 말해. 그래서 그들은 평화와 자유에 대한 관념에 대해 명상해. 하지만 그것은 그들을 더욱 속박하게 되지. 마음 안의 것들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우리가 그것들에 의해 어떻게 속박되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면 명상도 기도도 쓸모없어. 무엇이 분리를 초래하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면 하나됨도 평화도 자유도 그저 단순한 관념에 불과할 뿐이야."
내가 말했다. "당신은 게쉬 린포체와 거의 유사한 말을 하시는군요."
"나의 아들아." 그가 대답했다. "자유에 이르는 길은 오직 하나란다. 그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구속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야. 나는 너에게 자유를 가져다 줄 수 없어. 너는 스스로의 힘으로 그것을 얻어야만 해. 오직 그때에만 너는 모든 피조물의 배후에 있는 강력한 창조의 힘을 발견할 수 있어. 그것은 너의 마음을 초월해 있는 사랑과 지혜야. 너의 마음은 그것이 현현하는 매체야. 그런데 네 마음이 온갖 거짓된 것들로 가득 차 있다면 어떻게 그 마음을 통해 그것이 현현할 수 있겠니? 너는 그리스도 영의 사랑, 지혜, 힘이 아니라 단지 너의 조건들을 표현하게 될 거야.
그가 계속 말했다. "내가 너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은 바로 그것 때문이야. 주 예수가 네게 강림하기 위해서는 너의 마음이 충분히 정화돼 있어야 해. 그렇지 않다면 너는 네 자신의 조건을 표현하게 될 거야. 네가 여기를 떠난 후에도 너의 마음은 우리가 원하는 일을 위해 완전히 준비되지 않을 거야.
그 시간은 네게 있어서 사역을 위한 예비 기간이 될 거야.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마음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네게 보여줌으로써 너를 준비시키는 거야. 일상 속에서 이것을 보는 체험이 너의 마음을 더 효과적으로 정화시키게 돼. 이곳에서 두 배 길게 체류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지. 세상 속에서 일하는 것이 너에게 도움이 돼. 너에게는 물론, 네가 돕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말이야."
내가 다시 말했다. "세상에는 저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보다 그들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일 겁니다."
그가 말했다. "아들아, 너는 이 사역을 위해 태어났어."
내가 물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정확하게 운명 지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그가 대답했다. "예수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니?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도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아신다고."
그는 나의 의혹을 매번 잘랐다. 그러나 최후의 한 방을 날려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말했다. "글쎄요. 저는 아직 만족할만한 자유를 얻지 못했어요."
"아니, 얻었어." 그가 대답했다. "너는 강제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충동을 느끼고 있어. 그 충동은 너의 내적인 소망이야."
내가 말했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닥치든 기꺼이 이 일을 해보겠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하던 얘기를 계속하지. 너의 마음이 어느 정도 깨끗해지면 우리는 어떤 실제적인 작업에 착수할 수 있어. 나는 그 일을 가능한 빨리 시작하고 싶어. 네가 개체성에 대한 관념을 유지하는 한,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어. 진정한 명상, 진정한 기도는 거짓된 것을 발견하는 거야. 그것은 너를 계속 옭아매는 갈등의 원인에 대해서는 무지한 채 단순히 어떤 관념에 집중만 하는 것이 아니야.
"사람들은 만트라라 불리는 특정한 어구를 반복하고 있어.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명상이나 기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자기 최면이야. 명상은 특정한 관념에 헌신하는 것이 아니야. 다른 사람을 숭배하는 것은 우상숭배적이고 어리석은 미신이야. 특정한 생각이나 그림에 집중하는 것은 명상이 아니야. 그것은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도피에 불과해. 그것은 어쩌면 편안한 도피일 수 있지.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이해가 부재한 도피야. 세계는 사람들이고 사람들이 세계야. 너도 세계고 나도 세계야. 그렇지 않니?"
내가 대답했다. "예. 맞습니다. 세계는 우리가 만드는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이 문명을 만들었고 그것에 지배받고 있어요."
