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황금태
사이훙은 두 신선과 함께 몇 달을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그들은 마치 유목민처럼 광활한 중국 대륙을 누볐다. 어떤 사건, 어떤 장소를 접할 때마다 그들은 거기서 영감을 얻어냈다. 안개에 싸인 신비한 산봉우리, 북부 사막의 삭막한 평야, 인파로 북적거리는 도회의 한복판, 그 어디에서건 두 신선은 사이훙에게 모든 것은 도의 일부라고 설파했다.
사람이 우주와 합일되었다고 느낄 때 우주는 현실이 된다. 우주를 자기 밖에 있는 것으로 여길 때 우주는 비현실이 된다. 환영과 현실은 음과 양이며 따라서 동일하다. 그러므로 우주의 흐름 속에서 헤엄치는 것은 고요한 명상 못지않게 중요하다. 인생을 맛보고, 배움이나 철학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들 틈에서 자신의 배움과 철학을 검증하고, 명상 안에서 샘솟는 결실을 확인하는 작업이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한다. 인생의 체험은 단순한 독서나 수도원 세계의 인위적 생활보다 한 차원 높은 것이라고 두 신선은 가르쳐 주었다.
틀에 얽매이지 않은 방식과 깊은 통찰력을 앞세우는 그들의 가르침은 확실히 달랐다. 그들은 사이훙의 귀에 익은 도교의 경구도 가끔씩 원용했지만 그 해석 방식은 완전히 새로웠다. 그들은 〈문 밖을 나서지 않고도 현인은 하늘과 땅을 알 수 있다.〉는 구절에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구도의 길을 보았다. 사이훙은 이 구절을 명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두 신선은 그게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들은 이 경구를 좀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해석했다. 〈문 밖을 나서지 않고도〉는 너무 빨리 죽지 않는다는 뜻이다. 〈하늘과 땅을 알 수 있다〉는 인생의 과업을 완성하고 전생의 모든 결과를 씻어 버린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들이 그 표현에서 간파한 의미는 사람은 한 번 목숨을 받고 태어났을 때 자신의 지상적 운명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도관에서 수도 생활만 해가지고는 그러한 목표를 이룰 수가 없다. 〈하늘과 땅을 안다〉는 것은 개인적 탐구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정작 자신들도 교육을 받았고 독서량이 풍부한 지식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전통적인 책 속의 지식과 학문적 연구 결과를 우습게 여겼다. 이론이란 타인이 행한 한가로운 사변일 뿐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그럴듯한 이야기도 생생한 모험에는 비교할 수 없고 아무리 주옥 같은 글도 스승이 직접 전수하는 가르침에 견줄 수는 없는 것이다. 학파와 학풍을 가르는 분파와 파벌은 헛된 짓거리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통해 검증되고 증명된 지식만이 지식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책을 통한 배움은 인간 본성에 어긋난다. 예의범절은 인간의 자발성에 멍에를 씌운다. 사회적 의무는 생기발랄한 정신을 무디게 만든다. 윤리는 억압이라고 두 신선은 설파하였다.
중국을 떠도는 그들의 발길은 중국의 산간 오지 마을까지 닿았으며, 때로는 그보다 더욱 원시적으로 살아가는 소수 민족의 생활을 접하기도 했다. 유교의 엄격한 사회화에 세뇌당하지 않은 이 무지한 사람들 속에서 그들은 순수하고 깨끗한 이상적 인간상을 발견했다. 정직, 만족, 느긋함, 대지와 절기에 바탕을 둔 소박한 생활은 이 사람들의 아름다운 덕목이었다. 두 신선은 이들의 때묻지 않은 본성은 책에서 나온 것이 아니며, 그럼에도 이 단순한 사람들은 지혜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혜가 필요한 것은 인간이 추론하고 더 깊이 배울 수 있는 타고난 능력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혜가 필요한 이유는 적절한 이해가 정신적 해방을 낳기 때문이다. 도인이 요구하는 수준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방대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 그러나 두 신선은 기술과 이해를 강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균형추로서 〈깎이지 않은 덩어리〉를 강조했다. 완성을 향한 지난한 탐구 과정에서 이상적인 상태는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멀건 가깝건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해야 한다.
그리하여 두 신선은 역설의 가르침을 주었다. 그들은 교육을 비웃었지만 그러면서도 사이훙에게는 스스로 배움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들은 도관 생활을 거부했지만 명상을 위해 매일 조용한 곳을 찾아 다녔다. 그들은 순결함을 강조했지만 복잡한 기예를 닦았다. 그들은 각계 각층의 세상으로 떠돌면서도 음식, 사고, 몸가짐, 행동면에서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우리는 지식의 극단적 한계에 서 있을 때만 역설과 마주친다.」
징취안 신선이 입을 열었다.
「전통적 논리는 사물은 언제나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고 못박는다. 사람은 수도자 아니면 보통 사람 그 둘 중 어딘가에 속해 있다. 머리가 텅빈 바보든지 아니면 매사를 삐딱하게만 보는 먹물 둘 중의 하나다. 유교와 불교가 독단적 교리의 감옥에 갇힌 것은 이런 이분법적 사고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도인을 싫어한다. 우리의 비순응주의를 거북해한다. 그러나 그들은 경직된 세계관으로 인해 우리네 수행법의 본질과 거기에 잠재된 창조성을 보지 못한다.」
「결국, 역설을 깨닫는다 함은 유위(有爲)이면서 동시에 무위(無爲)인 경지에 올라섬을 뜻한다.」
시후 신선이 가세했다.
「그렇다. 둘 다라야 한다. 음양이니까. 음과 양은 서로 대립하지만 서로를 정의내리고, 서로를 보완하고, 서로를 파괴한다. 깨달음을 얻으려면 너 또한 그러해야 한다. 역설을 끌어안으라.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는 머지않아 모순에 직면한다.」
징취안 신선이 말했다.
「뭐라고 하셨죠?」
사이훙이 물었다.
