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한 줌의 재
아직도 향 연기가 타오르고 있었다. 초는 환하게 불꽃이 되어 타올랐다. 촛물이 녹아 핏방울처럼 떨어졌다. 꽃들은 화려하고 싱싱하여 마음까지 즐겁게 했다. 하지만 사이훙에게는 꽃들이 곧 시들어 마르고 나면 노랗게 변색되리란 생각만이 들었다. 그는 들고 있던 항아리 속에 엄숙한 마음으로 손을 넣었다. 먼지 같은 재와 뼈가루가 손에 잡혔다. 그는 길잃은 유령처럼 비탈길을 올라오면서 화장한 사형 후디에의 마지막 유해를 천천히 산에 뿌렸다.
모든 것이 현실 그대로였지만, 사이훙은 후디에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사이훙은 직접 뻣뻣하게 굳은 후디에의 무거운 시신을 깨끗이 씻기고 옷을 입혔다. 그는 시신에 기름과 참깨를 뿌리면서 부풀어오른 차가운 살을 만졌다. 사이훙은 장례를 치르면서도 살아서 움직이던 후디에를 생각하며 오랫동안 시신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땅으로 내려가 한 줌의 흙을 보탤 뿐이었다.
통곡 소리도 사이훙에게서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슬픔도 느끼지 않았다. 단지 운명의 법칙이 가진 절대성에 몸서리가 쳐졌다. 그는 기진맥진해서 허탈감에 빠졌고 피곤했다. 사이훙은 오랫동안 고군분투하였다. 그리고 지금 모든 것은 끝나버렸다. 무사의 역할을 수행하려고 몸을 가다듬었지만, 그 추적의 영향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이 추적에 너무 깊이 몰입했기 때문에 추적을 다하자 기운이 쭉 빠져 버렸다.
대투쟁의 일부는 진엔니아오와의 싸움이었다. 사이훙은 돌아와서 그 도전에 응하려고 했다. 그런데 원로들은 은밀한 회동을 갖고 진엔니아오와 츠쑹, 투오구이를 화산에서 추방시켰다. 사이훙은 불합리하게 자신의 충성심이 거절당했다고 느꼈다. 그는 사부를 위해 싸우고자 했다. 그의 용맹과 정의감을 보여 주고 싶었다.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사부는 사이훙 없이도 승리를 쟁취했으며 반란은 이미 진압된 것이다.
사이훙은 산 밑에서 나는 자동차 소리를 듣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화산의 성스러운 고독을 방해하는 사건은 어떤 것이든 사소한 일일리 없었다. 후디에의 납골단지를 꼭 움켜쥔 채 사이훙은 머나먼 하산 길을 떠나는 세 여행자를 보았다. 푸른색 도복을 입은 그들이 떠나가자 야유와 돌아오라는 절규가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그들은 추방당하는 도전자들이었다. 사이훙은 그들의 떨리는 걸음걸이에서 패배의 쓰라림을 보았다. 진엔니아오, 츠쑹, 투오구이는 너무 기고만장해서 날뛰었다. 대사부의 총명함은 그들의 거만한 날개를 녹여 버렸다. 이제 그들은 땅으로 떨어졌다.
하늘의 제단인 화산을 떠남으로써 그들은 도교 수행자들만의 고결하고 드높은 영혼의 영광을 잃었다. 사이훙은 그들을 증오했었다. 그는 고분고분하지 못한 그들을 때려눕히고 싶었었다. 그러나 지금 사이훙은 그저 서글펐다. 따지고 보면, 갈등과 싸움, 심지어 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했던 가시 돋친 장난들이 오히려 정상적이었고 그것들은 이상하게도 그의 마음을 편하게 했었다. 그렇게라도 하면 최소한 관계는 단절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이훙은 한때 사형들에게 굉장한 사랑을 느꼈다. 그들의 도전 때문에 생긴 증오심은 그 사랑의 감정과 밀착되어 있었다. 이제는 사랑도 미움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부와 제자들의 완벽한 공동체가 이제는 회복 불능의 상태로 파손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사태였다. 사이훙은 자기가 없을 때 사형들이 원로들에게 한 도전에 대해서 더 알아내려고 신경을 쓰지도 않았고 그들을 다시 찾으려고도 않았다. 그들의 추방이 그에게 처절한 외로움을 불러일으켰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뿐이다.
대사부는 후디에도, 쫓겨난 수도자들도 다시는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리고 사이훙으로서는 감히 물어 볼 수 없는 수많은 의문을 남겨 놓았다. 사부는 하늘이나 땅에 대해 무엇이든 명쾌한 답변을 해주곤 했었는데 개인적 문제를 질문하면 최고 권위자의 고고함을 방패 삼아 슬쩍 물러나 버렸다. 사이훙은 아무리 터무니 없는 얘기라도 사부에게 얘기하려면 할 수도 있는 관계였지만 이젠 노인의 침묵에 소외감을 느꼈다.
