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BOOK/도인(道人)

도인(道人)③ - 1. 불로장생을 넘어선 곳

기른장 2025. 5. 31. 19:25

1. 불로장생을 넘어선 곳

가파른 숲속 오솔길을 오르는 관 사이훙 주위엔 때늦은 봄눈이 휘날리고 있었다. 두텁게 눈이 쌓인 노송의 이파리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 눈덮인 활엽수의 가지는 마치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흰 안개처럼 보였다. 사이훙은 희미한 안개 너머 절벽을 올려다보았다. 어디쯤이 정상인지 알 수 없는 절벽이 수천 년의 풍상에 씻긴 채 하늘 높이 우뚝 솟아 있었다. 눈보라에 휩싸인 절벽의 모습은 신비로운 위용을 더하고 있었다.

사이훙은 절벽을 타기 시작했다. 단단한 화강암에 말뚝을 박아 이어 놓은 두꺼운 쇠사슬과 얼어붙어 빳빳해진 밧줄에 몸을 의지하였다. 장갑은 자꾸 차가운 쇠사슬에 들러붙었으며 손끝이 시려 참기가 힘들었다. 세찬 바람에 밀려 날카로운 바위턱에 부딪칠 뻔한 사이훙은 빙판에 미끄러질까 봐 조심조심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바위가 보였다. 눈과 단풍잎들로 채워진 그곳은 노자가 세상을 등지고 자취를 감췄던 시대에 만들어진 거대한 소의 발자국이라고 여겨져 왔다. 7천 개의 돌계단을 오르는 사이훙도 그와 같은 감회를 온몸과 마음으로 느꼈다. 수년에 걸친 방랑생활을 끝내고 이제 사이훙은 도인들이 은거하고 있는 신성한 세계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듯 천 개의 돌계단을 올라온 사이훙은 심호흡을 하며 산시(山西) 평원을 바라보았다. 눈보라가 시야를 가로막아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다. 화산의 정상이 가까워짐에 따라 돌계단 바깥을 싸고 있는 난간이 연무(煙霧)가 미처 가리지 못한 세상의 모든 풍진을 가려 주었다.
 
세속의 일상적인 생활은 도교 성지인 화산에서 볼 때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산의 적막함, 그리고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고요함과 영혼을 구원해 주는 평안함이 있었다. 세속의 고난과 시련, 분쟁 같은 것은 감히 찾아올 수 없는 곳이었다.

고지의 차가운 공기는 달콤하고 깨끗했다. 사이훙은 몹시 배고픈 사람처럼 가슴 깊이 대기를 들이마셨다. 얼음같이 차가운 공기가 입술을 마르게 하거나 목구멍을 상하게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이훙은 몇 번이고 심호흡을 계속했다. 심호흡은 그의 가슴에 들러붙은 인간 세상의 썩은 연기를 말끔하게 씻어내 주는 것 같았다. 화산으로 다시 돌아온 사이훙은 매우 즐거웠다. 그의 몸은 가장 기분 좋게 풀어져 있었고, 영혼은 만발한 꽃처럼 다시 피어나고 있었다. 그는 안락함과 평온함, 행복감에 흠뻑 젖어 들었다.

추위에 대비해 누빈 무명옷을 여러 벌 겹쳐 입고 따뜻한 모자와 바닥에 짚을 깐 신발로 무장을 했지만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를 이겨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사이훙에게 이까짓 추위 따위는 문제되지 않았다. 장엄한 준령을 밟고 있다는 쾌감은 본능적인 감각보다 훨씬 더 강렬했다. 너무 투명해서 잔물결이 없다면 물인지 유리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맑은 시냇물을 끼고 사이훙은 어린애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산을 올라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고드름이 수정같이 반짝였다. 겨울 내내 추위에 떨어 핼쑥해진 갈색 단풍잎들이 연못으로 떨어졌다. 회색 바위를 감싸 돌며 연못으로 떨어지는 물살은 마치 수천 개의 칼날이 햇살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사이훙은 그 물처럼 깨끗하고 투명한 자신의 몸을 상상해 보았다. 하얀 물보라가 이는 연못에 몸을 담그고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는 모습도 그려 보았다. 세상에 나가 있는 동안 사이훙은 투쟁적인 생활에 젖어 진정한 마음의 안식을 누려 보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사이훙은 고요한 숲속과 생동감 넘치는 시냇가에 서서 기쁨과 휴식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30대가 된 사이훙은 방랑생활을 마치고 옛날 은자의 모습으로 화산에 돌아온 것이다. 화산을 떠난 5년 동안 그가 걸었던 삶의 역정은 험난한 것이었지만, 언제나 마음의 중심은 화산에 있었다. 당조(唐朝) 이래 도교에 봉헌된 이 화산은 사이훙의 마음을 송두리째 앗아가 버린 곳이었다.

사이훙은 아홉 살때 부모가 보낸 수백 명의 소년들과 영적인 삶을 살기 위해 스스로 입문한 청년들로 구성된 도관의 학당에 들어 갔었다. 여기서 학업을 마친 대다수는 속세로 다시 돌아가거나, 유명한 도관에 들어가기 위해 학당의 사도로 남았다. 일부는 좀 색다른 동기로 도교 수행자의 길을 택하기도 했는데 그들은 대개 가슴 아픈 과거를 지닌 사람들이었다. 가정이 파괴당한 아픔, 실연의 고통을 잊기 위한 경우도 있었고, 군역을 피하기 위해 또는 범죄자였던 과거를 청산하기 위한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삶의 방향 전환은 당시로서는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사실 공화정이 들어서기 이전에 중국에서는 직업 선택의 자유가 거의 제한되어 있었으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기를 쓰고 문·무과에 급제하려고 했다. 영적 공동체에 입문한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일이었다. 물질 문명에 젖은 속인들의 눈에는 도교 수행은 부질없는 것으로 보였다. 사이훙의 부모 역시 사이훙이 화산의 심오한 학문을 수업하고는 집으로 되돌아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사이훙이 출가를 선언하자 부모는 그를 가문에서 파문해 버렸다.
 
화산파의 장문인(長門人)이기도 한 대사부는 깊은 관심과 인내심을 갖고 사이훙의 교육을 지도하였다. 자신의 시자를 사이훙의 개인교사로 임명해 그의 수련 과정을 일일이 감독하게 했으며 대사부 자신은 사이훙의 수련계획을 직접 구상했다. 그는 사이훙에게 화산의 거대한 종교적 전통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될 것과 전통적인 학문과 관습 이상의 그 무엇을 배우도록 요구했다. 대사부는 또한 다른 모든 학문과 기예도 습득하도록 명을 내렸다. 사이훙은 일정한 높은 경지에 오른 괴짜같이 보이는 도사들에게서 경서와 고전, 서화, 본초학, 안마, 침술, 음악, 무술과 명상을 배웠다. 이들은 사이훙에게 자신은 되지 못한, 혹은 전에 되어 본 적이 있는 자기 분야의 최고 달인이 될 것을 요구했다. 그리고 사이훙은 좁고 음침한 방에 들어가 자신의 본성을 깨닫는 특별한 수행을 거치기도 했다.

