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머리핀
명상이 모든 것이 될 수는 없다. 아무리 성스러운 일도 지나치면 지루하고 역효과를 낼 때가 있는 법이다. 매사에 균형을 잡는 것은 도교 수행자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신념이었다. 한 가지 일에 지나치게 열중하는 것은 균형을 깨는 일이기 때문에 도교 수행자들은 이를 멀리하였다.
육체 노동은 영적 수련을 하는 데 균형을 잡아 주었다. 도관에서 하는 일은 바깥 세상에서 하는 일과는 성격이 달랐다. 인간의 노동력이나 자연자원을 이기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는 일이란 있을 수 없었다. 육체적인 노동은 공동체 사회에 필요한 모든 물질적인 것들을 제공해 줄 뿐 아니라 영적인 구도자에 대한 존경심을 일깨워 주었다. 장문인에서부터 동자승에 이르기까지 모든 수행자들은 노동을 해야 했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 겸양심과 자비심은 저절로 길러졌다.
원래 도교는 세속적인 사회규범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화산에 사는 도사들은 개개인의 책임과 의무를 필수적인 것으로 알고 있었다. 승려들은 자신이 먹을 곡식을 직접 기르고, 파손된 건물을 직접 수리하였으며, 가구와 의복을 포함한 대부분의 생활필수품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였다. 도관에서의 삶은 자급자족하는 실용적인 생활을 요구하였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사이훙은 온실과 양어장을 관리하는 두 가지 일을 맡게 되었다. 생명 있는 것들을 보살펴 주기 좋아하는 사이훙은 이 임무를 받고 매우 기뻐하였다. 채소와 물고기들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먼동이 트기 전에 사이훙은 정원으로 나가 잡초를 뽑으며 땅을 골랐다. 사이훙은 차양을 친 온실에 이상은 없는지 살펴보며 막 싹이 돋아나는 새싹들을 따뜻하게 보살폈다. 줄에서 벗어나 있는 싹들을 옮겨 심고 정성스레 물을 주었다.
좁은 토지에서 많은 채소를 재배하기 위해서는 온실이 필요하였다. 온실은 화산의 거친 비바람으로부터 채소를 잘 보호해 주었다. 화산의 도교 수행자들은 산의 계곡이나 비탈진 곳을 가리지 않고 햇빛을 충분히 받을 만한 곳에는 어디나 온실을 만들었다. 날카로운 판단력과 힘든 노동을 통해 그들은 협소한 토지에다 많은 도사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농작물을 재배하였던 것이다.
사이훙은 색다른 농기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아닌 피리였다. 그는 스승에게 들어 식물들도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이훙은 가지를 쳐주고 물을 주는 일 외에 그들의 성장을 돕는 웅장한 음악을 연주해 주었다. 누가 보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는 그런 것에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자연과 하나됨을 추구하는 도교 수행자다운 행동이었다.
채소를 가꾸는 일은 하나의 도라고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예지력과 변화의 수용, 그리고 자연과의 협동심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농작물의 흉작은 농사를 잘못한 인간의 책임이라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사소한 인간의 부주의 때문에 농작물은 제대로 자라지 못하기도 한다. 그러나 세심하고 규칙적으로 돌보기만 하면 풍성한 수확은 예정되어 있는 것이었다.
농작물과 함께 대여섯 시간을 보낸 사이훙은 이번에는 물고기들을 돌보러 갔다. 화산의 도사들은 자연적으로 천장에 큰 구멍이 뚫려 채광창을 갖춘 동굴 안에 나무로 여물통을 만들어 크고 작은 잉어와 창꼬치를 키우고 있었다. 아직 이른 봄이라 아침이면 양어장 수면에는 얼음이 얼어 있었다. 사이훙은 얼음을 깨고 여물통에 낀 오물과 이끼 등을 닦아내고 여물통으로 유입되는 물의 양을 대나무 막대기로 조절하였다. 그는 대나무 막대기의 배출구에서 물이 잘 흘러 나오는지 확인한 다음, 여물통에 곤충과 곡식, 그리고 잘게 쓴 버섯을 넣어 주었다.