「모순! 모순과 역설을 혼동하면 안 된다. 그걸 구분 못하면 지금 하는 얘기가 다 부질없다.」
「죄송합니다. 설명해 주십시오.」
「내 말은 지식 안의 역설을 끌어안지 못하는 사람은 합리적, 논리적 추론에서 불가피하게 떠오르는 모순의 덫에서 영원히 빠져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기의 고정된 틀 안에서 모순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니까 그런 사고는 무익한 사고가 된다.」
지식과 지식의 역사는 전통을 구성한다. 그리고 우상 파괴를 지향하는 도인에게도 전통은 유용한 것이다. 전통적 지식은 초심자의 서투른 수행을 가다듬는 데 쓸모가 있다. 전통은 검증된 모든 과정과 개선된 방법들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실패로 끝난 탐구의 기록까지도 간직하고 있다. 전통은 인간 상상력의 한계를 보여 준다. 그 한계선 안으로 떠나는 자발적인 여행을 권유하거나 혹은 한계선을 넓히려는 자연스러운 시도를 허용함으로써 전통은 개인적 발전의 모체가 된다.
전통적 지식은 어떤 개인의 지식보다도 크기 때문에 수행자에게 수많은 선례를 제공한다. 두 신선은 사이훙에게 전통은 분명히 초심자나 무지한 사람의 자기 노력보다는 한 수 위에 있다고 말했다. 현실의 변경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지식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남겨둔 창조적 역량은 미지의 세계로 도약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배우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아무리 천재라고 할지라도 백과사전적 지식을 가질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 개인의 머리에 인간의 지식을 모두 담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록에 남아 있는 약초만 해도 1만 2천 가지가 있지만 아무리 뛰어난 한의사도 그것을 모두 쓰지는 못한다. 한자의 수는 1만 개가 넘지만 아무리 실력 있는 학자도 그 뜻을 모두 풀이하지는 못한다. 지식을 추구한다는 것은 굽이돌아 자시 자신으로 돌아오고 결국에 가서는 역설과 모순으로 귀결되는 무한한 우주를 탐구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이훙이 배우고 경험을 쌓는 노력을 계속하되 개별적 내용에 고착되지 않고 도를 바라보는 것이다.
배움과 단련에 대한 두 도인의 입장은 〈마술을 알되 마술을 멀리하라.〉는 말로 집약되었다. 그들은 사이훙에게 마술이 실재한다고 가르쳤다. 사람은 마술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피하기 위해서 배워야 한다. 무지한 사람은 피해를 당한다. 지식은 방어 수단이 될 수 있다. 사람은 마술을 알아야만 마술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들은 이러한 논리를 비단 마술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지식, 전통, 무술, 정치학등 온갖 분야에까지 확대시켰다.
사이훙은 두 신선과 함께 있는 동안 한 번도 위험에 처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이 철학의 진실성을 절감했다. 산적도 출몰하지 않았고 짐승도 공격해 오지 않았다. 그들을 불러 세우는 군인도 없었다. 두 신선과 같이 다니면 아무런 갈등이 생기지 않았고 따라서 싸울 필요가 없었다. 사이훙의 두 사부는 유위(有爲)와 무위(無爲)를 초월해 있었다. 그들은 마치 다리를 사뿐히 건너듯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도의 길을 걸어갔다. 그들은 두려움없이 마음대로 떠돌아다녔다. 그들은 배움의 극치에 도달했으면서도 완전한 자발성과 자연스러움을 잃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그들이 마술을 알면서 그것을 멀리 했기 때문이었다. 사이훙이 자기 생각을 이렇게 말하자 두 신선은 멀리 떨어진 도관 하나를 가리켰다.
「마술은 얼간이를 위한 것이고 우상은 머저리를 위한 것. 진실은 미묘하고 포착하기 어렵다. 네가 방금 깨달은 것은 지식의 산물이 아니고 그보다 더 큰 무엇의 단초다. 지식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궁극 목적은 아니다.」
징취안 신선이 말했다.
「지식이란 무엇일까?」
시후 신선이 거창하게 물었다.
「우리는 무엇을 믿을 수 있을까? 이 세상은 아니다. 결국 이 세상은 헛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화려한 의상과 눈부신 무대장치, 사람을 홀리는 음악, 매혹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한 편의 연극이다. 그것은 비애와 비극, 행복과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것은 네가 한때 배역을 맡았던 경극보다도 현실적이지 않다. 네가 경험하는 모든 것, 네가 보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요소들로 이루어진 연극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다섯 가지 색을 보고, 다섯 가지 맛을 느끼고, 다섯 음조를 듣고 이것을 현실로 받아들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마술을 알되 마술을 멀리하라.〉고 우리는 너에게 말했다. 〈세상을 경험하라.〉 〈도를 따르기 위해 여행하라.〉 결국 이런 말들도 잠정적인 가치밖에 못 갖는다. 이 익살맞은 무대에서 네가 맡은 배역을 충실히 연기할 수 있게끔 도움을 줄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세상은 소극(笑劇), 다채로운 명암과 색상과 반사광이 어지러이 뒤섞인 만화경이다.」
징취안 신선의 말이 이어졌다.
「모든 지식은 무한하다. 그러나 궁극적인 진리와 비교하면 그것은 부정확한 근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지식을 멀리하기 위해서 지식을 알아라. 너의 내관(內觀) 밖에는 믿을 것이 없다. 믿음의 토대를 신에다 둘 것인가? 그러나 우리는 신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우리 눈앞에 나타나는 신은 신의 본래 모습이 아니다. 도관과 경전은 범인(凡人)을 위한 종교적 극장일 뿐이다. 신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진실의 토대는, 아무리 숭고한 이상이라 할지라도 그 어떤 이상에 두어서는 안 된다. 무언가 다른 것이라야 한다.」
「하지만 경전은 성스럽습니다. 경전은 진실이 아닌가요?」
사이훙이 따지고 들었다.
그러자 시후 신선이 차근차근 설명했다.