"맞아." 그가 말했다. "사람들은 노예가 되었어. 스스로 자기를 노예로 만들었기 때문이지. 사람들은 권위를 만들고는 그것을 따르고 모방해. 전통, 신조, 사회 분리, 국적 등이 인간의 마음을 속박하지. 개인은 단지 그것들에 순응할 뿐이야. 행동 세계 속에서 개인은 스스로 거짓된 사회를 만들지."
"분명히 이해가 갑니다." 내가 말했다. "상대 세계 속에는 어떠한 안전도 없습니다. 그것은 환영입니다."
"그래." 그가 말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덕스럽게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 하지만 그들은 이해를 거부하는 과정 속에 사로잡히지. 마음을 통제하려는 것은 불필요한 노력이야. 그것은 두려움과 한정을 가져오지. 왜냐하면 마음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자신의 상태로부터 도피하려는 생각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이지.
"어떤 생각이 마음속에 들어오면 너는 그 영향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그것을 닦아내려고 노력하지 않니? 하지만 그 영향은 여전히 남아 있어. 왜냐하면 그것이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지. 너의 상념을 이해하지 않고 안달하고 비난한다면 너는 정반대로 특정한 생각에 주의력을 집중시키게 되고, 그 결과 더욱 더 혼란에 빠지게 돼. 너의 상념이 전혀 창조적이지 않은 쓸모없는 갈등 속에 빠지곤 하지 않니?"
이제 나는 점점 더 확연히 그림이 잡히기 시작했다. 창이 말했다. "대사님, 마지막 몇 마디만으로도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스승이 계속 말했다. "어떤 생각이 너의 마음을 지배할 때 너는 그것이 무엇인지 인식해야만 해. 그것과 싸우면 안 돼. 모든 생각은 다른 어떤 것의 결과야. 너는 그 생각의 가치를 이해해야만 해. 그렇게 하면 거기에 투쟁도 두려움도 한정도 혼란도 없게 돼.
"갈등도 긴장도 투쟁도 없을 때만이 너의 마음은 가치가 있어. 그것들이 사라졌을 때 평화가 존재하게 돼. 우리의 일을 위해 네가 가졌으면 하는 것이 그런 마음이야.
"너는 매 순간 깨어 있어야만 해. 특별한 분석 시간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그렇게 되도록 갈고 닦아야만 해. 항상 현재 속에서 의식적이 돼야만 해. 그러면 너는 무엇이 일어나는지 알게 될 거야. 그것은 자아에 대한 이해를 발달시킬 거야. 자아 인식은 지혜와 진리에 이르는 문이야."
그러고 나서 그가 원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는 영적으로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는 선과 악의 투쟁 때문에 시달리고 있어. 그는 옳고 그름 사이의 투쟁에 갇혀 있어."
나는 혼자 생각했다. '이것은 원장님, 당신을 위한 말이에요." 나의 스승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원장은 자신이 선과 악 사이의 균형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 그는 신이 이 균형을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그는 기도하고 영창하고 모방하고 순응하고 있어.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미신 속에 갇혀 있어. 만일 잘못을 인식만 한다면 그는 무엇이 진리인지 알게 될 거야. 하지만 영적이 되려는 그의 갈망은 오로지 좌절과 비애와 갈등을 낳을 뿐이야."
나는 원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승이 계속 말했다. "선과 악은 같은 나무에서 자라. 양자는 동일한 근원을 가지고 있어. 그것은 오로지 인간의 마음 속에만 있는 거야. 그것은 진리에 근원을 두고 있지 않아."
창이 내 귀에 속삭였다. "원장님이 지금 설교를 듣고 있군요."
스승이 그의 말을 들었거나 그의 상념을 읽었음에 틀림없었다. 그가 이렇게 부드럽게 말했기 때문이다. "창! 너도 마찬가지야." 스승이 덧붙였다. "진리는 선과 악, 과거와 미래에 대해 알지 못해. 진리는 순간순간 생명의 살아 있는 표현이야. 그 속에는 분리도 죽음도 없어. 그것은 영원한 현재야. 이 엑스터시 속에 무한한 사랑과 지혜가 있어. 그 속에서 너의 행동들은 너의 현재의 삶과 항상 조화를 이루게 될 거야. 그러한 행동의 보답은 기적적인 것이야."