일을 마친 사이훙은 이마의 땀을 닦고 손을 씻었다. 물고기들 역시 피리소리를 좋아했다. 사이훙이 피리를 연주하기 시작하면 물고기들은 금세 모여들어 한 방향으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마치 주인의 음악 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어떤 놈들은 머리를 수면 위로 내밀고 여물통의 바닥까지 다이빙을 하기도 했다. 사이훙과 물고기들은 30분이 지나도록 하나가 되어 음악에 몰입해 있었다.
갑자기 까마귀떼의 울음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왔다. 양어장에는 종종 날짐승이나 들짐승들이 나타나서 물고기들을 먹어치우는 일이 있어서 언제나 파수꾼이 지키고 있다가 그놈들을 쫒아버리곤 했다. 그런데 오늘은 몸집이 큰 산까마귀들이 저녁 사냥을 위해 양어장에 침입한 것이다. 기겁을 한 사이훙은 풀로 짠 돗자리를 여물통 위에 덮었다. 그러나 까마귀들은 나머지 여물통을 향해 공격해 왔다. 사이훙은 피리로 휘둘러 놈들을 쫒으려 했다. 그러나 그놈들은 능란한 비행 솜씨로 힘들이지 않고 이를 피해 냈다.
사이훙은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갖다 놓았던 새총을 기억해 냈다. 사이훙은 새총을 찾아 꺼내 들었다. 까마귀의 수가 너무 많은데다 새들이 어지럽게 날고 있었기 때문에 조준하기가 어려웠다. 사이훙은 동굴 중앙에 서서 단단한 콩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사이훙이 까마귀들을 맞힐 때마다 놈들은 날카로운 비명소리를 질러댔다. 훼방을 받은 까마귀들은 겁도 없이 사이훙을 향해 공격해 왔다.
사이훙은 빗자루를 거머쥐고 까마귀의 공격을 막아냈다. 화난 까마귀들이 밀려올 때마다 사이훙은 뻣뻣한 털로 그놈들을 찔러 반격을 가하였다. 마치 까마귀들과 창시합을 하는 것 같은 그 모습은 꼭 미친 듯이 여물통 주위를 돌며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이윽고 교대할 승려가 나타났다. 힘겨운 전투를 벌이던 사이훙은 동료를 향해 지원을 바라는 간절한 시선을 보냈지만 그 친구는 입가에 미소만 머금은 채 더 큰 빗자루를 가지고 하라는 듯 손짓만 할 뿐이었다.
사이훙은 사원으로 돌아오는 오솔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그의 머리에는 요즘 서서히 농장에 모습을 보이는 농기계들이 떠 올랐다. 사이훙은 자신이 정부의 고위관리로 있을 때 썻던 논문을 떠올렸다. 그것은 농업의 기계화와 집단농장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화산의 승려들에게는 그런 농기계를 살 여유가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주된 농사의 수단은 여전히 인간의 노동이었다.
노동은 잠재적인 영적 성장의 시간이었다. 화산의 도사들은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과 함께 일을 하였다. 그들은 결코 자연을 거스르지 않았다. 그들은 자연과 선물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결코 뻔뻔스럽게 자연을 이용만 해먹지 않았다. 그들이 땀흘려 거둬 들이는 수확은 물고기나 농작물도 동시에 수확하는 것이었다. 사이훙은 축축한 흙을 손에 넣으며 도(道)를 느꼈고, 흐르는 물을 만지며 도를 체험했다. 계절을 쫓아 사는 삶이 도를 따르는 삶이었다. 어떤 순간도 깨닫지 않은 적이 없었다. 깨달음은 제단에서 기도하며 얻는 것도 아니고 경전을 안다고 해서 찾아오는 것도 아니었다. 깨달음은 삶의 일부분이며 삶의 선물이었다. 깨달음을 별개의 무엇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양어장의 오물을 지고 갈 때 그는 신들의 선물을 지고 가는 것이었다.
