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본초학을 배우다
사이훙은 다른 도량을 거처를 옮겨 나이와 학습 정도가 엇비슷한 동료들과 함께 기거했다. 그곳에서도 문파의 여러 가지 공동 작업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그의 최우선 과제는 수행에 정진하는 일이었다. 사이훙은 경전을 비롯해 많은 서적을 섭렵하고 신체를 단련하며 치유법을 배우는 한편, 명상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노력했다.
전체적으로 사각형을 이룬 도량의 건물들은 진흙으로 만든 두툼한 담장을 따라 늘어서 있었고, 담장 너머로는 널따란 풀밭이 말발굽 형상으로 펼쳐져 있었다. 건물과 풀밭 전체는 높은 화강암 절벽에 둘러싸여 있었는데, 절벽 여기저기에서 구불구불한 소나무들이 위태로운 모습으로 자라고 있었다. 바위가 침식되면서 생긴 도랑에는 맑은 샘물이 콸콸 흐르고 있었고 절벽에는 뛰어난 솜씨로 씌어진 글씨가 이곳저곳에 아로새겨져 있었으며 명상을 할 수 있게 된 동굴도 간간이 보였다.
몇몇 수석 도인들이 도관의 살림을 주관하면서 수련생들을 지도 감독했다. 그들은 낮에는 수련생을 가르치고, 밤에는 경전이나 과거에 수련을 했던 도인, 혹은 수련생의 수행 진척도 등을 주제로 삼아 토론을 주재했다.
수련생들은 각각 다른 사부를 모시면서 각자에게 가장 알맞는 방식으로 수련을 쌓아 나갔으며, 사부들은 정기적으로 수련생들을 방문해 가르침을 베풀곤 했다. 도관의 목표는 기본적인 과목을 가르치는 동시에 수련생들간의 동료의식과 협조정신을 고취시켰다. 그러므로 수련생들 사이에는 곧 강력한 유대감이 형성되었다.
그들이 배우는 중요한 과목 중의 하나가 본초학이었는데, 그 과목을 가르치는 사부는 펑쉰(風迅)이었다. 호리호리한 몸매, 햇빛에 그은 피부, 하얗게 센 머리카락, 새까맣고 커다란 눈동자를 지닌 펑쉰 사부의 가볍고도 고매한 모습을 볼 때마다 사이훙은 한 마리 사슴을 연상하곤 했다. 펑쉰 사부의 식사는 언제나 약간의 약초와 한 줌의 쌀뿐이었다. 펑쉰 사부는 항상 약실 한쪽에 설치된 신농씨(神農氏) 사당에 절을 하는 경건한 자세로 맡은 일에 임했다.
수업을 듣다 보면 펑쉰 사부가 방대한 지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수많은 서적을 외우고 있었으므로 수업 도중에 책을 들여다보는 일은 전혀 없었다.
장기(臟器), 혈도(血道), 신체구조 등에 대한 지식에 뿌리를 두고 있는 본초학은 완벽할 정도로 명상과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명상은 우리 몸에 산재한 경락(經絡)들과 관련이 있으며, 약초는 바로 그 경락을 자극하여 치료 효과를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초학계에 전해 내려오는 격언 가운데는 「아는 게 있어야 남을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 옛날 신농씨가 자신이 직접 각종 약초의 효용 여부를 알아보았듯이, 가슴속에 청운의 뜻을 품은 수련생들 역시 본초의 효과를 몸소 체험해 보았다. 사이훙도 다른 동료의 몸에, 혹은 자신의 몸에 실시한 실험 실습을 통해 안마, 본초학, 침술 등의 지식을 쌓아 나갔다.
사이훙은 먼저 안마부터 배웠는데, 그 이유는 안마란 몸과 몸이 부딪치는 〈비교적 단순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약초나 침 같은 도구를 함께 사용하며 안마를 익혔다. 안마를 이용해 병을 치료하는 것은 약초나 침을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치료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나중에 명상만으로 병을 치유하는 단계에 이른다해도 그 기본을 사용하는 것은 똑같았다.
사이훙은 안마를 통해 해부학, 압점(壓點), 혈도 등을 익혔다. 또한 기를 손끝에 모아 물건을 꽉 움켜쥐는 훈련을 거듭했다. 그런 훈련은 환자의 몸을 완전히 장악하여, 규칙적인 움직임으로 환자의 경직된 부위를 풀어 줄 때 필요한 훈련이었다. 환자가 달가워하지 않거나, 혹은 긴장하거나 두려워할 때 재빨리 근육과 뼈를 열어 안마의 효과를 받아들이기 쉽게 만드는 데도 필요했다.