그리고는 나를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 "아들아, 이 평정 속에 삶의 환희가 있어. 거기에는 통제나 분석의 필요도 없지. 왜냐하면 너는 매 순간 자각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지. 그렇게 되면 너는 더 이상 특정한 덕목들을 가져야 하거나 갖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긴장과 두려움을 느끼며 갈등으로 가득차지 않아도 돼.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을 때 공포도 대립도 혼란도 투쟁도 사라지게 되지. 거기에는 오직 사랑과 지혜만이 있게 돼. 실재 속에 그 모든 것이 존재하지. 그렇게 되었을 때 너는 진정으로 창조적이 되고 주님이 다시 말할 수 있는 통로가 되는 거야.
"만일 네가 자아에 계속 집착하고 뭔가 되려고 애쓴다면 거기에 항상 갈등이 있게 돼. 하지만 네가 지금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때 갈등은 그치게 돼. 그렇게 되면 자유로운 생명을 깨닫게 되지. 너의 생각과 일은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지금 존재하는 진아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 의해 제한돼 왔어.
"무제한적이고 무조건적인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너의 마음은 자아에 대한 사고에 의해 짐 지워져서는 안 돼. 자아는 아무 것도 아니야. 자아가 녹아 사라져야만 해. 그래야만 실재가 현재 속에서 표현될 수 있어. '나'라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야."
나의 내면속에서 깊은 변성이 일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나를 괴롭혀온 것들이 이제는 사라지고 없었다. 내가 이런 사실을 그에게 말했다.
"아들아, 기쁘구나." 그가 말했다. "너의 마음이 도덕적 갈등으로 짐 지어져 있을 때 너는 네 존재의 진리를 깨달을 수 없어. 하지만 너의 마음이 윤리, 미덕, 구분, 분리 등에 의해 속박되지 않는다면 너는 반응, 시간, 분리, 대립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연스러운 행위의 의미를 이해하게 될 거야. 이제 생명의 흐름은 그 자신의 일을 수행하게 돼.
주 예수는 이렇게 말했지. '일을 하는 것은 내 안에 항상 계시는 아버지이다.' 그렇게 되면 너의 말은 헛되이 자기에게 되돌아오지 않고 맡은 임무를 성취하게 될 거야."
그렇게 말한 그가 이번에는 원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기 원장을 봐. 힘없는 자리에 앉아 있는 서양의 주교들처럼 무기력한 말들만 되뇌고 있어."
그 말에 원장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대사님, 저는 우리 종교의 모든 형식들을 다 믿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것으로부터 나와 인류에 대한 진정한 봉사자가 되지 않는가?" 원장이 고개를 떨구자 나의 스승이 말했다. "부름 받는 자는 많지만 선택되는 자는 적은 법이야! 실재 속에는 오로지 현재만이 있을 뿐이야. 과거도 미래도 없어. 따라서 이 이해는 연기될 수 없어. 당신을 거짓된 미덕으로부터 해방시키도록 해. 그러면 당신은 깨달음을 얻게 될 거야. 그렇게 되려면 이제부터는 당신의 사고, 동기, 반응을 식별할 필요가 있어. 그러면 당신은 무지는 배움의 부재가 아니라 가치의 혼란과 갈등이라는 것을 알게 될 거야.
"원장, 혼란스러운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헷갈리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마음 속 관념들의 투쟁 속에 갇혀 있는 거야. 당신은 모방자야. 당신은 자기 자신을 일정한 패턴을 따라 조형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러면서 당신은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실재의 이미지를 만들어 왔어.
그리고 그것에 맞추어 주의 깊게 자신을 형성시키고 있어. 그 결과 알맹이, 즉 실재 그 자체를 상실해 버렸지. 그런 모방을 통해 어떻게 생명의 영원한 행복을 깨달을 수 있지? 생명은 항존하고 분리돼 있지 않아. 진리는 구속되지 않은 하나야. 당신의 마음이 형식, 의식儀式, 구별, 분리로 가득 차 있는 한 당신은 이것을 이해할 수 없어. 거짓을 봄으로써만이 당신은 참을 볼 수 있어.