그 뒤 몇 주일 동안 사이훙은 도관 생활에 다시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착잡한 마음과 실망이 그의 노력을 가로막았다. 내핍 생활을 하는 금욕주의자의 명상은 사이훙의 용기를 꺾어 놓았다.
그는 나이 많은 도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굶고 스스로를 희생하고 청정한 생활에 열성적으로 몸을 바쳤지만, 성공한다는 확신은 아직 없었다. 그들은 건강이 나빠 보였다. 주름살이 생기고 허리가 굽었지만, 줄어들지 않는 신앙심으로 해가 갈수록 수행에 정진했다. 그러나 사이훙은 더 이상 그들의 방식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마침내 그는 산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사이훙은 여행을 하고 모색하고 싶었다. 하지만 목표가 있어야 하고 길잡이 별과 역할이 필요했다. 그는 무술을 생각해 봤다. 그러나 더 이상 무사는 없었다.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귀족의 삶도 퇴색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사이훙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은 그저 혼자 떠돌면서 예술과 인생을 감상하는 것 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이제 목표가 생긴 것이다.
사이훙은 자신의 마음을 궁전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순화된 궁전의 최대 목표는 아름다움이었다. 마음의 궁전은 평온하게 감상하며 한가롭게 거닐 수 있는 광막한 장소가 될 것이다.
사이훙은 마음의 궁전에 정원을 만들고 맛있는 음식을 마련하고 환상적인 예술품과 전문 공예가의 우아한 가구를 들여놓을 것이다. 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특별하고 성공한 사람들을 초대할 것이다. 각각의 방은 특별한 활동을 위해 할애될 것이다. 어느 방이든 아름다운 가구들로 아주 균형 있게 채워질 것이다. 방마다 명상에 필요한 예술품이 가득 찰 것이다.
사이훙에게 있어 아름다움이란 세상의 평범함을 초월하였다. 만일 그가 무언가를 두려워한다면, 보통 사람들이 〈행복한 생활〉이라고 부르는 평범한 삶의 늪에 빠지는 것이다. 그는 풍부한 아름다움이 없는 삶을 혐오했다. 사이훙은 인류 최고의 업적과 예술과 지식의 최대 성취를 감상하고 흡수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다. 사이훙은 양자를 모두 소유하고 그것들을 수집하고 보존하고 자신의 궁전에 배열하고 싶었다.
예술품은 구입할 수 있다. 훌륭한 도자기, 귀한 골동품, 회화, 고서, 수공예 가구 ― 모두 살 수 있는 것들이며 정돈된 실내에 기술적으로 배치할 수 있다. 그러나 지식은 약간 달랐다. 그것을 소유하려면 배우고 경험을 해야만 한다. 지식은 잘 빠져 나간다. 간수하지 않으면 사라져 버릴 수 있다. 반면에 물건은 먼지밖에 낄 것이 없었다. 사이훙은 그런 자극이 필요했다.
인생의 모든 조각들이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모든 다양한 관심사를 조직화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침내 사이훙은 모든 것이 어떻게 인생에서 적당한 비율을 차지하는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신체는 풍경이 될 것이고 그의 생각은 주홍색 담이 되며 두 눈은 하늘로 가는 평화의 문이 될 것이다. 정자와 안뜰에서 그는 무술을 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높은 탑에서는 명상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의 탁월함 속에는 또한 사람들이 있게 될 것이다. 사이훙을 특별히 도왔던 사람들, 여행중에 만나서 함께 살려고 데려온 사람들. 각자는 자신의 정원과 정자를 소유할 것이다. 사부와 사형이 있을 것이다. 그의 궁전 한 곳에 화산 전체가 있게 될 것이고 그의 가족들은 다른 곳에 있게 될 것이다.
두 웨선과 같은 사람들은 독특한 인생을 살았기 때문에 사이훙의 궁전에 있을 것이다. 후디에, 핀후 그리고 당나라의 시인들도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각각의 예술품과 개개인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이훙은 사부에게 도관을 떠나고 싶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그리고 나서 공식적으로 사부를 찾아뵈었다.
「저는 속세에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있겠습니다. 저의 영혼은 평화롭지 못합니다. 화산에 있을 수 없고, 신과 함께 할 수도 없습니다.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합니다.」
사이훙은 겸손하게 말했다.