이런 사부들의 영향은 그의 존재의 모든 방면에서 효과가 나타났다. 키는 크지 않으나 근골이 튼튼한 사이훙은 철사자란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균형 잡힌 몸매와 영민함을 소유한 그는 무예에 대한 자신감과 도인으로서의 위엄을 함께 갖추게 되었다. 그는 스승들이 희망했던 모든 것을 갖춘 인물이 되었다. 최고수라는 칭호도 얻었다.

그러나 사이훙에게는 방자함과 완고한 고집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때로는 도관을 돌보지 않고 세상에 나와 지냈다. 서구 문물을 맞이한 중국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문화유산과 세습 왕조를 질그릇 깨뜨리듯 무너뜨리고 근대화를 위한 급진적, 민족주의적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그러한 변화는 사이훙을 흥분시켰다.
 
사이훙은 그의 사부가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을 정도로 행운아였다. 흔히들 진정한 사제 관계는 어떤 신비적인 연결로 나타난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수도자가 사원을 나갔다 다시 들어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사이훙의 사부는 필요할 때에는 과감하게 전통을 깨뜨리기도 했다. 한 번은 백운사를 관장하는 장로가 스무 살이 된 사이훙에게 강제로 도사의 직위를 내리려고 하였다. 그때 사이훙의 사부는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임명장을 빼앗아 찢어 버리며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는 내 제자요. 나는 내 제자가 이 따위 직위를 갖게 되는 걸 원치 않소.」

사이훙은 그때 도관을 떠났다. 그렇지만 그의 인격은 아직 완성되지 못했다. 귀족과 무사, 수행자와 청년, 이것들은 사회적 또는 종교적 신분제도와 충돌을 일으켰다. 그는 이러한 갈등을 방랑생활로써 극복하려 했다. 부유한 모피 무역상인 삼촌과 함께, 혹은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사이훙은 2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독일과 프랑스, 동유럽 등지를 돌아다녔다. 발길이 닿는 곳 어디서나 사이훙은 매력과 아름다움을 느꼈다. 슈바르츠발트(독일의 삼림지대)나 다뉴브 강의 교각을 바라보면서 감상에 젖었으며, 쇼팽의 음악에 흠뻑 취하기도 했다. 사이훙은 높은 산악지대에 있는 마을에 유숙하길 좋아했다. 그곳의 주민들은 낯선 이방인에게도 친절했다. 전쟁으로 유럽대륙은 황폐하였으나 그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이국땅이 주는 유혹은 젊음의 열정과 조화되어 사이훙은 한때 유럽에서 영원히 삶을 영위할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세계 어디서나 몰락해 가는 귀족 가문 출신의 친구들은 그에게 아무런 위안도 주지 못했다.
 
중국으로 돌아온 사이훙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지던 1949년, 옌칭대학교에 들어갔다. 대학에서 사이훙은 논문을 하나 썼는데 그것이 당시 중국 수상 저우 언라이(周恩來: 주은래)의 눈에 띄게 되었다. 그는 사이훙을 불러, 사상을 여러 모로 검토한 후 같이 일을 하자고 제의해 왔다. 조금씩 임무를 준 다음 은밀하게 이 젊은 청년의 행동을 주시해 오던 저우 언라이는 마침내 사이훙의 능력에 크게 만족하면서 정무차관직에 임명하였다. 이 직위는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중국 고유의 것이었다. 사이훙은 축하연이 베풀어진 자리에서 수상에게 무릎을 꿇고 그의 충복이 될 것을 맹세하였다.

사이훙은 뛰어난, 그리고 무자비한 정치가로서의 소질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알마 후 인민회의 대의원이 된 그는 회색 마오 쩌뚱 정장을 입고 진지하면서도 다분히 계산적인 얼굴을 하고서는 자신이 세운 전략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연구하였다. 수상이 언질해 주었듯이 공산당 정부의 일원이 되는 것은 절대적 권력을 쥐게 되는 것이었다. 같은 편의 사람은 키워 주는 한편, 정적(政敵)은 견제와 숙청의 대상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무술가로서 훈련을 받아온 터라 정치계에서 잔인함을 발휘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정적들의 동태를 면밀히 파악하고서 그들에게 올가미를 씌우곤 했다. 함정에 빠진 그들이 허둥대는 것을 지켜보며 사이훙은 쾌감을 느꼈다.
 
정치계에서 교활하고 잔인한 술책은 사실 필수적인 것이었다. 사이훙의 성격에 이와 반대되는 또 다른 면이 없었다면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을 것이다. 천성적인 것이든 수도생활에서 길러진 것이건간에, 그에게는 양심과 인간다운 감정이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이 두 요소는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소질만큼이나 강력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정치가로서의 그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다. 자신의 지난 행적을 곰곰히 돌아본 그는 자기에게 희생된 사람들에게 연민과 동정을 느끼게 되었다. 사이훙은 은밀히 그들을 도와주기도 하였다.

사이훙은 1951년 정계를 떠났다. 위험천만한 정치 음모, 저우 언라이의 다른 수하들과의 경쟁과 불화, 정치 개혁이 중단된 것에 따른 실망 등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진정한 이유는 출세욕과 도교적 기질 사이의 갈등이었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인물이 되지 못함을 알았다. 자신의 내부에서 요동치고 있는 연민의 정과 동정심을 완전히 지우는 것이 불가능하게 여겨졌다.
 
사이훙은 다시 외로운 사람이 되었다. 사이훙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의 평화까지는 아니더라도 혼란스런 생각을 제거해 줄 수 있는 길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속세의 삶에 허무함과 현기증을 느끼고 공직 생활의 불안정함과 위험성을 깊이 체험한 뒤에야 그는 자신을 키워 준 은자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화산을 향해 불붙기 시작했다. 마침내 사이훙은 도교의 최고 경지에 이르기 위해 화산에 들어가기로 마음을 전한 것이다.

세계를 여행하며 돌아다녀 봤지만 그는 어디에서도 도교만큼 비밀스런 것을 가르쳐 주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명상이 깊어지면 특별한 초자연적 능력을 행할 수 있다. 그는 하늘 높이 오르고 싶었고 땅 끝까지 이르고 싶었다. 그뿐 아니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을 수련해 불로장생의 궁극에 이르고 싶은 욕망이 솟아올랐다.

도인들은 불로장생을 위해 은밀하게 전수되어 오는 각종 비법을 수련한다. 호흡법, 정신 집중, 굴신운동, 무술, 기공을 행하며 양생법을 실천하고 외금단을 제조한다. 처음에는 불로장생 그 자체가 최고의 가치라는 생각에서 이런 수행법들이 개발되었다. 그러나 몇대에 걸친 성인들의 채험에서 나온 결론은 대사부가 불로장생에 대해 갖고 있는 신념과 같은 것이었다. 불로장생은 도교 수행자들이 구도 생활에 전념하도록 유도하는 데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다. 사이훙이 도(道)를 추구하는 것은 매우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다. 그는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도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깨닫는 길을 추구하였다. 자신의 인격을 통일시키고 조화롭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지혜를 배우고자 했다.
 