「경전은 인간이 쓴 것이다. 대략적인 길잡이로서는 유용하지. 경전에 담긴 진실은 일반인의 몽매한 상태와 견줄 때 대단히 높은 수준에 있으니까. 그러나 깨달은 자에게는 경전이 하찮은 부조금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화산 시절에 사람들은 저더러 죽서칠판에 통달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읽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나아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을 끝까지 읽었다고 하더라도 저의 노력은 헛된 것이었다는 말씀인가요?」
「전설에 따르면 죽서칠판은 장수신(長壽神)이 지상에 보낸 것이다. 아득한 옛날에도 지구는 영적 정화 상태에 이르지 못했었고 신들은 지구로 밀사를 보내 사람들을 도왔다. 밀사는 이따금 경전을 가지고 와서 가치있는 사람이 지침으로 삼을 수 있도록 그것을 남겨 두고 갔다. 죽서칠판은 그런 선물이었다.
신은 그것을 쿤룬 산맥에 있는 한 고봉의 동굴에다 두었다. 인간이 스스로의 가치를 입증하려면 영웅을 보내 그것을 가져와야 했다. 현자들은 한 아이를 선택했다.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너는 그 거룩한 선물을 찾아와야 한다.」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 아이는 보통 아이가 아니었다. 전설에 따르면 그 아이는 숲에서 나무를 하던 농부가 발견한 알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농부와 아내는 알을 집으로 갖고 왔다. 알이 부화하고 준수한 소년이 나타났다. 모험에 나서야만 하는 운명을 갖고 태어난 소년이었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까마득한 과거에 죽서칠판을 가지고 돌아왔다. 원래의 것은 아직도 남아 있지만 영국과의 아편전쟁 기간 중에 마오산 어딘가에 숨겨졌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여러 세대에 걸쳐 권위자들이 많은 주석을 달아 놓은 사본이다. 가문이나 분파에 따라 각기 다른 판본이 존재한다.
한마디로 죽서칠판은 깨달음에 이르는 360가지 방법을 상술한 책이다. 360이라는 수는 원의 360도에 대응하는 숫자이다. 별의별 분야에서 쓰이는 방법론이 여기 총망라되어 있다. 고도로 금욕적이고 명상적인 방법에서 상호 절정에 이르는 성교 기법 같은 물의를 일으킬 만한 내용도 있다. 철학, 호흡법, 연금술, 약학, 제례, 의식(儀式), 기도등 인간을 의식의 고양 상태로 이끌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논의하고 분석하고 미래의 세대를 위해 기록으로 남겼다. 심지어 무술도 격투기로서가 아니라 자기 수련에 이르는 완벽한 방법으로서 진지하게 검토된다.
죽서칠판은 네가 익혀야 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완전히 숙지했다고 해서 기고만장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너의 영적 과제를 완수하는 것이니까.」
이번에는 시후 신선이 입을 열었다.
「이 책 너머를 보아라. 여기 360가지 방법이 수록되어 있듯이 너는 다재다능하고 모난 데 없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편협한 이론을 고집하지 말아라. 이론은 오직 틀로, 발판으로 삼아라. 전통으로 되돌아가더라도 다시 하늘 높이 솟구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 징취안 신선이 말했다.
「 죽서칠판을 네가 읽고 안 읽고는 중요하지 않다. 너는 그것을 사전처럼 지루한 느낌을 가지고 읽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것을 다 읽으려면 상당한 의지력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읽고 난 다음 너는 거기서 성분을 추출하여 마치 합금이라도 만드는 사람처럼 인생의 용광로에 그것을 녹여 너의 독특한 개성으로 변모시켜야 한다. 교조적으로 어떤 책을 따르지 말아라. 아무리 성스러운 경전이라고 할지라도, 어떤 책을 놓고 신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
기다렸다는 듯이 시후 신선이 말했다.
「진리는 결국 배움에 있지 않다. 사람은 불가피하게 자기 기예의 한계에 봉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리는 자아의 초월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명상을 통해 사람은 영성(靈性)과 융합된다. 최고 단계에 이르면 자아는 더 큰 의식 안으로 흡수된다. 개체성은 상실되고 기예를 통한 성취는 있으나마나한 것이 된다. 지식의 추구는 수행자의 지속적인 성장과 건강에 꼭 필요하며, 타인을 돕고 완전론(인간이 현세에서 완전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유익하다. 그러나 인간이 궁극적으로 이루려는 것은 명상의 최고 경지다. 모든 기예를 넘어서는 그런 경지다.」
진리. 사이훙 내면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렸다. 이제까지 그는 지식을 축적하느라 발버둥쳤고 방법론을 완성하느라 골머리를 앓았으며 고대의 문헌을 수집하고 수많은 스승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도관의 울타리 속에서 그가 지난 세월 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은 공허하기만 했다. 사이훙은 노상강도와 지갑의 우화를 다시 떠올렸고 죽서칠판도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스승들은 그의 지갑에 낙엽밖에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현자들의 그 모든 지식은 지식과 기예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는 깨달음으로 제자를 이끌기 위한 방편이었다. 모든 문명은 그림자 인형극이었다. 개념화할 이유도 구조화할 이유도 없는 진리의 빛이 닿은 조잡한 투영물이었다.
사이훙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그러나 평생 부끄러움을 맛보느니 잠시 곤혹스러움을 겪는 편이 낫다고 자신을 다독거렸다. 그는 산마루로 나섰다. 그리고 화산에 있는 대사부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사이훙이 여기까지 온 것은 그 분 덕택이었다. 사부는 사이훙이 이렇게 성장할 때까지 오랜 세월 말없는 도움을 베푸셨다.
산 속에 있으면 사이훙은 늘 마음이 차분했다. 평지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삶에 대한 새로운 전망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수많은 인간들이 바글거리며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는 저잣거리가 산 속에 들어 앉아 있으면 그렇게 왜소해 보일 수가 없었다. 드높은 산봉우리에 있으면 이 세상의 변경에 와 있다는 느낌, 천상의 세계가 코 앞에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들었다. 드넓은 지평선을 바라보노라면 모든 갈등과 정신적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그의 영혼은 날아가기를, 두둥실 떠오르기를, 저 산과 하늘의 좁은 틈새로 빨아 들여지기를 갈구했다. 포근하고 화창한 날이었다. 그는 위엄 있는 소나무 그늘에 앉아 시후 신선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몸과 상상력과 호흡은 영적 수련을 하는 수행자가 곧바로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다. 심오한 상태에 즉시 이를 수는 없다. 우리는 의식의 통제 아래 가장 쉽게 둘 수 있는 우리 안의 부분들을 먼저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좀더 특수한 기능들로 서서히 접근해야 한다.