어느덧 사이훙은 삐거나 부러진 뼈를 맞추는 것뿐만 아니라, 타박상과 출혈, 근육통, 혈맥이 꼬이는 것도 치료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핏속의 독소를 제거하고, 응고된 피를 풀고, 신경통을 치유하고, 제자리를 잃은 내장기관을 제자리로 되돌리는 등의 많은 병을 안마만으로도 고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또한 영양실조로 인해 생기는 몇몇 사형들의 가벼운 근육이상증상을 치료하는 광경을 몇 차례 목격하기도 했다.
안마의 두 번째 단계를 성취하려면 우선 자기의 기를 환자의 몸에 주입하는 매우 어려운 기술을 터득해야만 했다. 환자의 몸 속 깊은 곳에 있는 독소라든가 응고된 피를 피부 가까운 곳으로 이동시켜 제거하고, 또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꺼져 가는 생명을 되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펑쉰 사부가 그 방법을 설명하며 사이훙의 몸에 기를 주입하자 그는 전류 같은 에너지가 자신의 몸으로 흘러 들면서 온몸이 따뜻해지며 따끔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사이훙은 동료에게 기를 주입해 보려 했지만 웬일인지 그런 에너지가 몸밖으로 흘러 나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러자 펑쉰 사부는 동료의 몸에 두 손을 대라고 한 다음 자신의 두 손을 사이훙의 어깨에 갖다 대어 사이훙을 통해 그의 동료에게 기를 주입했다. 그때 사이훙은 기가 흘러 들었다가 팔을 통해 빠져 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펑쉰 사부는 그 느낌을 되살려 기를 몸 밖으로 흘러 나가게 하라고 일러주었다.
치료에 꼭 필요한 요소 중 하나는 진단이다. 진단은 진맥을 보는 것에서 시작된다. 펑쉰 사부는 최소한 10년 이상 진맥을 보아야 비로소 올바른 진단을 내릴 수 있다고 가르쳤다. 진맥을 보아 진단을 내리는 일은 인간의 신체를 부분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오장 육부의 상태가 건강 여부를 결정한다는 가르침을 배운 한의사들은 손목에서 감지되는 열두 개의 서로 다른 맥(오른쪽 손목의 여섯 개, 왼쪽 손목의 여섯 개)을 통해 오장 육부의 상태를 알 수 있다.
그 열두 개의 맥은 거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손목에서 느껴지는 미세한 압박감을 통해, 그리고 치료자의 손끝에서 환자의 핏속으로 주입되는 기를 통해서만 감지될 수 있다. 환자의 핏속으로 주입된 기는 수중 음파탐지기 같은 역할을 한다. 치료자는 자신이 내보낸 기가 일으키는 반향과, 혈관 속에서 반동하는 방식을 분석해 진단을 내린다. 치료자는 음(陰)인가 양(陽)인가, 딱딱한가 부드러운가, 안인가 바깥인가, 뜨거운가 찬가, 혹은 단순한가 복합적인가를 살핀다. 그리고 나서 오장 육부 각 기관의 상태를 분석 판단하며 질병의 유무와 질병의 정체를 진단하는 것이다.
펑쉰 사부는 엄격한 표정으로 환자의 진맥 결과만을 알려주고는 수련생들에게 진단을 내려보라고 요구하곤 했다. 그러나 주관적 판단과 객관적 판단이 절묘하게 절충되어야 올바른 진단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수련생들은 실수를 범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펑쉰 사부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는 거짓말과 상상은 집어치우라고 호통을 쳤다. 펑쉰 사부는 무술의 고수이기도 해서 손끝이 매서웠다. 사이훙은 일찍이 들어 보지 못했던 바보 천치라는 욕을 먹기 일쑤였으며, 어린 시절에도 잘맞지 않던 매를 맞곤 했다.
진맥점(診脈点)
사이훙은 본초학을 철두철미하게 배워 나갔다. 종종 펑쉰 사부는 사이훙에게 약초 도본(圖本)과 목록을 내주면서 그 약초들을 캐어 오라고 지시했다. 짧은 윗옷에 바지, 끈으로 묶는 납작한 가죽신, 어깨까지 가릴 만큼 옆으로 퍼진 등나무 모자, 괭이 한 자루, 약초 담을 자루 하나, 조롱박으로 만든 물병 하나, 칼 한 자루. 약초 채집에 나서는 사이훙의 복장과 휴대품은 언제 똑같았다. 가끔 밤새워 동료들과 함께 여행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보통은 혼자 약초를 수집하러 다녔다.