"당신이 권위를 내세우는 것은 내적으로 가난하기 때문이야. 당신은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를 원해. 왜냐하면 당신은 자기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이지. 원장, 당신은 실재가 아닌 관념의 위로 속에 도피하기를 원하고 있어! 당신의 관념은 환영일 뿐이야. 당신은 당신의 손과 발을 속박하는 것처럼 이곳의 라마들도 구속하고 있어."
그러고 나서 그가 내게 몸을 돌려 말했다. "생명은 실재야. 그것은 그 자체로 완벽해. 네 자신이 무가 될 때 그것은 자유롭게 스스로를 표현해. 자아는 분리 속에 살고 있어. 너는 네 자신이 타인과 분리돼 있다고 알고 있어. 하지만 그것은 환영에 불과해. 왜냐하면 하나의 생명만이 존재하고 그 안에 분리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지. 분리는 마음의 환영이야.
"너는 미덕을 숭배하거나 죄를 혐오함으로써 마음이 흔들려서는 안 돼. 그리고 이해를 방해하는 윤리의 편협한 길을 따르지 마. 여기 있는 원장은 자기 자신을 특정한 패턴을 따라 조형했어. 그렇기 때문에 그는 두려워하고 있어. 두려움을 떨쳐 버리기 위해 너는 너 자신이 지금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너의 허영, 질투, 시기, 욕망, 희망, 후회를 이해해야만 해. 네가 이해를 추구할 때 이 모든 것들은 사라지고 시간의 환영으로부터 자유롭게 돼.
"너의 마음이 거짓으로 가득할 때 너는 그 모든 것의 허구성을 식별함으로써 텅 비워야만 해. 그렇게 되면 마음속에서 거짓은 사라지고 항존하는 생명이 확장되는 의식과 더불어 그 자리를 가득 채우게 돼. 그것이 바로 실재야. 그 밖의 모든 것은 지혜와 사랑과 이해를 통해 식별되게 돼."
그가 여전히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나의 무한 생명이 사랑과 지혜 속에서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있어. 네가 편협하고 광신적인 신앙을 통해 그것의 작용을 제한할 때 바로 지금 네 자신의 생명 속에서 그것의 해방을 막게 돼. 아들아, 사람들을 분리의 저주로부터 해방되도록 돕는 것이 너의 일이야.
그렇게 되면 태양계의 대천사들을 통해 생명 그 자체의 원천으로부터 흘러나오는 특별한 생명이 인간을 통해 표출되게 되고, 인간 스스로가 만든 불행으로부터 해방시키게 돼. 이 생명은 지혜, 사랑, 지식, 자비로 충만해 있어. 그것은 아버지가 축성祝聖하여 세상으로 내보낸 존재, 신의 아들, 인간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대의 선구가 돼."
이 말과 함께 그날의 가르침이 끝났다. 우리는 일어서서 우리를 위해 특별히 마련된 큰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 넷은 거기 앉아서 식사를 했다.
원장이 먼저 말했다. "대사님, 당신의 말씀을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당신이 제게 무얼 요구하든 그대로 하겠습니다."
그러자 나의 스승이 말했다. "신이 자네의 손에 맡긴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치게. 그리고 자네가 맨 먼저 이 나라에서 무지와 속박과 가난 속에서 유지돼온 미신을 벗어던지는 사람이 되도록 해."
그러자 원장이 일어서서 나의 스승이 앉아 있는 쪽으로 건너가 이렇게 말했다. "제게 주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당신의 축복을 내려주십시오."
수년 후 나는 오크 협곡의 사원이 전체 티베트에서 가장 계명된 사원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간덴 사원의 훌륭한 배움터도 오크 사원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라마들이 오크의 이 위대한 승원장의 설법을 듣고 그가 행하는 기적을 보기 위해 가깝고 먼 곳으로부터 몰려왔다.
나는 그날 나머지 시간들을 활쏘기를 연습하는 몇몇 라마들을 보면서 보냈다. 티베트 전역의 사원에서 선출된 팀들이 일 년에 한 번 시합을 벌이기 위해 라사로 간다. 그것은 큰 행사였다. 오크의 라마들은 그것을 위해 연습하고 있었다. 라마들이 타깃을 맞추는 정확도는 놀라울 정도였다. 눈어림은 필수 요소이다. 타깃이 세워지면 궁수들이 일단 그 타깃을 눈으로 확인한 뒤 과녁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뒤로 한참 물러난다. 그리고는 눈어림으로 화살을 쏘게 되는데 결코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그렇게 매일 연습하는데, 그 중에서 가장 훌륭한 팀이 그런 연습과정을 통해 선발된다. 거기에는 백 명도 넘는 궁수들이 있어서 점수표를 만들어 기록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최상의 선수들만이 라사에서 열리는 시합에 참가할 수 있었다.
