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BOOK/도인(道人)

도인(道人)③ - 2. 공(空)을 궁구하다

기른장 2025. 6. 5. 21:24

2. 공(空)을 궁구하다
 
사이훙은 초롱불로 길을 밝히며 눈덮인 밤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자정이 되기 전에 몇 시간은 음기가 최고조에 이른 때이기 때문에 사이훙은 항상 이 시간을 이용해 수행을 쌓았다. 이 시간은 하루 중 그의 네 번째 수행시간에 해당되었다. 오두막을 향해 걸어가던 사이훙은 한 줄기 황금색 빛을 바라보며 문득 경전의 한 구절을 머리에 떠 올렸다.

〈도를 닦는 현인은 언제나 그 앞에 촛불을 들고 있다.〉

촛불은 지식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 촛불은 길을 밝히고 보여 줄 뿐이다. 중요한 것은 한 걸음 한 걸음 스스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려서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도관의 학당에서 생활하기도 했지만, 이젠 다시 조그만 오두막에서 혼자 지내야 했다. 본성을 깨칠 때까지 사이훙은 오두막에서 지내야 했다. 처음 명상을 시작할 때도 사이훙은 이 오두막에 갇혀 있었다.

예부터 도교 수행자들은 암벽이나 절벽 위에다 벽돌과 나무, 기와를 이용해 집을 지었다. 조그만 강풍이 불어도 날아가 버릴 이 허름하고 조그만 은신처에서 많은 수행자들이 깨달음의 경지에 오른 선배 도사들의 후광을 입을 수가 있었다.

안쪽 벽은 흙으로 만든 벽돌 위에 회반죽을 발라 만든 것이었다. 벽에 걸린 장식물이라곤 산수화 두어 점뿐이었다. 처마 밑의 회색 통나무는 비바람에 씻기어 껍질이 다 벗겨져 있었다. 사이훙은 바깥 벽에다 〈수행중〉이라고 써붙였다. 그것은 물론 수행에 방해되니 아무도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의 표시였다. 그런 다음 사이훙은 바람이 들어오지 않게 방문을 꼭 닫았다. 그리고는 청동 화로에 불을 지폈다. 두터운 무명 이불과 따뜻한 방바닥만이 살을 에는 듯한 겨울밤의 추위를 막아 주었다. 사이훙은 너무 추워 옷을 입은채 자기로 했다. 머리에는 모자를 쓰고 코에는 수건을 얹은 자세로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사이훙은 모자 밑으로 손을 넣어 머리카락을 만져 보았다. 머리카락은 어깨에 닿을 정도로 자라서 이전처럼 도교도의 상징물인 머리핀을 꽂을 때가 되었다. 그는 나무가방에서 은빛 머리핀을 꺼냈다. 머리핀은 폭이 6밀리 남짓 되고 길이가 15센티 정도 되는 가느다란 칼날 모양을 하고 있었다. 한쪽 끝은 뭉툭하고 다른 쪽 끝은 정교한 용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등불에 비친 머리핀은 황옥색으로 찬란하게 빛났다. 그것은 사이훙에게는 단순한 머리핀 이상의 귀중한 의미를 지니는 물건이었다. 그 머리핀은 사이훙이 정식으로 도교에 입문하던 16세 때 대사부가 선물로 준 것이다. 사이훙은 그것을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았다. 그것은 사이훙 자신에게는 더없이 성스러운 물건이며, 비밀리에 행해지는 영성의 전수를 상징하는 은밀한 사보(私寶)였다.

사이훙은 화산에서 수행할 때 언제나 그것을 머리에 꽂고 있었으며 세상에 나가서도 늘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것은 출가의 상징이자 도교의 위엄을 전해 주는 것이었다. 사이훙은 그것을 다시 꽂게 될 날이 있으리라 기대하면서 가방에 도로 넣어 두었다.