도인의 삶은 결코 화려한 것이 아니다. 손으로 짠 법의(法依), 헝겊 조각을 더덕더덕 이은 장삼, 색이 바랜 지팡이, 벽돌로 만든 먼지 나는 오두막, 묽은 죽이 전부였다. 모든 종교 중에서 가장 비타협적인 도인들에게는 후원자가 없었다. 가파른 봉우리처럼 오르기 힘든 심오하고 난해한 경전만이 유일한 후원자였다. 신들조차 도인들에게는 물질적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었다. 화산의 도인에 대해서 호의를 갖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사람들은 막연한 두려움과 함께 경멸에 찬 눈초리로 짐짓 겸손하게 그들을 대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궁핍속에서도 언제나 화산엔 영적인 풍요로움이 흘러 넘쳤다.

사이훙이 남천문을 지나면서 보았던 한 도교 수행자의 생기 발랄한 모습은 거친 환경에서도 강건하게 단련된 이곳 사람들의 심신을 그대로 대변해 주고 있었다. 여유 있는 걸음걸이와 진지한 표정의 얼굴을 제외하면 화산은 작은 대학과 같았다. 젊은 도교도들은 푸른색 또는 회색의 법의를 고승들은 검은 법의를 입었다.

사이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강의를 들으러 가는 수십 명의 어린 도교도들 곁을 지나갔다. 산중에서 도를 닦는 수행자는 천기의 변화와 산의 고요함, 땅의 자비로움과 천둥의 사나움, 호수의 명상에 자신을 조화시킬 수 있어야 했다.
 
사이훙은 폭포가 내려다보이는 통나무 다리를 지나 남봉 쪽으로 올라갔다. 사부에게 가까이 갈수록 흥분과 기쁨으로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졌다. 육중한 바위의 갈라진 틈으로 사부의 거처가 있는 금천궁의 모습이 어렴풋이 드러났다. 하얀 솜 위에 앉은 듯 눈 속의 금천궁은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하얀 서리가 내린 까만 기와 지붕 위로 눈발이 휘날리는 모습은 사이훙으로 하여금 동화 속의 세계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오솔길이 끝나는 곳에서 몇 명의 도사들과 마주쳤다. 서로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만났다고 해서 포옹이나 요란한 인사는 하지 않는 곳이 화산이다. 사이훙은 말없이 금천궁을 향해 걸어갔다. 그들은 서로 바라보며 왼쪽 엄지 손가락을 가슴에 댄 뒤 나머지 손가락을 하늘로 향하게 했다. 이것이 인사의 전부였다.
 
돌계단을 걸어 올라온 사이훙은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린 쭝우와 칭 수이셩을 먼저 만났다. 지난날 자신의 성장에 큰 도움을 주었던 그들 역시 어느덧 40대에 접어들었다. 그들은 사이훙의 인사에 정중하게 답례했다. 두 사람은 그들 분파의 비밀 신호를 손짓으로 가르쳐 주었다. 사이훙은 감사를 표했다. 그런데 갑자기 두 사람이 킥킥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뭐가 그리 우스운지 자지러지게 웃어댔다. 사이훙은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이곳까지 무려 7천 개의 돌계단을 기다시피 하며 올라왔는데 이렇게 놀림을 당하다니······.

「도관에서 소리내어 웃는 건 금지되어 있는 걸 모르시나요?」

사이훙은 날카롭게 일침을 놓았다.

사이훙의 질책에도 그들은 더욱 재미있다는 듯이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두 사형은 평소답지 않은 사이훙의 흐트러진 모습을 보고 웃었던 것이다. 비라도 맞은 듯 그의 머리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모자는 비뚜름하게 얹혀 있었다. 게다가 바지는 개울물과 눈보라로 인해 완전히 젖어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는 도관에 들어갈 수 없어.」

칭 수이셩이 웃으며 말했다. 큰 키에 수염이 없는 그는 평소 좀처럼 웃는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잔뜩 화가 난 사이훙은 모자를 똑바로 눌러썼다. 그러자 두 사형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사이훙의 짧은 머리카락이 이마 위에 들러붙은 채 사방 팔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사부님을 뵙기 전에 복장을 가지런히 하는 게 좋겠어.」

린 쭝우가 충고하였다. 사이훙은 머리를 매만졌다.

〈언제까지 내가 이 두 사형들에게 어린애 취급을 받아야 하는건가······.〉

애 취급을 당한 것 같아 사이훙은 불쾌했다.
 
「목욕부터 하겠어요.」

사이훙은 잔뜩 위엄을 갖춘 목소리로 내뱉었다.

「그건 안 돼. 저녁 때가 되어야 욕실을 이용할 수 있어.」

사이훙은 당장 사부님을 뵐 수 없다는 생각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때 사이훙의 귀에 친숙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사부님이었다.
 
신당 쪽으로 몸을 돌려 보니 다른 두 명의 시자와 함께 사부님이 서계셨다. 시자들은 두 걸음 물러서 예의를 표했다. 사이훙은 즉시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가 닿도록 절을 올렸다. 땀과 물로 젖은 이마가 흙범벅이 되는 것도 아랑곳없이 몇 번이고 절을 계속했다.

대사부는 사려 깊은 모습으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공식적인 말로 사이훙의 절을 받았다. 대사부는 사이훙이 도관을 나간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체했다. 사이훙을 일으켜 세운 대사부는 한참동안 제자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사이훙은 머리속이 텅 비는 것 같았다. 단지 자신이 최면에 걸려있다는 것만을 느낄 수 있었다.
 

화산의 대사부

 
대사부는 키가 6척(182cm)이 넘었다. 호리호리하면서도 강건한 사부의 모습은 소나무를 연상시켰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살아온 사람처럼 보이는 그의 나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그시 감긴 듯한 두 눈은 붓끝처럼 날카로워 보였으며 약간 얇은 듯한 입술은 도사다운 침묵을 간직하고 있었다. 턱은 단단했으며 코는 쐐기처럼 힘있어 보였고, 반듯한 이마는 사부의 고결한 인격과 당당함을 그대로 말해 주고 있었다. 하얗게 센 머리카락과 수염은 회색의 장삼과 대비되어 은백의 실타래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수십 년을 화산의 햇빛에 노출되고 그을은 사부의 피부는 건강한 갈색을 띠고 있었다. 장문인과 대사부로서의 막중한 사명에 지친 듯 어느듯 눈가에는 주름살이 깊게 패어 있었다. 한결같이 차분한 사부의 눈빛은 언제나 갚은 지식과 이해심, 자비심을 담고 있었다.

사이훙은 사부의 모습에서 한 조각의 슬픔, 어떤 체념의 기색을 읽을 수 있었다. 사이훙은 이것이 과거에 대한 회한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 올 미래에 대한 인종(忍從)의 표현인지 알 수 없었다.

대사부는 손을 뻗어 사이훙을 축복하면서 도관에서 해야 할 새로운 임무를 부여하였다. 그리고 사이훙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벅찬 명상을 시켰다.