「사람의 인생에는 견디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에게 강한 소명 의식이 있다 해도 여전히 걱정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감정을 고려하는 것이 현명한 것이다. 소명을 지닌 사람은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속세로 나갈 수도 있다. 그는 항상 기댈 곳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철학없이 배회하면 안 된다. 네 청춘의 튼튼한 기반을 유지해라. 너의 의도는 한 곳에 고정시켜 놓아라.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고 밖으로 나가라.」
대사부가 조용히 말씀하셨다.
「아마도 저는 헌신적인 수도자는 결코 못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 저는 도교를 이해도 못 한 채 마음이 끌렸습니다. 수련은 앞으로도 제 생활의 중요한 일부가 되겠지만 저는 거기에 평생 매달릴 수가 없습니다.」
「성직의 화려한 장식에 오도되어선 안 된다. 경전의 암송은 좋다. 그러나 사람은 살아가면서 선행을 해야만 한다. 중요한 것은 너의 인생이다. 하늘이 너를 심판할 때는 너의 인생이 기준이 된다. 너는 항상 선을 위해 살도록 열심히 노력해야만 하느니라.
많은 사람들이 오로지 공포심 때문에 선량하게 산다. 다른 사람들은 단지 위신과 그것이 제공하는 자부심을 얻기 위해서 자선을 베푼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선행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선행을 연기하는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성인의 역할에 집착하지 말아라. 집착은 너를 다른 사람들과 똑같게 만든다. 선행은 그저 진실된 동정심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제게 무엇이든 입증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느낌이 안 듭니다. 다른 사람에게 모범을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겠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현명치 못한 것이니라. 뭔가를 입증하려고 애쓰지 말아라. 그냥 원하는 대로 행하되 위선자는 되지 말아라.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느니라. 불사신도, 신도 결코 완벽하지 않다. 심지어 원왕(猿王)도 품행이 나빴단다. 동방삭(東方朔)도 도둑질을 했잖느냐. 북해의 불사신도 한때 악행을 저지르고 벌을 받아 하늘에서 쫓겨나기도 했지.
중요한 것은 네가 열심히 분투하기 위한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정직하게 도전하다 보면 수련을 하게 될 것이다. 단지 순결함을 목표로 취해라. 만일 네가 진정으로 그것을 원한다면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다른 것은 모두 제쳐놓을 것이니라.」
「사부님, 저는 확신이 안 섭니다. 저는 실망스럽습니다.」
대사부는 잠시 침묵했다.
「너한테는 평범함을 인정하는 면이 하나도 없구나.」
「사실입니다.」
사이훙이 동의했다.
「그렇다면 어려운 과제를 주마. 순결을 너의 목표로 삼아라. 그것이 너를 특출나게 만들어 줄 것이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의지력, 불굴의 정신과 힘이 결여되어 있다. 특별한 사람은 최고의 결단력을 가진 자다.
일단 정신으로 최고의 결단력을 발휘하게 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느니라. 현인들은 바위에 완전한 믿음을 받쳐 숭배하면 바위도 살아 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정신력이니라. 방랑할 때는 그 힘을 하나의 목표, 즉 순결에 쏟아라.」
「무엇을 위한 순결 인가요?」
사이훙은 우울하게 물었다.
「선인이건 악인이건 결과는 같은 것 같습니다. 죽어서 묻히는 겁니다. 수도자는 여기 화산에 올라와 순수해지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제껏 신을 만난 적이나 있습니까? 그들은 절대적인 신앙 속에서 수십 년을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들이 보답을 받으리라는 쥐꼬리만한 증거도 없습니다.」
「신을 위해 선량해지려고 하지 말아라.」
대사부는 참을성 있게 말했다.
「너 자신을 위해 선량해지거라. 그러면 신들이 네 속에 있기 때문에 너는 성인을 위해 저절로 선행을 하게 될 것이니라. 최고의 신성은 우리 모두의 내부에 존재한다. 그것을 밖에서 구하지 말아라. 안을 들여다 보아라. 그러나 불량함, 탐욕, 욕망과 집착으로 오염되지 않은 시선으로 보아야 하느니라.
명심해라.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우리 스스로가 한다는 것을. 신들은 간섭하지 않는다. 너는 네가 원하는 그대로 될 수 있다. 성스러움을 얻으려 하지 말고 단지 한 개인의 목표로서 특별한 사람이 되어라.」
「왜 제가 무엇이든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십니까? 왜 저는 그토록 종교적이어야만 합니까?」
「나는 종교에 대해서 말한 것이 없다. 종교는 역시 네 인생 행로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너를 질질 끌고 갈 것이다.
너는 너 자신이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상을 추종하는것은 거부해야만 한다. 너 자신을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 채워 넣으면 너는 제한을 받게 된다. 너는 혼자 힘으로 너의 본성을 터득해야만 하느니라. 혼자 수련을 하며 깨달음을 얻는 것이 중요한 열쇠이다. 너는 네 스스로 자유로워질 수 있을 뿐이다. 너는 너 자신을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 내부에 든 것이 결실을 맺을 수 있느니라.