사이훙은 노트와 만년필을 꺼내 들었다. 그는 먹을 갈고 화선지를 준비해야 하는 붓글씨의 번잡스러움에 싫증이 났다. 사이훙은 그날 오후 사부와 대화했던 내용을 적어 내려갔다. 오늘 있었던 사부와의 대화를 상당히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오늘 대사부가 가르쳐 준 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마음을 비운다는 개념에 대해 대사부는 별로 가치도 없는 말만 늘어놓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이훙은 기록을 마치고 명상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명상에 드는 것은 좀 외롭기는 했지만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문득 사이훙은 어린 시절의 소망이 생각났다. 사이훙은 때때로 사부들과 장난도 치고 농담도 할 수 있는 부드럽고 자유로운 사제 관계를 바라곤 했었다. 옛 생각이 떠오르자 사이훙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허용될 수 없었다. 그는 지금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본성을 깨쳐야 할 순간에 있는 것이다.

그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 자세는 육체적인 안정을 준다. 그는 결가부좌를 하고 자세를 잡았다. 양손을 무릎 위에 놓은 채 명상에 들어갔다.

사이훙은 단전 호흡을 시작했다. 호흡이 길어지고 깊어졌다. 호흡은 곧 화산의 동굴 속을 흐르는 묵직한 공기의 흐름이 되었다. 몸 속의 피는 화산의 땅 밑을 흐르는 지하수처럼 어둠 속을 신비롭게 흘렀다. 사이훙은 이 모든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몸 내부를 볼 수 있는 경지에 이미 올라 있었던 것이다.
 
명상은 평온함을 가져다 주었다. 그것은 정말 상쾌하고 즐거운 느낌이었다. 마치 어릴 적 행복했던 고향 집에 돌아온 느낌이었다. 이런 현상은 어떻게 보면 전혀 색다른 것이었다. 완전히 모순이나 역설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움직이지 않고 고요히 앉아서 그는 자신을 가로막았던 모든 것들을 떨쳐 버리고 있었다. 자신을 관조해봄으로써 일상 생활의 여러 문제들과 부딪치는 「작은 자아」로부터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그는 온갖 좋은 것만 쫓다가 후회와 고통을 맛보는 사이훙을 한쪽으로 제쳐놓았다.

명상은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숭고한 것이다. 그것은 살아 있는 기도였다. 명상을 통해 기도와 기도를 듣는 행위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없이 경건한 느낌이 한 줄기 빛으로 승화하였다. 하늘을 날 듯한 가벼움을 느끼면서 한편으론 바위처럼 미동도 없었다. 명상은 두 눈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게 했다. 그것은 행복과 황홀함을 동시에 누리는 것이었다. 고통과 쾌락의 반복, 성취감과 실망이 반복되는 세상의 즐거움과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명상은 사랑과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연인들이나 어린아이들이 갖는 사랑과 연민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이기적인 마음에 손상되지 않는 순수한 느낌이었다. 명상은 감각적인 욕망과도 달랐다. 명상은 생명의 본질적인 성품을 똑바로 인식하게 하였다. 법당에 경건하게 모셔져 있는 웃는 모습의 신상들도 종교의 덪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명상은 영적인 것이기에 누구의 손길도 닿을 수 없는 것이다.

그에게는 법의도 필요없다. 벌거벗은 그대로가 영적인 법의였다.

웃는 신상도 필요없다. 침묵이 우주의 소리였다.

제단도 필요없다. 그의 몸 자체가 하나의 제단이었다. 신들은 그의 몸 속에 있었다.
 
명상은 자기 창조의 행위이다. 사이훙은 오랫동안 심상을 구체화하는 수행을 해왔다. 그는 우주의 원초적 생명력과 자신의 원기가 조화를 이룬 기가 경락에 가득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마음에 그리는 심상은 인격에 영향을 주었다. 그는 밝은 빛의 기가 경락을 따라 흐르는 것을 마음에 그렸다. 그는 그 빛이 경혈에 모이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심상 수련은 마음을 조절하는 방법이었고, 그 힘은 실재하는 것이었다.

마음은 몸 속에 거하고 있지만 뇌 자체는 아니다. 그것은 화학, 생물학, 물리학을 뛰어넘는 것이다. 마음은 탐구를 통해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으로 마음은 스스로 깨달아지는 것이다.

마음은 그 작용과 습관, 지성, 그리고 능력을 포함한 모든 성질들이 투명해져야 한다. 그리고 일단 이것을 성취하고 나면 자아 속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마음의 이런 성질들은 그 껍질을 하나하나 벗겨 내야 하는 것이다.
 