몸과 상상력과 호흡을 그대로 방치했을 경우 그것들은 오히려 장애물이 된다. 이것이 바로 역설이다. 우리의 몸은 아예 수련을 쌓기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악화된다. 우리의 상상력은 멋대로 흘러 우리의 참모습을 가린다. 잠재의식의 기계적 통제 아래 놓인 호흡은 육체라는 껍질에 단순히 산소만을 공급하는 기능으로 전락한다.
영적 수련의 첫 단계는 실재적인 것과 더불어 시작된다. 몸은 손발뻗기, 자세, 약초, 무술, 명상을 통해 단련된다. 몸이라는 기초 재료가 튼튼해야 수행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
상상력은 목표를 제시하고 보통 때는 의식으로 통제되지 않는 에너지의 운동을 이끈다. 상상력의 강력한 힘은 몸과 마음을 모두 압도할 수 있다. 호흡은 우리의 의식적 통제 아래 둘 수 있는 일차적 대상이지만 동시에 마음과 육체를 연결하는 고리다. 호흡의 리듬, 비율, 강도, 빠르기에 따라 마음도 제각각 다른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규율은 완성을 앞당긴다. 재갈이 사나운 말을 길들이듯 규율은 정신을 길들인다. 활 시위를 팽팽히 당기면 화살은 가장 억제되고 긴장된 상태에서 조준된다. 시위를 놓으면 화살은 정확히 과녁에 가 박힌다. 오늘 나는 네가 발전하는 데 아주 중요한 수행법 한 가지를 가르치겠다. 황금태(黃金胎)를 만드는 일이다.
황금태는 복부에 만든 강한 역장(力場)을 말한다. 황금태는 몸을 강화하고 장기(臟器)를 튼튼히 한다. 머리가 빠지고 주름살이 늘고 관절이 굳고, 눈과 귀가 어두워지고 기억력이 감퇴하고 근육이 약해지고 생기가 사라지는 것은 우리 몸의 내분비선과 장기 기능이 저하되어 생기는 현상이다. 열심히 수련을 쌓으면 황금태는 몸에 활기를 다시 불어넣는 생명력의 보고가 된다.」
「그럼 죽지 않게 되나요?」
사이훙이 물었다.
「그렇다. 하지만 언젠가 썩어 없어져야 하는 이런 육신 속에서 영원히 사는 것은 아니지. 내 말은 너의 호흡과 수명이 깨달음을 얻기에 충분할 만큼 오래도록 존속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와 관련하여 또 하나 중요한 것이 바로 영적 죽음이다.」
「영적 죽음이 도교의 전유물은 아니다.」
징취안 신선이 끼여들었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니르바나〉라고 부르고, 힌두교에서는 그것을 〈마하사마디〉라고 부른다. 도교에서는 이것을 〈공(空)과의 융합〉이라고 부른다. 황금태를 설명하려면 죽음도 다루어야 한다.」
그들은 사이훙에게 모든 인간은 세 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육체의 자아는 본능, 충동, 정욕이다. 탄생과 함께 몸 안에 갇혀 있다가 몸과 함께 서서히 퇴락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유체의 자아는 유전적 자아다. 부모를 빼다 박은 부분인데 신체적으로도 닮았을 뿐 아니라 심리적, 성격적으로도 닮았다. 이 물려받은 개성이 한 개인의 운명을 상당 부분 좌우한다. 부모의 형이상학적 자질이 여기 담겨 있고 잠재적 발전의 기본적 토대 또한 여기 있다. 교육, 부모의 가르침, 개인 스스로의 노력이 그의 운명을 결정짓는 나머지 부분들이다. 유체의 자아는 이 밖에 판단, 추리, 학습 기능을 담당한다.
영체의 자아는 어떤 물리적 힘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불멸의 정신이다. 영체의 자아가 갖는 유일무이한 목적은 우주의 근원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전일자(全一者)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배우고 정화하고 모든 부정성을 털어 내야 한다.
이 세 자아들은 평상시에 모두 활동한다. 행동이 필요할 때 이들은 재판관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 자아 또는 저 자아가 결정을 주도하여 개인을 특정한 방향으로 몰고갈 수도 있다.
두 신선은 사이훙에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영적 죽음을 맞이하는 것, 즉 공과 융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려면 사람은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상에 인연을 맺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아이를 낳게 되면 윤회의 사슬에 자동적으로 편입된다. 자신의 형이상학적, 형이하학적 유전자를 후손에 전함으로써 사람은 업을 영속화한다. 깨달은 자가 생물학적 후손을 두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모든 자격을 구비한 수행자는 이 세 자아를 융합시켜 새로운 역동적 자아를 만든다. 새로운 자아는 지상의 윤회의 고리에서 벗어나 높이 상승하여 또 다른 새로운 존재의 평면에 도달한다. 현자 중에서도 우주의 근원으로 곧바로 되돌아간 사람은 극소수다. 그 대신 더 이상 태어남도 죽음도 없고 모든 것이 생각만으로 이루어지는 천계에서 머물다가 더 큰 변화를 거쳐 마침내는 공과 합일되기에 이른다.
여러 자아를 묶어 현실 지평을 넘어서는 것은 초인적인 작업임에 틀림없지만 두 신선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고 사이훙에게 말했다. 사람은 무로 돌아가기 위해서 39가지의 존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지상의 삶은 가장 낮은 단계였다.
한 가지 신기한 점은 사부가 죽으면서 자신의 황금태를 제자의 몸에 집어 넣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제자는 사실상 사부의 자식이 되는 셈이었다. 제자는 놀라운 힘을 전수받게 되지만, 이 과정에서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사부의 운명까지도 물려받는다. 제자가 좀더 큰 힘을 가지고 운명을 극복하면 사부는 지상으로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그런 기술을 거의 사용된 적이 없었다.