「오늘 이후로 네 자신의 신비를 푸는 것이 너의 과제이다. 칭 수이셩에게 네가 거할 오두막을 알려 달라고 하거라. 그리고 너는 반드시 〈나는 존재하는가?〉라는 이 화두에 대한 답을 찾아내야 한다.」
 
사이훙은 사부를 올려다보았다. 〈이 무슨 괴상한 화두란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화두에 대해 더 생각할 시간도, 상세한 설명을 요구할 겨를도 없었다. 대사부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면서 시자들에게 돌아가자는 손짓을 했다. 그들은 사이훙을 홀로 내버려두고 총총히 신당을 떠났다.

어두운 신당 안에 놓인 서태후의 신상이 보였다. 서태후는 화산의 몇 안 되는 수호신 중 하나였다. 제단 앞으로 다가가 분향제배(焚香祭拜)한 뒤, 사이훙은 가벼운 마음으로 신당을 나왔다.



이튿날부터 사이훙은 북봉의 도관을 보수하는 작업에 참여하였다. 쌓인 눈의 무게에 못 이겨 지붕이 몇 군데 파손되었는데 이듬해 봄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다리 위에서 조심스럽게 균형을 잡은 사이훙과 다른 도사들은 기와를 받아다 지붕 위로 올린 다음 회를 발라 지붕이 무너진 자리에 붙였다. 수천 척의 높이를 가진 북봉은 경사가 매우 급해서 지붕 보수 작업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북봉의 도관은 말안장 모양의 산등성이에 자리잡고 있었으므로 한번 실수하면 깊이를 알 수 없는 벼랑 아래로 곤두박질치게 돼 있었다.
 
도관의 지붕에서 내려다본 경치는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아름다웠다. 계곡 밑을 유심히 살펴보던 사이훙은 반짝이는 물체를 발견하였다. 호기심이 발동한 그는 감독승에게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는 도관을 가로질러 오솔길을 타고 내려갔다. 폭풍이 불 때마다 피해를 입는 산등성이에는 나무 한 그루 없었다. 폭풍지대를 무사히 벗어난 사이훙은 감사의 기도를 올리며 숲속으로 들어갔다.

사이훙은 소나무 숲으로 덮여 있는 언덕을 걸어 올라갔다. 어디선가 두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 왔다. 그러나 대화의 주인공은 보이지 않았다. 발각되지 않게 조심스레 눈 위를 걸어 가까이 다가간 사이훙의 귀에는 놀랍게도 사부의 음성이 들렸다.

「나는 명예욕을 버린지 오래요. 보다시피 나는 산속에서 은둔하며 살아가는 일개 은자일 뿐이오.」

대사부의 말이었다.

「나 또한 도사의 한 사람이오. 도의 세계가 비록 인간 세상과 다르다고는 하나 여기에도 반드시 지위의 고하는 있어야 할 것이오.」

톤이 굵고 낮은 음성이었다.
 
「당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정말 슬픈 일이오. 진정한 도교 수행자는 어떤 지위에도 괘념치 않는 법이오.」

대사부는 침통한 어조로 말했다.

「화산의 장문인인 당신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소?」

「내 직책은 단지 의무일 뿐이오. 필요하다면 나는 언제든지 그 직책을 내던질 것이오.」

「그러나 그 직책을 가진 사람이 지금 이렇게 살아 있지 않소.」

「내 운명을 따라갈 뿐이오.」

「내가 원하는 건 이름만의 직책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사람이오. 나는 내 무예를 시험하기 위해 당신을 제물로 선택하고 이곳을 찾아왔소.」
 
두 사람의 모습을 보기 위해 사이훙은 조금씩 앞으로 다가갔다. 눈으로 덮인 개간지 위에 사부가 서 있었다. 그러나 그와 언쟁을 벌이고 있는 사나이는 사부의 몸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침엽수들은 눈 속에서도 꼿꼿한 자태를 잃지 않고 서 있었으며 커다란 검은 바위들이 여기저기 튀어나와 있었다.

대사부는 몸을 돌렸다. 사이훙은 사부의 손에 쥐어져 있는 장검을 볼 수 있었다. 흰 말총으로 만든 긴 장식이 손잡이 끝에 매달려 있었다.

「나는 단순하고 솔직한 사람이오. 나와 겨루어서 무슨 이득이 있겠소? 나처럼 늙은 사람을 이긴다 해서 당신에게 큰 명예가 될 것 같진 않은데······.」

대사부가 말했다.

사나이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도인이오. 명예 따윈 바라지 않소. 나는 단지 완성에 관심이 있을 뿐이오. 당신이 보인 겸손은 감탄할 만하나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오. 당신은 현재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최고 검객 중의 한 사람 아니오?」

「왜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거요? 당신의 목적은 화산의 명예를 떨어뜨려 무림의 최고수라는 명예와 지위를 얻기 위한 것이 아니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대사부는 그 검객의 속마음을 읽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사이훙은 검객의 얼굴을 보기 위해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갔다.
 
놀랍게도 그 무사는 난쟁이였다. 도사의 도복인 회색 장삼을 입고 흰 수염에 상투를 튼 그는 대사부만큼이나 나이가 들어 보였다. 큰 머리에 눈은 약간 튀어나와 있었으며 날카로운 눈꼬리는 그가 지성적인 인물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대사부의 허리까지밖에 오지 않는 그 사나이는 크고 단단해 보이는 손을 갖고 있었다. 그가 쥐고 있는 칼은 유별나게 길었다. 네 척은 족히 돼보이는 그 칼은 유연한 힘으로 무림에 널리 알려진 청자검(靑紫劍)이었다.

난쟁이 검객은 대사부의 힐문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다가 조용히 칼날을 곧추세웠다.

「무사가 됐든, 법술사가 됐든 결투는 이기적인 것이오.」

대사부가 꾸짖었다.

「당신의 그러한 지식 또한 결투로부터 얻어진 것, 나는 당신을 통해 내 자신을 시험할 뿐이오.」

「꼭 그래야 되겠소? 힘을 내세우는 것은 탐욕에서 빚어지는 것이오.」

「힘있는 사람만이 탐욕에 대해 설교할 수 있소. 나는 아직 내가 마땅히 얻어야 할 것을 얻지 못했소. 당신은 나의 길에 방해자일 뿐이오.」

난쟁이 검객은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슬픈 일이오. 당신이 나에게 그토록 원한이 맺혀 있다니······.」

「슬픔도 일종의 감정이오. 위대한 무사에게 감정 따윈 없는 법이오.」

「당신은 스스로 위대한 무사라고 생각하오?」

「대답은 이것뿐이오.」

난쟁이는 칼을 앞으로 내밀면서 말했다. 칼끝은 그가 발산하는 내공으로 떨리고 있었다.

「세상을 떠난 은둔자에게 이런 불행한 일이 생기다니······.」

대사부는 난쟁이의 공격 자세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당신은 이 결투를 끝까지 하고야 말겠단 말이지?」

「물론이오. 내 명예가 걸려 있는 일이니까.」
 
「당신도 언젠가는 명예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오. 그러나 당신이 끝까지 해보겠다면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소. 당신이 명예에 끌려다니는 한, 내 검은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을 것이오.」

「동감이오.」

두 사람은 6미터 가량 떨어져 있었다. 결투의 시작을 알리는 인사로서 그들은 자신의 검법을 상징하는 몇 가지 자세를 취하였다. 난쟁이는 칼을 정면으로 가져간 다음 왼팔을 한 바퀴 돌렸다. 그리고는 몇 차례 칼을 휘두르며 상대의 검을 피하는 동작을 취했다. 난쟁이가 인사를 끝내고 손가락으로 대사부를 가리켰다. 그리고는 대사부의 가슴을 향해 칼을 겨누었다.