신선한 화산의 공기를 마시고, 힘든 노동의 정직함을 배우며 명상의 청정함을 얻은 사이훙은 세속의 온갖 더러움을 씻어 내고 있었다. 이제 그는 침착하지 못한 성품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것이며 그의 나날은 명상과 기도로 채워져 갈 것이다. 사이훙은 이런 생각을 하며 흥겨운 노래를 불렀다.
사이훙은 신당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우뚝 솟은 신당 지붕과 용의 모습이 새겨진 기둥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깨끗한 법의를 입은 사이훙은 돌 대야에 손을 씻었다. 차가운 물이 손가락을 마비시킬 것만 같았다. 그러나 자신의 신성한 의무에 마음을 집중한 그는 그런 것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사이훙은 어둠에 깔린 신당 안을 걸어 들어갔다. 아무에게도 인사를 건네지 않고 말도 붙이지 않으며 이미 수십 명의 도사가 서 있는 줄 끝에 섰다. 백단향 향기가 넓은 신당을 짙게 감싸고 있었으며 촛불은 곳곳에서 가물가물한 불빛을 발하고 있었다. 촛불에 반사된 황금색 신상은 더욱 위엄 있어 보였다.
신당 안에 쳐진 자수 비단 커튼 뒤에는 실물 크기의 도교 최고신들이 앉아 있었다. 태초의 존재인 자미대제와 노자가 그들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졌지만 고승들의 영기를 받은 신상이었다. 섬세한 도색과 색깔 있는 유리 눈, 사람의 머리카락을 하고 법의를 걸친 두 신들은 종종 살아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했다.
사이훙은 아까부터 어린 시절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는 신당에 들어가는 것을 무척 무서워했다. 왜냐하면 살아 있는 것 같은 이 두 신이 자기에게 말을 걸어 올 것 같고 벌을 내릴 것 같기 때문이었다. 사이훙은 어린 시절의 그 느낌들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성인이 된 사이훙에게는 아직도 그런 원초적인 외경심이 남아 있었다.
사이훙은 경전을 읊기 시작했다. 밝고 부드러운 색상의 예복을 입은 린 쭝우가 본절을 낭송하면 사이훙과 나머지 승려들은 후렴을 합창으로 불렀다. 종과 법고, 자바라 등으로 분위기를 한껏 고취시키는 예배 의식은 다분히 음악적이었다.
사이훙은 아무 거리낌 없는 자유로운 마음 상태가 되어 경을 읊었다. 숭배와 헌신은 자기 자신에 대한 중요한 표현 수단이 되었다. 사이훙은 예배 의식을 통해 자신이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성스러움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사이훙은 뛰어난 재능이나 말솜씨가 아닌 자신의 소박하고 정직한 영혼을 바쳤다.
예배는 두 시간 가까이 계속되었다. 예배가 거의 끝날 무렵 사이훙은 제단 앞으로 가 무릎을 꿇고 절을 하였다. 아홉 번을 절한 뒤 사이훙은 천천히 물러나와 도관을 빠져 나왔다.
바깥 공기는 매섭고 차가왔다. 저녁이 되자 한층 더 추위가 느껴졌다. 사이훙은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하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지평선에는 진홍색 노을이 희미하게 깔려 있었으며 높은 하늘은 벌써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별 하나가 아까부터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달도 이미 떠 있었다. 산봉우리와 계곡을 타고 얼음장같이 차가운 공기가 흘러 내려오고 있었다. 사이훙은 한기를 느끼고 몸을 떨었다. 다시 겨울 누비옷을 입어야 할 것 같았다.
계절은 벌써 가을로 접어들고 있었다. 단풍잎들은 빨갛게 물들었으며, 산 정상 언저리에는 눈보라가 휘날리고 있었다. 이제 서둘러 월동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일단 눈이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하면 하산은 불가능한 일이다. 한번 미끄러지면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계곡 아래로 떨어져 황천길을 피할 수 없다.