소년 시절 나는 활을 가지고 토끼 사냥을 하곤 했다. 오랜 세월 동안 활을 쏘아보지 못했지만 오랜만에 내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었다. 그래서 나도 한 번 활을 쏘아보고 싶다고 부탁했다. 라마들이 나를 기꺼이 환영해 주었다. 사실 시계視界 안의 과녁은 나도 아주 잘 맞추었지만 시계 밖의 과녁은 많은 실수를 범했다. 하지만 눈어림으로 쏘는 법을 충분히 연습하기만 하면 숙달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튼 나는 라마들 사이에 섞여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운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내가 속한 팀이 그날 오후의 시합에서 이겼다. 나는 평균보다 더 잘했고 덕분에 작은 영웅이 되었다. 원장도 기뻐해주었다. 그는 사실 쾌활한 사람이었고 우리와 함께 스승의 가르침을 듣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다음 이틀 동안 나는 내 마음으로부터 많은 잡다한 관념과 신조들을 떨어버리기 위해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이제 나의 마음속에는 사실들만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의 내면에는 그 어디에도 사실이 아닌 믿음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만큼 나의 스승이 나를 깨끗이 청소해 주었던 것이다. 이제 나의 마음은 첫 번째 시험을 위한 준비가 돼 있었다.
내가 한 장의 종이를 건네받았다. 거기에는 나의 스승이 쓴 심오한 글들이 적혀 있었다.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은 그 글들을 읽고 나서 그것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었다. 그 글들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전기가 내 몸을 관통하는 것만 같았다. 순간적으로 나의 마음이 텅 비었다. 그리고 전에는 결코 느껴보지 못한 확신감이 솟아올랐다.
내가 마침내 지혜의 원천과 연결된 느낌이었다. 나는, 내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올 때 나는 그것을 듣고 생각하였다. 마치 내가 둘로 갈라진 것 같았다. 나의 한 부분은 사랑과 지혜와 힘의 원천에 접속해 있고, 동시에 다른 한 부분은 느끼고 배우고 있었다. 내게 있어서 그것은 새롭고 특이한 체험이었다.
나의 스승은 정말로 기뻐했다. 그가 말했다. "앞으로 더 잘 할 수 있을 거야. 점점 나아지고 있어. 너는 위대한 영적 존재가 사용하는 통로가 될 수 있을 거야. 그가 너를 통로로 사용할 때면 너의 주위에는 영적인 빛이 감싸게 될 거야. 그것이 성취되면 너는, 네가 온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게 될 거야. 너의 지인들이 볼 때 너는 전과 닮아 보이면서도 뭔가 딱 정의할 수 없는 어떤 다른 점을 띠게 될 거야.
"네가 세상 속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고 있는 동안에도 너의 영체들은 계속 강화되어 점점 더 강력한 영적인 힘이 흘러들게 될 거야. 따라서 세상 사람들 가운데 있는 것이 이 일을 훌륭히 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자리야."
그 이후 나는 혼자가 아니며 어떤 힘이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여러 영매들을 통해 알렉산드리아의 성 안토니우스와 수차례 대화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창타파만큼 훌륭한 영매는 없었다. 창타파를 통해 영들은 자유로이 어떤 자신의 언어로든(예를 들어, 독일어, 불어, 이태리어, 중국어, 힌두어, 영어, 티베트어 등)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어떤 영이든 국적을 불문하고, 때로는 하나의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막힘없이 넘나들며 대화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나는 오크 협곡에 머무는 매 순간을 즐겼다. 우리는 공부하고 웃으며 즐겼다. 나는 빠른 진보를 이루었다. 원장은 생명과 종교에 대한 새로운 조망에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많은 진척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만일 그랬다면 오히려 라사의 고위 성직자들에 의해 파문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마치 교회가 죄, 지옥, 악마 등 사람들을 두려움 속에 가두는 관념을 부수기 위해 노력하는 주교를 파문하는 것처럼 말이다. 사람들이 두려움 속에 갇혀 있는 한 그들은 대중을 통제하고 속일 수 있다. 교회는 죄를 통해 번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려움의 원인이 제거되면 거기에는 더 이상 통제도 속임수도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
세상 속에서 사역을 하는 동안 나는 종종 종교적 광신 때문에 두려움에 가득 찬 환자들을 보아왔다. 나는 질문하는 방식으로 이렇게 말한다. "신의 본성은 무한 아닌가요?" (이것이 나의 첫 번째 유도심문이다.)