황금태 수행법에 들어가기에 앞서 먼저 사이훙은 복잡한 기공, 즉 호흡 조절법을 완전히 익혀야 한다.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소주천 운행, 열두 경락 명상, 기를 통해 기경팔맥(奇經八脈) 열기 등등. 사이훙은 화산에서 이미 그것들을 터득했다. 그들은 모두 12정경(正經)과 기경팔맥을 열었다.
그러자 사이훙은 신비의 문의 빛을 그저 상상이 아니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순수한 생명력의 빛이었다. 사이훙은 그 빛을 단전(丹田)으로 끌어내려야 했다. 그런 다음 단전에서 심장 바로 밑의 강궁(絳宮)까지 끌어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이 에너지의 흐름에서 황금태가 만들어졌다.
사이훙이 이 새로운 명상법을 처음으로 연습한 것은 어두운 밤이었다. 그는 일행이 임시로 기거하던 폐허가 된 도관에서 빈 방을 하나 찾아냈다. 어떻게 이 신성한 장소가 파괴되고 구도자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을까? 어떤 미신과 위험이 이곳을 이토록 황폐하게 만들었을까? 그러나 주인 없는 건물이기에 그들이 머물기에는 오히려 좋았다. 사이훙은 앞서 살았던 이들의 구도를 향한 열망이 배어 있는 허름한 방에서 명상에 들어갔다.
그는 풀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양탄자와 사슴 가죽을 깔고 앉았던 화산 시절의 호사스러움은 간 데 없었다. 사지를 정확한 위치에 놓고 두 손은 정해진 방식대로 깍지를 꼈다. 사이훙은 이상적인 자세를 취했다. 일상의 어지러움에 길들어 있던 몸과 마음은 점차 안정된 구조를 되찾았다. 사이훙의 개성은 정확한 조화의 집합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는 생명의 뿌리까지 깊숙이 숨을 쉬었다. 풀려난 에너지는 그가 열어 둔 통로로 올라왔다.
사이훙의 명상은 고유한 기하학적 구조에 따라 진행되었다. 몸에 있는 영적 중추들은 직선상에 있었다. 그것들은 고유한 빛깔과 내적 얼개를 갖고 있었다. 그의 에너지는 선으로 흘러 들어가 경락을 통과했다. 선은 점을 이어 주었다. 연결망이 움직이면서 높은 에너지로 찬연히 타올랐다. 체계에 연속성이 등장했다. 펼침이 시작되었다.
사이훙은 에너지의 흐름을 통제하기 위하여 정확히 사부가 지시한바대로 했다. 일상 생활에서는 에너지, 몸 속 점들 사이의 거리, 마음이 항상 맴돌고 바뀌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의 개성 구조를 특정한 형태 안에 묶어 두자 집중력이 강화되었다. 도교는 물질과 정신을 가르지 않았다. 육체적이고 가시적인 세계에서 시작하여 형이상학적이고 초월적인 세계로 넘어갔다.
사이훙은 힘을 느꼈다. 가슴 뿌듯했다. 그것은 자신감과 확신이었으며 동시에 위기의식이기도 했다. 그는 명상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영적 성숙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몸 속에서 끌어올린 에너지는 그에게 탐구를 완수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그러나 그가 편입된 기하학적 틀은 도덕과 무관했다. 점과 선의 얼개는 윤리를 몰랐다. 사이훙은 명상을 통해 힘을 얻었지만 선악의 선택은 여전히 그의 손에 남겨져 있음을 깨달았다. 명상은 악한 사람을 선하게 만들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무기를 손에 쥐게되면 아무리 선한 사람도 유혹을 느끼게 된다.
사이훙은 엄청난 힘과 능력을 확보할 수 있는 영역에서 머물고 싶은 유혹을 억누르면서 자신의 에너지를 더 높이 끌어올렸다. 그는 스스로를 심장보다 높은 영역으로, 외부 세계와 감각 세계에 무관심해질 수 있는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사위는 쥐죽은 듯 고요했다. 외부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움직임도 이 아슬아슬한 진로의 방향을 바꾸어 놓을 수 있을 것이다. 사이훙은 정수리로 들어가는 문, 즉 정문을 열고 라오쯔의 작은 동굴로 들어섰다. 그의 영혼은 황금빛에 잠겼다. 사이훙은 생명을 주는 태양의 광휘처럼, 수많은 별들의 신성한 불꽃처럼, 그 빛을 받아들이고 끌어안고 그것에 녹아 들고 그것을 사랑했다. 그는 지고의 행복을 맛보았다. 거기에 신이 있었고, 선(善)이 있었고, 거룩하고 신성한 힘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완전한 평온과 불멸성이었다.
이 얼마나 간단한가! 사이훙의 사부들은 너무도 당연한 말을 했었다! 그는 사부들을 우둔하고 현실 감각이 없고 가르침에 인색한 별스런 인간들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사부들은 너무도 자명한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를 오히려 안타까이 여겼음에 틀림없다. 신성과 불멸성은 우리 모두의 안에 있었다. 그것은 〈문 밖을 나서지 않고도〉 알 수 있는 진리였다.
당신들에게 너무도 당연한 것을 입으로 설명하느라 스승들은 얼마나 애를 먹었을까. 이제 사이훙은 보았다. 이제 그는 외부 세계의 그 어떤 것도 이것과 견줄 수 없음을 알았다. 무술도, 아름다운 도자기도, 위대한 문학도 명성도, 행운도 이 활활 타오르는 생명력에 비할 수는 없었다.
이 순수한 에너지, 활력의 정수는 생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우주의 운행을 최초로 야기한 움직임이었다. 어두운 혼돈의 세계를 처음으로 베어 내어 거기서 현실을 이끌어 낸 빛줄기였다. 이제 그 빛줄기는 그의 몸을 따라서 단전까지 내려왔다. 그것은 태양의 따사로운 햇살처럼 반짝거렸고 수분으로 적셔진 영혼의 비옥한 흙을 매만졌다. 그것은 계곡을 덥혀 주었다. 이제 그는 창조가 일어나리라는 것을, 황금태가 나타나리라는 것을 예감했다.