수련생들이 채집해 온 약초는 모두 깨끗이 다듬고 분류해서 보관했다. 펑쉰 사부는 약초들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한편 효능이 있는 부분과 가공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어떤 약초는 말리고, 또 어떤 약초는 잘게 부수었다. 음식을 익히듯이 열을 가하거나 가루로 만드는 약초도 있고, 뿌리를 얇게 썰어 두는 것도 있었다. 그렇게 만든 약초들은 도자기나 금속, 나무로 만든 용기에 넣은 다음 조심스럽게 저장해 두었다.
약을 조제할 경우에는 열 가지에서 열 두 가지의 성분이 들어가도록 약초를 배합해 몸의 모든 부분을 동시에 치료할 수 있게 만들었다. 도교 계통의 한의사들은 우리의 몸이 내적으로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균형을 유지해 나가는 조직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처방할 때 아픈 부위만을 치료하는 법이 없었다.
예컨대 감기 치료제에는 폐로 들어가 작용하는 약초, 재채기를 멎게 하는 약초, 폐의 기능을 강화하는 약초, 머리를 맑게 하는 약초, 창자를 세척하는 약초 등이 골고루 들어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중국의 한의사들은 8천 가지 약초에 들어 있는 성분을 조심스럽게 혼합해 복잡 미묘한 증상들을 치료하는 것이다.
도인들은 병을 고치기보다는 원기를 돋우어 주는 약초를 이용해 병을 예방하고자 한다. 권위 있는 여러 의학 서적들을 보면 병에 걸린 뒤에 고치는 행위는 〈목이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우물을 파는 행위〉, 혹은 〈폭동이 시작된 뒤에야 진압에 나서는 행위〉와 같다고 표현한다.
사이훙은 날이 갈수록 예방 의학에 정통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환자의 병세가 위중할 경우에는 예방 의학 이전에 침술, 수술, 부적 등 모든 치료 방법 가운데 가장 우수하고 효과적인 치료 방법을 먼저 썼다.
어느 날, 뚱뚱한 중년 사내가 화산에 실려 왔다. 그는 한마디로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얼굴엔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돌고, 혀가 퉁퉁 부어 질식사할 위험까지 있었다. 그 남자는 매우 부유한 귀족이었지만 병을 고쳐 줄 수 있는 용한 의원을 찾아내지 못했고, 절망 끝에 화산에 와서 도움을 청하게 된 것이었다.
펑쉰 사부는 즉시 용태를 살펴보았다. 그 사람은 독약에 중독된 상태였다. 그의 경쟁자의 음모로 해를 입은 것이다. 펑쉰 사부는 진단을 내렸다.
「이대로 시간을 끈다면 질식사하거나, 독기운이 심장에 퍼져 심장마비로 죽게 될 겁니다.」
도인들은 회의를 열어 그의 병을 고쳐 주기로 결정했다.
펑쉰 사부는 남자의 등에 두 손을 얹은 다음 정신을 집중했다. 두 시간 가량이 흘렀을 때 펑쉰 사부가 갑자기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손끝 하나 까딱하지 못했고 두 손바닥은 검게 변해 있었다.
두 의원이 그를 부축해 바위 옆으로 데려가자 펑쉰 사부는 자세를 바로잡은 다음 두 손을 바위에 대고 빨아들인 독을 발산시키기 시작했다. 이윽고 펑쉰 사부가 바위에서 손을 떼자 놀랍게도 그곳에는 검은 손자국이 뚜렷이 찍혀 있었다. 수련생들은 곧 그 바위를 땅속에 묻어 버렸다.
기진맥진한 펑쉰 사부는 그 후 생기를 회복하기 위해 3개월 동안 사당 안에서 칩거하며 명상에 전념했다. 물론 목숨을 건진 환자는 약초 치료를 통해 건강을 회복해 나갔다.
사이훙은 펑쉰 사부의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훗날 더욱 높은 수준의 도를 터득하고 훌륭한 능력을 얻은 뒤에도 사이훙은 펑쉰 사부의 사심 없는 자세를 돌아보곤 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사부가 보여 준 헌신적인 의료인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마음을 가다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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