내 목적은 단 한가지, 네가 네 인생을 성취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너는 성직의 체제가 없는 세상으로 나갈 것이다. 나는 너에게 내부의 구조를 보여주고 싶다. 즉, 혼란스럽게 넘쳐나는 세속의 영향력에 맞서는 방법이니라.」
「사부님, 제발, 계속 말씀해 주세요.」
사이훙은 사부의 얘기를 더 듣고 싶었다. 뭔가 이해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인생은 놀이이고 한 편의 연극이다. 이 서사극의 무대는 무수한 인물들로 꽉 채워져 있다. 각자에게는 구성과 줄거리가 있다. 그들은 시시하고 애처로운 상황에 처해 있느니라. 너는 어떻게 이 영원한 연극에서 길을 찾아 나아갈 것이냐? 광대가 될 테냐? 영웅이 되고 싶으냐? 비극의 왕자? 아니면 얼간이가 될 것이냐? 너는 원칙과 철학을 지켜야만 하느니라.」
「저는 원칙이 있는 남자가 되겠습니다.」
사이훙은 얼른 이렇게 대답했다.
「철학은 싫다는 거냐?」
대사부가 물었다.
「너는 인생의 실상을 참되게 인식하고 인간의 정서를 이해하는 철학을 가져야만 한다. 어떤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기 전에 모든 것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라. 결정을 내리기 전에 신중하여라. 너의 이성과 분별력을 발휘해라. 선과 악이 존재하는 이유를 이해해라. 어떻게 해서 둘 다 파괴할수 없으며 선과 악이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하는지 알아야 한다.
융통성을 가져라. 너의 철학이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게 하여라. 너의 사고가 발전하면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형태가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인식하여라. 단지 현재가 아니라 너의 인생 전체에 비추어서 생각하여라. 네가 하는 것은 평생 동안 지속될 것임을 확신하여라.」
대사부는 사이훙을 한 번 쳐다보고 나서 다시 말을 이었다.
「꼭 한 가지 인생에서 새겨둘 것이 있다. 너는 너의 존재 구조를 깊이 통찰해야만 하느니라.」
「충고를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이훙은 진심으로 대사부에게 감사드렸다.
사이훙은 자신의 방랑이 한없이 계속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의 결정은 옳았다. 하지만 그의 가슴은 아직 머리가 내린 결정을 쫓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사이훙은 대화를 매듭짓기로 다부지게 마음먹었다.
「제가 산을 내려가도록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오냐.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느니라.」
휴! 사이훙은 속으로 절망했다. 언제나 나를 옭아매려 드신다니까.
「모든 사람은 인생에서 과업을 가져야만 한다. 특히 화산을 떠나는 사람에겐 일생 동안 완수해야 하는 과업이 있다.」
그 말은 사이훙에게 탐구하라는 말처럼 들었다. 다 잘될 것이다. 자신의 마음에 궁전을 지었으므로 그것을 요새로 이용하면서 탐구를 활발히 펼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신나는 일이 될 거야. 사이훙은 혼자 생각했다. 화산이 주는 즐거운 마지막 기념품!
「과업이란 무엇입니까?」
사이훙이 물었다.
「나는 너에게 죽서칠판으로부터 과업을 하나 주겠다. 너는 그것을 완수할 것을 맹세하느냐?」
「그것이 무엇입니까?」
「나는 너를 타협할 줄 모르는 철저한 무사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무엇인지 꼭 알아야겠단 말이냐? 그것을 수용할 만한 용기가 네겐 없단 말이냐?」
이건 속임수다. 사이훙은 생각했다. 제자를 통제하려는 또 다른 시도다. 그러나 호기심도 생겼다. 그는 그것을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 정말 좋은 것이라면.
「받아들입니다.」
「좋다. 고통받는 자를 만나면 너는 네 힘이 닿는 데까지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그들은 도와야만 하느니라. 이것이 너의 과업이다.」
사이훙은 기다렸다. 대사부는 말없이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그게 전부인가요?」
사이훙은 무례한 말투로 물었다.
「그래.」
대사부는 조용히 대답했다.
사이훙은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것은 전혀 매력적인 과업이 아니었다. 그것은 수집가, 예술품 감정가, 무술가가 되려는 그의 목표를 방해하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수억이 비참하게 살고 있는 중국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면, 자신의 목표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기억해라. 너는 이 과업을 받아들였으니 네 마지막 날까지 그것을 완수해야만 한다.」
대사부는 의자에 깊숙이 앉으면서 다시 한번 말했다.