사이훙은 마음의 단순성을 얻기 위해 이렇게 오래도록 정신적 수련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회의를 품은 적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몽매한 자들은 명상을 할 능력도 없다. 무지한 자들은 그저 그대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들은 마음을 탐구할 능력이 없거나 의지가 부족하여 의심에 빠지거나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불확실성은 단순성이 아니다. 무지한 자들은 존재의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신비를 결코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깨달음의 바깥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이훙은 내적 에너지의 미묘한 힘이 솟는 순간 경혈이 열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언제나 의식이 깊어짐을 감지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의 감각이나 상태를 설명하거나 기록하려고 하면 애를 먹었다. 그런 것들은 일상적인 언어로 묘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의식을 표현하는 데 적합하지 못했다. 성스러운 경지에 오른 사람들조차도 그들이 경험한 경이로움과 경건함을 전할 때는 매혹적인 과장법과 역설적인 표현을 쓰곤 했다. 그들이 느끼는 마음의 상태는 너무나 아름답고 완벽한 것이어서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마법과 같은 것으로 들릴 뿐이다.

사이훙에게 있어서 명상은 귀중한 것이긴 했지만 결코 두려운 대상이 아니었다. 명상은 사이훙에게 완전한 일상이었다. 명상은 극적인 성질을 지니진 않지만 그 내재된 힘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체험한 마음의 상태는 조금도 의심할 수 없는 진실된 것이었다.
 
사이훙은 이러한 마음 상태로 실존을 이해하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의심할 수 없는 그 무엇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자아에 대한 의식을 강화시켜 주는 것이기도 했다. 사부는 마음의 탐구를 계속하여 이러한 느낌의 이면에 있는 것, 즉 공(空)을 발견하도록 일깨워 주었다.

명상은 진리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최고의 진리마저 초월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공(空) 안에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 되어 분리된 개체의식의 망상을 깨닫고 실존의 환상적인 성질을 분명히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깊은 침묵 속에서 사부의 가르침이 하나 둘 머리에 떠올랐다. 고요한 적막,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고독감 속에서 사이훙은 스승의 당부를 들을 수 있었다.

「만물의 무상함에 대해 명상하라.」

사이훙은 그 오만했던 마음으로, 생명 있는 것은 어떤 것도 결코 영속되지 않음을 궁구하기 시작했다.
 
사이훙은 만물이 무상한 것임을 보다 철저히 이해하기 위해 자신과 만물의 연관성에 대해 생각하였다. 먼저 사람들을 묶고 있는 세속의 연결고리를 하나하나 떼어 내야 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가치와 의미를 가지는 자신의 삶을 허물어뜨려야 했다. 이 작업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사이훙은 곧 의기소침해졌다.

사이훙은 자신이 우상처럼 섬겼던 할아버지를 생각해 보았다. 할머니의 모습도 그의 눈 앞에 나타났다. 6척 장신의 할머니는 냉혹한 여무사였다. 할머니는 여러 가지 무기를 휴대하고 다녔는데, 이것은 항상 관씨 가문이 적대관계에 있는 가문이나 산적들의 공격을 받아 왔기 때문이었다. 할머니가 특히 애지중지하는 무기는 강철선으로 짠 7미터짜리 채찍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기다란 비단 장식을 단 나비 모양의 쌍칼이었다. 언뜻 들으면 고상하고 우아한 권법 같았지만 실상은 그와 딴판이었다. 언젠가 사이훙이 할머니의 쌍칼이 우습게 생겼다고 빈정거린 적이 있었다. 그때 할머니는 한 번의 가격으로 사이훙의 조끼와 상의를 찢고 그의 몸에 심한 매자국을 남겼다. 할머니는 좀처럼 칼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힘을 다 드러내 보이지도 않았다. 할머니는 20년이 넘도록 무예를 닦은 사이훙으로서도 감히 도전할 수 없는 무사였다.
 
사이훙은 그의 조부모들이 자객들과 싸우는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생일 축하객으로 가장한 자객들이 정원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때 별채에 앉아 비파를 뜯고 있던 할머니는 자객의 손에 단검이 반짝이는 것을 본 순간 머리핀으로 꽂고 있던 표창을 던져 자객의 손을 못 쓰게 만들어 버렸다. 격노한 할아버지는 즉각 장법을 펼쳐 자객의 턱을 부숴 버렸다.