말은 헛되다. 그것은 영적 완성의 오묘함을 그리지 못한다. 감정 또한 헛되다. 그것은 탄생의 심오함을 담아 내지 못한다. 남자와 여자는 함께 아이를 만들 때 두려움과 경이에 젖는다. 영적인 탄생을 이해하기란 그보다 몇백 배 더 어렵다. 결국에 가서는 지식도 헛되다. 이 육신의 껍질 또한 헛되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이 육신의 고치에 의지하여 산다. 우리는 피와 살로 된 이 그릇을 사랑한다. 그것은 숭배와 욕망의 대상이지만 질병과 폭력으로 파괴되기도 한다. 다른 생명체로 주린 배를 채우고 어떨 때는 순수한 사랑을, 어떨 때는 추잡한 사랑을 나눈다. 젊었을 때는 그것을 흥청망청 소진한다. 나이 들어서는 그것이 나를 배신했다고 원망한다. 결국은 평생 동안 점점 썩어 문드러지는 육체의 기둥에 갇혀 살아왔음을 깨닫게 된다.
도인들은 인간의 잠재성을 찾아냈다. 그들은 인간의 가능성과 생명력을 찾아냈다. 그들은 불멸의 것을 육신의 껍질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게끔 그 생명력을 변형시키고 인도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불멸의 영혼이 온전하게 모습을 나타낼 때까지 육신을 보존하는 것, 이것이 바로 황금태 명상법의 목적이었다.
사이훙은 새롭게 태어났다. 탄생을 알았고 창조를 알았다. 그러나 죽음 없이는 삶도 없다. 사이훙은 삶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죽음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해 말, 추분이 막 지났을 때 세 사람은 장쑤성(江蘇省)의 마오 산으로 향했다. 그들은 산으로 들어가서 외부와 격리된 아늑한 동굴을 찾아냈다. 아침 저녁 하루에 두 번씩 안개가 산허리를 휘감아 돌았다. 그러면 산 아래는 보이지 않았다. 외로운 산정에는 인적이 없었다. 새가 울고 작은 시내가 졸졸 흐르고 바람은 마른 나뭇가지를 흔들어대었다. 사이훙은 두 신선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더없이 평화로워 보였다.
「머지 않아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
시후 신선이 말했다.
「이 풍진(風塵)을 떠돌아다니기 벌써 몇 해인가. 아, 덧없도다.」
징취안 신선이 옆에서 거들었다.
「저자에 가서 물건을 좀 사오너라. 그리고 나서 우리를 위해 장작 더미를 쌓아 다오.」
시후 신선이 말했다.
사이훙은 절을 하고 산 밑으로 내려왔다. 말없이 물러 나오기는 했지만 마음 속은 어지러웠다. 그는 화산에서 다른 사부들이 육신을 떠나는 모습을 보았고 도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성취를 두 눈으로 목격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자기의 사부가 아니었기 때문에 별다른 느낌도 없었다. 그러나 시후 신선과 징취안 신선이 이 세상을 하직한다는 소리에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들은 죽을 것이다. 이제까지의 공부를 통해 사이훙은 정상인의 죽음은 단순한 변형이며 영적 죽음은 더 높은 의식의 차원으로 올라서는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갑자기 밀려오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이제 사이훙을 홀로 남겨두고 떠나려 한다. 사이훙은 그의 행동을 하나하나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었던, 하늘 같이 믿었던 사부를 잃게 된다. 이제 겨우 사부를 모시는 일에 익숙해져 있건만.
사실 사이훙은 한 번도 그 틀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가 했던 반항도 사실은 자신이 거부한다던 권위와 긴밀히 얽혀 있었다. 사부가 곁을 떠나면 이제부터 어떻게 지낼지 사이훙은 걱정스러웠다. 화산, 경극단 아니면 왕 쯔핑한테로 돌아갈까? 한 가지 사실은 분명했다. 어떤 행태로건 늘 영적 탐구와 관련을 맺고 지내리라는 것이다. 나머지는 모두 덧없고 불안정했다. 여러 날 동안 나무를 하여 장작 더미를 쌓으면서도 사이훙은 인간이 만드는 모든 것은 언젠가 종말을 맞이한다는 생각을 했다.
약속한 날이 밝아왔다. 냉랭하고 안개가 자욱한 이른 새벽이었다. 동굴속의 두 신선은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었다. 사이훙은 모닥불 옆으로 그들을 훔쳐보았다. 비쩍 말랐으면서도 대꼬챙이처럼 꼿꼿한 시후 신선은 좀 더 늙어 보였고 주름도 많아진 것 같았다. 불빛에 반사된 그의 백발은 하늘을 가르는 번갯불 같았다. 맑은 눈동자는 영롱한 보석처럼 반짝거렸다. 징취안 신선은 더욱 침착해 보였다. 동굴 어귀를 담담히 응시하는 그의 얼굴은 평정을 잃지 않는 영웅의 모습이었다. 불과 몇 시간 뒤에 이 두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사이훙은 믿을 수가 없었다.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을 앞두고 그들은 어떤 감정이나 그리움을 느끼고 있을지 사이훙은 궁금했다.
「현자는 자신의 영혼을 저 너머의 위대한 세계로 보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
시후 신선이 속삭였다.
「그는 이미 존재의 더 높은 지평들을 보았다. 그리하여 죽음을 앞두고도 자기가 떠나고 싶어하는 곳에다 마음을 단단히 묶어둘 수 있다. 죽으면 그의 영혼은 그리로 간다.」
이번에는 징취안 신선이 입을 열었다.
「보통 사람은 세 자아가 뿔뿔이 흩어져서 삶의 수레바퀴로 다시 말려든다. 새로운 형식을 부여받지만 슬프게도 그가 떠났던 악마 같은 세상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수행을 게을리하지 마라. 그래야 이 필멸의 지평에서 너 자신을 구할 수 있다.」
다시 시후 신선이 정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아직 젊다. 좀더 일찍 만났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우리는 살 만큼 살았다. 구도의 길을 계속 걸어라. 화산의 네 사부 곁으로 돌아가라. 너를 자상하게 이끌어 줄 분이다.」
「우리가 떠난다고 섭섭해하면 안 된다.」
사이훙이 눈시울을 붉히는 것을 보고 징취안 신선이 말했다.