「고통당하는 자들을 만날 때마다 너는 그들을 도와야만 하느니라.」
산에서 내려온 사이훙은 빙글빙글 정신없이 돌아가는 속세에 합류했다. 화산을 떠난 이래 수개월 동안 급류에 정신없이 휘말리느라 모험은 해보지도 못했다. 그는 사부의 충고를 훌훌 털어 버리고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기로 결심했다.
가족에게 돌아간 사이훙은 풍요로움과 사치스러운 예술품 속에서 편안하게 보냈다. 그는 예술품과 희귀한 서적을 수집하느라 많은 재산을 썼다. 그러나 사이훙은 초조하고 불안했다. 그는 모험을 원했다. 인생을 경험하는 대경기장에서 그의 기술을 시험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이훙은 상하이로 갔다.
사이훙은 후디에를 추적하는 동안 상하이가 색다른 곳으로 보였었다. 위험, 오락과 악이 뒤섞인 미궁 같았다. 그런데 지금 다시 본 상하이는 거대한 도시였다. 돈이 많고 혼잡한 세계적인 도시였다. 유럽식 빌딩은 이국적이었다. 화강암과 강철로 지은 거대한 건물들. 그것들은 도시의 성벽보다 거대했고 정확한 크기의 창문과 높이 치솟은 그리스풍 둥근 기둥들이 기하학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는 태평양과 황푸에서 불어온 바람에 깃발이 휘날리는 돔과 탑들이 마음에 들었다. 빌딩은 중국 건축물처럼 여러 빛깔로 세심하게 칠해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사이훙은 모서리, 부벽(扶壁), 아치 길, 아치 천장의 쐐기돌에 완전히 매료당했다.
멀리서 보니 광활하고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선 건물들이 요새처럼 보였다. 중국 건물은 금이 많이 가 있고 혼란스럽게 마구 뻗어 있었다. 적갈색의 벽돌, 진흙, 점토와 나무로 된 중국 건물은 사람들로 번잡하고 시끄러웠다. 요리하고, 소리지르고, 세탁하고, 장사하느라 분주했다.
유럽 건물의 위풍은 장엄하고 화려했다. 서양 도시를 중국에 그대로 접붙여 놓은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조금씩 자기를 드러내 마침내는 이상한 도회적 공생관계가 나타났다.
상하이에는 동서양의 이색적인 만남이 조화를 이루었다. 돈 많은 은행가, 꼭두각시 정치인, 무자비한 군인, 탐욕스런 갱, 아편 중독자, 섹시한 여자, 불행한 노동자, 성실한 학자, 부패 관료, 강인한 부두의 인부와 평범한 사람들이 이렇게 저렇게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돈과 권력, 흥분과 쾌락, 독직과 마약의 기름진 혼합 상태에서 상하이는 번성하였다. 사이훙이 존재를 탐구했던 곳은 바로 이 부유한 도시 속에서였다.
사이훙은 값싼 하숙집에서 묵었다. 6명의 다른 남자들과 같이 방을 썼는데 그들은 하루 종일 들락거렸다. 사이훙은 트렁크에 자물쇠를 채워 두었다. 그것은 도인으로서, 귀족으로서의 과거를 잠가 둔 것이었다. 사이훙은 모든 판단을 중지하고 내성을 단념했다. 그의 인격은 포위 상태에 빠지고 독재자의 지배를 받았다. 그 독재자는 바로 젊음이었다.
많은 젊은이들처럼 그 역시 경험의 시간을 맞이하였다. 쉽게 버는 돈과 손쉬운 기회에 이끌린 사이훙은 카지노에서 마작과 도미노 딜러로 일했다. 그러나 그는 이내 그곳에서 벗어났다. 다음에는 도박과 아편 소굴에서 경비원으로 일했다. 사이훙은 돈 지불을 거부하는 말썽꾸러기와 손님을 흠씬 두들겨 패주었다. 이 일은 더욱 재미가 생겼다. 그는 다양한 무기에 의존하는 잔인하고 사악한 무사가 되었다. 방어용 쇳조각은 사이훙이 즐겨 사용하는 무기였다.
사이훙은 자신도 모르게 무술 지도자들의 심미관으로 빠져 들어갔다. 예를 사람을 질식시킬 때는 그가 피를 쏟고 혓바닥을 늘어뜨릴 때가지 계속한다. 갈비뼈를 주먹으로 치면서 뼈 부서지는 소리에 쾌감을 느낀다, 비틀고 졸라서 근육에 심한 고통을 준다. 신음 소리를 듣는다, 몸의 기관이 끊어지는 소리가 나기를 기다린다 등등. 매일 그곳의 매점과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하숙집에서 잠깐 눈만 붙이고 나왔다. 사이훙은 아편 연기 자욱한 상하이의 뒷골목에서 싸움이 터지기를 간절히 기대하며 돌아다녔다.