또 한 놈은 쌍칼을 들고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힘들이지 않고 칼을 빼앗아서는 단번에 목을 베어 버렸다. 위기에 처한 나머지 두 명은 대문을 통해 달아나고 있었다. 사이훙의 할아버지는 그들을 추격하지 않고 돌아와 손님과 담소를 나누었다. 할아버지는 더 이상 살육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저런 놈들은 살려 두면 안 돼요!」

할머니는 소리치며 일어섰다.

할머니는 놈들을 추격하며 공포의 부접권법으로 간단히 처치해 버렸다.
 
사이훙은 그런 조부모의 피를 이어받았으며 그분들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다. 그러나 그분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가공할 만한 무술로써도 어찌할 수 없는 세월의 흐름에 그분들 역시 생명을 내놓으신 것이다. 사이훙은 인생의 덧없음에 한숨을 쉬었다. 사이훙은 그분들을 잃은 허전함과 마음의 빈 공간들을 메워 나가면서 감상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마음의 흐름을 조절해 나갔다. 그는 애착과 망상의 뿌리를 끊으려 애썼다. 생명 있는 어떤 것도 영원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도 자신의 실존을 영원토록 갖고 갈 수 없다.

도는 항상 변한다. 그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 일, 사상, 심지어 자기 자신의 몸까지도 그런 것에 매달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이훙은 명상의 초점을 옮겼다. 그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사이훙은 자신의 몸을 최고의 무술가의 몸으로 만들고 있지만 그것 역시 오래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장수를 꿈꾸지만, 비록 자신이 영겁을 산다 해도 죽음의 순간을 피할 순 없을 것이다. 손가락은 뻣뻣해질 것이고 힘은 빠져 나갈 것이며 내장기관은 노쇠해질 것이다. 육체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오행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작용에 의해 결합된 것일 뿐이다. 의식의 힘으로 뭉쳐진 이것들은 일단 마음이 떠나가고 나면 셀 수 없는 미세한 입자가 되어 대기 중으로 흩어져 버린다. 천국이든 지옥이든 그 어떤 곳에서건 일단 죽고나면 아무도 자신의 몸으로 옮겨가지 못한다. 그것에 매달리는 일은 부질없는 짓이다. 바로 다음 생에도 그 몸을 가지고 가진 못한다.
 
사이훙은 사부를 생각해 보았다. 그분은 나이를 알 수 없을 만큼 오래 살았다. 그러나 사부도 생을 마감할 날이 올 것이다. 사부가 반딧불이 되어 밤하늘을 날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사부는 항상 죽음이란 단지 껍질을 벗는 일이라고 말해 왔다.

죽음. 사이훙은 죽음을 보았다. 그러나 사이훙은 오직 삶을 원했다. 불로불사를 소원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마음이나 영혼이 정말 영원한가 하는 의심이 생겼다. 마음은 실제로 죽음을 초월하여 불사를 얻을 수 있는 것일까?

모든 것이 마음의 문제라면, 그리고 마음이 죽음을 넘어서 계속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마음이란 영원한 것인가? 그것은 궁극적인 진리로 생각될 수 있는가? 사이훙은 먼저 마음이 있는 곳을 알아내려고 했다. 사이훙은 마음이 자신의 내부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했다. 혹 그것이 몸 밖에 있는 것이라 해도 자신의 주위를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뇌 속에 있을까? 아니다. 그는 마음이 뇌 속에 있지는 않다고 단정했다. 뇌는 단지 마음의 육체적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면 마음은 경락에 있을까? 아니면 영구(靈求), 즉 차크라 속에 있을까?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마음의 창조물에 불과한 것이다.
 