「이것은 육신의 껍질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벗어던지는 옷가지와도 같다. 우리의 참된 자아는 순수한 빛으로 나타날 것이다. 슬퍼하지 마라. 우리의 승리를 기뻐해 다오.」
「잘 있거라.」
시후 신선이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말했다.
「저 너머 세계를 보아라.」
징취안 신선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 역시 눈을 감았다.
사이훙은 꼼짝않고 있는 두 육신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 부동성의 내부에서 역동적인 운동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사이훙은 알고 있었다. 그 안에서는 이제껏 어떤 인간이 보여 주였던 에너지보다도 더 강한 에너지의 흐름이 정수리를 향해 솟아오르고 있었다. 서서히 그들의 몸은 어둠으로 접어들었다. 동맥은 힘을 잃어 갔다. 장기는 기능을 멈추고 말라 갔고 신경들은 무디어 갔다. 생명의 모든 자취가 위로 몰렸다. 거기서 끝이 났다. 육신은 기울었다. 태양은 머릿속에 갇혔다. 세 자아는 하나가 되고 그 강력한 융합 속에서 영혼은 스스로 떠나갔다.
지켜보는 사이훙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20분쯤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다림의 시간이 사이훙에게는 영원처럼 느껴졌다. 그들은 세상을 하직했는가? 아니면 가만히 있는 것인가? 사이훙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를 아까부터 내내 생각하고 있었다. 마치 그래야 기운을 조금이라도 차릴 수 있는 것처럼.
드디어 사이훙은 알아보기 위해 일어섰다. 숨도 맥박도 없었다. 그들은 죽어 있었다. 그들은 삶을 초월했다. 초인적으로 죽었다. 마치 우주의 윤회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사이훙에게 남은 것은 두 신선의 비범한 삶에 대한 기억뿐이다. 사이훙은 이제 부상, 사고, 질병, 운명의 장난, 성격적인 약점을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그는 자신이 길 잃은 아이처럼 여겨졌다. 어른들이 모두 떠나간 집에서 알 수 없는 물건들에 둘러싸여 갇혀 있는 아이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영웅은 패배하지 않으며 은둔자는 불멸의 육체를 가진다고 믿고 싶어한다. 그들은 죽음을 모면할 수 있다는 증거를 갖고 싶어한다. 전설과 종교, 심지어는 어린아이가 읽는 동화를 보아도, 죽음에 대한 즉물적인 공포와 죽음이라는 절대 법칙을 깨뜨릴 수 있는 사람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가 나타나 있다. 영웅의 경지에 올라서지 못한 사람들이 마지막 적수를 쳐부수는 누군가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얻는 심리적 위안, 이것이 바로 영웅의 존재 이유였다.
어느 시대에서건 사람들은 쓰러진 인간을 신화를 통해 절묘하게 포장했고 죽음을 교묘하게 숨겼다. 사실은 적에게 참수당한 구안 공이 불멸의 존재로 떠받들어졌다. 수많은 도인들이 용의 등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존재라고 미화되었다. 수없이 많은 연금술사들이 ― 심지어는 진시황까지도 ― 자기들이 불사(不死)의 영약(靈藥)이라고 믿은 물질을 먹고 죽어갔다. 인간은 어리석게도 영웅을 쥐어짜 냈다. 〈보살〉, 〈예수〉, 〈불사신〉을 원했다. 자기의 육신으로 전 인류의 어마어마한 죄를 감내하려는 인간을 애타게 갈구했다. 죽음의 형벌로부터 누군가가 자기들을 구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사이훙은 여기 혼자 있었다. 스승들은 가버리고 이제 그는 자신의 모든 육체적, 정신적 나약함을 혼자 힘으로 극복해야 한다. 그들은 사이훙의 세상살이와 초월을 모두 그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으로 남겨두고 말 없이 떠났다. 그들은 종교라는 익살극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자기 자신을 위해서 죽음을 초월하는 방법을 보여 주었다. 사이훙은 자신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고통과 질병을 견뎌내고 자신의 유한성에서 비롯되는 갖가지 고난을 이겨내어 마침내 고독하고 순결하게 이 세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사이훙은 자리에 앉았다. 그가 온몸으로 빨아 들이려고, 생생한 증인이 되려고 애썼던 순간을 기리기 위해서. 나도 죽는다는 생각에 사이훙은 자기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는 두 도인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미 작아져서 인간에게서 멀어진 것처럼 보였다. 촛불과 향만 있었더라면 사이훙은 산 속의 작은 사당에 있는 셈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들은 깎아 놓은 상처럼 단단히 그 자리에 박혀 있었다. 2년을 그들과 함께 보냈건만 그들을 처음 만난 날 밤 이후 그들이 살아온 내력이나 배경에 대해 새로 알게 된 것은 없었다. 그들은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사이훙은 묻고 싶은 질문이 수없이 많았지만 그들은 사이훙에게 아무런 답도 주지 않고 이승을 떠났다.
사이훙과 두 도인 사이에 쳐진 장막은 거둬 낼 수가 없었다. 그 장막은 불투명했다. 죽음의 장막 뒤에서 그들이 말을 걸어 오면 얼마나 좋을까, 사이훙은 턱없는 기대를 걸었다. 죽음 너머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그들의 입에서 들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이훙은 한숨을 내쉬었다. 산자에게 죽음은 끝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동굴이 희뿌옇게 밝아왔다. 사이훙은 그제서야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살아 있는 사람이 할 일을 가졌다는 것은 다시없는 복이라고 그는 새삼스럽게 생각했다. 죽음이 나타나면 인간은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 들지만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그 무서운 마비 상태에서 헤어나오는 것이다. 사이훙은 한 사람씩 동굴에서 꺼내 관 위에 눕혔다.
