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입문
사이훙은 남봉사원(南峯寺院)의 대웅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대웅전에는 도교의 삼신인 노자, 옥황상제, 태초신이 모셔져 있었다. 천장이 높고 널찍한 대웅전의 실내는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으며, 가느다란 수백 개의 촛불이 켜져 있었다. 대웅전을 떠받치고 있는 밋밋한 나무기둥에는 하늘 나라 원왕(猿王)이 악마를 무찌르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었고, 기둥 위에는 다른 많은 신들에게 둘러싸인 삼신의 모습이 그려진 두루마리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림은 천장과 바닥 중간 정도 높이에 걸려 있었는데, 마치 하늘에서 천사의 무리가 내려오고 있는 듯, 웅장하고 압도적인 장관을 이루었다. 사이훙은 그곳에 무릎을 꿇었다.
자단(紫檀)으로 만든 육중한 제단 위에는 여러 가지 제물들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보통 제단과는 달랐다. 출가의 상징인 조롱박, 도교의 달인을 상징하는 말총으로 만든 솔, 의식을 올릴 때 쓰는 빗 등이 그 위에 놓여 있었다. 벽면에는 다른 두루마리들이 걸려 있었다. 붓글씨가 씌어진 것들과 고행자들과 역대 대사부들의 초상화를 그린 것도 있었다.
삼신, 옥황 상제, 여덟 명의 불사신, 관음, 일곱 명의 공주, 도교의 지옥에서 온 신 등 우주의 신들이 전부 모여 사이훙의 출가 의식을 지켜보았다.
사이훙은 입문식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때 남봉사원 사람들, 사부님, 두 명의 사형 사이로 조부님이 언뜻 보였다. 사이훙은 겁이 날 때마다 주위 사람들을 둘러보는 버릇이 있었는데 조부모님들이 처음부터 자신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에 적이 안심이 되었다.
사이훙은 자신이 그 의식을 끝까지 이겨낼 수 있기를 빌었다. 나이든 분들은 엄숙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중요한 행사이기도 했지만 사이훙의 내면에서 일고 있는 갈등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직 젊은 두 명의 사형만이 사이훙에게 연민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들은 미소를 띤 채 은밀히 사이훙을 격려해 주었다. 두 사형만은 사이훙의 내면에 일고 있는 갈등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드디어 식이 시작되었다. 종과 징, 목어를 치는 소리가 멈추자 사부가 경전을 암송했다. 향 연기가 대웅전 안을 가득 메웠다. 등과 촛불에서 불꽃이 일렁이더니 대웅전을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경전을 암송하는 동안 사이훙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향을 올리면서 제단에 아홉 번 절을 하고, 과거 속세 사부님께 절을 한뒤 화산의 대사부에게 아홉 번 절을 올렸다. 그리고 나서 음식, 차, 포도주를 바쳤다.
대사부님은 사이훙 뒤로 걸어와 길게 자란 검은 머리를 빗겨 주셨다. 이것은 과거의 삶에 대한 집착인 명환(命環)을 떨어낸다는 뜻이었다. 사부님은 사이훙의 머리카락을 둥글게 말아 올려 나무 비녀를 꽂아 주었다. 이로써 사이훙은 가족을 떠난 것이다.
사부님은 사이훙에게 〈천자경(千字經)〉에서 따온 이름을 지어 주고, 법명(法名)도 따로 내렸다. 법명을 글자 순서를 따르기 때문에, 다른 신자들도 그의 이름만 알면 서열까지 곧 알 수 있게 된다. 법명은 사이훙이 출가인이며 사이훙이 속한 분파 내에서의 서열과 계급, 그리고 분파 자체의 서열을 나타내는 상징이었다. 두 사제가 단정히 개켜진 회색 법복(法服), 면혜(綿鞋), 기도용 방석, 동발(銅鉢)과 경전을 선물해 주었다. 앞으로 사이훙이 12년 동안 사용할 것들이었다.
경전 암송을 마친 뒤에, 사이훙은 삼신, 불사신, 그리고 분파와 관련돼 있는 고행자들을 모신 다섯 개의 다른 사당에서 혼자 의식을 치렀다. 그 후, 사이훙은 다시 성대한 채식축제(菜食祝祭)에 참석했다.
그 모든 의식을 사이훙은 열심히 치렀지만 마음속에는 의심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자신이 꼭 이 길을 택해야 했는지 불안하고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중국과 자신의 가족이 사는 집을 잘 알고 있었다. 그곳은 둘 다 사이훙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그는 자신이 택한 길만이 유일한 선택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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