사이훙은 자신이 냉혹하게 변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사이훙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느끼는 두려움을 존경심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했다. 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그를 방해하는 자들은 무자비하게 끌려 갔다.
상하이는 사이훙의 암자였다. 고층 건물은 산맥이었고 아편 연기는 신비로운 안개였다. 술은 맑은 시냇물처럼 성스러운 강이었다. 네온과 백열등이 별과 태양과 달을 대신했다. 뚜쟁이, 마약 중독자, 도박꾼, 매춘부들이 사이훙의 사형이자 사부였다. 그의 육체는 사원이요 다리는 기둥이며 강력한 손은 무거운 대문이 되었다.
하루하루 사이훙은 계속 해나갔다. 결코 도전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경비를 서면서 못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인생을 이해하고 자신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멈추었다. 사이훙은 자신이 전투를 벌이고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비록 내부에선 감정의 갈등이 일어나기도 하고 현재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사이훙은 싸움의 유혹이 생기면 물러서지 못했다. 그것은 단순한 생존의 문제였다. 상처를 입히느냐 아니면 당하느냐.
겨울이 되자 추워지기 시작했다. 사이훙은 하숙집과 멋없는 생활에 싫증을 느꼈다. 사이훙은 베이징에서 상하이로 옮겨 온 옛날의 무술 스승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왕 쯔핑(王子平)의 저택을 방문한 날은 첫눈이 내렸다. 하인이 그를 안뜰로 안내해 주자 사이훙은 중년의 스승이 웃옷을 벗고 쇠와 돌로 된 역기를 들고 이두박근을 비틀고 있는 것을 구경했다. 사이훙은 물결 무늬를 일으키는 근육과 단호한 표정에 감탄해 마지 않았다. 사이훙은 왕의 193센티의 단단한 체구가 그대로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동안 턱수염이 자랐지만 여전히 그의 얼굴에서 유머감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아, 둘째로구나. 여기는 웬일이냐?」
왕은 사이훙의 가족이 쓰는 명칭을 사이훙에게 썼다. 왕은 사이훙의 가족의 절친한 친구였다. 그는 사이훙을 둘째 아들로 알고 있었다.
「함께 일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다시 저를 받아주시겠습니까?」
「왜 화산에는 안 가느냐?」
「저는 경험을 얻기 위해 산을 내려왔습니다.」
왕은 특유의 우렁찬 소리로 크게 웃었다.
「좋다, 좋아. 네 할아버지를 봐서 특별히 너를 받아들여 주마. 내가 너를 돌봐주지 않으면, 할아버지께서 나를 용서치 않으실 것이다. 가서 짐을 챙겨 오너라.」
「감사합니다, 사부님.」
사이훙은 안심이 되었다. 지금 그에겐 정신적인 사부가 절실히 필요했다. 비록 그가 한때 방황하고 반항하면서 독립하기 위해 분투하기도 했지만 사부가 다시 지도해 준다고 하니 마음이 매우 편안해졌다.
사이훙은 이렇게 해서 얼마 동안 왕과 함께 살게 되었다. 그는 왕의 집에서 숙식하는 제자들과 함께 배우며 왕의 정골요법의 보조사로 일하고 왕이 회원으로 있는 경무운동협회(警武運動協會)에 참석했다.
1909년 창설된 이 협회에 왕 쯔핑은 회장으로 있었다. 1918년 이 협회는 우한(武漢), 광저우(廣州), 바오산(包山), 샤먼(厦門)에 지부를 두었다. 사이훙이 가입했을 무렵에는 42개의 지부와 40만이 넘는 회원이 중국과 동남아 전역에 퍼져 있었다. 급진적 혁신을 추구하는 경무운동협회는 무술의 발전을 저해해 온 엄격한 양식주의를 타파하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전통적인 스승들은 그들의 스타일에 대해 비밀을 지키고 제자들이 다른 운동체제의 기법을 익히지 못하게 금지시켰다. 반면 경무운동협회는 중국 무술 양식의 최고 장점들을 모두 취합하여 하나로 모을 것을 주장했다. 수십 명의 사부들이 상하이에 있는 경무운동협회의 건물에서 학생들을 지도했다. 학생들은 수십 가지의 양식을 통달하고 많은 무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법을 배웠다.
경무는 최초이자 제일의 무술학회였지만, 중국의 싸움기술에만 그치지 않았다. 사부들은 곧 서양의 복싱과 레슬링, 축구, 역도 그리고 수영과 체스를 교과 과정에 통합시켰다. 그 기원에 상관없이 모든 기술의 장점을 수용하려는 의지는 곧 미종권(迷蹤拳)의 품질을 보증해 주었다.