이번에는 대사부 차례였다. 사부의 인사법은 자신이 직접 고안한 것이었다. 그는 가슴을 가로질러 칼을 눕혔다가 다시 칼을 곧추세운 뒤 낮게 움츠린 자세를 취하였다. 그리고는 한쪽 다리로 휙 날아올라 대결 위치에 사뿐히 내려섰다. 대사부 역시 칼날을 적의 가슴을 향해 겨누었다. 대사부의 칼끝도 손잡이를 타고 올라간 내공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난쟁이는 코웃음치며 말했다.

「청룡검법(靑龍劍法)이군. 그건 이미 널리 알려진 검법이야.」

난쟁이는 대사부의 검법을 알아차린 듯 내뱉었다.

대사부는 대꾸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잠시 숨막힐 듯한 침묵이 흘렀다. 두 사람 모두 상대가 먼저 공격해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송이들은 날카로운 칼날 위에도 사뿐히 내려앉고 있었다.
 
난쟁이가 먼저 기합을 지르며 공격을 시작하였다. 그의 양다리는 무척 튼튼하고 힘있어 보였다. 난쟁이 검객은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대사부를 향해 초수를 펼쳤다. 그러나 대사부는 발도 움직이지 않고 허리만 슬쩍 뒤로 젖혀 적의 칼을 피해 냈다. 대사부의 허리는 너무 유연해서 즉시 원래의 자세로 돌아왔다. 그는 난쟁이의 둘레를 돌기 시작했다. 초수는 간단히 피했으나 난쟁이를 역공격할 여유는 보이지 않았다.

사이훙은 무림의 고수들은 결코 칼날을 부딪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칼로서 공격을 막는 것은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적어도 고수들은 적의 초수가 아무리 날카로워도 언제나 쉽게 피할 수 있어야 했다.

대사부도 난쟁이를 향해 칼을 밀고 들어갔다. 그러나 난쟁이는 옆으로 살짝 피하면서 대사부의 손목 위를 내리쳤다. 대사부는 원을 그리며 미끄러지듯 몸을 돌리며 난쟁이 검객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난쟁이는 획 피하며 대사부의 턱을 향해 칼을 내찔렀다. 두 사람의 대결 모습은 거의 신기(神技)에 가까워 마치 아름다운 춤을 보는 것 같았다. 갑자기 대사부가 전광석화처럼 돌진해 들어가자 난쟁이는 회오리 바람처럼 공중으로 치솟아 이를 피해 냈다. 두 사람의 무사는 허점을 찾아내려 애를 쓰고 있었다. 사이훙은 난쟁이가 키도 작고 날쌔게 보여 다소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대사부는 키가 커서 역습을 피해 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넓은 공간을 움직여야 했다.

난쟁이가 다시 허공으로 몸을 날리자 그의 몸이 팽이처럼 뱅뱅 돌았다. 마치 밤하늘의 혜성이 쏜살같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의 동작은 너무 빨라 칼끝이 보이지 읺았다. 날카로운 소리만을 들을 수 있었다. 대사부는 몸을 돌려 난쟁이 뒤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난쟁이의 움직임은 점점 맹렬해졌으며 칼끝은 속도를 더해갔다.

난쟁이는 대사부의 공격을 슬쩍 피하며 상대의 약점을 엿보았다. 미처 칼날을 돌리지 못한 난쟁이 검객은 칼의 손잡이 끝으로 대사부의 가슴을 내리치려 했다. 대사부는 옆으로 훌쩍 뛰어 몸을 빙글 돌려 재차 공격해 들어갔다. 그러나 난쟁이는 공중에서 한 바퀴 몸을 뒤틀며 이를 교묘하게 피해 내었다.
 
번쩍이는 검광을 통해 심오한 내공이 원을 그리며 공중으로 발산되고 있었다. 사이훙은 그들의 공중회전이라든가 고도의 검술이 곡예술이나 근력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사람은 수십 년간 명상으로 길러진 내공의 힘을 펼쳐 보이는 것이었다. 그들은 경공법과 내공의 힘을 이용해 몸을 나선형으로 회전하며 공중으로 날아오를 수 있었다. 휘날리는 눈발 속에서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모두 오랜 도교 수련에서 얻은 내공의 힘에 의한 것이었다.

그들의 결투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검으로 찌르거나 피하는 것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검법과 내공의 깊이에는 큰 관련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들이 시험하고 있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전체성, 다시 말하자면 내공의 깊이였다. 무사도에는 13단계가 있었다. 가장 낮은 단계는 일반 기사들과 같은 수준의 단계였다. 두 명의 무사는 진용(陣容)을 갖추어 공격과 수비를 할 수 있었는데 그들에게 있어서 무기는 신체의 일부였으며 신체는 도구에 불과했다. 그들은 내공을 펼치며 혼과 혼을 부딪쳐 가며 싸웠다.

난쟁이는 낮게 초수를 펼치며 대사부의 넓적다리를 공격했다. 대사부는 난쟁이의 공격을 미처 피하지 못한 듯 쓰러졌다. 심한 상처를 입은 듯했다. 난쟁이가 대사부의 목숨을 노리고 가까이 접근하자 대사부는 갑자기 몸을 돌려 난쟁이의 상투를 잘라 버렸다. 대사부가 쓰러진 것은 일종의 기만술이었다. 그는 상투 아래도 충분히 벨 수 있었다. 난쟁이는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부는 난쟁이의 손목을 내리쳤다. 난쟁이의 칼은 쇳소리를 내며 바위 뒤로 날아가 버렸다.

주인을 잃은 칼은 휘날리는 눈발 속에 빛을 잃고 시체처럼 떨어져 있었다. 대사부는 다시 몸을 위로 솟구치며 칼을 하늘 높이 치켜 세웠다. 그 순간 기겁을 한 난쟁이는 허둥지둥 도망가 버렸다. 대사부는 그를 쫓지 않았다.
 
사이훙이 그들의 결투 장면을 엿본 것은 옳은 일이 아니었다. 두 사람의 대결은 누구도 보아서는 안 될 사적인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이훙은 사부에게 들켜 야단맞을까 염려하며 그곳을 빠져 나왔다.

〈사부님은 아마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을 아실지도 몰라.〉 사이훙은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사부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시침 떼기로 작정했다. 그는 북봉의 도관으로 달려갔다. 

「잠깐 화장실에 간다던 사람이 이렇게 오래도록 어딜 갔다 오는거야?」

감독승이 소리쳤다. 그는 무술을 배운 듯 꼿꼿한 자세를 지니고 있었다.

「큰 걸 보고 왔어요.」

사이훙은 일부러 말을 더듬어 가며 대답했다.