사이훙은 본당의 식당으로 갔다. 참새같이 재잘대는 소리가 들려 오는 커다란 식당 벽에는 말린 야채와 식기들이 걸려 있었다. 식당은 이곳에서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긴 머리를 수건으로 감싼 주방승들이 분주하게 저녁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떤 주방승은 벽난로 위에 놓인 거대한 솥 앞에 서서 야채국을 휘젓고 있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야채를 튀기고 있었다. 두세 명의 요리사들은 빵을 가마에서 구워 내고 있었다. 여기서는 쌀보다는 밀이 많이 생산되니 자연히 빵이 주식이 되었다. 앳되어 보이는 동자승 두어 명이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었다.
사이훙은 국수와 야채가 든 사발과 초롱불을 들고 있었다. 마침 이날은 축제일 중의 하루에 해당하여 생선을 먹지 못하는 날이었다. 항상 허기가 지는 사이훙은 종종 지금보다 훨씬 많은 축제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사이훙은 오두막으로 가서 혼자 저녁을 먹고 싶었다. 조용한 가운데 저녁식사를 함으로써 발심(發心)을 새롭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이훙은 거의 매일 사부가 내린 화두에 대한 답을 찾아 사부를 찾아갔다. 그러나 사부는 언제나 점잖게 나무란 다음 더 공부하고 오라며 사이훙을 돌려보냈다.
오두막은 비참할 정도로 추웠다. 그는 등불을 켜고 청동 화로에 나무를 집어넣었다. 불이 어느 정도 지피는 것을 보고 막 식사를 하려는데 사부가 문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이훙은 깜짝 놀라 무릎을 꿇었다. 대사부는 가벼운 걸음으로 방에 들어왔다. 검은 장삼을 입은 사부의 모습은 언제나 청순해 보였다.
대사부는 한동안 입을 열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사이훙은 사부를 처음 보았을 때 사부의 두 눈을 한참 쳐다보았던 어린 시절의 일이 생각났다. 사부의 눈에는 최면을 거는 듯한 신비스러움과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었다. 사이훙은 자신의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외로움을 항상 느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못내 아쉬워했던 사이훙은 사부가 좀더 따뜻하고 친근한 할아버지를 대신해 주었으면 하고 언제나 마음속으로 바라곤 했다. 그러나 도관에서 사부와 제자의 관계는 엄격한 것이었다.
대사부가 오랜 침묵을 깨고 말문을 열기까지 사이훙은 자신의 마음을 얼마나 빼앗기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너의 운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느니라. 너는 이것 중국에서 해답을 찾으려 해서는 아니 된다. 바다를 건너가 거기서 해답을 구하도록 하여라.」
사부는 법령을 선포하듯 이렇게 말했다.
사이훙은 사부의 돌발적인 하명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사부님, 제가 소원하는 것은 사부님을 모시는 일입니다.」
「아직 그럴 때는 되지 않았느니라. 너는 반드시 본성을 찾는 일을 완수해야 한다.」
「그러면 되도록 빨리 그 일을 이루고 돌아오겠습니다.」
사이훙은 스승의 말이 떨어지자 즉시 이렇게 대답했다.
「안 돼. 돌아오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하느니라.」
사이훙은 너무 놀라 할말을 잃고 묵묵히 있었다.
「나는 네가 돌아올 때쯤이면 이곳에 없을 것이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왜 여기 안 계신다는 말씀입니까?」
「그 일에 대해서는 묻지 말아라. 너는 네가 할 일만 충실히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사부님, 도대체 제가 할 일이란 게 무엇입니까?」
사이훙의 목소리에는 절망의 빛이 가득했다.
「본성을 찾는 일이다. 나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느니라. 그러니 본성을 찾아서 내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는 돌아와서는 안 될 것이야.」
대사부는 이 말을 마치고 휑하니 돌아서서 가버렸다.
사이훙이 벌어진 입을 다물고 정신을 차릴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머리끝까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밥그릇을 벽에다 내동댕이쳤다. 흥분한 사이훙은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벽을 무섭게 노려보면서 방을 몇 바퀴 돌던 사이훙은 머리에 꽂고 있던 머리핀을 뽑았다. 그것은 20년 전 그가 도교에 정식으로 입문할 때 대사부가 선물로 준 것이었다. 사이훙은 창문을 주먹으로 쳐서 열어제치고는 산비탈을 향해 머리핀을 힘껏 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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