사이훙은 불이 잘 붙도록 참깨 씨를 두 도인의 몸에다 뿌렸다. 어쩌면 그들이 돌아올지 모른다. 사이훙은 왠지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잠시 꿈나라에 간 것처럼 너무도 멀쩡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이훙의 감상이었다. 두 도인은 영원히 가버렸다.
사이훙은 동굴에서 횃불을 가져온 다음 장작 더미에 불을 붙였다. 처음에는 점잖게 조그맣게 타올랐다. 그러나 얼마 뒤 겹겹이 쌓인 장작을 단숨에 타고 오른 불길은 두 시체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솟아 오르는 화염을 보니 와락 겁이 났다. 육신이 불에 타는 광경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사이훙은 달려가서 불을 끄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눌렀다. 무력하게 허물어지는 인간 앞에서 느끼는 정의감은 과연 뿌리 깊은 것이었다.
육신에서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불길은 순식간에 옷을 집어삼켰다. 불꽃이 더 높이 치솟고 나무가 갈라지고 불꽃이 튀었다. 연기가 솟아 올랐고 사이훙은 뜨거운 열기를 피하기 위해 뒤로 물러서야 했다. 안개는 여전히 자욱했다. 태양은 창백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이훙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새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조용한 아침은 온통 불꽃으로 물들었다.
이틀 뒤 사이훙은 재를 수습하고 조각난 뼈를 바수어 숲에다 뿌렸다. 그는 동굴로 돌아와서 자신이 머물렀던 흔적을 주의 깊게 없앴다. 모닥불을 피웠던 자리의 흙은 뒤집고 바위는 물로 깨끗이 씻었다.
그 길에는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졌다. 사이훙은 깎아지른 벼랑 위에 서서 은빛 안개를 내려다보았다. 지금껏 살아온 삶이 꿈처럼 느껴졌다. 이것이 꿈이라면 지금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한때 도에서 벗어났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것을 다시 찾아낸 그 자신이었다. 도를 추구하는 사람은 혼돈과 감상주의 그리고 도와의 합일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물리쳐야 한다. 반평생을 살아오면서 사이훙은 그의 가문, 장난기, 우유부단한 성격, 호전성, 미적 도취, 규율에 대한 반감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거기에 굴복할 때마다 그는 도에서 멀어졌다. 화산을 떠나 상하이 거리로 나섰을 때 그는 한 마리 부유하는 나비와 다를 바 없었다.
시후 신선과 징취안 신선은 사이훙의 시야를 감정 너머로 열어 주었다. 그들의 가르침 덕분에 사이훙은 자신이 격정과 맹목적인 반항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날개 없이도 정말로 날 수 있게 감정을 두고 떠나는 방법을 배웠다.
두 신선은 단순한 기술적 지식과 주지주의, 심지어는 경전도 맹종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신전은 바로 그의 몸이었고 신성은 그의 안에 깃들여 있었다. 그런 간단한 이치를 파악하게 된 연후에는 모든 배움은 번거롭게 된다.
사이훙은 진리를 향한 도정에서 자꾸만 발을 헛디뎠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밥먹듯이 되풀이했지만 그것은 그가 성장에 이르기 위해 거쳐야 할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그는 노력했다가 실패하고 다시 기어 올랐다. 사이훙은 그의 안에서 무언가가 성장하는 것을 절감했다. 그것은 수행을 통해 얻을 수 있다던 단순한 신체적 에너지의 차원을 넘어선 새로운 본성의 발현이었다.
원래의 참된 자아가 마침내 싹이 터서 만개한 것이다. 사이훙은 〈깎이지 않은 덩어리〉가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것은 감정적 동요와 오해와 사회화로 손상되지 않은 청정무구함이었다. 도를 통해서 그의 안에서는 빛과 순결의 황금태가 자라나고 마침내는 그것이 진리에 닿게 될 것이다.
날이 밝자 사이훙은 하산하기 시작했다. 파릇파릇한 나뭇잎들은 하얀 줄기와 대비되어 더욱 선명해 보였다. 빨갛고 노랗게 물든 잎들도 있었다. 숲은 떨어진 단풍잎으로 덮여 있었다. 앙상한 줄기는 하늘로 뻗어 있었다. 사이훙은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촉촉한 흙냄새가 맡아졌다. 식물도 숨을 쉬고 있었다. 구름 사이로 해가 나왔다. 사이훙은 웃었다. 그는 떠나고 싶었다.
◈ 에필로그
현재 대사부와 두 시자인 칭 수이셩과 린 쭝우는 은거하여 중국 북서부에 있는 오지의 도관을 유일하게 지키고 있다. 원래의 13제자 중에서 지금까지 살아 있는 사람은 다섯 명뿐이다. 츠쑹과 투오구이는 화산에서 쫓겨난 뒤 종적을 감추었는데 현재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진엔니아오는 지금도 활동하고 있다. 두 웨선은 1945년 상하이로 돌아가서 1949년 공산당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유서 깊은 상하이의 교단을 재건했다. 1951년 8월 16일 홍콩으로 피신했다. 그의 시신은 대만의 한 묘지에 안장되었다.
사이훙은 여행을 계속하여 유럽, 인도, 그 밖의 아시아 여러 나라를 찾았다.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베이징대학에서 공부했으며 결국 스승에게로 돌아갔다. 문화혁명 기간 중 도교는 철저하게 탄압받았다.
화산은 홍위병들에게 짓밟혔다. 수도자들이 살해당하고 도관은 불탔으며 신전은 모독당했다. 경전과 유물은 파괴되었다. 죽서칠판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판본의 하나도 당시 수난을 당했다. 죽서칠판의 원본은 마오 산에 아직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의 사제들은 세인의 접근을 꺼린다. 여타 판본들은 후대에 주석을 덧붙인 단장(斷章)들로 간주되고 있다.
1963년 대사부는 자기탐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사이훙을 중국 밖으로 보냈다. 사이훙은 홍콩, 일본, 유럽, 미국을 떠돌다가 결국 캘리포니아에 정착했다. 현재 관 사이훙은 샌프란시스코 베이에어리어에 은거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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