「신성한 사찰에서 저속한 말로 거짓말까지 해?」

감독승은 화가 난 듯 소리를 질렀다. 어줍잖은 변명으로 죄목만 늘린 꼴이 되어 버렸다.

「불초소인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사이훙은 즉시 용서를 빌었다.
 
「좋아, 용서해 주지. 가서 계속 일해.」

감독승은 사이훙이 곧 사죄하자 흔쾌히 용서해 주었다.

사이훙은 기와 옮기는 작업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서는 사부의 결투 장면이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대사부는 이틀 후 사이훙을 불렀다. 사부는 난쟁이와의 결투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았다. 그는 고갯짓으로 도관의 정문을 가리켰다. 두 사람은 입을 다문 채, 묵묵히 남봉의 정상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

「진정한 수도란 사람 곁을 떠나서만 가능한 것이다.」

대사부는 절벽 끝에 서서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사이훙, 너도 그렇게 생각하느냐?」

사이훙은 산바람이 꽤 매섭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했다. 이곳에는 인간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멀리 지평선 끝까지 오직 순수한 대자연의 위용만 보일 뿐이었다. 사이훙은 자신이, 보통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받아들이는 모든 것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수년간의 힘든 수련을 마친 사이훙은 자신이 스스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인 원리나 원칙보다 고귀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다른 누구의 도움 없이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의 평정을 얻어야 적정(寂靜)에 이를 수 있다. 이 적정에 이르러야 지혜의 참맛을 보게 되는 거란다.」

「사부님께서는 명상이 그 열쇠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사이훙은 대사부가 평소 명상을 강조했음을 떠올리며 이렇게 물었다.

「명상만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 삶이란 단순한 것이 아니다. 도(道) 역시 변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도를 깨닫는 방법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끝없이 자신을 단련시키고 궁극을 향해 탐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너 자신을 가두지 말아라. 비록 명상이라 할지라도 그 틀에 얽매여서는 안 될 일이다.」

「사부님은 평소에 구속된 삶을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구속된 삶은 수련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도는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만이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힘든 수련을 이겨낸 사람만이 도의 흐름을 쫓을 수 있다. 영원한 도의 흐름이 우주를 지배하고 있다. 무위(無爲)로써 도를 깨달아라. 이것이 도의 비밀을 깨닫는 길이다. 행하라. 그것은 세상에 드러난 도를 경험하는 길이 될 것이다.」

「도의 정수를 알아야겠다는 욕심을 버려라. 그보다는 세상에 표현된 도를 알려는 마음을 가져라.」

사이훙은 경전의 경구를 인용하여 사부의 말에 대답하였다.
 
「그렇다. 그러나 너는 네가 직접 체험해서 아는 것만 말해야 한다. 경구를 인용하는 것은 무익한 짓이다. 경전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라고 강조하고 있다. 경전의 모든 문구는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가치 있는 것은 자신이 직접 체험하는 것뿐이다.」

대사부는 강인한 사람이었다. 사이훙도 이 점에 대해서는 늘 존경심을 품고 있었다. 대사부는 엄격한 수련을 강조하였다. 무병장수는 고행과 희생을 통해 인성(人性)을 단순화하는 데서 오는 과정일 뿐이다. 그러한 삶은 단조로울 뿐 아니라 고되기까지 하다.

그러나 구속된 삶은 구속의 압력으로 인간의 잠재능력을 일깨워 준다. 두 사람은 어느덧 또 다른 산등성이까지 오게 되었다. 두 사람은 잠시 멈춰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좋지 못한 기후 조건에서 자란 작은 나무들이 험준한 돌산 여기저기에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있었다. 회색빛 하늘을 배경으로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큰 키의 나무들도 있었다.
  
「사이훙, 네 주위를 돌아보아라. 경전은 필요없다. 자, 보아라. 도가 네 주위를 감싸고 있지 않느냐?」

그들 앞에는 연대를 알 수 없는 태고 시절의 고산 준령이 펼쳐져 있었다. 뾰족한 봉우리들은 수천 년이 지난 오늘에도 날카롭고 고고한 기상을 잃지 않고 지평선 저 끝까지 이어져 있었다. 마치 안개 속을 헤치고 하늘로 올라가려는 수많은 용 같기도 하였고, 소용돌이치며 밀려드는 파도 같기도 했다. 산꼭대기에는 눈이 덮여 있었다. 구름이 무장한 군대처럼 휘몰아치면서 지나갔다. 한바탕 돌풍이 불어오자 보초처럼 버티고 있던 소나무들은 괴로운 듯 몸을 흔들어댔다. 숭고하고 순수한 자연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었다. 자연의 조용한 변화가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화산은 보잘것없는 두 사람을 더욱 왜소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그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구도 열망만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육체는 얼마 안 가 흙이 될 것이다. 그들의 수명은 영원에 비하면 얼마나 순간적인가? 그들의 자취는 대서사시를 이루는 시구에도 미치지 못했다.

「도를 깨닫는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대사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사이훙을 쳐다보며 혼돈에 빠진 그를 안심시키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명상은 도를 깨닫는 길이다. 자, 그 동안 네가 얼마나 공부를 했는지 내게 말해 보아라.」

「잘 모르겠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게 내신 화두는 답을 얻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어려우냐? 단 두 마디로 물었을 뿐인데······.」

대사부는 자상하게 되물었다.

「그렇긴 하지만,  제가 화산에 돌아온 이후 계속 그 문제에 대해서만 명상하였는데도 아직······.」

「다시 말하지만 나는 단순히 네가 존재하느냐고 물었을 뿐이다.」
 
사이훙은 잠자코 생각에 잠겼다. 사이훙은 자기가 어떤 대답을 해도 사부는 틀렸다고 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대사부가 다시 재촉하였다.

「갑자기 벙어리가 됐느냐? 토론과 논쟁을 그렇게 좋아하던 네가 아니냐? 너는 대학을 다녔고 세계를 두루 여행해 보지도 않았느냐? 대답해, 어서 대답해 봐!」

참다 못한 사이훙은 마침내 내뱉듯이 대답을 하였다.

「네, 저는 존재합니다.」

「그래? 그러면 네 자신이 어디 있느냐? 그걸 내게 보여라.」

「왜 꼭 그래야 합니까? 저는 사부님 앞에 이렇게 존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 그러면 너는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확신하느냐?」

「그렇습니다.」

사이훙이 소리쳤다.
 
「하지만 나는 네게 보여 줄 자아가 없다.」

「제가 이렇게 보고 있지 않습니까?」

사이훙은 이렇게 대답하며 사부가 늙어서 뚱단지 같은 소리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단지 육체 덩어리, 즉 빌려온 그릇을 보고 있을 뿐이다.」

사이훙은 사부가 무엇을 전달하려는 것인지 몰라 사부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심오한 내공과 명상을 수련한 사부의 얼굴에는 여느 사람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 얼굴은 무사와 학자의 기상을 동시에 담고 있었으며, 두 기상에서 오는 긴장감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

〈대사부는 과연 존재하고 있는가?〉

사이훙은 스스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 그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대사부는 자기가 단지 빌린 그릇을 보고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사이훙은 육체라는 껍질 외에 더 중요한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을 단지 육체만을 통해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으며 그것은 사이훙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이훙은 자신의 견해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계속해서 입을 다물고 있으면, 자신을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것에 국한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 사이훙은 문답을 다시 시작하였다.
 