미종권은 경무회 무술 체제의 중심이자, 이 학회의 창설자의 전문기술이기도 했다. 여러 가지 무술 양식의 합성체인 미종권은 그 자체로 기법의 총집합체였다. 미종권은 숙련도를 얻기 위해서 50가지의 기술을 섭렵해야만 했다. 미종권의 특징은 아주 교묘하게 빠져 나가 상대로 하여금 자신의 동작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이었다.
왕의 수제자 5명 중의 하나인 사이훙은 미종권의 독자적이고 비밀스러운 전통을 배웠다. 왕 쯔핑의 이 비장의 무술을 배우기 위해선 108개의 무기를 통달하고 두 가지의 기술을 섭렵해야 했다. 그 첫 번째 기술은 천보섭운(天步涉雲)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천 가지 무술 가운데 최고 기법을 취한 것으로 아주 유명하고 포괄적인 기술이었다.
두 번째는 만보파산(萬步爬山)이라고 불리는 독특한 기술이었다. 이 기술은 아주 복잡하고 긴 체제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이 기술을 익힌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하였다. 제자들은 각자 소책자에서 한 부분을 선택하여 일생 동안 그 부분을 전공했다. 만보파산의 원조는 청조 시대의 3명의 사부이며 10대를 거친 끝에 비로소 성문화되었다.
사이훙은 종종 왕 쯔핑이 가르쳐 준 기법을 시험하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그는 사과 모자를 즐겨 썼다. 말썽꾸러기처럼 모자를 한쪽으로 비뚜름하게 쓰고 다녔다. 그러나 사이훙은 때로 싸움에 지고 나서 왕에게 찾아가 그의 기법이 비실용적이라며 불평을 터뜨리곤 했다. 싸움에서 패한 학생으로 인해 항상 불쾌한 악담이 일자 왕은 재도전을 하도록 사이훙을 지도했다.
사이훙의 유일한 사교 생활은 전영(電影)이라고 불리는 발명품을 즐기는 것이었다. 그것은 영화였다.
빨간 벨벳을 씌운 좌석과 호화로운 로코코풍의 금박으로 장식된 극장으로 최근의 할리우드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상하이에서는 가장 유행하는 취미 활동이었다. 불행히도 젊은이 혼자 극장에 입장할 수가 없었다. 궁여지책 끝에 사부를 동반해서 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사이훙은 왕 쯔핑에게 엄숙하게 말했다. 미국인의 삶을 보여주는 〈교육용 영화〉가 있는데 미국의 전사들이 싸우는 방법도 보여 준다고 둘러댔다. 그래서 사부와 제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자막이 나오거나 더빙이 된 영화를 보러 갔다. 그 영화들은 더글라스 페어뱅크스, 제임스 캐그니, 커크 더글라스와 험프리 보가트가 주인공이었다. 최신 영화와 2차 세계대전의 뉴스 영화도 보았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미국을 갱과 해적, 로빈 후드, 인간 늑대, 카우보이들의 이상한 나라로 생각했다.
캐그니는 사이훙이 제일 좋아하는 배우였다. 연기에서 나타나는 거친 말투와 강하고 약삭빠른 성격은 사이훙의 성격과 아주 비슷했다. 영화의 배경은 미국이었지만 영화의 세계는 기이하게 보이지 않았다. 갱들이 하는 짓, 돈, 남자들의 허세 그리고 이상한 사람들의 거리, 완벽하게 차려입은 사람들과 번지르르한 리무진은 상하이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아마도 시카고와 뉴욕은 상하이와 비슷한가 보다고 사이훙은 추측했다. 또한 바로 그 점이 할리우드가 사악할 정도로 세련된 도시의 본질을 알고 있는 이유일 것이며, 젊은이는 거칠어야 한다는 캐그니 같은 사람이 있는 이유겠지.
사이훙은 왕 사부를 모시고 이 극장 저 극장을 돌아다녔다. 재상영이든 무성영화든 상관하지 않았다. 왕과 사이훙은 영화관에 가기를 좋아했다. 때로는 다른 어른들을 설득해서 서양에서 들어온 이 놀라운 발명품을 직접 시사해 보도록 했다. 프랑켄슈타인의 시사회에서 사이훙은 류(劉)를 만났다. 뚱뚱한 체격의 류는 소림의 무사에다 사부와 동갑이었다.
불이 희미해지자 류는 자리에 평화롭게 석가처럼 앉았다.