"아, 예. 신의 본성은 무한이죠!"
"그렇다면 신의 외부에는 아무 것도 있을 수 없죠? 그렇지 않다면 신은 무한한 존재일 수 없으니까요."
"맞아요!"
"무한자가 되려면 신은 모든 곳에 편재해야만 하죠? 그렇지 않다면 신은 무한한 존재가 아니니까요."
"그래요."
"그렇다면 신 이외에는 다른 것은 존재치 않는 거죠?"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신은 악마이고 지옥도 신 안에 있는 것이 틀림없지요.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악마는 존재하지 못해요. 악마는 본질적으로 존재할 수 없어요. 신의 본성이 무한이라면 신과 악마는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죠. 그것은 수학과 같아요. 잘못된 셈은 발견되는 즉시 사라지게 돼요. 마찬가지로 악마도 본래 없는 것임을 깨닫는 즉시 사라지게 돼요."
이것이 충격 요법 1호이다. 그러나 회복은 느리다. 나는 이런 말을 듣게 된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지옥과 악마가 존재한다고 말하잖아요."
그러면 내가 이렇게 대답한다. "예, 그래요. 하지만 예수는 이렇게 말했죠. '너희는 경전을 읽고 영원한 생명을 찾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잘못이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악에는 저항하지 말라.' 악에 힘을 주어서는 안 돼요. 악마는 자아입니다. 지옥은 자아가 만든 혼란입니다. 당신은 신조와 관념을 가지고 있어요. 그것들은 당신의 마음을 구성하고 있죠. 하지만 당신은 이성적으로 추론하여 그것들을 버리기를 두려워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당신은 당신의 믿음에 갇혀 있기 때문이에요. 믿음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는 한 당신은 거짓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어요."
"하지만 예수의 말들을 어떻게 되죠?" 환자가 묻는다.
내가 대답했다. "예수는 진리에 대해 어떤 말도 한 적이 없어요. 그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빌라도가 예수에게 물었죠. '진리는 무엇인가?' 그러자 예수는 빌라도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사실 예수는 어떤 말도 글로 남긴 적이 없어요. 그는 자신의 말이 진리를 드러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런 것들은 당신에게 진리에 대한 관념만을 줄 뿐이에요. 하지만 그것은 진리가 아니에요!
성경은 예수가 쓴 게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이 썼죠. 그들은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받은 후 오랜 후에 신약을 썼어요. 그리고 그 후 사람들에 의해 십여 차례나 다시 고쳐 씌어졌어요. 당신은 말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진리가 아니에요. 진리는 결코 어떤 책 속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말의 본질을 인식할 때까지 당신은 그것이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예수가 이렇게 말했잖아요. '사탄아 물러가라.'"
"나도 예수가 광야에서 발견한 것을 찾았을 때 그렇게 말했어요. 나의 마음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을 식별했을 때 나는 자아의 본질을 알게 되었어요. 자아가 바로 실재를 가리고 있는 악마입니다. 자아는 항상 앞에 서 있어요. 그것이 자아의 방식이에요. 하지만 자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아요. 자아는 우리가 실재에 대해 무지할 때만 존재해요. 이 자아가 바로 실재의 표현을 막고 있는 악마에요. 그래서 나 역시 말했죠.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사기꾼이다. 너는 나를 속여서 신의 아들로서의 나의 진정한 천부권을 앗아가려 하고 있다'
신이 유일자라는 것을 인식할 때 거기에 신 이외의 다른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그러면 내가 그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죠. 혈육이나 인간의 의지의 태생이 아니라 항존하는 영원한 신의 태생이라는 것을 말이에요. 나는 자유로워요. 그때 비로소 아버지가 자신의 일을 이루게 되죠.