「물론 육체 외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그것은 마음과 죽지 않는 영혼입니다. 이것들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경전에는 우리 몸 속에 세 개의 칼집이 있는데 그것은 영혼과 마음, 그리고 육체라고 하였습니다.」

「사이훙, 너는 참 훌륭한 학생이구나. 나는 네가 직접 경험해서 아는 것을 듣고 싶다.」

대사부는 놀리듯이 말하였다.

「사부님, 저는 십여 년 동안 명상을 해왔습니다. 저는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사이훙은 침착한 어조로 말하였다.

「네가 마음을 안다면 그렇게 분별없이 말하진 않았을 게다. 마음을 진정으로 아는 사람은 그것이 친구가 될 수 있고 적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너를 파멸로 이끄는 것도 마음이라는 것을 아느냐?」

「마음은 실재입니다.」

사이훙은 소리쳤다.

「그렇지 않아. 마음은 실재가 아니야.」

대사부는 변함없는 음성으로 말하였다.
 
「저는 마음이 실재하는 것을 입증하는 초능력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초능력이라고!」

대사부는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런 것들이 너의 본성을 가린다는 것을 알기나 하느냐?」

사이훙의 마음속에서는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그는 사부가 고의적으로 문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부가 위선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사부는 나의 능력의 열 배 이상 되는 거의 신의 경지에 가까운 초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가? 그런 그가 초능력은 방해물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으니 정말 웃기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분은 그의 스승이 아닌가? 결코 자기를 해롭게 할 사람이 아니다. 그는 사부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 곰곰히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부는 사이훙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사부의 얼굴에서 무슨 단서라도 찾아내려는 듯 뚫어지게 사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는 정신보다는 육체에 치우친 육체 예찬론자였다. 그는 중일전쟁 당시 유격전의 베테랑이었다. 그는 온몸을 던져 승부를 걸었다. 어렸을 때 사이훙은 병이 많았다. 그의 부모님은 희귀한 약을 구하기 위해 엄청난 재물을 대가로 지불하였다.

지금의 강건하고 딱바라진 몸은 어릴 때부터의 건강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팔뚝은 일반 사람의 허벅지 같았으며 다리는 커다란 나무줄기 같았다. 안색은 붉었으며 얼굴은 방패처럼 넓어 보였다. 유난히 반짝이는 커다란 두 눈은 그가 예리한 판단력의 소유자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까맣고 윤기 있는 그의 머리카락은 꽤 빨리 자라고 있었다. 화산을 떠난 이래 줄곧 짧게 쳐왔던 머리는 이제 상투를 틀어야 할 정도로 길게 자랐다.

권법을 익히기 위해 십여 년을 단련시킨 두 손은 놀랍게도 아직도 갸름하고, 섬세한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그가 음악가이거나 문필가 또는 귀족 신사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혁명이 있기 전 그는 실제로 타고난 심미적인 성품을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사이훙은 부모님의 명성과 부를 이용하여 유명한 문학가의 원고를 모으기도 하고 고서와 신상(神像), 골동품, 미술품 등을 구입하기도 했다. 그는 또 중국 각지의 유명한 특산요리를 맛보기도 하였다. 양복점에서 직접 맞춘 옷을 즐겨 입었던 그는 더할 나위 없이 세련된 인생을 즐길 수 있었다. 그가 누리지 못한 것은 술과 아편과 여자뿐이었다. 그것은 도관에서 자라며 받은 교육과 천성적인 수줍음 때문이었다.

대사부는 종종 사이훙에게 육체적인 힘을 중요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내공의 힘이 훨씬 우월한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었다. 일찍이 자금성을 방문한 적이 있는 대사부는 심미적인 쾌락에 탐닉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미 온 세상의 지식의 물을 마시고도 지적 갈증을 느끼는 대사부로서는 사이훙이 갖고 있는 지식이 물방울처럼 보였다.
 
그러나 대사부의 뛰어난 영력은 사이훙을 더욱 철없이 만들었다. 그는 언제나 사부가 자신을 위험에서 구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믿음은 방랑생활에 자신감을 심어 주었으며 방랑을 거듭할수록 자신의 실재를 확실히 느끼게 되었다.

〈나는 많은 것을 이루었어. 나는 많은 것을 보았고 또 경험했어. 나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지.〉

마침내 사이훙은 자신의 생각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마음의 힘은 강력한 것입니다. 저는 마음이 육체와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무술을 연마하기도 했지만 바깥 세상도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사부님의 손을 붙잡고 하는 높이 치솟아 여러 군데를 가보기도 했습니다. 사부님은 기억나지 않습니까?」

「다 부질없는 짓이다. 몇 번 공중비행을 했다고 자아가 확립되었다고 생각하는 게냐? 나는 가느다란 연기 같은 것이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아무런 인상도 받지 못했다.」

「마음은 제 본성입니다.」

사이훙은 고집스러웠다.

「네가 몇 가지 영적 초능력을 배웠다고 해서 그것으로 자아를 설명하려는 게냐?」

「그렇습니다······.」
 
「그것은 너의 마음에 올가미를 씌울 따름이다. 천리안이나 유체이탈, 초능력을 추구하는 것은 올가미를 덧씌우는 행위일 뿐이다.」

「그렇다면 왜 제게 그런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까?」

「그건 네가 그런 것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소용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는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그러나 술법을 배운 다음 다음 순간엔 그것을 던져 버려야 하느니라.」

사이훙은 도저히 이 문답에서 이길 것 같지 않았다. 그는 대화의 방향을 딴데로 돌렸다.
 
「신장(神將)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어떤 신장들을 받들어야 합니까? 신들은 확실히 존재하고 있다고 보는데요.」

「그건 더욱 나쁜 것이야! 이렇게 말하면 불경죄가 될지 모르지만, 신장들 역시 그들 마음에 올가미를 씌운 상태야. 그들은 영원토록 자신의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그 상태에 만족하며 살아갈 뿐이야. 자미대제는 전지전능하며 무소부재(無所不在)하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아니야. 」

대사부는 사이훙의 의도를 알아차린 듯 단호하게 말했다. 

「그 이상은 아니라니요? 그 위에 또 무엇이 있단 말씀인가요?」

사이훙은 대사부의 말을 가로막으며 황급히 물었다.
 
「물론, 그 이상의 차원이 있다. 우리 도사들은 신장들보다 훨씬 높은 차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단다. 자미대제 역시 한 존재일 뿐이야. 그는 모든 존재일 수는 없어. 더군다나 우주 자체가 될 수도 없어. 이런 점에서 볼 때 신장들 역시 초능력을 갈구하는 인간만큼이나 애처러운 존재들이야. 이것이 그들의 한계다.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자아를 맏고 있을 뿐이야.」

「경전도 완전하지 못하고, 내 마음도 완전하지 못하고, 더군다나 신들조차 완전하지 못하다면, 도대체 도는 어디에 있습니까? 도 자체가 없는 건 아닙니까?」

「그것 또한 틀린 말이다.」

대사부는 그윽한 눈길로 사이훙을 쳐다보며 말했다.