사이훙은 모든 것을 신비주의 종교와 물리적 차원에서 해부해 보았다. 그러나 그런 방법 역시 마음이 도출해 낸 구도에 불과한 것이다. 마음은 그런 구도에 의해 규정될 성격이 아닌 것이다. 그가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마음의 발현인 것이다. 그는 마음 그 자체를 볼 수 없었다. 마음은 형체가 없는 것이다. 그것은 청정한 것이다. 마음은 원하기만 하면 질량을 가질 수도, 불투명한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런 흔적도 없는, 보이지 않는 것이 될 수도 있다. 마음은 우주의 소리처럼 큰소리를 낼 수도 있고 진공 상태보다 더 큰 침묵을 지킬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사이훙은 자신에게 던진 사부의 화두가 귀에 들려왔다.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

그는 끝없이 탐구해 나갔다. 하지만 모든 가능성이 분해되었다. 마음은 가장 미세한 원자의 차원에 있는 것일까? 어떤 미립자 속에 숨어 있을까? 그것은 우주보다 더 큰 것일까?

그는 우주 역시 변하는 것임을 알고 있다. 우주에도 흐름이 있는 것이다. 구체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실재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현자들은 모든 것을 망상이라고 보았다. 그것은 바위가 바위가 아니라서가 아니다. 우주 안에는 어떤 철학을 받쳐 줄만한 정점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해와 지식을 고정시켜 줄 영원한 것은 우주에나 자신의 몸 안에서나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그는 마음을 찾을 수 없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사이훙은 깜짝 놀랐다.

자신이 마음을 결코 찾을 수 없다면 사부가 던진 화두는 그럼 무엇이란 말인가? 마음은 정말 존재하지 않는 것이란 말인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사이훙은 너무도 고요하고 아름다운 평정심을 얻어 그 속으로 몰입해 들어갔다. 자신이 본질적인 실존체가 아님을 궁구하는 것은 결코 공포심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저항심은 미지에 대한 불확신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관점으로 사물을 보게 되었고 그것은 보다 넓은 가능성을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 동안 견지해 왔던 모든 투쟁적인 삶의 방식이나 관념과 사상은 이제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타인에 의해 만들어진, 혹은 본능과 야망으로 자신이 만들어낸 자신의 모든 편린들을 이제 멀리 강물에 떠내려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몸과 영혼을 관 사이훙이라 부르는 결합체 안에 묶어 놓았던 마음의 끈은 풀어졌으며, 물리적인 면에서부터 마음의 이미지에 이르기까지 그를 구성했던 모든 것은 용암처럼 폭발해 버렸다.

사이훙은 이러한 깨달음의 첨탑 위에서 생각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직도 마음의 희미한 불빛이 남아 있었다. 이 비실재성을 명상할 수 있는 인간의 희미한 숨결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의 스승들은 수없이 그에게 말해 주었다. 세상은 망상이라고. 사이훙이 혼란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았던 그들은 이제 사이훙 자신이 〈내 스스로가 망령된 것이구나.〉를 깨달을 수 있도록 오랜 시간을 참고 기다려 주었다.
 
「나」는 만들어진 것이다. 「나」는 의식과 물질이 한데 결합된 산물이다. 「나」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큰 우주의 무한 속을 흐르는 하나의 잔물결에 불과하며 현미경으로 보아야 볼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우주 의식의 한 조각에 불과한 것이다.

자아의 모든 것은 거짓이다. 그것은 자기가 사람이라는 연약한 생각을 지탱해 주는 동화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한 인간이다. 나는 비나 돌, 별, 먼지 또는 공허한 밤과는 전혀 다른 인간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보호하고 감싸고 있는 거짓덩어리인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이 허망한 인생의 실타래를 풀어 헤칠 수 있는 실마리 같은 가능성도 함께 있다.

문득 별로 반갑지 못한 생각이 사이훙에게 떠올랐다. 자신을 묶어 놓고 있는 끈을 풀어 공(空) 속으로 용해시키기는 쉬울 것 같았다. 그러나 실제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여의치 못했다. 자신의 깨달음은 불완전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명상하고 궁구하는 자아가 남아 있었다. 사이훙은 지금도 명상을 하는 중이다. 사이훙은 여전히 한 남자였으며, 승려이고 무술가이며, 방랑자이다. 이러한 신분은 그에게 있어서 닻과 같은 것이다. 이 신분들이 계속해서 사이훙으로 하여금 이 세계를 흥분과 격정 속에서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두 개로 갈라진 연 뿌리를 연결시켜 주는, 거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섬유질처럼 그의 모든 신분이 그를 잡아당기고 있는 것이다. 공(空)은 보면 볼 수 있고 만지면 만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아직 그 공(空) 속에 자신을 용해시켜 버릴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