"나는 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신이 어떤 존재인지 알지 못해요. 하지만 우리는 하나이고 결코 분리될 수 없어요. 자아는 분리에 대한 믿음이에요. 하지만 분리는 환영이죠. 이것이 악마이고 지옥이죠. 자아가 만들어낸 혼란입니다. 왜냐하면 자아만이 분리를 알고 자아를 위해서만 추구하기 때문이죠.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은 타인으로부터 받아들여진 마음속의 관념에 불과해요. 당신은 모방자에요. 왜냐하면 당신은 타인이 말한 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이죠. 당신은 마음의 환영에 불과한 관념을 숭배하고 있는 거예요. 그것은 신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신은 관념도 이미지도, 환영도 믿음도 아니기 때문이죠.
당신은 온갖 두려움과 환영으로 가득한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모방을 하죠. 당신은 거짓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진리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해요. 그렇기 때문에 장님이 장님을 인도하다가 모두 구덩이에 빠지게 되는 거죠.
"이제 만일 당신이 무엇이 거짓인지 알게 된다면 스스로의 힘으로 진리가 무엇인지도 알게 될 거에요. 기억하세요.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진리가 무엇인지 말해줄 수 없어요. 오직 무엇이 거짓인지를 알게 되었을 때만 당신은 진리를 체험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이 한 얘기를 무조건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힘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진리를 체험할 수 없어요. 당신에게 무엇이 진리인지 말하는 자들은 거짓 스승들이에요. 당신은 아직 그것을 알 수 없어요. 왜냐하면 당신은 자신의 믿음에 갇혀 있기 때문이죠.
"당신은 자신의 마음속을 들여다보기만 하면 되요. 그러면 당신은 그 안에 있는 것이 진리가 아니라 진리에 대한 하나의 관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될 거에요. 스스로 있는 자(I AM)는 진리에요. 나는 그 밖의 어떤 것일 수 없어요. 왜냐하면 유일자 외에 다른 생명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유일자 안에서 분리는 없어요. 따라서 환영은 당신 마음속에 있어요.
그것은 스스로 만들어낸 환영이에요. 만들어진 것은 진리가 아니에요. 만들어지지 않은 것만이 진리에요. 당신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요. 하지만 마음속에서 거짓인 모든 것들을 제거한다면 당신은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될 거에요.
"따라서 이른바 도덕이라고 하는 것은 넌센스에요. 도덕적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당신의 본질을 덮는 거예요. 당신의 본질이 아닌 것에 대한 관념을 가지는 것은 도덕적인 것이 아니에요. 도덕은 차별 없이 당신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거예요. 소위 말하는 도덕은 환영이고 구속이에요. 만일 당신이 당신의 본질을 알지 못한 채 도덕적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그것은 결코 당신을 도덕적으로 만들지 못해요.
도덕은 오로지 당신이 무엇인지 이해할 때만 발견될 수 있어요. 진정한 도덕은 자유예요. 그것은 당신이 무엇인지 이해함을 통해 얻게 되는 즉각적인 해방이에요. 도덕은 무엇이 실재의 표현을 무엇이 막고 있는지 보는 거예요.
"친절, 사랑, 자비, 관용, 용서 등은 모두 실재의 진정한 표현이에요. 그것이 진정한 도덕이에요.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우리의 문제들을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에요. 하지만 소위 말하는 도덕은 어떤 문제도 풀 수 없어요. 따라서 도덕적이 되는 것 속에는 도덕이 없어요. 왜냐하면 도덕은 오로지 지금 여기 '존재' 속에서만 있기 때문이죠. 도덕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에요. 만일 당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면 당신은 자신 속에서 어떤 도덕도 가질 수 없어요."
매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준다. 그러면 환자들은 더 많은 얘기를 듣기 위해 자꾸만 다시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들로부터 큰 짐을 덜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엇인가 되고자 하는(그래서 대립의 삶 속에 좌절만을 가져오게 되는) 노력의 긴장을 풀어놓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