「경전이 없는 곳, 마음이 없는 곳, 신들조차 없는 곳, 그곳에 도가 있는 것이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 때문에 사이훙은 몹시 불편한 자세로 서 있었지만, 대사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대화 도중 눈을 감는 대사부의 모습은 언제나 사이훙을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었다. 이럴 때면 사이훙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하는 건지 떠나야 하는 건지 분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자리를 뜨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역시 사이훙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대사부는 한 시간 만에 다시 말문을 열었다. 사이훙은 오늘은 꽤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너는 죽음을 이해하고 있느냐?」

「네,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이훙은 추위로 이가 딱딱 부딪치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대답했다. 그는 전쟁과 기근, 결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는 모습을 수없이 봐왔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죽은 후에 다른 세계로 간다고 생각하느냐?」

「본능적으로 자아는 육체와 함께 파멸하지만, 마음과 영혼의 자아는 환생한다고 봅니다. 영성을 개발하면 인간의 의식을 그대로 가진 채 죽음을 초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이훙은 배운 대로 대답했다.

「그것은 또한 네가 원하는 바이기도 하지, 그렇지 않느냐?」

물론 그랬다. 그러나 사이훙은 그 말을 인정해도 괜찮을지 먼저 신중히 생각해 보았다.
 
「저는 그렇게 배워 알고 있습니다.」

「네 말이 틀린 건 아니나 그건 핵심에서 벗어난 말이야. 너의 관심은 오직 완전한 자유에 있어야 해.」

「늘 그래 왔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자유란 삶과 죽음, 환생과 욕망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까지 떠난 곳에 있는 것이다. 마음은 그 자체로 죽음을 초월할 수 있다.

우리는 사후에 자신이 임종시에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런 염원을 품지 않고 죽은 사람의 혼은 망각의 늪에 빠져들거나 구천을 떠돌기도 한단다. 어떤 영혼은 자신이 죽은 사실조차 모른다. 이승에서 선행을 닦은 사람이나 금욕생활을 한 사람의 영혼은 신장이 되기도 하지.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중간에 떨어진다.

 인생살이에 욕망이나 한 맺힌 일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자신의 사랑을 이루고 안식을 얻기까지 60번이나 환생을 거듭한 불사조의 경우와 같이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을 완성할 때까지 계속 환생해서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거란다.」

대사부는 사이훙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마음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너무 멍청해서 죽음도 이해하지 못하는 바보이거나 죽은 다음 신장이 될 수 있는 현인이거나 간에 그들은 죽을 때의 자신의 신분에 매달려 있는 게야. 더 높은 단계가 있는데도 말이다.」

대사부의 가르침이 마침내 사이훙의 의식을 일깨워 주었다. 대사부는 사이훙이 언제나 최상의 도를 추구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최상의 도는 공(空)이야. 너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리고 무병장수를 추구하되 불로불사를 꿈꾸지는 말아라. 신장들까지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완성할 정도로만 장수하면 족한 것이다.」

「어떻게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인생의 목표를 세울 때 그것이 가능하다. 목표를 정하면 인생은 그만큼 의미를 갖게 된다. 어떤 일을 결정했으면 끝까지 밀어붙여라. 독단이나 완고함을 버려야 하며 인내심과 유연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일단 목표를 정하면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말아야 한다. 평소 소중히 여기던 것들도 방해가 된다면 과감히 버릴 수 있어야 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보다 강력한 동기를 부여할 때 선택의 방향은 더욱 선명해지는 것이다. 열심히 쌓은 수련은 더 높은 목표에 희생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 그런 사람만이 자신감을 가지고 신속히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너는 자신의 인생을 완성했다는 만족감을 가지고 근본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너를 붙잡지 못한다. 그때 비로소 너는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될 것이다.」

「사부님, 근본이란 게 도대체 뭡니까?」

「나는 지금 너에게 그걸 말해 줄 수 없다. 네 스스로 그걸 찾아내어 내게 얘기해야 한다. 나는 네가 그걸 진실로 발견했는지 판단해 줄 따름이다.」
 
두 사람은 도관으로 돌아왔다. 저녁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사이훙은 낮에 대사부가 한 말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사이훙은 사부를 믿고 의지했다. 그는 사부의 사소한 실수까지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같이 지내 왔다. 사부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우울함과 반항심을 참아내는지, 경전의 말씀을 어떤 때 인용하는지 사이훙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어떤 때는 사부가 방귀를 끼거나 트림하는 것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사이훙은 그런 사소한 것들로 사부의 권위를 낮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언제나 경건한 자세를 최우선으로 삼았다. 그들은 사부와 인간적인 진실한 친분이 없었던 탓에 자신이 견지하고 있는 경건함이 언제나 흔들리지 않는 충성스런 경건함인지 알지 못했다. 언제나 응답이 없는 제단을 향해 한 번도 기도해 보지도 않았으며, 사부와의 실제적인 접촉이 거의 없었던 그들은 자신들의 경건함을 시험해 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이훙은 사정이 달랐다. 그의 사부는 성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도를 이룬 사람임을 아는 사이훙은 언제나 그 충성심이 변할 수가 없었다.

도는 사회화와 물질주의의 어떤 속박으로부터도 해방되는, 즉 완전한 자유를 의미한다. 그것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모든 것들로부터의 초월을 의미했다. 사이훙의 사부는 소위 카르마라고 불리는 모든 감정과 지성, 형이상학적인 오염물들을 버리라고 가르쳤다. 그것이 형체가 없는 공(空)으로 여겨질 때까지 오로지 마음과 영혼의 실체에 대해서만 궁구하라고 주문하였다.
 
이 세상에 소망을 담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진귀한 보석이나 빛나는 명예도 아무 가치가 없다. 도는 내세적인 것도 아니다. 자신이 살아 있을 때 모든 것을 이루어 놓아야 한다. 다음 생애까지 미루어선 안 된다. 깨쳐야 할 것은 지금 이 순간 깨쳐야 한다. 어떤 거대한 약속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무위를 향한 겸허하고 소박한 여행만이 있을 뿐인 것이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때, 자신이 무위 그 자체가 될 때 도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도는 어디에나 있으며 한계가 없다. 도는 거대한 신비이다. 그것은 일상적인 방법으로는 알 수 없는 신비이다. 그러므로 도는 신비로운 방법으로만 알 수 있다. 결코 수량적인 자료를 분석하여 알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의식을 하나하나 벗겨냄으로써 알 수 있는 것이다. 도는 정열적인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묘한 영적 수행에 의해서 알 수 있는 것이다.

도는 어떤 뛰어난 인간도 감히 방해할 수 없는 역동적인 생명의 흐름이며 물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모든 것을 아무런 의식 없이 받아들이며 어떤 예상도 없이 모든 것을 성취시킨다. 그것은 태초부터 있었고 영원한 세월 끝까지 존재하는 우주의 본성이다.

도는 언제나 변한다. 그것은 혼자 떨어져 있지 않으며 수량화시킬 수도 없다. 영원한 것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는다. 영원히 실체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순순히 도를 따라가는 것이 최상의 길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