그는 완전히 명상에 잠겨 있었는지도 모른다. 얼마 뒤 괴물이 화면에 나타나자 깜짝 놀란 류는 벌떡 일어나 도리깨질을 하듯이 옆 사람들의 얼굴을 연타하여 묵사발을 만들어 버렸다. 극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러나 사이훙은 즐거웠다.
「바로 내가 다음번에 도전할 사람은 바로 저 사람이다.」
사이훙은 류를 보고 중얼거렸다.
류는 도시에서 크게 명성을 날렸다. 하지만 그는 늙고 뚱뚱했으며 시골뜨기였다. 만일 서부의 총잡이들처럼 사이훙이 그를 이길 수 있다면, 사이훙은 무사로서 더 큰 명성을 쌓아 올릴 수 있다.
사이훙은 다음 날 정식으로 류에게 도전장을 냈다. 답장은 짧았지만 신속했다. 그는 다음 날 사부의 학교에 도착해서 계속 낄낄대고 웃었다.
「아, 네가 왕의 제자로구나.」
류가 말했다.
「네.」
사이훙은 공손히 대답했다.
「제 도전을 용서하십시오. 저는 무모합니다. 그리고 충고를 해주시면 감사히 받겠습니다.」
그러나 사이훙의 속마음은 달랐다.
〈준비나 하시지, 돼지야. 내가 여기 있다.〉
「좋다. 하고 싶은 대로 공격을 하려무나.」
「선생님은 사부님입니다. 제가 조심할 필요는 없겠는지요?」
「그렇게 한다면 내가 아주 실망할 텐데.」
사이훙은 씩 웃었다. 그는 두 개의 예리한 단도를 꺼냈다. 류 사부는 옷의 가장자리를 걷어 올리고 몇 가닥 안 남은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그의 두꺼운 입술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그는 당당하게 서서 자기가 쓸 무기를 찾으려고도 안 했다.
〈긍지가 무슨 소용이람.〉
사이훙은 혼자 생각했다.
류 사부가 처음부터 쉽사리 단도를 쳐내자 사이훙은 놀랐다. 류 사부는 큰 주먹을 휘둘러 사이훙의 복부를 치면서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나 한 번의 강타로 수년간 쌓은 훈련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사이훙은 후퇴했다. 사부는 열심히 앞으로 걸어나왔다. 사이훙은 있는 힘을 다해 몇 번 그를 가격했다. 그러나 고래를 건드리는 편이 오히려 나았을 것이다.
초조해진 사이훙은 일부러 시간을 끌기 위해 탁자 뒤로 달려갔다. 사이훙은 탁자 위로 뛰어올라 구르는 류의 뚱뚱한 몸에서 거대한 포탄처럼 힘이 솟아나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사이훙은 레슬링을 이용해야 자기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류 사부의 옆으로 비껴선 후 사이훙은 뒤에서 류를 꼭 눌렀다. 이제 그는 사부를 이길 수 있는 자리에 있었다.
갑자기 류 사부가 강한 폭발음 같은 방귀를 뀌었다. 사이훙은 그보다 더 심한 악취를 맡아 본 적이 없었다. 메스꺼워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사부는 쉽게 방향을 틀더니 주먹으로 사이훙을 쳐서 쓰러뜨렸다. 그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
사이훙이 깨어났을 때 오만상을 찌푸린 왕 쯔핑이 그의 상처에 약을 바르고 있었다. 뒤에는 걱정과 환희가 엇갈린 얼굴을 한 류 사부가 서 있었다.
「이제 왕 사부는 제자가 패했으니 며칠 동안 속이 타게도 됐다.」
류 사부가 이죽거렸다.
「이 멍청아, 류 사부는 너보다 한참 위란 말이다. 너는 내 명예에 먹칠을 하고 말았다.」
왕이 꾸짖었다.
「너무 심하게 꾸짖지 말게, 이 친구야.」
류가 위로했다.
「그는 훌륭해. 나는 내 비장의 무기를 할 수 없이 쓰고 말았네.」
「아니, 그럴 수가!」
왕이 놀라 크게 소리쳤다.
「사실은 얘야, 나는 그 기술을 숙달하느라 몇 년간 훈련을 했단다. 나는 고기, 달걀과 특수 약초를 무진장 먹는단다. 네가 원하면 너에게 그 기술을 가르쳐 주마.」
류는 사이훙의 위로 몸을 굽히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사부님은 굉장히 친절하시군요.」
사이훙은 간신히 중얼거렸다. 아직도 토할 것만 같았다.
「이 점을 명심해라.」
류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사부는 항상 속임수를 몰래 준비해 두어야만 한단다.」
두 사람은 문으로 가서 소년들처럼 킬킬거렸다.
류는 어슬렁거리며 나가면서 말했다.
「극장에서 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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